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머리 사이클 - 청색 서번트와 헛소리꾼, Faust Novel 헛소리꾼 시리즈 1
니시오 이신 지음, 현정수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표지와 제목만큼이나 독특한 작품입니다.

사실 라노벨의 정의도 잘 모르고, 읽어본 작품도 거의 없다 보니

니시오 이신의 헛소리꾼 시리즈가 라노벨의 범주에 들어가는 작품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연쇄살인을 다루고 있는데다 어딘가 파격적인 냄새가 솔솔 풍긴 덕분에

중고서점에서 시리즈를 일괄 구매했습니다.

 

이야기 구도는 심플합니다.

절해고도 젖은 까마귀 깃섬으로 초대받은 천재들이 한 명씩 머리가 잘린 채 살해당하고,

독특한 캐릭터의 두 주인공, 쿠나기사와 이짱이 밀실살인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미스터리의 실체도 새롭거나 기발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고전에 가까운, 또는 요즘의 눈높이로 볼 땐 설마, 소리가 나올 만큼 진부합니다.

하지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심지어 에필로그마저 반전의 무대가 된다는 점이나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등장인물들의 판타지 같은 캐릭터,

심오한 듯 하지만 어딘가 허무한 헛소리처럼 들리는 죽음에 관한 철학적인 논쟁,

두 주인공의 숨겨진 과거사와 멜로 라인에 대한 작가의 감질 나는 떡밥 등

그동안 읽은 미스터리 작품들과는 다른 신선한 매력이 가득한 작품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나께서는~”, “나란 분은~”이라며 스스로를 극존칭하는 화법을 쓰고,

고작 19살이지만 한때 전 세계를 들썩였던 전설적인 해커 팀의 팀장이라는 이력을 지닌데다

코발트색 긴 머리를 휘날리는 기이한 외모의 천재소녀 쿠나기사 토모는

독자의 시선을 한꺼번에 휘어잡는 극강의 주인공으로 손색없는 인물입니다.

또한 쿠나기사의 보호자이자 작품의 화자인 헛소리꾼 이짱은

섬에 모인 천재들과 비교하자면 지극히 평범한 19살 소년에 불과하지만

여러 가지 비밀을 간직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으며

밀실살인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명탐정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 외, 재벌가에서 의절당한 후 이름도 독특한 젖은 까마귀 깃섬의 여주인으로 살아가며

수시로 천재들을 초대하여 여흥을 즐기는 아카가미 이리아,

여주인 이리아를 보필하는 음험한 기운이 느껴지는 네 명의 메이드,

그리고 그녀에게서 초대를 받은 5명의 여자 천재 등

개성을 넘어 신비함까지 느껴지는 등장인물 면면만으로도 재미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밀실의 트릭과 진범의 정체 등 사건 해결 과정은 딱히 특이하지 않지만

캐릭터의 힘만으로도 한 번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리게 만드는 힘을 가진 작품입니다.

다만, 이런 계열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독자에겐 니시오 이신의 천재성이 돋보이겠지만,

미스터리 고유의 힘과 정통 서사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전체적으로 가볍고 어딘가 짝퉁 같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삶과 죽음, 존재와 관계 등에 대한 장황한 철학적 묘사는

의도된 포장술이나 현학적 자만심의 구현으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저 역시 몇몇 대목에서 이런 아쉬움들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뭐가 진짜고, 뭐가 거짓인지... 누가 진짜고, 누가 거짓인지...”라는

후반부의 이짱의 독백을 읽으면서 내가 이해를 못한 게 아니라 이게 작가의 의도였군.’ 하며

스스로 안심(?)하며 자위하기도 했습니다.

 

앞선 서평들을 보니 호불호가 거의 극과 극으로 나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는 작품의 완성도보다는 취향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구매한 남은 시리즈들을 연이어 읽을 생각은 없지만

때로 간식처럼 색다른 이야기가 생각날 때면 한 편씩 차례대로 읽어볼 계획입니다.

중독성 강한 쿠나기사 토모와 이짱의 캐릭터, 또 이후 두 사람의 활약과

5년 전 그들이 겪은 사건이 궁금해서라도 그리 오래 미뤄 두진 못하겠지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롱 워크 밀리언셀러 클럽 143
스티븐 킹 지음, 송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체주의 국가가 된 가상의 미국에서 엄청난 경쟁을 통해 선발된 100명의 소년들이

1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무한정 걷고 또 걷는 서바이벌 게임 롱 워크에 참여합니다.

워커(Walker)라 불리는 그들은 먹는 것은 물론 용변과 잠까지 걸으면서 해결해야 합니다.

시속 6.5km 이하로 속도가 떨어지면 경고가 날아들고,

3번의 경고 이후에는 그들을 감시하는 군인들에게 즉시 총살당합니다.

걷기와 총살TV를 통해 전국에 중계되고, 거리는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권력자인 통령(統領)은 군중들의 환호 속에 워커들을 독려하며 독재의 카리스마를 발산합니다.

이 기상천외한 쇼 롱 워크에서 99명의 죽음 이후 홀로 살아남은 생존자는

평생 누구도 넘보지 못할 부와 명예를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 ● ●

 

누구나 배틀 로열’, ‘헝거 게임을 연상할 수 있는 익숙한 줄거리입니다.

두 작품 모두 적극적인 투쟁, 즉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살아남는 룰을 설정해놓았지만

롱 워크에는 게임 참여자들 간에 살인도, 투쟁도, 사건도 없습니다.

물론 며칠 동안 수백km의 고통스러운 걷기 속에 갈등도, 다툼도, 왕따도 존재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모인 집단이라면 반드시 존재할 법한 일상적인 수준에 불과합니다.

말하자면, 걷기만 잘 하면 우승할 수 있는, 하지만 잘 걷지 못하면 가차 없이 총살당하는,

10대 소년들에게는 아이러니하면서도 한없이 잔혹한 게임입니다.

 

이 작품에는 전체주의 독재국가의 일그러진 면모를 보이는 장치들이 다수 등장합니다.

뼛속까지 군인이며, 선글라스를 낀 채 부동자세로 세상을 내려다보는 권력자 통령’,

통령에게 열광하고, 워커들의 걷기와 총살에 환호하는 획일적으로 세뇌된 군중들,

무표정한 얼굴로 경고가 누적된 워커들에게 카빈소총을 발사하는 군인들,

권력의 명령에 거부하는 사람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론가 끌고 가는 비밀조직 등...

 

총살될 가능성인 99%인 무모한 걷기 게임에 참여한 워커들의 캐릭터와

전체주의 독재 권력이 빚어낸 공포심을 자극하는 장치들이 혼재되면서

이야기는 말 그대로 그로테스크한 외양을 띠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특별한 사건도, 반전도 없이

그저 100명의 소년들의 심리적 변화(자신감 또는 자만심, 후회, 공포 등)

그들이 나누는 대화, 갈등만으로 400여 페이지의 분량이 채워집니다.

 

이 작품의 가장 극단적인 설정은 롱 워크에 지원한 대부분의 소년들이

자신이 왜 이곳에서 목숨을 걸고 걷고 있는지 잘 모른다는 설정입니다.

각자 나름의 동기를 품곤 있지만, 그것이 진짜 동기인지 본인들도 확신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라는 체념은 그들보다 훨씬 더 나이가 먹은 중년들의 몫입니다.

이제 겨우 20년도 못 채운 소년들을 롱 워크로 등 떠민 것은 무엇일까요?

독자마다 다른 답이 나올 수도 있지만, 아마 일종의 광기가 아닐까요?

 

스티븐 킹이 리차드 바크만이라는 이름으로 이 작품을 집필한 것은 1966년이며,

당시 그의 나이는 롱 워크에 참가한 소년들과 비슷한 만 19세였습니다.

1960년대 후반은 미국 사회가 여러 가지 사건으로 극단적인 대립과 혼란을 겪던 시기입니다.

어쩌면 그는 10대만의 시선으로 미국 사회의 비극적인 단면을 그려낸 것일지도 모릅니다.

기성세대와 사회가 조장한 광기는 10대들이 소화하기엔 너무 버거운 것들이었고,

그들은 남은 삶을 무모한 도박에 걸 만큼 절박하거나, 패닉에 빠졌거나, 멍청했을 것입니다.

설령 목숨을 건 롱 워크에 자원하지 않았더라도

광기에 휘말린 10대들의 선택지는 마약에 절은 히피나 미래가 안 보이는 패배주의자,

아니면 잘 해야 반전 시위대의 끄트머리를 차지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수백km를 걸으며 몸과 정신이 피폐해지는 소년들을 지켜보는 것은,

, 한계에 부딪혀 쓰러진 채 카빈소총에 맞아 참혹하게 죽어가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은,

, 경쟁자가 줄어들수록 안심과 다행, 욕심과 공포가 교차하는 소년들을 지켜보는 것은

무척이나 고통스럽고, 어이없을 정도로 화가 나는 일입니다.

차라리 배틀 로열이나 헝거 게임처럼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남을 죽이는 이야기가

훨씬 더 마음 편하게 읽힐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롱 워크는 어쨌든 마무리가 됩니다.

살아남은 최후의 1인이 우승의 영예를 안고 브라스밴드의 연주와 군중들의 환호를 받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어떤 미래가 남게 될까요?

그가 걸은 수백km는 아마 그가 평생 바라보며 살아야 할 심연의 깊이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스티븐 킹이 독자에게 던진 화두 역시 그만큼의 깊이와 무게를 지니고 있는데,

특히 요즘의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감지되는 불편하고 부당한 기운들 때문에

더욱 그 깊이와 무게가 오래 전 바다 건너 남의 이야기처럼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좀 쓴 소리를 하자면...

솔직히 책읽기가 많이 힘들고 불편했습니다.

그것은 만 19세의 나이에 리차드 바크만이라는 이름으로 첫 장편을 쓴 스티븐 킹의

어딘가 정제되지 못한, 조금은 겉멋이 든 문장들 때문일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매끄럽지 못한데다 몇 번을 되읽어도 그 뜻을 알 수 없게 만든,

또한, 명백히 직역 또는 오역의 느낌을 줬던 번역자의 문장들 때문일 것입니다.

스티븐 킹의 작품을 좋아하면서도 아직 읽지 못한 작품이 훨씬 더 많은 편이지만,

지금껏 읽은 작품 중에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설정과 서사의 힘 때문에 이상한 문장들속에서도 작품 자체의 미덕은 맛볼 수 있었지만

스티븐 킹 특유의 디테일의 매력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제가 잘못 읽은 것일 수도 있으니, 다른 분들의 서평도 지속적으로 찾아볼 생각입니다.

출판사에서 선물로 받은 책이라 장점 위주의 서평으로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이 이야기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쓴 소리 몇 줄을 남겼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 초부터 문제 작가(?) 한강의 작품 출간순서대로 읽기를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당초 의욕만큼 성과를 못 내고 있던 중 갑자기 최신간인 소년이 온다를 먼저 읽게 됐습니다.

간혹 들러 책에 관한 정보와 서평을 얻곤 했던 파워블로거 정군 님의 포스트

분명 당신을 울게 만들 9권의 소설’(blog.naver.com/jmh5000/220476274242) 덕분인데,

제가 베스트로 꼽는 아사다 지로의 칼에 지다와 함께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문제의 9권 목록에 포함돼있었습니다.

 

솔직히 소년이 온다가 어떤 소재를 다룬 작품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한강의 소설이 날 분명 울게 만든다고?”라는 반항기 섞인 의문과 호기심 때문에

애초 출간 순서대로 그녀의 작품을 읽겠다는 계획을 무시하고 소년이 온다를 펼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작 눈물은 나지 않았습니다. 울먹함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대신,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던 분노의 형태와 냄새를 다시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 30년도 훌쩍 넘은 오늘날, 그저 불순하고 추악한 자들에게 정치적으로 이용되거나

상업적인 냄새까지 풍기는 듯한 그해 5월의 의미를 새삼 되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에필로그까지 7개의 챕터로 나뉜 이야기가 여러 화자에 의해 전개됩니다.

그 중심에는 당시 중학교 3학년생으로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했던 동호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동호와 함께 시민군으로 나섰던 대학생, 미싱사, 여고생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시간적 배경 역시 그해 5, 5년 후,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 등 다양하게 설정됐는데

그 덕분에 그해 5월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메시지가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광포한 계엄군이 저지른 그해 5월의 살육의 낮과 밤,

살아남은 자들이 겪은, 또 아직도 겪고 있는 슬픔과 치욕,

결코 지워지지 않을 화인(火印)과도 같은 분노와 자책이 아플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세상의 행과 불행을 미처 깨닫지도 못한 중학교 3학년생 동호가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도청에 남아 형들과 누나들과 함께 계엄군을 마주한 것은

그가 대단한 사상가라서도 아니고, 소위 학습된 전사여서도 아니고,

주적의 지령을 받은 조직화된 세력의 행동대원이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부당한 것에 대한, 옳지 못한 것에 대한 순수한 저항이 전부였을 뿐입니다.

 

미처 동호를 지켜주지 못한 채 저주받은 숙명처럼 광란의 거리에서 살아남은 형들과 누나들은

절대 벗어나지 못할 굴레와 짐짝을 떠안은 채 그날의 악몽 속에서 허우적댈 뿐입니다.

누군가는 뇌리에 남은 피투성이 시신들의 기억 때문에 고기를 먹지 못하는 것은 물론

불판 위에서 고기가 익어가는 순간조차 견뎌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허기를 느끼고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자신을 무한히 혐오합니다.

누군가는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결국 자신의 손으로 모든 걸 무너뜨려 다시 혼자가 되는 경로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끔찍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치유 불가능한 정신병자가 되어 사람을 죽일 뻔한 사람도 있고,

수도 없이 자살을 시도하고, 술과 수면제로 범벅이 돼야 불면에서 벗어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은 서로에게 의지하기도 했지만, 실상은 서로를 지우고 밀어내고 싶었습니다.

서로의 얼굴을 보면 그날의 기억들이, 그날 죽어간 자들의 얼굴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들이 속출했고,

그들 주변의 여전히 살아남은 자들은 또다시 분노하고, 절망하고, 자책합니다.

그렇게 30년이 넘게 흘렀지만, 치매에 걸린 노모조차 아들의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그해 5월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몇 년 전인가,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본 청소년들이 극장을 나서며,

정말 저런 일이 있었다고? 설마...”라고 말하더라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 역시 그저 불온한 책과 불온한 선배들을 통해 그해 5월을 겪은 게 전부지만,

그 청소년들의 반응은 한편으론 마음을 착잡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해 5월을 알게 해준 불온한 책가운데 황석영 선생이 집필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기록집이 있습니다.

그해 5월의 상세한 상황은 물론 사망자, 실종자 명단까지 수록된 방대한 저작입니다.

90년대에 들어 다섯 권으로 된 임철우의 대작 봄날이 출간됐고,

2000년대에는 화려한 휴가를 비롯해 그해 5월을 소재로 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텍스트들에 비해 소년이 온다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과거와 현재, 그날과 지금의 이야기를 함께 서술함으로써

그날의 싸움도, 그날의 상처도 여전히 진행 중임을 일깨운 점 때문입니다.

2014년에 한강이 새삼 중3 시민군 동호의 이야기를 쓴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입니다.

 

소년이 온다는 독자마다 다양한 느낌을 얻게 할 것입니다.

누군가는 돌아온 기억에 괴로워할 것이고,

누군가는 이 땅에서 벌어진 기막힌 살육에 놀라거나 의문을 표할 것입니다.

누군가는 새롭게 분노할 것이고, 누군가는 과거의 분노가 다시 치미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 어떤 누군가가 되더라도, ‘소년이 온다가 널리,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바랍니다.

그해 5월은 잊혀서도, 퇴색돼서도 안 될 시간이며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산이 부서진 남자 스토리콜렉터 36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현 옮김 / 북로드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의 제목 산산이 부서진 남자는 두 남자를 가리킵니다. 두 남자는 모두 사람의 마음을 상대하는 일을 합니다. 한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부순 끝에 참혹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반면, 또 한 사람은 부서진 사람의 마음을 이어 붙여 온기가 되돌아오게끔 도와줍니다.

임상심리학자 조 올로클린은 자신의 눈앞에서 알몸 상태로 강물에 몸을 던진 한 여인의 죽음이 자살이 아님을 확신합니다. 거칠지만 유능한 여경 베로니카, 퇴직한 런던경찰 빈센트와 함께 사건을 조사하던 조는 같은 패턴의 두 번째 희생자가 나오자 누군가 희생자들의 마음을 통제하여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고 확신합니다. 사소한 단서에서 진실을 추적하고 범인의 심리를 읽어내는 탁월한 재능을 지닌 조는 집요한 탐문과 분석 끝에 결정적인 단서를 알아내지만, 아무런 흔적도 안 남긴 범인을 찾는 일은 요원할 따름입니다. 문제는, 정작 조는 범인의 다음 목표가 자신임을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올해 들어 유독 상대의 마음을 통제하는 범죄자이야기를 많이 읽게 됐습니다. 저우하오후이의 사악한 최면술사’,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영혼파괴자등이 그것인데, 두 작품의 범인이 각각 최면과 각성혼수라는 특이한 능력을 통해 희생자를 장악했다면, ‘산산이 부서진 남자의 범인은 좀더 리얼하고 현실감 있는 방법으로 희생자를 농락합니다. 상대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 또는 상대의 가장 취약한 곳에 치명적인 덫을 숨겨놓고 사악함이 깃든 능수능란한 화법으로 상대의 마음을 산산이 부숴놓습니다. 결국 희생자는 가장 치욕적인 모습을 스스로 만천하에 내보인 채 죽음에 이르고 맙니다.

 

이렇듯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고 부수는 범인과 대결하는 조 올로클린은 임상심리학자이자 동시에 뛰어난 탐정의 재능을 가진 독특한 캐릭터입니다. 5년 전에는 살인사건에 말려들었다가 범인으로 몰리기까지 한 끝에 자신의 힘으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해낸 전력도 갖고 있습니다. 그는 경찰과는 반대로 피해자를 알아감으로써 용의자를 알아낸다는 지론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들 앞에서 순식간에 웃음거리로 전락할 수도 있는 치명적인 파킨슨병 때문에 그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으며, 아내 줄리안과의 보이지 않는 갈등도 점점 커질 뿐입니다. 특히 예전의 사건에서도 가족의 위기를 초래했던 조가 또다시 남의 사건에 끼어들려고 하자 아내 줄리안은 걱정을 넘어 조에게 원망까지 느끼게 됩니다. (‘산산이 부서진 남자조 올로클린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입니다. ‘예전 사건이란 건 아마도 앞의 두 편에서 다뤄진 사건을 뜻하는 것 같은데, 지금은 절판 상태지만 2005년에 출간된 용의자가 시리즈 첫 편이고, ‘The Drowning Man’이 두 번째 작품입니다.)

 

조에게 부여된 파킨슨병이라는 치명적인 핸디캡은 독자의 응원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큰 요소입니다. 자신의 핸디캡에 대한 저주와 체념, 그것이 가족들과의 관계에 미치는 크고 작은 영향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재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남을 위해 기꺼이 발휘하는 선한 사마리아인같은 조의 캐릭터와 활약에 대한 묘사는 기꺼이 응원해주고 싶은 그의 매력을 한껏 고조시켜 줍니다.

 

마음을 부수는 자마음을 봉합하는 자의 대결은 익숙한 액션스릴러의 서사를 따라가지만 동시에 고도의 심리전에 가깝기도 해서 그저 부수고 때리는단순한 액션물과는 차별되는 고급스런 면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조를 돕는 개성 넘치는 두 캐릭터 베로니카 경위와 퇴직경찰 빈센트, 또 첫 희생자의 딸이자 조를 추종하는 다아시, 조와의 갈등 때문에 괴로워하는 아내 줄리안 등 맛깔난 조연들의 활약도 만점이어서 6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마음먹고 달리면 하루면 마지막 페이지에 이를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아쉬운 점을 하나만 꼽자면, ‘마음을 부수는 자의 범행 동기가 좀 모호했다는 점 정도입니다. 산산이 부서진 그의 내면과 폭주하는 증오심이 충분히 설명됐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필 그녀들의 마음을 부수고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제 이해도가 떨어진 것일 수도 있지만) 조금은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럭저럭 연상을 통해 제 나름대로 결론을 내려 보긴 했지만, 그래도 작가의 설명을 통해 딱 떨어지는 명료한 결론을 얻지 못한 건 아쉬운 대목이었습니다.

 

마이클 로보텀은 처음 만난 작가지만 그의 시리즈가 대단한 성과를 냈다는 소문을 듣고 보니 이 작품을 시작으로 계속 후속작들이 출간될 것 같은 기대감이 듭니다. 파킨슨병에 걸린 심리학자가 이끄는 스릴러와 희로애락이 가득한 가족 서사가 잘 믹스된 조 올로클린 시리즈가 시장에서 좋은 결과를 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르센 뤼팽 대 헐록 숌즈 - 최신 원전 완역본 아르센 뤼팽 전집 2
모리스 르블랑 지음, 바른번역 옮김, 장경현.나혁진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전 추리소설의 마니아라면 대도 아르센 뤼팽과 명탐정 셜록 홈즈의 대결이라는 말만 들어도

누구나 가슴이 설레고 그 결과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영국과 프랑스라는 배경 역시 세기의 라이벌전을 더 뜨겁게 달구는 설정입니다.

본명 대신 헐록 숌즈와 윌슨이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변신해야 했던 셜록 홈즈와 왓슨은

두 편의 중편을 통해 아르센 뤼팽과 대결을 벌입니다.

 

첫 번째 사건인 금발 여인이 전형적인 대도 대 탐정의 대결을 그렸다면

두 번째 사건인 유대식 등잔은 도둑이면서도 로맨티스트인 뤼팽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뤼팽과 숌즈는 서로 엎치락뒤치락 하며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넣기도 하지만

예상 못한 방법으로 뒤통수를 맞기도 하면서 승부의 향방을 알 수 없게 만듭니다.

 

때론 서슴없이 폭력을 휘두르는가 하면,

상대의 자존심을 무참히 깎아내리는 야유 섞인 비아냥으로 치열한 설전을 벌이기도 합니다.

완벽한 밀실에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뤼팽 때문에 숌즈의 추리는 막다른 벽에 부딪히고,

갖은 위협과 따돌림에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자신의 뒤를 쫓는 숌즈 때문에

뤼팽은 두 번째로 체포될 위기에 처하는 등 대도와 탐정의 대결은 롤러코스터 그 자체입니다.

또한, 프랑스 경찰 가니마르 경감과 숌즈의 조수 윌슨은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듯

두 거장 사이에서 생고생만 거듭하며 안쓰러움과 웃음을 자아냅니다.

 

최고의 도둑과 최고의 탐정이라는 캐릭터만으로도 독자의 오감을 한껏 자극하고 있고,

반전과 트릭을 통해 고전 추리소설의 풍성한 맛을 전해주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소문난 잔치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모리스 르블랑이 그린 헐록 숌즈와 윌슨은

아무래도 베이커 가의 셜록 홈즈와 왓슨과는 여러 면에서 이질감이 느껴졌고,

대결의 무대가 된 사건의 해결과정이나 동원된 트릭은

거장들의 명성에 비해 많이 취약하거나 허술해보였습니다.

이야기의 진행도 비슷한 상황들이 반복돼서 그런지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전집 1편인 괴도 신사 아르센 뤼팽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잠시 스치듯 지나가면서

곧 벌어질 세기의 대결을 예고하는 장면이 훨씬 더 압도적인 긴장감을 줬다는 생각입니다.

어쩌면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 전에 읽은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기대를 너무 크게 가졌던 탓에 그만큼 실망이 커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에 이은 뤼팽 전집의 세 번째 작품 기암성

어릴 적 뤼팽과 홈즈에 빠져있을 때도 못 읽은 작품이라 더 기대가 됩니다.

스페셜 게스트 없이 자신만의 무대를 펼칠 뤼팽의 활약을 만나볼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