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뼈
송시우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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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아이의 뼈를 비롯 모두 9편의 단편이 실린 송시우 작가의 작품집입니다.

장편 라일락 붉게 피던 집과 연작 단편 달리는 조사관이후 세 번째 작품인데,

수록작 중 잃어버린 아이에 관한 잔혹동화

황금가지에서 출간한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5’에 실렸던 단편이기도 합니다.

 

달리는 조사관출간 후 송시우 작가가 다음 작품은 더 오래 걸릴 것 같다.”라고 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후속작이 빨리 나와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다만, ‘라일락~’처럼 굵직한 서사의 장편을 기대했던 터라 약간의 아쉬움도 남았습니다.

수록작 모두 30페이지 안팎의 단편인데다 쉽고 간결한 문장들 덕분에

주말 한나절이면 금세 마지막 장까지 달릴 수 있는 작품입니다.

 

캐릭터의 힘이 강하거나 반전의 맛을 살린 작품들이 눈에 띄었는데,

20년 전 살해된 딸의 유골을 찾으려는 한 노파의 집념과 복수를 그린 아이의 뼈’,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어진 일상 속의 분노를 의외의 반전과 함께 그린 사랑합니다, 고객님’,

진정한 복수는 계속 살게 하는 것이란 역설적인 메시지가 인상적인 누구의 돌등입니다.

잃어버린 아이에 관한 잔혹동화역시 서늘한 공포를 발산하는 무척 매력적인 단편입니다.

 

거의 모든 작품들이 선명하고 똑 떨어지는 엔딩 대신

긴 여운을 느끼게 하는 독자 판단형 엔딩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단편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매력이기도 합니다.

다루는 사건은 복잡하거나 큰 스케일들은 아니지만

역으로 일상성이 강조된 탓에 훨씬 더 주위에서 벌어질 것 같은 사건이란 느낌을 줍니다.

 

사건을 해결하는 캐릭터도 평범한 인물들이거나 피로에 찌든 전형적인 형사들인데,

그 덕분에 멋 부리지 않은 사실적인 설정과 전개가 돋보였던 것 같습니다.

두 편의 전작들에서도 송시우 작가의 이런 매력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는데,

일상 속의 관찰자(‘라일락~’) 또는 평범하지만 열정적인 조사관(‘달리는 조사관’)의 힘은

화려한 서사 속에 등장하는 슈퍼 주인공보다 더 강렬하고 인상 깊었습니다.

 

작품마다 약간의 편차가 있는 것도 사실이고, 단편의 한계를 느낀 작품도 있었지만,

어쨌든 만족스러운 책읽기였습니다.

다만, 다음엔 꼭 송시우 작가의 장편과 만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좀더 길어지더라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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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와 수잔 버티고 시리즈
오스틴 라이트 지음, 박산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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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중간에 두어 번 중도포기를 고민했던 작품입니다.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고, 기대감이 충족되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냥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뭔가가 분명 있었고,

무엇보다 토니와 수잔 두 사람의 엔딩이 궁금했기 때문에 기어이 끝까지 달리긴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독자들의 평이 궁금해서 알라딘에 들어가 봤는데,

저의 독후감과는 달리 대체로 호평 일색이라 무척 놀랐습니다.

역시 제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고, 아니면 고고한 서사에 대한 몰이해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 ● ●

 

수잔은 20년 전 이혼한 에드워드에게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소설을 받습니다.

신혼 시절, 에드워드는 법학을 포기하고 글쓰기에 매진했지만

수잔은 그에게 재능이 없음을 알아봤고, 냉정한 혹평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둘은 씁쓸하게 이혼했고 그로부터 20년이 흘렀습니다.

 

에드워드가 보낸 소설의 주인공이 토니입니다.

그는 여름 별장으로 가던 도중 불량배들에게 가족을 잃는 대참사를 겪습니다.

삶은 어찌어찌 이어지지만 껍데기만 남았을 뿐, 모든 것은 불안정하고 위태롭습니다.

용의자가 체포됐다는 소식에 먼길을 달려갔지만 그곳엔 또다른 비극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재능 없고 혹평 받아 마땅하던 그의 글솜씨가 일취월장한 것에 놀라던 수잔은

소설 속에서 서서히 붕괴돼가는 토니를 지켜보며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 사실에 더욱 놀라게 됩니다.

자신을 연상시키는 캐릭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둘만의 과거사를 언급한 대목도 없지만,

수잔은 토니를 통해 겉모습과는 달리 사방에 균열 투성이인 자신의 삶을 돌이켜봅니다.

그리고 자문합니다. 왜 에드워드는 내게 이 책을 보낸 거지?

책과 함께 보낸 편지 속의 이 퍼즐에서 빠진 조각을 찾아봐.”라는 말은 무슨 의미지?

 

● ● ●

 

처음엔 이 작품의 제목이 토니와 수잔이라고 해서

당연히 두 인물이 현실 속의 캐릭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은 소설 속 캐릭터이고 한 사람은 그를 읽는 독자로 등장합니다.

말하자면 소설 속 토니와 현실의 수잔의 교집합이 이 작품의 테마라는 뜻인데,

개인적으로는 바로 그 지점이 저를 이해시키지도, 공감시키지도 못했다는 생각입니다.

 

소설 속 소설인 녹터널 애니멀스와 주인공 토니의 캐릭터는 무척 매력적입니다.

느닷없이 찾아온 불행, 가족을 잃고도 식욕과 성욕을 느끼면서 살아가야 하는 절망감,

바닥을 알 수 없는 참혹하고 아주 느린 속도의 파멸 등

자비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서늘한 스릴러의 미덕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반면, 현실의 수잔을 그린 대목은 중반을 지나면서부터 점점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에드워드의 소설을 읽으면서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는 수잔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대목을 읽었기에, 또는 소설에서 어떤 분위기를 감지했기에

수잔이 이토록 동요하고, 자책하고, 분노하는 것인지 결국 마지막까지 알 수 없었습니다.

 

토니는 책과 함께 보낸 편지에 이 퍼즐에서 빠진 조각을 찾아봐.”라는 말을 남깁니다.

, ‘이 소설은 어떤 식으로든 너와 연관이 있고,

그래서 난 분명한 의도를 갖고 이 책을 너에게 보내는 거야.’라는 뜻입니다.

그 의도란 복수일 수도 있고, 괴롭힘일 수도 있고, 소소한 자랑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과 수잔의 연관에드워드의 의도도 제 눈엔 잘 읽히지 않았습니다.

토니의 픽션이 수잔의 현실을 잠식한다는 것은 비평가들의 억지스러운 분석이란 느낌입니다.

세상에는 토니의 픽션보다 더 세고 독한 콘텐츠들이 많습니다.

수잔이 픽션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며 괴로워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 픽션이 에드워드의 소설이란 사실이 수잔에게 특별한 영향을 미쳤을까요?

수잔이 그저 에드워드의 글솜씨가 상당해졌네.’라고만 느꼈다면 모르겠지만,

수잔은 억지스러울 정도로 에드워드의 의도를 자신의 삶과 결부시키려 애씁니다.

마치 (어떤 경로로든) 자신의 삶이 불안정하고 위태롭다는 정보를 얻은 에드워드가

과거를 복수하거나 현재를 조롱하기 위해 이 소설을 보냈다는 식으로 알아서반응합니다.

소설을 보면 딱히 그럴만한 단서도 흔적도 없는데 말이죠.

(두 차례에 걸친 막간챕터에서 난해한 문장들로 묘사된 수잔의 심리는

에드워드의 책에 대한 수잔의 반응을 강조하려는 부연설명처럼만 보입니다)

 

몇몇 분의 서평을 몇 편 읽다보니, 좀 심하게 말하면, ‘꿈보다 해몽이란 말이 생각났습니다.

소설에선 채 깨닫지 못했던 점들이 꽤 상세하게 분석돼있었는데

어떤 부분은 , 이렇게 해석되는 거였나?’ 싶을 정도로 생소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토니와 수잔의 접점만큼은 끝까지 이해 안 되는 대목이었습니다.

에드워드가 던진 수수께끼 같은 질문 - “이 퍼즐에서 빠진 조각을 찾아봐.” - 에 대해서도

수잔은 답을 찾은 것처럼 행동하지만, 저로서는 질문과 답 사이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쨌든 앞서 말한 대로 취향의 문제또는 독해능력 부족중 한 가지가 이유겠지요.

(어쩌면 톰 포드가 연출한 영화를 보면 저의 몰이해가 해결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족으로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이 작품 역시 예외 없이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를 홍보 문구에 삽입했더군요.

부부가 등장하고, 한쪽이 어딘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 설정만 나오면

너도나도 나를 찾아줘의 승계자(?)인 것처럼 자처하는데,

이젠 그 홍보 문구가 보이면 오히려 기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스스로의 완성도와 함량만으론 독자에게 어필할 자신이 없다는 뜻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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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 컬렉터 링컨 라임 시리즈 11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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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디버가 탄생시킨 링컨 라임 시리즈의 11번째 작품입니다.

사고로 전신이 마비됐지만, 방대한 지식과 최첨단 장비를 활용한 미량의 단서 찾기를 통해

그는 미궁에 빠진 뉴욕의 범죄를 해결하는 천재적인 범죄학자로 활약 중입니다.

이번에 그가 마주한 살인마는 문신을 이용하여 독살을 자행하는 스킨 컬렉터입니다.

 

● ● ●

 

범인은 피해자들의 복부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신을 남겨놓고 사라집니다.

현장은 대부분 복잡한 미로 같은 뉴욕의 지하이고,

범인은 거의 완벽할 정도로 뒤처리를 한 탓에 링컨은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합니다.

연이어 희생자가 나타나고 예외 없이 문신이 발견되지만 그 의미는 뒤늦게나 밝혀집니다.

목적을 알 수 없는 무작위적인 희생자 선정, 기괴하게 세팅된 범행 현장,

오래 전 링컨이 해결했던 본 컬렉터 사건과 연관 있는 듯한 단서들,

그리고 링컨 본인은 물론 파트너인 색스와 주변인들을 향한 범인의 공격 등

사건은 종잡을 수 없는 방향을 확대되어갈 뿐입니다.

 

● ● ●

 

언제나 그렇듯 미량의 단서를 통한 최첨단 과학수사와 번득이는 추리력의 조합은

이번 작품에서도 그가 아니면 누가 해결했을까?’라는 질문이 생각날 정도로 대단합니다.

현장요원이자 링컨 라임의 연인인 아멜리아 색스의 활약도 매력적이고,

(읽진 못했지만) 시리즈 첫 작품 본 컬렉터에서 어린 소녀로 등장했던 팸은

성인으로 재등장하여 갈등과 위기를 초래하는 불씨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습니다.

조연으로서 링컨을 돕는 뉴욕 경찰들 역시 적재적소에서 자신의 미션을 적절히 수행합니다.

다양한 경찰 캐릭터의 좌충우돌은 살벌한 이야기 속에서 유일한 재미덩어리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독극물을 이용하여 살인을 저지르며 의문의 문신을 남기고 사라지는 범인의 행각은

색다른 소시오패스의 캐릭터라 읽는 내내 궁금증과 긴장감을 유지시켜줍니다.

 

페이지도 잘 넘어가고, 전체적인 인상만 보면 역시 제프리 디버라는 소리가 절로 나지만

나름 아쉬움이 남는 대목도 있던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스킨 컬렉터는 시리즈 1편인 본 컬렉터’, 7편인 콜드 문과 밀접히 연관돼있는데

두 작품 모두 못 읽은 터라 100% 몰입해서 읽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사건의 연관성만이 아니라 등장인물간의 오랜 구원(舊怨)과 갈등까지 다뤄서 그런지

작가가 (저 같은 독자를 위해) 적잖은 분량을 할애하여 친절하게 설명해줬지만,

아무래도 감정적인 이입은 수박 겉핥기 이상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이 부분은 전적으로 독자의 문제(?)라 작품 자체가 주는 아쉬움은 아닙니다.^^)

 

진짜 아쉬움은 제프리 디버의 트레이드 마크인 거듭된 반전에 기인합니다.

약간만 언급해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두루뭉술한 말밖에 못하겠지만,

전작인 킬 룸이 후반부에 연이어 터지는 반전 때문에 숨을 막히게 만들었다면,

스킨 컬렉터의 클라이맥스와 엔딩은 반전을 위한 반전이란 느낌만 전해줬습니다.

뭐랄까, 앞서 읽은 이야기들을 좀 허망하게 만든다고 할까요?

(추측이지만) 그런 부분 때문인지는 몰라도 번역하신 유소영 님도 옮긴이의 글을 통해

거듭된 반전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때로 인위적이다는 비판을 듣기도 하는데..”라는

언급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취향 상, 최첨단 과학과 두뇌의 힘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보다는

(해리 보슈나 해리 홀레처럼) 몸으로 직접 뛰는 스타일을 좋아하다 보니

간혹 링컨 라임의 천재성이나 과학수사의 위대함에서 위화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와 아멜리아 색스와 뉴욕 경찰의 팀플레이는

다른 작품에선 맛볼 수 없는 특별하고도 중독성 있는 매력을 가진 것이 사실입니다.

11편의 시리즈 가운데 이 작품까지 5편밖에 읽지 못했지만,

혹시 나머지 작품 역시 인위적인 반전이 깔려있다고 해도

역시 안 읽고는 못 배길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똑같은 아쉬움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신작 소식이 들리기 전에

책장에 꽂혀있는 나머지 시리즈들을 얼른 챙겨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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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
이가라시 다카히사 지음, 이선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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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만남 사이트를 통해 금지된 욕망을 풀어보려던 한 평범한 중년 남자가

일그러진 자기애와 순수한 악의로 뭉친 괴물 리카를 만나면서

자신은 물론 가족과 지인들까지 수렁으로 몰아넣는 끔찍한 비극을 다룬 작품입니다.

 

이야기 구조는 심플하지만 간결하면서도 눈앞에서 목격하듯 생생히 묘사된 공포 덕분에

옮긴이의 말대로 다음 챕터를 읽는 게 무척이나 불편하고 두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평범한 한 남자의 그릇된 선택과 일탈 하나가 평화롭던 일상을 산산조각 내고,

가족과 직장이라는 삶의 기반을 통째로 붕괴시키는 대목에서는

그저 착하게 살자라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경구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한 일그러진 자기애와 순수한 악의는 본문에서도 몇 번씩 언급되는 설명인데,

이 작품의 타이틀 롤인 리카를 설명하기에 더없이 적절한 표현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터무니없이 부족한 표현이기도 한 것이 사실입니다.

과연 자기애와 악의만으로 그만한 공포를 자아낼 수 있을까?

그것이 아무리 일그러지고 순수한 형태라고 해도 그만한 원념(怨念)을 가질 수 있을까?

책장을 넘길수록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적절한 표현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점점 더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 들어 부족한 표현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섬뜩하게 느껴지는 것은, 리카는 분명 현실에 존재하는 생물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심연 속에만 존재할 것 같은 악의 정령 같은 인상도 준다는 점입니다.

스티븐 킹의 미저리에 등장하는 간호사 애니를 연상시키면서

동시에 미쓰다 신조 작품 속의 초현실적인 악령도 함께 연상시킨다고 할까요?

그래서인지 분명 명백한 리얼 호러물을 읽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시로 장르를 뛰어넘어 판타지의 세계를 드나드는 느낌을 갖게 하는 캐릭터입니다.

 

이 작품이 일본 호러 서스펜스 대상을 받은 2002년만 해도 공포물로서의 매력은 물론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의 근원으로 지목당하기 시작한 인터넷의 익명성에 대한 터치 때문에

나름 큰 주목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오늘날의 눈높이에서 보면 익숙한 서사와 캐릭터, 더는 새롭지 않은 설정들 때문에

신선한 호러의 폭주를 기대한 독자에겐 좀 심심하게 읽힐 수도 있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전형적인 호러물 주인공처럼 꾸며진 리카의 비주얼인데,

오히려 그 또래의 평범한 여성으로 설정했더라면 훨씬 더 센 캐릭터가 됐을 거란 생각입니다.

 

다 읽은 뒤에 책 뒷날개를 보니 리턴’, ‘리버스로 이어지는 3부작이 완성됐더군요.

제목에서 느껴지듯 돌아온 리카가 계속 맹활약(?)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후속작들이 각각 2013, 2016년에 출간된 것을 보면 꽤 공백이 길었는데,

리카의 악의가 얼마나 진화했을지, 또 어떤 참극들이 벌어질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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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플라이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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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강가 둔치에서 장기가 제거된 상태로 불에 탄 사체가 발견됩니다.

사건을 맡은 가부라기를 비롯한 4명의 형사는 미세한 단서를 추적한 끝에

이 사건이 잠자리의 낙원인 군마 현의 산골마을 히류무라에서 출발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년기를 함께 보낸 선천적 맹인 이즈미와

그녀와 각별한 관계였던 두 소년 유스케와 겐이 얽혀있음을 파악합니다.

더구나 20년 전, 이즈미의 부모가 살해당한 미제 사건이

분명 둔치에서 발견된 사체 사건과 연관 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애틋했지만 동시에 참혹할 수밖에 없었던 세 남녀의 기구한 인연은

히류무라와 잠자리 낙원을 수장시킬 히류 댐 건설을 둘러싼 오랜 갈등과 뒤섞이면서

20년의 시차를 두고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일으킨 근원이 되고 만 것입니다.

 

● ● ●

 

화제의 데뷔작 데드맨이후 3년 만에 국내에 소개된 가와이 간지의 신작입니다.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이라는 타이틀로 데뷔한 작가라

후속작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생각보다 국내 소개가 많이 늦어진 셈입니다.

 

크기가 좀 작긴 해도 5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분량입니다.

같은 크기였던 데드맨보다 200페이지 가까이 두터운 셈인데,

사실, 분량에 비해 사건의 규모는 좀 소소한 편입니다.

20년의 간격을 두고 벌어진 부부 살해 사건과 둔치 사체 사건은

이만한 분량의 미스터리가 다루기에는 왠지 사이즈가 작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각자의 개성을 자랑하며 돌직구처럼 수사에 나서는 가부라기 4인방의 활약,

애증과 고통으로 20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세 남녀의 기구한 인연,

그리고 댐 건설과 잠자리 낙원의 몰락이라는 사회적 이슈까지 다루다 보니

이야기가 비교적 단선적이었던 데드맨에 비해 양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독자는 그 많은 분량을 느낄 새도 없이 마지막 페이지까지 쾌속으로 달리게 되는데,

그건 분명 가와이 간지의 간결하면서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대단한 필력 덕분일 것입니다.

 

가와이 간지는 이 작품을 통해 팩트 찾기자체보다

팩트를 대하는 각오 또는 태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뒤표지를 보면 이 세상에 진실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사실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는 작품 속 대부분의 캐릭터가 자의든 타의든 견지하고 있는 자세이기도 합니다.

사실이면서 진실인 것이 있는가 하면, 거짓인데도 진실이라 강요되는 것이 있습니다.

같은 사실이나 거짓인데도 누구에게는 진실, 누구에게는 아닌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와이 간지는 이런 물음에 대해 적잖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데,

그래서 사건은 단순해 보여도, 작품의 볼륨감이나 깊이는 여느 작품 못지않습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적정선보다 조금 넘쳐 보이던 작가의 과욕(?) 때문에

자칫하면 철학적인 말장난처럼 느낄 독자가 분명 있으리라는 점입니다.

 

합리적인 직관과 육감을 갖춘 가부라기와 다혈질의 폭주 캐릭터 마사키 등 두 중년 형사와

스마트한 영건 히메노와 차분한 프로파일러 사와다 등 두 젊은 형사의 조합은

뛰어난 원톱 주인공을 앞세운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물과 기름처럼 이질적이면서도 묘하게 탄탄한 팀워크를 자랑합니다.

슈퍼 히어로는 아니지만 그만큼 리얼한 형사 캐릭터라고 할까요?

 

다만, 소위 애브덕션이라 불리는 이들의 독특한 추론 방법은

때론 지나치게 직감적이거나 무리한 가정을 앞세우는 경향이 있어서

독자들 입장에선 논리적이라기보다는 비약으로 느낄 여지가 많습니다.

특히 팀장격인 가부라기는 이런 추론 방법이 몸에 배어 있는 캐릭터인데,

달리 말하자면, 지나칠 정도로 앞서나간(또는 다소 황당한) 추리를 펼친 끝에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엄청난 진실에 도달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인지 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서 다소 급진적이고 비약된 추리가 쏟아져 나오면서

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유지돼야 할 긴장감이 현격하게 떨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하루 만에 완독할 수 있을 정도로 페이지는 잘 넘어가는 작품이지만,

데드맨과 비교해볼 때, 상대적으로 사건보다 캐릭터에 중점을 둔 작품이라 그런지

가와이 간지의 후속작을 기다린 독자 입장에선 아쉬움이 남았던 것 같습니다.

, 가부라기 4인방의 활약은 데드맨때보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늘어났지만,

오히려 그 부분 때문에 사건의 재미나 긴장감이 떨어진 대목도 있었습니다.

데드맨의 경우 사건이 확실한 주연이고, 가부라기 4인방이 탄탄한 조연이었다면,

이번에는 그 반대의 느낌이 강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사건의 밀도나 크기를 좀더 키웠다면

훨씬 더 재미와 긴장감을 갖춘 미스터리가 됐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번역하신 권일영 님의 후기를 보니 다음 작품 단델라이언은 민들레가 소재로 등장하는군요.

풀기 힘든 수수께끼라는 꽃말을 가진 민들레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궁금해집니다.

매력적인 가부라기 4인방과 허를 찌르는 이야기의 힘의 균형이

다음 작품에서는 황금비율로 잘 안배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족으로..

이 작품을 읽을 예정인 독자라면 인터넷 서점의 소개글을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법 중요한 정보 두어 가지가 통째로 노출돼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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