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디맨
프리다 맥파든 지음, 조경실 옮김 / 북플라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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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리건주의 한 주택에서 애런 니어링이라는 남자가 살인 용의자로 체포됩니다. 그의 지하 작업실에서는 25살 맨디 요한슨의 시신뿐 아니라 지난 10년간 실종된 여성 17명의 잘린 손이 추가로 발견됩니다. 언론에서는 그에게 핸디맨이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26년이 지난 현재, 애런 니어링의 딸이자 외과의사인 노라 주변에서 다시 손목이 잘린 시체들이 발견되기 시작합니다. (출판사 소개글을 일부 수정 후 인용했습니다.)

 

끔찍한 연쇄살인마로 밝혀진 아버지가 체포될 당시 노라는 불과 11살이었습니다. 방조범으로 체포된 어머니마저 구치소에서 자살한 뒤 노라는 성()을 데이비스로 바꾸곤 철저히 자신의 과거를 숨기며 살아왔습니다. 유능한 외과의사가 됐지만 노라는 연애나 결혼 같은 건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살아갑니다. 평생을 비밀로 해야 할 과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끔찍한 연쇄살인마의 피를 후대에 물려주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범행을 완벽하게 모방한 듯한 연쇄살인마가 등장하고, 하필 그 피해자들이 자신과 연관 있는 여자들로 밝혀지면서 노라는 세상이 무너질 듯한 충격에 빠집니다.

 

연쇄살인마의 자식자체는 특별히 새로운 설정은 아니지만 핸디맨이 흥미롭게 읽힌 이유 중 하나는 노라가 보호받아 마땅한 가련한 주인공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작가는 11살 시절의 노라 이야기를 간주처럼 끼워 넣으면서 혹시 연쇄살인마의 피는 정말로 유전되는 것인가?”라는 흥미로운 도발을 툭툭 던지곤 합니다. 더구나 노라가 인간의 몸에 직접 메스를 대는 외과의사가 된 게 단순한 우연은 결코 아니라는 인상도 지울 수 없어서 독자는 마지막까지 노라에 대한 의심의 시선을 거둘 수 없게 됩니다.

 

또 한 가지 흥미를 유발한 것은 이런 설정으로 시작된 스릴러가 막판에 가서 난데없이 나타난 범인을 지목하지는 않는다는 점, 즉 노라 혹은 노라의 주변인물 가운데 범인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작가는 용의선상에 오를 법한 인물을 여럿 배치해놓았고, 독자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됩니다. 전체적으로 전개가 다소 느려 보이긴 하지만 막판에 두어 명으로 좁혀진 용의자들의 행적들을 돌이켜보면 제법 설계가 잘 된 스릴러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분량도 적당하고, 페이지도 잘 넘어가고, 클라이맥스와 엔딩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던 건 사건이 몇 개 없다는 점, 경찰의 압박과 조사가 다소 느슨했다는 점, 그리고 사족이 많았던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느린 만연체처럼 읽혔다는 점 때문입니다. 딱 필요한 하이라이트만 정리된 느낌이라고 할까요?

 

올해 엇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하우스메이드역시 이 작가의 작품인데, 고백하자면 어지간히 호평을 받은 작품이 아니라면 더는 심리스릴러를 읽고 싶지 않아서 독서목록에서 제외시켰던 작품입니다. ‘핸디맨을 읽은 뒤에 어느 정도 관심이 생긴 건 사실인데, 일단은 다른 독자들의 평가를 지켜본 뒤에 읽을지 여부를 결정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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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마지막에 본 것은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마사키 도시카 지음, 이정민 옮김 / 모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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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

 

누구나 행복해야 할 크리스마스이브, 노숙인으로 추정되는 신원 미상의 중년 여성이 시신으로 발견된다.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 반듯하게 누워 있는 여성의 옷은 흐트러졌고 머리에는 둔기로 맞은 흔적이 있다. 사건을 담당한 괴짜 형사 미쓰야와 신입 형사 다도코로는 살해당한 노숙인 여성의 삶과 죽음을 조사하며 얽히고설킨 불행을 발견하는데... (출판사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마사키 도시카는 20226월에 출간된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로 처음 만난 작가입니다. 이 작품까지 단 두 편만 소개된 작가인데, 두 작품 모두 미쓰야&다도코로 시리즈로 불립니다. 경시청 수사1과 소속의 괴짜 형사 미쓰야 슈헤이와 관할서 신참 형사 다도코로 가쿠토 콤비가 이끄는 미스터리인데, 두 작품 모두 단순히 범인은 누구?’보다는 조금 더 묵직하고 어두운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각별하게 읽혔습니다.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자식 때문에 인생의 방향이 크게 뒤틀어진 여러 어머니가 이야기를 이끌어갔다면, 이번 작품은 불의의 사고 혹은 사건 때문에 비극을 맞이하게 된 여러 부부가 중심에 놓여있습니다. 남편을 살해한 범인이 1년도 넘게 잡히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슬픔에 빠진 아내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이제는 행복해지고 싶어.”라는 욕망을 감추지 못하는 여자, 부유하진 않아도 행복한 삶을 누리던 어느 날, 남편이 급사하면서 순식간에 막장으로 내몰린 여자, 그리고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사람을 죽였다는 심한 죄책감에 빠진 나머지 가족에게 등을 돌린 남자 등 한순간에 눈앞의 세상이 뒤집어져버린 여러 부부가 복잡한 미스터리 속에 얽혀있습니다.

 

별개로 보이던 두 사건 - 크리스마스이브에 살해당한 중년 노숙여성과 1년 전 귀갓길에 살해당한 한 직장인 이 의외의 지점에서 접점을 이루면서 미스터리는 무척이나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됩니다. 꽤 많은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인물관계도를 메모하면서 읽는다면 이 작품의 매력을 좀더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안 그러면 엄청난 기억력과 추리력을 발휘하며 혼자서 폭주하는 괴짜 형사 미쓰야의 추리를 쫓아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등장인물들은 단순히 미스터리 속 캐릭터에 그치지 않고 삶을 대하는 극과 극의 태도들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오로지 타인의 불행만을 바라거나 분수에 맞지 않는 이기적인 행복을 바라거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온통 거짓뿐인 허상에 사로잡히거나 그도 아니면 세상 모든 것이 파멸에 이르기만을 기다리는 등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진 군상들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다 읽은 뒤에는 그녀가 마지막에 본 것은이라는 제목이 얼마나 많은 것을 의미하고 있는지 새삼 절감하게 됩니다.

 

다만 너무 많은 인물들과 그만큼 복잡한 관계들이 이야기에의 몰입을 방해하기도 하고 현실감을 떨어뜨린 아쉬움은 분명히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어떻게 저렇게들 엮일 수가 있지?”라고 할까요? 또 괴짜 형사 미쓰야의 엄청난 능력이 때론 지나친 비약으로 보이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한참 이야기에 빠져 있다가 갑자기 훅 하고 소외되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미쓰야가 조금만 더 사실감 있는 능력자로 그려졌다면 더 매력적인 캐릭터가 됐을 거란 생각입니다.

 

검색을 해보면 이 작품 이후에도 レッドクローバー’(레드 클로버, 2022)가 출간된 걸로 나오는데, 혹시 이 작품도 미쓰야&다도코로 시리즈라면 꼭 한국에 출간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회파 미스터리는 아니지만 단순한 범인 찾기를 넘어 묵직한 여운을 남겨주는 마사키 도시카의 작품을 다시 한 번 맛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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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케이지 : 짐승의 집
보니 키스틀러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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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로서 극과 극의 인생을 살아오다 결국 최악의 밑바닥에 이르고 만 30살의 셰이 램버트는 가까스로 패션 대기업 사내변호사로 취직합니다. 하지만 불과 한 달만에 셰이는 끔찍한 사건에 휘말리고 맙니다. 늦은 주말 밤, 인사부장 루시와 함께 탄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춰선 뒤 정전이 되더니 그녀가 느닷없이 권총으로 자살하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회사와 경찰은 루시의 죽음을 자살이 아닌 살인사건으로 몰아가기 시작했고, 이제 셰이는 죄가 없음을 스스로 밝혀야만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모든 정황은 그녀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뿐입니다.

 

멈춰선 채 정전된 엘리베이터, 두 사람이 탔지만 한 사람이 죽어버린 상황, 진상을 보여줄 객관적인 단서는 전무한 상태. 셰이 램버트가 처한 상황은 살인자로 오인받기 딱 좋은 암담함 그 자체입니다. 그녀 자신이 변호사이긴 하지만 정황만으로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유일하게 기댈 것이라곤 인사부장 루시의 자살동기가 밝혀지는 것뿐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셰이에게 불리한 진술과 증거들이 튀어나오면서 그녀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고 맙니다.

 

이야기는 루시는 자살했다.”를 입증하려 분투하는 현재 시점의 셰이, 영광과 추락을 거듭했던 과거 시점의 셰이, 그리고 루시는 셰이에게 살해당했다.”며 셰이를 살인범으로 몰아가려는 회사 고위층 배럿 등 세 명의 시점으로 전개됩니다. ‘갑자기 멈춰선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죽음은 누구도 예상하기 힘든 우연 그 자체지만, 세 가지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마치 피할 수 없는 운명 혹은 필연일 수밖에 없었구나,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됩니다. 인생 막장을 헤매던 셰이가 하필 이 회사에 들어온 일도, 하필 주말 늦은 밤에 루시와 단 둘이 엘리베이터에 탄 일도, 그리고 하필 배럿이란 인물과 대립하게 된 일도 어찌 보면 예정돼있던 일처럼 여겨진다는 뜻입니다. 그 많은 변수 가운데 하나만 방향을 조금 바꿨어도 셰이에겐 이런 끔찍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겠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아이러니들 덕분에 이야기는 더욱 쫄깃하게 읽힙니다.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이야기는 셰이의 무죄입증 분투기에 법정 스릴러까지 가미되면서 더욱 속도감을 높입니다. 그 자신이 변호사인 셰이는 무죄입증과 함께 복수를 계획하며 대형 로펌의 변호사들을 자신의 뜻대로 구워삶기도 하는데, 전직 변호사인 작가의 이력이 십분 발휘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나름 재미있게 읽었지만 꽤 야박한 평점을 준 가장 큰 이유는 허술한 악당 설정때문입니다. 셰이를 살인범으로 만들려는 악당들의 동기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그들이 은폐하려는 악행 자체가 다소 현실감이 떨어졌고, 셰이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그들이 동원한 수단들 역시 어설프고 빈틈투성이였습니다. 특히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인 2014년에 어울리지 않는 조악한 수준의 누명 씌우기대목에선 웃음만 나올 뿐이었는데 그런 일들이 반복되는 바람에 주인공인 셰이에게 몰입하는 것마저 어려워지곤 했습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셰이의 매력이 뒤로 갈수록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갑자기 비현실적인 슈퍼 히로인이 되는 것도, 그녀를 돕는 조연의 힘이 너무 막강해서 그 도움이 없었다면 셰이 혼자 뭘 할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모두 셰이의 매력을 반감시킨 요인들입니다.

 

초반 설정도 흥미로워 보였고, 법정 스릴러를 좋아해서 선택했지만 만족감보다는 아쉬움이 더 많이 남은 작품입니다.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을 테니 이 작품이 궁금한 독자라면 다른 서평들도 꼭 참고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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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부르는 그림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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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기담과 미스터리를 절묘하게 조합한 미야베 월드 2가운데 기타기타 시리즈는 이제 막 두 편의 작품만이 세상에 나온 따끈따끈한(?) 막내입니다. 하지만 미미 여사는 미야베 월드 2의 간판인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와 함께 작가로서의 마지막 사명이라고 부를 만큼 기타기타 시리즈에 대한 애정 어린 계획을 품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기타이치는 명탐정도 아니고 뛰어난 자질을 품고 있지도 않습니다. ‘책을 담는 상자인 문고를 만들어 파는 행상에 불과한데다 비주얼도 완력도 결코 대단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미 여사는 이 젊은 문고상이 시중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트러블을 입장이 약한 사람들과 더불어 해결하며 어엿한 한 사람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에도 시대의 풍경과 함께 잔잔하고 따뜻하게 그려냅니다. 히어로는 없지만 어벤저스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에도 시대 미스터리라고 할까요? 물론 기타이치가 마주하는 사건들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세 편의 단편이 실려 있지만 다뤄지는 사건은 크게 두 개입니다. 하나는 표제작 아기를 부르는 그림에 등장하는 기괴한 사건으로, 당초 아기의 탄생을 기원하기 위해 그려진 그림이 제멋대로 저주를 부려 아기들의 목숨을 앗아간다는, 미스터리 괴담의 전형적인 공식에 충실한 사건입니다. 또 하나는 기타이치가 단골로 드나들던 도시락가게 일가족이 참혹하게 독살당한 사건으로, 이 역시 기담과 괴담의 분위기가 진하긴 하지만 비교적 현실적인 미스터리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한편으론 점포를 지닌 성공한 문고상을 꿈꾸기도 하지만 기타이치는 두 개의 사건과 마주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오캇피키(하급관리의 지명을 받아 치안업무를 맡던 민간인)가 되면 어떨까, 라는 기대감에 사로잡힙니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자신을 키워준 오캇피키 센키치 대장의 뒤를 잇는 것은 기타이치에겐 더없이 각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문고상으로도, 오캇피키로도 한뼘 훌쩍 성장하는 기타이치의 눈부신 시간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기타이치가 맹활약하는 이야기도 아니고, 엄청난 반전이나 짜릿한 결말을 맛볼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지만, 이 시리즈의 진짜 매력은 기타이치 주변의 인물들, 즉 기타이치를 후원하거나 도와주거나 쓰디쓴 조언을 마다하지 않는 조연들에 있습니다. 남편 센키치 대장과 사별한 뒤로 기타이치의 뒷배를 봐주고 있는 마쓰바 마님, 기타이치의 버디 캐릭터이자 모든 것이 비밀투성이인 목욕탕 직원 기타지, 무가의 자식이지만 기타이치의 문고에 그림을 제공하는 신비로운 인물 에이카, 그리고 가난하지만 정감 어린 기타이치의 셋집 이웃들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조연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맛깔나게 소화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기타이치를 도우면서 스스로도 성장하고 변화하는지를 체크하면서 읽는다면 이 작품의 맛을 좀더 진하게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야베 월드 2을 초기작부터 읽은 독자라면 이 작품 곳곳에서 반가운 이름들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맏물 이야기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의 주인공인 오캇피키 모시치 대장, (잠깐 지나가듯 두어 줄 정도만 언급되지만) ‘얼간이’, ‘하루살이’, ‘진상헤이시로&유미노스케 시리즈의 주인공인 미소년 유미노스케, 그 유미노스케를 도와 뛰어난 기억력을 발휘했던 짱구(산타로) 등이 그들입니다. 특히 이제 중년에 이르러 관리가 된 짱구의 경우 앞으로도 기타이치를 계속 도울 예정이라니 더 반갑게 느껴집니다. 미미 여사는 그동안 다른 시리즈에 등장시켰다가 끝내 마무리 짓지 못한 인물들을 기타기타 시리즈를 통해 모두 회수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과연 그 인물들이 어떤 식으로 기타이치의 삶에 끼어들지 벌써부터 기대감이 만발합니다.

 

본편 뒤에 4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편집자 후기가 수록돼있는데, 삼송 김사장 님께서 미미 여사에게 품고 있는 진한 애정과 함께 미야베 월드 2전체를 조감할 수 있는 친절한 해설을 만날 수 있으니 혹시 이 작품으로 미야베 월드 2을 처음 만난 독자라면 꼭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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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막이 내릴 때 (저자 사인 인쇄본)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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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한 아파트에서 중년여성 오시타니 미치코의 사체가 발견됩니다. 사망 직전 고향 친구인 유명 연극연출가 아사이 히로미를 만난 것이 확인됐지만 그 외에는 단서도 동기도 알아낼 수 없어 수사는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힙니다. 경시청 수사1과의 마쓰미야는 인근에서 일어난 노숙자 사망사건과의 연관성을 밝혀내지만 두 사망자 사이의 연결고리는 오리무중일 따름입니다. 사촌형이자 니혼바시 경찰서 형사인 가가에게 자문을 구하던 마쓰미야는 범행현장에서 발견된 기이한 달력 - 니혼바시 일대 12개의 이름이 적혀 있는 - 이야기를 꺼냈다가 가가의 표정이 굳는 걸 보곤 놀랍니다. 20여 년 전 집을 나간 뒤 고독사한 어머니 유리코의 유품 속에 똑같은 메모가 있던 걸 기억해낸 가가는 경시청 상부의 허락을 받고 수사에 참여하게 됩니다.

 

기도의 막이 내릴 때라는 제목에서 감지할 수 있듯 이 작품은 가가 형사 시리즈10번째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입니다. 또한 시리즈 중간중간 언급됐던 가가의 비극적인 가족사가 이야기의 중심에 놓여 있어서 그를 지켜봐온 팬이라면 어떤 엔딩이 기다리고 있을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어머니 유리코는 가가가 12살 때 집을 나간 뒤 소식을 끊었습니다. 경시청 수사1과에 근무하던 20대 후반 무렵, 그러니까 어머니가 집을 나간 지 16년 만에 낯선 사람으로부터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홀로 유골을 수습했던 가가는 1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어머니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들인 자신을 조금이라도 기억은 하고 있었는지 알고 싶을 따름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두 살인사건의 범인 혹은 피해자가 어머니와 어떤 식으로든 인연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자 가가는 경시청의 수사를 돕는 형태로 어머니의 흔적을 쫓기 시작합니다. 평소보다 더 집요하고 꼼꼼하게, 하지만 평소와 달리 폭주하기도, 흥분하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수사의 1차 목표는 아무런 연관성도 찾아볼 수 없는 두 살인사건 피해자의 접점을 파악하는 것, 그리고 유력한 용의자인 유명 연극연출가 아사이 히로미와 피해자들 사이의 접점을 알아내는 것입니다. 무려 30년 전의 일까지 조사해야 하는 탓에 마쓰미야를 비롯한 경시청 수사팀의 탐문은 그야말로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와 다름없습니다. 탐문 상대 대부분이 희미한 기억 외엔 결정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지만 가가는 그들의 진술 속에서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한 위화감을 포착하고 전혀 다른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앞선 시리즈들에서 늘 그랬듯 가가는 사소한 단서와 평범한 진술 속에서 진실과 진상을 알아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리고 피살된 자의 달력과 어머니의 유품 속 메모에 같은 필체로 적혀있던 니혼바시 12개 다리 이름의 미스터리를 파악함으로써 단번에 수사에 큰 전환점을 마련합니다.

 

불과 2년 반 만에 다시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감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형사로서의 가가의 능력이 최대치로 발산되는 가운데 사건의 중심에 그의 비극적인 가족사가 놓여있다 보니 그 어떤 작품보다 몰입감도 높고 페이지가 넘어가는 속도도 빠를 수밖에 없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중 한 작품을 연상시키는 살인사건의 진상 역시 비극의 강도가 대단해서 개인적으론 그의 미스터리 가운데 베스트로 꼽아도 손색없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런 느낌은 시리즈를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야만 제대로 맛볼 수 있지만 말입니다.

 

시리즈 마지막 작품이라 더 깊은 인상과 여운이 남았겠지만 동시에 그만큼의 아쉬움 - 더는 가가 형사의 활약을 지켜볼 수 없다는 사실 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시리즈 전체를 순서대로 다시 읽으면서 일곱 번째 작품인 붉은 손가락에서 이제야말로 가가의 전성시대가 시작됐구나!”라고 감탄했고, 실제로 그 뒤로 나온 세 작품은 하나 같이 가가의 매력이 만발했던 작품들이라 아쉬움은 더욱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도 있지만, 가가의 퇴장은 너무 빨랐던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이 일본에서 출간된 게 9년 전이니, 시리즈가 계속 이어졌다면 지금쯤 가가는 40대 중반이 돼있을 것입니다. 성격상 관리직이 되진 않았을 테니 여전히 현장을 뛰고 있는 가가를 그린 열한 번째 작품이 지금 나온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아니면 외전으로라도 좋으니 언젠가 꼭 한 번은 가가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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