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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의 집 ㅣ 스토리콜렉터 33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5년 7월
평점 :
엉터리 오역일지도 모르지만
‘어느 집에도 무서운 것은 있다’ 정도로 번역되는 원제 (どこの家にも怖いものはいる)대로
이 작품에는 ‘무서운 것이 존재하는’ 5개의 집이 등장합니다.
각각의 집에는 이성적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서로 다른 괴이 현상과 그 주체가 등장합니다.
2000년 전후, 새로 지은 단독주택의 벽지 속에 존재하는 괴존재,
1930년대, 인적 없는 외딴 대저택에서 목격된, 아이들만 납치한다는 여인 와레온나,
1970년대 말, 밤마다 연립주택 지붕을 기거나 날뛰는 괴노파 또는 비어있는 옆집의 주민,
1990년대, 사이비종교의 근거지인 단독주택을 장악한 마력의 코우시 님,
그리고 메이지 말기, 지방 유력자의 집안에서 태어난 일종의 초능력자 요치 등
공포를 자아내는 괴이 현상과 괴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일기, 속기록, 체험담 등 다양한 형식으로 펼쳐집니다.
‘괴담의 집’은 앞서 출간된 미쓰다 신조의 호러물의 총집합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내용이나 분위기, 소품이나 도구, 괴이 현상과 괴존재 등 거의 전 분야에서
‘노조키메’는 물론 ‘사관장’과 ‘백사당’을 비롯한 ‘작가 3부작’의 향기가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나’ 미쓰다 신조는 팬이자 편집자인 미마사카 슈조를 통해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어쩐지 비슷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는’ 두 가지 괴담을 접합니다.
이후 미마사카로부터 두 개의 괴담을 더 받아보게 되는 한편,
스스로 앞의 괴담들과 비슷한 느낌을 발산하는 한 개의 괴담을 찾아냅니다.
모두 5개의 괴담이 차례로 전개되는 가운데,
미쓰다 신조와 미마사카 슈조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막간에 등장하여
5개의 괴담 사이의 비슷한 점, 그러니까, 시간이든 장소든, 괴이 현상이든 괴존재든,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유사한 공포를 자아내는 공통점을 찾기 위해 토론을 벌입니다.
미쓰다 신조는 전작인 ‘노조키메’ 프롤로그에서 이런 언급을 한 적이 있습니다.
“혹시 이 책을 읽는 중에 평소에는 느끼지 않을 시선을 빈번하게 느끼게 된다면,
거기서 이 책을 덮기를 권합니다. 단순한 기분 탓이겠지만, 만일을 위해서입니다.”
이번에는 ‘소리’에 조심하라는 충고를 미리 던져줍니다.
“읽는 동안 들은 적 없는 기묘한 소리가 들리면 일단 이 책을 덮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독자를 위한 작가의 서비스임을 알면서도, 마냥 무시하지만은 못할 섬뜩한 경고입니다.
미쓰다 신조의 ‘사관장’과 ‘백사당’을 읽은 지 얼마 안돼서 그렇겠지만,
소리로 전해지는 공포는 누군가의 엿보는 시선보다 더욱 두렵게 느껴졌고,
괴담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의성어들은 환청처럼 귓가에서 맴돌기도 했습니다.
미쓰다 신조와 미마사카 슈조는 괴담 애호가이자 수집가로서
자신들의 촉이 지시한대로 5개의 괴담 사이의 공통점, 유사점을 캐내려 애씁니다.
하지만 애초의 직감과는 달리 공통점이나 유사점은 좀처럼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미쓰다 신조 식 ‘호러+미스터리 하이브리드 서사’가 등장합니다.
미쓰다 신조는 방대한 자료조사와 탐문을 통해 5개의 괴담을 꿰뚫는 공통점을 찾아냅니다.
하지만, 충분한 개연성을 갖췄음에도, 이 결론 역시 일정부분은 추론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고,
앞선 작품들에서처럼 이야기는 깔끔한 엔딩 없이 ‘호러 그 자체’로 마무리됩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른 뒤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애매하고 기분 나쁜(?) 엔딩이 있을 뿐입니다.
여기에서 미쓰다 신조 호러물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데,
저의 경우, 공포나 호러 취향이 아님에도 이상하게 미쓰다 신조의 작품에는 끌리는 편입니다.
오히려 깔끔한 엔딩이 아니라서 더 매력적이고,
호러 그 자체로서 마무리된 이야기라 오랫동안 기억에 남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앞선 출간작들에서는 대부분 별 4~5개 정도의 만족감을 느끼곤 했는데...
이번 ‘괴담의 집’만큼은 상대적으로 아쉬움을 많이 느낀 작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공포심을 유발하는 힘이 ‘노조키메’나 ‘사관장’, ‘백사당’에 비해 약했던 탓도 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비슷한 톤과 소재의 작품이 잇달아 출간된 것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특히 ‘괴담의 집’과 ‘노조키메’ 사이의 유사성은 새로운 괴담을 기대했던 그의 팬들에게는
무척 아쉽게 느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때론 작품 간의 유사성이 매력의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너무 자주, 과하게 반복되다 보니 아무래도 피로도가 높아졌다고 할까요?
여전히 그의 괴담이라면 다른 작품들보다 먼저 구해보고 싶어지겠지만,
다음에는 적어도 ‘노조키메’의 그림자에서는 벗어난 소재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사족으로...
작품 내내 미쓰다 신조는 다른 작품들의 집필 경위를 설명하곤 하는데,
특히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 중 하나인 도조 겐야 시리즈의 미출간작
‘유녀(幽女)처럼 원망하는 것’에 대해 기획부터 완성까지 꽤 자주 언급한 부분을 보면서
(비록 국내 출판사는 다르지만) 하루라도 빨리 국내에 소개되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