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골 방들은 —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미생물들로 공기나 바다 전체가 빛을 발하거나 향기를 내뿜는 몇몇 고장에서처럼. 미덕, 지혜, 습관 같은, 공기 중에 떠 있는, 은밀하고도 눈에 보이지 않으며 넘쳐흐르는, 온갖 삶이 발산하는 무수한 냄새들로 우리를 매혹했다. 


- P94

.... 그해 모든 과일로 솜씨 있게 만든 투명한 젤리 냄새, 계절에 따라 변하면서도 가구와 집 안에서 나는 냄새로 톡 쏘는 하얀 젤리 맛을 따끈한빵의 달콤함으로 중화하는 냄새, 마을의 큰 시계처럼 한가로우면서도 규칙적인 냄새, 빈둥거리면서도 질서 있는 냄새, 태평하면서도 용의주도한 냄새, 세탁물 냄새, 아침 냄새, 신앙심 냄새, 불안만을 가중하는 평화와 그곳에 살지 않고 스쳐 가는 사람에게는 시(詩)의 커다란 보고로 사용되는 산문적인 것에 행복해하는 냄새였다.  - P95

 이 분홍빛 촛불, 그것은 여전히 보리수 색깔이긴 했지만, 이제 꽃들의 황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들의줄어든 삶 속에서 반쯤 꺼진 채 졸고 있었다. 이윽고 아주머니는 죽은 잎과 시든 꽃잎을 맛볼 수 있는 끓는 차에 프티트 마들렌을 담그고 과자가 충분히 부드러워지자 한 조각 내게 내밀었다.


- P98

 콩브레에서는 모든 사람들을, 동물이건 사람이건 간에 너무도잘 알았으므로, 만약 아주머니께서 ‘전혀 알지 못하는 개 한마리가 어쩌다 눈앞을 지나가는 걸 보기라도 하면, 아주머니는 그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고, 그 이해할 수 없는 사실에 자신의 온갖 추리력과 자유 시간을 쏟아부었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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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3-08 14: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분명 1권을 읽고 또 읽었는데 모나리자님이 올려주신 구절을 다시 읽으니
넘 !새로움 ㅋㅋㅋ
보리수 열매 색깔이 분홍빛 촛불 색이라고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프루스트의 감각적인 문장속에 일상의 모든 움직임이들이 살아 움직이네요 ^.^

모나리자 2021-03-08 16:57   좋아요 1 | URL
정말 거의 보여주는 묘사더라구요. 콩브레 마을 풍경, 사람, 성당 등 눈에 꽂히는 게 다 대상이었어요. 눈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읽어야 하는 작품 같아요.ㅎ^^
 
[eBook] 태엽 감는 새 연대기 1 : 도둑 까치 태엽 감는 새 연대기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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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키의 이 작품을 읽게 된 건 내가 좋아하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쓴 작품이라는 걸 알고 호기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사실 하루키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못했다. 오히려 하루키를 좋아하는 작가가 쓴 에세이를 여러 권 읽은 것으로 하루키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고 할까. 이 작품 세트를 19년에 구입하고 묵혔다가 작년 8월부터 읽다가 쉬다가 이제야 1권을 읽었다. 소설은 몰입해서 읽어야지 이렇게 읽으면 안 된다


 화자인 오카다 도오루는 법률사무소를 다니다 그만두고 요리와 청소를 하며 음악을 들으며 소박한 일상을 보낸다. 음악 애호가라고 할 수 있는 하루키답게 소설 속에는 음악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이야기 도입부에도 로시니의 도둑 까치서곡을 들으며 스파게티를 삶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유튜브를 검색해서 들어보았다. 역시 하루키의 말처럼 스파게티를 삶을 때 들으면 딱 좋은 음악으로 느껴졌다. 이때 모르는 여자로부터 10분의 시간을 달라는 전화가 걸려온다. ‘는 상대를 모르는데 그 여자는 가 실업 중이며 나이가 서른이라는 것 등 모두 알고 있다. 또 아내 구미코의 오빠 와타야 노보루와 같은 이름을 붙여준 키우던 고양이가 사라졌다. 고양이를 찾으러 나갔다가 이웃집 소녀 가사하라 메이를 만나는 등 알 수 없는 기묘한 사람들과 얽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또 다른 여자 가노 마르타를 만나게 된다. 특히 가노 마르타는 뭔가 꿰뚫어보는 염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신은 점쟁이도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라고 말한다. 앞으로 한동안 여러 가지 일이 생길 거라면서 고양이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고 한다. 도오루는 불안해지긴 하지만 특유의 침착함은 잃지 않는 모습이다.

 

 노몬한 전쟁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혼다 씨와 가노 마르타가 모두 물을 주의하라고 했기에 마음에 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언제나 들리던 태엽 감는 새의 모습도 사라졌다. 이어서 가노 마르타의 동생 가노 크레타가 등장한다. 가노 마르타가 대신 보낸 것이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도 모두 사라진 고양이 이야기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예고를 하며 고통 때문에 죽기로 결심했던 지난날의 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어서 마미야 중위가 등장한다. 구미코와 결혼 후 한 달에 한 번씩 찾아가다가 중단되었던 혼다  씨가 죽고 나서 오카다에게 유품을 남겼다는 편지를 받게 된다. 그리고 앞서 가노 크레타보다 더 길고 긴 중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참 지루하게 긴 이야기를 하는구나 싶었는데 그 나른함을 단번에 깨주는 대목을 만났다.

 

우리는 도적 때 사냥, 패잔병 소탕이라는 명분으로 죄 업는 무수한 사람을 죽였고, 식량을 약탈했습니다.(중략) 난징에서도 몹쓸 짓을 참 많이 했습니다. 우리 부대도 마찬가지였어요. 수십 명을 우물에 던져 넣고, 위에서 수류탄 몇 발을 던집니다. 그 외에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짓을 했어요. 소위님, 이 전쟁에 대의 따위는 없습니다. 이건 그저 살육이에요. 그리고 짓밟히고 죽는 것은 결국 가난한 농민들입니다.(중략) 그런 사람들을 아무 의미 없이 죽이는 게 일본을 위한 일이 되겠느냐고요.’(P295)

 

 혼다 씨와 생사를 같이 했던 노몬한 전투(1939년 만주와 몽골의 국경지대인 노몬한에서 일어난  일본군과 몽골·소련군 간의 대규모 충돌사건.) 이야기를 마미야 중위의 입을 통해서 듣는다. 지휘관인 야마모토가 산 채로 가죽를 벗겨지는 모습을 그대로 목도 해야 했던 마미야 중위가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살아도 산 인생이 아닌 삶을 살아왔음을 알게 된다. 소박한 일상에 하나둘씩 기묘한 일을 겪던 가오루의 이야기에서 역사의 만행 이야기로 흘러가는 설정이 의아하기도 했다


 알고 보니 하루키는 1970년대 이후 정신적 기둥이 없는 시간을 살아왔다는 걸 깨닫고 역사로부터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이 작품에 2차 대전 중의 중국 이야기를 넣는 시도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살면서 전혀 의도치 않은 일을 마주하기도 한다. 역사를 들여다보아도 같은 인간끼리 극악무도한 일을 벌였어도 세상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흘러가고 곧 잊히고 만다. 작가의 역할이란 관찰자로서 독자에게 잊지 않도록 상기시켜주는 것이 아닐까. 하루키는 2004파리 리뷰인터뷰에서 이 세상이 얼마나 이상한 곳인지에 대해 정직한 관찰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했단다. 마미야 중위의 이야기를 통해서 도오루는 무엇을 깨닫게 되었을까. 그리고 혼다 씨의 유품으로 받은 꾸러미는 텅 빈 상자였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사라진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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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06 23: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이 탁월한 작가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저는 하루키가 딱히 좋지는 않은데 또 그러면서 웃기는게 자꾸 읽게는 되더라구요. ㅎㅎ 이 책은 아직 안봤는데 볼까 말까 고민이 되네요. 모나리자님 나머지 권도 읽고 리뷰올리시면 보고 판단해볼게요. ^^

모나리자 2021-03-06 23: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1권을 워낙 띄엄띄엄 읽어서요. 오하려 후반에 와서 몰입이 되더군요. ㅎ 뒷편이 궁금해요. 어떻게 이어갈지..
특유의 유머가 있어서 재밌긴 해요.
편안한 밤 되세요. 바람돌이님.^^!

scott 2021-03-07 11: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모나리지남 전 지금 하루키옹이 진행하는 라디오 듣고 있는데 태엽감는새 모나리자님 리뷰 읽으니 뭔가 연결이 된듯한! 이책 모나리자님은 원서로 읽으실수 있을것 같은데요 첫장부터 김남주 번역이 엉망이라서,,,,,

모나리자 2021-03-07 22:29   좋아요 1 | URL
와~영어 방송인가요, 일본어 방송인가요? 대단대단!!
하루키 옹이 라디오도 진행하는군요.ㅎ
글쎄 기회가 되면 원서로 읽어보고 싶네요. 하루키의 원서는 <1Q84>세트만 가지고 있는데 꽤 두꺼워서 언제 읽을지 모르겠네요. 아직 실력을 한참 키워야 해서요.ㅋ

편안한 저녁 되시고 새 한주도 화이팅입니다. 스콧님.^^

새파랑 2021-03-07 11: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쓰메 소세끼의 ˝문˝ 을 읽어봐야 겠네요 ㅎ 리뷰 보니까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가사하라 메이가 정말 좋고 재미있었던 거 같아요 ㅋ 2권 리뷰도 기대합니다^^

모나리자 2021-03-07 22:34   좋아요 1 | URL
네, <문>은 다른 작품에 비해 부부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지요. 좀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나름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이라 기억에 많이 남는 작품이에요. 이 작품의 제목은 니체의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아무데나 펼쳐서 눈에 띈 글자로 제목을 지었다죠.ㅎ
편안한 저녁 되세요. 새파랑님. 감사합니다.^^!
 

この外いたずらは大分やった。大工の兼公と肴屋の角をつれて、茂作の人参をあらした事がある。人参の芽が出揃わぬ処へ棄が一面に敷いてあったから、その上で三人が半日相撲をとりつづけに取ったら、人参がみんな踏みつぶされてしまった。


화자가 장난끼 많았던 어린시절을 이야기한다.
인삼밭에 깔아놓은 짚 위에서 씨름을 하다가 싹이 나오려는 인삼을 밟아 뭉게고 말았던 이야기...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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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를 수용할 장소도 그들을 위한 식량도 없으니, 죽일 수밖에없는 겁니다. 이건 잘못된 일이에요. 난징에서도 몹쓸 짓을참 많이 했습니다. 우리 부대도 마찬가지였어요. 수십 명을우물에 던져 넣고, 위에서 수류탄 몇 발을 던집니다. 그 외에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짓을 했어요. 소위님, 이 전쟁에 대의 따위는 없습니다. 이건 그저 살육이에요. 그리고 짓밟히고 죽는 것은 결국 가난한 농민들입니다.  - P295

 일본을 생각하면 자신이 어째 세계의 끝에 홀로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왜 이렇게 마르고 더러운 풀과 빈대만 버글거리는 광활한 토지를놓고, 군사적으로나 산업적으로나 거의 아무런 가치가 없는불모의 땅을 놓고, 목숨 걸고 싸워야만 하는지 저는 이해할수 없었지요. 고향 땅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저 또한 목숨을버려 가면서 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곡물 한 포기자라지 않는 허허벌판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버리다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죠.
- P302

정말 깊은 우물이었습니다. 제 몸이 바닥에 닿을 때까지꽤 긴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기껏해야몇 초였지, ‘긴 시간‘이라고 할 만한 시간이 아니었겠지요.

그러나 어둠 속에서 떨어지는 동안, 저는 실로 많은 생각을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먼 고향을 생각했습니다. 제가 출정하기 전에 딱 한 번 품었던 여인을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제게 남동생이 아니라 여동생이있다는 것을 다행스러워했습니다. 제가 여기서 죽더라도, 적어도 그녀만은 징집되는 일 없이 부모님 곁에 남을 수 있습니다. 저는 찹쌀 경단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 몸이 마른땅에 부딪쳤을 때, 저는 그 충격으로 잠시 정신을 잃었습니다.
- P337

저의 진짜 인생은 그 외몽골의 사막에 있는 깊은 우물 안에서 끝나 버렸다는 겁니다. 저는 그 우물의, 하루에 10초에서 15초 정도 비추는 강렬한 빛 속에서, 생명의핵을 전부 불태워 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빛이 제게는그 정도로 신비했습니다. 뭐라 잘 설명을 못하겠습니다만,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그 이후로 저는 뭘 봐도,
어떤 경험을 해도, 마음속에 아무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 P352

저는 한쪽 팔과 십이 년이라는 귀중한 세월을 잃은 후에야 일본으로 돌아왔습니다. 히로시마로 돌아가 보니, 부모님과 여동생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더군요. 여동생은징용되어 히로시마 시내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다 원폭 투하 당시에 죽었습니다. 아버지도 그때 마침 여동생을 보러갔다가, 역시 목숨을 잃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자리보전을 한 끝에 1947년 세상을 등졌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속으로 결혼을 다짐했던 여인은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두 아이가 있었습니다. 묘소에는 제 무덤이 있었습니다. 제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어요. 저는 자신이 정말 텅 빈 껍데기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던 거지요. - P353

 야마모토는 제 꿈속에서, 수도 없이 거죽이 벗겨져 뻘건 살덩이로 변했습니다. 그가 내지르는 비통한 비명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저는 우물 속에서 산채로 썩어 가는 꿈도 몇 번이나 꾸었습니다. 때로는 꿈이 진짜 현실이고, 이렇게 살아 있는 저의 인생이 오히려 꿈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 P354

혼다 씨가 할하강가에서, 제가 중국 대륙에서 죽는 일은없다고 했을 때, 저는 기뻤습니다. 그 말을 믿고 안 믿고를떠나, 그때 저는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아마 혼다 씨는 그런 제 심정을 알고, 저를 진정시키기 위해 가르쳐 주었던 거겠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기쁨도 아무것도없었습니다. 일본에 돌아온 후로, 저는 언제나 속이 텅 빈 허물처럼 살았습니다. 그렇게 허물로 오래 살아 봐야, 그건 진정으로 산 게 아닙니다. 허물이 된 마음과, 허물이 된 육체가낳은 것은 껍데기 인생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가 오카다 씨에게 이해를 구하고 싶은 것은, 사실은 그 부분뿐입니다."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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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했어야 했다. 그러나그렇지 못했다. 어머니가 처음으로, 어머니로서는 무척이나고통스러웠을 양보를 하셨으며, 나를 위해 품어 왔던 이상을어머니 쪽에서 처음으로 포기하셨으며, 그토록 용감했던 어머니가 처음으로 자신이 패배했다는 것을 인정한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승리를 거두었다면 그건 어머니에 맞서 얻은 승리였고, 병이나 슬픔 혹은 나이가 그런 것처럼, 내가 어머니의 의지를 약화하고 이성을 굴복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얻은 승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날 밤은 나에게 새로운시대가 시작된 날로, 슬픈 날로 남을 것이다.  - P75

 엄마는 그 문장들을 적절한 어조로 공략하기 위해, 문장 이전에 존재하면서 문장을 구술하게 한, 하지만 단어자체에는 표시되지 않은 따뜻한 억양을 찾아내셨다. 그 억양덕분에 엄마는 책을 읽으면서, 동사 시제에서 느껴지는 온갖생경함을 완화했고, 반과거와 단순과거에는 선한 마음이 깃든 부드러움과 다정함이 깃든 우수를 부여하셨다. 그리고 한문장이 끝나면 다음 문장으로,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읽어 가면서, 길이가 다른 문장을 균등한 리듬으로 만들었고그렇게도 평범한 산문에 일종의 감상적이고도 연속적인 생명을 불어넣으셨다.
- P82

내 마음의 가책은 가라앉았고, 나는 어머니가 내 곁에 있어주는 이 밤의 감미로움에 몸을 내맡겼다. 나는 이런 밤이 두번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걸 잘 알았다. 그리고 내가 이 세상에 대해 품고 있는 가장 큰 욕망, 이처럼 슬픈 저녁 시간에 어머니를 언제까지나 내 방에 간직하고 싶어 하는 이 욕망은 생활의 필요나 다른 사람들의 소망과는 너무나 상반되어서, 오늘 밤처럼 그 욕망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뭔가 어색하고 예외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내일이면 고뇌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엄마가 더 이상 이곳에 있지 않을 테니까!  - P83

우리 과거도 마찬가지다. 지나가 버린 과거를 되살리려는노력은 헛된 일이며, 모든 지성의 노력도 불필요하다. 과거는우리 지성의 영역 밖에, 그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 우리가 전혀 생각도 해 보지 못한 어떤 물질적 대상 안에 (또는 그 대상이우리에게 주는 감각 안에) 숨어 있다. 이러한 대상을 우리가 죽기 전에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우연에 달렸다.
- P85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진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이 기쁨은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귀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면서 삶의 변전에 무관심하게 만들었고, 삶의 재난을 무해한 것으로, 그 짧음을 착각으로 여기게 했다. 아니, 그 본질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초라하고 우연적이고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 도대체 이 강렬한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  - P86

 그러나 아주 오랜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때에도, 존재의 죽음과 사물의 파괴 후에도, 연약하지만 보다 생생하고, 비물질적이지만 보다 집요하고 보다 충실한 냄새와 맛은, 오랫동안 영혼처럼 살아남아 다른 모든 것의 폐허 위에서 회상하고 기다리고희망하며, 거의 만질 수 없는 미세한 물방울 위에서 추억의 거대한 건축물을 꿋꿋이 떠받치고 있다.
- P90

작은 종잇조각들을 적시면, 그때까지 형체가 없던 종이들이물속에 잠기자마자 곧 펴지고 뒤틀리고 채색되고 구별되면서꽃이 되고, 집이 되고, 단단하고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것처럼, 이제 우리 집 정원의 모든 꽃들과 스완 씨 정원의 꽃들이, 비본 냇가의 수련과 선량한 마을사람들이, 그들의 작은집들과 성당이, 온 콩브레와 근방이, 마을과 정원이, 이 모든것이 형태와 견고함을 갖추며 내 찻잔에서 솟아 나왔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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