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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의 저편 ㅣ 이판사판
기리노 나쓰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1년 9월
평점 :
작가 마쓰 유메이는 어느 날 ‘총무성 문화국 문화예술윤리향상위원회’라는 수상쩍은 곳으로부터 소환장을 받은 뒤 과거 요양소로 쓰였던 외딴 건물에 감금됩니다. 위원회는 “마쓰 유메이는 강간이나 폭력, 범죄를 긍정하는 것처럼 쓰고 있다.”는 독자들의 고발에 근거하여 그녀를 소환했다면서, “자기 작품의 문제점을 확실히 직시해서 인식하고, 훈련을 통해 교정된다면 귀가할 수 있다.”라고 통보합니다. 즉 갱생을 통해 아름답고 착한 이야기만을 쓸 마음의 준비가 된다면 풀어주겠다는 뜻입니다. 말도 안 되는 위원회의 만행에 마쓰는 격렬히 저항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감점과 함께 무한정 늘어나는 감금 기간 통보뿐입니다.
마쓰가 감금된 요양소는 말하자면 범죄와 폭력 또는 변태적 성(性)을 다루거나 차별 조장, 윤리성 결여, 국가에 대한 반역, 반사회적 사상을 구사하는 모든 창작자들을 ‘섬멸’하는 곳입니다. 마쓰의 구체적인 ‘혐의’는 그녀가 쓴 소설들이 강간, 폭력, 페도필리아(아동성애증), 관음증, 페티시를 장려하듯 그렸다는 점입니다. 수용된 다른 작가들 역시 세상에 악영향을 미치거나 불안하게 만드는 창작물을 만든 혐의로 감금돼있습니다.
배경이 현대 일본이란 점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가상현실과도 같은 설정 때문에 초반부터 놀라움과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작품입니다. 더구나 다른 작가도 아니고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이니 해피엔딩 같은 건 기대하기 어렵겠다는 이른 예감에 마쓰의 처지와 미래는 그저 암울하게만 보일 뿐입니다. 기리노 나쓰오의 대표작인 ‘그로테스크’와 ‘아웃’은 말할 것도 없고 탐정이 주인공인 ‘무라노 미로 시리즈’조차 무겁고 암담한 여운을 남겼던 걸 떠올리면 이런 극적인 설정 속에서 마쓰가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 환하게 웃을 일은 절대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이야기의 진짜 결말은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서야 밝혀지기 때문에 함부로 예단해선 안 되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주인공 마쓰는 성(性)과 폭력을 그린 죄로 감금됐지만, 읽다 보면 왠지 기리노 나쓰오 자신을 투영한 듯한 인상을 자주 받게 되는데, 만일 작가를 갱생시키고 교정하는 위원회란 곳이 실재한다면 아마도 일본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우선 소환대상에 기리노 나쓰오가 포함될 게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내놓는 작품마다 중독성 강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발산했다는 뜼인데, 아마도 그녀에겐 “세상을 어둡고 부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불온한 시선을 전파한다!”라는 혐의를 씌울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역자 후기’와 ‘편집자 후기’를 보면 기리노 나쓰오가 이 작품을 쓰게 된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데, 두 후기 모두 두 가지 사실 – 군국주의 시대로 회귀하는 듯한 일본의 각종 악법과 인터넷의 익명성에 숨어 창작물에 대해 억지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내는 대중들 – 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사회적, 문화적 분위기가 어떤지 잘 알지는 못해도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쩌면 기리노 나쓰오 본인의 경향이 워낙 ‘반사회적’이라 다른 작가들에 비해 더 예민하게 받아들인 결과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일본의 창작자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이런 인식이 확산돼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최근 읽은 아야츠지 유키토의 ‘살인귀’가 문득 떠올랐는데, 90년대 초 연쇄살인범의 집에서 발견된 다수의 호러물로 인해 언론을 통한 대대적인 ‘호러 사냥’이 자행됐고, 그에 격분한 아야츠지 유키토가 반발심에 연재한 작품이 극도의 연쇄살인 호러물 ‘살인귀’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국에서 필화사건으로 작가가 구속되기까지 했던 ‘즐거운 사라’ 논란도 생각났는데, 아마도 ‘일몰의 저편’ 속 위원회에겐 아야츠지 유키토나 마광수 교수는 주인공 마쓰보다도 훨씬 더 시급하게 섬멸해야 할 창작자로 여겨질 게 분명해 보입니다.
공포정치 시대를 저절로 떠오르게 하는 오싹한 상상이지만 현실의 독자 중엔 이 작품 속 위원회의 결정과 행동에 공감하는 경우도 꽤 있을지도 모릅니다.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고 사람들의 정서를 오염시킨다는 확신을 가진 ‘도덕적인 독자’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기리노 나쓰오는 해답 없는 이 논쟁을 촉발시키기 위해 가상현실 같지만 결코 비현실적이진 않은 ‘일몰의 저편’을 집필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