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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
후루타 덴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12월
평점 :
도오 출판사의 에이스 편집자 카에데는 어느 날 딸의 옷을 직접 제작하는 포스팅을 올려 인기를 얻고 있는 딸바보 아빠 ‘소라파파’의 블로그에 시니컬한 댓글을 남깁니다. “당신은 정말 아이를 사랑하나요?” 그런데 그날 이후 자신의 과거의 비밀이 담긴 일기장이 인터넷에 공개되고 댓글을 통해 지독한 공격을 받기 시작합니다. 한편 어린 딸을 본가에 맡긴 채 홀로 도쿄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는 다나시마는 일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와 5년 동안 식물인간 상태인 아내 미유키 때문에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그의 유일한 행복은 딸을 위해 옷을 직접 만드는 것뿐. 하지만 어느 날인가부터 자신의 블로그를 찾아와 집요한 비난 댓글을 다는 한 여자 때문에 격분하고 맙니다. 딸에 대한 사랑을 이기심으로 왜곡하는 그녀를 용서할 수 없다고 여긴 다나시마는 여자를 파멸에 몰아넣기로 결심합니다.
지금은 친절하고 수더분한 40대 순경 아저씨지만 한때 용의자의 자백을 이끌어내는 특별한 능력 때문에 ‘자백 전문 가노’라 불리며 현경 수사1과에서 맹활약했던 가노 라이타를 주인공으로 앞세운 연작단편집 ‘거짓의 봄’(한국 출간 2021년)으로 처음 알게 된 여성콤비 작가 후루타 덴의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고대하고 있던 ‘가노 라이터 시리즈’의 장편이 아니라서 아쉬웠지만, 데뷔 후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이란 점과 독특한 표지 덕분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다양한 코드들이 버무려진 작품입니다. 막판에 거듭된 반전을 통해 진실이 밝혀지는 미스터리이긴 하지만 그보다는 심리스릴러의 성격이 더 강합니다. 또 (뒤표지 카피대로) 인터넷과 SNS에서 횡행하는 ‘익명의 악의’가 어떤 식으로 파멸적 비극을 만들어내는지를 디테일하게 그린 사회파 장르물의 미덕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막판 반전이 돋보이는 미스터리도 흥미로웠지만 개인적으론 ‘탐욕스럽게 애정을 갈구하고 상처받을까 봐 두려운 나머지 상대에게 공격적으로 구는 사람’과 ‘열등감에 사로잡힌 주제에 자존심이 세고 자기애로 똘똘 뭉친 사람’, 그리고 시기, 질투, 미움 같은 악의에 사로잡혀 상대를 망가뜨리려는 사람들이 벌이는 심리스릴러가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14살에 겪은 비극으로 인해 어떻게든 과거를 삭제해버리고 싶은 나머지 스스로를 전혀 다른 사람, 즉,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강한 면모를 가진 사람으로 탈바꿈시키고 싶었던 카에데는 30대에 이르렀을 때 나름 그 목표를 이뤄냈다고 자부했지만, 사소한 댓글 하나에서 시작된 균열이 점차 사방으로 번지면서 일상을 무너뜨리자 공포에 휩싸입니다.
한편, 식물인간이 된 아내를 정성으로 간병하며 딸을 위해 직접 옷을 만드는 딸바보 다나시마 역시 그 내면에는 복잡다단한 심리가 뒤얽힌 인물입니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는 공무원 일, 행복과 불행이 동시에 교차하는 아내와의 추억, 진짜 사랑인지 자신의 이기심의 산물인지 헷갈리기 시작한 딸에 대한 감정, 그리고 가족들과의 불화 등 그의 삶에 평온함을 갖다 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평범하지 않은 과거와 혼란스러운 현재 때문에 허우적대다가 무심결에 주고받기 시작한 ‘익명의 악의’로 인해 패닉에 빠지는 두 주인공 카에데와 다나시마는 이런 이유들 때문에 읽는 내내 미스터리의 주인공이라기보다는 비극적인 심리스릴러의 주인공으로 보였습니다. 또 그들의 과거와 현재에 큰 생채기를 남긴 이들이 가족 혹은 그만큼 가까운 사람들이었다는 점은 더더욱 그들의 불안정을 부추겼는데, 이 역시 심리스릴러를 더욱 심도 있게 만든 요소입니다. 실제로 주인공들의 ‘책임’ 못잖게 사건의 도화선이 된 건 그들 주변 인물들의 우연과 필연이 뒤섞인 악의였고,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론 ‘모두가 그녀를 죽였다’가 이 작품에 더 어울리는 제목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다만, 두 주인공이 펼치는 심리스릴러는 이 작품의 매력이자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사건 자체나 팩트보다는 일그러지고 왜곡된, 혹은 타인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심리적 혼란이 과도하게 강조되다 보니 “굳이 저럴 필요가 있을까?”라는 언행들이 자주 반복된 게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심리스릴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도 있지만, 미스터리에 기대를 걸었던 독자에겐 두 주인공의 애매모호한 행보 때문에 다소 지루하게 읽힐 수도 있는 작품입니다.
앞서 읽은 ‘거짓의 봄’과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에서 맛볼 수 있었던 후루타 덴의 필력은 무척 매력적입니다. 홀딱 빠질 정도는 아니라도 계속 관심을 갖고 신간소식을 기다리게 만든 건 분명한데, 다음에는 제가 고대하던 ‘가노 라이터 시리즈’의 장편(‘朝と夕の犯罪’, 일본 출간 2021년)을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