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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트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같은 작가들이 쓴 쓰리세컨즈를 읽고 어느 정도 만족했던 기억이 있어서 나름 기대를 갖고 비스트를 펼쳤습니다. 이왕이면 출간 순서에 맞춰 읽었다면 좋았겠지만 어찌어찌 하다 보니 데뷔작인 비스트를 나중에 읽게 됐습니다.

 

이야기는 의외로 심플합니다. 소아성애 연쇄살인범 벤트 룬드가 호송 중 탈주를 하고, 경찰이 허둥지둥 대는 사이 또다시 소녀를 강간, 살해합니다. 단서를 잡고 수사망을 좁히지만, 그들보다 한발 앞서 누군가 벤트 룬드를 응징합니다. 여기서부터 무능하고 물러터진 사법 체계개인의 복수에 대한 논쟁이 시작됩니다. 이후는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이 높아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소개하겠습니다.

 

개인의 복수에 대한 이야기를 무척 좋아합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 해도 적어도 픽션 속에서라도 법망을 벗어난 악인에 대한 응징이 이뤄지면 속이 시원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사법체계 개인의 복수의 논쟁이 시작됐을 무렵, 스웨덴의 두 작가는 어떤 결말을 내줄 것인지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앞부분에서 다소 맥이 빠진 상태라 크게 기대는 안했지만, 그래도 마지막 한 방을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뭐랄까... 좀 찜찜한 상태로 마지막 페이지를 덮게 됐습니다. 대략적인 느낌만 정리하자면...

쓰리 세컨즈에서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는데, 그때 남겨놓은 메모를 보니 분량에 비해 안이하고 불필요한 설정이 많다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런데 비스트는 그냥 많은 정도가 아니라 과하게 많은 편입니다.

주인공인 그렌스 경정과 스벤 형사는 분량도 적고, 하는 일도 별로 없습니다. 그에 반해 교도소 특별감호구역을 맡고 있는 렌나트 오스카숀은 특별한 역할도 없는데 동성애자라는 성 정체성 묘사가 장황하게 펼쳐집니다. 교도소 내 실권자 릴마센과 그 일당 역시 허망한 엔딩 몇 페이지를 위해 괜히 여기저기 등장하면서 책의 두께만 늘려놓습니다. 교도소의 인물들이 등장한 이유?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가장 어이없었던 점은 개인의 복수를 영웅 시 여기는 모방범들의 활약입니다. 작품의 의도를 강조하기 위해 억지로 끼워 넣은 사족에 가까운 에피소드로 보였습니다. 좀 심하게 얘기하면, 위에 언급한 조연들이 모두 빠져도 이야기 전개엔 별 무리가 없습니다.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소아성애 연쇄살인범이 등장하고, 물렁한 사법 체계에 대한 비판과 개인의 복수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는 등 파괴력을 지닌 소재들임에도 불구하고 잘 요리하지도, 잘 소화해내지도 못했다는 느낌입니다. ‘쓰리 세컨즈역시 비슷한 한계를 갖고 있긴 했지만, ‘비스트를 읽고 나니, 그나마 데뷔작 이후 많은 단점들이 보완됐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쉬움이 많이 남긴 했지만, 그래도 두 스웨덴 작가의 작품을 한 편쯤은 더 지켜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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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IN 레드 문 클럽 Red Moon Club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일영 옮김 / 살림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스즈키 다마키는 연애의 말살을 주제로 소설 ‘IN’을 쓰려 한다. 주인공은 1970년대에 발표된 미도리카와 미키오의 소설 무쿠비토에 등장하는 내연녀 O. 말하자면, 다른 작가가 창조한 소설 속 인물을 주인공 삼아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겠다는 것. ‘무쿠비토는 불륜으로 인해 한 가정이 파괴되는 과정을 그린 사소설(私小說)인데, 불륜관계인 남편과 O코를 향한 아내의 광기와 싸움을 불쾌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린 건 물론 등장인물 대부분을 실명으로 등장시켰던 작품. 이 소설에서 실명이 드러나지 않은 건 오직 O코뿐이었다. 다마키는 무쿠비토에서 두 번의 낙태를 겪고도 악질적인 가정파괴범으로만 그려진 O코가 현재 유부남 편집자와 사랑에 빠진 자신의 운명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연민까지 느낀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편집, 인용했습니다.)

 

대표작 ‘OUT’ 이후 무라노 미로 시리즈같은 미스터리는 물론 다마모에같은 순문학까지 대략 4~5편의 작품을 통해 기리노 나쓰오와 만나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작가다라고 판단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작품을 읽진 못했지만, 재미와 의미가 균형감을 이루고 있어서 대체로 만족도가 높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처럼 좀 허망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처음 읽은 ‘OUT’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IN’은 여러 가지로 기대를 많이 했던 작품입니다. 제목 자체만 보면 서로 연결된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연애의 말살을 다뤘다는 카피를 보곤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됐지만, 살짝 불온한 냄새를 풍기는 그 주제 역시 충분히 매력이 느껴졌고 호기심을 자극해왔습니다.

 

일본어 발음 ‘IN’으로 읽히는 한자들(, , , , )로 이뤄진 소제목들은 그 챕터에서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사뭇 궁금함을 자아냈고, 주인공 다마키가 무쿠비토에 등장한 내연녀 O코의 정체를 추적하는 대목도 소소한 미스터리 코드가 내재되어 있어서 흥미를 배가시켰습니다.

 

연애는 시간의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은밀하게 변질되어 간다. 부패해간다고 표현해도 괜찮을 것이다. 가스가 차서 한꺼번에 폭발한다. 폭발한 뒤에는 두 사람 다 제각각 내동댕이쳐져 주위를 둘러보면 눈앞에 낯설고 거친 들판이 펼쳐진다.” (p76)

 

요약한 줄거리대로 이야기는 두 개의 축으로 이뤄지는데, 하나는 현실에서 각자 가정을 갖고 있는 소설가 다마키와 편집자 세이지 사이의 연애의 말살이고, 또 하나는 소설 속 소설인 무쿠비토에 등장하는 소설가 미키오와 그의 아내 치요코와 내연녀 O코 등 세 사람의 연애의 말살입니다. “정열적인 사랑의 끝에 그 흔적을 말살하려는 심리가 괴물적으로 비쳐진다.”라는 소개글대로 이 작품은 사랑이나 불륜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종료된 뒤의 서늘한 심리를 다룹니다. 그래선지 비슷한 소재를 갖고 치정 또는 복수를 그린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어딘가 심하게 구부러지고 왜곡된 듯한 인간의 심리를 들여다보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다 읽은 뒤의 느낌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허전함이었습니다. “연애의 말살이란 서로를 상처내고, 타인 앞에서 모욕을 주고, 심지어 폭력까지 주고받다가 끝내는 기억 속에서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는, 그런 과정의 종결이라는, 뭔가 있어 보이지만, 실은 현실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씁쓸한 연애 뒤끝의 담론을 다소 어렵고 복잡하게 풀어간 이야기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허구와 현실을 오가며 사람들에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미친다.” 라는, 몇 번씩 반복적으로 강조된 주제의식도 거북했고, 두 이야기의 접점을 위해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엮은 것도 작위적으로 보였습니다. 환영(幻影)과 예지현상까지 벌어지는 부분에선 솔직히 집중도가 많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기대가 컸던 탓인지 만족감보다는 아쉬움이 더 많이 남은 작품입니다. 소재는 흥미로웠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저와는 잘 맞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직 읽어야 할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이 많이 있는데, 개인적으론 미스터리 혹은 장르물에서 그녀의 미덕을 만끽할 수 있을 듯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이라면 장르를 불문하고 일단 궁금함과 호기심을 접지는 못하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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