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과 진실. 이 오래된 문제가 다시 등장하여 우리를괴롭히는 것이다. 로라 라이딩은 그 둘 사이에서 자신의 시작행위를 희생시켰다. 그는 자신이 그 오래된 문제에 답변을 했다고 생각하는 듯하나, 과연 그랬는지는 논쟁의 대상이다. 우리의 손에 남은 것은 그가 남긴 시들뿐이고, 우리는 무엇보다도 아름다움 때문에 그것들에 마음이 끌린다. 로라 라이딩을태만한 시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확고한 원칙에 입각하여그런 태만을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약 40년의 부재 끝에다시 등장한 이 시들은 고고학적 기적의 힘으로 우리를 강타한다. 마치 시간의 모래밭에서 새롭게 발굴된, 저 오래전에 실종된 도시처럼. - P74

 독일에서 그는 릴케와 트라클의 동급으로 여겨지고횔덜린의 형이상학적 서정성을 계승한 시인으로 평가된다. 다른 곳에서도 그의 작품은 높이 평가되는데, 조지 스타이너는 최근 이런 말을 했다. <첼란은1945년 이후 유럽의 주요 시인 중 한사람이다. 하지만 첼란은아주 읽기 어려운 시인이다. 그의 시어는 조밀하면서도 불투명하다. 그는 독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특히 후기 시는 너무나 격언적이어서 여러 번 거푸 읽어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아주 지적이고 현기증 나는 언어의 힘을 구사하는 첼란 시 - P83

는 페이지 위에서 폭발적인 힘으로 튀어 오르고, 따라서 그의시를 처음 읽는 사람들은 아주 인상적인 경험으로 그 만남을기억하게 된다. 가령 홉킨스나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처음 발견했을 때 느끼는 기이하면서도 흥분된 느낌을 받는 것이다. - P84

추방으로 인해물 뿌려진 이름들과 함께.
이름들과 씨앗들과 함께,
당신의 고귀한 피로 가득찬 꽃받침 속으로,
게토-장미의 꽃받침 속으로가라앉은 이름들과 함께,
그 장미로부터 당신은 우리를 바라본다아침 심부름으로 그토록 많은 이들이 죽었으되영원히 죽지 않는 당신은.
ㅡ 왕관을 쓰고Hinausgekrönt」 중에서


전후에도 첼란의 삶은 불안정했다. 그는 심한 박해감으로고통받았고, 그 영향으로 만년에는 반복해서 신경 쇠약에 시달렸다. 결국 1970년에 더는 못 견디고 센강에 투신 자살했다. 첼란은 짧은 창작 기간에 수백 편의 시를 써내면서 슬픔과 분노를 토로했다. 첼란 시처럼 분노하는 시는 없으며 첼란 시처럼씁쓸함의 기억이 강하게 침투된 시도없다. 첼란은 과거의 괴룡(怪龍)과 계속 대결을 벌였고 결국에는 괴룡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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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를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목적과 방식의 일관성이다. 애초부터 로라 라이딩은 자신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알았으며, 자신의 시를 독립된 서정시가 아니라 거대한 시적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읽어 달라고 요구했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인지 혹은
무엇이 아닌지 더 잘 알아야 한다.
우리는 바람이 아니다.
집 없는 어질어질한 상태로 우리를 유혹하는
변덕스러운 기분이 아니다.
우리는 더 잘 분간해야 한다.
우리 자신과 낯선 자들을
우리가 아닌 것들이 많이 있다.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많이 있다.
우리가 굳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들이 많이 있다.

- 바람의 이유The Why of the Wind」 중에서 - P61

 추상적 개념을 로라처럼 잘 다루는 시인도 없으리라. 장식이 전혀 없고 앙상한 본질만 내세웠으므로 로라의 시는 일종의 수사법, 혹은 음악처럼 흘러가는 순수 논증으로 등장한다. 그리하여 주제와 반주제의 상호 작용을 창출하고 음악이 주는 것과 같은 형태적 기쁨을 준다.


그리고 대화 중의 대화는 시간 속의 시간처럼 사라진다.
둔탁한 가정(假) 위에 변화의 종을 울리며.
대화에 대화가 이어지고 더는 할 말이 없게 된다.
영원한 독백인 진리만 남는다.
그 어떤 대화자도 진리를 부정하지 못하고,
진리는 진리만이 부정할 수 있다.

「말하는 세계The Talking World」중에서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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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시버리는 미국 현대 시의 주변부에 서 있다. 그래서 많은 비평가들은 그의 작품이 의도적으로 애매모호하거나 추상적으로 쓰였다고 본다. 하지만 그의 시는 다른 동시대 시인들과는 다른 준거 틀에서 구상된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미국 시는 경험적 믿음이라는 편견을 토대로 쓰여 왔고, 그래서 세상에 대한 <상식적> 견해라고 불리는 것을 구체화한다. 이러한틀 안에는 광범위한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출발점은 언제나 사물의 세계이다.  - P55

애시버리처럼 시를 쓰는 시인은 없으며 그가 거주하는 시의영토는 자신만의 것이다. 결국 이 시인의 가장 놀라운 점은 창작 솜씨의 교묘함이 아니라, 늘 자기자신으로 머무는 독특한재주라고 할 수 있다. 애시버리의 이러한 시적 작업은 우리를뒤흔들어 놓는다. 우리는 그가 발표하는 시마다 오로지 그만이말해 줄 수 있는 것을 말해 주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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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고 발은 시대의 인물이었고 그의 일생은 20세기의 첫25년 동안 유럽 사회가 보여 준 열정과 모순을 고스란히 구체화하고 있다. 그는 니체의 저작을 열심히 읽었고, 표현주의 극단의 무대 매니저 겸 희곡 작가였고, 좌파 언론인이었으며, 보드빌 피아니스트였고, 시인 겸 소설가였으며, 바쿠닌, 독일 지식인들, 초기 기독교,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각각 다룬 연구서를 펴냈고,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그는 생애의 이런저런 시기에 당대의 거의 모든 정치적·예술적 관심사에 손을 댄 듯하다. 이토록 많은 활동을 했지만 발의 태도와 관심은 평생 일관되었다.  - P46

<사회주의자, 심미주의자, 수도사, 이 셋은 현대 부르주아지 교육이 철폐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새로운 이상은 이 셋에게서 새로운 요소들을 가져와야 한다.> 발은짧은 생애 동안 이 서로 다른 관점들을 종합하려고 애썼다. 오늘날 우리가 그를 중요한 문학인으로 여기는 까닭은, 그가 새로운 해결안을 발견했다기보다 당대의 문제들을 아주 명료하게 지적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과감히 맞선 그의 지적인 용기는 휴고 발을 당대의 모범 지식인으로 만들어 준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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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환자와 언어들은 이러한 변환들의 나열이 아니다.
이런 변환들이 책의 핵심을 차지하고 어떻게 보면 책의 목적을 규정해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책의 실체는 다른 곳에 있다.
이처럼 언어에 몰두하는 울프슨의 일상생활과 인간의 조건을보여 주는 것이 책의 실체이다. 뉴욕에 살고 뉴욕의 거리를 해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렇게나 직접적이고 생생한 느낌을불러일으키는 책은 무척 드물다. 세부사항을 관찰하는 울프슨의 눈은 지독하다고 해야 할 정도로 정밀하며, 그가 파악한 세밀한 뉘앙스는 아주 철저하면서도 권위 있게 제시된다.  - P38

 루이스 울프슨은 문학의 바깥에 서 있는 사람이고, 그러므로 그를 공정하게 대접해 주자면 우리는 그의 관점에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이런 방식을 취할 때에만 우리는 이책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세상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바꾸어 놓을 진귀한 작품이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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