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견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이시노메’, ‘평면견’, ‘하지메’, ‘블루등 네 편의 단편이 수록된 작품집입니다. ‘GOTH’, ‘ZOO’, ‘암흑 동화를 통해 오츠이치의 팬이 됐지만, ‘평면견을 통해 그의 새로운 세계를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네 편을 꿰뚫는 공통점은 환각또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눈이 마주치면 상대를 돌로 만들어버리는 존재, 문신으로 그려졌지만 피부 위에서 생물처럼 움직이는 파란색 개, 말할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는 수제 인형 등이 등장합니다. 또한 임기응변으로 꾸며낸 상상 속 가공의 인물이 어느 날 갑자기 살아 숨 쉬는 인간의 형체로 눈앞에 나타나고 이후 몇 년에 걸쳐 우정을 쌓아가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오츠이치의 상상력이 십분 발휘된 작품집입니다. 다만, 재미나 가독성 면에서는 기존 작품과 비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단 오츠이치 특유의 잔혹함이나 기이함과는 거리가 멀고, 어떤 에피소드는 환각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동어반복에 빠져있기도 하고, 어떤 에피소드는 동화에 가까운 캐릭터와 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전체적인 느낌은 대체로 좀 느리고 완만한 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전설과 미스터리가 혼합된 이시노메가 가장 마음에 들었지만, 그 외에는 오츠이치의 팬이지만 조금은 인내심을 갖고 읽어냈다는 게 솔직함 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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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 리버 - 모두가 미워하는 자가 돌아온다 뫼비우스 서재
존 하트 지음, 나중길 옮김 / 노블마인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애덤 체이스는 5년 전 아버지의 농장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당시 새어머니에 의해 범인으로 지목됐다가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결국 고향을 떠났던 인물입니다. 5년의 시간이 흐른 뒤, 애덤은 절친이었던 대니의 다급한 연락을 받곤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은 여전했고, 하필 애덤이 돌아온 직후 또다시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상황은 최악으로 변합니다. 더구나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와 목격자들이 애덤을 가리키자 카운티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돌아온 탕아를 지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애덤은 5년 전처럼 고향을 등지는 대신 정면으로 사건과 마주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애덤의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습니다. 5년 전 살인사건은 물론 유년시절 겪었던 어머니의 자살에 이르기까지, 궁금했지만 동시에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들이 차츰 그 민낯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존 하트의 대표작인 라스트 차일드에 앞서 다운 리버를 먼저 읽게 됐습니다. 착시 현상이긴 했지만, 제목에 들어간 ‘River’와 몽환적인 느낌의 표지 때문에 데니스 루헤인의 미스틱 리버와 비슷한 분위기가 아닐까, 하는 선입견을 갖기도 했습니다. 어느 정도는 맞아들었고, 어느 정도는 엉뚱한 편견이 되기도 했지만, 무겁고, 어둡고,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하지만 흡인력이 대단하다는 점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두가 미워하는 자가 돌아온다.”는 테마는 낯익으면서도 매력적인 설정입니다. 더구나 돌아온 탕아가 살인용의자로 지목됨으로써 극적인 긴장감은 저절로 고조됐고, 그가 연루된 과거 사건의 소환은 비밀과 거짓말이라는 매력적인 코드까지 덤으로 맛볼 수 있게 해줬습니다.

 

다만, 속도감, 화려함, 깔끔한 추리와 대단한 반전과는 살짝 거리가 있는데다 적잖은 분량마저 부담스러울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 분량 대부분이 가족, 진실, 선악, 증오, 용서 등 묵직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데, ‘범인 찾기보다는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에 더 방점이 찍혔다는 점에서 고전적인 미덕이 훨씬 더 강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 때문에 약간 지루할 수도 있고, 감정적인 표현이 과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군데군데 장황한 시퀀스들이 보이기도 하고, 조금은 작위적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감정을 강요하는 구절들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편한 작가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스트 차일드를 읽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어둡고 묵직한 주제에 관한 한 은근히 중독성을 발산하는 작가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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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스호퍼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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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국 번역판 표지가 일본 원작과 똑같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사카 고타로 읽기를 주저했던 이유 중 하나는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표지때문입니다. ‘사신 치바마왕정도는 몰라도 그 외 대부분은 라노벨로 오해받기 좋은 이미지들이라 계속 주저하고 또 주저했던 겁니다. 표지와 내용의 상관관계를 논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잘 알지만, 특정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표지라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래스호퍼의 주 무대는 개성 넘치고 특이한 킬러들의 세계입니다. 자살 유도 킬러, 무적 칼잡이 킬러, 등을 떠밀어 교통사고를 유발하는 밀치기 킬러, 또 그 킬러들을 활용하는 다양한 고용주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아내의 복수를 위해 그 세계에 위장잠입한 평범한 소시민 스즈키가 각각의 킬러들과 엮이게 되면서 벌어지는 만 하루 동안의 이야기가 중심 내용입니다.

 

서로 일면식도, 관계도 없던 킬러들이 살인 사건 하나 때문에 서로 얽히게 되는 구조는 오쿠다 히데오의 최악이나 방해자를 연상시킵니다. , 각자 열심히 자신의 본분(?)을 다해 살인을 저지르다가 어떤 한 사건으로 인해 교집합을 이루게 되고 한데 얽힌다는 뜻입니다.

만 하루 동안 벌어지는 사건 자체는 등장인물 수에 비해 단순하게 설정되어 있지만, 정작 이 작품의 재미는 별난 킬러들의 캐릭터를 골고루 만끽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트라우마, 뇌구조, 무의식 등 킬러들의 정신세계에 대한 이사카 고타로의 묘사는 기발하고 독특한 재미를 주면서 페이지 넘기는 속도를 엄청나게 가속시킵니다.

 

난 일가족 몰살 전문이야!”라고 떠들어대는 칼잡이 세미가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은 살인이야말로 지상 최고의 쾌락이라고 주장하듯 그야말로 신나고 경쾌하게 그려집니다. 하지만 그가 몸담고 있는 현실은 결코 신나지도 경쾌하지도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고용주 이와니시와의 관계 때문입니다. 우연히 본 영화 한 편 때문에 난 이와니시의 인형에 불과한가?”라는 고뇌에 빠집니다.

단 몇 마디의 말과 표정으로 상대방을 알아서 목매거나 투신하게 만드는 구지라는 끊임없이 주변에 나타나는 망령들(자신이 자살하게 만들었던)의 속삭임에 시달립니다. 또한 그가 느끼는 죄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문고판 죄와 벌을 소품으로 설정합니다. 구지라는 자신의 타깃들이 스스로 죽을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태연히 죄와 벌을 꺼내 읽으면서 곳곳에서 인상적인 구절들을 음미하곤 합니다.

 

평범한 스즈키가 아내의 복수를 펼치며 메인 스토리를 끌고 나간다면, 세미와 구지라는 킬러들의 살인행위와 그 행위를 지배하는 무의식과 철학이라는 블랙코미디 같으면서도 한없이 진지한 주제를 설파하는 역할입니다. 내용을 언급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주로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았지만, 어쨌든 독특한 미덕을 지닌 작품임에 틀림없고, 따라서 호불호도 확연히 갈릴 수밖에 없고, 그렇지만 나중에 실망하더라도 한번쯤은 읽어볼만한 작품이라는 게 저의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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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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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치기를 가리키는 속어에 가까운 제목에, 유치해보이기까지 한 표지 때문에 몇 번이고 읽어야지 하다가 포기하기를 반복했던 작품입니다. 하지만 오에 겐자부로 문학상을 수상한 이력에다 독자들의 호평들이 많이 보여서 단순한 소매치기 이야기는 아닐 거라는 기대와 바람으로 첫 장을 펼치게 됐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에 페이지가 너무 잘 넘어가는 바람에 금세 마지막 장까지 달렸습니다.

 

니시무라는 도쿄를 무대로 활동하는 천재 소매치기입니다. 그는 한눈에 알아보기 쉬운 유복한 환경의 사람들을 타깃으로 삼아 천재적이라고 할 만큼 교묘한 솜씨로 지갑을 훔칩니다. 몇 년 전 동료를 잃고 종적을 감췄던 니시무라는 오랜만에 도쿄로 돌아와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니시무라는 소매치기 도중 한 남자에게 손목을 잡히곤 충격에 빠집니다. 그는 과거 니시무라와 동료들에게 가혹한 임무를 맡겼던 기자키였던 것입니다. 기자키는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를 떠맡기며 섬뜩한 말을 남깁니다. “세 개의 일거리를 해치워라. 실패하면 너는 죽는다. 거절하면 네가 아끼는 자들이 죽는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단순히 손재주만 좋은 얄팍한 소매치기라면 문학상 수상작의 주인공이 될 순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미화해도 결국엔 남의 지갑을 훔치는 범죄자 캐릭터지만 니시무라는 나름의 트라우마를 가진 것은 물론 조금은 과할 정도로 철학적이고 자기애(또는 자기혐오)가 강한 인물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감당하기 힘든 큰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보통 소매치기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세 가지 미션을 무시무시한 협박과 함께 강요받습니다.

 

그리고 운명이라는 거창한 주제가 등장합니다. 니시무라를 손 안에 쥔 듯한 기자키라는 인물은 이것이 너의 운명이라는 말을 남기는데, 무력해 보일 정도로 기자키의 협박에 순응하는 걸 보면 니시무라에게는 분명 도망칠 수 없는 어떤 운명의 굴레 같은 게 있다는 걸 감지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기자키의 협박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삶에 끼어든 두 모자의 목숨까지 노리는 터라 니시무라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운명적인 미션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작가 스스로 (이 작품을 출간할 시점에) 자신의 대표작이라 언급했고, 이 작품을 마무리 한 후에 한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라우마로 똘똘 뭉친 고독하고 철학적인 천재적 소매치기라는 설정은 읽는 내내 목에 가시처럼 편하지 않았습니다. 작가가 주인공에게 너무 몰입한 나머지 안 어울리는 옷을 입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재미있고, 읽기 쉽고, 페이지가 휙휙 넘어갈 만큼 몰입도도 높았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도 니시무라의 캐릭터에 대한 몇몇 아쉬움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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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신검시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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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경찰소설의 대가라는 요코야마 히데오와 처음 만나게 된 작품입니다. ‘사라진 이틀’, ‘루팡의 소식’, ‘3의 시효등 귀에 익은 제목들이 꽤 많은데다 경찰소설의 대가라는 수식어 때문에 늘 관심을 가져온 작가입니다. ‘종신검시관의 인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딱 표지의 느낌 그대로다정도입니다. 물론 안 좋았다는 뜻은 아니고, 캐릭터나 이야기의 톤이 표지에 잘 담겨있다는 뜻입니다.

 


주인공은 특이한 기질의 검시관 구라이시입니다. 거침없는 언변과 무례해보이기까지 한 자신감을 트레이드마크로 갖고 있고, 종신검시관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해준 완벽에 가까운 검시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젊은 형사들 중엔 그를 따르는 광신도도 있고, 뭔가 배우려 애쓰는 학생들도 있는데, 그래서 그에게 붙은 별명 중 하나가 교장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격이 불같은데다 너무 꼿꼿한 돌직구 스타일이다 보니 적들도 적잖이 있습니다. 상투적인 슈퍼히어로의 냄새가 물씬 풍기지만, 나름 인간적인 면도 진하게 묘사돼있어서 다 읽고 돌아보면 꽤 정이 가는 캐릭터입니다.

 

붉은 명함을 포함하여 모두 8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주인공 구라이시 혼자서 맹활약하며 사건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사건의 중심은 매 에피소드마다 설정된 별도의 주인공들이 차지하고 있고, 섀도우 스트라이커처럼 주변을 맴돌던 구라이시가 결정타를 날리며 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또 미스터리만큼이나 사건 이면에 자리한 개개인의 애틋한 사연들이 눈길을 끄는데, 특히 전별’, ‘목소리’, ‘한밤중의 조서’, ‘실책은 미스터리 자체는 좀 허술해도 사건 속 사연들 때문에 먹먹한 느낌이 드는 수작들입니다.

 

소소한 재미와 부담 없는 책읽기에 알맞은 작품입니다. 짜릿한 반전이나 잔혹한 이야기 등 너무 세고 독한 이야기에 질린 독자라면 가끔 이런 맛깔난 간식 같은 작품을 읽는 것도 정신건강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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