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버지니아 울프 - 한 사람의 인생이 모두의 이야기가 되기까지
수사네 쿠렌달 지음, 이상희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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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만 보고 급구매한 책이다. 책을 받고 펼쳐 보니 그림이 가득한 만화였다. 만화의 일종인 그래픽 노블이었다. 뜻밖이라 당황했지만 읽을 만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에 대해서는 대략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는 그의 많은 작품을 언급하며 배경이나 에피소드를 접할 수 있어서 더욱 흥미로웠다. 커다란 판형에 양장본이라 편하게 자주 들춰 볼 것 같다. 또 성인만이 아니라 청소년 학생이 읽기에도 너무 무겁지 않은 내용이라 가뿐하게 읽을 수 있겠다. 이 책을 쓴 수사네 쿠렌달은 일러스트레이터로 복잡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내어 사람들이 공감하고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는데 매력을 느껴 그래픽 노블을 작업하기 시작했다.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등 예술성 높은 작품을 그래픽 노블로 만들었으며 울프의 대표작 올랜도를 준비 중이라 한다.

 



겉표지를 넘겨 안쪽에는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인물들의 얼굴이 나와 있다. 가족은 물론 버지니아가 교류하던 지인들이다. 본문을 읽을 때 찾아보며 읽으면 이해하기 쉽다. 특별히 목차나 소주제는 없고 어린 시절부터 인생의 마지막까지 이야기로 쭉 이어진다. 이 부분은 좀 아쉬웠다. 작품 세계와 일대기를 다룬 내용이니 시기별로 나누거나 소주제로 구분했다면 읽는데 훨씬 편했을 것 같다.

 



버지니아 울프는 각각 재혼이었던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셋째 딸이었다. 이부 오빠, 이복 자매까지 합치면 여덟 명이나 되고 잭슨 부인과 외할머니, 그리고 일곱 명의 하인까지 꽤 북적이는 집안이었다. 울프는 만 두 살이 되어서야 말을 하기 시작할 정도로 늦었지만 다섯 살이 되었을 때는 형제자매들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줄 정도가 되었다. 여섯 살 때 직접 쓴 편지 내용도 들어있다. 성격은 자기표현을 주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감언이설을 해서라도 얻어내고 그게 통하지 않으면 억지를 부려서라도 반드시 얻어냈다. 화를 내면 모두가 두려워했다고 한다. 어떻게 나올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울프가 열세 살이 되던 1895년에는 엄마인 줄리아 스티븐이 세상을 떠난다. 가족과 친지들 모두 슬픔으로 가득했는데 너무 충격을 받은 것일까. 울프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사고 자책하기도 하며 우울증에 빠진다. 이런 감정은 델러웨이 부인이나 파도등 작품에 묘사된다.

 



나는 웅덩이 앞에 왔어.

로다가 말했다.

나는 넘을 수가 없었어.

나는 나 자신에게 그 어떤 것도

느낄 수가 없었어.

우리는 아니야.

나는 이렇게 말하고 쓰러졌다’(p19)

 



이래서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이 어려웠나 보다.자기만의 방은 여러 번 읽었는데 등대로등 다른 작품은 읽다 그만둔 게 많다. 바로 버지니아가 성장해 온 환경이나 성격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무조건 작품으로 덤벼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여자라는 이유로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시대적 상황도 책을 좋아하는 버지니아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정해놓은 규칙에 따라야 하는 전통적 구습은 울프의 마음을 옥죄는 듯했다. 신경 쇠약증으로 오래 요양을 해야 했을 때는 더욱 불안해했다. 의사는 건강 회복을 위해 안정을 취해야 하며 친구와 만나서도 안 되고 책도 안 된다며 휴식을 강조했다. 사람들과 나누는 지적인 대화를 얼마나 갈망했는지 모른다.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지적인 교류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당찬 버지니아 울프를 엿볼 수 있었다. 그런 열정이라면 자신의 마음도 잘 다스릴 수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우울증과 신경 쇠약증에 시달리다가 강에 몸을 던졌을까, 많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마음이 잘 맞는 버네사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살다가 자신을 돌보지 못한 엄마나 결혼한 지 3개월도 안 되어 죽은 스텔라 언니처럼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언니 버네사와 미래 계획을 세우며 자유로워질 거라고 말하며 희망으로 설렌다. 나중에 이 둘은 블룸즈버리 그룹을 만들고 그 핵심 멤버가 된다. 학교에 다닐 수 없었지만 이러한 지적 교류 활동이나마 가능했기에, 강연 활동을 하고 작품을 써서 성공적으로 발표하는 등 어엿한 작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작가인 비타 색빌웨스트와의 우정을 넘은 연인 관계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고 울프가 아플 때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올랜도는 비타를 모델로 쓴 작품이라는 걸 알았다. 젊은 귀족 남자로 나오는 모양이다. 작품이 완성됐을 때 제일 먼저 알리는 등 함께 프랑스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비타는 울프가 오빠 제럴드 덕워스로부터 거울 앞에서 당한 성추행의 충격으로 트라우마를 갖고 있었는데 그 공포를 치유해 주기도 했다. 올랜도192810월에 발표하여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비타는 울프를 자랑스러워했다.

 



평생 버지니아를 사로잡게 했던 주제는 남성의 명예남성들의 오만함이었다. 여성 차별의 직접적인 대상이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은 작품에 오롯이 묘사하곤 했는데 작품을 낼 때마다 세간의 비난이 두려워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다. 그럼에도 울프는 쓰고 또 썼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울프의 마음과 정신에 조금 더 가까이 간 것 같다. 앞으로 울프의 작품을 읽는다면 좀 더 몰입할 수 있을까 기대된다. 의식흐름 기법으로 쓴 글쓰기 방식이어서 놓치기도 할 테지만 분명 아무것도 모르고 작품을 대했을 때 보다는 나으리라 생각한다. 백 년도 더 오래전에 강조했던 울프의 말이 가슴속 깊이 스며드는 시간이었다.

 



여성이 글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쓰세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 글이 영원히 기억될 가치를 가질 것인지,

단 몇 시간 만에 잊힐 만한 것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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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3-04 2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를 너무 좋아해요. 댈러웨이 부인이나 올랜도를 읽었지만 등대로가 더 좋더라구요.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싶은데 일단 내용이 워낙 만만찮아서 선뜻 안 들어지네요. 이 책을 먼저 읽으면 어려운 버지니아 울프의 책이 조금은 더 다가가기가 쉬울거같네요.

모나리자 2025-03-06 22:49   좋아요 0 | URL
울프이 작품은 읽기 어려운데 많이 읽으셨네요. 대단하세요.^^
저도 좋아하는 작품이 생기면 좋겠네요. 울프는 신경쇠약증이나 우울증을
오랫동안 겪었기에 그러한 마음의 감정 표현이 자연스럽게 작품에 실린 것
같아요.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읽기 도전을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유익한
내용이었어요.^^

희선 2025-03-05 0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픽 노블로 나온 버지니아 울프 이야기를 보고 버지니아 울프가 쓴 글을 보면 좀 낫겠습니다 그래도 어려울 듯하지만... 읽다 만 책 이번에는 보시겠군요


희선

모나리자 2025-03-06 22:52   좋아요 0 | URL
네, 아무래도 성장해 온 환경이나 작가의 성격 등을 파악한 다음 읽으면
어려운 작품 읽기가 훨씬 도움이 되겠지요. 읽다말고 오래 지나면 또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해서 귀찮은 생각도 듭니다. 왠만하면 쭉 읽어나가는 것이 시간
낭비도 하지 않고 좋을 듯합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20만 부 에디션, 양장)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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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인터넷 서점가를 뜨겁게 달구던 에세이 나는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입니다를 이제야 읽게 되었다. 작가 패트릭 브링리는 자신의 결혼식이 예정된 날 형의 장례식을 맞이한다. 그해 가을 다니던 뉴요커를 그만두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지원했다. 가족을 잃은 상실감, 무엇보다도 형의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닐 만큼 친밀한 관계여서 더욱 무너지는 상실감이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 경력을 쌓기 위해 몸부림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 미술관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기로 하고 그곳에서 10년을 보낸다.

 



연두색 표지의 이 책을 처음 볼 때부터 시선을 끌었고 미술관경비원이라는 단어가 더욱 호기심을 끌었던 것 같다. 드디어 손에 잡고 읽기 시작했는데 도입부는 좀 지루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너무 기대했나. 어떤 이야기를 원했던 거지. 속으로 실소하면서 차츰 적응되기 시작했다. 그렇지. 미술관에서 일하면 미술 이야기가 나오는 건 당연한 거잖아. 쉽게 몰입되지 않았지만 언젠가 갈지 모르는 그곳을 한번 둘러보자는 생각으로 브링리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었다. 저자가 평소 어머니와 함께 미술관으로 모험을 떠났던 추억과 예술에 대한 열정과 감각이 있었기에 이런 책을 쓸 수 있었다. 모르는 그림 제목이 나오면 검색하면서 읽었다. 그림에 대한 배경이나 역사 에피소드 등을 얼마나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지, 그렇게 많은 자료를 어떻게 다 풀어썼는지, 해박한 지식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예술가의 꿈을 갖고 즐기면서 공부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매트의 옛 거장 전시관이 마을이라면 주민은 거의 9천 명에 달한다. 주민들은 596점의 그림 속에 살고 있는데 우연히도 거의 그 숫자에 맞먹는 햇수 이전에 붓으로 창조된 사람들이다.’(p37)

 



전시관은 마을이고 그림 속 인물들을 주민으로 표현한 것이 정겨웠다. 미술관이 그에게 있어 어떤 의미인지, 일터에서 거장의 작품을 가장 가까이서 마주하며 삶을 배우겠다는 자세와 결심, 그리고 재치까지 엿볼 수 있었다. 596점의 그림 속에 살고 있는 주민들과의 수다라니. 시간이 얼마나 많았으면 그걸 다 셀 수 있었을까. 그 주민들과는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떤 생각을 주고받을까. 어쩌다 미술관에 가더라도 찰칵 사진을 찍고 금세 잊어버리는 나로서는 역시 대가는 다르구나 했다. 그리고 6년 전 우리 지역 미술관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그때 참 행복했다. 관람객이 없는 전시장을 나 혼자 누비면서 사진도 찍고 <모나리자> 등 명화를 바라보며 웬 횡재냐 했었다. 그런데 뉴욕에 있는 그렇게 넓은 미술관에서 10년 동안이나 그림과 함께 했다니 부러운 마음에 괜히 울렁거렸다.

 



띄엄띄엄 들려주는 아픈 형과 함께 보낸 기억과 가족 이야기에서 그리움과 애정을 듬뿍 느낄 수 있었다. 그림, 조각, 퀼트 등 위대한 작품을 보면서 삶과 죽음, 인생과 예술을 통찰하고 있었다. 삼백 명이나 되는 경비원 동료들과 어울리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공유하고 공감하는 이야기도 따뜻함이 묻어났다. 형의 죽음을 슬퍼하며 마냥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었다. 미술관에서 만나는 관람객들과의 교감, 특히 과제를 하려고 온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든든한 선생님을 만난 듯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많은 거장의 작품이 나오는데 이 중 한 가지 인상 깊은 장면을 소개해 보겠다. 미켈란젤로의 작품과 말을 언급하는 부분이다. 미켈란젤로의 짜증과 절망이 섞인 편지들, “이곳은 만족스럽지 않다. 나는 화가가 아니다.”, “결과도 없이 시간만 낭비하고 있어신이시여, 도와주소서!”(p284)라고 한 미켈란젤로의 자신 없어 하는 말을 접하고 브링리는 즐거워한다. 그토록 불만으로 가득했던 사람이 그린 그림이 어떻게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지에 감탄한다.

 



위대한 천재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 고통스러움을 느낀다는 걸 보면 평범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응원이 되는지 모른다. 위대한 작품은 예술가가 낳은 무한한 근면성의 산물이라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미술관에서 10년을 보내고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 감사의 말로 마무리된다. 끝자락에 나오는 문장에 깊이 공감하며 인용해 본다. 누구나 힘든 시절, 힘든 일을 겪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닌가 한다. 이 책으로 위로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디테일로 가득하고, 모순적이고, 가끔은 지루하고 가끔은 숨 막히게 아름다운 일상. 아무리 중차대한 순간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기적에 깔린 신비로움이 숭고하다 할지라도 복잡한 세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간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p319~320)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럼에도 삶은 살아내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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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03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3-03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중고생이 꼭 읽어야 할 한국단편 33
김동인 외 지음, 현상길 엮음 / 풀잎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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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한국 단편을 읽었다. 폭염이 한창이던 8월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이제야 마무리했다. 쓰레기 재활용을 하러 나갔다가 눈에 띄어 득템한 책이다. 마침 한국 단편을 읽어봐야지 하던 차에 얼마나 반가웠던지. 학창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보았던 친숙한 작품이 대부분이고, 간혹 처음 접하는 단편도 몇 편 있었다. 그 시절 국어 시간이 떠올랐다. 선생님의 말씀을 놓칠세라 귀를 쫑긋하며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던 기억 말이다. 또 한때 TV문학관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접했던 기억도 아련히 떠올라서 추억에 젖어 보았다.

 



김동인의 <감자>를 비롯하여 오영수의 <요람기>까지 33편의 한국 단편이 실려있다. 엮은이 현상길은, 서점에는 어른들을 위한 책과 취직을 위한 수험서들이 즐비하지만 중고생들을 위한 책은 없어서 그러한 갈증을 해소해 주려고 이 책을 엮었다고 한다. 제시된 단편을 효과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학교의 수행평가나 수능 논술 등 진학을 위한 기초 공부에 도움이 되도록 했으며, 7차 국어과 교육과정의 핵심적 목표인 창의적 국어 사용 능력 향상에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각 단편은, 읽기 전에 알아두기-작품 읽기-읽은 후에 정리하기-깊이 생각해 보기-심화 문제 풀이5단계 독서 과정을 거치며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하도록 짜여 있다.

 



가난한 인력거꾼 하층민 김첨지가 겪어야 했던 비극적인 이야기 <운수 좋은 날>이나 김유정의 <봄 봄>, <금 따는 콩밭>, <동백꽃> 등은 교과서에서 낯익은 작품이며 내가 아주 좋아하는 작품이다. <소나기>로 유명한 황순원의 작품 <><독 짓는 늙은이>, <()>을 오랜만에 읽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은 누이의 죽음을 통해 미성숙한 인물에서 성숙한 인물로 성장해가는 성장소설로 내적 심리를 세밀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모든 단편작품 앞에는 읽기 전에 알아두기코너를 두어 처음 읽는 독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대략의 정보를 싣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내가 처음 접한 단편은 김이석의 <실비명(失碑銘)>이다. 등장인물 덕구는 요즘으로 말하면 딸바보라고 할 수 있는데 인력거꾼으로 일하면서 딸 도화에 대한 헌신과 사랑으로 현실을 극복해 나가는 인물이다. 어느 해에 덕구는 마라톤 대회에서 삼등을 했는데 부상으로 받은 광목을 급성 폐렴으로 죽은 아내의 시체를 감아야 했다. 겨우 스물여덟이라는 꽃다운 나이의 아내를 꽁꽁 언 땅에 묻고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렇게 아내를 떠나보내고 딸을 키우며 그는 도화가 의사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한 꿈과 희망을 가슴에 품고 살았기에 아무리 힘든 일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하지 않은가. 도화는 덕구의 바람과 달리 친구 연실이와 어울리면서 기생이 되고 싶었다. 그것을 안 덕구의 마음은 얼마나 허망했을까. 부모는 자식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자식이 어떤 걸 좋아하는지, 무언가 수행하기 위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맹목적으로 자신의 바람을 자식에게 요구하기도 한다. 지금도 부모의 바람과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오래전 작품이지만 오늘의 현실에 비교해 보아도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김성한의 <바비도>도 처음 접한 작품인데 깊은 인상이 남았다. 주인공 바비도는 1410년 이단으로 지목되어 분형(焚刑)을 받은 영국 직공으로, 15세기 초의 영국 교회의 부패하고 타락한 권력에 맞서 끝내 죽음을 선택한다. 권력의 희생양이 된 바비도의 처형을 이벤트처럼 가볍게 구경하는 구경꾼들, 몽매한 민중의 행동과 심리를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 절대 권력 앞에 한 사람 개인은 얼마나 미미하고 나약한 존재인지. 우리 현대사에도 얼마나 많은 사례가 있는가. 다양한 작가의 수작을 한 권의 책으로 읽을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다만 오타가 자주 눈에 띄어서 불편한 점도 있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으로 서점과 출판계의 관심과 기대가 뜨거웠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도 물론 한마음이었을 것이다. 한강 작가는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부터 한국 문학 작품을 읽으며 자랐기에 오늘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여름에 읽다가 남겨 둔 몇 작품의 소설을 읽으면서는 평소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이 단편들을 한강 작가도 수없이 읽었겠지 싶어서. 일제강점기에 쓰인 한국 단편 소설은 우리의 근현대사를 이해하는데 빠뜨려서는 안 될 소중한 문학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단편 소설은 문학을 좋아하고 문학을 정신적 지주로 삼는 독자들에게 영원한 옹달샘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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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개 - 개정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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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의 소설은 90년대에 나온 작품 벽오금학도를 읽은 지 실로 오랜만에 읽게 되었다. 이 작품은 초판이 1981년이고 내가 읽은 것은 2014년 출간본이다. 오래된 작품인 만큼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내용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우리의 숙제 같은 물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외수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지금까지 교과서에서 배워온 것들을 모두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모조리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마음 그 자체라고 했다. 2년 넘게 마음공부에 관심을 두고 유튜브나 책을 접한 나로서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놀라웠다. 이미 사십 년 전에 이런 생각을 했다니 말이다. 역시 작가에게 있어 삶의 지표나 통찰력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던지게 한다.

 



그래서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들개 그림에 목숨을 건 남자와 문학을 자신의 전부이자 마지막으로 여겼던 여자의 이야기다. 그 남자는 말끝마다 무의미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 반복해야 했던 일과 삶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일까. 여자(화자)는 글이 써지지 않아 고통스러워한다. 마치 완벽한 때를 기다리는 듯했다. 나중에는 그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조금씩 채워지는 그의 그림을 보면서 삶의 희망을 품게 된다. 그런데 왜 하필 들개였을까. 획일화된 조직사회에 익숙해져 야망과 야성을 잃고 피폐해져 가는 현대인의 삶을 담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그렇게 느껴졌다. 여자는 학창시절 자신이 다녔던 폐허가 된 학원에 들어가서 혼자 살고 있었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숙부가 이민을 떠나는 바람에 혼자 남겨졌고 가난했기 때문에 그곳을 선택한 거였다. 빈틈이 보일 정도로 벽이 갈라져 곧 붕괴하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면서도 거기를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흔히 사람들은 꽃이 기후가 좋은 상태에서만 아름답게 피어난다는 생각들을 가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반드시 꽃도 고통을 견디지 않으면 아름답게 피어날 수가 없습니다. 겨울의 모진 추위, 여름의 혹독한 더위, 그런 것들에게 시달린 뒤에야 꽃은 피어납니다. 그래서 봄과 가을에 꽃이 많이 피는 것입니다.(중략) 예술가는 작품이라는 진주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라도 자기 자신의 생활에 상처를 내는 사람들입니다.”(P124)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갈 곳이 없으니 여기에서 그림을 그리겠다고 여자에게 졸라서 들어왔다. 밖에 한 발자국 나가지도 않고 그림이 완성될 때까지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면서 여자의 출입을 금지한다. 그가 허락할 때만 들어갈 수 있다. 나중에는 대소변까지 작업실에서 해결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자신도 들개가 되어간다.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자 실물 개를 사들여 먹이도 주지 않고 야성의 개로 길들여간다. 물론 여자가 일을 한 돈으로 사다 준 것이다. 여자는 글을 쓰지 않고 남자의 그림이 완성되기만을 마음을 졸이며 학수고대한다. 혹독한 환경에 자신을 가두고 굶주림과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드디어 아흔아홉 마리의 들개 그림을 완성한다. 개와 교감을 나누며 그것을 그림에 담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은 신들린 경지를 느끼게 했다.

 



나는 보았다. 거기 경건하게 완성되어 있는 한 남자의 영혼을. 나는 오래도록 시선을 다른 데로 옮길 수가 없었다.

그 그림은 일찍이 내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가장 아름다운 또 하나의 세계였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그의 유서이자 영혼의 목소리였다.’(P336)

 



지금도 이렇게 열악한 환경과 가난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을까. 가혹한 환경을 스스로 선택하고 오로지 들개 아흔아홉 마리를 그리기 위해 온 열정과 영혼을 바쳤다. 읽는 내내 여성 작가가 쓴 글인가 싶을 정도로 섬세한 문장에 놀랐다. 이 작품은 발표되고 70만 부가 판매되며 문단과 대중을 놀라게 했고 이외수 작가의 예민한 감수성을 엿볼 수 있는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그 남자에게 들개는 어떤 의미였을까. 아마도 편안한 환경에서 살아가면서 타성에 젖어 꿈과 목표를 잃은 자신을 깨우고 싶었던 것일까.

 



이외수 작가는 글을 맺은 후에, 한 줄의 시나 한 악장의 심포니, 또는 그림 따위들은 설명되거나 해석되어서는 안 되며 다만 느끼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을 쓸 때마다 그것을 염두에 두며 자신의 소설 또한 설명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고 했다. 소설이 감상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세상에는 사람 수 만큼이나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 아무런 보상이 없어도 끝까지 영혼을 바쳐서 할 수 있을 만큼 좋아하는 일이 있는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도전하지 못하고 그저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 그렇기에 더욱더 귀한 메시지로 다가왔다. 비교와 경쟁에 휘둘리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기를 멈추지 말라고, 거기에서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고 일깨워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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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9-12 1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 님, 오랜만이어요. 반가반가~~ 저도 벽오금학도, 들개를 읽었답니다. 이외수 작가 님의 광팬이었었죠.

모나리자 2024-09-23 23:18   좋아요 0 | URL
네, 페크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댓글이 너무 늦었네요.ㅠㅠ 추석 명절 잘 보내셨지요.
이외수 작가의 광팬이셨군요. 전 정말 오랜 만에 읽었어요.
추석이 지나더니 선선해서 정말 좋네요. 편안한 밤 되세요.^^
 
와카.하이쿠.센류 그림 시집 - 한 줄짜리 日本詩 에피파니 에쎄 플라네르
이수정 편역 / 에피파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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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수업에서 일본 유력신문의 칼럼을 번역한 적이 있는데 거기에 와카가 나왔다. 고전 문법이 쓰인 만큼 당연히 번역하기 어려웠다. 번역에 도움이 될만한 책을 소개받았는데 하이쿠와 와카를 자주 읽어보라는 거였다. 이 책은 와카, 하이쿠, 센류가 들어있는 그림 시집이다. 편역자 이수정은 문학박사이며 시인으로 일본어와 독일어에 능하신 분 같다. 저서로는, Vom Razel des Begriffs (공저), Berlin, Duncker&Humblott 言語·(공저), 東京, 有斐閣, 하이데거그의 생애와 사상(공저), 서울대출판부 하이데거그의 물음들을 묻는다, 생각의 나무(한국연구재단 우수저서) 하이데거존재시간, 철학과현실사 본연의 현상학등이 있고, 역서로는 현상학의 흐름, 해석학의 흐름, 근대성의 구조, 현상학의 흐름등 다수 있고, 시집으로는향기의 인연, 생각의 나무푸른 시간들, 철학과현실사 등이 있다.

 



먼저 생소한 독자를 위해 와카(和歌), 하이쿠(俳句), 센류(川柳)에 대해 간단히 언급해 보려 한다. 옛날부터 일본인들은 한 줄짜리 시를 즐겼는데 5-7-5-7-7로 글자수를 맞춘 것이 와카이다. 하이쿠는 글자수를 더 줄인 5-7-5에 반드시 계절을 나타내는 키고(季語)’가 들어간다. 이를 무시하고 재치와 풍자의 해학을 담은 것이 센류이다. 이 시집에서는 일본어와 한글 발음을 병기해서 일본어를 모르는 독자라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였고 무엇보다도 시집에 잘 어울리는 화려한 우키요에’(()世絵, 에도시대에 성행한 풍속화)를 감상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이제 시를 감상해 보자.

 



와카(和歌)


먼저 만요슈(万葉集) 한 편을 소개한다.

 

こそればえすれ

야나기코소 키레바하 에스레 요노히토노

なむを如何にせよとぞ

코이니시나무오 이카니세요토조

読人しらず(東歌)

 


버들가지야 꺾여도 또 나지만 세상 사람은

그리워 죽겠는데 어쩌란 말이신지

(p19, 작자불명)

*만요슈(万葉集)-일본에서 가장 오래 된 시가(詩歌)((20; 奈良 시대 말엽에 이루어짐)).

 



여러 장르 중 언어의 경제성을 가장 효율적으로 표현한 것이 시라고 한다. 이 시집에 소개된 와카, 하이쿠, 센류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차이를 느껴보자. 작자불명의 이 시에서 화자는 그리운 이를 떠나보낸 듯하다. 자연은 무수한 영겁의 세월을 거듭하면서도 새로운 생을 살 수 있지만, 인간은 한번 가면 그걸로 마지막이다. 그러니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생겨난 걸까. 우리에게 영원할 것 같은 시간도 마찬가지다. 하루하루 보내다 보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시간을 붙들 수는 없으니 우리가 그 시간과 함께 동지가 될 때 의미있는 일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다.

 


우타가와 히로시게 그림.



코킨와카슈(古今和歌集)

 

봄노래

 


벚꽃 잎이여, 어지러이 흩날려 눈 가려주렴

늙음이 찾아오는 저 길이 헷갈리게

(p23, 아리와라노 나리히라)

 


벚꽃은 화사하다. 지는 벚꽃은 환상적이다. 하지만 어지러이 흩날리는 꽃잎을 보며 젊음이 사라지는 것을 떠올리는 이도 있으리라. 늙음이 찾아오는 길을 헷갈리게 하여 막아달라는 화자의 말에 애잔함도 묻어나고 왠지 재치도 느껴진다. 나이가 들어도 동안으로 살고 싶은 마음에 얼마나 많이 노력을 기울이는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시다.

 



가을 노래

 

달 보노라니 오만가지 것들이 다 서글퍼라

나 혼자만 찾아온 가을은 아니지만

(p63, 오에노 치사토)

 



가을은 왠지 마음이 차분해지고 쓸쓸해지는 계절이다. 이름 모를 풀벌레 울음소리가 들리는 밤, 저녁 달이 뜬 밤은 고요하다. ‘오만가지 것들이 다 서글프다고 한 이 시의 화자는 홀로 오랜 세월을 살아왔을까. 그래서 지난날의 추억을 더 많이 떠올렸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되돌아볼 수 있는 가을이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그리운 사람은 언제나 마음속에 있으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테니.

 



신 코킨와카슈(新古今和歌集)

 

여름 노래

 


창문 가까이 댓잎을 희롱하는 바람 소리에

너무나도 짧았던 선잠의 꿈이었네

(p87, 쇼쿠시 공주)

 


어찌 잊으리 접시꽃을 묶어서 풀베개 삼고

선잠 잤던 들판의 이슬 내린 동틀 녁

(p87, 쇼쿠시 공주)

 


한여름의 낮잠만큼 행복한 시간이 있을까.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시골집 마루에 누워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던 기억이 난다. 흰 구름 뭉게뭉게 떠다니고 시원한 바람 한 줄기에 스르르 눈이 감긴다. 어느 날인가는 비몽사몽 깨어 학교 가야지!’ 하고 놀랐던 기억도 있다.

 



하이쿠(俳句)

 

에도시대의 하이쿠(1603~1867)

 


춥다곤 해도 불은 쬐지 마시게 눈사람이여

(p121, 야마자키 소칸)

 



빙그레 미소가 지어지는 하이쿠다. 추운 겨울에나 살 수 있는 눈사람. 아무리 춥다해도 불을 쬐는 순간 녹아내린다. 시의 화자는 눈사람을 만들며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이 하이쿠를 떠올렸을까. 시인의 눈은 그냥 보는 것이 아니다. 뭘 보더라도 시 하나를 건진다.

 


소리로 죄다 내질러버렸구나 이 매미 허물

(p137, 마쯔오 바쇼)

 


모기 한 놈이 나 귀머거린 줄 알고 또 찾아왔군

(P179, 코바야시 잇사)

 



여름 하면 떠오르는 상징물은 매미 소리다. 뜨거운 여름날 매미들의 합창을 듣고 있으면 시끄러운 소리에 귀가 따갑다. 그런데도 자장가처럼 들릴 때가 있다. 매미 울음은 규칙성이 있다. 하나가 울기 시작하면 일제히 따라 합창을 하고 함께 멈춘다. 얼마나 소리를 질러댔으면 허물이 벗겨졌을까. 땅속에서 움츠리고 있다가 7년 만에 나왔으니 마음껏 울도록 내버려 두어야겠다.

 



모기는 그야말로 여름날의 불청객이다. 귓가에서 윙윙대는 소리가 나면 한밤중에도 벌떡 일어난다. 감히 내 잠을 방해하다니! 라며 짜증이 나곤 했던 나에게 이 시가 눈에 확 들어왔다. 모기와 씨름하면서도 시상을 떠올리는 문인들의 재치를 한 수 배우고 싶다.

 


근대의 하이쿠

 


어깨에 와서 붙임성 있게 앉네 고추잠자리

(p223, 나쓰메 소세키)

 


달디단 홍시, 떫었던 젊은 날을 잊지 마시게

(p227, 나쓰메 소세키)

 


나의 최애 작가 나쓰메 소세키는 하이쿠를 많이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번에 읽은 하이쿠에서도 그의 재치를 확인했는데 이 하이쿠도 역시나 그랬다. 어린 시절 내 옷에 어쩌다 앉은 잠자리를 보고 놀라며 신기해했다. 그게 붙임성이 있어서 그랬구나.

아래의 하이쿠는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하지 못한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한다. 과거가 있어야 현재도 있다. ‘떫었던시절을 잘 견뎌내야만 달디단 홍시가 된다. 지금 더없이 좋은 때라면 더더욱 과거의 힘든 시절을 되새기며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자연에서 삶의 지혜를 건져 올릴 수 있는 혜안에 탄복하게 된다.

 


우타가와 히로시게 그림.



센류(川柳)


하이후 야나기다루(誹風柳多留)(1765-1840)

 


달아나면서 두고 봐!’ 하는 것은 졌다는 얘기

(p275)

 


입은 가볍고 엉덩이는 무거운 우리집 식객

(p277)

 


인간 행동에서 재치와 풍자의 해학을 담았다는 센류 중 두 시가 눈에 띄었다. 보통 사람들의 삶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소재라서 더욱 정겹다. 아웅다웅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이 그려지고 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이렇게 짤막하게 묘사한 시를 보니 유머와 재치가 느껴진다. 나와 좀 다르더라도 그러려니 할 수 있는 넓은 아량을 베푼다면 또 어우렁더우렁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매미의 함성이 한창인 무더운 여름이다. 폭염으로 인해 책읽기도 집중이 잘 안 될 정도다. 이럴 땐 여백이 많은 시를 읽으며 더위를 달래보는 건 어떨까. 짤막한 하이쿠와 와카, 센류를 읽으며 옛 문인들의 일상과 마음을 엿보는 즐거움이 있다. 옛사람들이 살던 모습과 풍경을 담은 우키요에도 덤으로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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