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콘텐츠 - 어느 예능 PD의 K콘텐츠 도전기 좋은 습관 시리즈 10
고찬수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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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좋은습관연구소의 습관시리즈 중 열 번째 신간이다. 그동안 읽어왔던 책과 느낌이 달랐다. 왜 그랬을까. 그동안의 책은 영어공부, 번역가의 습관, 카피라이터의 습관, 경제, 재테크, 비즈니스, 유대인의 지혜 습관 이야기였다. 이번 책은 KBS 예능 PD가 쓴 좋은 콘텐츠, 사랑받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노하우와 제작자의 자세, 태도 등 스무 가지 이야기다. 아, 그랬구나! 바로 우리가 학창시절 선망하고 동경하던 연예인과 아주 친숙한 PD의 이야기여서 색다르게 느껴졌던 것 같다. 저자 고찬수는 KBS 예능 PD로 전국노래자랑에서 인공지능까지 올드와 뉴를 넘나들며 방송 콘텐츠를 만들고 있으며 미래 미디어 전문가로 통할 만큼 인공지능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저서로 『인공지능 콘텐츠 혁명』, 『스마트 TV 혁명』, 『쇼피디의 미래 방송 이야기』가 있다.


 우선 책을 읽고 난 감상은 재미있다. 10년 전부터 현재까지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았던 프로그램, 콘텐츠 제작 과정과 현장의 에피소드를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예전에 즐겨보았던 <연예가 중계>가 방송국 입사 후 처음 맡은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반가웠다. <토요일 전원 출발>, <슈터TV 일요일은 즐거워> 등 많은 프로그램을 소환해 주어서 당시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놀랐던 것은 AI의 영역이 이제 우리의 일상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AI 음악프로젝트, 다시 한번>이라는 프로그램이다. 2000년대 초반 인기 그룹이었던 ‘거북이’의 리더 ‘터틀맨’이 생전에 부르지 않았던 최근 곡을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여 새로운 노래를 부르도록 학습시켜 현실인 듯 재현해냈다고 한다. 놀랍고도 감동적인 영상이었다! 이것은 공상과 AI의 활용으로 탄생한 결과물이었다. 작은 아이에게 들어봤냐고 묻자, 물론이라며 다른 것도 있다며 프레디 머큐리의 영상도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 AI와 사람이 서로 노래 대결을 벌이는 <AI vs 인간>이라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그동안 기존 지상파 방송은 변화를 거듭하면서 IPTV로 넷플릭스 같은 OTT로, 다시 1인 미디어 시대로 진화하고 있는 흐름을 알 수 있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모든 영상물을 잠식시키다시피 하는 오늘에도 결국 좋은 콘텐츠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며 ‘사람’과 ‘변화’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 중 인상 깊게 느꼈던 부분과 콘텐츠 제작 현장의 흥미로운 뒷이야기 몇 가지를 소개해 보겠다.



'거북이' 그룹이 부른 신곡!

https://www.youtube.com/watch?v=Jm0s0CEEd3Q


낯선 만남을 즐기기


 직업상 항상 새로운 만남의 연속이었다고 말한다. 출연자를 만나 섭외를 하고 다음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과정이 그것을 반복하는 패턴의 연속이었을 것 같다. 콘텐츠 제작 PD임에도 일부러 IT분야의 고수들과의 만남을 많이 가졌다고 한다. 그 결과 IT기술을 아는 독특한 PD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런 일은 의도적이지 않으면 쉬운 일은 아닌데 역시 콘텐츠 제작자로서의 촉수가 느껴졌다.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는 보통 사람들이 배워야 할 태도라고 생각되었다. 그 결과 저자의 첫 책인 『쇼피디의 미래방송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고 한다. 낯섦을 즐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직업의 특성상 새로운 만남을 할 기회가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저자는 이런 만남은 책이나 영상으로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렇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책을 만나면서 간접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나는 책은 꾸준히 읽고 있으니, 가끔이라도 의도적으로 영화를 즐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얻는 활력소도 색다른 기쁨이다.


준비된 사람에게만 오는 기회


 <스브스뉴스>의 ‘문명특급’을 진행하고 있는 ‘재재’가 SBS에 처음 인턴으로 입사하여 정직원으로 성공하기까지의 흥미로운 스토리와 저자가 2015년 MCN(Multi Channel Network)사업을 추진하여 국내 지상파 방송 사상 최초로 주목을 받은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사업을 과감하게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준비된 10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저자는 입사 후 우연히 인터넷 오디오 라이브 방송을 보다가 미래 미디어 산업의 중심은 인터넷이 될 거라는 확신으로 틈틈이 전자신문을 꾸준히 읽으면서 IT 전문용어를 모두 이해하는 수준이 되었단다. 그러고 보면 10년 공부의 법칙은 어디서나 통하는 것 같다. 그 결과 IT 관련 내용의 책 3권을 쓰게 되었고 회사에서도 미래 미디어 전문가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저자는 자신의 콘텐츠를 사랑하고 꾸준히 소통하는 자세로 시간의 힘을 믿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말은 콘텐츠 제작자 외에도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모두 적용될 수 있는 조언이다.


 이 밖에도 SBS의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 K>를 기획하고 기록했던 과정 등 가수들의 립싱크 논란을 취재하기 위해 찾았던 <가요톱텐> 현장에서 댄스 그룹 ‘쿨’이 립싱크를 하지 않고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담으면서 공유할 가치를 기록하고자 했던 열정을 이야기한다. 콘텐츠 기획자의 직업의식이나 일을 사랑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또 10분 정도의 영상물을 만들기 위해 보통 10시간 이상 촬영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상품으로서 소비자 앞에 내놓아야 하니 과연 시간과 정성은 필수적 요소일 것 같다. 중요도와 함께 배치 순서 등 예술성과 오락성을 가미하여 편집하게 되는데, 이런 편집은 ‘영상으로 글을 쓰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조연출 기간을 거치며 편집의 노하우를 배우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업무적인 과정을 언급하며, 더 중요한 것은 편집자는 출연자를 대상으로만 보면 안 되고 함께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스텝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때 아이들과 함께 즐겨보았던 SBS의 <런닝맨>, <복면가왕> 등이 해외에 수출하게 된 과정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전에는 일본의 프로그램을 수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이제는 K콘텐츠의 우수성은 세계에서도 인정할 정도가 되었으니 콘텐츠 제작자들의 열정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야기는 더욱 콘텐츠 제작의 중심으로 들어가 출연자 섭외, 돌발 상황이 발생할 때 임기응변에 대처하는 방법, 기획한 콘텐츠 제작을 위해 설득하는 방법, 남다른 콘텐츠 기획안 만들기 등을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세계 시장을 읽는 눈


 이 과정에서 시선을 끌었던 부분이 있었다. K-POP에 이어 한국의 드라마 예능, 영화, 웹툰이 세계로 퍼져 나가고, <스위트홈>, <킹덤>, <승리호>가 넷플릭스에 공개되면서 네이버와 카카오가 콘텐츠 산업 전면에서 주목받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세계 시장을 읽는 눈’이 필요하다는 점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콘텐츠 기획자는 항상 시장의 변화를 공부해야 하며 세계 경제 흐름에 대한 뉴스를 매일 습관적으로 들여다보라고 했다. 역시 경제 공부는 어느 특정 분야의 일을 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기본은 ‘사람’이라고 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을 누가 읽으면 좋을까. 우선 재미있는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이 떠오른다. 추억의 프로그램부터 K콘텐츠 까지 그 제작과정이나 세계로 수출하게 된 배경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언젠가 NHK 라디오 뉴스를 듣다가 ‘틱톡’이라는 용어가 자주 나오기에 작은 아이에게 물어보니 인스타그램의 릴스와 비슷한 용도라고 했다. ‘틱톡’을 활용하는 사람도 수억 명이나 된다는 말을 들었다. 이렇게 급변하는 시대에 개인 브랜딩 차원에서 홍보를 하거나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제 방송국에서 콘텐츠를 만들던 시대에서 개인 브랜딩 차원의 콘텐츠 산업 트랜드로 움직이고 있다. 이런 시기는 기회의 시간이기도 하단다. 그래서 미디어 영상 제작에 관심이 있거나 1인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현장 경험 풍부한 전문가의 생생한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겠다. 그 외에도 글쓰기나 다양한 분야의 창작을 하는 이들이 읽어도 유익할 것 같다. 기획자에게는 자신의 사소한 행동이나 소비가 생산적인 것이 될 수 있게 하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 말은 자신이 좋아하거나 반복하는 일을 수익으로 바꾸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이 아닐까. 꼭 영상 제작이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콘텐츠를 찾고 그것을 강점으로 키우고 싶은 이들이 읽어봐도 좋은 책이다.

***이 리뷰는 좋은습관연구소 대표님이 보내주신 책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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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6-13 16: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방송을 즐겨보지는 않지만 기발한 컨텐츠를 개발하는 사람을 보면 정말 똑똑하다고 창의적인 생각 들더라구요. 예전에 ‘나는 가수다‘ 랑 ‘응답하라‘ 시리즈 컨셉 보고 정말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모나리자 2021-06-14 11:04   좋아요 1 | URL
정말 그렇죠? 수출될 정도면 외국에서도 열광하는 콘텐츠가 된 거죠.
저도 전에 ‘나는 가수다‘를 아이들과 엄청 즐겨봤었요. 그 이후엔 tv를 끊어서 요즘엔 뭐가 나오는지도 몰라요.ㅎㅎ

새파랑님~새 한주도 화이팅 하세요~
더운 날씨 건강 잘 챙기시고요. 감사합니다.^^
 

피카소는 단순하고 군더더기 없는 그림을 배우는 과정이 얼마나힘든 일이었는지 거듭 언급하고 있다. 그는 그 과정을 하나씩 익혀야했다. 커밍스 역시 그의 창작노트를 보더라도 시가 단순성을 획득하기까지 얼마나 힘들게 노력했는가가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자신이본 현실의 복잡함과 혼란스러움을 그대로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이오히려 쉬운 일이었다고 말한다.
- P120

에드윈 A. 로빈슨 Edwin A. Rokinsm은 젊어서 짧은 시를 쓰다가 점점긴 시를 썼는데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나이가 예순이 넘고 보니시를 짧게 쓰는 것이 너무 힘들구나."
이처럼 글쓰기의 본질은 종이 위에 단어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불필요한 것들을 골라내고 버리는 데 있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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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로 읽는 세상 - 서른 편의 시로 읽는 삶과 문학 이야기
김용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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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를 읽자는 주제로 원고에 한 편의 글을 썼다. 그리고 시 읽기 실천으로 시집을 들춰보던 중 이벤트에서 반가운 책을 만났다. 블로그 이웃님(예스블로그)의 신간이다. 작년 가을쯤 책을 내셨던 것 같은데 몇 달 만에 다시 신간이라니 놀라웠다. 나의 20대 시절엔 칼릴 지브란의 시집을 끼고 살았고, 오랫동안 시와 멀어졌다가 다시 함민복, 장석남, 문태준, 김선우, 허수경 시인 등 바쇼의 하이쿠, 작년 11월에는 류시화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을 만났다. 시에서 완전히 멀어지진 않으려고 나름 노력했다. 하지만 너무 띄엄띄엄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아이가 정재찬의 시를 잊은 그대에게를 읽어보라고 권해 준 덕분에 시를 즐겼던 예전의 추억과 아이들이 어렸을 때 시를 많이 들려주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리고 이제 적어도 한 계절에 1권의 시집을 읽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 책에 인용되는 시들은 모두 30편이다. 이 중 상당 부분의 시는 20여 전 전에 한차례 선보였던 원고이며 여기에 새로운 원고를 추가해서 썼다고 한다. 다시, 시로 읽는 세상이라는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다시(多時), ‘많은 시를 통해서 세상을 읽어낼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시를 통해서 세상을 읽고 시인의 삶까지 엿볼 수 있는 시 해설서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던 시인과 시들이 나와서 오랜 친구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프롤로그에서는 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어떤 시를 읽을 것인가, 에 대한 가이드가 나와 있다. 전에 어떤 글에서 시에 대한 평가는 읽는 사람의 몫이라는 말을 본 적 있다. 저자도 이 질문에는 정답이 없으며 무수히 많은 모범 답안이 존재할 뿐이라고 했다. 여기서 산문과 시의 비교를 말하는 문장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산문 쓰기는 불을 때서 밥을 짓는 것에 비유되고, 시 쓰기는 발효시켜 술을 빚는 것에 비유된다.”


 

 중국 청나라의 시인인 오교(吳喬)의 말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산문은 밥이고 시는 술이 되는 셈이다. 같은 재료인 쌀이 발효되어 술이 된 것이 함축의 미를 지닌 시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참으로 절묘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쉽게 읽히지 않는 시의 특성을 알게 되면 산문과 달리 음미하는 방법도 달라야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제 본문으로 넘어가 보자. 1편의 시에는 저자의 에피소드와 함께 시 해설이 곁들여져 있다. 맨 처음에 나오는 시는 김소월의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이다. 소개된 시들 중에는 가요로 불린 시들도 꽤 있어서 정겹다. 시는 노래고 노래는 시도 되니까. 국어시간에 배웠던 김소월의 시는 특히 전통적 민요조라거나 정한(情恨)을 노래했다는 특징을 암기해서 시험을 치렀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시대적인 상황이 시에 반영된 것이기에 무조건 민족의 정서를 한()으로 특징 지우려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매우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리뷰로 소개할 시는 그동안 알고 있던 친숙한 시 외에 예전에도 아주 난해하게 생각되었던 시인의 시와 이번에 알게 된 시를 소개하려고 한다.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고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 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엇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게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이상, <거울>

 



 고교시절 국어책에 나왔던 이상의 <오감도>가 생각난다. 띄어쓰기 무시는 물론 비슷한 말을 반복해 놓은 듯한 시를 보며 어안이 벙벙하던 기억이다. 이렇게 글쓰기의 규칙에서 벗어난 시를 읽어내려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유추하는 것이 일차적인 독법이라고 한다. 기존의 문법 규칙을 벗어나는 새로운 형식은 절망을 벗어나기 위한 작가의 문학적 기교라고 했다. 과연 해설을 따라 시를 반복해서 읽어보니 난해하게 보였던 시가 환해진다. 거울을 매개로 한 현실의 나와 거울 속의 나는 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절대로 일치할 수 없기 때문에 절망할 수밖에 없는 심상을 시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난해한 시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천재 시인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왠지 매력적인 시로 다가와 <오감도> 읽기에 다시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자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황지우 시인의 이 시는 제목은 알고 있었는데 처음 접했다. 제목 느낌으로는 서정시인가 했었다. 어떤 이는 이 시를 접하고 시인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시인이 된 이도 있었다.(어떤 리뷰에서 접했다) 영화 상영 전에 어김없이 볼 수 있었던 애국가를 들으면서도 이런 시가 나오는구나, 감탄했다. 일렬, 이열, 삼렬 하는 군대용어를 등장시켜 독재 정권의 억압을 드러내어 후련하고도 씁쓸한 웃음을 웃게 한다. 시인의 관찰력과 통찰이란 참 대단하다. 시의 매력이란 그런 것 같다. 처음 접할 때 아주 난해한 시도 있지만 한두 번 읽다 보면 의미를 알 수 있는 시가 있다. 문학 중에 가장 효율적인 장르가 시가 아닐까. 아주 짧은 문장 속에 핵심을 숨겨놓는다. 독자는 시와 행간에서 그것을 읽어내며 의미가 환해지면서 희열을 느낀다.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기쁨에게>라는 시도 좋았다. 인간의 감정을 소재로 이렇게 시를 쓸 수 있구나.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처음엔 어려운 듯 느껴졌는데 몇 번 반복해서 읽어보니 그림이 그려진다. 시장에서 귤을 팔고 있는 할머니에게서 귤을 사면서 싸게 샀다고 기뻐하는 사람, 누군가 얼어 죽었는데 무관심했던 사람들. 어느 한쪽이 기뻐하면 다른 한쪽은 슬플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시라고 할까. 한마디로 더불어 살자는 호소가 짙게 느껴지는 시였다. 그리고 나도 시장에서 만난 할머니에게서 야채를 사면서 그런 적이 있었던가... 떠올려 보았다.

 



 오랜만에 국어시간으로 돌아간 듯 시를 읽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난 국어를 좋아했다) 김용찬 저자는 현재 순천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저서로 가사, 조선의 마음을 담은 노래, 18세기의 시조문학과 예술사적 위상, 교주 병와가곡집, 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등 다수 있다. 저자는 시의 을 음미하기 위해서는 가능하면 시 해설서를 읽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하지만 시는 왠지 어렵다는 생각에 멀어졌던 독자들에게는 일독을 권하고 싶다. 어떻게 시를 읽을 것인가, 한 편의 시에 삶과 역사가 깃들어 있는 배경을 잘 풀이해주고 있어서 산문에서 얻을 수 없는 또 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다. 시와 친해지고 싶은 독자들에게 유용한 시 독법 가이드가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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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6-08 21: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정호승˝ 시인 시를 가끔 보는데 너무 좋더라구요. <슬픔이 기쁨에게>도 좋네요. 모나리자님 리뷰보니 시에도 관심이 생길거 같아요^^

모나리자 2021-06-09 10:19   좋아요 2 | URL
네.. 시를 너무 띄엄띄엄 읽어서 이제부터 좀 열심히 읽으려구요.ㅎ
인간의 감정으로도 이렇게 좋은 시가 나오네요.^^

붕붕툐툐 2021-06-08 21: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국어 시간에 배웠던 시 총출동이네용!! 저도 다 좋아는 시라 반가웠어요~

모나리자 2021-06-09 10:20   좋아요 3 | URL
그쵸. 정말 반가웠어요. 역시 익숙한 시가 편하긴 해요.
전에 읽었던 허수경 시인의 시는 좀 어렵더라구요.ㅎ
현대시는 좀 어려워요. 자주 읽어야 갭을 없앨 텐데..^^

그레이스 2021-06-08 23: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황지우 시 좋아해요~

모나리자 2021-06-09 10:21   좋아요 3 | URL
네.. 그러시군요.
유머에 재치에 후련함, 대담함까지.. 재미있는 시였어요.^^
 
나와 디탄
사철생 지음, 박지민 옮김 / 율리시즈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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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 소개를 처음 보았을 때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 함께 읽었던 내게는 한쪽 다리가 있다(주대관, 송방기 공저)가 떠올랐다. 세상에... 한쪽 다리가 있다니, 읽기도 전에 제목만 보고 마음이 내려앉았던 기억이다. , , 그림에 재능이 있던 대만 어린이 주대관이 소아암으로 겨우 아홉 살의 짧은 생을 살았던 이야기다. 다리 한쪽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고도 아직 한쪽 다리가 있다며 오히려 부모님을 위로하는 씩씩한 아이였다. 그것이 더 마음 아프게 하는 줄도 모르고. 그리고 처음 만나는 이 작가 사철생은 20세에 하반신 마비로 평생 휠체어 생활을 해야 했던 중국의 국민작가라는 책 소개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한창 앞날에 대한 꿈으로 부풀 나이에 닥친 불행을 어떻게 헤쳐나갔을까, 궁금한 마음에 만나게 되었다.

 



책 표지는 따뜻한 동화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휠체어를 탄 주인공의 모습은 애잔함을 불러일으켰다. 중국의 가장 아름다운 현대 산문으로 꼽힌다는 <나와 디탄>을 비롯하여 중학교를 졸업한 후 문화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생산대에서 7년 동안 가혹한 노동을 하다가 하반신 마비가 되기까지 이야기가 들어있는 <스물한 살, 그해> 등 여러 편의 산문이 들어있다. 다리를 못 쓰게 된 초기에 어머니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 돌아가신 후엔 어머니 등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 몇 편의 이야기 조각이 맞춰지면서 그의 삶의 여정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중 몇 편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나와 디탄

 

이 책을 다 읽고 밖에 나갔다. 땅을 딛고 걷고 뛰다가 두 다리를 못 쓰게 된 화자의 심정을 느껴보려고 했다. 그가 휠체어를 타게 된 날들이 길어지면서 다리의 감각을 떠올리려고 상상하는 부분이 있었다. 발을 땅에 딛는 느낌은 어떨까, 돌을 발로 차는 느낌은 어떨까, 등등... 그가 그랬듯이 땅을 딛고 뛰지 못하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삶이란 옛날의 기억을 조금씩 잊어버리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얼마나 한이 되었으면 이생에서는 불구로 살 테니까 다음 생애에는 칼 루이스처럼 튼튼한 몸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그의 말에 가슴이 아려왔다.

 



두 다리가 마비가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휠체어에 의지하게 된 그는 황량한 디탄 공원으로 찾아간다. 몇 년을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왜 태어났을까 생각하다가 마침내 깨닫게 된다. 한번 태어난 생명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그런 깨달음을 얻고 15년 동안 찾아갔던 디탄 공원은 그를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희망이었다. 거기서 만난 중년 부부, 아픈 어린아이, 노래 부르는 청년, 달리기 하는 친구 등 공원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늘 죽음을 생각하던 그가 비로소 살아보기로 마음먹으면서 글을 쓰기 시작하고 약간의 명성도 얻는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끊이지 않는다. 그가 죽지 않았던 건 살아갈 용기를 찾도록 끊임없이 편지를 보내며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친구들 덕분이었다고 한다. 따뜻한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픔만 함께 나누다가 떠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회상하는 부분은 정말 안타까웠다. 그 넓은 디탄 공원에서 행여 아들이 잘못된 생각을 할까 봐 찾아 헤매다가 불안하고 초조하셨을 어머니의 마음을 뒤늦게야 헤아린다. 이처럼 이 작품에는 지난날에 대한 뒤늦은 후회와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그리고 산문이라고 해서 술술 읽히는 가벼운 문장들은 아니다. 한창 꿈과 열정으로 피어오를 시기인 스무 살에 닥친 불행으로 인해 일찍 철이 든 때문이었을까. 철학적인 사색이 담긴 물음은 묵직하게 다가오면서도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우리는 왜 남의 불행한 모습 속에서 위안과 행복을 찾는 존재인지 참 아이러니할 때가 있다.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참 많은 것을 갖고 있다는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지금,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주변을 한번 돌아보고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을 잘 챙기고, ’지금행복한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날의 한때는 지나가면 그뿐이다. 돌이킬 수도 없고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작가에게 디탄 공원은 무엇이었을까. 온통 죽음을 생각하러 갔다가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고 깨닫는다. 그래서 살았고 15년 동안 디탄 공원에 대한 헌사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꾼 것처럼, 그때 디탄에서 보낸 시간에 가끔 의문이 든다. 나는 디탄에 있었나? 아니면 디탄이 내 안에 있었나? 지금 나는 허공에 그어진 경계선을 본다. 그리움을 안고 그 선을 넘어 들어가면, 넘기만 하면 깨끗하고 순수한 기운이 훅하고 들어올 것 같다.

나는 이제 디탄에 없다. 디탄이 내 안에 있다.(P249)

 



 늘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자신 안에서 강렬한 삶의 의욕을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의 다른 이름은 욕망이며 욕망을 갖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살기 위해 글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열정을 다해 살았던 그가 남긴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장 아래에서의 단상

 

 담장에 대한 사색은 어릴 때 놀았던 추억의 골목에 가서 돌아본 이야기. 국수 삶는 솥에 축구공을 떨어뜨린 이야기 등 어린 시절 유치원에 대한 추억과 마음속의 담에 대한 사색으로 이어진다.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다가 맛있는 것에 넘어간 어린 화자를 데리고 멀리 돌아온 어머니의 작전을 늦게 눈치챈 어린 화자는 높고 높은 담장이 모습을 드러내자 대성통곡을 한다. 그랬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아침마다 잠결에 유치원에 들어가기 싫은 아이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는 장면에서 웃음이 났지만, 웃고 넘길 수 없는 기억이 되살아났다. 큰 아이가 다섯 살 때 미술학원에 학원에 안 가겠다고 엄청 떼를 쓴 적이 있었다. 작은 아이는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피부과에 가려고 함께 나왔는데. 결국 학원에 가지 않았고... 나한테 혼나고 그 하루는 엉망이 되었다. 아이가 가고 싶지 않다면 이유가 있었을 텐데, 그런 걸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학원 하루 빠지는 게 무슨 큰일이라고. 그럼 우리 셋이서 맛있는 거 먹으며 재미있게 놀자, 했어도 되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어른이든 아이든 인생의 어느 한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인데, 그땐 왜 그걸 몰랐을까.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는 일이 되었다.

 



 담장에 대한 추억은 물리적인 모습에서 심연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담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 바다, , 사막까지 찾아 떠나지만 우리는 담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담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고. 그 속에서 두려움을 쌓고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고 말이다.

 



 사실 비밀 자체가 이미 담이다. 뱃가죽과 눈꺼풀도 모두 담이고, 거짓 미소와 거짓 눈물도 담이다. 다만 이런 담은 너무 약하고 피곤한 게 맘에 들지 않아 좀 더 내구성을 더해 보완을 강화하려고 한다. 설령 이런 마음의 벽은 쉽게 허물 수 있다고 해도, 산과 물 모두가 담이고, 하늘과 땅도 담이고, 시간과 공간도 모두 다 담이다. 시간과 공간도 담이고, 운명은 무한한 속박이고, 신의 비밀은 끝없이 이어지는 담이다. 정말로 이 비밀의 담까지 다 없애려 한다면, 어쩌면 오래 꿈꿨던 이상을 실현하게 된 것 같겠지만 기다려보라. 재미를 잃어버린 세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잠만 자고, 잠꼬대조차 할 말이 없는, 의욕이라고는 사라진 곳이 될지도 모른다.(P103)

 



 여기서 장벽이라는 의미도 된다. 우리 인간의 마음에도 벽이 있으며 인간관계, 세상일에 벽이 없을 수 없다는 말이 아닐까. 그런 벽이 거침없이 허물어진다고 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엇을 하려고 노력하고 성취하는 것을 잃어버린다면 재미없는 세상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화자도 오랫동안 담을 바라보며 죽음을 주거나 아니면 걸을 수 있는 다리를 달라고 기도를 했지만, 어느 날 노인이 부는 피리 소리에 이끌렸다가 장애라는 벽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담과 나눈 대화는 글쓰기로 이어졌고 그를 살게 했다는 것을 알았다. 글을 쓰기 위해 살아간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글을 썼다는 말이다.

 



기억과 인상

 

 이 이야기는 유년 시절의 기억부터 둘째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어머니, 할머니등 가족이 문화혁명이라는 역사의 굴레에서 받은 고통을 그의 기억과 인상으로 풀어내고 있다.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알고 싶어도 어머니의 침묵 때문에 명쾌하지 않았다. 때로는 궁금해도 당당하게 큰 소리로 물어볼 수 없는 아픔과 두려움이 깃들어 있었다. 그렇게 시대적 아픔에 맞물린 어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기구했던 삶을 반추한다. 그리고 그리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초등학교 시절 듣던 종소리, 어린 시절에 자주 찾았던 절 마당, 자주 꿈에 나타나는 어머니 모습, 어머니와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자귀나무와 해당나무의 추억으로 이어진다. 그 그리움은 아픔과 후회가 뒤범벅된 채 오랫동안 괴롭혔다. 어쩌면 인간은 살아오면서 경험한 기억과 추억으로 앞날을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을 더욱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답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휠체어에 앉은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다가 그럼에도 자신이 자비 속에 있음을 깨닫고 무엇이든 써야겠다는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제목에 끌려서 읽게 되었다는 롤랑 바르트의 글쓰기의 영도를 만나게 된다. 그에게 있어 글쓰기의 영도는 삶의 시작점이라고 하였다. 글쓰기는 결국 찾아가는 과정이고, 영혼의 가장 처음을 바라보는 행위라고. 최근 다른 책에서도 인용된 책이라 관심 목록에 올려 두었는데 또 접할 수 있어서 반가웠다.

 



 누구나 자신 나름대로 삶을 살아가면서도 종종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 에 부딪힐 때가 있다. 인간이란 누구도 선택의 자유 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고도 한다. 살아가면서 힘듦도 부침도 겪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런 고난 없는 평탄한 삶을 바라지 않는가. 작가 사철생은 20세에 맞이한 시련을 처음에는 견딜 수 없었지만,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과 주변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힘을 얻고 살아갈 의미를 찾는다. 그리고 아픔도 있었고 후회도 했지만, 그때마다 이겨내며 살아냈다. 그는 이런 나도 살았는데 당신은 어떠냐고 묻는 듯하다. 아무리 힘들어도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으니 힘내라고 얘기해 주는 듯하다. 누구나 자신의 고통이 가장 큰 법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작가의 인생 앞에선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기 위해서 글을 썼고 그 결과 현 위의 인생이 영화화되면서 전 세계에 알려진 작가가 되었고, 많은 작품이 교과서에 청소년 필독도서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많은 독자가 이 작품으로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고, 용기와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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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6-05 22:1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롤랑 바르트의 다른 책 몇 페이지 읽고 놀라서 덮어놨는데,
글쓰기가 ‘찾아가는 과정‘이고, 영혼의 가장 처음을 바라보는 행위라..왠지 뭉클해요!!

모나리자 2021-06-05 22:28   좋아요 5 | URL
저도 최근 다른 책에서 자꾸 언급되는 바람에 읽고 싶어지더라구요.
영도라는 단어는 영상과 영하를 가르는 기점이고 왼쪽, 오른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균형점이기에 기준점이자 시작점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작가의 해석도 멋지요~^^

새파랑 2021-06-05 23: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리뷰만 봐도 뭔가 뭉클하고 인생에 대한 교훈이 느껴지네요 ㅜㅜ

모나리자 2021-06-07 10:51   좋아요 2 | URL
네.. 정말 뭉클한 감동이었어요. 건강했던 사람이 장애를 입게 되어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글쓰기를 하며 그나마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았을 것 같아요.
새 한주도 즐거운 시간 되세요. 새파랑님.^^

그레이스 2021-06-06 08:1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꾼것처럼 디탄공원에서의 그 시간에 가끔 의문을 품는다는 작가의 말에 공명합니다
꼭 읽어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

모나리자 2021-06-07 10:53   좋아요 3 | URL
네. 15년 동안이나 찾았던 공원이고 그러면서 마음도 강해지고 성장하지 않았나 싶어요.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
새 한주도 화이팅 하세요~^^

scott 2021-06-06 00: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현 위의 인생≫ 작가였군요!
[비밀 자체가 이미 담이다. 뱃가죽과 눈꺼풀도 모두 담이고, 거짓 미소와 거짓 눈물도 담이다.마음의 벽은 쉽게 허물 수 있다고 해도, 산과 물 모두가 담이고, 하늘과 땅도 담이고, 시간과 공간도 모두 다 담이다. 시간과 공간도 담이고, 운명은 무한한 속박이고, 신의 비밀은 끝없이 이어지는 담이다]
우와 사철생 작가의 인생 철학에 탐복 합니다.

모나리자 2021-06-07 10:55   좋아요 3 | URL
그쵸? 어디든 담이 존재한다는 철학적 통찰 멋졌어요.
나중에 영화도 챙겨 봐야겠어요.
새 한주도 즐겁게 화이팅 하시길 바래요.^^
 

어린 시절의 모든 놀이 속에 그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고, 모든 꿈속에서 그는 떠들썩했다. 나는 철이 들자마자 그 두려움을 느꼈고,
모든 소년이 품는 기대 속에, 모든 동경 속에 그 검은 날개가 퍼덕거렸다. 햇빛 속에도 잠복처럼 처량함이 있었고, 바람 속에도 그의 어두움이 함께했다. 외할머니는 전전긍긍했고,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할머니와 아버지는 주변을 의식하며 소리를 낮추었고, 둘째 외할머니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떨었다.……..
- P180

외할머니는? 그분의 행복과 바람은 어디에 있을까? 어린 소녀가여자가 되고, 그가 오고, 혼인을 하고, 그의 아이들을 낳고…… 그다음에 그를 자주 볼 수 없어도 여전히 바느질을 하며 세월을 보냈다.
그가 밖에서 무엇을 하는지도 몰랐는데 갑자기 총성이 들렸다. 그녀는 공백의 세계에서 늘 살아 있는 듯 생생한 공포와 굴욕을 느꼈고, 그것은 죽어서도 쉽게 벗어나기 어려웠다.
- P182

전에 그 종소리는 어디로 갔을까?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그 소리는 기억과 더불어 미래로 갔다는 것이다. 종소리는 그렇게 오랜 시간을 떠돌았고 나는 꿈속에서 그 소리를 자주 들었다. 은은하게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들었고, 종을 흔들며 신중히 걷던 할아버지를보았다.  - P213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꾼 것처럼, 그때 디탄에서 보낸 시간에 가끔의문이 든다. 나는 디탄에 있었나? 아니면 디탄이 내 안에 있었나?
지금 나는 허공에 그어진 경계신을 본다. 그리움을 안고 그 신을 넘어 들어가면, 넘기만 하면 깨끗하고 순수한 기운이 훅하고 들어올 것같다.
나는 이제 디탄에 없다. 디탄이 내 안에 있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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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6-05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어디지 모르게 슬픔이 ( ͒ ́ඉ .̫ ඉ ̀ ͒)
모나리자님 주말 멋지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ㅅ^

모나리자 2021-06-05 20:20   좋아요 1 | URL
네, 그랬어요. 살기 위해서 글을 썼고 세계적인 작가가 되고 중국의 국민작가라고 하네요. 이미 고인이 되어서 더 안타까운...
남은 주말도 멋진 시간 되세요. 스콧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