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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수도사 ㅣ 사형집행인의 딸 시리즈 2
올리퍼 푀치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사형집행인 야콥 퀴슬과 그의 딸 막달레나, 그리고 젊은 의사 지몬 프론비저는 코프마이어 신부의 독살 사건을 조사하던 중 ‘템플기사단의 보물’에 관해 알게 됩니다. 지몬은 신부의 여동생 베네딕타와 함께 수수께끼를 풀어가며 템플기사단의 보물을 찾기 위해 바바리아 주 일대의 성당과 수도원을 뒤지고 다닙니다.
한편,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수도사들이 지몬과 베네딕타의 뒤를 집요하게 쫓습니다. 몇 차례의 위기를 넘기고 여러 개의 난해한 수수께끼를 푼 끝에 지몬과 베네딕타는 보물의 위치를 파악하지만, 동시에 자신들을 쫓던 검은 수도사 일행과 마주치고 맙니다.
사형집행인 야콥 퀴슬은 여러 경로로 들어온 정보를 통해 사건의 윤곽은 물론 지몬과 베네딕타가 큰 위기에 빠졌음을 알게 됩니다. 서둘러 보물이 묻힌 문제의 장소에 도착한 야콥 퀴슬은 그곳에서 지몬과 베네딕타, 딸 막달레나와 극적으로 만나고, 템플기사단의 보물을 놓고 검은 수도사들과 마지막 일전을 벌입니다.
중세라는 시대적 공간은 상반되는 두 가지 뉘앙스를 품고 있는데, 하나는 문명의 개화나 과학의 발달이라는 밝고 긍정적인 면이고, 또 하나는 마녀사냥으로 상징되는, 원시성을 벗어나지 못한 본능적이고 잔혹한 면입니다. 픽션의 무대로서의 중세는 이런 양면성으로 인해 호기심과 기대감을 유발하는데, ‘사형집행인의 딸 시리즈’는 문명과 원시의 대립 또는 혼재를 잘 살린 작품입니다.
시리즈 첫 편인 ‘사형집행인의 딸’이 연쇄소년살인과 마녀사냥을 주된 소재로 삼았다면, 이번 작품은 템플기사단의 보물을 둘러싼 어드벤처 스릴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좀더 가벼웠다면 ‘인디애나 존스-사형집행인 버전’이라고 부를 수도 있었겠지만, ‘검은 수도사’는 제목이 주는 느낌 그대로 목숨을 건 잔혹한 보물찾기 이야기입니다.
숨겨진 전설적인 보물,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 같은 단서들, 그것을 찾아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추격전을 벌이는 주인공과 악당들, 그리고 그 와중에 알콩달콩 벌어지는 3각 로맨스 등 할리우드 식 보물찾기 모험물에 어울리는 맛깔난 코드들이 잔뜩 들어있습니다. 덧붙여 대를 이어 천대 받아온 사형집행인의 비애와 피로 얼룩졌던 종교 갈등 등 중세만의 독특한 사연들이 함께 버무려져 있어서 영화 소재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구성 면에서는 세 주인공(야콥, 막달레나, 지몬)의 동선을 흩어놓고 각자 상대해야 할 악당을 설정함으로써 긴장감과 위기감을 고조시켰습니다. 지몬과 베네딕타가 전형적인 주인공 역할을 수행했다면, 야콥 퀴슬은 본연의 사형집행인의 업무를 충실히 이행하면서 동시에 정보전을 진행했고, 야콥의 딸 막달레나는 원톱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독자들에게 사건의 큰 그림을 소개했습니다. 주인공들이 ‘따로 노는’ 전개가 부담스러운 전략이긴 하지만, 이 작품의 경우 모두 함께 보물찾기에 나섰다면 무척 지루한 전개가 됐을 것입니다.
캐릭터 역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던 전작에 비해 노련하고 유연해진 것은 물론 영리하고 대담해진 느낌을 받았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변신’은 첫 편을 읽은 독자에겐 무척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야콥 퀴슬은 원래 사형집행인으로서의 거칠고 원시적인 매력이 강한 캐릭터였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런 부분들이 상당히 ‘거세’된 반면, 지혜롭고 부드러우며 심지어 정치적이거나 ‘착한 사형집행인’의 인상이 부각됐습니다. 첫 편에서 역할이 미미했던 막달레나는 가문의 유산인 야성은 여전했지만 조금은 소란스러운 ‘왈가닥 캐릭터’가 된 듯 했고, 그녀의 연인이자 의사인 지몬은 전편에 비해 지나치게 똑똑해진 나머지 검은 수도사 일행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를 척척 풀어내는 ‘인디애나 존스’가 돼버렸습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재미있게 달리긴 했는데, 뭔가 좀 허전한 느낌이 들어서 전작인 ‘사형집행인의 딸’을 읽고 쓴 서평을 찾아보니 “악당들의 캐릭터와 전략이 아쉬웠다”, “반전이 좀 밋밋했다”라는 표현이 눈에 띄었습니다. ‘검은 수도사’에서 느낀 허전함의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우선 악당의 캐릭터와 전략의 경우 ‘보물을 찾겠다는 의욕은 넘치는데, 그것을 찾기 위한 수수께끼를 풀 능력이 안 되니 주인공들의 꽁무니만 죽어라 따라다니는’ 역할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런 악당들의 행태는 본문 속에서 “지몬과 베네딕타는 누군가 자신들의 뒤를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식으로 묘사되곤 하는데, 문제는 이런 문장이 여러 챕터에 걸쳐 반복되면서 오히려 긴장감을 떨어뜨렸다는 점입니다.
반전의 경우 ‘템플기사단의 보물’에 관한 것 외에는 대체로 중반부 쯤 눈치 챌 수 있는 여지가 많았습니다. 작품 자체가 반전보다는 모험물에 방점이 실린 작품이라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더 잘 감춰뒀다가 나중에 빵~ 터뜨렸다면 후반부의 긴장감을 훨씬 고조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외에도 적정선보다 조금 넘쳐 보이는 분량, 조금은 어설퍼 보이는 수수께끼들, 위기에 처한 주인공들을 위해 작가가 베푼 과도한 친절 - 생각지도 못한 도움의 손길이나 막다른 상황을 타개해줄 단서가 수시로 출현하는 - 등이 읽는 내내 아쉬움을 남겼지만, 전체적으로 평하자면 보물찾기 모험물이라는 대중적인 재미에는 충실한 작품이었고, 앞서 언급한대로 문명과 원시가 공존한 중세를 사실적으로 잘 묘사한 것은 물론 작품 곳곳에서 목격되는 작가의 꼼꼼하고 방대한 자료조사 덕분에 중세 독일을 직접 여행한 듯한 시각적인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 만나게 될 사형집행인 일가족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악당들과 마주칠지 모르겠지만, 조금은 더 거칠고, 본능적이고, 중세적인 캐릭터가 부각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더불어 그 시대에 걸맞는 적절한 잔혹함도 함께 맛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출판사 소개글에 따르면 ‘사형집행인의 딸 시리즈’는 두 편 정도가 더 출간됐다는데 나머지 작품들도 머잖아 한국에 소개되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