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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여름 ㅣ 스토리콜렉터 43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북로드 / 2016년 5월
평점 :
이 작품은 2015년에 출간된 ‘여름을 삼킨 소녀’의 후속작입니다.
‘여름을 삼킨 소녀’가 세 번의 여름을 거치는 동안 무자비하고 잔혹한 성장통을 겪었던
셰리든 그랜트에게 나름 희망을 품은 엔딩을 주며 마무리됐다면,
‘끝나지 않은 여름’은 제목에서 연상되는 그대로 여전히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만 하는
셰리든의 그 후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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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리든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그랜트 저택을 뒤로 한 채
끔찍한 유년의 추억만을 남겨준 고향 페어필드를 떠나 뉴욕으로 먼길을 떠납니다.
하지만 그녀가 떠난 직후 그랜트 저택에서 끔찍한 총기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네 명이 죽고 두 명이 큰 부상을 입은 그 사건으로 인해 셰리든은 경찰에 체포됩니다.
남자에 환장한 창녀, 근친상간을 일삼은 미성년자 등 갖은 오명을 쓴 채
그랜트 저택으로 돌아온 셰리든은 또다시 악몽 같은 나날들을 보내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그랜트 저택을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신은 그녀에게 결코 순탄한 삶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끔찍한 만남과 이별, 폭력과 도주, 노숙에 가까운 참담한 생활 등
셰리든은 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지옥과도 ‘끝나지 않는 여름’을 겪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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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여름을 삼킨 소녀’를 읽지 않은 독자라도 대략의 정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넬레 노이하우스는 친절한 설명을 곳곳에 배치해놓았지만
사실 ‘여름을 삼킨 소녀’를 읽지 않은 독자는 셰리든과 그 주변 인물들에게
감정적으로 이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왜 셰리든은 홀로 멀고 먼 뉴욕으로 떠나려 했던 것인가?
그랜트 집안에서 벌어진 총기살인사건의 실체와 동기는 무엇인가?
또다시 집을 떠난 셰리든이 미국 전역을 떠돌며 갖은 고생을 감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그녀에게는 제대로 된 친구, 제대로 된 사랑이 찾아오지 않는 것일까?
그녀는 왜 자꾸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같은 오판을 반복하는가?
아마 ‘여름을 삼킨 소녀’를 건너뛰고 이 작품을 먼저 읽은 독자는
이런 모호한 의문들과 더불어 셰리든을 ‘이상한 소녀’로 오해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또 셰리든 가까이에서 애증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인물들의 진심이나 속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정이 허락한다면 ‘여름을 삼킨 소녀’를 읽은 후에 이 작품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미성년자인 채 작품에 등장한 셰리든은 작품 말미에는 21살에 이릅니다.
페어필드와 그랜트 저택을 떠난 후 그녀는 겨우겨우 삶을 이어가며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하지만 셰리든에게 ‘좋은 사람’을 만나는 행운 따위는 여전히 주어지지 않습니다.
소녀 시절에도 그랬듯 그녀 주위엔 겉과 속이 다르거나, 포악하거나,
그녀의 몸을 탐내기만 할 뿐인 저속하고 나쁜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그녀의 여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성장통이라 치부하기엔 너무 가혹하고, ‘픽션이니까’하고 넘기기엔 너무 리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넬레 노이하우스가 셰리든을 무조건 보호받아야 하고
동정 받아야 할 캐릭터로 그린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늘 손가락질 받는 사랑, 허락되지 않은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만 집착했고,
이전의 사랑에서 배운 교훈을 깡그리 무시하고 늘 감정이 가는 대로 자신을 내맡겨왔습니다.
언제나 온몸에 가시를 곤두세운 채 기꺼이 싸움을 받아들였고,
때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진실을 은폐하기도 해왔습니다.
그런 그녀가 조금씩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할 줄 알게 되면서 성장하는 과정이
‘끝나지 않은 여름’의 큰 줄기입니다.
후반부에 이르러 그녀 스스로 이렇게 자기 암시를 겁니다.
“네 행복은 네 손에 달려 있어. 목표를 세우고 그걸 따라가. 언젠가는 이루어질 테니!”
굉장히 상투적이고 진부한 자기 암시입니다만,
‘여름을 삼킨 소녀’부터 셰리든을 지켜봐온 독자 입장에선
이 상투적이고 진부한 말이 셰리든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과연 셰리든이 행복을 이루어내는지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야 알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롤러코스터 같은 스토리가 강점이었던 ‘여름을 삼킨 소녀’가 본방이었다면
‘끝나지 않은 여름’은 그 인기에 힘입어 긴급 편성된 ‘스페셜’ 같은 느낌이었다는 점입니다.
초반 총기살인사건 직후 셰리든이 그랜트 저택에서 고난을 겪을 때만 해도 몰입도가 높았는데
그녀가 저택을 떠난 후로는 약간은 동어반복 같은 느낌을 자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여름을 삼킨 소녀’를 다시 한 번 읽고 싶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