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 높은 연인 스토리콜렉터 25
알렉산데르 쇠데르베리 지음, 이원열 옮김 / 북로드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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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들어진 액션 스릴러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입니다. 같은 스웨덴 작가인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에 비견한다는 홍보카피는 살짝 과장된 게 사실이지만, 이야기의 스케일이나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쉴 새 없이 벌어지는 사건과 반전들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제작자들이 탐낼 만한 높은 완성도와 대중성을 겸비하고 있습니다.

 

사춘기 아들을 둔 평범한 간호사 소피는 담당환자인 스페인 갱단의 중간보스 엑토르 구스만에게 호감을 가진 탓에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경찰과 갱, 갱과 갱 사이의 전쟁에 휘말립니다. 구스만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소피는 갱단의 일에 깊숙이 말려들게 되고, 구닐라가 이끄는 경찰은 구스만의 범죄 증거를 잡기 위해 그의 연인인 소피를 이용하려 합니다. 그 무렵 구스만 일당은 마약 운송루트 확보를 놓고 독일의 한케 일당과 대치중이었는데, 소피의 첫사랑이자 무기밀매상인 옌스가 그들의 전쟁에 개입하면서 소피의 상황은 점점 악화일로를 치닫습니다.

갱들의 전쟁은 한 치의 관용도 허용되지 않을 정도로 잔혹하게 벌어지고, 구닐라를 비롯한 경찰의 수사는 미행, 도청, 살인 등 초법적인 행위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런 가운데 소피는 범죄자 구스만연인 구스만사이에서 혼란을 느끼지만 경찰과 갱들이 얽힌 전쟁의 여파가 아들에게까지 미치자 모든 것을 초월하는 거대한 분노에 휩싸입니다.


 

수많은 등장인물 중 평범하거나 선하다고 할 수 있는 건 소피와 그녀의 아들을 포함한 가족들뿐입니다. 구스만과 한케의 갱단은 말할 것도 없고 구닐라가 이끄는 경찰까지도 탐욕스러운데다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여긴다는 점에서는 갱단과 정확히 닮은꼴입니다. 심지어 소피의 첫사랑이자 그녀 곁을 지키는 옌스마저도 불법적인 무기밀매상입니다. 이런 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였으니 피와 살이 난무하는 사태는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권을 놓고 암살, 협박 등 다양한 폭력을 주고받는 갱들의 대결도 스릴 넘치지만, 개인적으로는 구닐라가 이끄는 경찰의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그녀의 팀은 스웨덴 국립범죄센터에서 그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특이한 조직인데, 재미있는 건 팀원 대부분의 면면이 어딘가 한군데 이상 나사가 풀린 듯해 보인다는 점입니다. 경력이라곤 12년의 순경 활동이 전부인 불안증 환자 라르스 빙에, 현장 증거물인 돈 봉투를 슬쩍 했다가 비밀경찰에서 쫓겨난 안데르스, 반복된 과잉대응으로 신속대응팀에서 공항 경비로 좌천된 인종차별주의자 하세, 구닐라의 동생이자 모든 성인병을 끌어안고 있는 패스트푸드 중독자 에리크 등 전혀 국립범죄센터와 어울리지도, 비밀임무를 수행하는 팀원으로도 보이지 않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어느 한 순간 사이코패스로 변신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모두가 시한폭탄 같은 인격을 갖고 있습니다. 당연히 내부적인 균열과 갈등이 상존하고, 기어이 우려했던 시한폭탄이 후반부에 이르러 연이어 터지면서 갱들의 이야기보다 더 긴장감 넘치고 흥분지수를 고조시키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예전에 돈 윈슬로의 개의 힘을 읽다가 1권에서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네이버 카페 러니의 스릴러 월드에서 그 해 Top3로 꼽힐 정도로 인기를 얻었고, ‘악명 높은 연인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모자라지 않을 만큼 폭력적인 서사를 품은 작품입니다. 하지만 빗발치는 총알과 난무하는 죽음만 있을 뿐 사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서평 중 일부를 인용하면,

 

멕시코를 무대로 한 장대한 마약전쟁은 보이는데, 그 안에서 희로애락을 겪는 개인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뭐랄까... 살아있는 캐릭터라기보다는 인형 같다는 느낌?”

 

말하자면 악명 높은 연인의 가장 큰 미덕은 사람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평범한 주부이자 간호사인 소피는 주인공으로서의 캐릭터의 힘은 약하지만 독자로부터 그녀는 반드시 살아야 돼!”라는 강력한 동정과 공감을 얻어냅니다. 분량이나 역할에 있어 뜻밖에 큰 자리를 차지한 경찰 라르스 빙에는 감정과 행동의 진폭이 굉장히 큰 인물이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소피의 첫사랑인 옌스는 적당한 폭력성을 지닌 무기밀매상이자 다정다감한 훈남 캐릭터로 설정돼서 매력적으로 읽힌 인물입니다. 그 외에 다수의 조연들 역시 살아있는 인물이라는 느낌을 생생히 전해줍니다.

 

북유럽 스릴러를 대표하는 밀레니엄 시리즈가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것은 거대한 스케일과 화려한 액션이 사실감 넘치는 인물들과 잘 조화됐기 때문입니다. 사건이 어떻게 흘러가고 어떻게 해결되는가, 도 중요하지만, 등장인물들이 독자로부터 공감과 이입을 얻어낼 수 없다면 독자의 기억에서 금세 잊히는 평범한 오락물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악명 높은 연인은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겸비한 수작이었고, 또한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의 첫 편으로서도 괜찮은 출발을 했다는 생각입니다. 앞서 주인공으로서 소피의 캐릭터의 힘이 약하다고 언급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여자 소피가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폭력과 악의 연결고리 속으로 발을 담그는 과정이라는 시리즈 첫 편으로서의 임무는 무난하게 완수한 것으로 보입니다.

 

후반부에 던져진 예고대로라면 후속작에서는 소피가 수동적인 캐릭터에서 벗어나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인물로, 또 어떤 형태로든 실제 폭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입니다. ‘밀레니엄 시리즈의 리스베트처럼 그 자체가 살상무기인 캐릭터까지 진화하진 않겠지만, 현재와는 사뭇 다른 과격한 소피가 될 것은 확실합니다. 소피의 두 번째 이야기와 함께 그녀의 변신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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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맨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6
오리하라 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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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하라 이치가 펼쳐놓은 트릭의 향연을 마음껏 맛볼 수 있는 연작 단편집입니다. 낡고 퇴락한 4층짜리 연립주택에 그랜드맨션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놓은 것부터 오리하라 이치의 삐딱한 비틀기의 전조가 느껴집니다. 모두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그랜드맨션에 거주하는 다양한 인물들이 각 수록작에서 주인공을 맡아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등장인물들 역시 전혀 그랜드하지 않은 캐릭터들인데, 이런저런 사연으로 홀로 사는 독거노인, 아내에게 이혼 선고를 들은 중년의 실직자, 맨션에서 쫓겨나기 직전의 미스터리 마니아, 성질 괴팍한 관리인, 불법 거주자, 사기꾼 등 대부분 사회적 약자 또는 음습하거나 의심스러운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함께 산 지 몇 년이 지나도록 이름조차 모른 채 지내고, 겉으로는 웃으며 인사를 나눠도 뒤돌아서는 흉보고 의심하고 증오하며 살아갑니다. 또한 층간 소음, 불법침입, 절도, 살인, 전화사기, 스토킹 등 온갖 종류의 범죄가 난무하여 오래된 4층짜리 연립주택을 한시도 바람 잘 날 없게 만듭니다.


 

오리하라 이치는 7편의 작품을 통해 시간에 관한 트릭(선의의 제삼자), 공간에 관한 트릭(304호 여자), 또 시공간을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트릭(마음의 여로, 리셋) 등 다양한 서술트릭의 만찬을 선보입니다. 그의 전작들을 읽어본 독자로서, 그리고 트릭에 넘어가지 않겠다는 전의(?)로 가득찬 독자로서 어느 한 줄도 대수롭게 읽어선 안 되며 특히 별 것 아닌 듯 툭툭 튀어나오는 단서를 헛되이 지나쳐선 안 된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결국엔 번번이 그에게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후반에 실린 옮긴이의 말을 읽곤 오리하라 이치의 서술트릭에 대처하기 위한 당연하고도 뻔한 전략을 또다시 간과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각 단편에서 누누이 서술되는 글을 특별히 잘 기억해두길 바란다. 작가가 반복하는 일에는 반드시 이유와 비밀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눈을 똑바로 뜨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잠깐만 주의를 게을리 하면 작가가 곳곳에 놓은 덫에 걸려 허우적대다 자신의 무릎을 치는 수밖에 없다.”

 

매번 마지막 장에 이르러 , 그거였구나!”라고 뒷북을 치는 것이 서술트릭을 읽는 재미지만, 나름 한두 편 정도는 아슬아슬하게나마 작가를 앞서가고 싶은 욕심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작품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단 이번에도 오리하라 이치에게 완패했음을 자인해야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선의의 제삼자’, ‘마음의 여로’, ‘리셋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방에 절묘한 트릭들을 흩어놓은 채 시공간을 마음껏 주무르는 이야기들이라 재미있게 읽기도 했지만, 동시에 잔잔하거나 애틋한 여운도 함께 만끽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리하라 이치의 트릭에 빠져든 채 허우적대다 보면 금세 마지막 장에 이를 정도로 가독성이 높고 단편으로서의 미덕도 잘 살아있는 작품입니다. 일부 인물들을 계속 활용한다면 그랜드맨션 2이라는 후속작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은데 제 바람대로 돼 줄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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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일격 밀리언셀러 클럽 136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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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의 여자를 살해한 루이스 피넬이 9년 만에 체포됩니다. 하지만 그는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인 바버라 에팅거만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그녀가 살해됐을 당시 루이스 피넬의 알리바이는 완벽했고, 그녀의 아버지 찰스 런던은 매튜 스커더에게 딸의 죽음의 진실을 의뢰합니다. 하지만 천하의 매튜 스커더라도 9년이나 지난 사건을 조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바버라 에팅거가 살던 아파트의 이웃들, 그녀의 전 남편과 여동생, 직장동료는 물론 같은 브루클린에서 루이스 피넬에게 살해된 희생자와 그 관련자들까지 탐문하지만 매튜 스커더의 손에 들어오는 명확한 증거나 목격담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의뢰인 찰스 런던이 수사 중단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매튜 스커더는 그와 무관하게 수사를 계속 진행했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단서를 얻어 진범을 찾아내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진범이 밝힌 바버라 에팅거 살해 동기는 그동안의 탐문을 무색하게 할 만큼 어처구니없고 충격적이었습니다.

 

매튜 스커더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입니다.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이라 결과론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미스터리나 스릴러에서 원톱 주인공이 이끄는 시리즈의 경우 대략 4~5편쯤 이르면 작가들이 한번쯤 주인공의 숨겨진 개인사라든가 마음 깊이 끌어안고 있는 고뇌나 갈등을 심도 있게 다루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인 라스트 코요테를 읽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어둠 속의 일격은 사건 만큼이나 매튜 스커더의 평탄하지 않은 삶에 많은 분량을 할애합니다. 그가 경찰을 그만둔 사연이라든가 아내와 아이들과 떨어져 살고 있다는 사실은 전작들에서도 조금씩 설명돼왔지만, 이번에는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옆에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회한에 가득 찬 채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매튜 스커더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번에 매튜 스커더가 맡은 사건은 관련자들에게 9년 전의 기억을 되살릴 것을 요구하는, 따라서 당연히 벽에 부딪히거나 무리한 추정에 기댈 수밖에 없는 사건입니다. 어쩔 수 없이 탐문과 자료조사는 방향성이나 계획성 없이 진행됩니다. 당연히 매튜는 몇 번씩이나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나?’ 자문하게 되고, 헛고생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는, 또 내가 왜 이러고 살고 있나, 라는 그의 자괴감은 그를 수없이 많은 바(bar)와 술집으로 몰고 가 버번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듭니다.

기억이 맞는다면 그가 완전히 필름이 끊어질 정도로 취한 것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어둠 속의 일격에 등장하는 매튜 스커더는 짧지만 애틋한 로맨스를 나눈 재니스 킨과 함께 알코올 중독 치료 모임에 나가는 것이 필요해 보일 정도로 자주 엉망진창이 되곤 합니다. 오죽하면 인생에서 도망친 주정뱅이라는 묘사까지 동원될 정도입니다.

 

그의 빠지지 않는 버릇 중 하나인 길거리에서 시비 붙기역시 이번엔 완전히 상대를 잘못 골랐거나 명백히 오버한 상황으로 묘사됩니다. 또한 이혼한 전처 애니타를 통해 함께 기르던 애완견 밴디가 죽은 소식을 듣게 되는데, 이혼했지만 두 사람을 연결해주던 몇 안 되는 끈 중 하나였던 밴디의 죽음은 매튜 스커더의 자괴감을 더욱 깊고 쓰리게 만드는 에피소드입니다. 정리하자면, 그는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채 헤어날 수 없는 진창에 빠져들었고, 때로는 자신을 망가뜨리려고 일부러 자해하는 듯한 인상까지 주면서 말 그대로, 총체적인 난국에 빠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런 설정들은 매튜 스커더를 혼란에 빠뜨림으로써 스스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려는 작가의 명백한 의도로 보이는데, 그런 탓인지 사건은 꽤 흥미롭고 궁금증을 유발하게끔 시작됐지만 해결 과정이나 진범 찾기는 우연이나 설정에 기대는 부분이 많아 보였고, 분량에 있어서도 사건보다는 매튜 스커더 수난사에 더 방점을 찍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기존의 매튜 스커더 팬들에겐 오늘도 어디에선가 버번 또는 버번을 넣은 커피를 마시고 있을 고독하고 불안정한 뉴요커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흥미롭게 읽히겠지만, 이 작품이 매튜 스커더와의 첫 만남인 독자라면 자칫 당혹감만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리즈의 첫 작품인 아버지들의 죄부터 순서대로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매튜 스커더의 하드보일드 또라이캐릭터를 제대로 맛보려면 전작들이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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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과 창조의 시간 밀리언셀러 클럽 135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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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를 제집 드나들 듯 하던 제이컵 자블런, 일명 스피너가 피살된 채 발견됩니다. 그는 죽기 전 매튜 스커더를 찾아와 봉인된 봉투를 맡기며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열어볼 것을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그 봉투에는 스피너가 모은 세 사람에 대한 협박용 자료가 잔뜩 들어있습니다. 굳이 죽은 스피너의 부탁을 들어줄 필요는 없었지만 매튜는 살인이 벌어진 이상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판단하곤 스피너의 친구 겸 협박범으로 위장한 뒤 세 사람을 만나기 시작합니다. 말하자면 자신을 미끼로 살인범을 끌어들이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예상대로 그에게 위기가 찾아오고, 매튜는 세 사람 중 유력한 용의자를 지목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일이 이상하게 꼬이면서 매튜는 죽음의 문턱까지 넘나드는 위기를 맞이합니다.

 

매튜 스커더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입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요즘 장르물들에 비해 굉장히 짧은 분량인 240여 페이지에 불과한데, 그만큼 사족 없이 알찬 미스터리가 담겨 있습니다.

 

스피너가 세 사람을 협박했던 것은 명백히 불법적인 일이지만, 그가 죽기 전에 알아낸 세 사람의 과거는 훨씬 더 무겁고 악의적인 것들입니다.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인맥과 돈의 힘으로 피해간 사람, 치명적인 과거를 감춘 채 버젓이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는 사람, 죄악에 가까운 추잡한 짓을 벌이고도 권력의 핵심부에 앉아있는 사람 등 어떤 형태로든 법의 응징을 받게 만들고 싶은 자들뿐입니다.

 

스피너는 탐정인 매튜가 하찮은 잡범인 자신을 위해 복수해줄 거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죽을 경우 살인자를 못 본 척하진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대대로 매튜는 스피너의 친구이자 똑똑한 협박범으로 세 사람 앞에 나타납니다. 매튜가 대담하게 연락처와 거처까지 밝힌 채 자신을 미끼삼아 살인범을 유인하는 설정 덕분에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협박범으로 가장한 매튜의 거침없는 언사도 맛깔났고, 몇 차례 반복되는 화려하고 터프한 액션도 나름 재미를 선사합니다. 물론 뭘 믿고 저러나, 싶을 정도로 위험을 자처하는 대목에선 어쩔 수 없이 픽션의 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곤 하지만, 그래도 저런 게 어딨어?”라는 과장된 허구라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다만,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매튜가 유력한 용의자를 지목하는 장면인데, 독자의 눈에도 그렇게 확신할만한 근거나 증거가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매튜는 왠지 자신이 지목한 용의자 외엔 혐의 없음이라는 확신을 갖습니다. 더구나 그런 확신을 몇 번씩 거듭 강조합니다.

이럴 경우 이야기의 흐름으로 보나 남은 분량으로 보나 뒤집어질 것이 분명해 보이더라도 독자가 매튜의 확신에 동조하고 공감해야 뒤에 나올 반전이 의미를 갖게 되는데 단지 추측만으로 쉽게 용의자를 지목하다 보니 매튜가 왜 이러지?”라는 의문만 들 뿐이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후속편이자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인 어둠 속의 일격을 먼저 읽고 말았는데, ‘어둠 속의 일격이 매튜의 개인적인 고뇌와 불행한 삶에 좀더 초점을 맞췄다면, ‘살인과 창조의 시간은 선명하고 깔끔하게 사건 위주의 서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매튜에 관한 이런저런 다양한 만찬을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아 두 편을 연이어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읽지 못한 매튜 스커더 시리즈가 책장에 두 편 남아있는데, 아끼면서 천천히 읽을 건지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다 읽어버린 후에 신간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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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눈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6
미쓰다 신조 지음, 이연승 옮김 / 레드박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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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009년에 발표된 단편들이 실린 미쓰다 신조의 첫 호러 단편집입니다. 표제작 붉은 눈을 비롯하여 8편이 실려 있고, 4편의 엽편(葉篇) 호러가 중간중간 삽입된 구성입니다. 그의 작가 시리즈보다는 도조 겐야 시리즈에 더 열광했던 터라 기대감이 무척 컸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기대 대비 만족감은 조금 떨어졌고 별점도 4개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수록작 중 여러 편이 딱 떨어지는 엔딩이 아니라 괴담에 어울리는 오픈된 결말로 마무리된 점, 그래서 마지막 줄을 읽고 나서도 , 끝났군.”이라는 깔끔한 느낌이 아니라 어딘가 좀 찜찜한 구석이 남았던 점이 이런저런 아쉬움을 남긴 큰 이유였습니다. 물론 이런 아쉬움은 작품 자체의 완성도와 무관하게 호러물을 대하는 개인적인 태도와 취향의 탓 때문이었습니다.

 

일본의 괴담들 가운데 상당수가 학교’, ‘폐가’, ‘저택등 건축물이나 공간을 공포심과 괴이감의 출발점으로 사용하는데, ‘붉은 눈의 수록작들 역시 대부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쪽으로 기운 채 다 쓰러져가는 폐가(붉은 눈), 5년 전의 화재의 잔재를 그대로 끌어안고 있는 저택(괴기 사진작가), 벼랑 끝에 선 채 마치 거리를 내려다보듯 서있는 서양식 저택(내려다보는 집), 늪 앞에 출입구가 있어서 늪을 밟아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물(한밤중의 전화) 등 실제로 그 앞에 불빛 하나 없이 홀로 서있게 된다면 순식간에 온 몸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각양각색의 건축물들이 미쓰다 신조 특유의 축축하고 음습한 묘사를 통해 더욱 소름 돋게 그려집니다.

그 외에도 꿈, 거울, 착시를 통해 목격하는 끔찍하거나 기이한 환상, 애너그램을 이용한 수수께끼 같은 캐릭터 꾸미기, 곧 죽을 자의 신상을 꿰뚫어보는 초능력 등 다채로운 소재들 덕분에 8편의 수록작 모두 뚜렷한 개성과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정말 무서운 괴담을 기대한 독자들, 특히 작자미상이나 도조 겐야 시리즈를 읽으면서 괜히 움찔했던 경험을 다시 한 번 기대했던 독자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읽는 순간 무섭거나 괴이한 느낌을 준다기보다는 자려고 이불 속에 누웠을 때 슬며시 기억 속에 떠올라 괜히 화장실에 가는 것마저 주저하게 만드는, 말하자면 은밀한 후유증을 자아내는 괴담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하긴 그런 종류의 괴담이 더 파괴력이 강할지도 모를 일이긴 합니다.

 

미스터리와 결합된 호러물을 좋아하다 보니 수록작들 가운데 수집된 괴담 들려주기식의 이야기는 제겐 큰 감흥을 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민속학적인 배경을 이용하든 도시 괴담류의 현대적 배경을 이용하든 미쓰다 신조의 글빨은 어떤 식으로든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감흥까지는 무리였지만 으스스한 기분에 사로잡힌 채 집중과 몰입을 즐긴 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부록으로 실린 평론가의 해설 가운데 무시무시한 최상의 작품집이라든지 역대 공포소설집 중에서도 최상위라는 표현은 다소 과장된 면이 없지 않지만, “지금껏 출간된 그리고 앞으로 출간될 미쓰다 신조의 작품으로 들어가는 통행증이란 표현은 이 단편집의 미덕을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적절한 문구라고 생각됩니다. 미쓰다 신조에게 익숙한 독자라면 몰라도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붉은 눈은 아주 괜찮은 텍스트가 돼줄 것 같습니다.

 

(호감도 순으로 뽑으면 붉은 눈’, ‘죽음이 으뜸이다’, ‘맞거울의 지옥입니다. 각각 첫 수록작과 마지막 수록작인 붉은 눈죽음이 으뜸이다는 두 눈의 홍채 색깔이 다른 여학생을 등장시킨 연작이라 흥미진진했고, ‘맞거울의 지옥은 미쓰다 신조 특유의 호러+미스터리 조합이 깔끔하게 이뤄져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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