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기환송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 Mickey Haller series
마이클 코넬리 지음, 전행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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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할러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자

시기적으로는 해리 보슈 시리즈 중 나인 드래곤직후를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나인 드래곤2009, ‘파기환송2010년에 출간됐습니다)

초장부터 해리 보슈 시리즈를 언급한 이유는 해리 보슈가 이 작품에서

이복동생인 주인공 미키 할러와 거의 동급의 역할로 협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 ●

 

12살 소녀를 납치, 살해한 혐의로 24년간 복역해온 제이슨 제섭이

유전자 감식이라는 새로운 증거를 내밀며 재심을 받게 됩니다.

정황상 승소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LA지검은 저주받은 자들의 변호사미키 할러에게

특별검사를 제안하며 제섭의 유죄를 밝혀줄 것을 요청합니다.

오랫동안 형사변호사로서 검찰과 대적해왔던 할러에게는 희대의 기회가 온 것입니다.

다분히 정치적인 제안이었지만 할러는 단지 정의감이라는 이유 하나로 수락하게 되고,

전처이자 유능한 검사인 매기 맥퍼슨을 차석 검사로,

이복형이자 베테랑 LA경찰인 해리 보슈를 수사관으로 합류시킵니다.

그야말로 드림팀이 뜬 것입니다.

하지만 유전자 감식 결과를 뒤엎을 새로운 단서와 증인을 찾는 과정은 결코 녹록치 않습니다.

보석허가까지 받아낸 제섭은 LA시내를 활보하며 수상한 행보를 일삼고 있고,

재판까지 남은 한정된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갈 뿐입니다.

 

● ● ●

 

사실 시리즈의 첫 편인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는 영화로만 봤고,

2편인 탄환의 심판은 읽어보지 못한 상태에서 소설로 미키 할러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래서인지 정작 미키 할러에게는 몰입하지 못하고 계속 해리 보슈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이야기는 정통 법정 스릴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대 변호사와의 지적 대결, 증인과 단서를 찾기 위한 지난한 노력,

심문 과정에서의 연이은 반전, 법정 밖에서 벌어지는 예상치 못한 위기 등

법정 스릴러가 갖춰야 할 모든 덕목을 잘 갖추고 있는 작품입니다.

 

특히 이혼한 상태에서 한 팀이 된 할러와 매기의 팀웍이나

이복형제지만 데면데면하기 짝이 없는 할러와 해리의 협업은

사건 자체를 떠나 개인적인 갈등까지 긴장감 있게 살려내는 재미있는 구도입니다.

서로 주도권을 쥐려는 할러와 매기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라든가

현장 형사와 양복 입은 법조인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해리와 할러의 갈등은

본 사건 외에도 쏠쏠한 재미를 주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법정 스릴러 최고의 대가로 존 그리샴을 꼽지만

미키 할러를 앞세운 마이클 코널리 역시 만만치 않은 필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이클 코널리의 청산유수 같은 문장들은 법정 스릴러의 한계,

, 한정된 공간, 한정된 인물, 한정된 사건의 약점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술술 읽힙니다.

다만, 그의 문장의 역동성은 현장 형사인 해리 보슈와 좀더 잘 어울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인지 해리 보슈에 비해 정적일 수밖에 없는 미키 할러의 이야기가

조금은 단선적으로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프레임 안에 갇힌 해리 보슈 역시 자신의 시리즈 때와 비교하면

조금은 소소한 역할에 머물러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당연히 미키 할러 시리즈라 그만큼의 역할로 조정했겠지요.^^)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 많이 등장하는 요즘

그래도 믿고 찾게 되는 마이클 코널리의 작품이 꾸준히 출간되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올해도 ‘The Wrong Side of Goodbye’라는 해리 보슈의 19번째 시리즈가 출간됐다는데

아직 미출간된 작품들과 함께 얼른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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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지 않음, 형사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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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사회파 미스터리의 미덕에 대하급 경찰소설의 매력까지 지닌

찬호께이의 국내 첫 소개작 ‘13.67’의 열혈독자라면

저처럼 기억나지 않음, 형사에서도 비슷한 매력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마다 소지 추리소설 상 수상이라는 이력에서 예감할 수 있듯

이 작품은 서사보다는 정교한 플롯과 연이은 반전을 앞세운 독특한 작품입니다.

또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기억이라는 조금은 미묘한 정신의 영역을 끌어들임으로써

앞선 ‘13.67’의 리얼리즘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 ● ●

 

홍콩 경찰 쉬유이는 어느 날 아침 숙취와 함께 잠에서 깹니다.

부부살인사건을 수사하던 그는 어제까지만 해도 2003년을 살고 있었지만

잠에서 깬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2009년입니다.

무려 6년의 기억이 통째로 사라진 것입니다.

그가 수사하던 사건은 이미 종료된 상태였고, 용의자는 차량사고로 사망한 상태입니다.

그는 엉겁결에 여기자 루친이와 함께 당시 피해자의 유족 취재에 동행하게 되는데,

사망한 용의자가 진범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위화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만 하루 동안의 조사를 통해 쉬유이는 나름 진상을 파악해내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예기치 못한 충격적인 반전과

사라진 6년간의 기억 속에 숨어있던 기가 막힌 진실이었습니다.

 

● ● ●

 

보통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의 경우 대표작(가장 대중적인?)부터 먼저 출간된 뒤

그 반응에 따라 작가의 개성이 잘 드러난 작품 또는 데뷔작이 출간되곤 하는데,

그래서인지 처음 소개된 대표작에 비해 조금은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억나지 않음, 형사의 경우 실망감까지 느낀 것은 아니지만

비장하고 스케일이 큰 경찰 서사를 기대했던 터라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다고 할까요?

 

하지만 기억나지 않음, 형사를 통해 찬호께이를 처음 만난 독자라면

분명 그만의 독특한 필력과 구성이 가진 매력에 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한 경찰의 인생을 시간의 역순으로 배치하여 더 큰 울림을 전해줬던 ‘13.67’도 그랬지만

이야기 자체만큼이나 구성이 갖는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찬호께이는 이 작품을 통해 또 한 번 입증하고 있습니다.

 

기억상실에 걸린 쉬유이가 만 하루 동안 진실 찾기에 나선 동안

찬호께이는 소챕터들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과거를 조금씩 떡밥처럼 소개합니다.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독자는 묘한 위화감과 이물감을 느끼게 되는데,

그 느낌은 마지막에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까지 계속 독자를 괴롭힙니다(?).

특히 논리적으로는 100% 설명하기 어려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기억상실이 개입되어

독자의 즐거운 괴로움은 페이지를 넘길수록 배가됩니다.

 

사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기억상실은 평범하다 못해 진부한 소재로 여겨지지만

찬호께이는 쉽게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미스터리의 구조 속에

이 진부한 소재들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하고 녹여냈습니다.

쉬유이의 사라진 6년의 기억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독자는 , 이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됩니다.

 

물론 파격적인 마지막 반전과 약간은 장황하게 설명된 기억에 관한 과학적 지식에 대해

일부 독자는 공감하기 어려워할 수도 있고 작위적이라고 평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미묘하기 이를 데 없는 뇌와 정신의 영역에 대한 작가의 설명은

어떤 부분에서는 끼워 맞추기 식 해설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그런 약점들이 작품 전체의 미덕을 훼손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뭐랄까, 조금은 무모하지만 새로움을 앞세운 신선한 실험작의 장점이 더 살아있다고 할까요?

, 그런 부분이 높게 평가받아 시마다 소지의 극찬을 이끌어낸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찬호께이의 다음 출간작이 어떤 작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두 편의 작품만으로도 국내에 그의 후속작을 기대하는 독자들이 많아졌으리라 여겨집니다.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13.67’에 맞먹는 대하급 경찰소설이기를 기대하지만,

기억나지 않음, 형사처럼 파격적인 내용과 형식의 작품이라도 기꺼이 환영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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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날 - 상 커글린 가문 3부작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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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글린 가문 3부작 중 2부인 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가 출간됐을 때부터

이왕이면 1부인 이 작품부터 순서대로 읽어야겠다고 작심했지만,

결국 3부인 무너진 세상에서가 출간된 뒤에도 한참동안 게으름을 부리다가

뒤늦게야 두 권으로 된 방대한 분량의 책읽기를 마쳤습니다.

 

켄지&제나로 시리즈중 일부와 최근 출간작인 더 드롭까지

전부는 아니더라도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을 꽤 읽은 편이지만

커글린 가문 3부작이 이런 서사의 작품일 줄은 미처 예상 못했습니다.

일부러 출판사의 소개글이나 심지어 책 뒷면의 카피조차 미리 보지 않는 습관 때문에

표지나 제목만 봤을 때는 대부와 비슷한 톤의 이야기가 아닐까 기대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20세기 초반 혼돈의 미국 사회를 배경 삼아 펼쳐지는

데니스 루헤인 특유의 시니컬하면서도 잔혹함이 배어있는 사건과 캐릭터를 기대했던 것이죠.

 

물론 전혀 그렇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전히 캐릭터들은 날것처럼 생생하고, 사건은 참혹합니다.

수많은 죽음이 등장하고, 애증과 갈등, 연대와 배신이 난무합니다.

다만, 대하 역사소설로 분류되는 것이 마땅한 이 작품은

데니스 루헤인의 기존의 스릴러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서사를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운명의 날은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1917년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인 러시아 10월 혁명,

1914년에 시작되어 1918년에 막을 내린 세계 1차 대전,

1920년에 발효되어 수많은 사건과 사고를 일으킨 금주법,

그리고, 이 작품의 소재인 1919년 보스턴 경찰의 파업이 그것들입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보와 보수, 흑과 백의 인종갈등, 각지에서 몰려든 이민자의 문제 등

당시 미국 사회는 온갖 가치관과 이념의 충돌로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모든 급진적인 것은 빨갱이, 모든 집회와 시위는 체제전복적인 시도로 매도됐습니다.

그런 와중에 10년 넘게 임금과 처우 개선을 받지 못한 보스턴 경찰의 파업은

미국 전체를 뒤숭숭하게 만들 정도로 파괴력이 컸던 최초의 공무원 파업이었습니다.

 

데니스 루헤인은 이런 혼란의 시대를 커글린 가문을 중심으로 생생하게 그려갑니다.

보스턴의 유력한 경찰서장 토마스의 아들인 대니 커글린은

다분히 반골적이면서도 한량의 기질과 정의감을 함께 지닌 청년 경찰입니다.

그런 그가 보스턴 경찰 내의 불온한 움직임(노조 결성)을 조사하고,

공산주의와 테러리즘으로 무장한 급진단체 기밀 파악을 위해 언더커버 역할을 맡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반대의 길을 걷게 됩니다.

또한 지극히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아버지와 권력지향적인 동생과 번번이 충돌을 겪습니다.

그 과정에 대니가 사랑했던 여인 노라까지 개입되면서 가족 간에도 큰 균열이 벌어집니다.

 

대니 커글린과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또 한명의 주인공은 흑인 청년 루터 로렌스입니다.

루터는 악질적인 폭력조직 보스와 그 수하들을 살해하곤 고향을 떠나 보스턴에 정착합니다.

커글린 가문에서 일하게 된 루터는 대니 커글린과 인연을 맺게 되고

당시 여전히 차별받던 흑인들의 상황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 하권을 합쳐 1,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진 않습니다.

데니스 루헤인의 문장은 쉬우면서도 꼭 필요한 비유만을 동원하여

독자에게 골치 아픈 난독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또한 폭풍전야처럼 긴장감을 간직한 보스턴의 서늘한 분위기,

대니 커글린, 노라, 루터 로렌스가 겪는 목숨을 건 위기일발의 사건들,

쉴 새 없이 몰락으로 치닫는 커글린 가문의 암울한 상황 등

분량만큼이나 다채로운 소재들이 지루함을 느끼게 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20세기 초 미국의 상황을 그린 이 작품이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생생했던 것은

한국의 근현대사, 아니, 진행형이라 해도 무방한 한국의 현재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양립 불가능한 이념의 대결, 권력과 자본의 민낯, 사회적 약자들의 무력감 등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자꾸만 비교 또는 대입하며 읽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보스턴 경찰 파업과 가족과의 충돌을 겪으며 상처투성이 성장을 거친 대니 커글린이

이어지는 2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3무너진 세상에서를 통해

또 어떤 굴곡진 삶을 살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늦어도 올해 안엔 커글린 3부작을 완독할 계획인데,

아무래도 대니 커글린이 더는 경찰의 삶을 살 것 같지 않아서 더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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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서커스 베루프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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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서커스는 서평 쓰기가 참 어려운 작품입니다.

네팔이라는 신비하면서도 멀고 먼 나라에서 벌어진,

그것도 왕실이라는 생경한 공간에서 벌어진 참혹한 살인사건이 바탕에 깔려있습니다.

이야기의 전반부는 네팔의 독특한 풍경과 문화를 소개하는 여행기처럼 전개되지만,

왕실살인사건이 벌어진 후로는 직업이 기자인 주인공을 통해 아는 것퍼뜨리는 것’,

즉 언론과 언론인의 사명에 대해 적잖은 분량과 진지한 태도로 언급합니다.

그러다가, 취재원으로 만났던 한 군인의 죽음을 통해 주인공은 미스터리 속으로 빠져듭니다.

현지 경찰의 보호 속에 주인공은 군인의 죽음과 왕실살인사건의 접점을 찾기 위해 애씁니다.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후의 전체적인 느낌은,

이 작품은 혼란스러운 20대의 후반을 보낸 한 사람의 성장기이자

기자라면 누구나 겪을 세상을 보는 태도에 대한 통과의례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500페이지가 넘은 분량임에도 페이지는 금세 넘어갑니다.

어렵지도, 현학적이지도 않은 문장들 속에 네팔의 풍광이 매력적으로 그려져 있고,

사건과 인물 역시 간결하면서도 리얼하게 설정돼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듯 다양하고 이질적인 코드들이 한데 섞여있다 보니

읽는 내내 내가 지금 어떤 장르의 소설을 읽고 있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 네팔의 비참한 현실, 언론인의 사명과 뉴스의 허상,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미스터리 등

한 작품의 주제로도 충분한 묵직한 코드들이 대등한 무게감으로 뒤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미스터리를 기대했던 독자에게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겠지만,

역시 신비하면서도 먼 나라 유고슬라비아를 소재로 삼은

요네자와 호노부의 안녕 요정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라면

마치 속편을 접한 것처럼 기쁜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길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다치아라이 마치는 안녕 요정에서 조연이긴 하지만

일명 센도라 불리며 어딘가 초연한 분위기와 카리스마를 내뿜는 10대 소녀로 등장합니다)

알라딘 소설 MD 최원호 님은 최근 요네자와 호노부가 미스터리 트릭보다는

범죄에 얽힌 사람들의 심리와 그에 따른 스토리텔링에 주력했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왕과 서커스는 바로 그런 경향의 정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전작인 야경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이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주간 분슌 미스터리 베스트 10’ 3대 리스트 1위를 차지한 것은 100% 공감했지만,

요네자와 호노부가 이 작품으로 3대 리스트 12연패를 달성했다는 사실은 좀 의외였습니다.

미스터리에 대한 너무 큰 기대로 이 작품을 읽기 시작한다면

절반도 못 가서 회의감이 들 수도 있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 고비만 잘 넘긴다면 정말 맛깔나게 글 잘 쓰는

요네자와 호노부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으니 부디 중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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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된 강물처럼
윌리엄 켄트 크루거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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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전미 7대 미스터리 상을 석권했다는 출판사의 소개글을 봤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이면 왠지 장르물로 분류되는 것이 맞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 사람의 죽음의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이 밑바탕에 깔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13세 소년의 성장기를 주축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이자 한 공동체의 이야기이며

퍼블리셔스 위클리의 추천글처럼 분노와 죄책감, 구원에 관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맞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단순히 장르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접근했다면 조금은 낭패감을 느낄 수도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그 낭패감을 견뎌낸다면 의외로 묵직한 여운과 잔잔한 감동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작품의 원제는 ‘Ordinary Grace’입니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서 잘 몰랐다가 나중에야 그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됐는데)

쉽게 말하자면 일반적인 하느님의 은총, 즉 평온함과 따뜻함을 내포하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 속의 인물들, 관계들, 사건들은 결코 평온하고 따뜻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인물들은 몸과 마음 어딘가 한군데 이상은 심하게 망가져있습니다.

그들의 관계 역시 겉과 속이 다르거나 애증이 교차하거나 대놓고 민낯으로 부딪히곤 합니다.

여러 죽음이 얽힌 사건들은 참혹하거나 의문투성이입니다.

 

주인공인 13세 소년 프랭크와 두 살 아래 동생인 제이크는

불온하거나 불안정한 1961년의 미네소타 주의 뉴 브레멘이라는 소도시에서 성장하면서

수많은 인물과 관계와 사건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현실에서든 소설을 통해서든) 남의 불행을 지켜보는 일은 분명 흥미로운(?) 일이지만

두 소년의 성장통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지난한 길을 걷습니다.

 

하지만 두 소년의 아버지이자 독실한 목사인 네이선 드럼은

그리스 비극 작가 아이스킬로스를 인용하며 성장통을 겪는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줍니다.

배움에는 고통이 따른다. (중략) 절망 속에서, 신의 잔인한 은총을 통해 지혜가 찾아온다.”

이때의 잔인한 은총을 Awful Grace라고 한다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사고, 불행 등을 통해 깨우침을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이란 뜻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 작품의 원제 ‘Ordinary Grace’는 극단적으로 역설적인 제목입니다.

들끓는 호기심, 왕성한 사춘기적 욕구, 근거 없는 정의감으로 폭발 직전인 두 소년에게

아버지 네이선은 잔인한 은총을 통해 어떻게 성장하고 지혜를 얻어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두 소년은 때론 분노하고, 때론 겁내고, 때론 무모하게 덤비면서도

잔인한 은총을 통해 얻은 지혜를 거름삼아 자신들만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완성해나갑니다.

 

20세기 초중반의 혼돈스런 미국 사회를 그린 작품들이 그러하듯

작품 전체의 분위기는 무겁고 폭풍전야 같은 음울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쉴 새 없이 소도시 뉴 브레멘과 프랭크 형제에게 닥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적잖은 분량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긴장감 있게 전개됩니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수많은 조연들은 이야기를 촘촘하고 맛깔나게 만든 주역들이기도 합니다.

문장은 고급스럽지만 현학적이지 않고, 깊지만 난해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이 작품을 장르물로 분류하는 것에 대해서는 100% 공감 못하지만,

어쨌든 이 작품이 거둔 대중적 성과(전미 7대 미스터리 상 석권)가 공수표가 아님은

확실히 보증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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