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숲 블랙 캣(Black Cat) 23
타나 프렌치 지음, 조한나 옮김 / 영림카디널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1984년 여름,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노크나리의 숲에서 3명의 소년, 소녀가 실종됩니다. 수색 끝에 애덤 라이언은 피범벅이 된 채 발견됐지만, 나머지 2명은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20년 후인 현재, 애덤은 로브 라이언으로 개명한 뒤 살인사건 전담반 형사가 돼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의 악몽의 근원지로 남아있는 노크나리의 숲 유적 발굴현장에서 참혹한 사체로 발견된 12살 소녀 케이트 살인사건을 맡게 됩니다. 새로 살인사건 전담반에 배치된 여형사 캐시, 국회의원 삼촌을 둔 동료형사 샘 오닐이 로브의 파트너로 수사에 참여하고, 대규모 지원반이 구성되지만 사건은 미궁에 빠집니다.

 

아일랜드 출신 타나 프렌치의 데뷔작이자 2008년 굵직한 미스터리 신인상을 휩쓴 작품입니다. 20년의 시차를 두고 노크나리 숲에서 벌어진 실종사건과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지만 단순히 범인 찾기이상의 서사를 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숲에서 두 친구를 잃고 홀로 살아남은 로브는 아직도 그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하지만 케이트 살인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노크나리 숲을 다시 찾은 로브는 조각조각 되살아나는 유년기의 기억들 때문에 고통스러워합니다. 더구나 되살아난 기억 가운데 케이트 살인사건과 교차되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로브는 20년의 시차를 둔 연쇄살인범의 가능성까지 고려하게 됩니다.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사라진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 등 로브가 겪는 심리적 고통은 미스터리에 맞먹는 분량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28살의 여형사 캐시는 이런 로브의 곁에서 뛰어난 파트너이자 특별한 친구역할을 하는데, 형사로서의 재능은 물론 범죄심리학에도 능한 인재입니다. (캐시는 타나 프렌치가 후속작으로 집필한 ‘The Likeness’의 주인공을 맡을 정도로 개성과 매력이 철철 넘치는 여형사입니다.) 로브와 캐시는 나란히 누워서도 그야말로 손도 안 잡고 잠만 자는 독특한 관계입니다. 막역한 동성친구처럼 서로를 편하게 대하며 허물없이 속을 털어놓을 뿐만 아니라 수사에서도 눈빛만으로 모든 것이 통할 정도로 손발이 척척 맞는 파트너입니다. 물론 두 사람의 관계가 그저 물 흐르듯 계속 좋게만 이어지진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남녀상열지사가 개입되면서 이상전선이 흐르는가 하면, 수사상 결정적인 지점에서 큰 충돌을 겪으면서 파열음을 내기도 합니다. 친구이자 연인이자 파트너인 두 사람의 관계의 흐름도 꽤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한낮에도 햇빛이 스며들지 못하는 숲이라는 공간, 20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곳에서 벌어진 소년과 소녀를 대상으로 한 실종사건과 살인사건, 그리고 실종사건 때 홀로 살아남아 고통스러운 성장기를 거친 소년이 20년 후 같은 곳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수사해야 하는 아이러니 등 살인의 숲은 소재와 캐릭터만 봐도 그 무거움이 만만치 않은 작품입니다.

타나 프렌치는 그 무거움을 무려 570페이지에 걸쳐 펼쳐놓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 느껴지는 두통과 여운이 여간 묵직한 것이 아닙니다. 특히 (많은 서평과 작가후기에서도 지적됐듯) 독자의 마음에 돌덩이를 올려놓은 듯한 엔딩은 불편하면서도 이것저것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무거움의 결정타입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을 꼽자면 분량의 문제입니다. 사건 자체만 놓고 보면 무척 심플한 설정인데, 그에 비해 피로감과 지루함을 느끼게 할 정도로 분량이 부풀려졌다는 생각입니다. 우선은 화자로 등장한 로브가 자신의 감정이나 기분을 지나칠 정도로 과하게 토로했고, , 20년 전 친구들과의 추억에 대한 묘사를 위해서도 과한 분량이 할애됐습니다. 필요한 내용들이긴 하지만 조금만 절제했더라면, 그래서 450페이지 안팎으로 집필됐더라면 훨씬 더 몰입감도 높아지고 지루함 없이 읽을 수 있는 작품이 됐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작가의 필력이나 캐릭터의 매력 등으로 볼 때 후속작 출간이 당연하다고 보였는데, 타나 프렌치의 작품이 살인의 숲이후 더 이상 출간 안 된 점은 무척 아쉬운 일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인터넷 서점에서 품절 또는 절판 상태인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캐시가 주인공을 맡은 ‘The Likeness’만큼은 빠른 시일 안에 출간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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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 파커 시리즈 Parker Series 1
리처드 스타크 지음, 전행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1년에 1~2번씩 현금수송차량을 턴 뒤 휴양지에서 아내 린과 함께 럭셔리한 휴가를 보내다가

돈이 떨어지면 새로운 일에 착수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오던 파커는

함께 거액의 무기밀매대금을 강탈한 말 레스닉의 배신으로 인해 죽음 일보직전에 이릅니다.

천운으로 목숨을 건진 파커는 말 레스닉에게 처절한 복수를 다짐하며 뉴욕에 입성합니다.

수소문 끝에 거대 범죄조직 아웃핏의 중간보스가 된 말 레스닉을 찾아내 복수를 마친 파커는

이번에는 자신의 돈을 되찾기 위해 아웃핏과의 일전을 불사합니다.

 

● ● ●

 

한 편의 속 시원한 액션 영화를 본 느낌입니다.

이야기 구조는 무척 심플합니다. 통쾌한 복수극 그 자체입니다.

딱히 미스터리나 반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흡입력이 대단한 작품입니다.

분량도 300페이지가 채 안 돼서 서너 시간이면 충분히 끝낼 수 있습니다.

 

도널드 웨스크레이크가 리처드 스타크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악당 파커 시리즈'의 첫 편으로

속도감과 스릴감, 적절한 폭력성과 선정성에 매력적인 주인공까지 겸비한 덕분에

지금까지 두 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멜 깁슨이 주연을 맡은 페이백도 그 중 한편인데,

아쉽게도 보진 못했지만 대략 어떤 톤의 작품이었을지는 쉽게 짐작이 갑니다.

 

파커는 분명 법을 어기며 살아온 악당이지만 나름 원칙과 도덕을 고수해온 인물입니다.

필요한 만큼의 돈을 얻으면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휴양지에서의 삶을 영위했고,

그 과정에서 무고한 인명피해를 끼친 적도 없습니다.

그런 그가 동료와 아내의 배신으로 인해 18년 동안 지켜온 삶의 방식을 포기하게 됩니다.

무수한 살인을 저지르고, 무모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조직과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독자는 그의 과거를 알면서도 그의 폭주하는 복수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악당이지만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주인공이 사악하고 거대한 진짜 악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는

지금은 영화나 소설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 작품이 1962년에 나온 것을 보면 아마 그런 장르의 원조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너무 심플하고 직선적인 서사때문에

롤러코스터 같은 아찔함이나 오르락내리락 하는 맛이 덜하다는 점인데,

골치 아픈 서사 대신 거침없는 액션을 맛보고 싶은 독자에겐

오히려 딱 맞는 스토리와 캐릭터일 수도 있습니다.

 

스마트폰도 컴퓨터도 없던 시대의 악당이지만

파커는 오히려 그런 아날로그적인 면 때문에 더욱 그 매력이 돋보이는 인물입니다.

목숨을 건 미션을 마치고 조직에 쓴맛을 보여준 뒤 유유히 길을 떠난 파커가

그 이후에 어떤 행보를 걷게 될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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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요정 베루프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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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자와 호노부의 작품인데다 인터넷 서점 대부분이 미스터리 장르로 분류하고 있고,

원래 고전부 시리즈의 한 편으로 집필된 이력 때문에 당연히 미스터리 작품이라고 예상했지만

실제 담긴 내용은 18살 소년 모리야의 성장통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물론 일상 속의 추리가 등장하긴 하지만 그것을 추리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좀 애매합니다.

 

● ● ●

 

1년 전, 3이던 모리야와 그의 친구들은 유고슬라비아에서 온 17살 소녀 마야와 만납니다.

마야는 눈에 띄는 사소한 소품이나 이국적인 관습 하나하나에 관심을 쏟으며

매번 철학적인 의미가 있습니까?”라고 묻곤 합니다.

짧은 두 달 동안의 만남 속에서 모리야는 마야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된 것은 물론

미처 들여다본 적 없는 새로운 바깥세계에 대한 갈망에 휩싸입니다.

마야가 유고슬라비아로 돌아갈 날이 얼마 안 남았을 때 내전 소식이 들려옵니다.

모리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야는 일본을 떠났고 그 뒤로 소식이 끊깁니다.

1년이 지난 오늘, 모리야는 일기장에 적힌 마야와의 추억을 하나씩 되짚어가며

그녀가 유고슬라비아의 어느 곳으로 돌아간 것인지, 지금도 안전하게 잘 지내는지,

또 약속했던 편지는 왜 안 쓰는 것인지 알아내려 합니다.

 

● ● ●

 

고전부 시리즈로 집필됐던 원고를 크게 고쳐 출간한 작품이라 그런지

캐릭터나 이야기의 톤에서 고전부 시리즈의 향기가 물씬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특히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가 많이 떠올랐는데,

그 이유는 고전부 시리즈의 주인공인 오레키 호타로가 그 작품에서 겪은 성장통 스토리,

즉 자신의 능력과 취향, 장단점에 대한 진지한 성찰, 미래에 대한 근거 없는 확신,

그리고 그것들이 좌절됐을 때 겪게 되는 고통과 성장의 스토리가

이 작품의 주인공 모리야에게서도 그대로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모리야는 대학 입시를 앞둔 평범한 18살 청소년입니다.

음악이든 운동이든 공부든 딱히 뭔가에 빠져본 적도 없고, 그럴 생각도 별로 없는데다

호화롭진 않지만 그렇다고 곤란하지도 않은 생활 속에 안주해있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유고슬라비아의 17살 소녀로 인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단지 특별한 외모와 성격을 지닌 이국의 소녀에게 반했다는 점 외에도

17살에 어울리지 않는 원대하고 도전적이며 안주하지 않는 그녀의 삶의 방식에 대한

맹목적인 동경과 모방심 덕분입니다.

 

정치가를 꿈꾸는 마야는 아버지를 따라 세계를 다니며 유고슬라비아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각 나라의 문화와 관습을 집요할 정도로 메모하며 공부합니다.

처음엔 이국 소녀의 순진무구한 호기심이라 여기며 웃음 짓곤 하던 모리야는

점차 마야의 열정과 삶을 대하는 방식에 빠져들기 시작하고,

결국엔 안이하고 평범할 뿐인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지경에 이릅니다.

 

마야는 내 좁은 세계에 숨구멍을 내준 방문자였다.

하루 세끼 거르지 않고, 교육도 받고, 몸에 탈난 곳도 없이 이렇게 살고 있지만,

이건 그냥 사는 것에 불과하다. 여기서 나가야 한다.

 

바보의 엔딩 크레디트에서 오레키는 F반의 카리스마 여제 이리스 후유미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 즉 능력이나 취향, 장단점에 대해 심각히 고민하면서

잠시 자만에 빠지기도 하고, 잠시 좌절하기도 하는 통과의례를 겪습니다.

안녕 요정의 모리야 역시 마야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혁명적인(?) 변화를 꿈꾸지만

결과는 자신의 바람대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유고슬라비아로 떠난 마야로 인해 상심과 좌절을 맛본 모리야지만

그는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문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난 추억을 바탕으로 마야의 현재를 알아내기 위해 분투하면서

좀더 과격한 방법으로 마야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세상은 그에게 더 큰 성장통만 안겨줍니다.

 

‘18은 우연히 만난 누군가로 인해 꿈, 미래, 이상이 전혀 달라질 수 있는 나이입니다.

자기애(自己愛)가 폭증할 수도, 자기혐오가 폭증할 수도 있는 나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층층이 쌓인 끝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성장을 겪게 됩니다.

사실 안녕 요정은 바로 이런 성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굳이 요약하자면, 인터넷 서점의 소개글대로 마야라는 요정을 통해 꿈꾸는 나의 이상향과

그것이 좌절됨에 따른 상실감을 유고슬라비아 분쟁이라는 사건을 매개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미스터리를 기대한 독자에게는 좀 낯선 책읽기가 되겠지만(제가 꼭 그랬습니다^^;),

고전부 시리즈나 소시민 시리즈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어딘가 일맥상통하는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품 세계를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카리스마와 추리 재능을 겸비한데다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여학생 다치아라이,

, “난 자기 손이 닿는 범위 밖에 관여하는 건 거짓이라고 생각해.”라며

모리야와는 정반대의 사고방식을 보여준 후미하라가 무척 인상적인 캐릭터였습니다.

성인이 된 모리야와 다치아라이가 등장하는 단편은 물론

기자가 된 다치아라이가 주인공인 장편(왕과 서커스)이 일본에서 출간됐다고 하는데

빠른 시일 안에 한국에서도 출간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사족으로..

안녕 요정에서 보틀넥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는 어떤 분의 서평을 발견했는데,

고백하자면 보틀넥1/4도 못 가서 중도 포기했던 작품입니다.

안녕 요정역시 미스터리를 기대했던 탓에 중간에 좀 힘든 부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인데,

엔딩의 여운을 맛보고 나니 보틀넥에 다시 한 번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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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보는 눈
마이클 코리타 지음, 나동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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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숨은 강에 이어 다시 한 번 마이클 코리타의 기발한 상상력을 맛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오늘 밤 안녕을이나 밤을 탐하다가 일반적인 스릴러로 분류된다면,

사물을 보는 것만으로 거기에 깃든 사연이나 과거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데다

특별한 환각을 보게 되는 주인공이 등장한 숨은 강이나,

100여 년 전부터 켄터키 동부의 블레이드 릿지라는 외진 벌판에서 벌어진 기이한 현상과

그로부터 파생된 살인, 자살 등 수많은 죽음의 비밀을 쫓는 형사반장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호러와 미스터리가 절묘하게 결합된 독특한 초자연 스릴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 ●

 

진실 찾기를 맡은 것은 형사반장 케빈 킴블과 폐간된 신문의 베테랑 기자 로이 다머스입니다.

두 사람은 어느 날 외딴 산등성이에 등대를 세워놓은 괴짜 노인 와이엇의 전화를 받습니다.

강요된 자살을 암시하며 제대로 된 조사와 발표를 부탁한 그는 결국 자살체로 발견되는데

문제는 그의 등대에서 발견된 수많은 인물사진과 지도에 표기된 이름들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곧 지도 속 이름들과 사진 속 인물들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곤 충격에 빠집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살인, 자살, 사고에 가해자 또는 피해자로 연루됐던 인물들이며,

그 사건들은 100여 년 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산발적이긴 하지만

모두 블레이드 릿지라는 등대 주변 지역에서 캄캄한 밤에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살아남은 자들이 공통적으로 목격했다는 푸른 불꽃의 정체는 무엇인가?

외딴 산등성이의 등대에 적외선 조명까지 설치한 와이엇의 목적은 무엇인가?

살인자들의 공통점 치명적 사고를 당하고도 멀쩡히 살아남은 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왜 하필 외지고 버려진 땅 블레이드 릿지가 사건의 무대인가?

킴블과 로이는 탐문과 함께 블레이드 릿지의 역사까지 파헤치면서

상식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의 진상을 파헤칩니다.

 

● ● ●

 

결정적 키워드 하나만으로도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을 맥 빠지게 할 수 있는 탓에

자세한 줄거리는 물론 결정적인 사건조차 쉽게 언급하긴 어렵지만,

초자연 스릴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폭주하기에 딱 좋은 작품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혹시 그쪽 취향이 아닌 독자라도 블레이드 릿지에서 벌어진 기괴하고 특별한 사건들을 통해

충분히 매력적이고 긴장감 백배의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영웅의 서사, 즉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의 경로를 따라가는 작품은 아닙니다.

오히려 작품의 배경인 블레이드 릿지 만큼이나 어둡고 음습한 톤이 작품 내내 이어지고,

주인공 킴블의 개인사, 사랑, 미션, 위기는 하나같이 마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초자연 스릴러라고 하지만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묘사는 극히 단순하고 간결합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정말 그런 존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감나는 비현실감이 강렬하게 느껴집니다.

 

사실 유령, 귀신, 환각 등 비현실적인 설정이 스릴러라는 장르와 맞닿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이클 코리타는 독자들에게 이질감을 남겨주지 않습니다.

처음엔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하면서 위화감을 느끼다가도

어느 새 블레이드 릿지를 떠돌며 수많은 죽음을 초래한 비현실적인 존재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것은 단순히 글빨의 힘이라기보다는 빈틈없이 직조된 정교한 설계도의 힘 덕분입니다.

블레이드 릿지의 비극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다양한 캐릭터들,

100년도 훌쩍 넘은 과거 속에 묻혀있던 블레이드 릿지의 참혹한 사고들,

인간은 보지 못하는 것을 지켜보는 등대 주변 고양잇과 동물구조센터의 동물들,

그리고 사건과 사건, 가해자와 피해자를 이어주는 비극적인 인과관계 등

마이클 코리타는 비현실적 설정이 주축이 된 방대하고 복잡한 서사를

그 어떤 사실적인 작품보다 철저하고 빈틈없이 설계했습니다.

익숙한 서사에 멋진 반전 한두 개면 나름 독자들에게 먹힐 법도 한데,

마이클 코리타는 그야말로 일부러 가시밭길을 선택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워낙 소심해서(?) 영상으로는 공포물을 잘 못 보면서도 간혹 미드 슈퍼내추럴을 보곤 했는데

그 드라마의 팬이라면 아마 블레이드 릿지의 비극에 푹 빠져들 수 있을 거란 생각입니다.

슈퍼내추럴보다 조금 덜 무서울지는 몰라도,

이야기의 규모나 서사의 깊이, 비극의 무게감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슈퍼내추럴2시간짜리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이 정도 맛은 당연히 우러나겠지만요.^^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한 줄거리는 언급 못했는데,

이 서평만으로는 이 책을 읽어야할지 잘 모르겠다.”, 하는 분들은

인터넷 서점의 줄거리를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나름 스포성 내용이 있긴 하지만 알아도 무방한 정도라 괜찮습니다.

 

이 작품이 7,8월 한여름에 나왔더라면 좀더 분위기를 탔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함께

간혹 눈에 띄는 모호한 번역들이 옥의 티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국내 출간된 마이클 코리타의 네 작품이 모두 번역자가 달랐는데,

궁합이 잘 맞는 번역자가 있다면 한 분이 도맡아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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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럼 붉다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1
살라 시무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상처투성이 과거와 애정 없는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일부러 먼 지방으로 진학했고,

또래들의 허세와 어른 흉내에 질색하며 철저하게 투명인간처럼 살아가던 17살의 루미키.

그런 그녀가 철없는 세 친구로 인해 살인과 마약이 개입된 엄청난 사건에 휘말립니다.

누군가의 피로 물든 3만 유로를 무단으로 들고 와 제멋대로 나눠가진 현장을 목격하고 만 것.

루미키는 비밀을 지키겠다고 했지만 일은 그녀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때부터 루미키는 정체불명의 미행자에게 납치와 총격 등 무차별 공격을 받게 됩니다.

마음을 바꿔 3만 유로에 관련된 비밀을 파헤치기로 한 루미키는

차곡차곡 단서를 모으고, 역으로 미행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사건에 달려듭니다.

그리고 종국엔 범죄조직의 보스가 개최한 파티에 백설공주 차림으로 잠입하기에 이릅니다.

 

● ● ●

 

동화작가, 번역가, 서평가 등의 이력을 지닌 핀란드의 작가 살라 시무카가 집필한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의 첫 편입니다.

주인공인 루미키는 핀란드어로 백설공주를 뜻하는 이름을 가진 17세 소녀입니다.

하지만 이름과 달리 자기 나이의 두 배 이상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장한 루미키의 심신은

웬만한 어른 이상의 내공과 파괴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참혹한 폭력으로 물든 유년기와 청소년기 속에서 부모는 그저 침묵과 종속을 강요했고,

루미키는 조금씩 자신의 주위에 벽을 쌓으면서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아왔습니다.

결국 고등학교 진학과 동시에 가족을 떠나 자취를 시작한 루미키는

한겨울의 얼음수영과 격투기 수련으로 몸을 단련하고

스스로 정한 엄격한 좌우명에 충실함으로써 마음을 제어하면서

투명인간으로서의 삶을 충실하게 이행해왔습니다.

 

언뜻 보면 스티그 라르손이 창조해낸 살인기계 리스베트의 청소년 버전 같지만,

루미키는 어쩔 수 없는 17세 소녀의 면모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마음 속 깊이 불같은 사랑의 추억과 상처를 새겨놓았는가 하면,

자신의 좌우명 중 하나인 무난하게 살고 싶으면 참견하지 마라를 어겨가면서까지

위기에 빠진 사고뭉치 친구를 향한 연민 어린 마음을 감추지 못합니다.

물론 그런 여린 성격 때문에 무시무시한 범죄조직과 맞닥뜨리는 운명을 맞게 되지만요...

 

사건의 출발점부터 루미키의 행적 하나하나가 모두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정작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재미있는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야기 자체의 속도감이 워낙 뛰어나서

빠른 독자는 반나절이면 완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쉴 새 없이 벌어지는 사건들 속에 살짝살짝 거론되는 루미키의 불행한 과거사는

독자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는데,

작가는 정말 딱 필요한 만큼만 보여주곤

후속작 눈처럼 희다흑단처럼 검다에서 확인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작품 속에서 루미키의 뒤를 따라가다 보면 17세 소녀에게는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상황들,

즉 스파이 액션물 주인공조차 버거워할 만한 위기 상황을 잇달아 만나게 됩니다.

납치, 총격, 격투, 잠복, 위장 등...

물론 작가가 공들여 설정한 루미키의 캐릭터 덕분에 무난히 읽히긴 하지만

그래도 간혹 위화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실수를 수습하기 위해 등 떠밀 듯 친구를 사지로 보내놓고도

닌텐도 게임에 빠져 환호하고 있는 철없는 17살 친구들 캐릭터 때문에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루미키의 애어른다움이 위화감을 느끼게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니키타 또는 리스베트 급의 내공을 지닌 저 소녀가 정말 17살 맞아?”

 

현지 언론에선 그녀를 한 마리 늑대 같은 여주인공이라고 표현했다는데

그러기엔 루미키에게는 지워낼 수 없는 17살 소녀의 잔상이 많이 남아있는 편입니다.

두 편의 후속작에서도 여전히 17살 소녀로 등장할지, 아니면 세월이 좀 튈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루미키가 어떻게 진정한 한 마리 늑대로 성장하는지 찬찬히 지켜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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