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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나무 1
존 그리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미시시피 주 포드 카운티의 자산가 세스 후버드가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그는 일면식도 없던 변호사 제이크 브리건스에게 자필 유언장을 남겼는데, 문제는 1년 전 작성했던 유언장을 완전히 뒤집는 내용인데다 유족에겐 단 한 푼도 남기지 않은 반면, 가난한 흑인 가정부 레티에게 대부분의 유산을 물려주겠다고 밝힌 점이었습니다.
개망나니 같은 세스의 아들과 딸은 물론 주정뱅이에 사고뭉치인 레티의 남편까지 하이에나를 닮은 변호사들을 앞세워 이전투구 같은 유산 상속전에 뛰어들지만 정작 큰 유산을 받게 된 레티는 왜 세스가 그런 유언장을 남겼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제이크는 과거 상관이었던 루시엔, 이혼전문 변호사 해리 렉스, 그리고 레티의 딸이자 변호사 지망생인 포티아와 함께 세스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합니다. 합의를 종용하는 상대 변호사들의 제안을 뿌리치고 배심재판에 이른 제이크는 뜻밖의 증인들 때문에 패소 위기에 몰리는 한편, 세스의 새 유언장을 낳게 한 오래된 과거사를 알게 되면서 큰 충격에 빠집니다.
오래 전 일이지만, 초창기 작품인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의뢰인’, ‘펠리컨 브리프’ 등이 연이어 대성공을 거두면서 법정물에 관한 한 존 그리샴을 능가할 작가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잘 만들어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그러하듯 존 그리샴은 뛰어난 필력을 통해 독자를 짜릿한 롤러코스터에 탄 듯 흥분시킨 것은 물론 분노와 쾌감의 게이지를 극단적으로 지휘하며 마지막까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만들곤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읽은 작품들은 과거의 명성에 못 미친 경우가 많아서 안타까웠는데, 그래선지 ‘속죄나무’에 기대가 남달랐던 게 사실입니다.
‘속죄나무’의 전편에 해당하는 ‘타임 투 킬’은 책으로도 영화로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주인공 제이크 브리건스의 당시 활약을 쉽게 짐작할 수 있도록 이 작품 곳곳에 상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타임 투 킬’에서 딸을 강간한 백인남성들을 살해한 흑인을 변호했던 제이크는 세스 후버드의 유언장을 둘러싼 사건을 맡게 되면서 다시 한 번 흑백 인종의 전쟁터나 다름없는 미시시피를 무대로 법의 전쟁을 치릅니다.
1~2권 합쳐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 걸맞게 수많은 인물과 사건이 등장합니다. 특히 제이크를 포함하여 10여 명의 다양한 변호사가 등장하는데, 말 그대로 변호사라는 직업의 대표 캐릭터를 총망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성격과 스타일 모두 극단적인 대비를 보여줍니다. 또한 유언장과 연관 있는 인물들 역시 탐욕, 증오, 연민, 용서, 화해 등 다양한 감정들을 품고 있어서 변호사들 못잖게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합니다. 이런 인물들을 앞세운 존 그리샴은 ‘못된 백인 vs 착한 흑인’ 또는 ‘탐욕스런 흑인 vs 정의를 수호하는 백인’ 등 다양한 갈등 관계를 포진시켜 독자들의 감정 이입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냅니다.
이야기의 뿌리는 미국 남부의 오랜 흑백 갈등이지만, 존 그리샴은 이 갈등 자체를 전면에 내세우진 않습니다. 오히려 보일 듯 말 듯 깔아놓은 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툭툭 던지곤 합니다. 즉, ‘인간의 탐욕’이라는 핵심 주제를 위해 달려가면서 간간이 극성 강화용 양념으로 흑백 갈등을 활용하곤 하는데, 말하자면, 탐욕에 관한 이야기가 살짝 지루해질 무렵 독자의 입맛을 당기는 양념(흑백 갈등을 환기시키는 사건들)을 뿌려댐으로써 재미와 긴장감을 되살아나게 하고 페이지를 넘기는 힘을 재가동시킨다는 뜻입니다.
물론 엔딩에서 밝혀지는 세스의 유언장의 진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온 흑백 갈등과 탐욕이라는 두 코드를 모두 포함하고 있지만 존 그리샴은 800여 페이지의 분량 내내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으며 두 코드의 균형을 잘 유지했고, 덕분에 도식적이고 예측 가능한 스토리를 넘어 인간의 본성을 파헤치는 대서사에 가까운 법정물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미덕과 장점에도 불구하고 만점을 줄 수 없었던 아쉬움도 꽤 컸는데, 우선은 스토리 대비 분량의 문제입니다. 사족에 가까운 캐릭터와 그들의 이야기가 적지 않았고, 그 부분들은 예외 없이 지루함을 선사하곤 했습니다. 알맹이만으로 꽉 차게 압축해서 5~600 페이지 분량의 한 권으로 압축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모든 진실이 드러나는 엔딩의 허망함(?)입니다. 배심원 최종 심의 가운데 불쑥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갑자기 수십 년 전의 역사 이야기가 나와서 조금 당혹스럽기는 하지만...”
그리고 이어지는 진술은 제이크가 800여 페이지에 걸쳐 들였던 모든 수고를 한순간에 허망하게 만듭니다. 즉 느닷없이 튀어나온 과거의 사건 하나 때문에 이야기가 급물살을 타면서 종결된다는 뜻입니다. 존 그리샴이 초반부터 떡밥처럼 몇 차례 언급하긴 했지만, 설마 그것이 마지막 반전으로 활용되진 않겠지, 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엔딩에서 튀어나온 ‘수십 년 전의 역사 이야기’는 아쉽고 또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읽은 존 그리샴의 작품이 ‘소송사냥꾼’이었는데, 그때 쓴 서평을 찾아 읽어보니 꽤나 혹평에 가까운 내용이었습니다. 전성기의 존 그리샴에 대한 그리움과 갈증도 서평 안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속죄나무’가 일정 부분 그 그리움과 갈증을 해소시켜주긴 했지만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아쉬움 때문에 전성기의 존 그리샴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문장들과 사실감 넘치는 캐릭터 등 존 그리샴의 내공은 여러 번 감탄할 정도로 뛰어났고, 방대한 분량임에도 거의 오타가 없었던 완벽한 번역 덕분에 즐거운 책읽기의 시간이 됐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남은 아쉬움들은 존 그리샴의 초창기 작품들을 다시 한 번 읽으면서 달래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