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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의 살인 ㅣ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
아오사키 유고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요코하마의 한 수족관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관람객들 앞에서 수조에 빠진 사육사가 참혹하게 상어 밥이 되고 마는데, 하필 가제가오카 고교 신문부 가오리 일행이 사건의 전말을 목격한 탓에 가나가와 현경의 센도 경부와 유사쿠 형사는 ‘체육관의 살인’이 해결된 지 한 달 만에 또다시 우라조메 덴마를 비롯한 가제가오카 고교생들과 악연을 맺게 됩니다.
싱겁게 해결될 것 같던 사건은 용의자들의 완벽한 알리바이로 인해 벽에 부딪히고, 센도 경부는 천재 고교생 우라조메 덴마에게 지원을 요청합니다. 여전히 경찰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수족관을 휘저으며 자신만의 수사를 펼쳐나가던 덴마는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사소한 단서들에서 출발하여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부터 깨뜨립니다.

애니메이션 CD와 미소녀 피규어로 가득 찬 학교 동아리 방에 은거하는 천재적인 오타쿠 탐정 우라조메 덴마의 두 번째 활약을 다룬 작품입니다. 전작인 ‘체육관의 살인’과 마찬가지로 덴마는 엘러리 퀸의 향기가 느껴지는 수사법, 즉 현장의 단서를 통해 진실을 찾아내는 특별한 재능을 선보입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사소한 물건과 흔적들을 통해 범인의 동선을 도출해낸 뒤 그를 기반으로 용의자 11명의 완벽한 알리바이 트릭을 무너뜨리는가 하면, 자신이 세운 범인상과 거리가 먼 용의자를 한 명씩 제외시키면서 궁극의 1인에 도달합니다. 또한 기상천외한 추리로 경찰과 사건 관계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전혀 미안한 기색 없이 동료들을 기이한 실험에 끌어들이기도 하고,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용의자들에게 거리낌 없이 직격탄을 날리기도 합니다. 어디로 튈지 가늠할 수 없는 덴마의 좌충우돌 캐릭터는 난잡한 단서들로 가득 찬 사건 현장의 기괴함이나 수족관의 차갑고 으스스한 분위기와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웃음과 소름을 번갈아 전해줍니다.
일본 학원물의 정서와 엘러리 퀸 스타일의 미스터리가 잘 믹스된 ‘수족관의 살인’이 재미와 속도감 등 강력한 페이지터너로서 미덕을 갖춘 작품인 것은 분명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전작인 ‘체육관의 살인’에 비해 아쉬움을 많이 느낀 게 사실입니다.
우선, 완벽한 알리바이를 무너뜨리고 사소한 단서를 통해 진실을 밝혀낸 덴마의 활약은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면서 동시에 약점이라는 생각입니다. ‘체육관의 살인’이 밀실의 매력, 동기가 충분해 보이는 다수의 용의자, 수사진 간의 갈등 등 미스터리의 다채로운 재미가 혼재되어 있었다면, ‘수족관의 살인’은 좀 과장하자면 덴마에 의한, 덴마를 위한 ‘원 맨 밴드’ 같았다고 할까요?
전작에서 나름 자신만의 역할을 가졌던 센도 경부와 유사쿠 형사는 물론 가제가오카 고교생들 모두 수동적이거나 관객 수준의 역할에 머물고 있습니다. 특히 남녀노소 골고루 설정된 용의자 11명은 특별한 개성이나 비중을 부여받지 못한 탓에 작품을 읽는 내내 “누가 범인일까?”라는 관심을 자아내지 못했습니다. 용의자들 간의 갈등이라든가 치정 혹은 복수의 가능성, 경찰과의 대립 등 좀더 다양한 장치를 구사했더라면 ‘덴마 원 맨 밴드’보다 더 알찬 미스터리가 완성됐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독자에 따라 의견이 갈릴 수 있는 부분 중 하나는 덴마의 천재성입니다. 일반인의 두뇌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추리를 펼치는 과정들은 단연 압권이지만, 때로는 무리하게 끼워 맞춰진 듯한 느낌을 준 장면도 있었습니다. 또,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고민하고 연구했던 단서들보다 우연과 행운 덕분에 얻은 평범한 단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점도 아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초반부에 요코하마 수족관의 상황을 묘사하고 용의자가 될 11명의 인물을 설명하기 위해 꽤 많은 분량이 할애됐는데, 정작 그 시간 동안 주인공 덴마는 사건과는 무관한 곳에 머문 탓에 가장 긴박해야 할 초반부를 느슨하고 지루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특이한 탐정 덴마의 중독성은 단 두 편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됐다는 생각입니다. 역자 후기에 따르면 곧 세 번째 작품인 ‘도서관의 살인’이 출간될 예정인데, ‘수족관의 살인’에서 투척된 두 개의 대형 떡밥이 후속작에서 어떻게 그려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하나는 오타쿠 캐릭터 덴마의 멜로 라인이고, 또 하나는 덴마의 여동생이 남긴 폭탄발언, 즉 덴마가 집을 나와 학교 동아리 방에 은거하게 된 놀라운 사연입니다. 덩치 큰 이 두 개의 떡밥이 과연 사건과 어떻게 연결될지 무척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