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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버지니아 울프 - 한 사람의 인생이 모두의 이야기가 되기까지
수사네 쿠렌달 지음, 이상희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1월
평점 :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만 보고 급구매한 책이다. 책을 받고 펼쳐 보니 그림이 가득한 만화였다. 만화의 일종인 그래픽 노블이었다. 뜻밖이라 당황했지만 읽을 만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에 대해서는 대략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는 그의 많은 작품을 언급하며 배경이나 에피소드를 접할 수 있어서 더욱 흥미로웠다. 커다란 판형에 양장본이라 편하게 자주 들춰 볼 것 같다. 또 성인만이 아니라 청소년 학생이 읽기에도 너무 무겁지 않은 내용이라 가뿐하게 읽을 수 있겠다. 이 책을 쓴 수사네 쿠렌달은 일러스트레이터로 복잡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내어 사람들이 공감하고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는데 매력을 느껴 그래픽 노블을 작업하기 시작했다.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등 예술성 높은 작품을 그래픽 노블로 만들었으며 울프의 대표작 《올랜도》를 준비 중이라 한다.
겉표지를 넘겨 안쪽에는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인물들의 얼굴이 나와 있다. 가족은 물론 버지니아가 교류하던 지인들이다. 본문을 읽을 때 찾아보며 읽으면 이해하기 쉽다. 특별히 목차나 소주제는 없고 어린 시절부터 인생의 마지막까지 이야기로 쭉 이어진다. 이 부분은 좀 아쉬웠다. 작품 세계와 일대기를 다룬 내용이니 시기별로 나누거나 소주제로 구분했다면 읽는데 훨씬 편했을 것 같다.
버지니아 울프는 각각 재혼이었던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셋째 딸이었다. 이부 오빠, 이복 자매까지 합치면 여덟 명이나 되고 잭슨 부인과 외할머니, 그리고 일곱 명의 하인까지 꽤 북적이는 집안이었다. 울프는 만 두 살이 되어서야 말을 하기 시작할 정도로 늦었지만 다섯 살이 되었을 때는 형제자매들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줄 정도가 되었다. 여섯 살 때 직접 쓴 편지 내용도 들어있다. 성격은 자기표현을 주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감언이설을 해서라도 얻어내고 그게 통하지 않으면 억지를 부려서라도 반드시 얻어냈다. 화를 내면 모두가 두려워했다고 한다. 어떻게 나올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울프가 열세 살이 되던 1895년에는 엄마인 줄리아 스티븐이 세상을 떠난다. 가족과 친지들 모두 슬픔으로 가득했는데 너무 충격을 받은 것일까. 울프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사고 자책하기도 하며 우울증에 빠진다. 이런 감정은 《델러웨이 부인》이나 《파도》등 작품에 묘사된다.
‘나는 웅덩이 앞에 왔어.
로다가 말했다.
나는 넘을 수가 없었어.
나는 나 자신에게 그 어떤 것도
느낄 수가 없었어.
우리는 아니야.
나는 이렇게 말하고 쓰러졌다’(p19)
이래서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이 어려웠나 보다.《자기만의 방》은 여러 번 읽었는데 《등대로》등 다른 작품은 읽다 그만둔 게 많다. 바로 버지니아가 성장해 온 환경이나 성격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무조건 작품으로 덤벼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여자라는 이유로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시대적 상황도 책을 좋아하는 버지니아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정해놓은 규칙에 따라야 하는 전통적 구습은 울프의 마음을 옥죄는 듯했다. 신경 쇠약증으로 오래 요양을 해야 했을 때는 더욱 불안해했다. 의사는 건강 회복을 위해 안정을 취해야 하며 친구와 만나서도 안 되고 책도 안 된다며 휴식을 강조했다. 사람들과 나누는 지적인 대화를 얼마나 갈망했는지 모른다.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지적인 교류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당찬 버지니아 울프를 엿볼 수 있었다. 그런 열정이라면 자신의 마음도 잘 다스릴 수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우울증과 신경 쇠약증에 시달리다가 강에 몸을 던졌을까, 많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마음이 잘 맞는 버네사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살다가 자신을 돌보지 못한 엄마나 결혼한 지 3개월도 안 되어 죽은 스텔라 언니처럼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언니 버네사와 미래 계획을 세우며 자유로워질 거라고 말하며 희망으로 설렌다. 나중에 이 둘은 블룸즈버리 그룹을 만들고 그 핵심 멤버가 된다. 학교에 다닐 수 없었지만 이러한 지적 교류 활동이나마 가능했기에, 강연 활동을 하고 작품을 써서 성공적으로 발표하는 등 어엿한 작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작가인 비타 색빌웨스트와의 우정을 넘은 연인 관계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고 울프가 아플 때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올랜도》는 비타를 모델로 쓴 작품이라는 걸 알았다. 젊은 귀족 남자로 나오는 모양이다. 작품이 완성됐을 때 제일 먼저 알리는 등 함께 프랑스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비타는 울프가 오빠 제럴드 덕워스로부터 거울 앞에서 당한 성추행의 충격으로 트라우마를 갖고 있었는데 그 공포를 치유해 주기도 했다. 《올랜도》는 1928년 10월에 발표하여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비타는 울프를 자랑스러워했다.
평생 버지니아를 사로잡게 했던 주제는 ‘남성의 명예’와 ‘남성들의 오만함’이었다. 여성 차별의 직접적인 대상이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은 작품에 오롯이 묘사하곤 했는데 작품을 낼 때마다 세간의 비난이 두려워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다. 그럼에도 울프는 쓰고 또 썼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울프의 마음과 정신에 조금 더 가까이 간 것 같다. 앞으로 울프의 작품을 읽는다면 좀 더 몰입할 수 있을까 기대된다. 의식흐름 기법으로 쓴 글쓰기 방식이어서 놓치기도 할 테지만 분명 아무것도 모르고 작품을 대했을 때 보다는 나으리라 생각한다. 백 년도 더 오래전에 강조했던 울프의 말이 가슴속 깊이 스며드는 시간이었다.
‘여성이 글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쓰세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 글이 영원히 기억될 가치를 가질 것인지,
단 몇 시간 만에 잊힐 만한 것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p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