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증인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 Mickey Haller series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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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 미키 할러 시리즈는 두 편밖에(그것도 한 편은 영화로, 한 편은 책으로) 못 봤지만,

예전 존 그리샴의 작품들이 그랬듯 법정물과 스릴러의 미덕이 잘 배합된 느낌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죄질에 관계없이 자신의 이익과 돈을 위해 의뢰인을 변호하지만

윤리적 딜레마 사이에서 갈등하는 미워할 수 없는 속물 캐릭터

미키 할러를 여느 변호사와도 차별화시켜주는 가장 매력적인 대목입니다.

 

● ● ●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담보대출과 주택압류 사건까지 영업장을 넓혔던 미키 할러는

의뢰인이던 리사 트래멀이 은행 부행장 살인범으로 체포되자 본연의 형사변호사로 돌아옵니다.

자신과 꼭 닮은, 유능하지만 공정하지 않은 검사 안드레아 프리먼과 맞붙게 된 미키는

확고한 증거 혈흔과 흉기 라는 치명적인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리사가 범인일 수 없다는 점,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점을 밝히기 위해 전력을 다합니다.

승패를 주고받으며 검사와 엎치락뒤치락 공방을 벌이던 미키는

회심의 다섯 번째 증인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확신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이 벌어지면서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 ● ●

 

분량에 비해 줄거리가 무척 간단하게 정리됐는데,

그 이유는 다섯 번째 증인이 미스터리나 스릴러로서의 재미보다는

사건과 의뢰인을 대하는 변호인의 태도와 철학에 더 방점이 찍힌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법정에서 벌어지는 검사와의 공방이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데,

물론 법정 밖에서의 미키의 활약과 다양한 에피소드들도 등장하긴 하지만,

어쨌든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 치곤 서사가 꽤 단순한 편에 속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작품 속에서 미키 못잖은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인물은 검사 안드레아 프리먼입니다.

인종적으로도 성적으로도 소수자에 속하는 그녀는 미키가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강적입니다.

미키가 오직 무죄입증을 위해 양심이고 나발이고 가리지 않고 싸우는 전사라면,

안드레아는 유력한 단서 하나만 있다면 피고를 묵사발 내는 것이 정의라고 여기는 냉혈한입니다.

둘의 싸움은 그야말로 누구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제로섬 게임처럼 막장을 향해 달려가지만

일진일퇴를 거듭할 뿐, 어느 누구도 일방적인 리드를 가져가지 못합니다.

 

미키와 안드레아의 법정 공방이 이 작품의 핵심이고 재미있게 읽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과도한 분량이었다는 생각입니다.

비록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읽는 내내 다섯 번째 증인의 미덕은

리사는 정말 무죄인가? 그럼, 진범은 누구?’를 밝히는 것이 아닌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마이클 코넬리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앞서 언급한대로 사건과 의뢰인을 대하는 변호인의 태도와 철학인 것 같았는데,

그런 면에서, 전문 평론가도 아닌 일개 독자(?)로서 툭 터놓고 털어놓자면,

법정 공방 중 100페이지 정도의 분량은 없었어도 됐을 거라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오히려 (20페이지도 채 안 되는) 소송 종료 후를 다룬 마지막 챕터에 그 분량을 투입했어야,

그래서 돈과 명예냐, 양심과 정의냐를 놓고 치열하게 갈등하는 대목을 부각시킴으로써

주제를 제대로 다뤘어야 되는 게 아닐까, 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작은 조연 정도로 등장한 신참 변호사 제니퍼 애런슨이

이 작품의 주요 인물이 됐다면 주제도 잘 살고, 미키의 내적 갈등도 잘 살았을 것 같습니다.

불락스라는 별명을 가진 제니퍼 애런슨은 법대를 졸업한지 얼마 안 된 풋내기 변호사입니다.

그녀는 양심 따윈 개나 줘버린미키의 형사변호를 지켜보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하는 일에 양심적으로 임하면서 변호에도 최선을 다하면 되잖아요.”

양심을 키우지 마. 나도 다 해봤어. 양심은 자넬 어떤 좋은 곳으로도 이끌어주지 않아.

의뢰인이 유죄인지 무죄인지는 중요하지 않거든. 받는 돈도 똑같고.”

 

두 사람의 이 대화야말로 전 마이클 코넬리가 이 작품에서 하려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검사 안드레아와의 지루한 법정 공방과 피고인 리사의 유무죄 여부보다는

속물적인 노련한 변호사아직 때 묻지 않은, 양심을 믿는 신참의 대결이 더 기대됐고,

마지막 챕터에서 이 갈등이 디테일하게 묘사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급하게 후루룩 마무리된 엔딩 덕분에 마지막 장을 덮은 후의 느낌은

주제 따로, 스토리 따로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두 사람의 마지막 대화는 이런 아쉬움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줬습니다.

 

형사소송 변호가 제 적성에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아. 하지만 그런 느낌은 금방 사라져. 내 말 믿어. 진짜 금방 사라져.”

 

마이클 코넬리의 필력은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매력이 여전했고,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금세 완독하게 하는 힘이 있지만,

속물 변호사 미키 할러가 언젠가 한번은 겪어야 했을 이 재미있고 심오한 주제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채 마무리 된 점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미키 할러의 대변신을 예고한 엔딩은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최대의 떡밥입니다.

만일 미키의 꿈이 이뤄진다면 다음 작품은 그야말로 파격적인 스토리가 전개될 것 같은데,

다섯 번째 증인에서 후루룩 지나갔던 미키의 내적 갈등이

다음 작품에서 약간이라도 보충 설명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더불어 신참 변호사 제니퍼 애런슨의 성장기도 함께 그려지기를 기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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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나 스토리콜렉터 56
마리사 마이어 지음, 이지연 옮김 / 북로드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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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크로니클시리즈라는 SF 로맨스 판타지에 대한 소문은 제법 들어봤지만

4편의 작품이 출간됐을 정도로 화제작이라는 것은 레바나덕분에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

신데렐라, 빨간 모자, 라푼젤, 백설공주 등 고전동화의 주인공들이

각각 사이보그, 우주선 조종사, 해커, 달의 공주라는 SF 주인공으로 진화(?)됐다는 점,

, 이 주인공들이 지구를 위협하는 달의 폭군 레바나 여왕에 맞서는 것이

시리즈의 핵심 서사라는 점은 꽤나 흥미롭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설정입니다.

 

정작 본편들을 읽지 못한 채 시리즈의 악당 역을 맡은 레바나의 프리퀄을 먼저 읽은 셈이지만

어쩌면 프리퀄을 통해 알게 된 악당 레바나의 기막힌 전사(前史) 덕분에

시리즈 본편들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야기는 15살의 레바나에서 출발합니다.

루나를 다스리던 그녀의 부모가 참혹하게 살해당하자

사악함으로 똘똘 뭉친 채너리(레바나의 언니)가 권력을 승계합니다.

레바나 역시 정치와 권력에 관심이 있긴 하지만,

15살 소녀에게는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소중한 욕망이 내재해있습니다.

바로 유부남 근위병인 에브렛 헤일에 대한 짝사랑입니다.

레바나는 16번째 생일을 맞은 이후로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잔혹하고 무자비한 계획을 하나씩 성사시켜 나갑니다.

그녀는 결국 사랑과 권력을 얻는데 성공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큰 상처도 함께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 상처들은 그녀를 강철처럼 단련시킨 끝에

지구를 향한 정복욕에 들끓는 악의 화신으로 성장시킵니다.

 

분량도 230페이지 정도이고, ‘어른들을 위한 잔혹동화같은 서사 덕분에 무척 빨리 읽힙니다.

15살의 소녀가 10여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자신의 욕망을 집요하게 채워가는 과정도 흥미롭고,

루나 크로니클시리즈의 기반이 된 지구정복 계획의 토대가 형성되는 과정도 재미있습니다.

 

무엇보다, 한 남자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 잔혹함과 그 뒤에 깔린 애틋함이 이야기의 핵심인데,

약간은 신파조의 서사가 깔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디테일한 심리묘사 덕분에 지루한 줄 모르고 페이지를 넘기게 됩니다.

(종종 천일의 앤의 주인공 앤 불린이 연상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특히 레바나는 백설공주속 사악한 여왕을 모티브로 창조된 캐릭터인데,

그녀는 백설공주가 모델인 시리즈 4편의 주인공 윈터의 의붓어머니이기도 합니다.

레바나에는 윈터의 탄생과 성장이 함께 그려지고 있어서,

이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윈터의 스토리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달을 지배하는 권력자로서의 탁월한 능력도 로맨스 못잖은 긴장감을 조성합니다.

생명공학과 화학무기를 이용한 지구정복을 구체화시키는 대목에서는

여느 SF의 악당보다 매력적인 레바나의 모습이 디테일하게 그려집니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소녀 취향의 로맨스와 SF적인 상상력이 잘 배합된 작품이랄까요?

 

사실, 고전동화에서 차용한 소녀 주인공은 매력적인 설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는 데는 핸디캡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아무리 달과 지구의 전쟁, 사이보그, 해커 등이 등장한다 해도

왠지 동화나 만화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루나 크로니클시리즈를 읽지 않은 가장 큰 이유도 그 때문이었는데,

프리퀄 격인 레바나는 시리즈에 대한 선입견을 감소시킬 수 있는

마중물 같은 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악의 화신 레바나의 매력에 빠져들었다면

그녀와 맞서 싸울 선한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루나 크로니클시리즈가 단지 소녀 주인공을 앞세운 SF 판타지가 아니라

어지간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맞먹는 SF서사임을 독자들에게 알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개인적 취향은 정통 미스터리와 잔혹한 스릴러 쪽이지만,

시리즈 첫 편인 신디를 시작으로 기회가 닿을 때마다

색다른 간식처럼 루나 크로니클시리즈를 천천히 한 편씩 음미해볼 생각입니다.

과연 신데렐라와 빨간 모자와 라푼젤과 백설공주가

어떻게 악의 화신 레바나와 맞서 싸울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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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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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리미 토미히코의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읽은 독자라면

이 작품의 제목만 보고도 작가 특유의 밤의 판타지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목부터 인상적이던 전작이 유쾌한 판타지 멜로 소동극을 그려냈다면,

야행은 그 제목만으로도 내밀하거나 신산하거나 또는 마음을 옥죄는 서사를 연상시킵니다.

 

야행은 판타지를 넘어 괴담에 가까운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10년 만에 한자리에 모인 옛 지인들이 털어놓는 기이한 경험담 속에는

도저히 현실에서는 겪을 수 없는 현상과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집 나간 아내를 찾아 나선 곳에서 만난 아내와 똑같이 생긴 여자,

여행 중에 만난 관상가 할머니로부터 들은 죽음에 대한 예언,

한겨울 늦은 밤의 온천여관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동행들,

기차 안에서 만난 기묘한 분위기의 여고생과 스님,

눈밭에서, 터널 앞에서, 무인기차역에서 연이어 목격되는 하얀 옷의 여인들,

설국이나 다름없는 광활한 공터에서 밤의 적막을 깨며 홀로 불타오르던 집 등이 그것입니다.

 

전부 화자가 다른 제각각의 이야기지만, 이 경험담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모두 기차나 자동차나 전차를 이용한 깊은 밤의 여행과 관련이 있고,

화자들은 카페, 호텔, 화랑 등에서 불쾌함과 그리움을 자극하는 묘한 동판화를 목격하게 되며,

갑자기 누군가를 만나거나, 갑자기 누군가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사건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괴담에 가까운 이 경험담들에는 공포와는 거리가 먼,

아니, 오히려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애잔함이나 회한이 더 짙게 깔려있습니다.

집 나간 아내를 만나러 갔다가 아내를 닮은 여자를 만나 혼란을 겪게 된 화자는

그 덕분에 아내와 함께 보낸 시간들, 아내와 함께 했던 밤기차 여행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밤의 설국을 만끽하기 위해 일부러 고른 야행열차에서 특별한 경험을 겪은 화자는

기차에서 내린 직후부터 오랫동안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과 조우하게 됩니다.

물론 때론 섬뜩한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들도 있지만,

큰 그림 자체는 애수(哀愁)’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는 수시로 밤의 밑바닥이라는 표현을 동원하는데,

이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명작 설국에서 따온 표현으로,

야행이라는 제목에 담긴, 작가가 그리고 싶었던 정서의 핵심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 그들은 단순히 철로나 도로를 통해 밤길을 달렸던 것이 아니라

내밀한 상처나 드러낼 수 없는 추억을 간직한 채

오직 자기 자신만의 여행을 하듯 밤의 밑바닥을 숨죽인 채 지나갔고,

거기에서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특별한 만남과 헤어짐을 겪었다는 뜻입니다.

 

독자에 따라 여러 반응이 나올 수 있는 작품입니다.

온다 리쿠의 아련한 판타지를 떠올리는 독자도 있을 것이고,

맥락을 따라잡기 힘든 연이은 비현실적 상황에 당황하는 독자도 있을 것입니다.

화자들의 경험은 논리적으로는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전개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던 각각의 경험담들이

마지막 챕터에 이르러 예상치 못한 반전과 함께 하나로 수렴되는 대목에서는

대부분 뒤통수를 제대로 한방 맞았다는 느낌을 공유하게 됩니다.

물론 이 대목에서조차 여전히 이야기는 현실성을 배제한 채 전개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호불호가 극명히 갈릴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런 이야기를 구상한 작가의 기발하고 무한한 상상력은 거의 경외심을 일으킬 정도지만,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의 시즌2처럼 유쾌한 판타지를 기대했던 탓인지,

조금은 어렵고 난해한 서사로 포장된 야행은 당혹스런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 무리해서라도 두 번째 읽기를 강행하곤 했는데,

야행은 잠시 접어놓았다가 겨울이 맹위를 떨칠 내년 2월쯤 다시 읽어볼 생각입니다.

인상 깊었던 수록작 세 번째 밤. 쓰가루2월을 배경으로 한 탓이기도 하고,

왠지 한겨울 심야에 다시 읽는다면 야행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사족으로,

모리미 토미히코 특유의 화려하고 색감 있는 문장들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야행은 소설보다는 영상에 더 어울리는 텍스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일 야행기묘한 이야기같은 옴니버스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소설만의 디테일한 맛과 여운은 잃을지 몰라도,

대중의 공감을 사는 힘은 훨씬 더 강해질 것 같기 때문입니다.

, 각자의 추억과 상처를 간직한 채 밤의 밑바닥을 떠돌았던 등장인물들의 애틋함이

좀더 확연하게 마음에 다가올 수 있을 것 같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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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의 그림자 모삼과 무즈선의 사건파일
마옌난 지음, 류정정 옮김 / 몽실북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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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전작인 사신의 술래잡기’(2016)를 읽고 쓴 서평을 찾아보니 독특한 설정과 기발한 캐릭터, 흥미로운 연작 구성”, “후속작을 안 볼 수 없게 만들었다.”는 호평이 눈에 띄었습니다. 나름 매력적인 작품으로 기억에 남아서 후속작인 사신의 그림자가 나오자마자 찾아 읽었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형님보다 많이 모자란 동생이랄까요? 천재적인 콤비 모삼과 무즈선이 악의 응집체인 L과 벌이는 사투가 전편에 이어 계속되지만 그들 간의 정면 대결을 그린 마지막 수록작 심연의 천사외에는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동어반복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약혼녀를 L에게 잃고 본인 역시 치명적인 중상을 입었던 천재 프로파일러 모삼과 역시 천재적인 법의학자로 모삼과 함께 L의 체포에 모든 것을 건 무즈선. 전작에서 L은 두 사람에게 자신이 지정한 살인사건을 정해진 시간 안에 해결하라고 요구하고, 그러지 못할 경우 3일 이내에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겠다며 황당한 게임을 지시합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전대미문의 토막살해범의 협박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은 L에 의해 새로운 희생자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사건해결에 전념합니다.

 

전작에서는 두 콤비의 긴박하고 피를 말리는 사건해결 과정이 꽤나 매력적으로 그려졌습니다. 언제 끝날지조차 모르는 게임은 계속 됐고, L의 문제는 점점 난이도가 높아졌습니다. 아마 그런 탓에 후속작을 안 볼 수 없게 만들었다.”는 호평을 했겠지만, 후속작에서 그려진 게임은 전작보다 느슨하고 긴장감도 떨어졌으며, L의 존재감도 어딘가 희미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기대됐던 모삼-무즈선과 L의 정면대결이 그려지지 않은 채 엇비슷한 내용이 반복돼서 2/3정도쯤에서는 중도포기할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물론 마지막 수록작에서 제법 큰 사이즈의 이야기를 통해 L과의 정면대결을 그리고 있지만, 어쩐지 허겁지겁 또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흉내낸 듯한 상투적인 마무리 때문에 지금까지 읽어온 이야기들의 무게감까지 가볍게 만든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름 신선했던 작품의 후속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쉬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는데, 불필요한 디테일로 모삼과 무즈선의 천재적 지식을 과시하려는 대목들이나, 별로 대단치 않거나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억지처럼 보인 프로파일링에 주변인들이 열광하는 모습은 전작보다 더 과장되고 심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치 프로파일러 캐릭터가 소개되기 시작한 초창기의 아마추어 식 접근법이랄까요? 여기에 덧붙여 앞서 언급한 엇비슷한 사건들 때문에 맥빠지는 후속작이 됐다는 생각입니다.

내용만큼 아쉬웠던 것은 전작보다 서투른 느낌을 준 번역과 곳곳에서 발견된 오타들입니다. 직역처럼 보이는 문장도 있었고, 형식에 맞지 않는 문장들도 간간히 보였습니다. 전작에서는 거의 못 느꼈던 오타로 인한 불편함은 좀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마지막 수록작의 엔딩을 보면 이후로 사신 시리즈가 더 나올 것 같진 않지만,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형님보다 나은 동생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작품이었습니다. 만일 모삼과 무즈선을 앞세운 새로운 시리즈가 나온다면 적어도 사신의 그림자보다는 성장한 서사로 채워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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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인간
요미사카 유지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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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김은모 님의 블로그(http://blog.naver.com/kemshadow/221012340340)에서 본

이 책이 국내출간 될 줄이야!!’라는 포스팅 덕분에 알게 된 작품입니다.

제목부터 제 취향과는 거리가 좀 먼 작품이지만,

내용은 흥미진진하고 진상도 특이하지만, 그 특이함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데요.

독특한 본격 미스터리를 접하고 싶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라는 추천사를 보곤

갑자기 호기심이 급 발동하여 읽어보게 됐습니다.

 

● ● ●

 

전기인간이라고 들어 봤어?”

이렇게 시작하는 본 작품은 일본의 한 지방에서 뿌리 깊게 회자되는

기괴한 도시 전설의 진상을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속되는 의문사.

경찰들도 포기한 이 기묘한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 잡지사의 르포라이터는

특집 기사를 위해서 이 지역의 취재를 시작한다.

죽은 사람들의 가족, 학교 등을 찾아다니면서 탐문을 하던 그는

전기인간의 발생지로 여겨지는 지하호 근처에서 정체불명의 초등학교 소년을 만나고,

그 아이와 함께 어두운 지하호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과연, 이들은 사건의 진상을 밝혀 낼 수 있을까? 과연, ‘전기인간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 전기인간을 가장해서 연쇄 살인의 완전 범죄를 꿈꾸는 것이었을까?

(출판사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그 이름을 말하면 나타난다.

사람의 생각을 읽는다.

도체(導體)를 타고 이동한다.

오래 전 군대에 의해 만들어졌다.

전기로 아무런 흔적 없이 사람을 죽인다.

 

이것이 토오미 시에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괴담의 주인공 전기인간의 특징입니다.

괴이라는 것은 미쓰다 신조의 작품에서 그려진 것처럼

시대를 불문하고 어딘가 토속적이거나 혼령 같은 모습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전기인간이라는 컨셉은 괴이 중에서도 정말 독특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호러, 괴이, SF, 미스터리 등 다양한 장르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한 여대생의 민속학 리포트 취재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여대생의 애인, 형사, 민속학 교수, 르포라이터, 추리소설가 등이 차례대로 등장하면서

점차 전기인간의 실체에 가까이 다가갑니다.

그들은 언제, 왜 지어진 것인지 모르는,

하지만 전기인간과 관련 있어 보이는 지하시설에 접근하게 되고,

, 그곳을 늘 배회하는 의문의 초등학생과 마주하게 됩니다.

다들 전기인간이라는 괴이에 대해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 채,

공포심과 호기심이 뒤섞인 기이한 모험에 가담하는 것입니다.

 

이 작품을 읽는 동안 계속 머릿속에 미쓰다 신조의 노조키메작자미상이 떠올랐습니다.

성격은 분명 다른 작품들이지만 왠지 닮은꼴의 서사를 구사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전에 써둔 두 작품의 서평을 읽어보니 전기인간과는 사뭇 다르긴 하지만,

괴이라는 것 자체가 받아들이는 사람의 주관과 사고에 의해

정의되고, 변질되고, 존재감을 획득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논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스터리 외에 전기인간에서 흥미롭게 읽히는 대목은

민속학 교수의 도시괴담 및 괴이에 대한 해박한 강의

중반 이후로 전기인간의 진실을 파헤치는 르포라이터와 추리소설가의 논쟁입니다.

그야말로 괴이에 대한 다채로운 의견의 장이랄까요?

 

번역가 김은모 님의 서평대로 이 작품의 결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기작또는 졸작으로 호불호가 극명히 갈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발간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라고 블로그에 글을 남기신 것 같은데,

어쨌든 엄청 색다른 간식을 먹은 느낌 정도는 충분히 맛보실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라면, 너무 큰 기대와 예상치 못한 반전, 충격적인 결말 등을 기대하기보다

독특한 일본괴담 한 편 읽어보겠다는 정도의 소소한 욕심으로 이 작품을 대하셔야

의외의 재미와 맛을 느끼실 수 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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