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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자의 손길
치넨 미키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6월
평점 :
절판
30대 중반의 다이라 유스케는 준세이카이의대 대학병원 흉부외과 8년차 의사입니다. 가혹한 근무환경과 열악한 처우 때문에 모두가 기피하는 흉부외과지만 유스케는 의대 시절부터 오로지 최고의 흉부외과 의사가 되기 위해 정진해온 인물입니다. 하지만 흉부외과 의사로서의 미래를 결정지을 파견 인사를 앞두고 유스케는 극도로 예민한 상태입니다. 최고의 파견 자리 하나를 놓고 1년 후배인 하리야와 경쟁해야 하는데, 그는 다름 아닌 흉부외과 과장 아카시의 조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와중에 유스케는 아카시 과장으로부터 원하는 곳으로의 파견을 전제로 두 가지 요구를 받습니다. 하나는 신입 인턴 3명 중 2명을 흉부외과에 영입해야 한다는 것, 또 하나는 아카시 본인의 논문 조작설을 주장한 괴문서 유포자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치넨 미키토는 현직 의사이자 미스터리 작가지만 무척 특이한 행보를 보여왔습니다. 읽은 작품만 따져 봐도 ‘가면병동’과 ‘시한병동’이 본격 미스터리와 의료 서스펜스를 절묘하게 결합한 작품이라면, ‘리얼 페이스’는 성형의 빛과 그늘을 다루면서 거기에 연쇄살인사건을 접목시킨 작품이고, 최근에 읽은 ‘유리탑의 살인’은 (메디컬과는 전혀 무관한) 신본격 미스터리의 부활을 선언하는 듯한 정통 미스터리입니다. 그야말로 장르를 불문하고 종횡무진 활약하는 ‘의사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자의 손길’은 치넨 미키토가 자신의 본업을 소재로 집필한 메디컬 휴먼 드라마라서 더욱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체로 메디컬 드라마의 주인공은 의술과 인품을 골고루 갖춘 완벽한 인물이거나 의술은 뛰어나지만 어딘가 모난 구석이 있는 괴짜 캐릭터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 유스케는 무척이나 ‘현실적인’ 의사입니다. 물론 병원 내 권력다툼 같은 데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환자를 위한 순수한 헌신과 최고의 흉부외과 의사가 되겠다는 뜨거운 열정을 지닌 점에선 보통 주인공들과 다를 바가 없지만, 지극히 속물적인 욕심(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고의 파견 자리를 반드시 차지하고 말겠다!)에다 소심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은 물론이고 요령 없다는 평가와 함께 팔랑귀에 가까운 가벼운 처신도 수시로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과장의 조카인 하리야에게 최고의 파견 자리를 빼앗길 가능성이 농후한 상태에서 유스케에게 던져진 동아줄은 두 개. 하지만 어느 하나 쉽지 않습니다. 오래 전부터 흉부외과 지원자가 사라지다시피 한 현실에서 3명의 신입 인턴 중 2명을 반드시 잡아야 하고, 과장의 논문 조작설을 제기한 괴문서 유포자를 찾아내는 일은 안 그래도 격무에 시달리는 유스케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미션으로 보일 뿐입니다. 더구나 인턴들을 유혹(?)하기 위해 나름 고안해낸 배려가 오히려 날선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괴문서 유포의 용의자가 흉부외과 내 고위직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오히려 유스케를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설정만 보면 미스터리가 곁들여진 꽤 시끌시끌한 소동극처럼 보이지만 ‘구원자의 손길’은 8년차 의사 유스케가 진짜 의사로 성장하는 이야기이자, 용감하게 흉부외과에 도전하는 신입 인턴들의 분투기이며 병원 내 권력투쟁의 단면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정통 메디컬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또 생명과 직결된 흉부외과가 주 무대이다 보니 감동 코드도 풍성했는데, “마지막 1페이지에 반드시 눈물짓게 될 것이다!”라는 출판사 소개글과 달리 제 경우엔 최소 네 번은 울컥함에 눈가가 뜨끈해졌습니다. 그건 역시 욕심 많고 소심하고 요령 없는 팔랑귀지만 진짜 의사의 모습을 진정성 있게 보여준 유스케의 캐릭터가 그만큼 매력적이고 사랑스럽고 무엇보다 “내가 아플 때 이런 의사를 만날 수 있다면!”이란 생각이 저절로 들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유스케의 엔딩은 일반적인 메디컬 드라마의 주인공의 그것과 사뭇 다릅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공감이 갔고, 응원하고 싶어졌고,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습니다. ‘구원자의 손길’이란 제목 대신 ‘의사의 길’이 더 어울릴 것 같은 그의 엔딩은 “반드시 후속편을!!!”이란 간절한 바람을 갖게 만들었는데, 과연 치넨 미키토가 유스케의 ‘다음 이야기’를 독자에게 선사해줄지 너무나도 궁금해질 따름입니다.
(사족으로.. ‘옮긴이의 말’에 이 작품의 주요 조연인 스와노 료타가 ‘신의 카르테’의 주인공이라고 돼있는데, 그는 치넨 미키토의 작품 ‘기도의 카르테’의 주인공입니다. 중쇄를 하게 되면 꼭 수정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