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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고서점의 사체 ㅣ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2월
평점 :
하자키 히가시비치에서 젊은 남자의 익사체가 발견됩니다. 사체를 발견한 건 직장의 도산, 대형 화재참사, 사이비종교의 협박을 연이어 겪은 지독히도 운 나쁜 31살 여성 아이자와 마코토. 연고도 없는 하자키에 무작정 왔다가 예상치 못한 사건의 참고인이 된 마코토는 결국 하자키를 떠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들른 고색창연한 진달래 고서점에서 로맨스소설 마니아인 노파 마에다 베니코에게서 임시로 가게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습니다. 삶의 전환점이 돼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제안을 수락한 마코토. 하지만 그녀의 불운은 하자키에서도 계속됩니다. 출근 첫날 도둑이 들더니 다음 날엔 서점 한복판에서 사체가 발견된 것입니다.
‘하자키 목련 빌라의 살인’에 이은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참고로 이 작품은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의 개정판입니다.) 가나가와 현의 해변 소도시 하자키를 무대로, 만사태평 스타일이지만 예리한 추리력을 지닌 형사반장 고마지의 활약이 위트 넘치는 코지 미스터리 서사 속에 잘 녹아있는 시리즈입니다.
사건의 핵심은 하자키의 명문가 마에다 가문의 10여 년에 걸친 비극입니다. 본가와 분가의 갈등, 그 와중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자(母子), 유산을 노린 비열한 술수들, 실패한 정략결혼과 그것이 남긴 상흔 등 작품 속 한 인물이 언급한 대로 ‘아침 멜로드라마’에 나올 법한 막장에 가까운 설정들이 비극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초반부터 수사가 꼬인 건 익사체로 발견된 젊은 남자의 신원 탓입니다. 12년 전 실종된 마에다 가문의 도련님 히데하루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12년이라는 간극이 있긴 하지만 사체를 직접 보고도 상반되는 주장을 한 이들이 다름 아닌 히데하루의 인척들이란 점 때문에 혼란은 더욱 가중됩니다. (참고로, 이 작품의 배경은 2000년입니다.) 상반된 주장의 이면에 거액의 유산상속이 걸려 있어서 고마지 반장은 자살과 타살 사이에서 어떤 결론도 내지 못한 채 히데하루의 과거를 캐는데 전력을 기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마에다 가문의 가장 큰 어른이자 로맨스소설 마니아인 베니코가 운영하는 진달래고서점에서 연이어 절도와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고마지 반장은 익사체로 발견된 히데하루 사건과 고서점의 사건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골몰하게 됩니다.
소도시를 장악하고 있는 명문가의 추악한 민낯이 이야기의 중심이긴 하지만, 와카타케 나나미는 ‘코지 미스터리의 여왕’답게 무겁고 음울한 분위기 대신 시종 통통 튀는 서사로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만사태평 스타일의 고마지 반장 못잖게 사건에 휘말린 여러 인물들이 살인, 실종, 강도라는 강력사건들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맹활약한 덕분입니다. ‘불운이 너무 많은 외지인’ 아이자와 마코토, 마코토를 참고인 이상으로 의심하며 충돌하다가 이래저래 정이 들어버리는 신참경찰 이쓰키하라 미쓰루, 마에다 가문이 운영하는 하자키 FM의 열혈 디제이 와타나베 지아키, 그리고 노익장을 과시하는 로맨스소설 마니아 마에다 베니코 등 에너지 넘치는 인물들은 사건 해결에도 앞장서지만 수시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전형적인 코지 미스터리 캐릭터로서의 미덕도 갖추고 있습니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미스터리는 매번 “이 많은 사건과 인물들을 어떻게 설계했을까?”라는 의문이 저절로 들 정도로 복잡하고 어지러운 미로로 이뤄져있습니다. 특히 ‘하자키 시리즈’는 수사를 맡은 고마지 반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비슷한 비중을 지닌 중요한 인물들이 다수 등장하기 때문에 미로의 난이도가 와카타케 나나미의 대표작인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보다 훨씬 더 높습니다. 나름 개성 있는 설정일 수 있지만, 독자를 확실하게 이끌 핵심 인물이 없다는 점은 중반 정도까지 다소 지루한 책읽기를 피할 수 없게 만듭니다. 개요만 보면 수사를 맡은 고마지 반장과 사건 한복판에 휘말린 외지인 마코토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맞춰져야 하는데, 실제론 거의 1/n에 가까운 비중이라 좀처럼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지 못합니다. 막판에 반전이 거듭되는 클라이맥스와 엔딩은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그 지점까지 도달하는 것이 와카타케 나나미의 찐팬이 아니라면 쉽지 않아 보이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미스터리 궁합이 잘 안 맞는다는 걸 거듭 확인하고도 계속 찾아 읽게 되는 거의 유일한 작가가 와카타케 나나미입니다.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그녀만의 매력에 계속 끌리기 때문인데, 특히 코지 미스터리가 딱히 제 취향은 아니지만 일본에서 여덟 번째 작품까지 출간된 ‘하자키 시리즈’가 앞으로 가끔씩이라도 소개된다면 아마도 절대 외면하진 못할 것 같습니다. 매번 ‘절반의 성공’에 머물긴 해도 와카타케 나나미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