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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낭군가 - 제7, 8회 ZA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36
태재현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3년 12월
평점 :
매체를 불문하고 좀비물은 제 취향과는 거리가 좀 먼 장르지만 이상하게도 그동안 황금가지에서 출간된 한국 좀비소설은 무척 재미있게 읽어왔습니다. ‘광인들’(김중의), ‘난쟁이가 사는 저택’(황태환), 제3~4회 ZA문학 공모전 수상작품집 ‘크르르르’ 등이 대표적인데, 그래선지 표제작의 제목이 단번에 눈길을 끈 제7~8회 ZA문학 공모전 수상작품집 ‘좀비 낭군가’도 남다른 기대를 갖고 읽게 됐습니다. 모두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렸는데, 수록작마다 소재도 다양하고 이야기의 개성도 강해서 역시 좀비물은 무한한 확장성을 갖고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①좀비 낭군가 (태재현)
과거 시험을 보러갔던 낭군이 좀비가 되어 돌아와선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듭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활을 익혀온 한씨는 목숨을 걸고 괴물들과 맞서기로 합니다.
②침출수 (최영희)
작은 시골마을에 사는 16살 도아가 자신을 추행해온 남자를 살해한 날, 오염된 침출수가 일으킨 좀비 바이러스가 온 마을에 퍼집니다. 도아는 망치를 들고 좀비를 처리하러 나섭니다.
③메탈의 시대 (서재이)
첫 공연을 1주일 앞둔 인디 메탈밴드의 베이시스트 밸지는 홍대 일대를 휩쓴 좀비의 공격에 망연자실해집니다. 동료를 모두 잃었지만 밸지는 사선을 뚫고 공연장으로 향합니다.
④삼시세킬 (정예진)
감염병이 확산되고 감염자들의 공격이 난무하는 와중에도 남편의 삼시세끼를 챙기기 위해 분투하는 70대 할머니 보배의 ‘괴물과의 전쟁’.
⑤화촌(火村) (경민선)
업무 차 강원도로 가던 구대리는 화촌휴게소에 발이 묶입니다. 휴게소 앞뒤의 터널 두 개가 붕괴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괴물들의 공격에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집니다.
⑥제발 조금만 천천히 (전효원)
숙취에 시달리며 잠을 깬 채하는 갑자기 변해버린 세상에 놀랍니다. 빠른 사람(속인)과 느린 사람(완인)으로 갈라진 세상은 이내 피와 살이 난무하는 살육장으로 변해버립니다.
⑦각시들의 밤 (장아미)
섬의 생활에 환멸을 느낀 진홍은 매년 봄마다 치러지는 혼례의식을 이용하여 섬을 빠져나가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진홍은 은밀하게 감춰져온 섬의 비밀을 알곤 큰 충격에 빠집니다.
표제작인 ‘좀비 낭군가’는 스토리와 구성 모두 정직하고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감칠맛 나는 문장과 생생한 캐릭터가 돋보인 작품입니다. ‘침출수’는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는데, 장편 사회파 호러물로의 확장성이 기대됐기 때문입니다. ‘삼시세킬’은 영화 ‘킬 빌’의 우마 서먼을 연상시키는 70대 노파의 블랙코미디 풍 좀비물이라 흥미로웠고, ‘화촌’과 ‘제발 조금만 천천히’는 좀비라는 소재가 얼마나 신선하고 새롭게 구사될 수 있는 지를 잘 보여준 작품들입니다.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은 건 마지막 수록작 ‘각시들의 밤’인데, 아이디어는 너무 좋았던 반면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 특히 구성이 다소 허술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필요한 정보들을 제때 풀어놓지 않은 채 새로운 인물들을 계속 등장시키다 보니 이야기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고, 막판에 한꺼번에 공개된 정보는 왠지 뒷북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구성만 좀더 짜임새가 있었다면 정말 매력적인 작품이 됐을 거란 아쉬움이 진하게 남은 작품입니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다양한 소재와 개성 강한 서사들로 채워진 덕분에 한국 좀비소설의 특별한 맛을 즐길 수 있었고, 이름을 기억해둬야 할 작가들과 처음 만난 것도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취향과 거리가 먼 장르라고 생각하면서도 매번 재미있게 읽는 걸 보면 어쩌면 저도 이미 좀비물의 팬이 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되면 다른 독자들의 서평을 참고하면서 읽을 만한 한국 좀비소설을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