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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 에피소드 S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현정수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6월
평점 :
본편인 ‘어나더’의 표지가 길거리에서 들고 다니기엔 영 부담스러운 정통 호러 풍이었다면, 속편인 ‘어나더 에피소드 S’는 조금은 다른 의미의 부담감을 줍니다. 여주인공 미사키 메이의 45도 프로필을 화려한 색상과 디자인으로 구성한 표지는 그녀가 살고 있는 인형 갤러리의 지하실처럼 ‘빨아들이는’ 매력을 내뿜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쪽 눈에 안대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기운을 발산하는 이목구비는 마치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머물고 있는 듯 보이고, 거칠고 날것 같은 머리칼과 그녀가 들고 있는 청회색 스케치북의 조합은 ‘어나더’를 읽으면서 머릿속에 그렸던 미사키 메이의 이미지 그대로였습니다.
본편인 ‘어나더’의 중후반부쯤 여름방학을 맞은 미사키 메이가 가족과 함께 잠시 요미야마를 떠나 별장에 다녀오는 대목이 있는데, ‘어나더 에피소드 S’는 그 시기에 미사키가 한 유령을 만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작가 설명에 따르면 제목의 S는 Summer(여름)이기도 하지만, Sitai(시체) 또는 Shinkirou(신기루)의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이 작품의 주된 화자인 Sakaki(사카키)를 뜻하기도 합니다. 사카키는 1987년 요미키타 중학교 3학년 3반의 학생이었고, (‘어나더’에서 언급됐던) 수학여행 버스사고로 부상을 입은 뒤 요미야마를 떠난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11년이 지난 1998년 5월 3일, 죽습니다. 그리고 유령이 되어 자신이 살던 호반의 저택에 나타납니다. 자신이 죽은 이유도 과정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자신의 죽음이 누나 부부에 의해 은폐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카키는 유령의 몸으로 저택 곳곳을 뒤지며 죽음의 진상과 함께 자신의 시신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던 중 가족 간의 인연으로 인사를 나눈 적이 있는 미사키와 마주칩니다.
사카키는 안대 속 의안을 통해 유령인 자신을 알아보는 미사키와 함께 자신의 죽음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면서 조금씩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습니다. 그리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 동기와 과정을 알아내고 자신의 시신도 발견합니다. 하지만, 미사키를 통해 ‘유령’의 진실을 듣곤 큰 충격에 빠집니다.
“들려줄까, 사카키바라 군? 네가 몰랐던 올 여름의, 또 한 명의 ‘사카키’ 이야기...”
이야기는 미사키 메이가 (‘어나더’의 주인공인) 사카키바라 코이치에게 별장지에서 만난 유령 사카키와의 기이한 인연을 들려주는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그리고 본편의 대부분은 유령 사카키의 독백형 1인극처럼 진행됩니다.
작가 스스로도 “당황하는 독자도 있을지 모르겠지만”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어나더’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마주하게 되어 무척 낯설기만 했습니다. 이 작품이 ‘어나더’의 속편이 아니라 독립된 유령 소재 호러물이었다면 아마 쉽게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내용만 놓고 보자면 잘 해야 중편 정도의 규모인데다 마지막 반전을 제외하면 평범한 유령 이야기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포인트는 유령 사카키가 1987년 요미키타 중학교 3학년 3반을 휩쓴 재앙의 희생자 중 한 사람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26살의 나이에 아버지의 유산으로 고등유민처럼 유유자적 살아가는 외양과는 반대로 3학년 3반이 남긴 불행한 유산은 11년이 지나도록 사카키의 삶을 짓눌러 왔습니다. 기어이 그는 죽음에 이르렀고, 유령이 되어서도 ‘불행’에게 발목잡힌 처지가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1998년의 3학년 3반에 닥친 재앙에 관해 조언을 얻고자 미사키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사카키의 죽음의 진상과 멈출 줄 모르는 3학년 3반의 재앙이라는 두 축으로 진행됩니다. ‘어나더’(3학년 3반의 재앙)와 ‘에피소드 S’(유령 이야기)가 결합하는 지점이 바로 이곳입니다. 특히 1987년 여름방학, 재앙을 피해 자신의 집에 놀러왔던 친구들과 사카키가 찍은 한 장의 사진은 작품 속에서 꽤 중요한 소품으로 묘사되곤 하는데, 후반부에 밝혀지는 사진 속의 비밀은 사카키의 죽음의 동기는 물론 이 작품의 정체성, 즉 왜 이 작품이 ‘어나더’의 속편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설정은 ‘어나더’ 없이는 ‘어나더 에피소드 S’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기 힘들다는, 무척이나 역설적이고 곤혹스러운 결론을 이끌어내게 되는데, 대체로 속편이나 시리즈물의 경우 본편이나 전작을 읽지 않더라도 독자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끔 ‘친절한 부연설명들’이 군데군데 삽입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어나더 에피소드 S’는 본편인 ‘어나더’를 읽지 않고는 중요한 맥락을 이해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작품 자체의 매력에 빠져들기 쉽지 않은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광팬은 아니지만 ‘어나더’를 재미있게 읽은 독자 입장에서 ‘어나더 에피소드 S’ 자체가 가진 매력과 약점은 한 눈에 들어올 정도로 분명해 보입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요미키타 중학교 3학년 3반의 재앙은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게 되고, 살아남은 자 역시 남은 기억 혹은 잊힌 기억 때문에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유령이라는 소재와 독백형 1인극 형식을 통해 구성한 점은 여느 호러물이나 미스터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함이자 이 작품만의 매력입니다.
하지만 이 매력은 동시에 약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내용과 형식 모두 심하게, 조금은 현학적으로 보일만큼, 특이하다는 점이고, 또 한 가지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어나더’ 없이는 제대로 된 해석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작품 말미에서 아야츠지 유키토는 ‘어나더 에피소드 A’ 또는 ‘어나더 에피소드 S2’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는데, ‘옮긴이 후기’를 보니 올해(2014년) 가을부터 ‘어나더 2’가 일본에서 연재된다고 합니다. 말미의 단서대로라면 공간적 배경은 역시 요미키타 중학교가 될 것으로 보이고, 시간적 배경은 2001년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사키와 사카키바라는 3년이 지나 대입시험을 앞둔 고3이 돼있겠지만, (물론 갑자기 10년 정도 건너뛰어 미사키나 사카키바라가 3반 담임으로 요미키타 중학교에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를 끌고 가는 중심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연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국내에도 빠른 시간 안에 소개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