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 보통은 제일 먼저 술을 마신다. 아니면 마음껏 미쳐 날뛴다. 그렇게 해서 엉겨 붙은 신경하나하나가 풀리면 동시에 꽉 막혔던 생각도 풀려서 어떤 글이 - P20

든 술술 쓰리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이런 타개책은 원기가 왕성하고 근력이 센 사람이나 가능한 일,
몇 번이나 죽을 뻔한 겉만 멀쩡한 내겐 맞지 않는 소생법이다.
- P21

바다 외딴섬에 유배된 듯 애달프다. 지루하다. 쓸쓸하다. 나이든 탓이라고도, 벽에 부딪친 탓이라고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내 펜의 방자함이 절정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련다. 그게 지금내 기분에 딱 들어맞는다.
- P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떤 수필이든 열 매쯤 쓰지 못할 리 없건만, 이 작가는 벌써오늘로 사흘이나 웅얼웅얼 읊조리며 쓰고는 조금 있다 찢고 또쓰고는 조금 있다 찢고 있다. 일본은 지금 종이가 부족한 상황이라 이렇게 찢어대면 아까운데, 전전긍긍하면서도 그만 찢어버린다.
- P11

수필은 소설과 달리 작가의 언어도 ‘날것‘이기에 매우 조심해서 쓰지 않으면 엉뚱한 사람에게까지 상처를 준다. 결코 그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나는 언제나 ‘인간 역사의 실상‘을 하늘에 보고할 뿐이다.  - P12

가끔 신문사로부터 수필을 청탁받고 용감하게 달려드는데, 이건 아니야 저것도 아니야 하며 쓰던 원고를 찢어버린다. 고작 열 매 내외 원고에 사흘이고 나흘이고 끙끙댄다.
대단하군, 독자가 무릎을 탁 칠 만큼 빛나는 수필을 이 작가는 쓰고 싶은 모양이다. 너무 깊이 고민하다 보니 이제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수필이란 어떤 것인가, 잘 모르겠다.
- P14

이건 아니야 저것도 아니야 하며
쓰던 원고를 찢어 비린다.
고작 열 매 내외 원고에
끄月사흘이고 나흘이고 끙끙댄다.


-다자이 오사무 - P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삶을 알고 싶다는 이 거대한 욕망을 나는 예전에 발베크의 길에서나 파리의 거리에서 느꼈으며, 그 욕망이 알베르틴의 마음속에도 존재한다고생각했을 때, 나 외의 다른 이들과 그 욕망을 충족하는 수단을그녀로부터 빼앗고 싶어 했을 정도로 그것은 나를 괴롭혔다.

- P231

 그런데 인간이란 불행하게도 우리 사유 속에서 쉽게 마멸되는 수집품 진열대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그런 이유로 우리가 그들에 대해 세우는 다양한 계획에는사유의 열정이 담겨 있다. 그러나 사유는 피로해지고 추억은파괴된다.  - P2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종일 알베르틴과 계속 얘기하고 질문하고 용서하고, 그녀가 살아 있는 동안 늘 말하고 싶었지만 잊어버렸던 것을 복원했다. 그러다 기억에 의해 소환된 그 존재가, 이 모든 말들의 대상인 그 존재가 현실 세계의 어떤 것에도 상응하지 않고,
또 삶의 의지를 지속적으로 부추기는 충동이, 오늘날에는 사라진 충동이 하나의 통일된 개성적인 모습을 부여했던 얼굴에서 각각의 상이한 부분들이 파괴되었다고 생각하자 갑자기겁이 났다.  - P210

사랑할 때,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삶이 신비롭게 보일 때 우리는 얼마나거기에 대해 정통한 화자와 만나기를 열망하는가! 그리고 물론 그런 화자는 존재한다. 우리 자신이 자주 어떤 열정도 느끼는 일 없이 그저 이러저런 여인의 삶에 관해 우리 친구에게 얘기하거나, 또는 그 여인의 사랑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우리 이야기에 호기심을 가지고 귀 기울이는 낯선 사람에게얘기하는 일이 있지 않은가?  - P227

 물론 우리는 사유를 통해서만 뭔가를 소유하며, 식당에 걸린 그림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면소유하는 것이 아니며, 한 고장에 산다고 해도 그 고장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예전에 파리에서 알베르틴이 나를 만나러 와서 그녀를 품 안에 껴안을 때면,
나는 발베크를 다시 소유한다는 환상에 사로잡혔다. 마찬가지로 직공 아가씨를 포옹할 때면, 알베르틴의 삶과 공장의 분위기, 계산대에서의 잡담과 누추한 곳의 영혼과 순간적이지만 밀접한 접촉을 하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혔다.  - P2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을 할 때에도, 정신적 대기 상태가 불안정하고 내 믿음의 압력이 변하면 어떤 날에는 내 고유한 사랑의 시계(視界)가 좁아지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무한히 넓어지고, 또 어느 날에는 미소를 짓게 할 만큼 아름답다가도 다른 날에는 폭풍우를 일게 할 만큼일그러지지 않았던가? 우리는 오로지 자신이 소유한 것에 의해서만 존재하며, 실제로 우리 옆에 있는 것만을 소유한다. 얼마나 많은 추억과 기분과 관념이 우리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여행을 떠나 우리의 시계로부터 멀어지는가!  - P125

알베르틴이 죽은 처음 날들처럼내게 놀라움을 야기하는 것은 그토록 내 마음속에 생생하게살아 있는 알베르틴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사실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죽은 알베르틴이 아직도 내 마음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 P200

그 시기에 나는 몹시 괴로워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이제 이해한다. 우리는 고통을 완전히 겪고 나서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 P2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