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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집행인의 딸 ㅣ 사형집행인의 딸 시리즈 1
올리퍼 푀치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1659년 독일의 소도시 숀가우에서 소년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들의 어깨엔 하나같이 비너스의 상징이자 마녀의 상징인 ‘♀’ 표식이 새겨져 있었고, 그로 인해 숀가우의 산파 마르타 슈테홀린이 범인이자 마녀로 체포되어 투옥됩니다. 하지만 사형집행인 야콥 퀴슬과 청년 의사 지몬 프론비저는 마르타를 마녀로 몰아가려는 숀가우의 권력층과 성난 군중들과는 달리 소년들을 살해한 범인이 따로 있다고 판단합니다. 더불어, 살해당한 소년들과 함께 어울렸던 두 명의 소녀가 실종 상태라는 점에 주목합니다. 사형집행인으로서 권력층의 지시에 무조건 승복해야 하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야콥 퀴슬은 딸 막달레나, 청년 의사 지몬 등과 함께 위험한 진범 찾기에 뛰어듭니다.
자주 만나기 어려운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데다 사형집행인과 그의 딸이 주인공이자 타이틀 롤까지 맡아서인지 읽기 전부터 여러 가지로 호기심이 많이 생겼던 작품입니다. 주술과 마녀사냥이 만연하던 시절의 인간의 잔혹함과 원시성, 대를 이어 ‘합법적인 살인’이라는 가업을 물려받아야 하는 사형집행인의 운명,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사형집행인의 딸과 청년 의사의 사랑,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추악한 인간의 탐욕이 낳은 참혹한 연쇄 살인 등 다양한 코드들이 잘 버무려져 한 편의 독특한 스릴러를 완성시켰습니다.
언뜻 사형집행인 하면 우리 역사 속의 망나니를 연상하게 되지만, 야콥 퀴슬은 사형집행인이면서 동시에 뛰어난 민간요법을 숙지한 영리한 캐릭터입니다. 망나니와 마찬가지로 사형집행인 역시 천민 취급을 받는 처지였지만, 적잖은 숀가우의 주민들이 의사보다 더 의지하기도 하는 특이한 위치에 있습니다. 또한 강철 같은 체력과 뛰어난 전투력에 기인하는 카리스마 덕분에 숀가우의 권력자들마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주인공으로서의 극성(劇性)과 미덕을 모두 갖춘 캐릭터입니다.
‘누명을 벗기고, 탐욕을 징벌하며, 진범을 찾는’ 심플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지만, 앞서 언급한 낯설지만 독특한 캐릭터들, 정해진 시간 안에 미션을 완수해야 하는 구성, 적재적소에 배치된 공포의 요소들(마녀사냥, 살인과 고문, 납치와 추격전 등)로 인해 570여 페이지에 달하는 적잖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느슨하지도 지루하지도 않게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릴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악당들의 캐릭터와 전략입니다. 악당들의 정체는 딱히 충격이나 반전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심심했고, 그들이 숀가우를 혼란에 빠뜨린 이유나 목적을 위해 설정한 전략은 밋밋한 편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인공들은 피땀 흘리며 열심히 뛰고 있는데 정작 상대할 악당들은 그다지 머리가 좋지도, 탐욕의 정도가 심오(?)하지도 않아서 주인공들의 목숨까지 건 노력이 허망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세나 근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 흥미가 있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형집행인’이라는 캐릭터와 ‘마녀사냥’이라는 코드가 읽기 전의 기대감과 읽은 후의 만족감을 충족시킨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안 그래도 야콥 퀴슬과 막달레나, 지몬이 등장하는 시리즈가 나올 법도 하다고 생각했는데 다 읽고 속지를 보니 세 편의 후속작이 더 나왔다고 합니다. 조만간 국내에 ‘사형집행인’ 시리즈 전권이 출간되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