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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영혼의 이용
마쓰다 아오코 지음, 권서경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3월
평점 :
“사회가 ‘아저씨’에 의해 운영되는 이상 여자아이는, 여성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아저씨’의 손으로부터, ‘아저씨’의 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 ‘아저씨’가 정하지 않은 세계를 보고 싶다. ‘아저씨’가 사라진다면 사회구조는 극적으로 바뀔 것이다.” (p271)
‘교복 입은 소녀’를 소비하는 남자들, 호신용 스턴건을 소지한 여자에게 “성인용품 아니냐?”고 낄낄대며 놀리는 남자들, 욕망의 대상으로 여자 아이돌을 바라보는 남자들, 뻔뻔하게 추행을 일삼는 것은 물론 저항하는 여자를 별나다는 듯 비난하는 남자들, 그리고 여자에게 한없는 순종과 겸손을 강요하면서 “시선은 아래로! 목소리는 작게!”라고 당당하게 압박하는 남자들.
이 작품 속에서 소멸돼야 하고 벌 받아야 할 대상으로 규정된 ‘아저씨’는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아저씨’는 겉모습이나 나이와는 상관없으며, 학교든 직장이든 지하철이든 어디에나 존재하면서 언제라도 가면을 벗고 본색을 드러냅니다. 심지어 ‘아저씨’ 중에는 여성도 있는데, ‘아저씨’ 급으로 행동하는 여성은 ‘아저씨’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지속가능한 영혼의 이용’은 성차별이 만연한 사회에 대한 고발, 그리고 그 사회를 손아귀에 쥔 채 여성을 악의와 욕망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아저씨’와 ‘아저씨의 나라’를 혁명을 통해 단죄하는 이야기입니다. 굉장히 전투적이고 과격한 이야기로 보일 수 있는데, 반쯤은 맞고 반쯤은 살짝 과장했다고 보면 됩니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부당하고 부도덕한 일들과 그에 저항하는 모습들이 간혹 독하고 세게 묘사되는 경우도 있지만, 작가는 대체로 냉정하고 이성적인 시선으로 그 모든 부당함과 부도덕함의 민낯을 그려냅니다.
피임조차 제 뜻대로 할 수 없는 여성, 성추행을 신고했다가 오히려 회사에서 쫓겨난 비정규직 여성, 자신을 성적 노예로 묘사한 ‘아저씨’의 천박한 글 하나 때문에 아이돌을 그만둬야 했던 소녀, 수유할 때조차 성적인 시선을 받아야만 하는 어머니 등 작품 속 여성들은 물건처럼 취급되거나 나이와 처지에 관계없이 ‘아저씨’의 손과 눈에 농락당하곤 합니다.
주인공 게이코 역시 그런 여성 중 한 명입니다. 퇴직을 강요당한 뒤 한 달 동안 여동생이 있는 캐나다에 머무른 게이코는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좀더 자유를 만끽하는 여성들을 보며 새삼스레 일본여성의 현실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저항하지 않으면 어떠한 순간에든 ‘아저씨’의 악의에, ‘아저씨’가 만든 이 사회의 악의에 결박당하고 만다. 나는 일본에 돌아가면 ‘아저씨’를 무너뜨릴 것이다.”라는 각오와 함께 귀국합니다.
하지만 공항에서, 거리에서, 카페에서 만난 일본여성들은 너무나 무기력해 보였고, 현실은 각오 하나만으론 작은 균열조차 만들기 어렵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그런 게이코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여자 아이돌 그룹 XX입니다. 귀여움과 미숙함만 내세웠던 기존의 아이돌과 달리 저항적인 노래와 공격적인 태도를 앞세운 그들에게 빠져든 게이코는 자신의 분노를 살찌우고, 자신의 영혼을 더욱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발판 삼아 ‘아저씨’를 무너뜨리기 위한 각오를 다시금 다집니다.
이 작품이 좀더 독특해 보이는 이유는 판타지 설정 때문입니다. 게이코가 살던 시대를 흥미와 놀라움으로 조사하는 어느 먼 미래의 소녀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여고생 체험’을 통해 당시 여성들이 겪은 가혹한 현실을 마주하곤 충격에 빠집니다. 또 ‘아저씨’와 ‘아저씨의 나라’에 저항했던 게이코와 동료들이 어떤 결과를 이끌어냈는지 상세히 설명하는 역할도 맡습니다.
사실 이 대목은 다소 ‘모호한 상징들’로 채워진 판타지인데, “뭐가 어떻게 됐다는 거야?”, “얘들은 누구야?”라며 따지기보다는 ‘아저씨’에게서 해방된 일종의 이데아 속 인물로, 그래서 수 세기 전의 여성들(과 ‘아저씨’가 아닌 남성들)이 어떻게 부당한 삶을 강요받았고, 어떻게 치열하게 싸웠는지를 알려주는 설명역으로 받아들이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82년생 김지영’이 한 여성의 고통스러운 삶을 연대기의 형식을 빌어 서술한 정통 소설이라면, ‘지속가능한 영혼의 이용’은 현실고발과 판타지 서사를 동시에 활용한 독특한 소설입니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그 어떤 과격한 성명서나 행동 못잖은 강한 울림을 품고 있습니다. 스스로 “난 절대 ‘아저씨’처럼 살지 않았어!”라고 자신 있게 주장할 순 없지만 분명 ‘아저씨’를 혐오하는 한 사람의 남성으로서 ‘82년생 김지영’과 ‘지속가능한 영혼의 이용’이 남겨준 공감, 분노, 부끄러움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더 이상 ‘아저씨’들이 우리의 영혼을 망치게 두지 않아.”라는 주인공들의 절실하고도 강고한 각오와 함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