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1970
유하 원작, 이언 각색 / 비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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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 것 없는 넝마주이에서 말단 정치깡패를 거쳐 폭력과 살인, 협잡과 배신의 삶을 살다가 끝내 신기루나 다름없던 강남을 향해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던 두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1970년대의 극빈한 삶 속에서도 끈끈한 우정을 간직했던 종대와 용기는 논밭뿐이던 강남이 정치꾼과 복부인에 의해 기형적으로 개발되는 과정에 휘말리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각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때론 너무나도 간절한 욕망 때문에, 때론 어떻게든 지켜주고 싶은 사랑 때문에 두 사람은 언제 자신을 향해 칼날이 날아올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뒷골목의 삶을 견뎌냅니다. 시기와 질투, 의심과 배신이 난무하는 주먹판에서 살아남기 위한 목숨을 건 분투는 잠시나마 그들이 꿈꾸던 새로운 세상을 눈앞까지 갖다 놓기도 했지만, 강남 개발을 통해 권력과 부를 움켜쥐려는 대한민국의 최상류층은 결코 그들만의 세상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유하 감독의 거리 3부작의 완결편인 강남 1970’의 소설판입니다. 불패의 부동산 신화를 자랑하는 강남이 그야말로 상전벽해를 거치는 과정은 물론 당시 국가권력과 부유층의 탐욕스러운 축재 구조까지 상세히 묘사된 덕분에 등장인물들의 불나방 같은 삶을 현실감 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유하 감독이 짜놓은 1970년대의 강남 개발기의 서사가 작위적으로 보이는 독자도 있겠지만, 지금의 양재역 부근인 말죽거리가 개발되기 직전 모습을 조금이라도 기억하는 중장년의 독자라면 현미경 같은 사실적 묘사에 감탄하면서도 당시 권력층의 탐욕에 대한 공분이 강렬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문장은 간결하고 이야기는 거침없이 속도감 있게 전개됩니다. 두 남자의 기구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파란만장한 인생이 롤러코스터처럼 전개되고, 그들이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했던 폭력적인 삶은 잔혹하기 그지없습니다. 가족이나 친구, 강남개발의 주역들, 명동파와 영등포파의 깡패 등 다양한 조연들도 적절히 배치되어 두 남자를 향한 안타까움과 긴장감을 고조시켜줍니다.

 

다만,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쓰인 작품이라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한계들이 종종 목격되는데, 우선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감정적인 몰입이 쉽지 않았던 점입니다. 서사의 규모만 보면 400페이지를 훌쩍 넘기고도 남을 것 같지만 실제론 250페이지가 채 안된 것을 보면 얼마나 빠르고 간략하게이야기가 전개됐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90년대 유행했던 조폭 영화투 톱 남주의 서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전형적인 캐릭터와 예상대로 전개된 이야기 구조입니다. 특히 영화 친구를 연상시키는 몇몇 시퀀스들은 아쉬움이 많이 남은 지점이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강남 1970’ 역시 영상을 통해 소구하는 힘이 클 것으로 보입니다. 소설에서 느낀 재미와 아쉬움들이 영상에서 어떻게 배가되거나 보완됐을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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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 상어 - 사메지마 형사 시리즈 01 뫼비우스 서재
오사와 아리마사 지음, 김성기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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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직설적인 제목과 어딘가 B급 정서가 느껴지는 표지 때문에 숱하게 소문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품절상태가 된 뒤에야 중고 상품으로 구한 작품입니다.

끝 모를 환락과 치명적인 위험이 공존하는 신주쿠의 밤풍경, 엘리트의 길을 포기한 채 타협 따윈 개나 줘버린 고독한 상어 같은 형사 사메지마, 14살 연상의 사메지마를 사랑하는 밴드 보컬이자 로켓 젖가슴을 지닌 22살의 매력녀 쇼, 그리고 동료들의 비협조와 시기 속에 경찰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을 찾아 나선 사메지마의 집요한 수사와 목숨을 건 위기일발의 액션 등 매력적인 캐릭터에 미스터리한 사건이 잘 조합된 웰 메이드 엔터테인먼트 경찰 소설입니다.


 

1990년부터 2006년까지 9편의 시리즈가 성공적으로 출간된 것은 전성기의 홍콩 느와르를 연상시키는 적절한 선정성과 풍부한 오락성 덕분이겠지만, 네 번째 작품인 무간 인형’(1993)이 나오키 상을 수상한 것을 보면 사메지마 시리즈는 단순한 오락물을 넘어선 뭔가 특별한 미덕을 지녔다고 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기구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사메지마의 과거사가 눈길을 끄는데, 보장된 미래보다 경찰로서의 원칙을 선택한 탓에 만년 경감이라는 낙오자 처지가 되었지만, 신주쿠 상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무관용의 원칙을 고수하며 오로지 자신만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온 그의 비하인드 스토리 속에는 슈퍼 히어로의 포스와 고뇌에 찬 정의남(正義男)의 이미지가 잘 믹스되어 있어서 장르물의 주인공이라는 외형 뿐 아니라 그 이상의 인간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건 자체만 보면 그리 복잡하지도 않고 미스터리가 강조된 이야기도 아닙니다. 하지만 할리우드 액션물처럼 빠르게 전개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감도 만끽할 수 있어서 페이지는 쉴 새 없이 넘어갑니다. 다만, 분량 면에서 볼 때 사건 자체에 관한 묘사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 탓에 매력적인 하드보일드 캐릭터 사메지마의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면이 덜 그려졌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경찰소설의 대가인 요코야마 히데오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트릭이나 미스터리 못잖게 인간에 대한 관찰이 깊이 있고 진정성 있게 묘사됐기 때문인데, ‘신주쿠 상어의 경우 시리즈의 첫 편이라 그런지 조금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훑고 지나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국내에는 2009신주쿠 상어이후로 더 이상 소개된 작품이 없는데(1990년대에 이 시리즈 일부가 출간되긴 했습니다), 출간된 해 비교적 호평을 받았던 이력을 감안하면 후속작 불발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전부는 어렵더라도 나오키 상을 받은 무간 인형만큼은 꼭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드는데, 그런 기회가 찾아와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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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사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9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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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생각도 못한 곳에서 서로 연결되어서, 한 번 사슬을 끊어도 다른 곳에서 연결되어 있나 봐요.”

 

꽃 사슬의 세 주인공 중 한 명인 사쓰키가 남긴 말입니다. 인연이란 단어로 대신해도 문맥이 통하는 문장이지만, 사슬이라는 단어는 아름답고 긍정적인 뉘앙스를 지닌 인연과는 달리 안타깝거나 후회되거나 잊고 싶거나 지워지지 않는 화인 같은, 그런 어두운 면을 떠오르게 만듭니다. 그런데 그 사슬의 마디마디가 꽃으로 되어 있다고 하니, 중의적이고 역설적인 제목만으로도 작품 속 인물들의 평탄하지 못한 인생경로를 예감할 수 있습니다.

 

꽃 사슬에는 세 명의 여주인공이 등장합니다. 미유키(美雪), 사쓰키(紗月), 리카(梨花)가 그들인데, 한 챕터씩 번갈아가며 1인칭 시점으로 담담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각각의 이름에는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한자(, , )가 들어가 있지만, 정작 세 여자의 삶에서 아름답고 화려한 시절은 이리저리 엮인 꽃의 사슬로 인해 제대로 음미해볼 틈도 없이 그저 순간에 불과한 안타까운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남편과 함께 행복으로 가득한 삶을 누리다가 한순간 모든 것을 잃게 된 여자, 기막힌 사슬 덕분에 한 남자를 사랑했지만 또 다른 기막힌 사슬로 인해 비극에 빠진 여자, 자신을 둘러싼 사슬의 미스터리를 캐기 위해 그 열쇠를 쥔 미지의 남자를 찾아 나선 여자 등 사슬 또는 인연 속에서 지난한 삶을 살아간 세 여자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야기들은 서로 무관한 듯 전개되다가 천천히 베일이 벗겨지면서 퍼즐 조각처럼 모여들고, 끝내 하나의 큰 그림으로 완성됩니다.


 

사실 꽃 사슬은 줄거리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작품입니다. 단 한 개의 단어만으로도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이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인터넷서점의 소개글을 절대 보지 말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다만 이 작품의 매력을 소개하고픈 욕심에 스포일러 없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 뒷면의 홍보카피를 인용하면,

 

비밀을 그러안은 세 여자. 한 여자는 돈이 필요하고, 다른 한 여자는 진실을 원하며, 또 한 여자는 과거를 지우려 한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TV드라마에서 많이 본 우연과 막장이 난무하는 스토리라고 폄하할 수도 있는 내용입니다. 각각의 개인사는 딱히 신선하다고 할 수도 없고, 그녀들이 꽃의 사슬을 통해 만나는 인물이나 겪게 되는 비극 역시 낯선 장면들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미나토 가나에는 그녀만의 소리 없이 강한문장과 비극마저 꽃보다 아름답게 그려내는 뛰어난 표현을 통해 함부로 폄하할 수 없는 묵직한 서사를 구축했고, ‘고백이나 왕복서간등을 통해 보여준 섬뜩한 형식미를 통해 상투적인 개인들의 비극을 긴장감 없이는 읽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단서는 수두룩하지만 서로를 연결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며, 흐릿한 형태로만 보일 뿐인 꽃의 사슬의 실체는 뒷이야기에 대한 궁금증과 조바심을 일으킵니다. 특히 세 여자의 이야기의 접점이 눈에 들어올 무렵부터는 비밀, 거짓말, 미스터리 등의 코드가 동시에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마지막 장까지 한 번에 달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데, 그 순간 엄청난 힘으로 폭주했던 고백의 미나토 가나에가 떠오른 것은 단지 저만의 경험은 아닐 것입니다.

그동안 고백이후 연이어 아쉬움을 느껴야했던 독자라면 이 작품으로 작가인생 제2막이 시작된 듯합니다.”라는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이나 미나토 가나에의 새로운 대표작!”이라는 출판사의 홍보카피가 양치기 소년의 습관적인 외침(?)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꽃 사슬은 미나토 가나에가 오랜만에 자신의 진면목을 발휘한, 그래서 그녀의 이름과 고백의 여운을 기억하는 모든 독자들에게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물론 비교적 소프트한 서사 때문에 독자에 따라 기대만큼 만족감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꽃을 이야기하며 그 안의 향기와 가시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게 한 꽃 사슬이야말로 어지간히 독한 이야기보다 더 강렬한 인상과 더 짙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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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언덕 가나리야 마스터 시리즈
기타모리 고 지음, 김미림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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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아래 봄에 죽기를벚꽃 흩날리는 밤에 이어 세 번째로 만나는 가나리야 시리즈입니다. 앞선 두 작품과 마찬가지로 애틋한 제목과 풍경화 같은 표지 덕분에 읽기 전부터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반딧불 언덕에는 표제작을 포함하여 모두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간단하게 소개하면, 16년 전 자신의 꿈을 위해 연인을 떠났던 한 남자가 뒤늦게 비밀을 알게 되는 반딧불 언덕’, 검은 고양이 곤타 이야기와 선술집 단골들의 음모(?)를 그린 고양이에게 보은을’, 오래된 화방을 지키며 파리로 떠난 연인을 기다려온 한 여인의 이야기 눈을 기다리는 사람’, 미스터리의 늪에 빠진 가나리야 단골들의 이야기를 그린 두 얼굴’, 연인 같았던 삼촌과의 추억이 담긴 환상의 소주(燒酒)에 관한 이야기 고켄등입니다.


 

어두운 산겐자야 골목 한 편에 두둥실 떠있는 사람 크기만 한 초롱, 그 한가운데에 새카맣고 느긋한 글씨체로 쓰여 있는 가나리야’, 그리고 마치 현실과 격리된 낯선 세상으로의 통로처럼 보이는 검게 그을린 삼나무 문 등은 시리즈 작품들에서 매번 다른 문장들로 묘사되긴 했지만, 이젠 머릿속에 그 그림이 구체적으로 그려질 정도로 선명하고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으며,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적인 요리사이자 사소한 단서 하나로 추측에 추측을 거듭한 끝에 자신만의 결론에 도달하는 안락탐정 구도 데쓰야도 이젠 반가운 이웃집 남자처럼 여겨집니다. 더불어, 모든 이를 행복하게 할 정도로 미각의 진수를 담고 있고, 도수 높은 맥주를 절로 생각나게 하는 구도 데쓰야만의 아기자기하고 특별한 레시피 역시 언제나처럼 책을 읽는 내내 침샘을 자극합니다. (다만 반딧불 언덕에선 요리 장면에 살짝 과한 분량이 할애돼서 아쉬웠습니다)

 

수록작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주인공 중 가나리야를 처음 찾은 인물은 세 명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 같이 처음 들른 가나리야에서 안락함과 오래된 단골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또한 부지불식간에 구도나 다른 단골들에게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자신에게 놀랍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 담긴 수수께끼나 의문에 대해 실은 이런 게 아닐까요?”라며 해답 또는 진실을 넌지시 건네는 구도를 보곤 더욱 크게 놀랍니다. 거듭된 놀람 끝에 가나리야 초보자들이 대체 그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었는지..”라고 물으면 누군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가나리야를 찾은 사람들은) 모두 한 번씩 그 말을 입에 담아요.”

 

따뜻하든 가슴 아프든 하나 같이 잊히지 않는 추억을 마음에 담아두었던 사람들은 가나리야에서 보낸 소중한 시간들을 통해 상처를 치유 받고, 오해했던 진실을 깨닫고, 혐오했던 자신 또는 타인을 용서하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어도 왠지 지금까지보다는 맑고 따뜻한 날들이 자신을 기다릴 것 같다는 안도감을 찾습니다. 세상을 떠난 연인의 비밀과 상처를 구도 덕분에 알게 된 반딧불 언덕의 주인공 아리사카는 뒤늦게 자책과 회한에 빠지지만 동시에 이제라도 그녀에게 사죄할 수 있음을, 또 그녀를 잊지 않고 영원히 추억할 수 있음을 감사하게 여기며 이런 말을 남깁니다.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사죄하는 일은 분명 괴롭지만, 동시에 달곰쌉쌀하다고 할 만한 무언가가 있다.”

 

역자의 말에 따르면 이제 가나리야 시리즈는 한 편밖에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지막 작품의 제목은 - 앞선 시리즈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인 - ‘가나리야를 아십니까?’이며, 단골들이 총출동하여 가나리야에 얽힌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고 합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기대되는 것은 베일 속에 감춰진 구도 본인의 이야기인데, ‘반딧불 언덕에 수록된 눈을 기다리는 사람에서 구도의 친구이자 바텐더인 가즈키가 구도에 관해 남긴 의미심장한 한마디는 시리즈 마지막 편에서 다뤄질 구도의 비밀과 추억을 암시하는 게 아닐까, 라는 제멋대로지만 조심스런 추측을 하게 만듭니다.

 

그 녀석(구도)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거든요. 아주 옛날부터.”

 

그럭저럭 10년이 넘은 가나리야에서 구도가 기다려온 사람은 누구일지, 구도와 그()가 공유했던 추억과 상처는 무엇일지, 가나리야의 단골들은 구도를 위해 어떤 세리머니와 선물을 준비할지, 그리하여 구도는 어떤 모습으로 독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지, 벌써부터 궁금증과 기대감, 그리고 아쉬움이 한꺼번에 밀려듭니다. 마지막 작품이라 손에 넣고도 아까운 마음에 쉽게 읽지 못할 것 같지만, 그래도 한시라도 빨리 출간되기를 바라는 것은 한없이 이기적인 독자의 욕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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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짓하다 프로파일러 김성호 시리즈
김재희 지음 / 시공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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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상세한 작품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안 읽은 독자라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살인사건 용의자를 상대로 면담과 검사를 진행하던 경찰청 프로파일러 김성호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타의에 의해 수사에서 빠지게 됩니다. 이후 상부의 권유로 삼보섬(진도) 연쇄 부녀자 실종사건을 맡아 보름 가까이 섬에 머물며 프로파일링은 물론 현지 경찰과의 공조수사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해냅니다.

네티즌에게 마녀사냥을 당하던 한 여성이 처참하게 살해된 사건, 아무런 공통점도 찾아볼 수 없던 삼보섬의 세 여성이 연이어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린 사건, 그리고 프로파일러 김성호의 10대 시절의 트라우마와 고통스러운 기억 등 세 갈래의 이야기가 제각각 진행되다가 예상치 못한 반전을 통해 연결고리를 드러내며 무서운 진실을 드러냅니다.

 

크리미널 마인드등 미드를 통해 익숙해진 프로파일러의 활약상을 한국 미스터리 소설로 만나볼 수 있게 돼서 기대감이 꽤 컸습니다. ‘, 짓하다는 단순히 사건을 해결하는 프로파일러의 활약만이 아니라 주인공 김성호의 끔찍한 개인사까지 포함하는 제법 큰 서사를 펼쳐놓습니다. 또한 엘리트 프로파일러부터 다혈질의 현장 형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찰 캐릭터는 물론 사건에 연루된 수많은 조연들 하나하나에게까지 공을 들인 점도 그렇고, 오랜 시간에 걸친 노력이 돋보이는 촘촘한 밑그림이나 예상을 넘어선 반전 등은 처음 만나본 김재희의 필력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증거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읽기 전부터 프로파일러가 주인공인 미스터리가 미드를 통해 한껏 높아진 한국 독자들의 눈높이를 얼마나 충족시킬 수 있을까, 라는 의문과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인데, 실제로 작품을 읽는 도중 적잖은 곳에서 이런저런 아쉬움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프로파일링 자체와 관련된 아쉬움이 제일 컸는데, 좀 매크로하게 얘기하자면, 프로파일링에 관한 지식들이 소설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한 채 겉돌면서 독자에게 강의 내용처럼 주입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김성호가 설명하는 프로파일링 결과는 경험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기보다는 강의실에서 배운 내용을 억지로 현실에 적용하는 듯 보였습니다.

또한 프로파일링 자체가 확정이 불가능한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김성호는 담당 형사에게 그는 범인이 아닙니다.”라는 단정적인 발언을 합니다. 이런 태도는 현장 형사와의 불가피한 충돌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데, 김성호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 형사의 답답함에 더 공감되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아마 작가는 김성호의 능력과 경험과 다양한 프로파일링 기법을 보여줄 의도였겠지만, 조금은 단정적이거나 외워서 발표하는 교과서 속의 지식처럼 묘사돼서 그런지, 그 의도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불어, 적잖은 양을 할애하여 김성호의 과거와 현재, 외모와 캐릭터를 설명했지만, 정작 작품을 다 읽은 뒤에도 김성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떠오르지 않은 점도 아쉬웠습니다. 대인 기피증이 있어 보이기도 하고, 트라우마에 갇힌 지독히 내성적인 성격 같기도 하고, 소심한 학자인가 싶으면 간혹 다혈질을 발휘하여 전혀 다른 인격처럼 보이기도 하고, 툭하면 상대를 날카롭게 노려보는덕분에 하드보일드 캐릭터 같으면서도 한편으론 한때 여자들한테 꽤 인기 있었던 멋진 남자 같기도 하고... 뭐랄까, 그를 설명한 퍼즐 조각들은 무수한데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다고 할까요? 어쩌면 한 인물에게 너무 많은 캐릭터를 집어넣으려다 발생한 부작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 별 세 개밖에 주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는 작위적이거나 어설퍼 보이는 디테일들 때문입니다. 김성호가 활약할 여지를 남겨놓기 위해 일부러 부실하게 이뤄지는 것만 같은 경찰의 초동수사, 범행 관련 장소마다 넉 달도 지난 CCTV 영상들이 빠짐없이 고스란히 보관돼있는 점, 국과수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필적감정을 위해 굳이 국립민속박물관 소속 학예사가 사건에 개입하는 점, 지도만 봐도 짐작 가능한 범행의 지리적 특징을 굳이 컴퓨터로 돌려보는 점, 경력 20년이라곤 믿을 수 없는 충동적이고 초보 티가 역력한 베테랑 형사의 태도, 수상한 인물을 여러 번 마주치고도 특별한 이유 없이 일부러 방치하는 듯한 모습 등 그냥 넘길 수도 있는 사소한 부분들이지만 오히려 그런 사소함때문에 읽는 내내 잔가시들이 목에 잔뜩 걸려있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가장 맥이 빠졌던 것은 마치 빅 브라더처럼 모든 것을 설계했던 초인적인 범인의 능력인데, 비유하자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랜덤한 상황들을 모조리 예측해내는 대단한 예지력의 소유자라고 할까요? 작가의 의도는 범인의 인상을 강렬하게 만들고 그가 지닌 뿌리 깊은 증오심을 드러내려 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결과적으론 막판에 이야기의 현실감만 떨어뜨리고 말았다는 생각입니다.

 

프로파일러 김성호 시리즈라는 부제를 보면 앞으로 후속작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일개 독자의 의견에 불과하지만 후속작을 기대하는 마음에서 몇 가지 당부하자면,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프로파일링, 자연스럽고 선명한 캐릭터 설정, ‘막판 뒤집기에 너무 비중을 두지 않는 이야기 구성, 매크로한 서사보다는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디테일 등에 좀더 신경 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국 장르물을 사랑하는 독자 입장에서 도진기의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못잖은 프로파일러 김성호 시리즈의 성공을 기대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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