리디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6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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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 비채에서 제공받은 가제본으로 미리 읽고 쓴 서평입니다.^^)

 

리디머는 단순히 해리 홀레 시리즈 6이라는 외형 이상의 존재감이 있는 작품입니다.

시리즈의 큰 변곡점을 위한 가교 같은 작품이랄까요?

일명 오슬로 3부작이라 불린 앞선 3~5(레드브레스트, 네메시스, 데빌스 스타)

해리의 파트너였던 엘렌 살해사건의 진실을 찾으면서

동시에 무자비한 연쇄살인범 프린스를 쫓는 한편의 거대한 서사였다면,

리디머는 뒤에 나올 7~9(스노우맨, 레오파드, 팬텀)을 위한 휴식시간같은 작품입니다.

 

앞선 오슬로 3부작에서 몸과 마음이 엉망진창이 됐던 해리는

리디머에서는 나름 회복의 시간을 보내면서 그답지 않은(?) 총명함까지 발휘합니다.

, 상대적으로 소소해 보이는 사건의 규모도 의외였고,

(짐 빔의 유혹에 잠시 굴복하긴 해도) 말짱한 정신으로 수사에 임하는 해리도 낯설어 보였고,

비장한 스릴러의 느낌보다는 깔끔한 형사 미스터리로 포장된 서사도 예상 밖이었습니다.

물론 요 네스뵈가 그리 쉽고 만만한 작품을 썼을 리는 만무한데,

앞서 읽은 작품들의 무게감이 너무 묵직했던 탓에 상대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이란 생각입니다.

다만, 후속작들을 통해 해리가 어떤 고난과 상처를 겪을지 이미 잘 알고 있는 독자 입장에선

이 회복의 시간과 총명함과 깔끔함이 너무 안쓰럽게 읽힐 수밖에 없는 게 사실입니다.

 

아무튼...

크로아티아에서 날아온 작은 구세주라 불리는 살인청부업자,

연이은 피살자들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노르웨이 구세군의 비하인드 스토리,

군나르 하겐 체제로 재편된 경찰 조직 하에서 해리가 겪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 등

다양한 재료와 사건들로 범벅이 된 리디머는 전작들과는 달리

그리 마음 졸이면서, 또는 해리의 고통과 상처에 가슴 아파하면서 읽지 않아도 되는

꽤 편하고 재미있는 경찰 미스터리에 속합니다.

분량(618p)은 여전하지만 해리의 고뇌를 쥐어짜는 듯한 난해한 문장들도 별로 없고,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디테일에 집착한 대목들이 별로 없는 점도 전작과 다른 점입니다.

 

리디머를 다 읽은 뒤에 든 첫 생각은 처음부터 순서대로 다시 읽어야겠다.’였습니다.

노르웨이 여인 살인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호주까지 날아온 32살의 팔팔한 해리(박쥐)부터

자신을 아버지처럼 따르던 라켈의 아들 올레그를 직접 수사해야 했던 중년의 해리(팬텀)까지

순서대로 차분히 되읽다보면 해리 홀레라는 불행한 한 남자의 인생사뿐만 아니라

타고난 경찰 해리 홀레의 성장기라는 거대한 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스케일이나 깊이 면에서 아쉬움을 느낀 것도 사실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런 아쉬움 때문에 곧 스노우맨이라는 엄청난 사건에 휘말려

몸과 마음을 크게 다칠 자신의 운명을 모르는 천진난만한(?) 해리를 지켜보는 일이

더 아이러니하고 가슴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뒤죽박죽 순서로 시리즈를 읽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처연함을 맛보게 되기도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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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녀의 머리 없는 시체
시라이시 가오루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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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꽤 살벌하고 잔혹한 느낌을 주지만 스토리는 아주 얌전(?)합니다.

물론 실제로 머리 없는 그녀의 시체가 등장하고,

초반부터 주인공이 스스로 그녀의 머리를 잘랐음을 이실직고하는 것은 물론

도쿄 시부야 한복판의 번화가에 그녀의 잘린 머리를 유기하는 엽기적 장면이 묘사되지만

이후 주인공의 행적은 잔혹한 살인마와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읽는 내내 내가 지금 미스터리를 읽고 있는 게 맞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작가는 그녀의 머리를 자른 주인공의 엉뚱한 면모를 주로 그려갑니다.

일본 유수의 종합상사의 직원인 시라이시는 말 그대로 똘끼 충만한 천재입니다.

최고경영진 앞에서 거침없이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는가 하면,

아무도 상상도 못한 방법으로 회사가 처한 난국을 타개하기도 합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뭇 여성들의 관심을 끄는가 하면,

야쿠자와 맞닥뜨린 위기에서는 갑자기 괴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반면, 초반에 등장한 머리 없는 그녀의 시체는 한동안 독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가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툭툭 나타나곤 합니다.

 

이러다 보니 그녀의 머리를 자른 시라이시의 정체는 갈수록 모호해지고,

그가 과연 잔혹한 살인마인지 여부부터 의심스럽기 시작합니다.

특히 중반부는 똘끼와 매력이 충만한 한 샐러리 맨의 성장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머리 없는 그녀의 시체와는 무관하게 흘러가서 이 작품의 장르를 의심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중반부를 한참 넘어서야 이 작품의 진짜 이야기가 소개되는데,

나름 개성도 있고 독특한 소재인데도 불구하고 중반부의 모호한 서사 때문에

정작 힘을 받아야 할 지점에서 그러지 못하게 된 점은 무척 아쉬운 대목이었습니다.

무엇보다 4차원을 넘어선 주인공의 캐릭터가 내내 거슬렸는데,

그와 머리가 잘린 그녀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장면이나 미스터리를 해결되는 대목에서도

지나치게 파격적이거나 4차원적인 언행 때문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마치 기승전결이나 방향성 따윈 무시하고 정신없이 전개되는 B급 블랙미스터리의 느낌이랄까요?

 

이 작품과 거의 같은 시기에 후속작인 모두가 나에게 탐정을 하라고 해가 출간됐는데,

시라이시의 캐릭터에 매력을 느낀 독자라면 당연히 찾아 읽게 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인공미가 너무 강해서 그런지 후속작까지 이르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인터넷 서점의 서평을 대략 훑어보니 호평하신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관심 있는 독자라면 다른 분들의 서평도 꼭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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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출산
무라타 사야카 지음, 이영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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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말 이상한 소설뿐이지만,

나는 쓰는 동안 이런 일이 언젠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렇기에 이 소설들은 매우 이상하지만, 내게는 매우 사실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충격적이고 기괴한 작품들 때문에 크레이지 사야카라는 별명을 얻은 작가 본인의 말입니다.

표제작 살인출산을 포함, 수록된 네 작품 모두 작가 말대로 정말 이상한 소설들뿐입니다.

당연한 상식으로 여겨지는 가치관과 세계관을 아주 가볍게 전복시킨 것은 물론,

잔혹하고 선정적인 장면들을 태연히 담담한 문장들로 그려낸 작품들을 읽다 보면

(저는 꽤 잘 맞았지만) 독자에 따라 극단적인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네 편의 수록작은 각각 출산, 연애, 결혼, 죽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10명의 아이를 낳으면 합법적인 살인권을 얻게 되는 세상을 그린 살인출산’,

세 사람의 사랑에서만이 쾌감과 정화의 느낌을 받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트리플’,

섹스 없는 결혼을 영위하는 부부의 섹스 없는 임신도전기를 다룬 청결한 결혼’,

의학의 발달로 자살만이 유일한 죽음의 방편이 된 세상을 그린 여명’.

 

작품에 따라 작가의 도발적 태도는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지만,

일관되게 유지되는 관점은 비정상과 정상, 금기와 허용이 역전된 세상을 그린다는 점입니다.

출산은 더 이상 사랑과 결혼의 산물이 아니라 합법적인 살인권을 얻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며,

(남자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남자의 경우 인공자궁+제왕절개를 통해 출산을 하게 됩니다.)

그 외의 모든 불법적인 살인범들은 죽을 때까지 출산해야 하는 끔찍한 형벌을 받습니다.

, 길거리 곳곳에서 세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키스하는 장면을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세상,

조금의 스킨십조차 없이 이뤄지는 무성(無性) 생식에 다름 아닌 청결한임신 과정,

자살을 원하는 사람에게 주민등본 발행하듯 손쉽게 사망허가서를 내주는 관공서와

고객이 원하는 자살 스타일에 맞는 치명적인 약을 친절하게 처방해주는 약국 등

독자들은 금기로 여겼거나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기괴한 세계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고백하자면, 이 작품들을 통해 뭔가 소소한 깨달음이나 철학적 결론을 얻은 건 아닙니다.

그런 목적으로 쓰인 작품도 아니거니와, 그런 목적으로 읽으면 더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고,

오히려 (작가의 바람대로) 자유로운 마음으로 읽어야 할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언젠가 도래할 것이 분명한 암울한 디스토피아라면 모르겠지만,

작가가 그린 세계는 그와는 무관한 특별하고 발칙한 상상력의 산물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19금 작품이라 뭔가 자극적인 것을 기대한다면 100% 실패할 거라 자신합니다.^^)

 

화제에 올랐던 작가의 전작 편의점 인간을 아직 읽진 못했지만,

어쨌든 크레이지 사야카의 작품들은 계속 눈여겨 볼 생각입니다.

살인출산이후 그녀의 작품들이 국내에 좀더 많이, 자주 소개되기를 기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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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렌의 참회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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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데이토TV의 간판 보도 프로그램 애프터 JAPAN’의 아사쿠라 다카미는

아직은 미숙하지만 특종에 대한 열망이 강한 2년차 기자.

다카미는 시니컬하면서도 베테랑다운 면모의 선배 사토야와 함께 특종 찾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 그들에게 여고생 유괴살인사건 소식이 들려오고,

경찰의 은밀한 움직임을 따라잡은 끝에 용의자의 정체까지 알아내는 엄청난 특종을 거머쥔다.

회사는 축제 분위기에 빠지고 다카미는 용의자 체포 장면을 단독 포착할 생각에 들뜨는데...

(출판사의 소개글을 바탕으로 쓴 줄거리입니다.)

 

● ● ●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이라는 정보 외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그래서인지 우선 제목 속 세이렌이 누굴까, 어떤 캐릭터일까?’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첫 페이지를 열자마자 세이렌=언론이란 걸 알 수 있었는데,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선원들을 유혹해 난파로 이끄는 그리스 신화 속 세이렌이

대중을 오도하는 선정적이고 기만적인 언론을 빗댄 표현으로 설정된 점이 무척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어떤 식으로 참회한다는 건지도 급 궁금해졌습니다.

 

주인공 다카미는 전형적인 신참 기자 캐릭터입니다.

경험도 부족하고,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고, 특종에 대한 열망도 강렬합니다.

그렇다고 마냥 가벼운 캐릭터는 아닙니다.

그녀는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감춰진 진실과 약자의 분노를 알리는 기자가 되고 싶었고,

지금도 사건사고 속 가해자와 피해자를 지켜볼 때마다 동생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런 그녀가 자살 당시 동생과 비슷한 연배의 여고생이 참혹하게 살해된 사건을 접하자

남다른 의지와 열정을 갖고 취재를 시작합니다.

 

다카미의 파트너이자 베테랑 기자인 사토야는 다카미와는 180도 다른 인물입니다.

어찌 보면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이 바닥의 때란 때는 죄다 뒤집어쓴 기자 같다가도,

어떤 때는 진정한 기자의 태도를 온몸으로 강변하는 순수하고 정의로운 인물 같기도 합니다.

다카미가 폭주하려고 하면 적절하게 제동도 걸어주고,

다카미가 좌절할 때면 긍지와 각오와 초심을 일깨우며 부축해주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재수 없지만 알고 보면 멋진 기자 캐릭터랄까요?

 

어쨌든 이 둘은 회사의 위기도 극복하고 특종이라는 명예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하지만 그 고군분투가 결국은 대참사를 일으키게 되고 그들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합니다.

대오보-숙청-참회라는 목차를 보면 대략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쉽게 예상이 되는데,

그렇다고 이 작품이 언론의 정도만을 다루고 있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나카야마 시치리는 반전의 제왕이라는 별명답게

여고생 유괴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과정 역시 여러 번의 반전을 통해 밀도 있게 그립니다.

말하자면 살인사건 미스터리와 신참 여기자의 성장기가 잘 배합된 작품이란 뜻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작가가 주제를 너무 자주, 노골적으로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다카미의 선배 기자인 사토야는 말할 것도 없고,

언론을 ‘SNS에 탐닉하는 네티즌과 같은 수준으로 여기는 담당형사 구도 겐지 역시

기자란.. 언론이란.. 진실이란..” 교훈을 쉴 새 없이 다카미에게 퍼붓습니다.

어느 대목이나 다 수긍도 되고 납득도 되는데 개인적으론 좀 과했다는 생각입니다.

 

그 점만 빼면 나카야마 시치리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은 쉽고 재미있게 읽힙니다.

전작들에 비해 사건은 덜 잔혹하고 덜 선정적이지만,

냉소적이지만 유능한 선배 + 좌충우돌이지만 열정으로 가득한 후배조합의 매력은

전작인 살인마 잭의 고백이나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살짝 가벼워 보이는 서사도 읽다 보면 점점 그 무게감이 묵직해지는 것도 비슷합니다.

특종에의 열망 대참사 와신상담 극적인 재기로 이어지는 통속적인 구성이지만

사건은 사회파 미스터리의 매력을 띄고 있고, 인물들은 매력적으로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번역하신 이연승 님의 후기를 보니 나카야마 시치리가 연평균 4.5권의 작품을 낸다는군요.

엄청난 다작이지만 아직까지(?) 일정한 퀄리티를 유지하는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페이스라면 올해에도 1~2편 정도 더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시리즈의 어떤 작품이 먼저 출간될지 벌써부터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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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미티 아줌마의 죽음
낸시 애서턴 지음, 이현경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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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뒤 힘겹고 우울한 삶을 살아가던 로리 셰퍼드에게 법률 회사의 편지가 날아든다.

어릴 적,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동화 속 주인공 디미티 아줌마의 부고를 알리는 내용이었다.

디미티 아줌마가 실존 인물이었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해진 로리는 법률 회사를 찾아간다.

변호사 윌리스에게 디미티 아줌마와 어머니의 관계에 대한 뜻밖의 이야기를 들은 로리는

디미티 아줌마의 유언에 따라 영국의 한적한 마을 핀치에 있는 시골집에 한 달간 머물며

디미티 아줌마와 엄마가 주고받은 편지를 읽고 그 안에 담긴 미스터리를 해결하기로 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편집, 인용했습니다.)

 

● ● ●

 

영국의 한적한 마을에 자리 잡은 화사하게 꾸며진 시골집,

오래된 편지 속에 담긴 2차 대전 말기를 살았던 두 여자의 우정과 미스터리,

그리고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잔잔한 판타지 등

여러 가지 코드가 온기를 머금은 채 버무려져 있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로리가 부여받은 미션은 쉬운 듯 보이지만 사실 무척 까다로운 일입니다.

디미티 아줌마는 자신의 이름으로 펴내려는 동화책의 머리말을 써달라는 부탁을 남겼고,

(그를 위해 동화책의 원전이나 다름없는 엄마와 주고받은 편지를 읽어야 한다는 조건과 함께)

엄마는 자신과 처음 만났을 때 폐인 일보 직전의 모습이었던 디미티 아줌마가

당시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던 것인지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사진 한 장과 함께 남겼습니다.

로리가 가장 사랑했던, 하지만 이젠 고인이 된 두 여자의 과거를 소환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디미티 아줌마의 부탁은 그냥 부탁이 아닙니다.

자신이 살던 시골집에 머무르라고 한 것은 그 안에 로리가 찾아야 할 단서가 있다는 뜻이고

편지를 제대로 읽어야 쓸 수 있다는 동화책 머리말 역시

편지 속에 담긴 행간의 비밀을 알아내라는 일종의 암시가 내포돼있습니다.

그 단서와 비밀을 쫓던 로리는 엄마가 궁금해 하던 디미티 아줌마의 과거를 조금씩 알게 되고

궁극의 정답을 찾기 위해 디미티 아줌마의 시골집과 인근의 멋진 언덕들,

그리고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공습을 겨우 피한 런던의 유서 깊은 곳들을 뒤지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로리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의문의 현상과 연이어 만나기도 하고,

낭만과 참화가 공존했던 2차 대전 말기의 런던의 향수에 빠지기도 합니다.

, 새삼 세상을 떠난 엄마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에 젖거나 궁핍한 처지의 자신을 되돌아보며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엄청난 성장을 겪기도 합니다.

물론 영국까지 동행한 변호사 윌리스의 아들 빌과 로코 풍의 소동도 한몫 거들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잘 버무려진 탓에 다채로운 맛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긴 하지만,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에 미스터리를 기대한 독자들에겐 좀 답답하게 읽힐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영국으로 떠나는 대목이 거의 작품 중반쯤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로리의 상황과 미션 설명이 충분히 필요하긴 했지만 메인 요리가 너무 늦게 나온 기분이랄까요?

, ‘로리의 미션은 정확히 뭔가?’라는 점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던 의문인데,

디미티 아줌마와 엄마가 남긴 미션이 딱 떨어지는 구체적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다 읽은 뒤엔 어느 정도 그 모호함이 이해되긴 했지만

아무래도 읽는 도중에 길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저만의 경험은 아닐 거란 생각입니다.

 

살인사건만 없을 뿐 루이즈 페니의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이후 로리와 디미티 아줌마를 주인공으로 한 23편의 시리즈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이승과 저승에 사는 두 여자가 도대체 어떤 이야기들을 풀어냈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데

디미티 아줌마의 죽음이 선전한다면 몇 편 정도의 후속작은 더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따뜻한 코지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에겐 강력한 추천을,

정통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에겐 다른 분들의 서평도 참고해보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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