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사람을 죽여라
페데리코 아사트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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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주인공 테드가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가족들을 여행 보내고 관자놀이에 총을 발사하려는 찰나, 초인종이 울린다.

자신의 이름을 린치라고 밝힌 방문자는 테드에게 달콤한 제안을 건넨다.

법망을 교묘히 피해간 인간쓰레기를 한 명씩 죽여주면 조직에서 테드를 죽여주겠다고.

가족이 받을 충격을 생각해서든 이 사회를 위해서든 그 방법이 훨씬 정의롭지 않으냐고.

자살은 중단되었고, 테드는 새로운 행동에 나선다. 바로 살인이다.

그의 첫 살인은 생각보다 수월했지만, 테드는 모든 것이 조금씩 뒤틀린 듯한 느낌을 받는다.

(출판사 책 소개글을 일부 편집, 인용했습니다)

 

● ● ●

 

위의 줄거리는 이 작품의 첫 챕터인 Part 1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모두 네 개의 챕터와 에필로그로 구성돼있는데,

스토리도, 구성도 워낙 파격적인 작품이라 나머지 챕터를 소개하기가 불가능한 작품입니다.

다만, 출판사가 공개한 정보를 인용하면, “1부의 일부 내용이 2부에서 변형, 반복되었다가

3부에서 완전히 부정되고 4부에 이르러 진실을 드러내는 식이다.”인데,

Part 1~2가 주인공 테드의 종잡을 수 없는 살인행적을 다루고 있다면,

Part 3은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 분노와 광기에 짓눌린 테드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으며,

Part 4는 테드가 겪은 모든 혼돈의 원인이 됐던 과거의 참혹한 기억들을 소환함으로써

어디로 튈지 예측 불가능하고 제멋대로(?)였던 길고 긴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다음 사람을 죽여라는 이야기 구조도 그렇지만

혼돈 그 자체인 주인공 테드의 삶 역시 미로처럼 설정해놓았습니다.

출구를 찾으려 할수록 점점 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는 느낌이랄까요?

작가의 의도를 대변한 듯한 작품 속 한 인물의 말은 그런 느낌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항상 미로를 매혹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미로와 관련되어 있는 것 같아요.

테드는 자기 마음이 만들어낸 미로에 갇힌 것과도 같았어요.”

 

유년 시절부터 테드는 출구 없는 미로 같은 삶을 살아왔고,

자살을 꿈꾸기 시작한 무렵부터는 스스로 만들어낸 미로 속에서 지독한 혼란과 마주합니다.

자신이 보고 만지고 느낀 것들조차 믿을 수 없고,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누군가를 죽였지만, 실제 자신이 죽인 것인지,

죽인 상대가 애초 자신이 노렸던 사람인지, 상대가 정말 죽긴 죽은 것인지조차 헷갈립니다.

이러니 이야기는 미로이면서 동시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제멋대로 비틀립니다.

 

작가 스스로 반전이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했지만,

사실, ‘다음 사람을 죽여라는 작품 전체가 반전으로 꽉 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인공 테드는 물론 등장인물 누구 하나 믿을 사람이 없고,

작가가 뿌린 크고 작은 단서들 역시 페이지나 챕터가 넘어갈 때마다 독자를 배신합니다.

말 그대로 도대체 어쩌려고 이렇게 끝없이 비틀고, 뒤집는 거야?”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이야기는 하염없이 미궁 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래선지 이 작품은 책갈피를 끼워놓고 짬날 때마다 찔끔찔끔 읽어선 제 맛을 느낄 수 없고,

넉넉한 시간 여유를 갖고 한 번에 완독해야 된다는 생각입니다.

 

이야기의 핵심을 소개하려면 Part 3의 내용을 언급해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 작품에서 가장 재미있는 대목인 Part 1~2의 김을 확 빼놓는 일이라

이렇게 어중간한 서평 밖에 올리지 못하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는 Part 1~2까지 읽었을 때만 해도 올해 최고의 스릴러라고 확신했지만,

그 뒤로 전개가 늘어지면서 이런저런 군더더기가 붙는 바람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더불어,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도 명료하게 설명되지 않은 부분들이 꽤 있어서

고심 끝에(?) 별 반 개를 덜어내기로 했습니다.

 

어떤 분의 서평을 보니 누구든 저랑 이야기 좀 나눠보잔 말입니다.’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아마 이 작품을 읽은 대부분의 독자가 비슷한 심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복잡다단한 심리 스릴러라서 모든 게 선명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나름 중요하게 설정된 요소들(가령, 주머니쥐의 의미)에 대해서만큼은

좀더 설득력 있는 설명이 있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처음 만난 작가지만 이렇게 독자를 쥐고 흔들만한 필력이라면

후속작에 대한 기대를 안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어떤 반전이 있는 이야기를 들고 독자를 찾아올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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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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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많이 읽었다고는 할 수 없어도 읽은 작품마다 워낙 강렬한 인상을 받은 덕분에

나름 요시다 슈이치의 팬이라 생각하고 있던 저로서는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중도포기를 고민하게 될 거라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기 시작한 이후 딱 절반쯤 왔을 무렵 그 고민이 시작됐고,

그래도 믿고 읽는 요시다 슈이치인데..’라는 미련 때문에

제 독서 습관을 거슬러가면서까지 번역자 이영미 님의 후기를 먼저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명확한 사건이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독자는 잔잔하고 평범한 일상 풍경 하나하나가

어떻게 무엇으로 연결되는지 모른 채 책을 읽어나가게 된다.

이 작품은 스토리의 중심을 공백으로 비워둠으로써

독자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유도하려는 것 같다.

 

그제야 제가 잘못 읽은 게 아니란 걸 확인했고,

더불어, ‘중도포기의 고민이 필연적(?)이었다는 점을 확실히 깨닫게 됐습니다.

누군가의 일상을 밀착카메라처럼 포착한 스토리는 그 디테일만큼의 지루함만 남겨줬는데,

그런 전개가 책의 절반인 270여 페이지까지 이어진 탓에

무엇을 읽고 있는 건지, 무엇에 신경 쓰며 남은 분량을 읽어야 할지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명확한 사건도 없고, 스토리의 중심을 공백으로 비워뒀다는 설명을 보고나니

그나마 갖고 있던 기대감도 사라지고 맥이 훅 빠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동시에 왜 이런 설정을 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어서 출판사 소개글까지 찾아봤더니,

사소한 사건들과 작은 결단들이 엮여서 만들어지는 미래에 관한 이야기라는 설명이 있더군요.

그럼, 이들의 이 지루한 일상들이 어떤 특별한 미래를 만든다는 뜻인가?, 라는 궁금함도 들고,

어쨌든 이미 절반을 읽은데다, 미래라는 게 어떤 모습인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에

나름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마무리를 했습니다.

 

이제 실망감은 그만 털어놓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각 챕터별 주인공들의 일상이 평면적인 일기장처럼 나열됩니다.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고, 이런저런 과거를 회상하고, 이런저런 고민을 합니다.

그러다가 출판사 소개글 그대로 사소한 사건들을 겪게 되고 작은 결단을 내립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결이 아니라 기---승 같은 이야기들이 전부입니다.

 

물론 주인공들은 나름대로의 말 못할 고민과 내적 갈등을 가진 인물들이며,

시한폭탄 같은 위태로운 상황을 끌어안은 채 불안한 일상을 유지하고 있어서,

분명 어딘가에서 요시다 슈이치다운 큰 폭발을 이끌어낼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기다렸던 폭발은 없고, 애매한 지점에서 각 챕터는 마무리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각각 ’, ‘여름’, ‘가을로 명명된 세 챕터의 주인공들이

과연 마지막 챕터인 겨울에서 어떻게 조우할까, 가 관심사항이 되는데,

요시다 슈이치는 마지막 챕터에서 갑자기 80년 후의 세상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 앞선 챕터에 등장했던 인물들의 크고 작은 선택과 행동들이

80년이 지난 미래에 (좋든 나쁘든)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당연히, 앞선 인물들은 대부분 사라졌고, 그 후손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하지만, 선대의 선택이나 행동들이 2085년을 살아가는 후대의 삶에 미친 영향은

딱히 필연적이지도, 운명적이지도, 극적이지도 않습니다.

말하자면, “80년 전, AB를 버리고 C와 결혼해서 개망나니 D를 낳았는데,

만일 그때 AB와 결혼했더라면 개망나니 D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식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요시다 슈이치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단순하고 허망한 서사를 펼친 것은 결코 아니지만,

다 읽은 뒤에 제 머릿속에 남은 느낌은 딱 이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 이런 이야기를 위해 500페이지의 분량이 필요했을까?, 라는 반감이 저절로 들었는데,

그때 바꿨으면 좋았을 거라고 누구나 생각하지만 아무도 지금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도,

오늘 내가 보고 만 것, 하고 만 것, 못 본 척 한 것, 하려다 말았던 것, 말하려다 삼킨 것,

그런 사소한 하나하나가 쌓여 미래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실감한다.”는 가쿠타 미쓰요의 헌사도

중편만으로도 충분히 그려낼 수 있는 덕목이었다는 점에서

자꾸만 모든 게 과잉이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지금 나의 사소한 선택 하나가 불과 5분 뒤 내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하지만 지독한 아이러니를 내포한 주제가 될 수도 있지만,

굳이 80년의 간극과 500페이지의 분량이 필요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짧게 불만만 털어놓으려던 서평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그만큼 요시다 슈이치의 신작에 대한 기대가 컸다는 뜻이겠죠.

호불호가 갈릴 수 있으니 다른 분들의 서평(주로 호평입니다만..)도 꼭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에는 제가 좋아하고, 제게 익숙한 요시다 슈이치와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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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이 식사할 시간
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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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재미있게 읽은 단편집입니다.

작가의 이력을 보니 8년 전 첫 단편집이 있었고 다수의 장편도 출간됐다는데

사실 (부끄럽게도) 강지영이라는 소설가는 제 기억엔 없던 이름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카페나 블로그에서 개들이 식사할 시간에 대한 글들이 자주 눈에 띄었고

고백하자면, “좋은 신인이 나왔나보다.”라는 기대감에 이 작품을 읽게 됐습니다.

 

모두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9편 모두 무척 매력적인 작품들이었지만

순한(?) 독자 입장에선 좀(또는 아주 많이?) 불편하게 읽힐 작품들이 꽤 있습니다.

 

과거의 원죄를 망각한 대가로 참혹한 지경에 이르는 남자 (개들이 식사할 시간),

세 개의 눈을 가진 소녀의 비극 (눈물),

아내의 시체 곁에 누워 뒤늦은 애정을 표현하는 남편 (거짓말),

숙주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이어가는 여자 (스틸레토),

사향나무로 둘러싸인 저택에 사는 노파의 끔찍한 비밀 (사향나무 로맨스),

거대한 성기 때문에 맺어진 두 남녀의 애틋한 인연 (허탕)

대부분의 수록작들이 충격적인 소재와 엔딩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도 다르고, 깊이나 수위도 다르고, 작가의 성향도 분명 다르지만

읽는 내내 편혜영의 아오이 가든이나 히라야마 유메아키의 남의 일’,

오츠이치의 ‘ZOO’ 등이 생각나곤 했습니다.

호러와 판타지, 때론 의도된 불쾌감이 끈적끈적 묻어나는 작품들이지만

각각 재미나 주제 면에서도 독자에게 강한 소구력을 발휘하는 작품들이기도 합니다.

다른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문득 연상된 이유는 무척이나 막연하고 추상적이어서

?”냐고 묻는다면 딱 부러지게 한마디로 대답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그 작품들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라면

개들이 식사할 시간역시 매력적으로 읽을 가능성이 높다는 정도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호러나 판타지를 읽으면서 굳이 주제까지 따지고 드는 편은 아니지만,

각 작품의 의미를 확인하고 싶다면 문학평론가 박인성 님의 해설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다른 평론가에 비해 꽤 쉬운 표현으로 찬찬히 설명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론가의 해설이다 보니 현학적으로 읽히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다만, 박인성 님의 해설 중 100% 공감하는 대목이 있어서 짧게 인용해보면,

 

한국 단편소설은 (중략) 개인의 내면만을 과도하게 전경화하거나

특정한 사건 없는 세계를 그저 브리콜라주적인 방식으로 그려냄으로써

플롯으로부터 손쉽게 이탈해버리곤 한다.

이것은 마치 몰입 없는 이야기야말로 문학적 수법인 것처럼 착각하는 편견 때문이기도 하다.”

(브리콜라주 : 손에 닿는 대로 아무것이나 이용하는 예술 기법)

 

최근 읽은 작품 중에 딱 이런 느낌을 받은 작품이 황정은의 단편집 아무도 아닌입니다.

(황정은의 다른 작품을 읽지 못해서 자칫 편견일 수도 있는 내용이니 양해 바랍니다)

다 읽고 수록작 별로 줄거리 정리까지 해놓고도 결국 서평을 못 쓴 작품인데,

반론할 독자가 엄청 많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슨 서평을 써야 할지 참 난감했습니다.

수록작 중 약간이라도 공감했던 작품은 누가복경정도였는데,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은 어쨌든 스토리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 외에는 대부분 이게 끝이야?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의문만 남긴 채 막을 내렸습니다.

유수의 문학상 수상집에서도 이런 의문을 자주 접하곤 했는데,

솔직히 소설 독자 입장에서 개인의 내면을 과도하게 전경화하거나 특정한 사건 없는 세계

언제나 환영할 만한 소재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런 점에서 강지영의 개들이 식사할 시간은 스토리텔링에 충실하면서도

나름 이것저것 생각할 여지를 많이 남겨주는 작품집입니다.

(물론 수록작에 따라 재미에 그친 작품도 있습니다.)

작품집 자체에 대한 호불호는 물론 수록작 각각에 대해서도 의견들이 많이 갈리겠지만

저의 호감을 산 작품은 사향나무 로맨스’, ‘스틸레토’, ‘거짓말입니다.

 

독자의 취향에 따라, 또 같은 독자라도 어떤 조건에서 책을 읽느냐에 따라

사건 없는 내면을 택할 수도, ‘명료한 스토리텔링을 택할 수도 있겠지만,

고온다습한 날씨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요즘 같은 때라면

강지영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서늘한 느낌을 만끽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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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오브 왓치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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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메르세데스 킬러의 차량 테러로 인해 전신이 마비된 여성 마틴 스토버가 살해된다.

피의자는 처지를 비관한 그녀의 어머니로 추정되며, 어머니 역시 자살한 상태였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의문의 Z라는 글자와 고장난 휴대용 게임기가 발견된다.

호지스는 본능적으로 메르세데스 킬러 브래디와의 연관성을 찾지만,

그는 뇌를 다친 '무뇌인간'인 채로 병동에 보호감호된 처지이다.

누구도 브래디와의 연관성을 믿지 않는 상황에서, 또다시 자살 사건이 연이어 벌어진다.

게임기가 연쇄 자살과 연관되어 있고, 이 끝에는 브래디라는 실체가 있을 거라 믿는 호지스.

그러나 그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췌장암 말기 판정으로 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

호지스는 끊임없이 밀려오는 통증과 싸우며,

또다시 벌어질 대규모 자살 도미노의 계획의 중심부로 다가선다.

(출판사의 책 소개글을 일부 편집, 인용했습니다.)

 

● ● ●

 

빌 호지스 3부작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임무 종료를 뜻하는 ‘End of Watch’라는 원제처럼 이 작품은 빌 호지스의 마지막 사건이자,

3부작 중 1부인 미스터 메르세데스의 미치광이 킬러 브래디와의 마지막 대결을 다룹니다.

 

1부에서 육중한 메르세데스 벤츠로 거리의 군중들을 깔아뭉갰던 사이코패스 브래디는

그에 만족하지 않고 수천 명의 목숨을 날려버릴 콘서트 장 테러를 기도했다가

호지스를 비롯한 주인공들에게 저지당하면서 심각한 뇌손상을 입게 됩니다.

2파인더스 키퍼스는 브래디와는 무관한 사건을 다뤘지만,

그 작품에서도 호지스는 특별병동에 갇힌 무의식 상태의 브래디를 찾아가곤 합니다.

무뇌 상태라도 살아있는 브래디는 호지스에게는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3엔드 오브 왓치는 호지스의 우려대로 극적으로 부활한(?) 브래디가

천재적인 컴퓨터 재능과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불가사의한 능력을 통해

대량 살상과 호지스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빌 호지스 3부작은 스티븐 킹의 첫 탐정 미스터리라는 점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지만

대미를 장식하는 완결편에 이르러 스티븐 킹은 자신의 본색(?)을 드러냅니다.

호지스와 그의 파트너 홀리의 수사과정은 지극히 사실적인 탐정 미스터리의 서사를 따르지만,

뇌손상으로 입원한 상태에서 대량 살상을 저지르는 브래디의 살인 기법은

스티븐 킹의 명작 샤이닝을 연상시키는 호러 판타지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어가 조종한 끝에 자살로 이끄는 능력을 발휘하는 브래디는

주인공에게 악마적 기운을 투사하여 아내와 아들을 죽이도록 강요하는

샤이닝속의 오버룩 호텔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버룩 호텔이 환청과도 같은 목소리를 통해 주인공의 마음을 조종했듯,

브래디는 컴퓨터와 게임기를 통해 상대의 마음을 조종하여 자살을 이끌어냅니다.

이런 설정 때문에 엔드 오브 왓치

탐정 미스터리보다는 샤이닝류의 서사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1부인 미스터 메르세데스를 읽지 않은 독자들은

엔드 오브 왓치를 제대로 음미하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호지스와 브래디의 악연, 매력적인 여주인공 홀리의 전사(前史)와 트라우마,

, 브래디의 천재적인 능력과 사이코패스로서의 광기 등을 알고 있어야

엔드 오브 왓치의 중요한 대목들을 제대로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스티븐 킹의 호러 판타지 서사를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독자들은

브래디의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능력을 읽으며 크게 당황할 수도 있습니다.

이게 말이 돼?”라고 거부하는 순간 뒷이야기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긴, 주인공인 호지스와 홀리조차 자신들이 파악한 브래디의 살인 기법에 대해

어느 누구도 납득시킬 수 없다고 체념하고 있으니,

독자들 역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선에서 꽤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스티븐 킹의 호러 판타지에 익숙한 독자라면

브래디의 엄청난 능력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재앙에 가까운 연쇄자살사건이

무척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읽힐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혹시 이 작품으로 빌 호지스 3부작을 처음 만났거나

아예 이 작품이 스티븐 킹과의 첫 만남인 독자라면 (그래서 당혹감만 남은 독자라면),

미스터 메르세데스샤이닝을 읽어본 뒤 재도전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매력적인 퇴직 노형사 빌 호지스의 임무 종료를 지켜보는 일은 너무 아쉬웠지만,

브래디와의 마지막 대결을 통해 임무를 마친 호지스의 형사로서의 삶은

어쩌면 그에게는 가장 명예롭고 자부심 넘치는 대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호지스의 임무를 종료시킨 스티븐 킹이 또다시 탐정 미스터리에 도전할지도 궁금하고,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떤 캐릭터가 탄생할지도 궁금합니다.

호지스의 파트너였던 홀리 기브니가 그 자리를 꿰차기를 바라는 것은

비단 저만의 욕심은 아닐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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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도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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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완벽한 남편, 완벽한 결혼, 그리고 완벽한 거짓말.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내 남편은 공포의 냄새를 즐기는 사이코패스였다.”

 

별도의 줄거리 정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이야기 전체를 한눈에 짐작하게 하는 카피입니다.

노골적으로 음습한 분위기를 발산하는 제목까지 감안하면

호기심보다는 불편함이 먼저 느껴져서 얼른 손에 집어들기가 쉽지 않은 작품입니다.

호평을 받았던 나를 찾아줘걸 온 더 트레인역시 재미는 있었지만

읽는 내내 마음 한쪽에 돌덩어리를 얹어놓은 것처럼 거북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 ● ●

 

영화배우 같은 외모에 승률 100%를 자랑하는 유명한 가정폭력 전문 변호사 잭 앤젤은

가는 곳마다 여자들의 눈길을 끄는 완벽한 남자입니다.

그런 그가 지극히 평범한 여자 그레이스에게 호의를 베풀며 다가옵니다.

다운증후군에 걸린 여동생까지 세심하게 배려하는 잭에게 반한 그레이스는

그의 구애와 청혼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레이스의 행복은 결혼식을 마친 그날 밤부터 악몽으로 변합니다.

대외적으로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완벽한 부부로 보이지만,

그레이스는 감금된 채 사육 당하는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상대가 느끼는 공포와 상대가 내지르는 비명소리에서 희열을 느끼는 잭은

그레이스는 물론 그녀의 여동생까지 손아귀에 넣을 계획을 세웁니다.

 

● ● ●

 

예상대로 불편함재미가 함께 섞여있는 작품입니다.

상대의 심리를 정확히 파악하고 완벽한 통제력을 발휘하는 악마 같은 잭의 행동도,

그런 잭에게 무기력하게 끌려 다니며 지옥 같은 삶을 사는 그레이스의 처지도,

한편으론 불편함을, 한편으론 재미를 주는 대목입니다.

 

작가는 그레이스가 반격을 꿈꾸는 중후반에 이를 때까지

잭과 그레이스의 저택에서 벌어지는 참극을 거의 돌직구처럼 독자에게 던집니다.

자기 의지를 완벽하게 박탈당한 그레이스는 먹는 것과 입는 것은 물론

말 한마디, 표정 하나까지 잭의 뜻대로 따라야만 했고,

조금이라도 저항했다간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지하방에 기약 없이 감금됩니다.

이웃이나 친구들에게 완벽한 젠틀맨이자 유능한 가정폭력 전문변호사로 인정받은 잭이

그레이스의 겁에 질린 비명과 가쁜 호흡에 희열을 느끼는 사이코패스로 변신하는 과정은

분노와 함께 소름까지 돋게 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묘사됩니다.

 

이렇듯, 워낙 세고 독한 이야기들이 중후반까지 이어지는 탓에

독자에 따라 불편함 이상의 거부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잭에게는 큰 위기가 없고, 그레이스는 속절없이 당하기만 하니

이야기 전개에 눈에 띄는 큰 굴곡이 없어 보인 것도 아쉬웠습니다.

 

또한, 실제로 이런 일이 가능할까? 누군가가 타인을 완벽하게 통제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물리적 폭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상대의 공포심만으로 희열을 느낀다는 게 가능할까?

왜 하필 잭은 그레이스를 택했을까? 왜 그레이스는 주위에 도움을 청하지 않을까?, 라는

여러 가지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물론 중간에 해답이 제시되는 의문도 있지만, 끝까지 의문부호가 남는 의문도 있습니다.

신에 가까운 잭의 통제력이라든가, 타인의 공포심에 희열을 느끼는 사이코패스 기질은

아무리 픽션이긴 해도 독자를 100% 공감시키기는 쉽지 않은 대목입니다.

 

하지만 빠른 전개와 간결한 문장, 현실감 있는 조연들 덕분에 페이지는 빨리 넘어갑니다.

특히 후반부에 이르러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그레이스가 반격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장면은

기대만큼 신선하거나 충격적이진 않지만 긴장감이 잘 살아있는 클라이맥스를 선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분량을 늘려서라도 클라이맥스에서 엔딩까지가 좀더 디테일하게 그려졌다면

스릴러로서의 완성도라든가 독자들의 카타르시스가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또한, 일부 챕터라도 잭의 시점에서 그려진 내용이 있었다면

타인의 공포에 희열을 느끼는 사이코패스가 더 현실감 있게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300페이지를 갓 넘기는 분량이 여러 모로 아쉽게 보였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사이코패스들이 날뛰는 시대를 살다 보니,

어쩌면 선한 이웃이라 생각한 자들 가운데 잭의 아류들이 여럿 섞여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타고난 사이코패스든, 학습된 사이코패스든 잭 같은 악마적 존재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멀쩡한 정신으로 세상을 산다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소설이지만 영상이 저절로 떠오르는 부분이 많아서

어쩌면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이 작품을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잭의 공포가 훨씬 더 생생하게 느껴질 것 같은데,

마침 판권도 팔렸다고 하니 한번 기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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