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책임과 역할을 상대적으로 높게 확보할 수 있는 매체는 여전히, 책이다. 대부분의 책은 저자가 오랜 시간 연구하거나 성찰한 것을 사실적 근거와 논리적 합리성을 확보해서 적확하고 모범적인 문장으로 내용을 풀어낸 것이다. 따라서 책을 읽는 것만큼 안정적이고 체계적이며 논리적인 생산적인 지식과정보 채널은 흔치 않다.
- P84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추구하는 엘리트는 어떤 인물인가?
대개 아는 것이 많고(암기력이 좋아서 저장 정보량이 많다는 의미다), 계산에 빠르며(수학적 능력. 그러나 대입을 위한 수학공부가 끝난 뒤에는 본인이 직접 계산할 일이 거의 없다), 윗사람의 심기를 콕짚어서 짐작하고 대응하는 능력 등이 뛰어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목격한 엘리트 대부분이 그렇다. 그래서좋은 대학, 좋은 학과를 나오는 것으로 가장 먼저 가늠한다. 문제는 대학과 학과‘만‘으로 모든 게 결정된다는 점이다. 이런 유형의 인물이 갖춘 능력은 지식이 거의 유일한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경험이 쌓이고 승진하면서 시야가 넓어지는 등 그 능력이향상되면서 탐구 능력이 증진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 P87

나는 개인적으로 BTS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 곡과 가사가 단순한 음악적 기교로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느낀다. 모든 멤버가 그 책을 읽고 사유하고 토론하며 자신들과 같은 세대가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는지, 무엇을 찾아내고 싶은지 등에 대해 수많은 교감을 나누며 노래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준 것이 방시혁의 방식이며 그게 바로 다른기획사들과 다른 점이다. 나는 이 차이가 BTS를 다른 아이돌과다르게 만든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방시혁은 멤버들을매뉴얼에 따라 훈련시킨 게 아니라 그들이 문제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을 자발적으로 먼저 도출할 수 있도록 열어주었다. 그게 매우 중요한 차이다.  - P91

지식과 정보에 대한 분석과 비판이 필수적인 것은 바로이 때문이다. 분석과 비판은 지식과 정보의 진화 과정에서 가장먼저 만나게 될 관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객관, 논리, 타당성,
합리성 등과 나의 주체적 판단력이 결합됨으로써 보다 정제되고 향후의 방향과 목적에 따라 가공할 수 있는 최적의 기본 재료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한다.  - P99

무조건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만약 어떤 분야에 대해 심층적으로 이해하고어느 정도의 전문가 수준을 원한다면 그 분야의 책 열 권을 읽는 것보다 효과적인 것은 흔치 않다. 나는 이것을 ‘꾸러미 독서‘
라고 부른다. 처음 읽을 때는 난해하거나 낯설 수 있다. 그러나서너 권 읽으면 그 분야의 큰 틀과 논점의 핵심을 파악하고 예닐곱 권의 책을 읽으면 자신만의 비평적 시선도 형성된다. 그렇게 열 권을 읽으면 어느 정도 전문가의 어깨 수준에 올라 자기나름의 안목도 생긴다. 때로는 대학에서 몇 개의 강좌를 수강하는 것보다 더 우수할 수도 있다.  - P105

사가독서제도는 인재를 아끼는 세종대왕의 탁월한 안목에의하여 처음 실시된 이후 약 340년간 지속되면서 성삼문, 이황,
이이, 정철, 유성룡, 서거정 등 300여 명이 독서당을 거쳐 갔다.
세종 시기의 번영과 이후 조선을 이끌어간 힘이 여기에서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종대왕의 업적을 자랑하고 떠들어대면서 정작 사가독서제는 금시초문이라면 안타까운 일이다.
- P121

탐구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연구하고 고찰하며 다양한 해석을 부단하게 시도해봐야 한다. 인생은 길다.
지금 당장의 효과에만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 탐구에 시간을 투자하는 게 내 삶 전체를 고려해볼 때 비효율적인 게 아니다. 탐구의 열매는 시간을 들여야 수확할 수 있다. 진짜 좋은 몸은 오랫동안 다듬어진 잔근육들이 형성하는 것이지 갑자기 무거운기구를 들며 큰 근육을 키우고 영양보조제를 먹으며 만들어낸몸이 아니다. 탐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 P126

 말은 콘텐츠의 시대라고 강조하면서 정작 그 가장 비옥한땅인 책을 멀리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더 나아가 마땅히 책읽은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은 사람과 달라야 한다. 그저 지식과 정보의 습득 목적으로만 책을 읽으면 거기에 다다르지 못한다. 뜻은 높고, 생각은 깊으며, 영혼은 맑고, 가슴은 뜨겁게, 세상을 넓고 다양하게 읽어낼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을 하나의 통찰로 엮어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직관 능력은 이런 힘을키우면서 자연스럽게 배양된다. 이 지점이 바로 ‘지식/정보-탐구-직관‘으로 이어주는 연결점이고 더 나아가 영감과 통찰로숙성되는 못자리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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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눈, 내 귀, 내 정신을 아무리 라 베르마 쪽으로 기울여 나를 감탄하게 만들 만한 이유를 단 한 조각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난 단 하나의 이유도 거둘 수 없었다. 그녀의 동료 배우들과 달리 나는 그녀의 발성법과 연기에서 지적인 억양이나 아름다운 몸짓을 구별할 수조차 없었다. 마치 나자신이 페드르』를 읽는 것처럼, 또는 페드로 자신이 그 순간에 내가 듣는 것을 말하는 것처럼 난 그녀의 낭송을 들었으며, 라 베르마의 재능도 이런 말들에 아무것도 덧붙이는 것같지 않았다. 나는 이 예술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억양 하나하나, 얼굴 표정 하나하나를 ― 그녀의 재능을 깊이 연구하고그 안에 담긴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해 —— 멈추고 오랫동안고정하고 싶었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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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는 예술적 변화가 정치적·사회적 변화보다 조금늦었지만 현대에서는 예술이 시대를 한 박자 앞서간다. 그래서현대 예술을 외면하면 우리는 현재와 미래를 놓치는 셈이다.
그러니 일부러라도 현대미술이나 현대음악을 적극적으로 찾아누려야 한다. 그런 데에서 콘텐츠의 힘이 길러진다.
- P56

감상과 해석의 주체는 전적으로 나 자신‘이다. 세상의 중심이고 미래 공감의 핵심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건 엄청난 일이다. 이것이 미래 콘텐츠를 길어낼 넓은 호수며 깊은 샘이다. 스티브 잡스와 마크 로스코의 사례에서 우리가 진정 읽어내야 하는 핵심은 바로 그런 것이다.
- P57

이런 사례가 허다하게 많다는 건 여전히 왜곡된 남성중심주의적 사고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례를 하나 더 들어보자. 흔히 여성이 대부분인 간호사를 백의의 천사‘라 부르게 만든 나이팅게일 Florence Nightingale의 실제 별명은 ‘망치를 든여인‘이었다. 보급품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자 망치를 들고 보급창고 자물쇠를 깨부수고 부상병을 치료했던 데서 연유한다.

그 별명이 자극적(도대체 누구에게 ‘자극적‘이란 말인가?)이라 여긴
‘남성‘ 종군기자가 ‘등불을 든 여인‘으로 표현했고 여러 과정을거쳐 ‘백의의 천사‘ 라고 굳어졌다. 거기에는 ‘천사여야 한다‘는강요가 함축됐다. 나이팅게일의 진취적이고 당당한 태도, 직업의 전문성, 용기와 끈기는 그 이름 뒤로 감춰버렸다.  - P59

앞에서 ICBM과 스티브 잡스의 20세기, 21세기 상징을 도식적으로 서술한 것처럼 이제는 비가시적이고 비형태적이며 비질료적인, 즉 콘텐츠가 핵심인 시대로 전이했다. 그 본질이 불명확하고 애매하기는 하지만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은 기계적혁명이 아니라 비기계적 혁명, 즉 사고의 혁명으로 성큼 들어섰다. 따라서 ‘창조혁신 · 융합‘을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운명이 달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가 선언적으로는 창조·혁신·융합을 외치고 있지만 교육 과정에서 배운 적도 없고 일상에서 이를 경험한 적이 별로 없다.
- P70

우리로서는 사고의 혁신을 통해 다양한 융합을 이끌어냄으로써 여러 부가적 가치를 강화시키는 방안이 현실적일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기존에 있던 것, 그리고 지금까지 이루어온 것을최대한 여러 가지로 엮어서 융합해야 한다. 제4차 산업혁명을주장한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이 강조한 ‘초연결성‘ 처럼 영역(카테고리)도 파괴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씨줄과 날줄을 최대한 연결해야 한다. 이미 말했듯이 초연결성이 극대화되려면 먼저 사회와 조직이 최대한 수평화되어야 한다. 수평적일 때 연결할 수 있는 접점이 많아지고 더 많은 고리를 통해 융합될 여지가 훨씬 더 커진다.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혁신적 결과를 얻을수 있다. 애플의 결과만 바라볼 게 아니라 왜 애플이 성공했는지, 그 성공의 핵심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식하고, 우리는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고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지부터따져야 한다.
- P71

집단지성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집단 구성원이 서로 협력하거나경쟁하여 쌓은 지적 능력의 결과로 얻은 지성 또는 그러한 집단적 능력‘을 의미한다. 이것은 소수의 우수한 개체나 전문가의능력보다 다양성과 독립성을 가진 집단의 지성이 올바른 결론에 가깝다는 주장이다. 대중의 지혜에 바탕을 둔 ‘공생적 지능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개념이기도 하다.
- P72

 이러한 집단지성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전자미디어의 보편화 덕분이다. 이것을 더 확장하면 ‘전 지구적인 두뇌 Global Brain‘의 구축을 가능하게 할 것이고 컴퓨터가 두뇌의확장이라면 컴퓨터 네트워크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두뇌들이결합한 집합적 지성의 탄생을 의미한다. 결국 컴퓨터 네트워크의 결합은 데이터베이스의 전 지구적인 결합이다. 자연스럽게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지성의 실시간 연결이 되는것이다. 이것은 분명 새로운 혁명이다.
- P74

‘융합‘조차 익숙하지 않은 듯하다. 융합은 녹아서(혹은 녹여서)하나로 합친다는 물리학 ·화학적 개념이다. 이제는 일반 개념으로 확장되어 융합 현상을 방송과 통신의 통합에서 많이 사용하며 망의 융합, 서비스의 융합, 기업의 융합 등으로 다양하게 쓰인다. 사실 융합이 무조건 능사는 아니다. 심리학에서는 어설픈융합을 경계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경험을 자신도 똑같이 경험할 수 있다고 믿음으로써 자신과 타인을 혼동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 P75

심리학적으로 좀 더 심화해서 나아가 보면 융합은 인간의
원초적 공포, 즉 실존적 고독, 죽음, 공백을 두려워하는 심리에대한 방어기제의 일종이다. 새로운 것 또는 서로 다른 것을 경험할 때 직면하는 당혹감을 완충하기 위해 서로의 차이를 줄이고 싶은 사람이 시도하는 환상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융합은 소극적 방어기제의 영역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올바른 융합을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과 더불어 온전한 타자성을 인식하고서로 심오한 연합을 경험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콘텐츠와 융합의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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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부각되고 있는 집단지성과 팀제의 관계는 매우 긴밀하고 함축적이다. 집단지성이 부각되는 건 기업을 비롯한 조직이 내부 역량의 한계를 인식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집단지성이 가능해진 이유는 현안이 복잡해지고 개방적 문화가 확대되며 수평적 조직으로 진화했으며, 공유의 가치가 높아지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줄 IT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강조되는 집단지성은 내부 구성원을 비롯해 외부 인사까지 포함하여 참여자로부터 3c, 즉 취합 collection, 경연 contest,
협업 collaboration을 통해 새로운 가치와 생산의 창출에 필요한아이디어와 대안을 수집하고, 투표 voting, 합의 consensus, 평균화averaging, 예측시장 prediction market 등을 통해 참여자의 직관과지혜를 동원해 평가하고 선택하는 과정을 두루 담고 있다. 이러한 구체적인 목적과 기능을 염두에 두었을 때 팀제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다.
드지 - P42

우리나라에서 인문학 열풍이 일어난 데에 스티브 잡스가 한몫했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그의 사업에서 인문학적 사유와영감이 큰 역할을 했다며 기업마다 인문학을 알아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내가 여기에서 호들갑‘이라고 말한 건 세 가지때문이다. 하나는 인문학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성찰이 있느냐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스티브 잡스가 말하는 인문학적 사유와영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정작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 열풍의 중요한 계기와 이유에 대한이해는 거의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 P43

하지만 인문학은 단순히 문文 · 사史·철哲이 아니다. 인문학은 나와 세상의 관계를 읽어내며 내가 세상에 묻고 물었던 나로 귀결하며 존재와 사유 그리고 실천을 성찰하는 것이다. 어떤 분야, 어떤 과목이든 궁극적 목적과 대상, 그리고 주제와 주체가 인간으로 귀결되는 모든 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더 나아가 - P45

인문학은 시대정신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미래 의제를 이끌어내며 그것에 대한 로드맵을 마련하면서 주제의 실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문제로 확장하며 그 사회적 실천을 위한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이 인식을 놓친 상태에서의 인문학 소비는 늘 그랬듯 하나의 유행처럼 혹은 붐처럼 지나고 말 뿐이다. 인문학 열풍에 편승해서 인문학으로 둔갑한 변종 자기계발 서적이 줄지어쏟아졌지만 세상을, 우리의 사고와 삶을 바꾼 건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노골적으로 말해서, 인문학 공부해서 살림살이가 더나아진 적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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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는사업적 수완과 마케팅 감각이 뛰어났다. 특히 그의 직관은 동물적 감각에 버금갈 만큼 놀랍도록 탁월했다. 우리는 그의 직관에주목해야 한다. 스티브 잡스가 창립한 애플의 성공 요인 가운데하나가 바로 직관이기 때문이다.
- P21

 그러나 이후 픽사를 통해 새로운 통찰력을 얻게 됐고 애플에 복귀하면서 ‘예전의 스티브 잡스‘가 아닌 새로운 잡스‘로 거듭났다. 그것은 바로
‘창조 혁신 · 융합의 대변신으로 가능했던 부활이었다. 그게 바로 21세기의 가치이자 21세기 콘텐츠의 핵심이다. 20세기 성공과 실패의 스티브 잡스와 21세기 새로운 성공으로 극적으로 재기한 스티브 잡스를 균형 있게 읽어내지 않으면 핵심을 놓친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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