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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사람을 죽여라
페데리코 아사트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평점 :
소설은 주인공 테드가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가족들을 여행 보내고 관자놀이에 총을 발사하려는 찰나, 초인종이 울린다.
자신의 이름을 린치라고 밝힌 방문자는 테드에게 달콤한 제안을 건넨다.
법망을 교묘히 피해간 인간쓰레기를 한 명씩 죽여주면 ‘조직’에서 테드를 죽여주겠다고.
가족이 받을 충격을 생각해서든 이 사회를 위해서든 그 방법이 훨씬 정의롭지 않으냐고.
자살은 중단되었고, 테드는 새로운 행동에 나선다. 바로 살인이다.
그의 첫 살인은 생각보다 수월했지만, 테드는 모든 것이 조금씩 뒤틀린 듯한 느낌을 받는다.
(출판사 책 소개글을 일부 편집,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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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줄거리는 이 작품의 첫 챕터인 Part 1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모두 네 개의 챕터와 에필로그로 구성돼있는데,
스토리도, 구성도 워낙 파격적인 작품이라 나머지 챕터를 소개하기가 불가능한 작품입니다.
다만, 출판사가 공개한 정보를 인용하면, “1부의 일부 내용이 2부에서 변형, 반복되었다가
3부에서 완전히 부정되고 4부에 이르러 진실을 드러내는 식이다.”인데,
Part 1~2가 주인공 테드의 종잡을 수 없는 살인행적을 다루고 있다면,
Part 3은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 분노와 광기에 짓눌린 테드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으며,
Part 4는 테드가 겪은 모든 혼돈의 원인이 됐던 과거의 참혹한 기억들을 소환함으로써
어디로 튈지 예측 불가능하고 제멋대로(?)였던 길고 긴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다음 사람을 죽여라’는 이야기 구조도 그렇지만
혼돈 그 자체인 주인공 테드의 삶 역시 미로처럼 설정해놓았습니다.
출구를 찾으려 할수록 점점 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는 느낌이랄까요?
작가의 의도를 대변한 듯한 작품 속 한 인물의 말은 그런 느낌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항상 미로를 매혹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미로와 관련되어 있는 것 같아요.
테드는 자기 마음이 만들어낸 미로에 갇힌 것과도 같았어요.”
유년 시절부터 테드는 출구 없는 미로 같은 삶을 살아왔고,
자살을 꿈꾸기 시작한 무렵부터는 스스로 만들어낸 미로 속에서 지독한 혼란과 마주합니다.
자신이 보고 만지고 느낀 것들조차 믿을 수 없고,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누군가를 죽였지만, 실제 자신이 죽인 것인지,
죽인 상대가 애초 자신이 노렸던 사람인지, 상대가 정말 죽긴 죽은 것인지조차 헷갈립니다.
이러니 이야기는 미로이면서 동시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제멋대로 비틀립니다.
작가 스스로 “반전이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했지만,
사실, ‘다음 사람을 죽여라’는 작품 전체가 반전으로 꽉 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인공 테드는 물론 등장인물 누구 하나 믿을 사람이 없고,
작가가 뿌린 크고 작은 단서들 역시 페이지나 챕터가 넘어갈 때마다 독자를 배신합니다.
말 그대로 “도대체 어쩌려고 이렇게 끝없이 비틀고, 뒤집는 거야?”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이야기는 하염없이 미궁 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래선지 이 작품은 책갈피를 끼워놓고 짬날 때마다 찔끔찔끔 읽어선 제 맛을 느낄 수 없고,
넉넉한 시간 여유를 갖고 한 번에 완독해야 된다는 생각입니다.
이야기의 핵심을 소개하려면 Part 3의 내용을 언급해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 작품에서 가장 재미있는 대목인 Part 1~2의 김을 확 빼놓는 일이라
이렇게 어중간한 서평 밖에 올리지 못하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는 Part 1~2까지 읽었을 때만 해도 올해 최고의 스릴러라고 확신했지만,
그 뒤로 전개가 늘어지면서 이런저런 군더더기가 붙는 바람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더불어,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도 명료하게 설명되지 않은 부분들이 꽤 있어서
고심 끝에(?) 별 반 개를 덜어내기로 했습니다.
어떤 분의 서평을 보니 ‘누구든 저랑 이야기 좀 나눠보잔 말입니다.’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아마 이 작품을 읽은 대부분의 독자가 비슷한 심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복잡다단한 심리 스릴러라서 모든 게 선명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나름 중요하게 설정된 요소들(가령, 주머니쥐의 의미)에 대해서만큼은
좀더 설득력 있는 설명이 있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처음 만난 작가지만 이렇게 독자를 쥐고 흔들만한 필력이라면
후속작에 대한 기대를 안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어떤 반전이 있는 이야기를 들고 독자를 찾아올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