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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7 ㅣ 7 시리즈
케리 드루어리 지음, 정아영 옮김 / 다른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법정에서 피고인을 재판하는 사법 제도가 폐지되고, 국민이 직접 재판하는 제도가 도입된다.
특히 살인을 저지른 피고인은 7일 동안 TV 뉴스쇼에 신상이 공개되고,
시청자들은 전화, 문자, 인터넷을 이용해 무죄 혹은 유죄에 투표한다.
그리고 7일째 날 최종 집계 결과 유죄가 나오면 즉시 사형을 집행한다.
빈민가 출신의 열여섯 살 소녀 마사 허니듀가 전 국민의 사랑을 받던
유명인 잭슨 페이지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어 1번 수용실에 수감된다.
마사는 ‘최초의 10대 여성 수감자’로, 투표가 이루어지는 7일 동안
매일 수용실을 옮기며 전기의자가 있는 7번 수용실로 향한다.
마사는 자신이 잭슨 페이지를 죽였다고 자백하여 사실상 사형이 확실시되지만,
마사의 상담을 맡은 이브 스탠턴은 마사가 뭔가 감추고 있음을 직감하고 비밀을 추적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브는 소름끼치는 음모를 마주하게 된다.
(출판사 줄거리를 일부 수정하여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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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마녀사냥 이래 대중의 광기는 시대를 막론하고 가공할 독성을 지녀왔습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인터넷이나 미디어의 힘과 뒤섞여 거친 화학반응을 일으킬 경우
대중의 광기는 그 어떤 합리적 논리와 이성적 판단까지도 마녀로 몰아세울 수 있게 됐습니다.
‘셀 7’은 그 광기가 사법의 영역까지 장악한 우울한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습니다.
법정은 문을 닫았고, 법조인들은 다른 직업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에서,
목격자도, 증거도 필요 없고 단지 대중의 증오심만으로 인명을 빼앗는 시대가 도래합니다.
미디어는 끊임없이 도발적인 영상과 멘트로 용의자의 흉포함을 강조하고,
대중은 비디오게임처럼 미친 듯 유료투표를 하며 무자비한 사형집행을 갈망합니다.
정치권력은 이런 사법제도를 통해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를 능가하는 힘을 갖게 됩니다.
대중은 누군가의 죽음을 갈망하면서 희열을 느끼지만,
동시에 자신이 그 쇼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와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권력에 반하는 말과 행동은 금지되며, 독재자에게는 무한한 애정만을 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언제든 ‘사형당할 확률이 99%’인 1번 수용실로 끌려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6살의 소녀 마사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 체제를 붕괴시키기로 마음먹습니다.
문제는, 그 방법이 스스로 사형수가 되는 길이었다는 점입니다.
독자는 ‘체제에 대한 정면 공격’이 아니라 ‘스스로 사형수가 되는 것’이
어떻게 이 견고한 디스토피아를 무너뜨리게 될까 궁금히 여기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작가는 수용실에 갇힌 마사의 ‘최후의 1주일’과 살인이 일어나기 전 과거의 사건들을
주요 인물들의 관점을 통해 교차 편집하듯 보여줍니다.
그를 통해 마사가 감추고 있는 비밀을 조금씩 흘리는 것과 동시에
어처구니없는 사법제도를 둘러싼 다양한 개인/집단 간의 극단적 갈등을 세세히 묘사합니다.
새롭고 독특한 소재인데다, 선명한 스토리 때문에 페이지는 쉽게 넘어갑니다.
우울한 디스토피아를 그리기 위해 현학적인 문장들이나 모호한 철학을 동원하지도 않습니다.
사형수가 된 마사, 그녀를 도와주려는 상담사 이브, 직업을 잃은 전직 대법관,
피에 굶주린 듯한 쇼의 진행자 등 다채롭고 호기심 넘치는 캐릭터들도 쉽고 매력 있습니다.
적절한 미스터리와 반전, 교훈적이지도 이분법적이지도 않은 엔딩 역시 괜찮은 미덕입니다.
다만, 이런 ‘심플함’은 ‘셀 7’의 장점이면서 동시에 단점이기도 합니다.
‘셀 7’이 그린 디스토피아는 조금은 과장되거나 단순하게 도식화된 면이 분명 있습니다.
그런 세상이 오게 된 과정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보니 사실감이 떨어지기도 하고,
마사를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된 미디어나 대중의 광기 역시 쉽게 공감하기 어렵게 됩니다.
디스토피아 이야기가 독자에게 어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안 살아봤지만 직접 살아본 것처럼 생생히 느껴지는 어떤 세상에 대한 공포’의 공유입니다.
그런 점에서 마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좀더 깊고 세세한 설명이 있었다면,
그 세상에 만연한 대중의 광기가 내뿜는 공포에 대해 좀더 독자의 공감을 끌어냈더라면
위에서 언급한 아쉬움들이 많이 덜어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또한, 견고한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주인공이 10대이다 보니
사건의 규모나 극성(劇性)은 물론 철학적인 깊이가 얕아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한계는 후반부에 이야기가 급물살을 타기 전까지 내내 느껴지곤 했는데,
그래서인지 또래의 주인공들이 등장했던 ‘헝거 게임’이나 ‘배틀 로열’처럼
좀더 독한 설정이 첨가됐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랬다면 재미와 함께 철학적인 의미도 획득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물론 이 작품을 쓴 의도와는 거리가 먼 얘기일 수도 있지만요..)
‘셀 7’의 뒷이야기를 다룬 ‘데이 7’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후속작에서는 좀더 피부에 와 닿는 디스토피아의 진면목이 그려지기를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