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동냥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1
나가오카 히로키 지음, 추지나 옮김 / 레드박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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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독특한 단편집을 만났습니다. 미스터리는 미스터리인데, 뭐랄까,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생활 미스터리라고 할까요? 무시무시하거나 정교한 범인 찾기가 아니라, 생활 속의 소소한 비밀을 찾아가는, 그래서 따뜻한 감동과 함께 막을 내리는 네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주인공들의 면면 역시 휴먼 스토리에 가깝게 설정됐습니다. 같은 구급대원이지만 처음으로 함께 근무하게 된 예비 장인과 사위(‘경로 이탈’), 사춘기 딸과 실랑이를 벌이며 살아가는 싱글맘 형사(‘귀동냥’), 옆집 사는 미모의 아기엄마를 흠모하는 소방관(‘899’), 전과자들의 갱생을 돕는 노년의 갱생원장(‘고민 상자’)이 그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 속에 설치된 트릭들이 가볍거나 허술하게 짜인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다 트릭이다! 한 문장도 놓치지 마라!”는 홍보 카피처럼 트릭은 평범한 문장들 곳곳에 숨어있어서 읽는 재미를 배가시켜줍니다. 다만, 트릭 자체가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서늘한 느낌보다는 , 그래서 그때 그랬던 거구나라는 따뜻한 충격을 준다는 점에서 독자들이 기대하는 전형적인 트릭과는 색다른 감흥을 전해줍니다.

 

개인적으로는 표제작인 귀동냥이 가장 좋았습니다. 사건이 해결되고, 오해가 풀어지고, 모녀가 화해하는 과정에서 대단하진 않아도 오밀조밀한 트릭들이 드러나는 전개가 흥미롭고 감동적이었습니다. 나머지 세 작품 역시 비슷한 톤의 작품들인데, 내용이라든가 분량으로 볼 때 부담 없고 훈훈한 이야기를 찾는 독자들에게는 쉼터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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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무지개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수미 옮김 / 청하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재미와 함께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선 굵은 전작들 덕분에 누쿠이 도쿠로의 작품이라면 무조건 오케이!”라는 기대감과 신뢰감을 함께 갖게 됐습니다. ‘잿빛 무지개는 누명과 복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기대했던 대로 누쿠이 도쿠로의 매력이 잘 살아있는 작품이었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 사건에 관련된 여러 사람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등 어찌 보면 단순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하는 형식 덕분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한 번에 달릴 수 있었습니다. (다만, 무성의하고 양식 없는 편집 덕분에 책읽기가 참 불편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사족에서 언급하겠습니다.)

 

법 없이도 살 것 같던 한 평범한 청년이 어느 날 갑자기 살인범으로 체포되고, 1심과 2심을 거쳐 최고재판소, 즉 대법원에서까지 유죄판결을 받습니다. 명백한 오판이고 억울한 누명이었지만, 전근대적인 강압수사를 최고의 선으로 여기던 형사는 자백을 강요했고, 얼음장처럼 차갑기만 한 원칙주의자 검사는 강요된 자백에 매달려 진실을 외면했으며, 빗나간 영웅심에 사로잡힌 목격자는 어설픈 증언으로 오판과 누명을 공고히 했고, 의욕 따위는 개나 줘버린 무기력한 변호사는 자신의 의뢰인을 방치했으며, 그 결과, 세상과 담을 쌓고 살던 고지식한 판사는 별 생각 없이 유죄를 선고합니다.

6년 동안 사회에서 격리됐던 평범한 청년 에기 마사후미가 자유의 몸이 되어 돌아왔을 때, 그의 가족은 이미 완벽하게 박살나고 해체된 상태였습니다. 직장과 이웃은 그의 가족들을 추방했고, 추방당한 가족들은 자살과 의절을 통해 스스로 절멸의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유일하게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믿어준 어머니를 뒤로 한 채 에기 마사후미는 자신의 무지개를 잿빛으로 만든 이들을 향해 복수의 길을 떠납니다.

 

누쿠이 도쿠로의 작품들은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해지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만들어낸 진퇴양난에 처한 캐릭터들덕분인데, 그들을 포위한 상황들이 워낙 극단적이거나 자포자기하고 싶을 만큼 강고한데다 분노, 연민, 증오로 이어지는 그들의 감정은 날것처럼 생생하고, 거기에 사실감을 높여주는 민감한 사회적 이슈까지 가미되다 보니 읽는 독자 입장에서 묵직한 추를 마음 한쪽에 달아놓은 기분이 드는 건 당연할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잿빛 무지개에서 살인죄를 뒤집어쓴 에기 마사후미는 지금껏 봐온 누쿠이 도쿠로의 그 어떤 캐릭터들보다 극단적인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직장에서의 해고, 연인과의 이별, 가족의 해체를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던 그가 전대미문의 복수를 결심하고 실행하는 과정은 너무나 당연해보인 나머지 단순한 공감을 넘어 그를 응원하고 보호하고픈 욕구까지 일으킵니다.

동시에, 체포에서 판결에 이르기까지 그의 누명을 차곡차곡 완성시킨 후 6년의 옥살이와 함께 가족의 해체를 제공한 주범들은 각자 맡은 챕터들을 통해 에기 마사후미와 독자의 도대체 왜 그랬어?’라는 질문에 대답합니다. 하지만 그 대답들이란 대부분 초라하거나, 구차하거나, 이기적이기 짝이 없어서 그들에 대한 분노와 함께 에기 마사후미에 대한 안타까움을 배가시킵니다.

에기 마사후미를 쫓는 형사 야마나만이 독자들을 위로해주는데, 아무도 들추려 하지 않는 7년 전 사건의 진실을 캐는 것과 함께 막장으로 폭주하는 에기 마사후미를 멈추게 하려는 진정성 있는 노력을 다 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누쿠이 도쿠로는 형사 야마나를 통해 복수에 대한 정답 없는 질문을 던집니다. 복수는 진정 회한을 풀어줄 유일한 길인지? 복수가 아니라면 무엇을 통해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

 

누쿠이 도쿠로의 전작들처럼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도 개운한 기분이 들진 않았습니다. ‘내가 에기 마사후미였다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에기 마사후미가 있을까?’ 등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점이 누쿠이 도쿠로 작품의 매력이고, ‘잿빛 무지개는 그의 작품들 가운데 비교적 심플한 이야기 구조를 지녔음에도 파괴력에 있어서는 여느 작품 못잖은 힘을 가졌다고 생각됩니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에기 마사후미와 그의 연인 유리에가 나눴던 짧지만 행복했던, 진정한 무지개를 꿈꿨던 순간이 너무 애틋해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조금 긴 사족 : 무성의하고 양식 없는 편집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 무성의한 편집에 의해 훼손된 것을 지켜보는 일은 고통스럽고 화가 나는 일입니다. 오역과 오타로 범벅이 된 번역서가 보기 드문 현상은 아니지만 잿빛 무지개는 그 도를 넘어도 한참을 넘어선 경우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수시로 바뀌는가 하면, 초등학생 수준에도 못 미치는 오타는 어이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 페이지에 서너 개씩 보이는 띄어쓰기 오류는 차라리 애교에 가깝습니다.

 

등장인물의 개명(?)이 가장 심각했던 두 가지 경우를 보면, 이사야마는 아사야마’, ‘이시야마’, ‘이사야와, 야마나는 야마다’, ‘야마하’, ‘야마니로 바뀌곤 합니다.

근무하시니면서’, ‘가혹한 조건이에서 그런지’, ‘많은 사람이이 갈망하는’, ‘매력 없는 사람으로 낚인 찍혀’, ‘자기가 싫어하할 것을 알았기..’ 등 단순 오타만 해도 수십 군데가 넘었고, 번역자의 문제인지, 출판사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음과 같은 표현들도 있습니다.

 

- ‘아키야마가 큰 소리에 놀라 아키야마가 얼굴을 들었다.’

- ‘분명으므로 그의 수사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을 것이었다.’

- ‘10시 이후에 있을 재판과 관련된 담당할 재판기록도 읽어둬야 했다.’

- ‘하루에의 몸에서 비누냄새가 났다.’

- ‘7년 전이 낳은 사건 암담한 결과가 이 집에 응축된 듯 했다.’

- ‘자신이 후회 없이 다음 살았다고 생각한 만큼...’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 페이지 여백이며 글자 크기부터 이해 안 되는 편집을 목격했고, 첫 페이지부터 주인공의 이름이 잘못 표기된 것을 보고 도대체 어떻게 편집을 했고, 얼마나 오타가 튀어나오나 보자, 하고 체크해본 것인데, 이곳에 다 옮겨 적을 수 없을 만큼 오타와 비문이 난무하고 있었습니다. ‘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로 무성의하고 양식 없는 편집의 결과입니다. 누쿠이 도쿠로의 작품이 아니었다면 아마 100페이지도 못 가서 책을 집어던졌을 것입니다. 책은 상품이지만 동시에 작품이며, 그것을 낸 출판사의 얼굴일 텐데, 이런 결과물을 독자들 앞에 내놓으면서 부끄럽지도 않았는지 묻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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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로 2014-11-03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가의 문제인가 하고 봤는데, 저 분이 번역한 다른 책인 ˝무지개 곶의 찻집˝은 아주 잘 번역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이건 틀림없이 출판사의 문제입니다. 정말 읽으면서 괴롭네요. 좋은 작가의 좋은 책이 이렇게 성의없이 나온 것을 보니 안타까워요.

하나비 2014-11-05 09:17   좋아요 0 | URL
번역 출판의 과정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 정도 문제라면 번역가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최종본을 인쇄하기 전에 제대로 체크조차 안 한 출판사가 가장 큰 책임이지만요... 저 역시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라 더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미시시피 미시시피
톰 프랭클린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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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인 1980년대 초, 미시시피 주 샤봇 마을. 흑인소년 사일러스와 백인소년 래리는 흑백의 경계가 그 어느 곳보다 공고했던 미시시피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그들만의 우정을 나누곤 했습니다. 하지만 래리가 이웃 소녀 신디 워커 실종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후 군에 입대했고, 사일러스가 인근 도시로 이사 가면서 두 사람의 만남은 단절됐습니다. 그리고 40대가 된 두 사람은 25년 만에 샤봇에서 재회합니다.

경찰이 되어 고향에 돌아온 사일러스는 래리가 지난 25년 내내 신디 워커 살인마로 낙인찍힌 채 인구 500명의 샤봇에서 따돌림을 당해온 걸 알게 되지만 자신도 모르게 래리를 피합니다. 그의 전화를 피했고, 그와의 어릴 적 인연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 살인사건과 실종사건이 연이어 벌어지자 주민들은 살인마 래리가 활동을 재개했다고 주장합니다. 상급 수사관들마저 래리를 용의자로 몰아붙이자 사일러스는 진실 찾기에 나서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지금까지 봉인됐던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됩니다. 문제는 그 비밀 가운데 남들이 알아선 안 되는 자신과 래리만의 은밀한 과거까지 포함돼있다는 점입니다.

 

이 작품을 읽게 된 동기는 미시시피라는 지명을 반복해놓은 제목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의 역사나 문학에 대해 딱히 관심이나 해박한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시시피라는 고유명사는 왠지 모르게 듣기만 해도 무겁거나 불온한 느낌을 전해주곤 했습니다. 그런 고유명사가 두 번씩 반복됐으니 그 안에 담긴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이나 호기심 역시 그만큼 커졌습니다.

스릴러라기보다는 한 편의 대서사극을 읽은 느낌입니다. 흑백의 갈등이 극심한 미시시피를 무대로 두 남자의 25년에 걸친 우정, 사랑, 비밀, 오해 등 굵직한 코드들이 과거와 현재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펼쳐집니다.

 

흑인이 다수였던 미시시피에서 천식과 말 더듬증 때문에 흑인은 물론 같은 백인에게까지 무시당하면서 우월한 인종으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했고 이후 25년 간 살인마로 따돌림 당하며 삶의 기반이 통째로 붕괴된 래리의 이야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미국 남부지방 백인 소년의 성장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한편 사일러스는 자신이 발견한 비밀과 자신이 봉인해 온 비밀 때문에 고통스러워합니다. 두 가지 비밀 모두 래리와 연관 있는데다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고 싶은 내용들이기 때문입니다. 중후반부에 이르러 두 사람의 25년을 지배해 온 비밀들이 드러나는 순간 미시시피라는 고유명사가 전해주는 무겁거나 불온한 느낌은 절정에 이릅니다.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한 번에 정주행하지 못하고 여러 날에 걸쳐 찔끔찔끔 읽은 탓인지 중반부에 이르기까지 이야기에 제대로 몰입하지 못 했습니다. 하지만 사일러스의 비밀 이야기가 전개되는 지점부터는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고, ‘서사를 갖춘 문학적 스릴러의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딱히 잔혹하거나 선정적인 이야기도 아니고, 오히려 미시시피라는 불온한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무겁고 끈적끈적한 이야기에 가깝지만, 부조리한 사회와 시대가 휘저어놓은 개인의 삶이라는 주제를 25년에 걸쳐 벌어진 두 차례의 납치 사건들과 잘 결부시킨 작가의 필력 덕분에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전혀 다른 성향이긴 해도 읽고 난 후의 느낌으로만 치자면 윌리엄 랜데이의 제이컵을 위하여나 스티븐 킹의 조이랜드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그리 빠르거나 복잡하진 않지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고 오랫동안 기억될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란 뜻입니다.

언제든 시간이 넉넉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에 다시 한 번 읽어볼 생각입니다. 띄엄띄엄 읽느라 놓친 이 작품의 진가를 제대로 맛보려면 반드시 한 호흡의 정독이 필요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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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로직 인간의 매직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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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과 사감, 식사를 담당하는 코튼 부인 외에 10~12살 또래의 여섯 명의 학생이 전부인 이상한 학교가 황야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선 오전에는 일반적인 수업이, 오후에는 추리 실습수업이 진행됩니다. 학생들은 자신이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됐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누군가와 함께 몇 달의 시간을 보내다가 교장과 사감의 손에 이끌려왔다는 점만 공통적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 학생이 도착할 거라는 소식과 함께 학교에는 불길한 기운이 감돕니다. 이전에도 새 학생의 등장과 함께 학교전체가 위기에 빠진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모두가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고 학교는 온통 피비린내에 휩싸이고 맙니다.

 

2013일곱 번 죽은 남자그녀가 죽은 밤등 두 편의 작품으로 미스터리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세 번째 국내 소개작입니다. ‘일곱 번 죽은 남자에선 특이한 설정과 이야기 전개 덕분에 뇌 구조가 참 독특한 작가라는 느낌을 받았고, ‘그녀가 죽은 밤에선 빠르게 요동치는 재미와 함께 청춘 미스터리의 매력을 한껏 즐길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 한국 출간작인 신의 로직, 인간의 매직은 앞선 두 작품과는 전혀 다른 색깔을 지녔습니다. 니시자와 야스히코를 소개할 때 늘 빠지지 않는 문구가 ‘SF적인 독특한 설정입니다. ‘신의 로직~’에는 SF적인 설정은 물론 밀실트릭과 서술트릭에다 아무도 예상 못한 진범 찾기등 다채로운 코드가 한데 버무려져 있습니다.

 

명백히 비현실적인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초반부에 학교의 일상들이 워낙 평범하게 묘사돼서 별 거부감 없이 이야기에 빠져들게 됩니다. 하지만 곳곳에서 감지되는 폭풍전야 같은 긴장감 때문에 독자는 기묘한 느낌을 유지한 채 한 페이지씩 책장을 넘기게 됩니다. 조금은 지루한 느낌이 들 정도로 사전포석을 탄탄히 쌓은 작가는 중반부쯤 새로운 학생의 등장과 함께 본색을 드러냅니다. 그 지점부터 그의 특기인 롤러코스터 식 업다운이 시작되는데,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기까지 단숨에 내달릴 정도로 가속력이 엄청납니다.

 

교장은 왜 이 황야 한 복판에 이상한 학교를 세웠는지, 삶의 보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 사감과 코튼 부인이 머무는 까닭은 무엇인지, 현재 학교에 머물고 있는 여섯 명의 학생들의 정체와 과거는 어땠는지 등 모든 퍼즐들이 후반부에 하나씩 맞아들어 가면서 (약간은 SF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작가의 메시지가 드러납니다. 메시지 속에는 사회적인 이슈도 녹아있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개인들에 대한 연민과 동정도 녹아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만약 현실이라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라며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한 독자들에게 묻기도 합니다.

 

엔터테인먼트라는 기준으로만 보면 일곱 번 죽은 남자그녀가 죽은 밤에 비해 조금은 부족한 느낌입니다. 후반부의 전광석화 같은 전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긴 했겠지만 역시 지루한 초반부가 아쉽게 느껴진 건 사실입니다. 특정 작품의 엔딩과 비교되는 마지막 몇 페이지는 뒤통수를 맞았다!” 아니면 이게 뭐야?” 식으로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몇몇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Something New를 찾는 독자들에게는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전작들 못지않은 만족감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주특기인 SF적인 설정도 재미있지만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기발하고 속도감 넘치는 닷쿠&다카치 시리즈가 좀더 빨리 출간되는 것입니다. 만약 신의 로직~’ 속에 닷쿠와 다카치 콤비가 등장했더라면 좀더 독특하고 새로운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여러 번 들 정도였으니까요. 올해 안에 적어도 한두 편쯤은 그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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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랜드
스티븐 킹 지음, 나동하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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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미스터리와 스릴러 마니아라고 자평하면서도 대가의 반열에 올라있는 스티븐 킹의 작품은 2013년에 읽은 ‘11/22/63’이 처음이었고, ‘조이랜드가 두 번째에 불과합니다. 물론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는 여러 편 봤지만, 책을 통해 만나는 일은 훨씬 더 각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저에게 있어 스티븐 킹은 미지의 땅이나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읽은 두 작품 모두 호러물의 대가라는 그의 별명과는 조금은 거리가 있었지만, 타고난 스토리텔러이자 강력한 페이지 터너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조이랜드는 성장소설이면서 살인사건과 판타지가 혼합된 독특한 장르의 작품입니다. 1973년에 21살을 맞이한 청년 데빈 존스가 놀이공원 조이랜드에서 여러 인물들을 만나며 겪은 각별한 성장기를 기반으로 그 또래 청춘이 통과의례처럼 겪어야 하는 로맨스는 물론 미궁에 빠진 4년 전 살인사건의 진실 찾기가 나란히 전개됩니다. 거기에, 심안(心眼)의 능력을 지닌 영매와 죽은 자의 유령들이 등장하면서 비현실적인 판타지의 영역까지 넘나듭니다.

400여 페이지의 분량이 금세 소화될 정도로 쉽고 편하게 읽히지만, 한 발 떨어져서 보면 롤러코스터를 탄 듯 성장과 로맨스, 스릴러와 판타지가 쉴 새 없이 교차되고 있습니다. 한 작품 속에서 이렇게 다양한 에피소드와 감정을 만나는 것은 흔하지 않은 경험입니다.

 

이런 특이한 조합에도 불구하고, 전혀 이질감 없는 책읽기가 가능했던 것은 워싱턴포스트의 추천 글처럼 캐릭터와 직접 본능적으로 교감하는 킹의 능력덕분이었습니다. 화려하지도 않고 강요하지도 않는 평범한 문장들 속에서 등장하는 캐릭터 모두 심지어 영매와 유령에 이르기까지 내 주위의 인물들처럼 뚜렷한 존재감과 사실감을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이 서툴기만 한 21살의 청춘이 겪는 자잘한 해프닝은 공감과 웃음을 자아내고, 불치병을 앓고 있는 소년 마이크와의 인연, 그의 어머니 애니와의 로맨스는 안쓰러움과 애틋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끔찍한 살인사건과 그보다 더 끔찍한 유령의 존재는 서늘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마지막까지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조이랜드의 즐거운 책읽기 덕분에 스티븐 킹의 진면목과 마주할 수 있는 그의 대표작들을 찾아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이미 영화를 통해 이야기의 결말까지 알고 있는 작품이 대부분이지만, 그의 문장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뭔가가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한 가지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가끔씩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 매끄럽지 못한 번역입니다. 대체로 큰 무리는 없었지만 직역(直譯)처럼 보이거나 올드하게 느껴지는 문장이 꽤 눈에 띄었습니다. 어법에 맞지 않거나, 어색한 문장들도 있었는데, 가령, 이런 경우입니다.

 

사흘 뒤에 나는 그해 여름 웬디 키건한테서 편지 단 한 통만을 받았다.”

 

그 외에도 몇몇 사례가 있지만, 앞뒤 맥락까지 전부 인용해야 이해할 수 있는 경우들이라 일일이 거론하기는 어렵습니다. 출간 전 마지막 단계에서 꼼꼼히 수정됐다면 좀더 편안한 책읽기가 됐을 텐데, 아무튼, 옥의 티처럼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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