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돌아오다
사쿠라다 도모야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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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모도(@knitting79books) 서평단 자격으로 내친구의서재(@mytomobook)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매미 돌아오다는 자칭 곤충 애호가이자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거듭 아마추어 탐정 역할을 떠맡곤 하는 30대 남자 에리사와 센이 주인공인 미스터리 연작단편집입니다. 2017년 일본에서 출간된 서치라이트와 유인등’(サーチライトと誘蛾灯)에 이은 에리사와 센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데,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과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한 덕분에 시리즈 첫 편보다 먼저 소개된 것 같습니다.

곤충 애호가라는 주인공 캐릭터에 걸맞게 다섯 편의 수록작 모두 제목에 매미, 거미, 딱정벌레, 반딧불이, 파리 등 곤충이 들어가 있는데, 실제로 각 곤충은 미스터리의 핵심이자 해결의 열쇠라는 중요한 역할을 맡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가볍고 코믹한 곤충 미스터리라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16년 전 대지진 자원봉사 활동 당시 작은 마을의 신사에서 목격한 소녀 유령의 정체를 다룬 매미 돌아오다’, 교차로에서 일어난 여중생의 교통사고와 아파트에서 벌어진 주부 상해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염낭거미’, 펜션에서 만난 한 외국인과의 짧고 애틋한 인연을 그린 저 너머의 딱정벌레’, 한 과학잡지 편집자가 5년 전 소식이 끊긴 곤충 작가의 행방을 쫓다가 뜻밖의 사건과 마주치는 이야기를 그린 반딧불이 계획’, 아프리카에서 NGO 활동을 하던 의사가 치명적인 감염병에 맞서 싸우는 격렬하고도 가슴 아픈 사연을 다룬 서브사하라의 파리등 모두 다섯 편이 수록돼 있습니다.

 


왓더닛(What done it)이란 무엇인가? 이 책에서 그 답을 확인할 수 있다” -노리즈키 린타로

 

매미 돌아오다의 가장 큰 특징은 누가?”(후더닛), “?”(와이더닛), “어떻게?”(하우더닛)라는 일반적인 미스터리 서사와 달리 무엇에 방점을 찍은 작품이란 점입니다. 후반부에 실린 노리즈키 린타로의 해설을 인용하자면, ‘왓더닛 미스터리’, 즉 수수께끼 자체를 찾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구조를 품고 있습니다.

수록작 가운데 중반부까지도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또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바로 이 대목에서 에리사와 센의 특별한 능력이 발휘됩니다. 그는 스쳐 지나간 말 한마디, 무심히 던진 시선,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흔적을 통해 숨겨진 미스터리를 발견하곤 자신만의 추리를 펼쳐 끝내 진상에 도달합니다. 말하자면 그의 첫 미션은 미스터리 자체를 발견하는 거란 뜻입니다. 후더닛과 와이더닛과 하우더닛에 익숙한 독자에겐 다소 생경한 책읽기가 될 수도 있는데, 거듭 페이지를 넘기며 에리사와 센의 사고와 추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왓더닛이 얼마나 매력적인 장르인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첫 두 편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표제작인 매미 돌아오다는 호러와 미스터리와 사회파 서사의 콜라보에다 기막힌 반전과 함께 밀려드는 진한 감동까지 만끽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염낭거미의 경우, 에리사와 센은 행인1’ 수준의 작은 비중과 역할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한 사건의 전말을 꿰뚫어 보는데, 덕분에 이런 탐정도 있을 수 있구나!”라는 독특한 느낌을 맛볼 수 있습니다. (나머지 수록작도 모두 흥미로운데, 스타일이 모두 달라서 독자마다 선호하는 수록작이 제각각일 것 같습니다)

 

제목과 표지에서 연상할 수 있듯 매미 돌아오다는 자극적인 설정도 없고 뛰어난 명탐정도 없는 착하고 순한 미스터리입니다. 물론 사건과 사고로 인해 잔혹하거나 안타까운 장면들이 펼쳐지기도 하고, 부당한 관습, 외국인 혐오, 자연 파괴와 유전자 조작, 선진국이 외면한 질병 등 사회파 소재를 통해 날선 비판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면 여지없이 휴먼 드라마의 따뜻함과 뭉클함을 품은 엔딩을 선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물건입니다. 아니 정말 좋은 (추리)소설입니다.”라는 출판사 인스타그램의 한마디는 이 작품의 미덕을 잘 함축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착하고 순한 미스터리 쪽 취향이 아니더라도 에리사와 센이 펼치는 왓더닛 미스터리가 궁금한 독자라면 매미 돌아오다에 관심을 가져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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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 라이
프리다 맥파든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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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매물로 나온 교외 저택을 방문한 이선과 트리샤 부부는 폭설과 통신 두절로 인해 부득이 아무도 없는 저택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됩니다. 그곳이 3년 전 실종된 유명한 정신과 의사 헤일의 저택이란 걸 알게 된 트리샤는 음울한 분위기에 압도된 것은 물론 누군가 이곳에 머물고 있는 듯한 흔적을 발견한 탓에 두려움에 휩싸이지만, 이선은 자신이 찾던 저택이라며 만족감을 표합니다. 새벽녘 잠에서 깬 트리샤는 책장 뒤편의 비밀공간에서 헤일이 환자와의 면담을 녹음한 대량의 카세트테이프를 발견하곤 호기심에 사로잡힙니다. 이선 몰래 테이프를 듣던 트리샤는 3년 전 헤일의 실종 전후 상황을 암시하는 내용이 나오자 큰 충격에 빠집니다.

 


연쇄살인마의 자식인 유능한 외과의사가 주인공인 핸디맨과 저택의 가사도우미로 들어간 가석방 전과자가 주인공인 하우스메이드에 이은 프리다 맥파든의 세 번째 한국 출간작입니다. 각각 연쇄살인 스릴러, 도메스틱 스릴러인 두 작품에게 모두 별 4개의 평점을 줬지만, 무척 흥미진진하게 읽은데다 반전의 매력도 뛰어나서 뇌손상 전문의이자 스릴러 작가인 그녀의 신작 소식을 기다려왔습니다.

 

이선과 트리샤 부부가 3년 전 실종된 헤일의 저택에 갇힌 채 불안한 이틀 밤을 보내는 현재의 이야기와, 실종되기 전 헤일에게 닥친 끔찍한 사건을 그린 과거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됩니다. 안 그래도 불온한 기운을 내뿜는 저택에 두려움을 느끼던 트리샤가 헤일의 녹음테이프를 통해 3년 전의 진상을 조금씩 알아가는 이야기와 그 당시 헤일에게 벌어졌던 일들이 배턴 터치하듯 이어지는 구조라서 독자는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는 물론 그것들이 어떻게 연결되며 접점을 이룰지 궁금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특히 폭설로 고립된 저택은 스티븐 킹의 샤이닝에 등장하는 오버룩 호텔을 연상하게 만들어서 초반부터 호러의 향기를 진하게 피우는데, 재미있는 건 샤이닝이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소품으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두 사람이 비밀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 사람이 죽어서 사라지는 것뿐이다.” (p340)

 

본문 중간에도 두어 번 등장하지만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줄을 장식한 이 문장은 네버 라이의 매력과 미덕을 한마디로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밀과 거짓말이 난무하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가운데 과거와 현재의 인물들은 자신의 욕망과 목적을 손에 넣기 위해 다른 한 사람을 죽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수고들은 복잡하면서도 정교하게 설계된 이야기 속에서 뜻밖의 접점을 이뤄내는데, 작가는 그 지점까지 숱하게 독자의 헛발질을 유도하곤 합니다.

 

저택의 분위기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헤일의 녹음테이프에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 트리샤, 아내가 겁에 질린 걸 알면서도 당장에라도 저택을 사들일 듯 만족감을 느끼는 이선, 유명한 정신과 의사지만 정작 본인의 정신세계가 일그러지고 비틀렸던 헤일, 그런 헤일에게 오랜만에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만든 루크, 그리고 비밀과 거짓말과 협박을 일삼던 헤일의 몇몇 환자 등 네버 라이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은 속내를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미묘하게 설정됐거나 노골적으로 악의를 내뿜는 위험인물로 그려집니다. ‘다른 한 사람을 죽여서라도 비밀을 지키려는 건 과연 누구인지, 그렇게 지킨 비밀이 과연 끝까지 봉인될 수 있을지, 그 봉인이 해제된다면 어떤 사태가 초래될지 등 작가는 마지막까지 궁금증을 유발하며 이야기를 전개시킵니다.

 

한국에 소개된 두 편의 전작들에 비해 속도감이나 스릴러의 묘미나 반전의 짜릿함 모두 압도적인 작품입니다. ‘핸디맨하우스메이드에서 다소 아쉬움을 느낀 독자라도 네버 라이에선 전혀 다른 맛을 만끽할 수 있을 거란 생각입니다. 다만, 인터넷서점의 소개글이 꽤 상세한 줄거리를 공개하고 있으니 가급적이면 헤드라인 정도만 참고한 상태에서 본편을 읽을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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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제
츠네카와 코타로 지음, 김해용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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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출간된 쓰네카와 고타로의 여섯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못 읽은 초제를 작년 이맘때 중고서점을 통해 어렵게 구했지만, 아껴 읽겠다는 생각에 미뤄뒀다가 뒤늦게 책장에서 구해주게 됐습니다. (가격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알라딘 판매자 중고로는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판타지 혹은 환상문학은 제 취향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장르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네카와 고타로의 작품을 닥치는 대로 찾아 읽게 된 건 우연히 접했던 야시금색기계덕분입니다. 현실 속 공간에서 벌어지는 비현실적이고 신비한 이야기에서부터 요괴와 죽은 자들의 공간에 스며든 인간이 겪는 애틋하거나 끔찍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상상을 뛰어넘는 폭과 깊이를 품은 쓰네카와 고타로의 판타지는 그 방면으론 문외한인 제게도 너무나 매력적으로 읽혔기 때문입니다.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된 초제역시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현실인 듯 아닌 듯한 신비한 공간 비오쿠(美奧)를 무대로 갖가지 감정과 여운을 담은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지명의 어원은 아름다운 산속(しい山奧)이지만, 비오쿠는 신비하거나 두렵거나 끔찍하거나 비밀스러운 사연을 지닌 이세계의 도시처럼 묘사됩니다. 생명체의 형질을 바꿔버리는 기이한 들판, 신화 속에나 등장할 법하지만 유유히 거리를 돌아다니는 괴생물체, 생사를 좌우하거나 재앙을 일으킬 수 있는 신비의 약물, 그곳을 방문한 사람의 기억에 따라 형태를 바꿔버리는 거리 등 비오쿠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기이한 것들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외형상 비오쿠는 평범한 도시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직장과 학교가 있고 카페와 술집이 존재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곳입니다. 말하자면 공존 자체가 불가능한 현실과 비현실이 나란히 존재한다는 뜻인데, 그로 인해 이야기가 발산하는 신비감은 더욱 강렬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수로를 통해 연결된 이세계의 공간을 무대로 두 중학생이 겪은 비극(짐승의 들판), 비오쿠 내에서도 과거의 풍습과 신화가 진하게 남아있는 오네자키 마을의 특별한 비밀(지붕 위 성성이), 오래 전 비오쿠가 탄생하게 된 전말을 그린 가슴 아픈 이야기(풀의 꿈 이야기), 인간의 뿌리 깊은 괴로움을 풀어주는 능력을 지닌 일가족과 그들에게 의지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텐게의 집), 그리고 7년 전 비오쿠에 들어오게 된 애잔한 사연을 들려주는 한 여자의 이야기(아침의 몽롱한 마을) 등 쓰네카와 고타로 특유의 불안과 공포와 애틋함을 동시에 품은 판타지가 수록돼있습니다. 일부 인물이 여러 수록작에 등장하기도 하고, 몇몇 수록작은 비오쿠의 전설과 신화를 공통 소재로 삼고 있기도 해서 독립 단편의 모음집이라기보다는 연작 단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척 기대했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별 4개라는 평범한 별점을 준 이유는, 이야기 곳곳에서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모호하게 그려진 대목들을 자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더 친절했더라면, 한 줄만 더 설명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여러 차례 느끼곤 했는데, 아이러니한 건 그런 대목들이 실은 쓰네카와 고타로가 가장 공을 들이고 가장 많이 고민했던 대목이란 걸, 즉 일부러 불친절하게, 일부러 덜 설명했다는 걸 쉽게 눈치 챌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럴 때마다 몇 번씩 되읽으며 작가의 진의를 파악해보려 애써봤지만, 아무래도 저의 부족한 이해력으로는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고, 그래서 아쉬움은 몇 배나 더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멸망의 정원을 제외한 다른 작품에선 그런 아쉬움을 느낀 적이 없다 보니 살짝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그래선지 언젠가 한번쯤은 아주 느긋한 마음으로 초제에 재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론 야시금색기계에 별 5개를, ‘천둥의 계절에 별 4.5개를, 그리고 초제’, ‘멸망의 정원’, ‘가을의 감옥에 별 4개를 줬는데, 아직 쓰네카와 고타로를 접하지 못한 독자라면 야시금색기계로 시작해볼 것을 추천합니다. 특히 그의 데뷔작인 야시는 무서우면서도 애틋한 호러 판타지가 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수작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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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의 살인
엔도 가타루 지음, 전선영 옮김 / 반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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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를 무대로 활동하는 베이비스타 라이트는 애초 7인조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23살의 루이, 19살의 델마와 이즈미로만 활동하는 비인기 3인조 지하아이돌 그룹입니다. 한때 잘 나갔던 프로듀서인 소속사 대표 하우라는 지금은 멤버들을 술자리 접대에 불러내 일감을 따내려 할 정도로 밑바닥을 전전하는 무능악덕의 진상입니다. 더구나 멤버들 간의 트러블도 점점 심각해지자 유일한 원년 멤버인 루이는 곧 있을 4주년 공연을 끝으로 아이돌 생활을 접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예의 추잡한 술 접대가 벌어진 어느 날, 소속사 사무실에서 하우라가 살해당합니다. 그를 죽인 건 그룹의 센터 역할을 맡고 있는 이즈미. 루이와 델마는 큰 충격에 빠지지만, 이내 하우라의 시체를 산속에 매장하기로 뜻을 모읍니다.

 


최애가 들어간 제목과 아이돌이 저지른 살인사건이라는 띠지 카피만 봤을 땐 기노시타 한타의 악몽 시리즈처럼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가벼운 템포의 블랙코미디나 소동극이 아닐까, 짐작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출판사 소개글대로 아이돌 누아르 또는 서스펜스 스릴러라는 장르에 걸맞게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와 긴박한 전개를 품은 범죄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비인기 아이돌 멤버들이 최악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투하는 생존기이자 인간으로서, 아이돌로서, 여성으로서 좀더 큰 세상과 마주하게 되는 성장기이기도 합니다. 후반에 실린 해설에서도 언급되지만, 읽는 내내 리들리 스콧의 영화 델마와 루이스’,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 아웃이 생각나는 건 비단 저만의 경험은 아닐 텐데, 그래선지 자매애 또는 여성의 연대라는 서사도 진하게 맛볼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이유로 아이돌이 됐고 지향점도 제각각인 탓에 루이와 델마와 이즈미 사이엔 언제 갈라서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긴장과 트러블이 상존합니다. 하지만 무능하고 악독한 대표 하우라의 사체 앞에서 세 사람은 (역시 각기 다른 이유로) 뜻을 모읍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범이 된 이후 세 사람은 진정한 톱 아이돌이 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노력합니다. 트러블은 사라졌고 대신 그 자리엔 한 배를 탔다는 연대감이 강하게 자리 잡습니다.

하지만 사체를 유기한 직후부터 이들에겐 쉴 새 없이 위기가 닥칩니다. 언제 범행이 들킬지 모른다는 공포감, 자신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매니저, 누구든 마음이 약해져 자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완전범죄의 완성을 기원하며 4주년 공연을 준비합니다.

 

어둡고 무겁고 빠르고 긴박한 이야기지만 역시 아이돌이 주인공이다 보니 때때로 가볍고 통통 튀는 대목들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비인기 아이돌의 현실, 그 또래만이 품고 있는 고민, 한없이 약하지만 어떻게든 강한 척 보이려는 안쓰러운 모습 등 숨 가쁜 위기 속에서도 19~23살 특유의 분위기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데뷔작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사건과 해프닝과 반전을 뜻밖의 타이밍에 적절히 뒤섞어가며 폭주시키는 작가의 필력입니다. 위기와 안도의 순간이 소소한 반전들을 통해 번갈아 찾아드는가 하면, 누가 진짜 폭탄인지 분간할 수 없는 조연들의 등퇴장 역시 전광석화처럼 이뤄집니다. 그 와중에 화자이자 원년 멤버인 루이의 과거사가 끼어들기도 하고, 델마와 이즈미의 각별한 사연이 소개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막판에 이르러 대반전과 함께 최고의 상황과 최악의 상황이 동시에 벌어지면서 독자의 호흡을 더욱 가쁘게 만듭니다.

 

아이돌이 주인공인 범죄소설이라 이런저런 선입견을 품었던 독자라도 다 읽고 나면 이 작품이 22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문고 그랑프리 수상작이라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강렬한 누아르와 스릴러를 만끽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 여운처럼 남은 아이돌다운 가벼운 분위기를 떨쳐낼 순 없었지만, 그래도 서평 초반에 언급한 다양한 매력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작품이니 관심 있는 독자라면 찾아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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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바라는 기도 밀리언셀러 클럽 48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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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전 스토커 피해를 호소했던 카렌이 알몸으로 투신자살했다는 뉴스를 본 사립탐정 켄지는 의문에 사로잡힙니다. 당시 스토커는 확실히 제압했었고, 자신이 기억하는 카렌은 이런 식으로 자살할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의뢰인도 없는 조사를 시작한 켄지는 그녀의 가족과 정신과 의사 등 주변 인물들이 뭔가를 감추고 있음을 감지합니다. 9개월 전 파트너였던 제나로와 헤어진 뒤 탐정으로선 밑바닥을 전전하던 켄지는 혼자 힘으론 이 사건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뒤 제나로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폭력의 화신인 부바까지 가세하여 범인의 뒤를 쫓던 켄지 일행은 결정적 단서를 포착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큰 위기에 빠지고 맙니다.

 


그 어느 스릴러 시리즈보다 폭력성과 선정성이 강렬한 켄지&제나로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입니다. 아껴 읽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실은 한없이 게으름을 부린 탓에 전작인 가라, 아이야 가라이후 7년 만에 읽게 됐는데, 그래선지 이 시리즈의 폭력성과 선정성에 새삼 여러 차례 놀라며 페이지를 넘기곤 했습니다. 인터넷서점에서 야박한 평점을 매긴 서평 대부분이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론 시리즈 첫 편부터 설정됐던 주인공 패트릭 켄지의 캐릭터(폭력을 혐오하면서도 동시에 폭력에 잠식돼버린 인물)가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서 별 저항감 없이, 오히려 재미있게 읽어온 게 사실입니다.

 

9개월 전, 그러니까 전작인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서로의 입장 차이 때문에 결별했던 켄지와 제나로가 재결합하여 로맨스는 물론 추리와 액션에서도 특유의 매력을 발산한데다 두 사람의 동료이자 뼛속까지 폭력의 DNA로 가득 찬 전직 군인 부바가 그 어느 때보다 광폭 행보를 보여서 읽는 내내 넘치는 아드레날린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작인 작은 자비들에서 인종차별을 소재 삼아 묵직한 사회파 스릴러를 선보였던 데니스 루헤인의 필력도 너무 좋았지만, 제겐 피와 살이 난무하는 거친 액션 스릴러 속에 풍자와 비아냥과 진한 블랙 유머를 자유자재로 섞어 넣는 그의 재능이 더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비교적 사이즈도 크고 조직이 등장하는 큰 사건들을 다뤘던 전작들에 비해 비를 바라는 기도는 의뢰인도 없고 보수도 없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한 여자의 죽음의 진상을 조사하는 켄지의 범죄 미스터리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물론 역대급 사이코패스가 등장하여 연이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 켄지 일행에게 닥치는 위기 역시 결코 소소하다고 할 순 없지만, 사립탐정 본연의 역할과 임무에 어울리는 사건이라 더 현실감 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오래 전의 비극적인 사고로 풍비박산이 난 가족, 그 가족의 비밀을 파고들어 살인과 갈취를 일삼는 것은 물론 사람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범인, 그리고 추리와 상상력과 폭력을 적절히 버무려가며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켄지와 제나로 등 선악을 막론하고 하나같이 생생하면서도 극단적인 인물들이 펼치는 롤러코스터 같은 이야기는 마지막 반전에 도달할 때까지 잠시도 쉬어갈 틈을 주지 않습니다. 그 사이사이에 켄지와 제나로의 애틋한 재회 로맨스가 끼어들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부바의 웃지 못 할 코미디까지 가세해서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한나절이면 금세 마지막에 이를 수 있습니다.

 

켄지&제나로 시리즈는 이 다음 작품인 문라이트 마일을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매번 왜 데니스 루헤인이 이 시리즈를 여섯 편밖에 쓰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는 불평을 서평에 담곤 했는데, ‘문라이트 마일이 미국에서 2010년에 출간됐으니 신작이 나올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지만, 그래도 언젠가 프리퀄이든 스핀오프든 어떤 형태라도 좋으니 켄지와 제나로의 이야기를 한번쯤은 더 읽어보고 싶은 욕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과도한 폭력성과 선정성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긴 해도 제겐 애정하는 시리즈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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