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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치
로렌조 카르카테라 지음, 최필원 옮김 / 펄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멤버들 모두의 캐릭터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현세 님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거나 낙오된 자들이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이뤄낸다는 이야기로,
영화로 제작될 정도로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켰던 작품입니다.
‘공포의 외인구단’이 퇴출된 야구선수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야기였다면,
‘아파치’는 한때 최고의 능력자였으나 작전 수행 도중 심각한 부상을 당해
이제는 더는 쓸모없어진 경찰들이 목숨을 걸고 벌이는 한판의 부활극입니다.
가장 빨리 금배지 형사로 진급한 기록을 갖고 있는 지오바니 ‘부머’ 프론티에리,
할렘 출신의 흑인으로 사격의 달인인 데이비드 ‘데드아이’ 윈스롭,
뛰어난 추리와 범인 검거율로 ‘콜롬보 부인’이라는 별명을 얻은 메리 실베스트리,
인디언의 피를 물려받은 폭발물 전문가 델가도 ‘제로니모’ 로페즈,
어릴 적부터 전자기기에 열광했던 도청전문가 지미 ‘핀스’ 라이언,
한때 지독한 마약중독자였으나 어머니를 잃은 뒤 경찰이 된 일명 ‘짐 목사’ 바비 스카포니 등
뉴욕 경찰국에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던 6명의 경찰은
제각각 비극적인 사고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뒤 불명예스러운 은퇴를 강요받았고,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사는 비참한 여생만을 끌어안은 채 하루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액션이 빠진 삶은 그들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총알 하나면 좌절과 고통을 한 순간에 날려버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총에서 발사된 총알 하나.
무위도식하는 백수부터 컴퓨터 수리, 보험설계사, 아파트 문지기 등
예전의 명성과는 거리가 먼 불우한 삶을 살아가던 이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집니다.
실종된 딸을 찾아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부머는 예전의 파트너 데드아이와 함께
오랜만에 경찰로서의 능력을 발휘하여 위험천만한 마약중독자와 소아성애자를 잡아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규모는 물론 흉악한 수법으로 유명한 마약 카르텔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부머는 ‘최후의 일전에 목말라있는 산송장들’에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지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제안합니다.
경찰마저 쉽게 손댈 수 없는 철옹성 같은 마약 카르텔을 향해
자신들의 능력을 끌어모아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최후의 일격을 날리자고..
마약 카르텔을 박살낸다고 누가 메달을 내려줄 것도 아니었고,
실패할 경우 현장에서 죽음을 맞이하거나 살아남아도 범죄자로 낙인찍혀야 했고,
오히려 성공할 경우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것은 물론
FBI와 뉴욕 경찰이 그 공을 다 차지한다는 시나리오였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딱한 영혼에 평화를 주기 위해’ 미션을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아파치’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로 합니다.
‘아파치’는 쉽고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불의의 사고로 불구가 된 전직 경찰들과 절대악인 마약 카르텔의 대결이라는 구도 하에
잔혹한 범죄 장면과 긴장감 넘치는 액션 장면이 쉴 새 없이 등장합니다.
뛰어난 반전이나 예상외의 범인처럼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설정은 없지만
정의감을 불러일으키는 주인공들의 출중한 능력과 비극적인 사연,
재미 하나를 위해 끝까지 돌직구처럼 날아가는 쉽고 간결한 스토리,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을 향한 전쟁을 방불케 하는 엄청난 화력의 향연 등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좋아할만한 미덕을 모두 갖춘 블록버스터입니다.
안 그래도 더운 날, 작가가 꼬아놓은 미스터리 때문에 두뇌를 혹사시키기 싫은 독자나
속 시원한 액션물 한 편을 찾는 독자에겐 더없이 적당한 작품입니다.
그렇다고 ‘아파치’가 텅 빈 서사에 오락성만 가득 채운 작품이란 뜻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300여 페이지의 분량 중 1/3 정도가 할애된 아파치 멤버들의 과거사는
이 작품을 ‘다이 하드’로 대표되는 할리우드 경찰 영웅이야기와 차별시키는 대목입니다.
언제나 역경을 딛고 1대100의 싸움에서도 의연히 살아남는 비현실적 영웅이 아니라
100% 리얼한 현실 속에서, 때론 어처구니없는 실수 하나로, 때론 범죄자의 악행으로 인해
경찰로서의 삶을 통째로 잃어버리게 되는 평범한 인간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작가는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경찰, 새로운 영웅을 탄생시켰습니다.
물론 후반부의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식 전개를 피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의 진정성이 독자에게 이입된 덕분에
흔한 액션물과는 차별화된 느낌과 여운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족히 5~600페이지는 나왔을 법한 분량을 300여 페이지에 우겨넣은(?) 편집 스타일입니다.
비용의 문제인지 취향의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요즘의 경향과는 다르게 글자 크기는 너무 작고, 줄 간격은 빡빡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물론 읽는데 큰 지장은 없었지만,
처음에 책을 받고 펼치자마자 저절로 헉~ 소리가 났던 것도 사실입니다.
10여 군데 발견된 오타도 아쉬웠지만 왠지 편집에서의 인색함(^^;)이 느껴졌다고 할까요?
대작답게 5~600페이지로 편집했다면 작품의 무게감도 훨씬 살아났을 거라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