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신자 매드 픽션 클럽
카린 포숨 지음, 최필원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노르웨이의 소도시에서 잇달아 괴사건이 벌어집니다.

피범벅이 된 아기가 발견되고,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의 부고 기사가 나는가 하면,

거짓 사고 전화가 빈발하고, 우리를 벗어난 사냥개가 소년을 습격하기도 합니다.

노형사 세예르는 악의로 가득 찬 일련의 괴사건을 쫓으면서

고요한 숲으로 둘러싸인 소도시가 순식간에 공포로 휩싸이고,

평화롭기만 하던 가족들의 일상이 참혹하게 붕괴되는 참상을 목격합니다.

 

● ● ●

 

원제도 ‘The Caller’이고 번역제목 역시 발신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에 딱 어울리는 제목은 악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피가 튀는 참혹한 연쇄살인도 없고, 복잡하고 이리저리 꼬인 미스터리도 없는데다

작가는 처음부터 범인과 범행수법을 있는 그대로 독자에게 보여줍니다.

범행수법이란 것도 직접적인 위해와는 거리가 먼 장난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너무나 사실적이고 피부에 와 닿는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내가 연쇄살인마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은 로또에 당첨될 가능성보다 낮겠지만,

거짓 전화나 악의 섞인 장난의 대상이 될 가능성은 그보다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결코 장난의 수준에 머물지 않고 평생의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설령 그것이 금세 거짓이나 장난으로 판명난다 하더라도

누군가로부터 너의 아이를 유괴했다.”는 협박전화를 받은 일이 있다면,

아이의 부모는 (적어도 한동안은) 아이에 대한 걱정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이런 사태를 몰고 온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하다가 기어이 파국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발신자는 이런 악의로 가득 찬 장난이 초래한 수많은 파국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피범벅이 된 아기가 발견된 첫 사건 이후

범인의 장난은 갈수록 사소해지고 유치해지지만 체감 공포는 오히려 높아진다는 점입니다.

이런 하찮은(?) 범인이 자아낸 공포심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범인의 장난에 걸려든 가족들이 충격과 패닉을 거쳐 파국에 이르는 과정을

마치 심리소설의 한 대목처럼 디테일하게 그려낸 작가의 필력 덕분일 것입니다.

번역하신 최필원 님도 후기를 통해 이런 분위기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잔잔하고 밋밋한 느낌이지만 그 안에는 언제라도 폭발할 수 있는

강렬한 기운이 도사리고 있다. 시한폭탄을 품고 독서하는 기분이랄까.

 

작가가 창조한 범인은 소시오패스의 전형적인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살의와 증오의 대상일 뿐인 불행한 가족의 역사,

유년기부터 시작된 또래로부터의 소외와 고립,

오토바이, 애완동물, 병든 할아버지에 대한 비정상적이고 집착에 가까운 애정 등...

희생자를 선택하는 기준 역시 때론 시기와 질투심에 의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무작위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제멋대로입니다.

이런 전형적인 특징을 갖춘 소시오패스라면 당연히 피와 살이 튀는 범죄가 연상되지만,

작가는 그에게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평범한 장난을 저지르게 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예전엔 겪어보지 못한 역설적인 공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바글거리는 세상이 좋았다. 바람에 펄럭이는 새하얀 옷들과 페인트 냄새.

좋은 만큼 다 망쳐놓고 싶었다.

모두가 벼랑 끝에 서있어. 그는 생각했다.

내가 다 떠밀어버릴 거야.

 

카린 포숨과 처음 만났던 야간시력이라는 작품 역시

내게 여자가 있다면..”을 끊임없이 되뇌며 사랑을 갈구하는 특이한 사이코패스 릭토르의

불안정한 심리와 기이한 행동들을 느린 속도로 그려낸 독특한 작품이었습니다.

발신자는 카린 포숨의 대표 캐릭터인 세예르 형사가 등장한다고 해서

스릴러의 성격이 강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그에 덧붙여 독특한 심리물의 장점도 잘 살아있어

노르웨이 스릴러의 여왕'이라는 그녀의 명성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습니다.

다만, 정통 스릴러를 원하는 독자에겐 양념이 좀 덜 된 느낌이 들 수도 있는 작품입니다.

혹시 야간시력을 조금 어렵게 읽은 독자라도,

그래서 카린 포숨의 명성에 약간이나마 의문을 가졌던 독자라면

발신자를 통해 어느 정도는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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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최면술사 형사 뤄페이 시리즈
저우하오후이 지음, 허유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최고의 최면술사 링밍딩은 총회를 통해 최면술을 심리치료에 이용하려는 포부를 갖고 있지만

그의 이론과 권위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총회를 무산시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합니다.

때마침 일어난 변사 사건이 자신의 소행이라 주장하는 자가 스스로 최면술사라 칭하면서

링밍딩이 주최하는 최면술사 총회에 참석하겠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립니다.

룽저우 공안국 형사대장 뤄페이는 링밍딩과 함께 총회반대세력이자 변사사건의 범인을 쫓지만

용의자는 오히려 뤄페이와 경찰들을 최면에 빠뜨리며 유유히 자취를 감춥니다.

뤄페이는 링밍딩과 반대세력의 갈등이 시작된 오래 전의 사건은 물론

링밍딩의 제자가 연루된 최근의 살인사건들까지 파헤친 끝에 유력한 용의자를 특정하지만,

아무런 단서도,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오히려 그가 파놓은 함정에 빠지고 맙니다.

 

● ● ●

 

최면은 모든 범죄자들이 꿈꾸는 궁극의 방법이 아닐까요?

상대를 무력하게 만들어 마음대로 요리할 수도 있고, 자살에 이르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증오하는 사람끼리 싸움을 붙여 소위 일타쌍피를 건질 수도 있고,

집단 간의 충돌을 일으켜 수십, 수백의 목숨을 한 번에 빼앗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심증만 있을 뿐, 기소에 필요한 아무런 단서나 증거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범인 입장에선 아주 손쉽게 완전 범죄를 완성할 수 있게 됩니다.

이쯤 되면 최면은 그야말로 지구상 최고의 살상무기인 셈입니다.

 

이 작품에는 두 명의 최고수 최면술사가 등장합니다. 링밍딩과 바이야싱이 그들인데,

링밍딩은 심리적 약점 혹은 트라우마를 지칭하는 심혈(心穴, 마음의 구멍)을 찾아내

그 위에 심교(心橋, 마음의 다리)를 설치함으로써 피최면자를 구원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바이야싱은 심교론이 단지 미봉책일 뿐이며 오히려 심혈을 폭파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럴 경우 피최면자는 완벽하게 구원되거나 아니면 완벽하게 파괴되는데,

그것은 피최면자의 의지나 마음에 따라 결정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양쪽 다 보는 각도에 따라 수긍할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는 이론들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늘 자살을 마음에 담고 사는 사람이 있는데,

심교론은 그의 상처를 감싸주고 살고 싶은 희망을 북돋기 위해 애쓰는 반면,

폭파론은 그 상처를 폭파시킴으로써 상처를 잊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거꾸로 더 강력한 자살 욕구를 느끼는 부작용이 올 수도 있다고 부언합니다.

연이은 사망사건의 실체와 범인을 쫓는 룽저우 형사대장 뤄페이의 활약이 주된 이야기지만

작품 내내 밑바닥을 흐르는 심교론과 폭파론의 갈등은 색다른 재미를 주는 대목입니다.

특히 두 이론의 갈등은 클라이맥스와 마지막 반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데,

딱히 어느 쪽이 선이고 어느 쪽이 악이라고 구분할 수 없는 묘한 지점들이 있어

끝까지 독자들의 마음을 산란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올해 출간된 ‘13.67’에 이어 두 번째로 접한 중국 미스터리인데다,

나름 중국의 히가시노 게이고라 불린다는 저우하오후이의 작품이라 큰 기대를 했었고,

전반적으로는 그런 별명이 결코 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좋은 기회였지만,

또 그만큼 아쉬운 점이 많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최면술의 양대 이론이 설명되고, 주축인물들이 갈등의 구도를 완성할 때까지만 해도

이야기는 예측불허의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정작 주요 인물들의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된 중반부터 오히려 힘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유는 최면자체 때문이었는데,

속성으로 배워도 상대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는, 즉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능력이며,

, 마음만 먹으면 천만 명쯤은 우습게 살해할 수 있는 신비한 마술처럼 과대 포장되면서

결과적으로 최면이라는 소재가 가진 매력과 힘을 모두 반감시키고 말았습니다.

 

또한, 복잡하게 설정된 인물들의 과거사나 악연의 계기 등은 다분히 작위적이었습니다.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던 악몽, 인생의 반전을 갖고 온 특별한 계기 등

주요 인물들의 과거사에는 하나같이 최면이 개입돼있는데,

이는 이야기의 방향이나 전개를 결정짓는 요소가 전부 최면이란 뜻입니다.

결국 캐릭터도, 사건도 최면이라는 소재에 맞춰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느낌이 강했고,

그 결과 마지막 반전 역시 이야기의 힘에 의해 뒤통수를 때린다기보다

최면을 위한 반전’, ‘반전을 위한 반전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형사만큼이나 중화권에서 인기 있다는 형사대장 뤄페이는

잘 만들어진 명품 형사 주인공의 미덕을 모두 갖춘 캐릭터입니다.

불행한 과거와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지만, 현명함과 결단력도 겸비한 인물입니다.

그래서인지 작품 속에서 언급됐던 사망 통지서사건이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그의 심혈이 된 에우메니데스라는 범인의 코드명도 호기심이 생겼고,

그 사건이 어떻게 해결됐는지도 꼭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악한 최면술사에서 느낀 아쉬움은 뤄페이의 캐릭터나 저우하오후이의 필력 자체보다는

최면이라는 소재가 가진 한계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뤄페이와 저우하오후이와의 두 번째 만남은 좀더 즐겁고 만족스럽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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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 없는 한밤에 밀리언셀러 클럽 142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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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매력이 철철 넘치는 3편의 중편과 1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작품집입니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독하다. 어쩌면 읽기 힘든 곳이 몇 군데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에필로그 속 구절대로 스티븐 킹은 잔혹, 엽기, 공포의 끝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들과 함께 아내를 살해하고 시궁쥐가 득실거리는 낡은 우물 속에 사체를 유기한 남자,

외딴 도로에서 여자들을 강간하고 살해한 뒤 배수구에 버린 남자,

대출만기는 물론 남자의 성기, 여자의 코, 심지어 생명까지 연장해주는 선한 메피스토텔레스,

그리고 30년이 넘도록 경찰의 눈을 피해 11명의 여자를 강간-살해한 두 얼굴의 악마 등

그야말로 스티븐 킹의 피조물다운 캐릭터로 중무장한 극강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네 가지 이야기를 관통하는 공통된 주제는 응징 또는 복수입니다.

자신을 망가뜨린 자에게 정공법대로 복수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자신이 망가뜨린 자의 유령에게 처절하게 복수당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스티븐 킹의 고백대로 정말 읽기 힘든 곳이 몇 군데(보다 훨씬 많이) 있었지만,

그의 여느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중간에 눈을 떼거나 외면하는 것이 더 힘들었기에

입안 가득한 씁쓸한 느낌에도 한 글자도 허투루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비범한 상황에 놓인 평범한 인물들에게 훨씬 더 흥미를 느낀다.”는 킹의 고백은

참혹하게 죽어간, 또는 오히려 죽지 못해 더 큰 괴로움을 안게 된,

또는 복수하지 않고는 화병 때문에라도 더는 살아갈 수 없거나

실천할 용기도, 자신도 없는 마음 속 복수심에 평생 상처를 안고 산 등장인물들을 감안하면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잔혹한 고백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날것처럼 작위적이지 않고, 끔찍할 정도로 생생한 복수에 관한 킹의 이야기는

어쩌면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감춰두고 있는 비밀스런 욕망들을 민낯 그대로 들춰냄으로써

그의 흥미의 목표가 단순히 잔혹과 엽기와 공포에 머물지 않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합니다.

자신의 땅과 권위, 아들 등 모든 것을 빼앗으려는 무례한 아내를 죽이고 싶은 남자의 욕망은

옆에서 살인을 거들어주고 싶을 정도로 공감할 수 있는 감정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은 오래된 절친에게 악마의 힘을 빌어

자신의 불행을 전가하려는 한 남자의 소심한 복수심도 응원의 대상입니다.

짐승처럼 자신을 강간하고 배수구에 내다버린 일당을 향한 복수심이나

순박한 가면 속에 연쇄살인마의 얼굴을 감추고 살아온 남자를 향한 용서할 수 없는 분노는

말할 것도 없이 누구나 공감하고 응원해주고 싶은 감정들입니다.

킹은 작품의 외피를 잔혹, 엽기, 공포로 꾸몄지만,

정작 그가 버무려넣은 속살은 다양한 욕망과 감정의 민낯들이었던 것입니다.

 

모든 작품마다 비범한 상황에 놓인 평범한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사건도, 감정도 무리하게 과장되거나 작위적으로 설정되지 않습니다.

불편하거나, 무섭거나, 힘든 책읽기 속에서도

나라도 저랬을 거야.”, “나도 그러고 싶었을 걸.”라는 생각이 종종 들었던 것은

독자들의 비밀스런 욕망을 꿰뚫어 본 킹의 필력이 빛을 발한 덕분일 것입니다.

그것은 다음의 킹의 고백을 읽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인간이 할 리가 없는 행동을 글로 쓰는 작가들한테는 비웃음밖에 줄 것이 없다.

형편없는 글은 사람들의 실제 행동에 관하여 이야기하기를 거부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를테면, 살인자들도 때로는 할머니가 길을 건너도록 도와준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타고난 이야기꾼처럼 자유자재로 문장과 단어를 구사하며

공포로 가득 찬 장면에서도 웃음을 이끌어내는 킹의 필력은 새삼 말할 것도 없지만,

할머니를 도와주는 살인자라는 이 함축된 구절 하나만으로도

이야기를 구상하고, 설계하고, 지면에 완성해가는 그의 소설가로서의 태도가

(그의 표현대로) ‘형편없는 글을 쓰는 사람들과는 확연히 비교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수록된 네 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할머니를 도와주는 살인자이거나 살인자에게 도움을 받은 할머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외성도 크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현실감 있는 인물들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그런 인물들이 킹의 유려한 문장들 속에서 사건을 만들고, 복수를 감행하면서

더없이 무서운, 하지만 더없이 생생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서툰 작가를 만났다면 뻔한 복수담으로 전락했을 소재들이

스티븐 킹의 손에서 공감과 성찰을 담은 이야기로 거듭났다.”워싱턴 포스트의 평은

이 작품의 미덕을 제대로 포착해낸 명문이라는 생각입니다.

 

킹의 마니아들에 비하면 아직 초보에 불과한 팬 수준이지만,

별도 없는 한밤에는 지금까지 읽은 킹의 작품 중 상위에 올려놓고 싶을 만큼

재미나 완성도 면에서 수작이라고 평하고 싶습니다.

그동안은 킹의 장편 위주로만 작품을 골라왔는데, 새삼 중단편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더불어, 이 작품집을 킹의 마지막 중편집이 될 것이라고 단언한 닐 게이먼의 말만큼은

그저 막연한 추측이거나 마케팅을 위한 낚시성 멘트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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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과 십자가 버티고 시리즈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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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부대에서 근무하다가 경찰이 된 존 리버스는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를 충격에 빠뜨린

연쇄 소녀유괴살인사건을 수사하던 중 범인으로 보이는 자에게 의문의 편지들을 받습니다.

난해한 메시지와 함께 매듭에 쓰인 노끈 또는 성냥개비로 된 십자가가 동봉된 편지 때문에

리버스는 혼란에 빠짐과 동시에 왜 자신에게 이런 편지가 오는지 의아하게 여깁니다.

희생자는 무작위로 선정된 것처럼 보이고, 단서도 패턴도 없는데다

재미가 아니라 기록을 위한 것처럼 보이는 범행 때문에 에든버러는 공포에 휩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보전화를 받은 리버스는 범인의 진짜 계획을 파악하곤 충격을 받습니다.

특히 자신이 사건과 밀접히 연관됐음을 알게 된 리버스는

힘겹게 억눌러왔던 트라우마의 봉인이 해제되면서 패닉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 ● ●

 

영국에서 매년 팔리는 범죄소설 중 10퍼센트를 차지하는 엄청난 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2005부활하는 남자들이 유일한 국내 소개작이었던 존 리버스 시리즈의 첫 작품입니다.

올해 6, 황금가지에서 출간한 페이스 오프에 실린 단편 인 더 닉 오브 타임에서

이언 랜킨이 창조한 스코틀랜드 형사 존 리버스를 처음 만나긴 했지만,

생소한 캐릭터인데다 단편이다 보니 큰 감흥 없이 지나쳤던 것이 사실입니다.

 

특수부대 생활이 남긴 엄청난 트라우마, 어린 시절부터 각인된 불행한 가족의 기억,

주변 동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 이혼이 가져다 준 엉망진창의 생활 등

몸과 마음이 상처투성이인 삐딱이로 설정된 리버스의 캐릭터는

막연한 느낌이긴 하지만 해리 보슈나 해리 홀레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습니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형사지만 정작 개인의 삶은 불행, 우울, 고독으로 똘똘 뭉쳐있습니다.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연약한 남자지만, 동시에 적재적소에서 활약하는 슈퍼맨이기도 합니다.

아마 이런 인간적인 면모 때문에 엄청난 시리즈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을까요?

 

데뷔작에서 리버스가 마주친 사건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소녀유괴살인입니다.

그것도 아무런 공통점도 없는 10살 안팎의 소녀들이 연이어 희생자가 됩니다.

거기다 리버스는 범인으로부터 직접 편지를 받는 역할을 떠맡습니다.

사건은 충격적이고, 리버스가 사건의 중심에 놓이면서 이야기는 긴박하게 출발합니다.

 

하지만 시리즈의 첫 작품이라 그런지 이런저런 정보와 설명들이 많이 개입됐고,

수사는 제보 이후 갑자기 급물살을 타면서 정신없이 흘러갑니다.

범인의 정체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고, 드러난 범행 동기는 조금은 밋밋해 보였습니다.

시리즈의 첫 작품들이 그렇듯 매듭과 십자가역시 작가가 의도적으로

이야기의 상당 부분을 리버스의 과거나 가족사와 연관 지어 전개시켰는데,

그래서인지 파괴력이나 완성도 면에서는 기대에 못 미친 것이 사실입니다.

오히려 캐릭터도 강하고 능력도 뛰어난 리버스의 모습으로 포문을 연 뒤

두 번째 작품쯤에서 과거사를 소개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애당초 이언 랜킨은 이 작품의 끝에 존 리버스를 죽일 작정이었다고 고백했는데,

그래서 그의 모든 것을 보여주느라 이런 이야기 구성을 꾀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해리 보슈나 해리 홀레를 연상시키는 만만치 않은 내공을 선보였으니

두 번째 작품부터는 엄청난 시리즈의 주인공으로서의 면모를 선보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또한 주변에 배치된 조연들 동료 형사, 연인이 된 공보담당자, 스토커 같은 기자 등

확실한 존재감과 재미를 준 덕분에 이후 작품에서도 감칠맛 나는 역할이 기대됩니다.

특히 혼란 속에 빠진 리버스 옆에서 차분하게 추리를 진행하는 연인 질 템플러는

후속작에서 리버스와 어떻게 엮일지 궁금하게 만드는 인물입니다.

두 번째 작품인 숨바꼭질이 이 작품과 함께 동시에 출간됐는데,

어둑한 하늘과 수시로 내리는 비, 세기말을 연상시키는 풍광으로 유명한 에든버러를 무대로

존 리버스가 제대로, 멋있게 활동하는 모습을 꼭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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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살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5
나카마치 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77, 오후 7. 무명작가 사카이 마사오가 청산가리 중독으로 사망합니다.

경찰은 창작의 고뇌를 못 견딘 끝에 극단적인 선택, 즉 자살을 택한 것으로 결론지었지만

그를 아는 두 사람 편집자 아키코, 프리랜서 작가 쓰쿠미

그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각자 진상을 알아내기 위해 탐문을 벌입니다.

특히 그의 유고(遺稿)의 제목이 ‘77일 오후 7시의 죽음이라는 점은

함부로 자살이라 단정할 수 없을 것 같은 묘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아키코는 사카이에게 의문의 돈 뭉치를 건넸던 미모의 여성 리쓰코를,

쓰쿠미는 여동생의 자살을 사카이의 탓으로 여긴 편집장 야나기사와를 범인으로 추정합니다.

하지만 두 용의자는 완벽한 알리바이를 주장했고, 결국 탐문은 알리바이 깨기에 집중됩니다.

집요한 조사를 진행하던 아키코와 쓰쿠미는 결국 사카이의 행적 속에서 단서를 찾아내지만

그들이 마지막에 맞닥뜨린 사카이 마사오의 죽음의 진실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 ● ●

 

모방 살의처럼 대놓고(?) 서술트릭이라고 밝힌 작품들은 독자의 도전의식을 불태웁니다.^^

첫 페이지부터 어떻게든 단서를 찾아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읽으면서

조금이라도 위화감을 풍기는 문장이 나오면 메모를 해놓거나 머릿속에 꼭꼭 저장해놓습니다.

작가의 트릭을 끝까지 알아내지 못했다가 뒤통수를 맞아야 재미가 극대화되겠지만

이상하게 서술트릭이란 딱지만 붙으면 이렇게 무모한 도전을 감행하곤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방 살의는 제법 독자에게 친절한 서술트릭입니다.

그러니까 눈치 챌만한 단서를 간혹, 아주 애매한 형태로나마 남겨줍니다.

똑똑한 독자들은 2/3쯤 됐을 때 1차적인 사건의 진상은 눈치 챌 수도 있지만,

좀더 복잡한 진실의 모습은 결국 끝까지 가야 제대로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치밀하고 완벽한 트릭의 설계를 위해 작가가 들였을 노력을 감안한다면

역시 마지막 한 방에 뒤통수를 맞아주는 것이야말로 독자의 도리라는 생각입니다.^^

 

작가는 서로 모르는 두 명의 주인공에게 탐문의 미션을 부여함으로써

두 갈래의 수사가 중간에 합쳐지면서 진실이 드러날 것 같은 구도를 설정했습니다.

아키코가 치정, 가족사, 돈에 얽힌 문제로 조사를 벌이는 한편,

쓰쿠미는 원한 쪽에 무게를 두고 탐문을 벌입니다.

전혀 다른 방향에서 전개된 추적이 과연 어디에서 접점을 만들어낼지,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찾아내는 단서는 무엇이 될지 읽는 내내 궁금함을 자아냅니다.

거기에 덧붙여 사카이의 죽음과는 무관한(또는 관계가 적은) 에피소드들을 동원하여

메인 사건 외의 풍성한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알려진 대로 서술트릭으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이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보다는 잘 짜인 트릭을 품은 미스터리라는 평이 온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서술을 무기로 독자의 눈을 속이고 뒤통수를 치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정교한 설계도에 따라 꼼꼼히 구축된 웰 메이드 미스터리이기 때문입니다.

살육에 이르는 병이나 벚꽃 지는 계절에~’의 충격을 기대한 독자들에게는

조금은 심심한 서술트릭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1973년에 출간된 일본 미스터리정도의 정보만 갖고 이 작품을 읽는다면

작가가 존경의 뜻을 표했던 엘러리 퀸 이상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 사후 비로소 제 가치를 인정받은 작품이라고 해서 더 기대를 했고,

실제로 그리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잘 익은 과일처럼 맛깔난 재미를 느꼈습니다.

이 작품 이후 이어진 살의(殺意) 시리즈가 앞으로도 계속 출간돼서

비운의 작가의 명품들을 계속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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