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패리시 부인 미드나잇 스릴러
리브 콘스탄틴 지음, 박지선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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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주리 시골 마을 출신으로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던 앰버 패터슨.

그녀는 지긋지긋한 삶을 마감하고 인생을 새롭게 뒤바꾸고 싶어 한다.

그녀는 스스로 현재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호화로운 저택들이 비밀스럽게 자리한 코네티컷 비숍 하버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프니와 그녀의 남편 잭슨을 동화 속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완벽한 커플로 여긴다.

앰버는 자신이 꿈꿔온 대로 살아가는 패리시 가()의 화려한 삶에 뛰어들기 위해

대담하고도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제일 먼저 패리시 가의 안주인인 대프니를 산 채로 집어삼키기로 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편집,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고백하자면, ‘마지막 패리시 부인은 두 번째 도전만에 완독한 작품입니다.

처음엔 150페이지도 못 가서 중도포기 했었는데,

이유는 동어반복만 거듭하는 초반의 지루한 이야기 전개 때문이었습니다.

페이지를 아무리 넘겨도 진도는 찔끔찔끔 나갈 뿐이고,

앰버 패터슨의 목표는 언제 이룰지 감조차 잡지 못할 정도로 계속 멀리만 보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분들의 서평을 훑어보다가 딱 절반까지만 읽어보자는 심정으로 재도전을 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로 그 지점(250p 전후)부터 이야기가 갑자기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는 그야말로 거의 폭주하듯 페이지가 넘어가버렸습니다.

이야기는 모두 세 개의 챕터로 구성돼있는데,

첫 챕터가 앰버’, 두 번째 챕터가 대프니이고,

세 번째 챕터는 소제목은 없지만 앰버+대프니라고 붙일 만한 내용입니다.

 

마지막 패리시 부인이 되기 위한 앰버의 욕망을 그린 첫 챕터는

앞서 언급한대로 독자를 지치게 할 정도로 느리고 집요하게 전개됩니다.

대프니로부터 부와 명예, 완벽한 남편까지 빼앗겠다는 거대한 목표를 설정한 만큼

앰버는 서두르지 않고 치밀하고 빈틈없이 패리시 가에 한걸음씩 야금야금 발을 들여놓는데,

좀 지루하더라도 이 과정을 탄탄하게 만들기 위한 작가의 고민의 결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앰버의 챕터에 절반이 넘게 할애된 점은 여전히 과하다는 생각입니다.

 

첫 챕터에서 무기력하게 자신의 성()을 침탈당하던 대프니는

두 번째 챕터의 화자로 등장하면서 패리시 가의 숨겨진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잭슨과 만나게 된 사연, 그와의 화려하고 부유한 결혼생활, 아무도 모르는 그녀만의 비밀 등

독자들은 이야기를 반전으로 이끌만한 확고한 단서들을 이 챕터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챕터는 그릇되고 잔혹한 욕망이 어떻게 파멸적인 결론을 맞이하는지를

앰버와 대프니 두 여자의 관점에서 번갈아가며 극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사실, ‘마지막 패리시 부인2017년에 쓰인 작품이라기보다

조금은 클래식한 느낌 또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다 읽은 뒤 인터넷 서점의 소개글을 보니

자매인 작가들이 할머니에게서 들은 옛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돼있더군요.

하지만 익숙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독자들의 흥미를 끄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고,

초반의 지루함만 견딘다면 중반 이후 가속이 붙은 이야기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비록 대단한 반전이나 예상을 빗나가는 참신한 엔딩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막장이라 칭해지는 한국의 인기 드라마와 코드가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한국 독자들에게는 좀더 강한 중독성을 발휘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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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누쿠이 도쿠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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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초등학교 여교사가 자택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용의자는 동료 교사로 특정되고 사건은 금세 해결되는 듯 보였지만,

사건에 얽힌 인물들의 증언에 따라 사건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추리는 성립과 붕괴를 거듭해나간다. 과연 그 진상은 무엇일까?

(출판사의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 ● ●

 

예전에 읽었던 누쿠이 도쿠로의 작품들과는 사뭇 느낌이 다른 작품입니다.

특히 결과보다 과정에 방점이 찍힌 서사는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만

살인사건을 둘러싼 여러 관련자들의 추리와 진술이

각자의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모양새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색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프리즘이란 제목은 나름 비유의 멋이 깃들어 있기도 합니다.

 

자기 집에서 살해당한 채 발견된 초등교사 미쓰코는

언뜻 아리요시 사와코의 악녀에 대하여의 여주인공 도미노코지 기미코를 연상시킵니다.

그녀가 죽은 뒤 그녀의 지인들은 모두 제각각의 평가와 이미지를 진술하는데,

극과 극으로 갈린 진술들 때문에 도무지 어떤 사람이라고 단정 짓기 어려웠던 그녀처럼

이 작품의 희생자 미쓰코 역시 그녀의 제자들, 동료교사, 전 남친, 불륜남으로부터

좋은 선생님’, ‘완벽녀’, ‘제멋대로인 악녀등 다양한 평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지인들은 다들 각자의 사정 때문에 형사 못잖은 탐문을 벌이면서

미쓰코는 누구에게, 왜 살해당했는가?’를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각자 기억하는 미쓰코가 제각각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추리와 결론 역시 제각각입니다.

동료교사를 지목하는 사람도 있고, 계획적 살인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단순 강도 또는 사고사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챕터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추리가 등장하고 새로운 용의자가 등장하는 셈입니다.

그에 따라, 첫 챕터에선 참된 교육자이자 순수 그 자체였던 미쓰코도 챕터가 바뀔 때마다

악녀 또는 희대의 팜므 파탈 등으로 변신하게 됩니다.

과연 이 추리의 끝에는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앞서, ‘결과보다 과정에 방점이 찍힌 탓에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고 언급했는데,

저의 경우엔 딱 5:5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미스터리는 결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장르라서 그렇겠지만,

누쿠이 도쿠로의 후기대로 추리를 쌓고 허무는 과정자체에 흥미를 느끼는 독자라면,

그래서 스스로 탐정이 되어 미스터리를 풀어가는데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무척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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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을 파는 가게 1 밀리언셀러 클럽 149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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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단편들을 한데 모아 놓으면 자정에만 문을 여는 노점상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이런저런 것들을 늘어놓고, 와서 하나 골라보라고 독자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정식으로 경고를 하자면 위험한 품목도 있으니 조심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런 품목들 안에는 악몽이 숨겨져 있어서...”

 

최고의 이야기꾼 스티븐 킹의 단편집 악몽을 파는 가게서문의 일부인데,

노골적인 호객행위이면서 동시에 대단한 자부심이 엿보이는 문구입니다.

처음엔 수록작 중에 악몽을 파는 가게가 실려서 이런 제목이 지어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야말로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재치 있는 제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두 10편이 수록돼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킹의 장담대로 악몽이 숨겨진 매력적인 작품도 있고,

소소한 감동을 주는 작품도 있고, , 조금은 기대에 못 미치는 작품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꾼 스티븐 킹의 초기 단편은 물론

초고를 잃어버린 뒤 한참이 지나 기억에 의존해 재집필한 단편도 수록돼있어서

마치 스티븐 킹의 먼지 쌓인 옛날 앨범을 살짝 들춰보는 묘한 매력도 느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킹의 색깔이 가장 짙게 느껴진 ‘130킬로미터’, ‘못된 꼬맹이’, ‘우르’,

그리고, 뒤통수치는 엔딩이 매력적이었던 모래언덕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킹 스스로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낯선 사람과의 왈츠나 어둠 속의 키스라고 부를 정도로

단편에 대한 그의 애착은 특별하고, 실제로 지금까지 꽤 많은 단편집이 출간됐는데,

이는 비슷한 반열의 대작가들과 킹을 확연히 구분해주는 그만의 별난 매력이라는 생각입니다.

특히 악몽을 파는 가게의 경우 수록작마다 작가의 해설비슷한 프롤로그가 붙어있는데,

집필하게 된 계기나 첫 아이디어, 집필 중의 비하인드 스토리 등이 담겨 있어서

작품의 탄생 비화는 물론 단편에 대한 킹의 애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별미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다만, 개인적으론 본편을 먼저 읽은 뒤 프롤로그를 읽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약간은 스포일러의 부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제일 궁금했던 작품은 2016년 에드거 상 단편 소설 부문 최고상을 받은 부고였는데

목록을 보니 악몽을 파는 가게 2’에 수록돼있어서 무척 아쉬웠습니다.

물론 조만간 찾아 읽게 되겠지만요.

끝으로, 킹의 촌철살인이 잘 배어있는 맛있는 문구 하나를 인용하며 서평을 마치겠습니다.

 

우스갯소리에 따르면 날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알츠하이머의 장점이라고 한다.

샌더슨이 깨달은 바에 따르면 대본이 거의 달라지지 않는 것이 알츠하이머의 진정한 장점이다.

그들이 거기서 일요일마다 점심을 먹은 지 3년이 지났는데도 아버지는 거의 항상 똑같은 말을 한다.”

(수록작 배트맨과 로빈, 격론을 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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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양의 섬
샤론 볼턴 지음, 김진석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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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따라 영국 북부 셰틀랜드 제도에 이사 온 산부인과 의사 토라는

집 앞마당에서 수수께끼에 싸인 여성의 시신을 발견한다.

죽기 얼마 전 출산을 한 흔적이 남아 있고, 심장이 사라진 끔찍한 모습의 시신.

토라는 시신의 이름을 밝혀주기 위해 나름으로 수사를 시작한다.

수수께끼를 풀려는 그녀와 사건을 덮으려는 경찰의 갈등은 점점 고조되는데..

경찰이 숨기려 했던 진실은 섬의 기괴한 역사와 맞물려 토라에게 참혹한 진실을 보여준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작품의 주 무대인 셰틀랜드 제도는 스코틀랜드 최북단에서도 160km 떨어져있으며,

100여 개의 유무인도가 촘촘히 자리 잡은 곳으로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독특한 곳입니다.

15세기까지 노르웨이의 영토였던 탓에 당시의 역사, 전통, 신화의 잔재가 남아있으며,

그만큼 독자적인 문화를 고수하며 배타적인 분위기를 내뿜는 곳입니다.

 

굳이 이런 장황한 소개를 늘어놓은 이유는

작품 속 인물과 사건은 물론 행간을 흐르는 미세한 분위기조차

어딘가 극도로 위험해 보이는 셰틀랜드 제도의 음습함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희생양의 섬은 분명 21세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먼 옛날의 신화와 전설의 부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출산 직후 살해된 여인들의 몸에는 다산’, ‘수확’, ‘희생을 의미하는 고대문자가 새겨져있고,

심장이 사라진 참혹한 사체임에도 리넨 천으로 감싸여 소중히 모셔진듯 보이기도 합니다.

 

남편 덩컨 때문에 런던을 떠나 셰틀랜드 제도에 온지 이제 6개월밖에 안 된 토라는

자신의 집 앞마당에서 직접 발견한 그 시신을 도저히 잊을 수 없습니다.

올곧고 거침없는 심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 자신이 산부인과 의사인 탓에

출산 직후 살해된 여인의 진실을 미덥지 않아 보이는 경찰에게만 맡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셰틀랜드 제도에서 토라의 유일한 아군은 본토에서 날아온 여자형사 데이나 톨루치입니다.

민간인 의사 토라의 개인적인 수사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데이나는

토라가 위험을 무릅쓰고 병원의 각종 기록을 검색하여 합리적인 단서들을 찾아내자

기꺼이 그녀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줍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들에게 연이어 위기가 닥칩니다.

누군가 명백한 의도를 갖고 그녀들의 수사를 중지시키기 위한 행동에 나선 것입니다.

그리고 토라는 이제 데이나 외에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상기합니다.

 

그와 동시에 토라는 피해 여성의 몸에 새겨졌던 트로의 문자가 그저 우연이 아님을,

, 스스로 말도 안 된다고 여기면서도, 이 사건의 배경에 신화적 요소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우월한 지배자를 자처하며 여성을 억압하고 희생양으로 삼는 남성 중심의 트로신화는

들여다볼수록 토라 앞에 놓인 사건과 유사한 면모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서사 때문에 골치 아픈 북유럽 신화와 전설에 대한 상당한 양의 강의를 들어야했는데,

처음엔 좀 낯설다가도 사건과의 접점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나름 흥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21세기에 과연 이런 생각을 행동에 옮기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었지만,

셰틀랜드 제도라는, 세상과 완전히 동떨어진 듯한 공간과 그곳의 독특한 역사를 그리면서도

독자의 위화감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인 작가의 필력 덕분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스릴러로서의 매력과 음습한 신화의 비린 맛을 함께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두 가지 정도 아쉬운 점이 있어서 별 0.5개가 줄어들었는데,

첫 번째는 내용에 비해 과도한 분량(652p)입니다.

이는 아무래도 셰틀랜드 제도의 역사, 지리, 신화 등에 할애된 분량이 많았기 때문인데,

근본적으로는 인물 소개, 동선 설명 등 모든 면에서 디테일한 묘사를 즐기는 듯한

작가의 고유한 글쓰기 습관때문이 아닌가, 라는 생각입니다.

두 번째는 수시로 현실감이 살짝살짝 사라지곤 했던 민간인 토라의 슈퍼우먼 급 능력인데,

요트와 승마 덕분에 후천적으로 얻은 신체적 강점이나 올곧고 직선적인 심성은 이해가 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록버스터 여주인공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을 읽다 보면

때론 민간인 의사라는 캐릭터를 의심하게 할 정도로 과도하게 설정됐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국내에 먼저 소개됐지만 아직 못 읽어본 뱀이 깨어나는 마을의 소개글을 찾아보니

“(작가는) 영국 고딕 미스터리의 계보를 잇는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

뱀이라는 소재와 종교적 상징을 통해 시종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샤론 볼턴이 대략 어떤 스타일의 작가인지 눈치 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개인적으로 호감 가는 장르는 아니지만 작가가 워낙 타고난 이야기꾼 같아서

한 편쯤은 더 읽어봐야겠다는 욕심이 들긴 합니다.

스릴러와 신화를 이만큼 재미있는 픽션으로 섞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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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 스트리트 베라 스탠호프 시리즈
앤 클리브스 지음, 유소영 옮김 / 구픽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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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캐슬의 눈보라 치는 성탄 전야, 딸 제시와 함께 복잡한 열차에 탑승한 형사 조 애쉬워스는

혼란스런 열차 안에서 딸이 발견한 살해된 노파 마가렛의 시신에 경악한다.

현장에 도착한 조의 상관 베라 스탠호프 경감은 이 복잡하고 특이한 사건에 의문을 느끼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며칠이 지나가고 두 번째 피해자가 발생한다.

사건의 단서는 첫 피해자 마가렛에게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주변을 철저히 탐문하던 베라에게

하버 스트리트의 주민들은 누구도 증언을 꺼려하고

그럴수록 베라는 마가렛의 과거에 모든 사건의 실마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보진 못했지만) 영국 인기 범죄드라마 베라의 원작소설이며,

노섬벌랜드의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 경감 베라 스탠호프가 주인공인 작품입니다.

모두 8편의 시리즈가 출간됐고, ‘하버 스트리트는 그중 6번째 작품입니다.

 

소도시 마들에 자리한 항구거리 하버 스트리트에서 연이어 두 건의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베라를 비롯 그녀가 가장 아끼는 후배 조 애쉬워스, 홀리, 찰리 등이 수사를 벌입니다.

작고 폐쇄적인 마을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대부분 그렇듯

하버 스트리트역시 서로를 너무나 잘 아는, 그래서 애증으로 복잡하게 엮인 여러 사람들이

용의자 혹은 방관자 혹은 고발자 등의 역할을 맡아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립니다.

특히 베라가 첫 희생자의 비밀투성이 과거에 집착하면서

수십 년 전 하버 스트리트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사건들이 꽤 중요한 단서로 등장하는데,

문제는 어느 누구도 쉽사리 그 과거사를 털어놓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결국 베라와 팀원들은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을 번갈아 집요하게 탐문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단서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고 굳게 닫힌 하버 스트리트 사람들의 입은 거의 요지부동입니다.

 

베라는 딱히 과학수사에 목을 매지도, 직감이나 본능에 의지하지도 않는 현실적인 인물입니다.

단서가 가리키는 대로 지시를 내리고 스스로도 기꺼이 발품을 파는 모범적 상관입니다.

수사가 끝나면 아침저녁으로 회의를 열어 결과를 보고받고 후속 수사를 계획합니다.

말하자면, 스마트폰 시대를 배경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베라와 그녀의 부하들은 어딘가 시대극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탐문형 수사팀의 모습입니다.

물론 사건 자체가 소도시 항구에서 벌어진데다 개인적 원한이 바탕에 깔린 듯한 사건이라

크리미널 마인드‘CSI’ 같은 수사기법이 어울릴 리 없지만

지시하고 지시받고, 수사하고 보고하고, 회의하고 계획 짜고식의 루틴이 반복되는데다

베라를 비롯 모든 경찰 캐릭터 자체가 눈에 띄는 개성이 부족한 탓인지

이야기 전체에서 올드함이 많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주인공 베라 스탠호프는 분명 드라마 주인공이 될 만한 특이한 캐릭터이긴 합니다.

옆집 아줌마 같으면서도 부하들이 알아서 쩔쩔 매는 카리스마 넘치는 경감이기도 한 그녀는

여성성이 강조된 기존의 여자 경찰 캐릭터와는 거의 180도 반대의 모습을 지닌데다

작가의 말대로 현실적이고 진짜 살아 움직이는 여성 캐릭터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영웅처럼 그려지지도 않고, 누구나 저지를 법한 실수도 현실감 있게저지릅니다.

탐문 대상이나 부하들을 대할 때에도 대체로 능숙한 심리전을 구사하는 편이지만,

때론 자기도 모르게 감정이 훅 앞질러 나가기도 하는 평범한 인간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 시리즈를 첫 편부터 읽었다면 베라의 진면목을 좀더 잘 알 수 있었겠지만,

하버 스트리트만 놓고 보면 베라의 현실감이 너무 생생한 나머지

오히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로 보였다는 점은 무척 아쉬웠습니다.

(두 번째 주인공처럼 보인 조 애쉬워스나 톡톡 튀는 홀리도 대체로 평면적이었습니다.)

 

사건은 역시나 독자의 예상을 한참 빗나간 방식으로 해결되는데,

문제는 뒤통수를 맞았다는 느낌보다 좀 억지 같다는 기분이 강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다 읽은 뒤에 생각해보면 작가가 곳곳에 단서를 뿌려놓았다는 게 떠오르긴 하지만

막판에 드러난 범인의 정체나 동기는 앞서 펼쳐진 이야기들을 좀 무색하게 만들기도 했고,

하버 스트리트의 30여 년 전의 과거사와 작위적으로 엮인 느낌도 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 베라와 조가 범인의 윤곽을 떠올리는 과정이 비약적이었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었습니다.

아무리 앞뒤를 다시 읽어봐도 그럴 만한계기나 단서가 보이지 않았는데,

딱 한 가지 추정할 만한 근거는 (스포일러라 언급하긴 어렵지만) 너무 쉽고 안이하게 보여서

설마?’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였습니다.

 

출판사에서는 곧 시리즈 최신 편인 ‘The Seagull’을 출간할 계획이며,

이어 1편부터 차례대로 소개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작은 커뮤니티 안에서 촘촘하게 얽히고설킨 사람들의 인간관계와 심리를 다뤘다는 걸 보면

대체로 하버 스트리트와 비슷한 서사의 작품들일 것으로 보이는데,

베라의 매력이나 부하들의 캐릭터가 궁금해서라도 한 편 정도는 더 읽게 될 것 같습니다.

적어도 영국추리작가협회의 평생공로상인 다이아몬드 대거 상 수상자인 작가의 이력만 보면

단 한 편의 작품으로 지레 선입관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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