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론의 법칙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 Mickey Haller series
마이클 코널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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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능력을 갖췄지만 최악의 속물이기도 한 변호사 미키 할러는 또 한 번의 무죄 판결을 이끌어낸 축하 파티 직후 귀가하던 중 순찰경관에게 제지당합니다. 무슨 연유에선지 자동차 뒤 번호판이 사라져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의 트렁크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샘 스케일스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점입니다. 희대의 사기범이었던 스케일스는 할러의 고객 중 한 명이었고, 끝이 안 좋게 헤어진 일이 있는 악연의 인물입니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할러는 결국 구치소에 수감됐고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는 신세가 됐습니다. 스스로를 변호하기로 한 할러는 후배인 제니퍼와 함께 대응에 나서지만 모든 정황은 그를 꼼짝없는 살인범으로 지목합니다.

 

변론의 법칙은 미국에서 2020년에 출간된 작품으로 미키 할러 시리즈의 여섯 번째 작품입니다. 전작인 배심원단의 미국 출간이 2013년이니 무려 7년 만에 나온 신작인 셈인데, 그 사이 마이클 코넬리는 해리 보슈 시리즈르네 발라드 시리즈에만 주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미키 할러 시리즈’ 7편인 ‘Resurrection Walk’2023년에 출간됐습니다.)

 

의뢰인이 악당이라 하더라도 수임료만 맞으면 기꺼이 변호를 맡고 특유의 재능으로 무죄 혹은 형 감경을 이끌어냈던 미키 할러는 사방에 적이 많습니다. 그런 그가 살인을 저지른 피고인의 처지가 되자 그 적들이 날뛰기 시작합니다. 할러에게 두 번이나 물을 먹었던 판사는 일반적인 보석금보다 두세 배 높은 금액을 책정해 그의 보석을 원천봉쇄했고, 할러에게 보복할 날만 기다려온 검찰은 사형집행인이라는 별명이 붙은 강력부 스타 데이나 버그를 투입하여 그를 완전히 매장하려 합니다. 검찰 못잖게 악당을 위한 변호사할러를 증오해온 경찰 역시 그의 몰락에 쾌재를 부릅니다. 피고인 할러가 그나마 다행스럽게 여긴 건 재판을 맡은 판사 워필드가 다혈질에 독선적이긴 해도 비교적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물이란 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할러는 단순히 무죄를 입증하는데 그치지 않고 진범을 직접 밝혀내기로 결심합니다.

 

변론의 법칙은 이른바 미키 할러 어벤저스의 맹활약을 그린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섯 번째 증인에서 법대를 졸업한 지 10개월 된 풋내기로 등장했지만 이제 9년차 변호사가 되어 할러와 함께 공동변호인이 된 한 제니퍼 애런슨, 할러의 두 번째 아내이자 사무장인 로나, 유능한 검사지만 이번 사건 때문에 휴가를 내고 할러의 변호를 맡은 첫 번째 아내 매기, 그리고 이복형인 해리 보슈에 이르기까지 할러 주위의 인맥들이 총출연합니다. 로스쿨에 다니는 할러의 딸 헤일리, 경찰학교에 다니는 보슈의 딸 매디, 충직한 수사관 시스코까지 가세한 ‘‘미키 할러 어벤저스의 전방위적인 활약은 사건 못잖게 눈길을 끄는 대목입니다. 전작인 배심원단이후 7년 가까이 할러의 연인이었다가 헤어졌던 켄달이 오랜만에 그의 곁으로 돌아와 온기를 불어넣어주는 장면들도 아슬아슬한 로맨스의 묘미를 선사합니다.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에서 제한된 활동밖에 할 수 없지만 특유의 재능을 발휘하여 팀원들을 움직이는 할러의 활약도 매력적이고, 할러를 매장하기 위해 물불을 안 가리는 사형집행인이란 별명의 검사 데이나 버그의 맹공격도 화려하게 그려져서 500페이지를 훌쩍 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흥미진진하게 읽힙니다. 전처인 매기와 로나, 현재의 연인인 켄달과의 미묘한 4각 로맨스도 재미있고, 성장기 내내 아빠 할러와 갈등을 겪었던 헤일리가 법정 안팎에서 할러를 응원하는 대목은 시리즈를 쭉 읽어온 독자에겐 그저 애틋하게 보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을 딱 한 가지만 꼽으라면, 법정 스릴러의 교과서를 방불케 하는 상세한 재판 과정 묘사들이 간혹 느슨하고 지루하게 읽힐 만큼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꼭 필요한 설명들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읽은 미키 할러 시리즈에 비하면 다소 과해 보였습니다. 그 부분들이 조금만 축약됐다면 훨씬 더 슬림하고 속도감 넘치는 이야기가 됐을 거란 생각입니다. 상대적으로 미스터리의 핵심인 살인사건 자체는 분량에 비해 단선적으로 전개됐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더 강하게 받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장을 덮으면서 가장 기대된 점은 할러의 딸 헤일리의 미래입니다. 후속작인 ‘Resurrection Walk’가 이 작품 이후 3년 만에 출간됐으니 현재 로스쿨에 다니고 있는 헤일리는 어엿한 변호사가 돼있을 것 같지만 어쩌면 정반대로 엄마인 매기의 뒤를 이어 검사가 됐을 수도 있습니다. 변호사가 됐다면 할러와 제니퍼의 동료가, 검사가 됐다면 할러의 이 되는 셈입니다. 어떤 사건이 할러를 궁지에 몰아넣을지도 궁금하지만 애초 가족이었다가 해체의 상처를 겪었던 할러-매기-헤일리가 어떤 미래를 맞이할지가 더 궁금해지는 건 미키 할러 시리즈의 팬이라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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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의 눈물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김현화 옮김 / 빈페이지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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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쇼 시대 이래 오랜 세월 동안 명성을 이어온 도자기 노포 도키야 킷페이. 안정과 번영만 누리던 그곳을 하루아침에 지옥으로 만든 건 장차 노포를 이어받을 아들 고헤이가 한밤중에 살해당한 사건입니다. 노포 주인 부부 사다히코와 아키미를 더욱 충격에 몰아넣은 건 범인이 고헤이의 아내, 즉 며느리인 소요코의 전 남자친구라는 점. 특히 범인이 법정에서 소요코가 살인을 사주했다는 뉘앙스의 말을 내뱉은 탓에 그 충격은 더욱 배가됩니다. 남편 사다히코가 범인의 말을 헛소리로 일축한 반면, 아내 아키미는 며느리 소요코에 대한 의심을 좀처럼 지워내지 못합니다. 사건은 종결됐지만 아키미의 의심은 점점 더 증폭되고, 이후 노포에서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질 때마다 배후에 소요코가 있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검찰 측 죄인’, ‘범인에게 고한다’, ‘립맨등 매력적인 정통 미스터리로 만나온 시즈쿠이 슈스케지만 2020년에 읽은 염원은 심리 스릴러 혹은 도메스틱 스릴러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이라 무척 놀라웠습니다. “작정하고 심리묘사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작가의 출사표에도 불구하고 비록 별 3개라는 야박한 평점을 주긴 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악어의 눈물은 마치 그 출사표를 다시 한 번, 그것도 훨씬 더 독하고 세게 다듬어서 내보인 듯한 인상을 풍깁니다. 시작과 동시에 살인사건이 터지지만 범인은 금세 잡히고 재판과정도 속전속결로 마무리됩니다. 진짜 이야기는 장례까지 마친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온 뒤부터 시작됩니다.

 

거짓 눈물 말이지. 악어의 눈물. (중략) 악어는 먹잇감을 포식할 때 눈물을 흘리거든. 내가 긴자에 있을 때 눈물도 안 나오면서 억지로 울어서 여러 손님을 다루는 애들을 봐서 그런 건 예리하거든. 아키네 부부도 (소요코에게) 먹히지 않게 조심해.” (p114)

 

사건이 벌어지기 훨씬 전부터, 그러니까 소요코가 노포의 며느리가 된 3년 전부터 시어머니 아키미는 겉으로 드러나는 언행과 표정만으로는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는 소요코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아들을 죽인 범인이 소요코의 전 남친이라는 점, 또 소요코가 사주범이라는 법정에서의 범인의 최후 진술 때문에 아키미의 신경 어딘가가 툭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의심의 씨앗이 뿌려졌습니다. 무엇보다 남편이 살해당했는데도 좀처럼 동요하지 않는 소요코의 태도가 원망스러웠던 아키미는 동생 하루코로부터 장례식장에서 흘린 소요코의 눈물은 억지로 쥐어짜낸 악어의 눈물이 분명해.”라는 말을 듣곤 그날 이후로 소요코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합니다.

 

악어의 눈물은 엄밀히 말하면 미스터리가 아니라 어둡고 일그러진 심리를 그린 도메스틱 스릴러입니다. 소요코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으로 인해 점점 파국의 길을 걷게 되는 시어머니 아키미, 아키미의 의심에 동조하며 거침없이 소요코의 과거를 캐고 다니는 시이모 하루코, 반대로 소요코를 믿는 것은 물론 어린 손자 나유타를 노포의 후계로 생각하고 있는 시아버지 사다히코, 그리고 눈길을 끄는 외모와 달리 차분하고 내성적이면서도 (아마존 재팬 리뷰대로) 희대의 악녀인지 선량한 피해자인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며느리 소요코에 이르기까지 주요 인물들의 불안정한 심리와 갈등이 디테일하게 묘사된 작품입니다.

 

노포 안팎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인물들 사이의 의심과 반목을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소요코가 진정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판단을 더욱 불가해하게 만듭니다. 아키미의 의심대로라면 소요코는 완벽한 사이코패스입니다. 하지만 그 의심이 틀렸다면 노포를 잠식한 불온하고 어두운 기운은 그야말로 작은 의심의 씨앗이 야기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미권의 심리 스릴러와 도메스틱 스릴러에 질려 있던데다 작가의 전작인 염원에 야박한 평점을 주기도 했고, 큰 사건 없이 진행되는 서사가 다소 느슨하게 읽히기도 해서 중반쯤만 해도 또 시즈쿠이 슈스케에게 별 3개를 줘야 되나?”라는 고민을 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지점을 잘 넘어가면 이 작품의 특별한 미덕과 함께 이야미스에 버금가는 기묘한 여운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내 주위에 소요코라는 인물이 있다면 난 그녀를 믿을 수 있을까, 없을까? 내게 던져진 작은 의심의 씨앗을 단호하게 지워버릴 수 있을까, 없을까? 소요코는 과연 무죄일까, 유죄일까?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쯤 자신도 모르게 이런 씁쓸한 자문을 하게 되는 것이야말로 악어의 눈물의 진짜 미덕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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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알아서는 안 되는 학교 폭력 일기 쿤룬 삼부곡 2
쿤룬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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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이하 학교폭력 일기’)은 역시 독특한 제목을 가진 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이하 청소지침서’)에 이은 쿤룬 3부곡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아직 읽지 못한 세 번째 작품 역시 업자에게 잊혀진 시체 보관기록이라는 엽기적이면서도 특이한 제목을 갖고 있습니다.

청소지침서가 희대의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를 숭배하는 전 세계적인 살인집단 ‘JACK’의 조직원만 골라 죽이며 복수를 펼치는 결벽증 미소년 스녠의 활약을 그렸다면, ‘학교폭력 일기는 살인범에게 아버지를 잃은 뒤 지독한 학교폭력과 가정폭력의 피해자로 살던 15살 여중생 장페이야가 무시무시한 살인마로 변신하여 복수를 펼치는 이야기입니다.

 

쿤룬 3부곡이라는 시리즈 명에 걸맞게 두 작품에는 몇 가지 접점이 있습니다. 장페이야는 청소지침서에서 아버지가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한 어린 남매로 등장한 바 있습니다. 또한 부와 명예와 미모를 겸비한 심리치료사 닥터 야오, 그녀를 숭배하는 미스터리한 인물 이하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정보판매상 다비도프, 그리고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의 주인공이 될 시체수거업자등 눈길을 끄는 조연들이 모두 등장합니다. 주인공은 계속 바뀌지만 크게 보면 한 편의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하다는, 즉 시리즈의 묘미를 한껏 살린 작품들이란 뜻입니다.

 

아버지를 잃고 동생과도 헤어져 고모 집에 머물게 된 장페이야는 고모 부부의 거칠고 탐욕스런 학대는 물론 전학 간 학교에서마저 지독한 폭력에 시달립니다. 그런 장페이야에게 유일한 위안은 편의점에서 심야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 류촨한뿐입니다. 어리숙해 보이지만 다정다감한 촨한 덕분에 장페이야는 찰나에 불과하지만 편안함과 안식을 얻습니다. 하지만 우연한 불청객 때문에 촨한의 어두운 과거가 밝혀지고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장페이야와 촨한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그때 고모집과 학교에서 더는 인내할 수 없는 사태들이 벌어진 상태에서 누군가 장페이야에게 손을 내밉니다. 복수하라고, 도와주겠다고.

 

가해자에 대한 복수는 오래된 소재이기도 하고 근래 들어 지나치게 자주 소모된 탓에 다소 식상한 면이 있지만, 그래선지 장르를 불문하고 이야기를 창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설정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으로 보입니다. 쿤룬 역시 그중 하나인데, 중화권 미스터리의 일반적인 특징 시끄럽고 잔혹하지만 블랙유머가 난무하고 대체로 쉽게쉽게 넘어가는 구성 등 을 다 갖추고 있으면서도 나름 흥미로운 캐릭터와 스토리를 자아냈습니다.

혹독한 성장기와 비극적인 사건 때문에 희대의 살인마가 된 청소지침서의 스녠이나 여린 모범생이었지만 끝이 안 보이는 지독한 폭력으로 인해 임계점을 넘은 끝에 피의 복수자가 된 학교폭력 일기의 장페이야는 다소 비현실적인 캐릭터임에 분명하지만, 작가는 그들의 과거와 현재 속에 연민을 자아낼 수밖에 없는 지극히 현실적인 설정 가족, 연인, 미래에 대한 희망 등 - 을 배치하여 나름 적절한 방식으로 중화 효과를 이끌어냅니다. 또한 주인공들에게 (비위가 약한 독자라면 외면하고 싶을 정도의) 잔혹한 폭력을 거듭 가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저절로 그들을 응원하게 만들고 부디 복수해!”라며 등을 떠밀고 싶게 만들기도 합니다. 과도할 정도의 감정 이입을 조장함으로써 캐릭터의 비현실성을 망각하게 한다고 할까요?

 

잔혹한 스릴러 서사를 좋아해서 무척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전작과 마찬가지로 별 4개에 그친 가장 큰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모든 것이 너무 쉽다는 것입니다. 스포일러를 피해 이야기하자면 너무 쉽게 포기하고, 너무 쉽게 오해하고, 너무 쉽게 살인마가 된다, 정도인데, 적잖은 중화권 미스터리에서 비슷한 아쉬움을 여러 번 느낀 걸 보면 아무래도 보편적인 현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스포일러가 될 대목들이 많아서 인상 비평에 가까운 서평이 되고 말았는데,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어도 중독성이 강한 이야기라 한 편이라도 읽으면 나머지 작품들도 찾아 읽게 될 게 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저 역시 시리즈 마지막 작품까지 달릴 생각인데, 이 작품에서 장페이야의 유일한 안식처였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류촨한이 막판에 세 번째 작품을 위한 큰 떡밥을 남겨서 더욱 기대감을 갖게 됐습니다. 과연 세 번째 작품에서 장페이야가 류촨한과 재회할지, 또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을 알게 될지, 그럼으로써 첫 번째 작품의 주인공 스녠과 연결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출판사 소개글에 따르면 “1~2편의 모든 인물이 집합하여 화려한 대결을 펼친다.”고 하니 1~2편보다 더 세고 독하고 잔혹한 이야기들이 펼쳐지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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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크 팔로우 리벤지 스토리콜렉터 105
엘러리 로이드 지음, 송은혜 옮김 / 북로드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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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수입 10억에 100만 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인스타맘 에미의 삶은 실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허구입니다. 하지만 에이전트까지 두고 치밀한 계획 하에 인플루언서가 된 에미는 그 허구 속에서 행복할 뿐입니다. 그녀의 주제는 육아이며 콘셉트는 완벽하게 불완전한 엄마’, ‘실수하고 고뇌하는 초보엄마입니다. 영국의 맘들은 퍼펙트 맘보다는 실수투성이지만 어떻게든 육아의 미션을 이뤄내는 에미의 모습에 더 열광합니다. 한편 8년째 새 소설을 못 내놓고 있는 에미의 남편 댄은 아내의 모든 말을 개소리로 여기면서도 그녀의 인스타그램 활동을 돕습니다. 에미 없이는 지금의 생활을 이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4살 딸 코코가 잠시 사라지는 일이 벌어지고 집에 도둑이 든 뒤로 에미와 댄의 삶은 뒤흔들리기 시작합니다.

 

SNS를 소재로 한 미스터리나 스릴러를 여러 편 읽었지만 라이크 팔로우 리벤지인스타그램보다 매혹적이고 중독성 있는 인스타그램 누아르’”라는 홍보카피에 잘 어울리게 교과서적이면서도 정공법을 구사한 작품이라 무척 흥미롭게 읽혔습니다. 인플루언서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어떤 식으로 팔로어를 관리하는지, 협찬과 광고를 어떻게 끌어들여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지 등을 상세히 묘사하는 것은 물론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사생활을 노출한 대가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부와 인기를 한 손에 쥐었던 인플루언서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몰락할 수 있는지 등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동시에 에미에게 깊은 원한을 품은 채 그 주위를 맴돌며 복수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익명의 범인을 등장시켜 스릴로서의 재미도 가미합니다. 에미 때문에 가족을 잃은 것으로 보이는 범인은 인스타그램 사진을 통해 에미의 집을 알아내고 그녀의 가족들을 미행하는 것은 물론 범행을 저지를 때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씩 준비하는 치밀함을 드러내지만 사악함보다는 어딘가 연민을 자아내기도 해서 막판에 어떤 클라이맥스를 이끌어낼지 무척 궁금하게 만듭니다.

 

도메스틱 심리스릴러로 분류돼도 좋을 만큼 이야기는 에미와 댄의 화려하지만 균열 투성이인 일상과 늘 불안에 휩싸여있는 심리에 치중합니다. 어린 남매를 키우며 겪는 육아의 고통, 그 고통을 역으로 이용하여 인플루언서로 맹활약하는 에미의 폭주, 무능한데다 매사에 에미의 확고하고 논리적인 태도에 끌려가기만 하는 댄의 무력함이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이런 서사는 사실감과 긴장감을 높이는 장점이지만 동시에 일상에 관한 동어반복이자 지나치게 친절하고 상세한 묘사이기도 해서 다소 느슨하고 지루하게 읽히게 만드는 단점이기도 합니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별 1개를 뺀 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인플루언서로서의 에미의 삶은 다소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자신의 사생활을 익명의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시키며 좋아요를 이끌어내고 댓글 개수에 집착하게 되는 SNS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로는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저처럼 책 사진 외에는 아무 것도 볼 게 없는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계정이라면 모르겠지만, 가족사진이나 집 주소 등 개인정보를 추정할 수 있는 콘텐츠를 올린 계정을 갖고 있다면 에미의 사례를 남의 이야기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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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 미친 반전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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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이치를 포함한 대학시절 등산동아리 멤버 6명과 슈이치의 사촌형 쇼타로 등 7명은 나가사키의 산속에 위치한 기이한 지하 건축물 - 거대한 화물선을 닮은 지하 3층 규모의 방주’ - 을 발견하곤 크게 놀랍니다. 천연동굴을 이용하여 지은데다 수십 년 넘게 사용한 흔적이 없어 으스스한 기분을 자아내지만 멤버들은 폐허 탐험의 기회라며 하룻밤을 묵기로 합니다. 하지만 다음날 새벽 지진과 함께 방주의 출입구는 거대한 바위로 막혀버립니다. 거기다가 지하수의 흐름마저 바뀌어 며칠 후면 전원이 수몰될 위기에 처합니다. 문제는 바로 그 시점에 의문의 살인사건이 벌어졌다는 점입니다. 과연 누가, , 하필 이 시점에 살인을 저지른 건지 아연한 가운데 연이어 살인이 벌어지자 멤버들은 패닉에 빠지고 맙니다.

 

일본의 각종 미스터리 차트를 석권한 것은 물론 본격 미스터리가 살아남기 위한 단 한 가지 멋진 방법이 여기 있다.”(노리즈키 린타로), “얼얼한 맛의 에필로그에 백퍼센트 경악 보증.”(아키요시 리카코) 등 거장들의 찬사를 받은 방주는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의 전형적인 공식을 따르면서도 지금껏 본 적 없는 특이한 설정과 예측 불허의 반전이 빛나는 작품입니다.

 

외부와 차단된 지하건축물 방주에서 살아나갈 길은 오직 하나, 지하 2층에 있는 닻감개를 통해 출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바위를 밑으로 떨어뜨리는 것인데, 문제는 그 닻감개를 조작하는 사람은 밖으로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는 점입니다. 지하수의 상승으로 전원 수몰되기까지는 단 1주일밖에 안 남은 상태이고, 결국 누군가 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잃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필 이런 때 벌어진 살인사건으로 인해 멤버들의 혼란은 극에 달합니다. 전날 밤늦게 산에서 길을 잃고 방주에 합류한 일가족 3명까지 모두 10명으로 시작된 폐허 탐험은 첫 피살자가 나온 순간부터 이른바 데스 게임, 즉 누군가 한 사람이 죽어야만 종료되는 참혹한 상황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밀실에서 살인이 벌어지고 무리 중에 범인이 있다.”라는 고전적인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의 외양을 갖고 있지만 방주는 거기에다 데스 게임의 원칙을 부여하여 이야기를 한층 복잡하고 긴장감 넘치게 만듭니다. 누군가 한 사람이 (닻감개로 바위를 치우고 홀로 갇히는 식으로) 희생돼야만 모두가 생존할 수 있는 상황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자 멤버들은 살인범에게 그 희생을 맡겨야 한다고 의견을 모읍니다. 하지만 살인범을 밝혀낸다고 해도 그가 희생을 받아들일 거란 보장은 없습니다. 오히려 서로 살겠다고 피비린내 나는 폭력이 난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그가 아무리 살인범이라 해도 그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건 살인행위와 다를 바 없기 때문에 멤버들 모두 심한 내적 갈등을 겪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인 상태에서 연이어 잔혹한 살인사건이 벌어지지만 누구도 단서 하나 찾아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 방주를 수몰시킬 지하수의 수위는 계속 높아질 뿐입니다.

 

과연 살인범이 기꺼이 희생양이 돼줄까?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굳이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동기는 무엇일까? 왜 하필 지진 직후 살인이 시작된 것일까? 왜 살인범은 수고스럽게도(?)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 것일까?

얼핏 쉬워 보이는 밀실살인사건으로 시작됐지만 풀리는 수수께끼라곤 거의 없고 연이어 희생자가 등장하는데다 범인을 밝히는 것만으로 이 이야기가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 때문에 독자는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누가?’도 궁금하지만 ?’를 전혀 짐작할 수 없기 때문에 작가가 마지막에 어떤 엔딩을 내놓을지 예측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또한 막판에 의외의 인물이 범인으로 밝혀지지만 사실 진짜 클라이맥스는 거기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다 읽고 나면 얼얼한 맛의 에필로그에 백퍼센트 경악 보증.”이라는 아키요시 리카코의 극찬에 100% 동감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사실 중반부에 동어반복과 함께 살짝 느슨해지는 대목이 있긴 하지만(이 때문에 별 0.5개를 뺐습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거듭 반복되는 반전을 제대로 맛보려면 그 지점들을 꼼꼼하게 읽어야만 합니다.

 

유키 하루오는 1993년생의 젊은 작가입니다. 거장들의 극찬을 받은 방주가 본인에겐 더없는 영광이자 자랑이겠지만 동시에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허들인 것도 사실입니다. 유키 하루오가 머잖아 방주를 뛰어넘는 본격 미스터리를 선보여줄 것을 조심스레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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