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바치는 심장 문득 시리즈 3
에드거 앨런 포 지음, 박미영 옮김 / 스피리투스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렸을 때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검은 고양이><어셔가의 몰락>등 몇 편을 읽은 적이 있다. 아마도 초등학교 고학년 때로 기억되는데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책이 귀한 시절이라 무엇이든 좋았다. 읽다보니 두 작품의 오싹하고 충격적인 장면과 분위기가 되살아났다. <모르그가의 살인사건>도 기억에 있는데 나머지는 처음 접하는 작품이다. 두세 살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망하고 부유한 상인이었던 숙부 존 앨런에게 입양되어 풍족한 생활과 남부럽지 않은 교육을 받기도 했다. 사촌인 버지니아 클렘과 결혼하여 10년 남짓 행복했지만 버지니아가 폐결핵으로 사망하자 절망에 빠진 에드거는 극심한 우울증과 알코올중독에 빠지게 된다. 부모의 죽음과 입양으로 두 개의 성을 가진 에드거는 존재의 분리로 인한 불안의 정서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고 한다. 이 단편집에 실린 작품 거의가 음울한 분위기와 폭력성, 복수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특히 검은 고양이는 오랜만에 다시 읽어도 참으로 섬뜩한 이야기였다. 사형선고를 받고 내일이면 죽을 몸이 되어 영혼의 짐을 덜겠다는 고백적 형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어릴 적부터 유순하고 정이 많은 성품이었던 가 비슷한 성향의 아내와 결혼하여 애완동물을 기르면서 나름 행복한 생활을 하는 듯하다. 그런데 술이라는 마귀가 붙어 아내는 물론 동물들에게도 학대가 시작된다. 고양이의 한 쪽 눈을 파내고 급기야는 아내를 끔찍하게 살해하더니 시신을 은폐하기에 이른다. 끝까지 숨길 수 있었던 승리감에 벅차오르면서도 뭔가를 알려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데... 선한 인간의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잔혹함을 어떻게 이렇게 섬세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싶다. 그의 작품들은 인간 내면의 음습한 심연이 어떤 인과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소름끼치도록 자세하게 드러나 있다.


 <구덩이와 추>는 종교재판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가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빠져나오게 되는 과정을 몰입도 있게 그려냈다. 감방의 바닥은 악취가 진동하는 구덩이가 있고 천장에서는 거대한 강철 추가 진폭을 넓히며 점점 하강하면서 끔찍한 공포감을 자아내고 있다. 몸은 결박된 채 배당된 음식을 탐욕스런 쥐들에게 빼앗긴 나는 지혜를 짜내기 시작한다. 남은 음식을 결박에 골고루 발라 누워 있다가 냄새를 맡고 달려온 쥐떼들에 의해 결박된 몸은 자유를 찾는다.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위태로운 상황에 어떻게 그런 묘안을 떠올렸을까.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더 절망적인 불지옥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한 치 발 디딜 곳도 없는 감옥 안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려는 찰나 어디선가 뻗어 온 구원의 손길 덕분에 목숨을 건진다. 벼랑위에 선 인간이 강렬한 삶의 의지로 결국 스스로를 구원한 예를 접하기도 한다. 특별한 일 없는 소박한 삶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절망을 빠져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깨닫곤 한다.


 <일러바치는 심장>은 제목이 풍기는 뉘앙스가 의아했었다. 여기서도 신경질적이고, ‘천국과 지상의 온갖 소리가 들리는 가 나온다. 그는 미치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나 건강한지, 그리고 차분한지 살펴보라고 한다. 그 늙은이를 사랑했다고 했다. 목적도 열정도 없는데 그 생각일단 싹트고 나자 밤이고 낮이고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생각이란 노인을 죽이는 것이다. 맨 정신으로 그 작업을 하고 완벽하게 흔적을 없애고 승리감에 도취된다. 그런데 별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 채 돌아가려는 경찰을 자꾸만 불러 세운다. <검은 고양이>에서도 마찬가지다. 힌트를 주려고 안달을 한다.


나는 얼굴에 핏기가 가시는 것을 느끼고 그들이 갔으면 하게 되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귓속에서 종이 울리는 듯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앉아 수다를 떨었다. 종소리는 점점 더 뚜렷해졌다. 계속해서 더 뚜렷해졌다. 나는 그 기분을 떨치려 더 신나게 말했다. 마침내 그 소리가 내 귓속에서 나는 게 아님을 깨닫게 될 때까지.’(P105)


'저걸 듣지 못했을 수가 있나? 전능하신 주여! 아니, 아니! 저들은 들었다! 의심하고 있다! 알고 있다! 내 두려움을 비웃고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무엇이든 이 고통보다는 낫겠지! 무엇이든 이 조롱보다는 견딜 만하겠지! 저들의 위선적인 미소를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제 다시! 들어봐라! 더 크게! 더 크게! 더 크게!

악당들 같으니!” 나는 비명을 질렀다. “더는 숨기지 말아요! 인정할 테니까! 바닥 널빤지를 뜯어요! 여기, 여기! 그 끔찍한 심장 박동 소리라고요!”(P106~107)


 가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흉측한 기사가 떠오른다. 여기 나오는 주인공은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하는 걸까. 수사를 하러 온 경찰이 증거를 찾지는 못하고 시시한 일로 언쟁을 벌이는데 는 오히려 격분한다. 일부러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불안하고 점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고 곧 터질 것만 같다. 그렇게 끔찍한 짓을 저지른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을까. 누군가 일러바치지 않았는데 양심 한 조각이 남아서 자신을 괴롭힌다. 폭발할 것 같은 심장 박동, 그것이 바로 일러바치는 심장이었다! 인체기관인 심장을 의인화 한 기발함과 고통스런 마음의 표현이 제목에 절묘하게 묻어난다.


 복수에 대한 이야기는 <아몬틸라도 술통><절름발이 개구리>에도 나온다. 포르투나토에게 온갖 모욕과 상처를 받은 는 그에게 복수하기로 다짐한다. 그것을 협박하거나 미리 입 밖에 내지 않고 알아채지 못하게 준비하는 것이 방법이다. 와인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포르투나토를 술통이 있는 지하실로 유인을 해서 술에 취하게 하고 회반죽을 친다. 일련의 작업을 하면서도 는 그저 가벼운 복수를 하는 듯이 후련한 마음이 된다. 우리는 종종 극과 극인 인간의 양면을 종종 접한다. 봉사와 희생으로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거나 흉측한 살인을 하고 웃음을 남기는 소름끼치는 모습 말이다. 두 얼굴의 표정을 한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다는 것이 참으로 오싹하게 다가온다.


 농담과 장난을 너무 좋아하는 왕에게 난쟁이 어릿광대가 있었으니 절름발이 개구리. 절름발이 개구리는 또 하나의 난쟁이 소녀 트리페타와 함께 각자의 고향에서 끌려와 왕에게 선물로 바쳐진 신세다. 축제가 있던 밤 두 사람을 불러 놓고 와인을 마셨다하면 거의 광기 상태가 되는 절름발이 개구리에게 억지로 술을 먹이고 그 반응을 즐긴다. 또 다시 재미있는 장난을 주문하는 왕에게 여덟 마리 오랑우탄이라는 유흥거리를 제안하는데... 왕과 일곱 대신은 쇠사슬로 한데 묶여 횃불 속에 타오르는 신세가 된다. 복수 치고는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찮은 광대라고 놀려대고 가지고 노는 장난감처럼 대하다가 큰 코 다친 셈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했던가. 하물며 사람이라면.


 에드거 앨런 포는 스트븐 킹,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아서 코난 도일 등 많은 위대한 범죄 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단편 소설의 창시자’, ‘근대 환상문학의 창시자’, ‘추리소설의 창시자’, ‘공포소설의 완성자등의 평가와 찬양을 받았으며 보들레르나 말라르메 같은 유럽의 작가들에겐 당대에 이미 그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자신의 분리의 불안을 떨치기 위해 끊임없이 다른 어떤 곳을 꿈꾸며 살아야 했던 비참한 영광의 작가이기도 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마도 그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70여 편이나 되는 단편을 써내려가는 동안에 어느 정도 고통이 치유되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밝음 이면에 존재하는 어둠을 똑똑히 바라봄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인간세상이 조금은 이해되려나.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키다리 아저씨 TV애니메이션 원화로 읽는 더모던 감성 클래식 3
진 웹스터 지음, 애니메이션 <키다리 아저씨> 원화 그림, 허윤정 옮김 / 더모던 / 201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 적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같은 제목의 이야기를 접한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이 이야기의 일부로 기억한다. 인기 있던 TV만화도 작정하고 본 적이 없어 대략의 줄거리만 알고 있어서 오히려 더욱 재미있게 읽지 않았나 싶다. 고아라는, 어쩌면 불행일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긍정적인 성격으로 자신과 주변의 많은 것들을 사랑하며 유쾌하게 성장해가는 모습은 빨간 머리 앤이 자연스럽게 겹친다. 앤에게 영혼의 단짝 다이애나가 있다면 주디의 영혼의 단짝은 키다리 아저씨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일방적인 의무감으로 써야하는 편지이긴 했지만, 주디는 의무감을 떠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더 즐기는 듯했으니까. 더 모던의 감성클래식 작품은 처음 갖게 되었는데 품격 있는 양장본에 TV에니메이션 원화가 들어 있어 읽는 재미와 소장의 기쁨도 누렸다. 이야기는 우울한 수요일과 주디가 키다리 아저씨에게 보낸 편지로 짜여 있다.

 

 존 그리어 고아원에서 열여덟 살 최고령이 된 제루샤 애벗은 97명의 어린 고아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허드레 일꾼으로 우울한 수요일을 보내던 어느 날 원장실에 불려가 재단 이사 중 한 부자 신사가 대학을 보내주고 작가로 키우기로 했다는 제안을 듣는다. 그 보답으로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한 달에 한 번 편지로 쓸 것, 절대로 답장을 기대하지 말고 빚을 갚는 마음으로 꼬박꼬박 쓰라는 특이한 조건이다. 이름도 밝히는 것을 꺼려하니 존 스미스 씨 앞이라고 써서 비서를 통해 전달하라면서. 평생 고아원을 떠나본 적이 없는 주디에게 정말 놀랍고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키 큰 뒷모습을 상상하며 키다리 아저씨라고 칭하기로 하고 자신은 제루샤 애벗이라는 이름 대신 주디라고 불러달라는 부탁과 함께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고아원을 떠나 처음 기차를 타고 신났던 일, 행복한 대학생활의 이야기, 그런 생활이 가능하도록 도움을 준 아저씨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새 친구 샐리 맥브라이드와 줄리아를 소개하고 혼자서 방을 쓰게 된 이야기, 농구부에 뽑힌 이야기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모두 편지에 쏟아낸다. 도움을 받는 입장이라고 해서 결코 의기소침해 하지 않는다. 고아원의 목표란 게 아흔일곱 명의 고아 모두를 아흔일곱 명의 쌍둥이로 만든다는 획일적인 교육제도를 비판하기도 한다. 자존심 강하고 영리하며 당돌함이 느껴지는 주디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정곡을 찌르면서도 감수성 풍부하고 발랄한 소녀의 모습도 보인다.

 

아저씨도 아시겠지만 대학에서 진짜 어려운 건 공부가 아닙니다. 노는 거예요. 다른 아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저는 반도 못 알아들어요. 아무래도 (저를 뺀 제 또래 아이들이 과거에 다들 경험했던 일과 관련된 우스갯소리들 같은데, 전 이 세계에서 이방인이고 그녀들의 언어를 몰라요. 그럴 땐 정말 비참한 기분이 듭니다. 지금까지 늘 그래 왔어요.’(P48)

 

 고아원에서 자란 티를 내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쓰지만 불쑥 튀어나오는 말에 자신도 깜짝 놀라게 되는 장면은 얼마나 안쓰럽고도 귀여운지. 질문을 해도 대답을 주지 않는 키다리 아저씨에게 심술이 나서 퉁명스럽게 편지를 썼다가도 금세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용서를 구하는 주디의 순수한 마음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상황을 편지에 썼다가 아름다운 장미꽃을 받고는 너무 행복해서 엉엉 울었다는 주디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첫 방학을 맞아 석 달 동안은 난생 처음 록 윌로우 농장에서 보낼 수 있게 되어 기대감으로 부푼 이야기, 줄리아의 삼촌인 저비스 펜들턴 씨와 학교 교정을 산책하고 대화하고 차를 마신 이야기를 자랑하는데...

 

 

아저씨, 저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 상상력이라고 생각해요. 상상력이 있어야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어요. 친절과 공감과 이해심도 생겨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상상력을 키워 줘야 해요. 하지만 존 그리어 고아원은 상상력의 싹만 보여도 즉시 잘라 버려요. 그곳에서 장려하는 자질이라곤 오직 의무감뿐이지요. 저는 아이들에게 의무라는 단어도 알려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단어예요. 아이들은 뭐든지 의무감에서 하면 안 돼요. 사랑에서 우러나와서 해야 해요.(P178)

 

 고아원을 떠나 처음으로 세상의 품에 안겨 생활하면서 처음엔 고아원의 기억을 지우고 싶어했지만 조금씩 배우고 넓은 마음으로 변화하는 주디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어디 고아원에만 그치는 이야기일까. 제도적인 교육 전반이 상상력과 창의력은 무시한 채 획일적인 상품을 찍어내기에 급급하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남의 입장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에서 공감과 이해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의무보다는 사랑의 마음이 우선이라는 주디의 말에 움찔하지 않을 수 없다.

 

'엄청나게 커다란 기쁨만 중요한 게 아녜요. 작은 것에서부터 큰 기쁨을 끌어내는 것, 그게 바로 행복의 참된 비결이고, 그러려면 바로 현재를 살아야 해요! 지난 일을 영원히 후회하거나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으로 사는 거예요. 농사 짓듯이요. 농사에는 조방농법과 집약농법이 있어요. 저는 집약농법처럼, 매 순간을 즐기며 살아갈 거예요. 또 매 순간을 즐기는 내 자신을 지각할 거예요. 사람들은 대부분 살아가는 게 아니라, 경주를 해요. 오직 저 멀리 지평선에 놓여 있는 결승점에 도달하려고 안간힘으로 달리는 거예요. 그렇게 한참 달리다 보면 숨이 턱까지 차서 헐떡거리게 되고, 그러면 아름답고 평화로운 전원 속을 지나오면서도 그 풍경을 다 놓치고 말아요. 결승점에 이르러서야 깨닫죠. 자신들이 늙고 지쳐버렸다는 것을. 그리고 결승점에 도달하느냐 마냐는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을요. 저는 길가에 앉아 소소한 행복을 많이 쌓기로 했어요.‘(P243~244)

 

 요즘 소확행이라는 말이 자주 회자되고 있다. 소박한 일로 행복을 찾는 일과 현재를 제대로 살자는 말이다. 앞만 보고 달리다가는 지금을 제대로 살 수 없다. 행복한 하루하루가 쌓여갈 때 우리의 삶이 대체로 행복했다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천천히 풍경도 음미하며 소소한 행복을 쌓기로 했다는 주디의 말이 다시금 위안과 힘을 준다.

 

'3학년에는 경제학을 선택했어요. 다방면으로 유익한 학문이죠. 경제학을 끝내면 자선과 개혁과목을 듣겠어요. 그 과목을 수강하면 고아원 경영에 훤해지겠죠. 제게 선거권이 있다면 바람직한 유권자가 될 것 같지 않으세요? 지난주에 저는 스물한 살이 되었답니다. 저처럼 정직하고 교양 있고 양심적이며 지성을 갖춘 시민을 내팽개치다니 이 나라에 얼마나 큰 손해인가요.’(P229)

 

보세요, 아저씨. 저는 지금 눈앞의 유혹을 완강히 외면한 채 오로지 일에만 전념하고 있어요. 부디 언짢게 생각하지 마세요. 아저씨의 친절함에 감사할 줄 모르는 배은망덕한 아이라고 여기지도 말아 주세요. 언제나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있어요. 아저씨의 은혜를 갚는 유일한 방법은 매우 쓸모 있는 시민이 되는 것입니다.(여자도 시민일까요? 아무래도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매우 쓸로 있는 사람이 될게요. 아저씨가 저 매우 쓸모 있는 사람을 내가 키워냈소라고 말씀하실 수 있을 정도로요.’(P259)

 

 학업에 쓰이는 돈 이외의 것을 더 주려고 하거나 유럽에 보내주려고 하는 아저씨의 제의를 단호하게 거절할 줄도 안다. 이런 주디를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다. 고아였지만 교육의 혜택을 받으며 당당하고 성숙한 어른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마음이 흐뭇해진다. 받은 것에 멈추지 않고 글쓰기를 통해 자립을 꿈꾸며 쓸모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한다. 이 소설이 계기가 되어 당시 여성에게 없었던 선거권이 주어졌고 고아들의 처우 개선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단다. 문학의 힘이란 역시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 아름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분은 말이죠! , 그분은 평상시 그대로인데 전 그분을 그리워하고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해요. 온 세상이 텅 빈 듯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어요. 달빛이 미워져요. 달빛은 이토록 아름다운데 그분이 곁에 없어 함께 볼 수 없으니까요. 아저씨도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있으시죠? 제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실 거예요. 아니라면 제가 뭐라 설명해도 모르실 테고요.(P303)

 

 

주디가 드디어 사랑에 빠졌나보다

달빛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함께 바라볼 사람이 곁에 없다고 아쉬워한다.

맥브라이드 가족의 초대를 받아 별장으로 놀러갈 꿈에 잔뜩 부풀어 있었는데 거기에 가지 말고 록 윌로우 농장으로 가라는 아저씨의 명령에 주디의 상심은 이룰 말할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세상에, 눈치 없는 주디처럼 나도 마지막 부분에 와서야 알았다. 멋진 반전이다

 

 이 작품을 즐기기 위해서는 두 번 읽기를 권하고 있다. 한번은 주디의 학교생활과 성장의 스토리를 따라 가는 것, 두 번째는 키다리 아저씨인 저비스의 관점으로 읽어보라는 것이다. 고아 소녀를 후원하고 성장 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떻게 마음의 변화가 일어났을까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세상의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고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해 가는 주디의 모습을 보면서 나를 돌아다볼 수 있었다. 내게도 키다리 아저씨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만 해 보았지, 내가 주디였다면 그런 상황에 초긍정적인 성격과 당당한 태도로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을까. 좀 더 현재를 소중히 하고 소소한 행복을 쌓으며 살아가고 싶어졌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자와 나오키 1 - 당한 만큼 갚아준다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말 재밌어서 몇 번이나 돌려 본 일드 <한자와 나오키>가 소설이 원작이었다는 건 처음 알았다. 당한 만큼 갚아준다는 멘트가 얼마나 후련하고 통쾌함을 주었던지. 역시나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쓸 수 없다는데, 작가 이케이도 준은 게이오 대학을 졸업하고 대형 은행에서 일했던 은행원 출신이었다. 일드 <루즈벨트 게임>도 재밌게 봤는데 그의 작품이 원작이라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은행원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관례화된 비리나 불합리한 점을 끝까지 밝혀내는 용감한 융자과장 한자와의 활약상을 그린 작품이다. 정곡을 찌르는 대사로 상대방을 움찔하게 만드는 언어의 마법사라고 하겠다. 부하직원을 무시하고 짓밟으려는 악랄한 상사에게 할 말 다하며 대들고 출세까지 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모든 직장인들의 로망이 아닐까.


 거품 경제의 전성기였던 1988년 말, 게이오 대학의 한자와를 포함한 도마리, 오시키, 곤도, 가리타 다섯 명의 동기는 청운의 꿈을 품고 은행 취업에 성공한다. 당시만 해도 엘리트의 대명사인 은행원이 된다는 것은 평생의 삶을 보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10여 년, 도쿄중앙은행 오사카 서부 지점에서 5억 엔을 대출 받은 서부오사카철강이 1차 부도를 내는 사건이 벌어진다. 담보도 없는 신용 대출인데 그것도 6개월도 안 된 시점에서 부도라니. 여기에는 지점장 아사노가 서부오사카철강 대표 히가시다에게 속전속결로 대출을 추진한 미심쩍은 배경이 있다. 우수지점 표창을 노린 성급함에 일사천리로 매듭짓고는 문제가 발생하니까 융자과장 한자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분위기가 되어간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은행원으로서 슬슬 환멸을 느끼던 차였지만, 불어 닥친 폭풍우를 그대로 맞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소문은 도쿄 지점까지 무성해지고 한자와의 앞길은 온통 먹구름이다. 부도 낸 회사 사장 히가시다 사장을 만나 대출금을 갚으라고 요구하지만 이리저리 피하거나 안 갚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뻔뻔스럽기 짝이 없다.


 결산 자료를 검토하면서 분식회계, 매입대금 부풀리기 등 도산이 계획적이었음을 확인하고 경악한다. 결국은 도마리의 조언으로 채권을 회수하기 위한 목표에 돌입하게 되는데...

 절실하면 통한다더니, 서부오사카철강의 하청업체인 다케시타 금속의 사장과 파트너가 되어 온갖 정보와 자료를 모으며 하나씩 단서를 캐치하는 모습은 마치 탐정의 행로를 보는 것 같다. 주변의 모든 정보를 총동원하며 도와주는 도마리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를 준다.

 

과연 한자와는 채권을 회수할 수 있을까

또한 불명예스럽게 당한 굴욕을 어떻게 갚아줄 것인가.

 

날씨가 좋으면 우산을 내밀고 비가 쏟아지면 우산을 빼앗는다-이것이 은행의 본모습 입니다.’(P218)


결국 우리 은행원의 인생은 처음에는 금도금이었지만 점점 금이 벗겨지면서 바닥이 드러나고, 마지막에는 비참하게 녹이 스는 것일지도 모르지.”(P331)


 꿈을 안고 은행 취업에 성공했지만 부조리의 산실임을 목격한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노력하는 한자와의 여정은 힘겹다. 갑작스런 현장검사와 면담으로 한자와를 불러들이고 편법을 쓰면서까지 잘못을 추궁하고 그것을 인정하게 하려고 혈안이 된다. 하지만 정의의 편에 선 주변 동료들의 도움은 든든한 힘이 된다. 조직생활을 하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도쿄중앙은행의 행원일 뿐이지. 즉 당신과 똑같은 일개 직원에 불과해. 경영과는 아무 관계가 없어. 내 주머닛돈이 나가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나는 한 사회인으로서 당신이 저지른 일을 용서할 수 없어. 아무리 귀찮고 힘들더라도 당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선 반드시 책임져야 할 거야.”(P227)


제게 책임이 있다면 순순히 인정하겠습니다. 그건 융자과장으로서, 은행원으로서, 더 나아가서는 직장인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제 책임이 아닌 것까지 사죄하는 건 오히려 부끄럽고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P289)


난 기본적으로 성선설을 믿어. 상대가 선의를 가지고 호의를 보인다면 성심성의껏 대응해. 하지만 당하면 갚아주는 게 내 방식이야. 눈물을 삼키며 포기하지는 않아. 열 배로 갚아줄 거야. 그리고…… 짓눌러버릴 거야.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아사노에게 그걸 알려주겠어.”(P336)


 자신의 잘못을 한자와에게 전가하려고 본점의 윗선에 미리 손을 써놓은 아사노의 말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불의를 회피하지 않고 밝혀내려 애쓰며, 지위의 고하를 신경쓰지 않고 할 말 다하는 한자와를 보면서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다.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자신이 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마저 회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의도적으로 부도를 내고 새롭게 다른 이름으로 창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수많은 가족들의 생계가 걸려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악덕업자는 지금도 어디선가 활보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도덕적 불감증이 만연한 답답한 세상에 한자와 나오키의 활약은 극심한 갈증을 해소해 주는 청량제나 다름없다

드라마만큼이나 재미있는 원작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브링 미 백
B. A. 패리스 지음, 황금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표지의 망가진 마트료시카 인형이 시선을 끈다. 겉의 인형 안에 작은 인형들이 속속들이 들어가 한 세트를 구성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야기도 마치 인형 세트처럼 하나씩 하나씩 밝혀진다. 한 겹 한 겹 벗겨내어도 계속 껍질만 나오는 양파처럼 의구심을 주고는 마지막에 가서야 퍼즐조각 맞추 듯 윤곽이 뚜렷해진다.


 12년 전 핀과 레일라가 므제브로 스키여행을 떠났다가 도로변 주차장에서, 핀이 화장실에 다녀오는 사이 레일라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사건을 경찰서에서 진술한 핀의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그런데 진술한 내용이 온전한 진실은 아니었다는 묘한 뉘앙스를 남긴다. 마치 사건의 전모를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독자를 혼선에 빠뜨리기도 한다.


 3부로 구성된 이야기인데 1부는 핀이 화자가 되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일기와 고백의 형식으로 사건의 경위를 밝혀주고 2부와 3부는 레일라와 핀의 시점으로 교차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현재는 실종된 레일라는 미궁속에 빠진 채 추모식에서 만난 레일라의 언니 엘런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실종된 동생의 생사도 알지 못한 채 결혼을 한다니. 그것도 동생의 연인이었던 남자와 함께. 보편적인 관습상 쉽지는 않은 일인데, 어디에 함정이 있는 것일까, 놓치지 않으려고 몰입하게 된다.


 결혼 준비로 분주한 가운데, 어느 날 레일라를 보았다는 토머스 영감의 제보가 핀에게 전해지고, 엘런은 집 밖에서 주웠다는 마트료시카 인형을 보여주는데. 마트료시카 인형이 상징하는 것은 레일라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태연한 척 하지만 핀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는다. 이제 둘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은연중에 핀은 레일라와 엘런을 비교하게 되고, 둘 사이는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듯 삐걱거린다. 동생이 살아있다는 것에 희망을 품는 것일까 불안한 것일까, 핀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려는 듯 엘런 또한 예민해진다. 레일라에 비하면 조용하고 수수한 편인 엘런이 이 과정을 잘 견디어 낼 수 있을까 궁금하다.


 그러다가 두 번째 인형을 발견하게 되고 수상한 이메일까지 도착한다. 데번에서 살만한 집을 찾고 있다는 메일이다. 매물로 내놓지도 않았는데 팔지 않은 것은 어떻게 알고? 나중을 위해 혹시나 하고 짧은 답장을 보내는데 놀랍게도 바로 답장이 온다. 이메일 주소의 루돌프 힐을 분석하며 루비를 의심하기도 한다. 성격적으로 다혈질인 핀이 분노를 참느라 애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한다. 급기야는 뭉개진 마트료시카 인형이 도착하고 요구사항이 점점 늘어가는 이메일은 핀을 피폐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레일라는 왜 없어졌을까.

핀과 동거 중, 레일라는 친구들과 놀러갔다가 분위기에 말려들어 다른 남자와 자게 된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분노로 일그러진 핀에게 사실을 말했다가, 분노로 폭발하는 핀에게서 아버지를 떠올리며 흔적 없이 사라진다. 갈수록 더 적극적으로 변해가는 이메일의 주인공은 정말 레일라일까. 아니면 레일라를 납치한 범인일까.


인간은 가끔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기도 하잖아. 안 그래?

너도 그래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P138)


레일라가 실종된 후 과거를 떠올리는 핀의 속마음에서 안스러움이 묻어난다. 엘런과 살면서도 레일라를 완전히 떨치지 못했다. 엘런도 그걸 핀의 모습에서 읽어내는 것일까.


 의아한 건 12년 동안이나 실종 상태인데 납치범과 대치하는 상황이나 유력한 제보가 없다는 점이다. 그것도 왜 핀과 엘런이 결혼을 앞둔 시점에 자신이(레일라) 살아있다는 존재감을 알리려 했을까 궁금증을 자아낸다. 3부의 마지막 장을 읽을 때까지 혼란은 계속된다. 급기야는 엘런을 없애라는 요구까지 하게 되는데... 과연 핀은 어떤 선택을 할까.


 아직도 잊지 못하는 레일라를 잊지 못하는 핀은 자신의 분노로 인해 엘런을 잘못되게 할까봐 전전긍긍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으로 복잡해진다. 브링 미 백, 그렇게 간절하게 바랐건만. 막판의 반전은 정말이지 상상도 못했다! 안타까운 점은 아버지의 잔인한 폭력을 피해 도망쳤지만 첫눈에 서로 반한 남자에게서 아버지의 폭력을 보았다는 것. 또 한 가지는 행복한 결혼을 앞두고 있었음에도 사랑을 확인하려는 집착이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마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그녀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든 한눈에 알아봤어야 했다는핀의 말이 가슴에 파고든다. 등잔 밑은 정말 어둡다는 사실도.


 이야기의 도입부터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고 마지막 장까지도 종잡을 수 없었다. 전작 비하인드 도어브레이크 다운을 모두 읽었지만 이 작품의 가독성 또한 대단하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
필립 스테드 지음, 에린 스테드 그림, 김경주 옮김, 마크 트웨인 원작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 시절 재미있게 읽었던 왕자와 거지를 비롯한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작가 마크 트웨인은 미국 문학의 아버지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마크 트웨인 최고의 걸작이자 미국 현대문학의 효시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미완성인 채 발견된 것을 칼데콧상을 받은 작가 필립 스테드와 삽화가 에린 스테드에 의해서 완성된 작품이다. 무려 100년 만에 발견되었다는데. 1879년 어느 저녁, 파리의 한 호텔에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졸라대는 딸들에게 잡지에서 아무 사진이나 골라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를 시작하였고 유일하게 조니의 이야기만 기록되었고 이 작품의 토대가 되었다. 과연 그림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칼데콧상을 수상한 작가답게 따뜻함과 재치가 묻어나는 그림이다.

 

 

 

  간단한 줄거리는 주인공 조니가 하나밖에 없는 친구인 닭, ‘전염병과 기근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오라는 할아버지의 심부름을 하면서 모험이 시작되는 이야기다. 생전 처음 길을 나선 조니에게 바깥세상은 낯설기만 하다. 가두행렬을 만나기도 하고 정신없이 걷고 또 걸어 시장에 도착한다. 두리번거리며 걷다가 부딪혀 상인한테 혼나고 정신이 없다.

이때, “한 푼만 주세요.”라고 구걸하는 노파를 만나는데, ‘전염병과 기근이 잘 살기를 바라면서 할머니에게 내어준다. 할머니는 고마운 마음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담청색 씨앗을 조니에게 건네는데...

 

이 씨앗은 엄청 힘든 상황이 왔을 때에만 심어야 돼요. 심고 나서는 확신을 갖고 결과를 기다려요. 봄에 씨앗을 심고, 동이 틀 때와 밤 12시 정각에 물을 줘요. 항상 씨앗을 돌봐 주고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요. 불평하고 싶어도 참아야 합니다. 꽃이 피면 그 꽃을 먹어요. 그 꽃이 당신을 배부르게 해 줄 거고, 당신은 두 번 다시 허기를 느끼지 않을 거예요.”(P59) 

 

  지금 당장 힘들고 굶주린 조니에게 이 씨앗이 어떤 힘이 되어 줄까.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에서 읽은 것처럼 위기를 만난 조니에게 마법이 펼쳐질까. 할머니의 이야기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지혜를 알려주는 것 같기도 하다. 힘든 상황이 왔을 때 믿음을 가지고 씨를 뿌리고 정성을 들여 가꾸고, 그 과정에서의 마음은 순수함과 절실함을 갖고 결국은 견뎌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야기를 이어가는 도중 화자인 작가와 마크 트웨인이 대화를 나누며 이야기의 방향을 결정하는 부분은 위트가 느껴진다. 마크 트웨인의 생각을 읽어내고 공감을 나누며 이야기를 완성하려는 의지가 엿보여서 신선한 느낌이다.

 

조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먹을 것은 사오지 않고 담청색 씨앗을 내미는 조니는 호되게 혼이 난다. 씨앗을 씹으면서 욕지기를 내뱉는 할아버지를 마크 트웨인은 자리에 누운 채로 그대로 죽고 말았다고 처리한다. 개연성은 별로 없지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에 유머가 느껴진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상심한 조니는 주머니에서 담청색 씨앗 하나를 발견하고는 할머니의 말씀처럼 정성껏 키우고 가꾼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 꽃을 뿌리까지 뽑아서 먹어버렸지만 허기를 채울 수 없었고 비참한 마음에 죽어버리자고 황야로 걸어간다.

 

  꽃을 먹으면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된다고 했는데 어떻게 된 걸까.

하늘을 향하여 땅에 누워 전염병과 기근이 잘 살고 있을까 생각하고 있던 조니는

무슨 문제 있니?” 하며 말을 거는 스컹크를 보고 깜짝 놀라 눈을 뜬다.

드디어 동물의 말을 알아듣는 마법이 일어난 것이다!

여기 와서 기뻐.” 짧지만 진심이 담긴 조니의 말에 동물들은 환호성으로 화답한다.

 

 

맨 처음 친구가 된 스컹크 수지는 많은 동물 친구들을 소개시켜주며 함께 파티를 열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인간에게 말을 해 봐도 이해할 수 없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야. 인간들이 하는 말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따분하기만 해.”(P84)

 

…… 오직 인간만 우리 말을 못 알아들어.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굉장히 무지하고 성장도 더디고, 외롭고도 슬픈 존재야. 인간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생명체가 극히 드물거든.”(P85)

 

  동물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동물이나 자연이 인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었다.

조니와 동물 친구들은 참나무 줄기에 박힌 오레오마가린 왕자를 찾는 포고문을 발견하게 된다. 과연 왕자를 찾을 수 있을까.

 이야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사이사이 이어지는 두 작가의 대화는 우리가 자주 잊고 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진심어린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 지 일깨워 준다.

 

세상 사람들은 동물들이 하는 말을 귀담아듣지 않아, 더 심각한 문제는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는 거고.”(P120)-마크 트웨인의 말.

 

조니는 깊게 숨을 내쉬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마침내 할 말을 떠올렸다. 끊임없이 어리석은 폭력에 휘말리는 인간들을 구원해 낼 절호의 말을. 인간들이 어쩌다 한 번만이라도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니는 말했다.’

여러분을 알게 돼서 정말 기뻐요.”(P152)

 

 

 

  점점 각박해져가는 시대에 진심을 담은 따뜻한 대화가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겨진다. 파스텔톤의 화사한 그림이 가득 실려 있어 금세 읽을 수 있지만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못 박힌 포고문에 아파하는 나무와 분노에 찬 목소리를 내는 공상에 빠진 소가 있고 거짓말의 역사와 탐욕스런 전쟁을 꼬집는 작가의 말도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조니의 모험을 통해 폭정에 맞선 선량한 인간들의 명예와 용기를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문명의 이기에 젖은 채 살아가는 우리에게 뜨끔한 일침을 준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