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일, 스미레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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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프로듀서로서 애지중지 키워온 신인그룹과의 결별,

워커홀릭인 자신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던 남친과의 연애의 종말 등

일과 연애 사이에서 전력을 다하며 살아가던 32살의 싱글녀 스미레에게

어느 날 갑자기 약속이나 한 듯 시련들이 한꺼번에 몰려옵니다.

만신창이가 된 채 고향집에 들른 스미레는 오랫동안 서먹하게 지내온 아버지에게서

기대하지 않은 위로와 격려를 받게 됩니다.

동시에 퇴물이 된 싱글 대디 가수의 새로운 출발에 온 에너지를 퍼붓기로 결심합니다.

 

● ● ●

 

책으로도 영화로도 본 적은 없지만 그 제목만은 낯익은

무지개 곶의 찻집’, ‘쓰가루 백년 식당등을 집필한 모리사와 아키오의 작품입니다.

32살 워커홀릭 음악프로듀서 사쿠라 스미레의 다이나믹한 인생 분투기를 그린 작품으로,

행복과 웃음, 긍정의 힘과 에너지를 무한대로 발산하는 이야기입니다.

 

사쿠라 스미레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다크 서클로 꽉 찬 화장기 없는 32살의 얼굴, 낡은 청바지와 점퍼, 닳아빠진 운동화.

거대 음반사를 나와 1인 인디 음반사 스마일 뮤직을 세운 거칠 것 없는 뚝심.

철야를 밥 먹듯 한 덕분에 한겨울 길거리에서 좀비처럼 쓰러져 잠들기도 하는 무모한 열정.

하지만 그 열정 때문에 남친에게 버림받게 되는 기구한 운명.

무조건 타인을 믿어버리는, 부모와 고향이 물려준 시골스러움.

 

최근 몇 년 동안 일본 드라마를 안 봐서 요즘은 어떤 배우가 대세인지 모르겠지만,

예전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액티브하면서도 어딘가 4차원 같은 분위기를 내뿜던

우에노 주리의 이미지가 연상되는 캐릭터입니다.

 

그녀의 이름 스미레는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인데,

-표정-센스-배려가 없는 4캐릭터에 시골에서 전통적인 간장 공장을 경영하는 아버지는

영어 Smile을 철자 그대로 읽었을 때의 음을 따서 그녀에게 스미레라는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웃는 건 자기 자신을 위한 게 아니래. 웃는 건 늘 타인을 향해서잖아?

그래서 타인이 웃어주면 그 웃음이 내게도 돌아온다는 거야.

그러니까,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게끔 늘 웃는 딸로 자라주길 바랐던 거지.

그러면 결국 너도 행복해질 테니까.

아버지는 그렇게까지 생각해서 스미레라는 이름을 지어준 거야.

 

어른들을 위한 행복한 동화 같은 스마일, 스미레

어쩌면 그 어떤 판타지보다 더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보통 사람의 현실에는 스미레에게 찾아온 기대하지 않은 행운이나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같은 특별한 인연은 신기루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사방을 둘러봐도 너무나 빡빡하기만 한 현실 때문에

행복과 웃음이 갖는 긍정의 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힘찬 에너지를 북돋아주는 마녀 같은 절친들,

음악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의지처가 되는 뛰어난 엔지니어,

음악프로듀서로서의 열정을 부활시켜준 퇴물가수와 그의 딸,

그리고 무뚝뚝하면서도 언제나 딸을 믿고 응원해주는 부모 등

스미레 주위에서 그녀를 지원사격해주는 무수한 아군들이나

마법처럼 술술 풀려나가는 상황들은 그 자체로 판타지입니다.

그래서 읽으면서 가끔씩 묘한 반발감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스미레의 세상은 동화 그 자체군,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동안 몇 번씩 목구멍 깊은 곳이 뜨끈해지고

초밥 속에 뭉쳐진 겨자를 씹은 것처럼 코끝이 알싸해졌던 것은

그것이 설령 거짓이고 판타지라 하더라도

역시 행복과 웃음에게 거는 기대가 아직은 조금이나마 남아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스미레에게 찾아온 행운과 인연은 로또보다 더 만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잠시의 판타지를 통해 그래도 언젠가는...”이라는 긍정의 힘을 갖게 된다면,

반나절이면 충분히 완독할 수 있는 스마일, 스미레의 미덕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죠.

솔지히, 억지스러운 논리로 인생은 살만 한 것이야.’라고 주장하는 어설픈 에세이보다는

스미레의 좌충우돌 판타지가 훨씬 더 큰 위로가 돼줄 거라는 생각입니다.

 

정작 자신은 남들 앞에서 무뚝뚝한 표정밖에 지을 줄 몰랐던,

하지만 이제는 스미레에게 낯간지러운 문자도 보낼 줄 알게 된 아버지의 명품 문자 한 구절은

스마일, 스미레의 미덕을 알맞게 함축하고 있습니다.

 

행복하니까 웃는 게 아니라, 웃으니까 행복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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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심판 모중석 스릴러 클럽 38
프레드 바르가스 지음, 권윤진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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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의 작은 마을 오르드벡에는 특별한 환영(幻影)을 보는 신기(神氣)를 지닌 인물이

오래 전부터 세대가 바뀔 때마다 대물림돼왔습니다.

그들이 보는 환영은 성난 군대, 또는 대규모 색출단, 메니 엘르켕이라 불리는 기마부대로

말들도 기마병들도 전부 해골 같고 팔다리가 일부 떨어져나갔으며,

사납게 울부짖으며 이승을 떠도는 반쯤 썩어 문드러진 죽은 자들로 편성된 군대입니다.

천 년 전부터 전설 아닌 전설로 오르드벡의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뿌려온 성난 군대는

악행을 저지르고도 벌을 피해간 현실 속 인물들을 참혹하게 심판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환영을 보는 인물은 성난 군대에게 끌려가는 현실 속 인물도 함께 목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현실 속 인물들은 3주 안에 어떤 형태로든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파리의 강력계 서장 아담스베르그는 우연과 운명이 겹친 인연으로 이 사건을 맡게 됩니다.

현재의 영매인 리나 방데르모는 3명의 남자와 정체불명의 한 사람이

성난 군대에게 끌려가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진술하는데,

그들이 차례로 기이한 죽음을 맞이하면서 수사는 진전은커녕 막다른 골목을 향할 뿐입니다.

옮긴이의 말대로 반송장의 모습을 한 기마병들이 정말 죄 지은 사람들을 데려간 것인가?

아니면 성난 군대의 전설 뒤에 숨어 누군가 끔찍한 음모를 꾸미는 것인가?”라는 의문 속에

독자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선 채 이야기의 전개를 따라가게 됩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우선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모호한 분위기입니다.

호러물에나 나올 법한 성난 군대는 공포와 동시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사건은 명백히 현실 속에서, 그것도 분명한 인간의 소행으로 벌어집니다.

그 어떤 명탐정이라도 도대체 어디부터 파헤쳐야 할지 헷갈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의 두 번째 특징은 바로 이 모호한 사건을 수사하는 파리 경찰들의 캐릭터입니다.

주인공인 아담스베르그 서장은 성난 군대만큼이나 특이한 존재감을 발산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수사에 관한 특별한 계획 같은 건 세워본 적도 없거니와

금방 들은 지명이나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가 하면,

아무도 예상 못한 곳에서 추리를 시작하는 4차원에 가까운 캐릭터입니다.

구름에 대고 삽질하는, 추리의 자도 모르는 무식한 허깨비!”라고 비난받을 정도로

그의 추리는 오랫동안 함께 일한 동료조차 이해하기 힘든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그의 휘하에 있는 형사들도 하나같이 괴짜 같은 개성을 자랑하는데,

백포도주를 입에 달고 사는 걸어다니는 백과사전, 갑자기 픽 쓰러져 잠드는 수면 과다 환자,

거구를 자랑하는 여자 경위, 비상식량을 사러 슬그머니 사라지는 허기증 환자 등

각 경찰서에서 너무 튄다는 이유로 왕따 당한 인물들만 모아놓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수사 활동까지 기행에 가까울 정도로 특이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나름의 장점들을 모아 아담스베르그와 함께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데

괴짜 같다고 가볍게만 여겨졌던 개성들은 어느새 각자만의 특별한 무기가 되어

사건 현장에서 빛을 발하곤 합니다.

 

이들의 캐릭터를 더 독특하게 만드는 것은 낯선 프랑스 식 문장과 표현들입니다.

한참 사건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니 어깨에 말벌이 앉았어.”라는 식으로

정말 맥락도, 뜬금도 없는 이야기를 툭툭 던지곤 합니다.

수시로 곁길로 빠져 코미디 같은 엉뚱한 수다를 잠시 늘어놓다가

어느새 슬그머니 본 이야기로 돌아오는 능청맞음은 처음엔 낯설고 혼란스럽게 느껴지지만

점차 적응하고 나면 영국식 유머와는 또다른 프랑스 소설 특유의 재미를 만끽하게 해줍니다.

(집중을 필요로 하는 후반부에서도 여지없이 이런 곁길이 나타나곤 하는데,

아무래도 자주 마주치다 보면 좀 가벼운 짜증이 느껴진 것도 사실입니다.)

 

작가는 꿈에서 가능한 것들이야말로 내 소설의 영토 안에서 현실이 된다.”라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는 성난 군대의 존재가 좀더 부각된,

그러니까 미쓰다 신조 식 호러로 풀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바람이 진하게 남았던 작품입니다.

사실 제일 궁금하고 기대했던 것은 성난 군대의 존재와 역할이었는데,

제 바람만큼 분량이나 비중을 차지하지 못해서인지 조금은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그보다 더 아쉬웠던 점은 주인공 아담스베르그 서장의 수사 기법입니다.

어딘가 허술하기 짝이 없는 사람 좋은 동네 아저씨 같은 외형도 좋고,

자신만의 독특한 추리법으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점은 다 좋은데,

그 방식이 직감이라든가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벼락같은 깨달음을 통해 이뤄진다든가,

앞뒤 맥락을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거의 비약에 가까운 상상력을 통해 추리를 완성하는 점은

독자를 꽤나 당혹스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반전 역시 벼락같은 깨달음비약에 가까운 상상력에 의해 설명되다 보니

나름 힘과 매력을 지닌 반전임에도 불구하고 공감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장황할 정도로 사건의 배경과 동기, 수법과 비밀 등에 대해 자신의 추리를 설명하지만

무엇으로부터그런 추리가 가능했는지 몇 번을 되읽어도 잘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 점이 특징이고 매력인 캐릭터인가보다.”라든가,

또는 성난 군대 자체가 환영이니까 이런 수사법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구나.” 하고

그냥 넘어가기엔 아쉬움이 너무 컸습니다.

 

최근 읽은 그 어떤 작품보다 개인적인 취향을 많이 탈 수 있는 작품인 것 같고,

호불호도 극명하게 나뉠 것 같은 작품입니다.

저와는 궁합이 잘 안 맞는 것 같지만, 현실과 상상의 모호한 경계를 선호하는 독자에겐

프랑스 추리소설의 여왕이라 불리는 작가의 필력이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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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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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상세한 내용이 포함돼있습니다)

 

옮긴이의 말에도 나오는 얘기지만

초반부만 읽어도 영화 델마와 루이스가 저절로 떠오르는 작품입니다.

절친이면서도 한 명은 소심하고 여린 반면, 다른 한 명은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두 여자,

그리고 이기적이고 폭력을 일삼는 남편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델마와 루이스가 남편과 일상으로부터 소박한 일탈을 꿈꿨다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빠지면서 점점 비장미를 더해가는 이야기인 반면,

나오미와 가나코는 좀더 적극적인 의미의 탈출,

즉 남편을 제거함으로써 잃어버렸던 자신의 삶을 되찾으려 하는 이야기입니다.

 

남편을 제거하는데 한 줌의 후회도 가책도 망설임도 없었다.”는 뒷표지의 카피대로

두 여자는 치밀한 계획과 함께 거짓말처럼 찾아온 우연과 행운에 힘입어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둘러온 가나코의 남편을 제거합니다.

굳이 죽인다대신 제거라는 표현을 쓴 것은 자신들의 행위를 범죄가 아니라

불필요하고 해가 되는 어떤 것을 치워버리는 것으로 정의내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전반부인 나오미 이야기가 두 여자의 대비되는 성격과 환경, 폭력에 시달리는 가나코의 삶,

그리고 제거 계획의 수립과 그 실행에 관한 이야기라면,

후반부인 가나코 이야기는 완벽했다고 생각한 제거 계획이 조금씩 무너지며

두 여자에게 찾아오는 현실적인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어떤 모양새로 끝날지 알 수 없는 종점을 향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폭주하는 두 여자의 대응과 반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초반부에 두 여자의 계획이 드러남과 동시에

작가나 독자가 선택하고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의 끝은 셋 중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비장미 넘치는 죽음, 범죄자로 체포되는 운명, 그녀들만의 해피엔딩이 그것입니다.

작가 오쿠다 히데오조차 그 결말을 어떻게 할지 끝까지 망설였다고 밝혔지만,

세 가지 결론 외에 딱히 뒤통수를 칠 만한 반전의 요소는 없기 때문에

엔딩에 대한 궁금함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녀들의 제거 계획에 끼어든 다양한 변수들 때문에

이야기는 계속 롤러코스터처럼 엎치락뒤치락 하며 흘러갑니다.

집요한 추적과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악연으로 시작됐지만 예상치 못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인물도 등장합니다.

별 것 아닌 단서가 그녀들의 목을 죄어오기도 하지만

제거 과정에서 무심코 내렸던 선택 하나가 그녀들을 자유롭게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이런 변수들 덕분에 페이지는 금세 넘어가고, 독자는 긴장을 이완한 틈이 없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오쿠다 히데오를 워낙 좋아해서 이 작품 역시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평가하자면 만족감보다는 아쉬움이 좀더 큰 작품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범죄에 관한 한 평균 이하의 아마추어인 두 여자의 제거 계획이

너무나도 허술하게 설정된 탓에 현실감이 떨어지는 장면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준비를 치밀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계획이 한방에 무너질 수 있는 지점에서

두 여자는 초등학생 수준의 대처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녀들이 위기에 빠지는 대목에서

, 이것이 아마추어의 한계인가?”라는 안타까움과 동정심보다

정말 둘 다 바보 아냐?”라는, 좀 심하게 표현하면, 한심함이 먼저 느껴지곤 했습니다.

물론 그녀들의 허술한 계획은 명백히 의도된 작가의 설정입니다.

그녀들이 프로에 맞먹는 완벽한 계획을 세웠더라면 오히려 어색해 보였을 것입니다.

또한 이 작품의 뼈대는 그녀들의 제거 계획이 성공할 것인가, 실패할 것인가가 아니라

다분히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두 여자의 굴곡진 삶에 대한 서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이없는 곳에서 그녀들의 허술함이 밝혀지면서

작가의 의도는 현실감을 잃게 되고, 작품의 뼈대 역시 무게감이 떨어지고 맙니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녀들에게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는 식으로

독자들이 납득할 만한, 그래서 안타까움이 배가 될 만한 전개가 필요했다는 생각입니다.

 

오쿠다 히데오는 그 이름만으로 무조건 작품을 고르게 되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그래서인지 중편 또는 긴 단편 정도의 형식이 더 어울릴 법한 나오미와 가나코

올림픽의 몸값이후 처음으로 아쉬움이 남는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이 됐습니다.

여전히 그의 이름은 보증수표로 남긴 하겠지만,

다음 작품에선 그의 진가를 다시 한 번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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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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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직한 경찰이자 자상함과 애정으로 가득 찬 존경의 대상이던 아버지가 부패경찰이었음을 고백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이후 소니의 세계는 완전히 붕괴되고 마약으로 오염되고 맙니다. 안정적인 마약 확보를 위해 남의 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에 복역하는 삶을 선택한 소니는 12년 만에 아버지의 죽음에 전혀 다른 진실이 숨어있음을 알아내게 됩니다. 탈옥에 성공한 소니는 아버지의 죽음에 연루된 자들을 하나씩 처단하며 진실 찾기에 나섭니다. 소니 아버지의 절친이자 동료였던 시몬 케파스는 아들이나 다름없는 소니의 범행을 막기 위해 규칙을 깨고 월권행위를 서슴지 않으며 수사에 뛰어듭니다.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악의 축을 쫓는 소니의 폭주는 오슬로 전역에 끔찍한 연쇄살인의 공포와 함께 범법자를 제거하는 지옥에서 온 천사라는 찬양을 함께 불러일으킵니다.

 

아버지의 자살로 나락에 떨어졌던 소니가 아버지의 죽음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찾기 위해 피로 얼룩진 복수극을 펼친다는 심플한 구도의 이야기지만, 감질날 정도로 찔끔찔끔 패를 보여주며 긴장감을 폭증시키는 구성과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소니의 복수극에 활기를 불어넣는 막강 조연들 덕분에 뒤로 갈수록 이야기는 쫄깃해지고 도대체 베일 속의 인물이 누구일지 너무 궁금해집니다. 특히 양파 껍질처럼 드러나는 추악한 진실들을 거쳐 막판에 드러나는 반전은 진실 찾기의 완성을 넘어 안쓰럽고 애틋한 여운까지 남겨줍니다.

 

거미줄처럼 얽힌 악의 사슬을 규명하는 소니의 복수극이 메인이지만 요 네스뵈는 그 외에도 매력적인 여러 가지 볼거리를 장착해놓았습니다. 인생의 가장 찬란한 12년을 교도소에서 보내야했던 소니를 위로하기 위해 설정된 멜로라인은 독자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뭉클하고 절절한 시퀀스입니다. 키스마저 어설픈 동정이나 다름없는 소니가 난생 처음 사랑을 느끼는 장면에서는 그가 교도소에서 보냈던 12년을 어떻게든 되돌려주고 싶을 만큼 마음이 아파지기도 합니다.

 

, 물과 기름처럼 절대 섞이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궁합이 잘 맞는 퇴임 직전의 고참 형사 시몬과 신참 여형사 카리의 콤비 플레이도 매력적인 설정입니다. 경찰학교를 차석으로 졸업하고 관리직으로의 신분상승을 꿈꾸는 카리는 오직 형사의 길을 고집해온 시몬에게는 결코 탐탁지 않은 존재지만 의외로 뛰어난 자질과 의욕을 보이는 그녀에게서 시몬은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기도 합니다.

시몬은 비주얼이나 스타일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왠지 해리 홀레의 향기를 풍기고 있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해리 홀레와 비교하면서 보게 만드는 재미를 던져줍니다. 해리가 술 때문에 고생했다면, 시몬은 도박 때문에 인생에 치명타를 입은 경험이 있습니다. 상관에게 미움 받기 딱 좋은 강직함과 반골로 똘똘 뭉친 기질적 공통점도 있지만, 사건을 대하는 예리한 촉, 사소한 단서도 놓치지 않는 치밀함, 거침없는 독설과 따뜻한 인간미를 겸비한 카리스마도 해리의 그림자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간간이 한 인물의 복잡다단한 의식의 흐름과 감정에 대해 조금은 현학적인 수사까지 동원하여 장황하게 묘사한 점도 해리 홀레 시리즈를 연상시키는데, 가끔 몇 번씩 되읽어도 잘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도 있지만, 소니가 애증과 그리움의 대상인 아버지를 회상하는 장면이나 시몬이 도박으로 망가진 자신의 삶과 시력을 잃어가는 아내 때문에 심하게 자책하는 장면은 요 네스뵈 식 감정 묘사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중환자실에 입원한 해리 홀레의 아버지가 등장했던 레오파드가 자주 떠올랐는데, 특별한 공통점이나 유사한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에 대한 아들 해리의 애증이 많은 분량에 걸쳐 심도 있게 묘사됐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요 네스뵈의 삶에도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나 애증이 제법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마지막까지 한 번에 달릴 만큼 재미있게 읽었지만, 일부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가장 큰 아쉬움은 약간은 작위적 냄새가 나는 캐릭터 설정인데, 복수의 화신 소니는 그 어떤 장벽이나 위기도 쉽게 넘어서는 슈퍼맨 캐릭터였고, 악의 축으로 설정된 인물은 비현실적인 느낌이 날 정도로 언터처블에 가까웠습니다. 시몬을 포함한 나머지 주, 조연들이 워낙 사실감 있게 묘사된 덕분에 선과 악을 대표하는 두 인물의 비현실감이 어느 정도 상쇄되긴 했지만, 읽는 동안 여러 지점에서 위화감이 느껴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엄연한 스탠드얼론임에도 불구하고 해리 홀레의 향기가 느껴진 것은 저만의 특별한 경험은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해리 홀레를 그리워한(?) 나머지 대리만족을 맛보고 싶다보니 저도 모르게 그런 식으로 해석하거나 이입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개인적으론 스탠드얼론이라 좋았고, 해리의 향기가 나서 더 좋았던 작품입니다. 새로운 스탠드얼론이나 데빌스 스타의 후속작을 벌써부터 기대하는 건 너무 과욕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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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 - 3 - 에이전트 6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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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상세한 내용이 포함돼있습니다. 아직 안 읽으신 분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특별한 장치가 있다 하더라도 호기심에 몸이 달아오를 뿐, 실제로 그 장치를 이용하겠다고 나설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장밋빛 미래보다는 초라하게 늙어버린 우울한 미래가 보일 가능성이 훨씬 더 높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일 제게 그런 특별한 장치가 있었다면, 또 이 작품의 주인공 레오 데미도프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면 어떻게든 강제로라도 1981, 58살이 된 그의 미래를 보게끔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레오는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게 될지라도 반정부 인사나 무고한 시민들을 체포하며 유능한 정보기관 요원으로 살아가는 길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58살의 레오가 등장하는 에이전트 6’의 이야기는 그에겐 지옥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시리즈 2편인 시크릿 스피치에서 레오는 요원으로 활약했던 과거의 행동 때문에 복수 세력의 타깃이 되어 자신은 물론 가족들까지 큰 위험에 빠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아무리 후회하고 반성해도 자신 때문에 목숨을 잃은 자가 부활할 리 없고, 유족들의 상처가 치유된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레오는 비겁한 변명 대신 진심으로 자신의 과거를 지우려 했고, 그 일환으로 자신 때문에 부모를 잃은 조야와 엘레나 자매를 입양했습니다. 헌신과 사랑으로 행복한 가족을 이루고 싶었던 그의 소망은 복수 세력의 등장으로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지만 레오와 아내 라이사는 목숨을 건 여정 끝에 겨우겨우 부서진 가족을 봉합했습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1965. 레오는 42살의 중년이 됐고, 공장 중간관리자라는 초라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팽팽하던 그해 여름, 두 나라의 청소년들이 뉴욕의 UN본부에서 화해의 콘서트를 열기로 했고, 아내 라이사가 인솔 교사로, 딸 엘레나가 소련 학생대표 자격으로 참석합니다. 레오의 불길한 예감대로 콘서트 당일 UN본부 앞에서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고 레오는 또다시 견딜 수 없는 깊은 심연에 빠지고 맙니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1981년에야 레오는 비극의 현장인 UN본부 앞에 도착합니다. 그 사이 레오는 숱한 고난과 자괴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미국으로의 망명을 위해 국경을 넘다가 체포되는가 하면, 마약에 취한 채 주머니에 돌을 가득 넣고 호수로 걸어 들어가기를 반복하기도 했고, 소련이 침공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유능한 정보 요원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58살의 초라한 모습으로 16년 전 비극의 진실을 찾기 위해 미국 땅을 밟은 것입니다.

 

어디에선가 에이전트 6’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는 서평을 읽은 적이 있는데, 실제로 몇몇 장면에선 끝없는 시련으로 만신창이가 된 레오를 보며 목이 잠기기도 했습니다. 공산당에 충성하며 유능한 요원으로서 숱한 사람들을 수용소로 보냈던 그의 젊은 시절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행복과 만족을 느낀 시간들이었습니다. 레오는 그 시간들에 대해 진심으로 참회하고 자신 때문에 상처받은 자들에게 사죄했지만, 그런 선택은 오히려 그를 시대가 낳은 최악의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마지막 챕터를 펼치면서 (절대 그럴 일이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레오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처럼 비현실적인 슈퍼맨이 돼서라도 그에게 비극을 안긴 악의 세력을 철저히 응징하는 장면이 나오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렇게라도 돼야 평생을 자책과 자괴, 눈물과 고통으로 살아온 레오에게 조금이나마 안식을 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결코 웃는 얼굴로 마무리 될 수 없는 레오의 인생이지만, 톰 롭 스미스는 그래도 그에게 행복한 눈물을 흘릴 기회를 남겨줍니다.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시크릿 스피치가 만족보다는 아쉬움을 많이 남긴 탓인지 에이전트 6’에서는 기대 이상의 보상을 받은 느낌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미국과 소련의 냉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 속에 맥없이 휘말리듯 서있던 레오의 모습은 긴장과 스릴 속에 연쇄살인의 진상을 파헤치던 차일드 44’에서의 존재감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물론 스탈린 시대부터 30여 년의 고된 현대사를 헤쳐 온 거대한 서사의 주인공으로서의 무게감은 더할 나위 없이 충분했고, 그동안의 고통스러운 여정을 함축시킨 듯한 마지막 장면에서의 그의 눈물은 어설픈 해피엔딩보다 훨씬 더 많은 여운을 남겨줬습니다.

 

차일드 44’를 읽고 2년이 지난 뒤에 두 편의 후속작을 연이어 읽어서 그런지 새삼 차일드 44’를 다시 한 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다시 읽다 보면 정의롭고 인간적인 청년 레오에게 나에게 특별한 장치가 있고, 그것을 통해 당신의 미래를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그의 앞에 놓인 미래를 피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 것 같습니다. 물론 레오 역시 그 특별한 장치를 절대 쓰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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