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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걸스
에마 클라인 지음, 정주연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폭력과 약물, 반전운동이 열병처럼 번지던 1969년 남부 캘리포니아.
부모의 이혼으로 촉발된 외로움과 분노, 혼란스러운 감정에 힘들어하던 열네 살 소녀 이비는
공원에서 히피 소녀 무리를 목격한다.
그녀는 소녀들의 ‘야하고 경박한’ 웃음소리, 자유로운 행동과 옷차림에 시선을 빼앗기고,
특히 수전이라는 소녀에게 맹렬히 이끌린다.
수전과 소녀들은 버려진 목장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러셀의 지휘에 따라 살아가고 있었다.
이비는 수전에 대한 동경과 사랑 때문에 소녀들과 행동을 함께 하고,
태어나 처음으로 겪는 자유와 우정에 취해 범죄를 저지르면서
자신도 그들 중 하나가 되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러셀을 중심으로 한 소녀들의 일상이 위태로워지면서 불안한 공기가 떠돌고,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끔찍한 기억으로 남은 그날 밤이 찾아온다.
(출판사 책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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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학교와 학원과 부모의 ‘억압’으로 인해 통제된 삶을 살았더라도,
10대로 보낸 시간들은 대체로 ‘反억압’과 관련된 쪽으로 기억되기 마련입니다.
자유와 구속, 혼란과 일탈, 비밀과 거짓말,
그리고 두려움과 주저 속에 정작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로망...
‘더 걸스’의 주인공 이비는 (만) 14살, 우리로 치면 그 무서운(?) ‘중2’의 나이입니다.
14살의 이비가 살던 1969년과 지금의 2016년 사이에는 무려 50년에 가까운 간극이 있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10대의 정체성은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폭발하지 않으면 도저히 못 견딜 것처럼 불안해지거나,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세상의 모든 것이 불온하고 불공정하다고 확신하거나,
스스로 세상의 중심이 되기 위해 그 어떤 극단적인 방법도 기꺼이 선택하고 싶어 하는,
그런 불순(?)하고 불안정한 욕망들 말이죠...
구속에서 벗어난 자유를 갈망했고, 혼란 속에서도 일탈을 꿈꾸던 14살의 이비의 눈에
공공장소에서 가슴을 드러내고, 태연히 쓰레기통에서 음식을 찾는 ‘반사회적 소녀 집단’은
그야말로 자신의 로망을 구현시켜줄 롤 모델처럼 비칩니다.
그녀들이야말로 자신이 갖지 못했던, 또는 두려움 때문에 실행에 옮기기를 주저했던
모든 욕망들을 온몸으로 발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가치관을 부정하는 터질 것 같은 자신감,
모두가 ‘옳다’라고 말하는 것들에 대해 가차 없이 냉소를 던질 수 있는 우월감,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겠다는 무제한의 자유로움 등...
물론 이비의 판타지는 폐 목장에서의 공동생활 속에서 얼마 못가 산산이 부서지고 맙니다.
소녀들은 몸과 마음 어느 것도 완성되지 않은 말 그대로 ‘소녀들’일 뿐이었고,
그녀들의 자신감과 우월감은 대부분 술과 마약의 힘을 빌었던 것이며,
무제한의 자유란 무분별한 폭력, 문란한 성관계, 대책 없는 게으름과 같은 뜻일 뿐이었습니다.
가족과 친구에게서 받지 못했던 사랑과 존중을 기대했고,
무한한 자유와 즐거운 일탈, 그리고 용서받을 수 있는 방종을 통해
자신의 삶을 사랑하기를 바랐던 이비의 판타지와는 거리가 먼 일상이 이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비는 어떻게든 ‘그녀들’이 되고자 발버둥쳤지만,
끝내 감당하기 힘든 비밀과 거짓말만을 끌어안은 채 그해 여름의 종장을 맞이하게 됩니다.
사실 ‘더 걸스’의 이야기를 아주 거칠고 낮은 수준으로 정리하자면,
범생이도, 문제아도 아닌 채 어정쩡하게 경계선에 서서 세상을 증오하던 한 10대 소녀가
‘껌 좀 씹는 애들’과 한 패가 되고 싶었지만,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평생 짊어지고 갈 상처만 가득 안게 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비가 만난 ‘껌 좀 씹는 애들’ 가운데에는 정말 무뇌아 같은 캐릭터도 있지만,
반대로, 세상의 모든 희로애락을 겪은 듯한, 그 또래답지 않은 캐릭터도 있습니다.
이비가 진심으로 꽂혔던 수전이 바로 그런 캐릭터인데,
이비를 ‘그녀들’ 속으로 끌어들인 것도, 이비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 것도,
끝내 이비를 ‘그녀들’에게서 축출한 것도 수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이야기는 수전을 향한 이비의 감정 또는 심리의 변화를 따라갑니다.
이비는 공동생활을 시작한 이래 수전에게 몸과 마음 모두 급속히 빠져들지만,
동시에 수전 자체가 지극히 위험한 금단의 영역이라는 것도 금세 깨닫게 됩니다.
애초 이비의 눈을 멀게 했던 수전의 자신감과 자유로움이
이비의 몸과 마음에는 너무 크거나, 너무 꽉 끼는, 안 맞는 옷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그 ‘옷’을 자신에게 맞춰보려고 애썼지만,
그럴수록 이비의 몸은 엉망이 되고, 마음은 황폐해져 갔습니다.
사실, 수전을 향한 이비의 사랑, 집착, 원망, 아쉬움은
세상을 향한 이비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혼한 부모를 증오하고, 통제된 기숙학교를 거부하고, 자신을 내친 친구를 원망하면서도
그 대척점에 서있는 ‘자유로운 수전’에게도 모든 것을 걸 수 없는 이비의 혼란은
그녀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10대 소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수적인 가족주의가 지배적 가치관으로 작동하면서도
동시에 반전, 히피, 폭력, 약물이 범람하던 1969년의 미국의 사회상에 기인하기도 합니다.
이 작품이 단지 철없는 소녀의 불장난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적 맥락에서 읽히게 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비의 삶을 가장 아이러니하게 만드는 사건은
이젠 중년이 된 이비가 10대 시절의 자신을 꼭 빼닮은 새셔라는 소녀를 만난 일입니다.
더구나 자신이 ‘수전 일당의 광란의 살인극’에 연루됐다는 사실을 알곤
일종의 경외감까지 드러내는 새셔를 지켜보는 일은 이비에겐 너무나도 힘든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새셔를 통해 과거를 되돌아보며 회한에 젖는 이비를 지켜보는 독자 역시
무척이나 안쓰럽고 애틋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10대를 먼 옛날의 이야기로밖에 떠올릴 수 없는 나이의 독자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사족으로 아쉬움 한 가지만 지적하자면,
원작과 번역 중 어느 쪽에 기인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읽히지 않는 문장들과 수식이 과한 문장들이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400페이지 정도의 분량임에도 마지막 장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몇 번씩 되읽어도 그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거나,
수식과 비유가 너무 지나쳤던 문장들 때문이었습니다.
사건이 아니라 심리를 더 강조한 작품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난독’은 비단 저만의 경험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