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티야의 여름
트리베니언 지음, 최필원 옮김 / 펄스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1914년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 젊은 의사 장 마르크 몽장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 카티야 트레빌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마을 사람들과 벽을 쌓은 채 살고 있는 그녀의 가족과도 인연을 맺게 된 몽장은

카티야에 대한 불같은 사랑을 키워가면서

동시에 어딘가 평범치 않은 카티야 가족들의 비밀에도 서서히 다가가게 됩니다.

자신과 카티야의 만남을 강하게 반대하는 쌍둥이 남동생,

세상과 절연한 채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지만 가벼운 치매기를 보이는 그녀의 아버지,

열정으로 가득 찬 듯 보이지만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카티야...

마을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카티야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몽장은 사랑을 키워가지만

결국 그가 마주하게 된 것은 카티야 가족의 엄청난 비밀과 비극적인 가족사입니다.

 

● ● ●

 

트리베니언의 이름은 여러 차례 들어봤어도 작품으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펄스에서 출간된데다 최필원 님께서 번역을 하셨고 작품 분류 역시 스릴러로 돼있어서

내심 스케일이 크거나 복잡다단한 사건들이 얽히는 스릴러 스토리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카티야의 여름은 그와는 거리가 먼 작품이었습니다.

굳이 유사한 톤의 작품을 꼽자면 넬레 노이하우스의 여름을 삼킨 소녀정도랄까요?

비극적인 결과가 예정된 로맨스, 비밀과 상처로 가득 찬 가족사,

충격적이지만 가슴 아픈 반전 등이 이야기의 주된 코드들입니다.

 

하지만 카티야의 여름은 그에 덧붙여 복잡한 심리극의 요소들을 더하고 있습니다.

작품 속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프로이트의 이론들은 그저 겉멋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스토리의 가장 중요한 토대 중 하나입니다.

외지인이라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카티야 가족들의 상황들이나

그런 분위기를 대변하는듯한 낡고 음산한 분위기의 저택,

꿈과 유령에 대한 지속적인 언급 등도 이 작품의 심리극적 특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후반부에 드러나는 카티야와 그녀 가족의 비극이 더욱 서늘하게 느껴지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가장 큰 뼈대는 25세 청년의 열정 가득한 로맨스입니다.

갖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카티야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는 몽장의 스토리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인지 카티야의 여름은 딱히 장르를 명명하기가 쉽지 않은 작품입니다.

심리학적 로맨스? 사이코 스릴러? 고딕 로맨스?

한 마디로 쉽게 구분 지을 수 있는 단순한 소설이 절대 아니다.

이 소설은 무척이나 로맨틱하며, 동시에 잔혹하다.”라는 출판사의 소개글도

아마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좀 억지이긴 하지만 심리 로맨스 스릴러정도가 적당한 분류가 아닐까 합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긴 분량은 아니지만 모든 비밀과 반전이 후반부에 쏠려 있어서

세고 독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겐 좀 심심하게 읽힐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심리극의 요소가 가미된 비극적 가족사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물 흐르듯 전개되는 스토리의 재미와 반전의 쾌감을 모두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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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죽이기 죽이기 시리즈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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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본 살인사건이 현실에서 그대로 재현된다면?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연쇄살인처럼 계속 이어진다면?

더구나 자신이 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받게 되고

정해진 시간 안에 진범을 찾지 못할 경우 꿈과 현실 모두에서 목숨을 잃을 상황에 처한다면?

그야말로 초난감한 상황입니다.

그나마 꿈속의 인물들이 현실에서도 그 모습 그대로 나와 준다면 금세 진범을 찾겠지만,

만일 꿈속의 인물들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캐릭터들이라면 문제는 정말 심각해지겠죠.

 

대학원생 아리는 자신의 꿈속에서 앨리스로 등장합니다.

꿈속에서 연쇄살인범으로 몰린 앨리스는 현실에서도 똑같은 상황에 처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마침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이모리(꿈속의 도마뱀 빌’)의 도움을 받게 된 아리(앨리스)

꿈과 현실 두 세계를 오가며 진범 찾기에 나섭니다.

 

하지만 꿈에 등장하는 다른 캐릭터들이 현실 속의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없습니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캐릭터 그대로 괴팍하거나 엉뚱하거나 4차원을 헤매고 있어서

도저히 현실 속의 누구인지 판명해낼 수가 없습니다.

아리는 이모리와 함께 사건 관련자들을 하나씩 체크하며 꿈과 현실의 캐릭터들을 맞춰봅니다.

그와 동시에 정해진 시간 안에 꿈과 현실을 오가며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려 합니다.

 

엄청난 상상력과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구성이 필요한 이런 스토리를

작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상시키는 특유의 언어유희와 캐릭터 플레이를 통해

맛깔나게 풀어냅니다. (때론 복잡하고 어지럽기도 하지만요..^^)

얄미울 정도로 냉소적이다가도 한편의 재미난 만담처럼 급변하는 꿈속의 분위기와

정해진 시간 안에 연쇄살인의 진범을 찾아내야만 하는 긴장감 넘치는 현실의 분위기가

적절한 타이밍마다 챕터를 바꿔가며 독자의 마음을 휘어잡습니다.

 

사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아주 오래 전 동화 버전으로 읽은 기억밖에 없어서

앨리스 죽이기를 읽기 전에 다시 한 번 읽어봐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론 굳이 재독 없이도 술술 읽히긴 했지만

아무래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캐릭터와 사건들을 머릿속에 담고 있었다면

앨리스 죽이기역시 좀더 재미있게 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는 작품입니다.

특유의 언어유희가 때론 말장난 같아서 약간의 짜증을 유발하기도 하고,

어떤 대목에서는 구성의 무리수가 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판타지가 끼어든 미스터리를 싫어하는 독자들에겐 쉽게 읽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의외의 간식이라고 편하게 생각하고 접한다면

이런 재미를 맛보기가 쉽지 않다는 의외의 만족을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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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잠 밀리언셀러 클럽 145
가노 료이치 지음, 엄정윤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사진작가 다쓰미 쇼이치는 폐허가 된 호텔 촬영을 위해 쇠락한 소도시 다카하마를 찾았다가

공항건설 반대모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던 한 여성 저널리스트의 시체를 발견합니다.

본의 아니게 사건에 휘말린 다쓰미는 과거 잠시 탐정 일을 했던 경험을 발휘하여

현지 신문기자이자 피해자의 남편인 안비루와 함께 진상 파악에 나섭니다.

하지만 공항건설을 둘러싼 찬반파의 갈등으로만 보이던 사건은 캐면 캘수록 복잡해졌는데,

폐쇄적인 소도시 특유의 복잡한 인간관계와 속내를 알 수 없는 관련 인물들의 태도는 물론,

살인사건과 연관 있는 것으로 보이는 5년 전의 호텔 방화사건, 조직폭력단의 은밀한 개입 등

사건의 외연을 키우는 변수들이 시간이 갈수록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기 때문입니다.

다쓰미의 조사가 장벽에 막혀 지지부진할 무렵,

또 다른 희생자들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소도시 다카하마는 패닉에 빠집니다.

 

● ● ●

 

환상의 여자이후 거의 1년 만에 다시 만난 가노 료이치의 작품입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두 작품은 비슷한 얼개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문가가 아닌 주인공(변호사, 사진작가)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가 하면,

폐쇄적이고 쇠락한 소도시의 개발 과정에서 벌어진 비극을 다루고 있으며,

과거의 사건이 마치 나비 효과처럼 현재의 사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때 화려한 시절을 보냈지만 이젠 곳곳에 폐허만 남은 바닷가의 소도시에서

유년기부터 함께 성장해온 주민들은 공항건설 계획을 둘러싸고 극단적으로 대립합니다.

이들은 복잡한 애증 관계로 얽혀있지만 동시에 비밀을 공유한 사이이기도 합니다.

다쓰미는 공항건설을 둘러싼 주민들 간의 갈등에 주목하면서도

5년 전에 벌어진 의문의 호텔방화사건이 사건해결의 열쇠라고 확신하지만

소도시 주민 누구도 그에게 당시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설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비밀은 치명적인 힘을 갖고 있고, 그것이 공개되는 순간 공동체는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다쓰미처럼 외부인이 아니라면 누구도 사건해결에 앞장 설 상황이 아닙니다.

하지만 동시에 누구도 외부인 다쓰미에게 소도시의 비밀을 쉽게 털어놓지 않습니다.

 

창백한 잠이 독자를 끝까지 긴장하게 만드는 가장 큰 힘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미스터리도 미스터리지만 가노 료이치는 폐쇄적인 소도시 특유의 분위기,

즉 피가 섞이지 않았을 뿐 가족이나 다름없는 소도시 주민들 사이의 애증과 시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다치게 할 수 있는 비밀을 공유하는 일그러진 유대감 등을

살인, 실종, 폭력이라는 극단적인 사건 속에 잘 녹여내고 있습니다.

위험을 무릅쓴 다쓰미의 탐문이 밝혀낸 사건의 진상 역시

이런 다카하마의 특별한 분위기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앞서 환상의 여자와 비슷한 얼개를 지녔다고 언급했는데,

공교롭게도 아쉬운 점 역시 비슷한 이유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가노 료이치는 다쓰미의 개인사, 즉 일찌감치 붕괴된 가족의 트라우마를 비중 있게 다루는데

이 대목을 다카하마에서 벌어진 사건이나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연결 짓는 과정에서

조금은 무리하게, 또 약간은 과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사건에 휘말린 다쓰미의 심리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그의 개인사를 소개한 것인데

굳이 그러지 않았어도 충분히 이야기를 끌고 갈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환상의 여자에서는 주인공의 개인사가 지나치게 많은 분량을 차지했던 것이 아쉬웠는데,

창백한 잠은 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짧은 분량이라 크게 거슬리진 않았습니다.)

 

또 한 가지는 주인공의 천재적이고 비약적인 추리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 부분입니다.

환상의 여자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때 서평을 인용하면,

독자들이 따라잡기에는 무리일 정도로 스모토의 추리가 폭주합니다.

한 장의 사진과 한 줄의 진술을 통해 진상을 알 것 같다.”는 모습이 종종 나오는데

충분한 단서나 개연성이 제공되지 않은 채 방대한 진실을 설명하는 스모토의 추리는

몇 번을 되읽어도 왜 저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이해하기 힘들 만큼 홀로 앞서갑니다.

 

다쓰미 역시 비슷한 경로를 밟습니다.

물론 작가는 다쓰미가 어떤 근거로 그런 추리에 이르렀는지 부연 설명을 해주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 입장에서 충분히 납득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잠시 탐정 일을 경험했을 뿐, 본업은 사진작가라는 다쓰미가

어지간한 명탐정보다 더 뛰어나게 느껴진 것은 저만의 경험은 아닐 것입니다.

 

가노 료이치의 가장 큰 미덕은 도저히 풀 수 없어 보이는 복잡한 실타래를

주인공이 끈질기고 집요하게 한 가닥씩 풀어가도록 정교하게 설계했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의 폭주와 비약만 아니라면 그 정교한 설계에 여러 번 놀라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늘 아쉬움이 남으면서도 그의 작품을 기다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회파 미스터리를 연상시키는 설정 속에 개인의 욕망을 녹여내는 가노 료이치의 공식이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형식과 스토리로 발휘될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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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로키언
그레이엄 무어 지음, 이재경 옮김 / 비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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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10년 뉴욕. 해럴드 화이트는 젊은 나이에 셜로키언 모임 중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베이커 스트리트 이레귤러스에 가입합니다.

하지만 가입의 기쁨도 잠시, 해럴드는 의문의 살인사건에 휘말립니다.

피살자는 홈스의 최고 권위자로 다음 날 코난 도일의 사라진 일기를 발표할 예정이었습니다.

사라진 190010월부터 3개월간의 일기는 셜로키언 모두에게 성배와도 같은 존재인데,

이 시기를 전후하여 코난 도일과 셜록 홈스에게 극적인 변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럴드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살인사건을 해결하고 사라진 일기를 찾고자 분투합니다.

 

7년 전인 1893, 허구의 캐릭터임에도 마치 실존 인물처럼 사랑받고 추앙받는 것은 물론

창조주인 자신을 능가하는 존재감에 질려 소설 속에서 셜록 홈스를 죽게 만든코난 도일은

이후 새로운 주인공을 만들고,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작품에 매진해왔습니다.

190010월 어느 날, 익명의 발신자가 보낸 소포 폭탄을 받은 코난 도일은

런던 경찰을 찾아가지만 그들의 무능함에 질려 직접 사건 해결에 나섭니다.

하지만 사건은 점차 커져 연쇄살인사건으로 확대되고 코난 도일은 용의자로 몰리기도 합니다.

그로부터 3개월 간 코난 도일은 숱한 위기를 겪으며 사건의 진상을 파헤칩니다.

100년 후 셜로키언들의 성배가 된 사라진 일기에는 이 3개월 동안의 일이 담겨 있습니다.

 

● ● ●

 

뭐랄까.. “, 이 작가는 정말 뼛속까지 셜로키언이구나..”라는 느낌이랄까요?

셜록 홈스는 물론 그들을 창조해낸 아서 코난 도일과 그 주변 인물들에 관한 방대한 정보를

엄청난 상상력과 필력을 통해 거대한 팩션으로 빚어낸 작가의 광기가 느껴질 정도입니다.

 

(많이는 아니지만) 그동안 읽은 셜록 홈스 또는 셜로키언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대체로 직설적인 방법, 즉 셜록 홈스의 냄새가 너무 강하거나, 거의 그대로 인용하거나,

심지어 분위기만 모사한 1차원적인 서사를 택해왔다면,

셜로키언은 셜록 홈스와 코난 도일에 관한 모든 것을 펄펄 끓는 솥에서 제대로 우려낸 뒤

그것들을 재료 삼아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낸, 말하자면, 차원이 다른 작품입니다.

 

자신이 창조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존재감을 지워버릴 정도로 유명해진 것은 물론

더 이상 통제 불가능한 괴물이 돼버린 셜록 홈스를 증오한 나머지

소설 속에서 그의 최후를 그린 뒤 희희낙락하는 코난 도일의 모습은 신선하고 충격적입니다.

홈스의 죽음에 경악한 런던 시민과 언론의 격한 반발을 겪으며 혼쭐이 난 코난 도일이

우연한 계기로 연쇄살인사건의 탐정 노릇을 하게 된 설정도 재미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창조한 셜록 홈스를 흉내 내며 사건의 진상을 찾는 에피소드들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재미와 함께 긴장감까지 담뿍 담아내고 있습니다.

특히 셜록 홈스의 지적이고 논리적이지만 냉소적이면서 이기적이고 여성적(?)인 성격이

실은 창조주인 코난 도일의 유전자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여러 번 느낄 수 있습니다.

 

2010, 뉴욕과 런던을 무대로 셜록 홈스에 빙의된 채 살인사건을 쫓는 해럴드 화이트는

셜로키언의 전형을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이 상황에서 셜록 홈스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끊임없이 자문하며

현대의 기술을 이용한 과학수사보다는 아날로그 식 탐정 역할을 자처합니다.

성격은 정반대지만 사건에 임하는 자세나 논리적인 추리 능력은 셜록 홈스 그 자체입니다.

 

코난 도일과 해럴드 화이트 못잖게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두 명의 왓슨’, 즉 브램 스토커와 세라라는 캐릭터입니다.

소설 드라큘라의 작가이자 코난 도일의 절친인 브램 스토커는

폭주하는 코난 도일을 적절히 통제하는가 하면 사건 해결에 결정적 공을 세우기도 합니다.

그에 반해 어딘가 의뭉스러운 해럴드의 왓슨세라는

위기에 빠진 해럴드를 여러 번 구해주지만 정작 속내를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여인입니다.

100년의 시차를 둔 채 활약하는 두 쌍의 셜록 홈스-왓슨

그 캐릭터만으로도 독자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인물들임에 분명합니다.

 

한 챕터씩 번갈아가며 두 명의 셜록 홈스가 펼치는 추리의 향연은

작가의 정교한 설계도 위에서 기가 막히게 맞물리며 전개됩니다.

해럴드의 챕터가 살인사건의 계기가 된 사라진 코난 도일의 일기를 찾는 이야기라면,

코난 도일의 챕터는 바로 그 일기의 내용인 셈인데,

한 번의 엇박자도 없이 나란히 달려가는 에피소드들을 읽다 보면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너무 궁금해져 도저히 중간에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습니다.

가능하다면 주말에 날을 잡아 한 번에 완독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사건이나 캐릭터 못잖게 작가가 공들여 묘사한 것은 1900년 런던의 모습과 정서입니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급격한 변동을 겪고 있는 어수선한 런던의 풍광이 있는가 하면,

희미한 가스등에 의존한 채 고유의 낭만을 발산하는 근대의 모습이 애잔하게 그려집니다.

새로운 세기가 열리고, 낯선 문명이 전광석화처럼 일상을 잠식하는 와중에도

런던은 시간이 가도 죽지 않는, 한갓 모더니티가 죽일 수 없는, 그 세기만의 힘을 지닌 채

두 시대의 뒤섞임을 당당하면서도 차분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셜로키언은 여타의 작품들과 달리

독자로 하여금 셜록 홈스와 그의 시대를 그립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읽다 보면 문득문득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픽션인지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워낙 극적이면서도 리얼한 상황이 자주 등장하는데

사실과 픽션의 경계가 무척 모호하다보니 수시로 그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굳이 검색하거나 알려고 들 필요 없이 그냥 즐기면서 읽으면 됩니다.

그래야 이 작품의 묘미를 더욱 진하게 만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궁금한 독자는 책 말미의 작가의 말에서 사실과 픽션의 경계를 설명해주고 있으니

소설의 마지막 장까지 다 읽은 후에 천천히 확인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셜록 홈스라면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던 오만을 단칼에 날려버리는 책이라는 찬사는

약간의 과장이 섞이긴 했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셜로키언을 소재로 한 작품에 다소 실망했던 독자라도

그레이엄 무어의 셜로키언이라면 그동안의 실망과 갈증을 모두 보상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또 다른 셜로키언을 기대하는 것은 저만의 바람은 아닐 것입니다.

출판사의 책 소개 중 이 작품을 함축적으로 잘 표현한 대목을 인용하며 글을 마칠까 합니다.

 

셜록 홈스의 창조자계승자의 구도를 이루는 듯 나란히 늘어선 두 이야기는

100년의 간극을 지닌 주인공들이 각기 홈스의 의미를 되새기며 막을 내린다.

창조자는 한때 홈스를 증오했지만 결국 자신의 일부이기도 한 그를 인정하게 되고,

계승자는 자기 삶에서 홈스가 지닌 가치와 의의에 대해 깨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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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케어
하마나카 아키 지음, 권일영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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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명의 노인을 살해한 <>4년의 재판 끝에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희대의 연쇄살인마임에도 불구하고 법정 안팎의 분위기는 사뭇 특이합니다.

<>에게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 중 일부는, 아니, 대다수는 <>를 증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의 살인을 구원으로 받아들이는 유가족도 있습니다.

 

이야기는 4년 전으로 돌아가, <>가 오랜 기간에 걸쳐 저지른 연쇄살인,

일명 로스트 케어 사건의 전말을 여러 인물의 시각을 통해 세세히 묘사합니다.

<>는 과연 무기력한 노인들을 상대로 살인을 즐긴 사이코패스였는가?

<>가 수십 명의 노인을 살해한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를 기소한 검사도, <>에게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도 <>를 증오하지 않는가?

 

● ● ●

 

수십억의 돈으로 고급 실버타운에서 극진한 서비스를 받는 노인이 있는가 하면,

자식의 전 재산을 탕진시키고도 병과 노화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노인이 있습니다.

엄청난 돈을 들여 부모를 안전지대에 모셔놓곤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는 자식이 있는가 하면,

병들고 치매에 걸린 부모를 돌보는 하루하루가 지옥 그 자체인 자식이 있습니다.

국가는 오래 전부터 이런 상황을 예측했음에도 불구하고

별 쓸모없는 시스템을 만들기만 했을 뿐 참담한 현실은 개인의 문제로 떠넘겨왔습니다.

병든 부모를 모시는 일이 더 이상 미풍양속이 아닌 고통스런 참극이 된 현실에서

<>는 죽음을 통해 부모와 자식 양쪽을 모두 구원하는 길에 나섭니다.

과연 누가 <>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번역자인 권일영 님은 이 소설을 옮기며 전체적으로 느낀 것은 절망입니다.”라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아마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생로병사 현상이 이 참극의 배경이라는 점,

, 누구나 가해자도 될 수 있고, ‘피해자도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인 것 같습니다.

, 지금은 병든 부모 때문에 고통 받는 자식의 입장이지만,

언젠가는 스스로가 자식에게 고통을 줄 병든 부모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공포에 가까운 절망감 그 자체란 뜻입니다.

 

과거와 달리 현대는 장수(長壽)가 더 이상 축하할 일도, 축하받을 일도 아닌 세상입니다.

초고령사회의 부작용은 장수 선진국 일본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낯익은 현상입니다.

로스트 케어는 그런 부작용 가운데 실제로 현실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비극을 그립니다.

 

로스트 케어는 노인 연쇄살인을 다룬 미스터리이면서

동시에 정면으로 초고령사회의 문제를 제기하는 다큐멘터리의 미덕을 갖추고 있습니다.

앞서 발간된 침묵의 절규를 통해 초호황기와 버블시대, 동일본 대지진 등을 거치며

불행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삶을 살았던 한 여자의 일생을 비판적으로 그렸던 작가답게

하마나카 아키는 로스트 케어를 통해 일본 사회의 또 다른 그늘진 단면을 진단합니다.

 

이야기의 큰 얼개를 초반부터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는 점이나

약간은 목적극의 냄새가 풍기는 점, 또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인공적인 캐릭터의 설정은

다소 아쉬운 대목이긴 합니다.

때문에 침묵의 절규에 비해 미스터리의 밀도나 반전의 충격은 느슨한 것은 사실이지만,

피부에 와 닿는 리얼리티만큼은 압도적인 작품임에 분명합니다.

지금 당장 <>가 현실에 나타난다고 해도 전혀 놀랄 것 같지 않을 정도로

하마나카 아키가 그려낸 지옥은 생생하고 사실적이기 때문입니다.

 

사족으로..

비슷한 소재지만 좀더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픽션을 읽고 싶은 독자라면

가난한 나라로 전락한 2030년대의 일본을 배경으로 초고령사회의 문제를 파격적으로 그린

소네 케이스케의 결국에...’ (단편집 열대야에 수록)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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