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人の知らない日本語 1 (單行本,ソフトカバ-) 日本人の知らない日本語 1
蛇藏&海野?子 / メディアファクトリ-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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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제목의 일드를 재미있게 본 적이 있다. 이 만화가 원작인 모양이다. 외국인 대상으로 하는 일본어 학원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일본어교실에 새로 부임한 나기코 선생을 바라보는 호기심에 찬 눈초리의 학생들, 여기저기서 마구 쏟아지는 질문에 황당해하는 선생의 표정이 떠올랐다. 기회가 있다면 한 번 더 보고 싶다. 그땐 내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일본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보았던 터라 들리지 않았던 말이 참 많았는데....

 

 학원에서 공부하는 외국인은 중국인, 미국인, 러시아인, 이탈리아인 등 국적도 다양하다. 다양한 국적인 만큼 이야기 속에서 그 나라의 사회, 문화도 알 수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이들은 모두 저마다 꿈을 위해서 타국에 와서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 언어를 배우는 목적은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아르바이트를 수월하게 할 수 있기 위해서 등 중국인 킨레이는 모델이 되기 위해서 배운다고.(아직 1권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공부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언어의 세계는 정말 무궁무진한 것 같다.

문학, 의학, 과학, 미술 등 많은 분야에서 쓰이는 용어가 다르기 때문에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여기서는 아무래도 외국인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상황에 있으므로 식당에서 사용하는 그릇이나 도구 등의 이름을 몰라서 선생님에게 질문이 빗발친다. 선생이라면 뭐든지 알거라는 기대 속에 말이다.

그런 학생에게 대항하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는 나기코 선생.

 

언어란 시대에 따라 변화되어 간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부분이 나온다.

많은 한자를 기초로 마음대로 히라가나를 만들어내기도 했던 모양이다.

 

<日本人?ないひらがなたち>(일본인도 읽지 못하는 히라가나들)

 

 

 

오른쪽 페이지의 윗 부분에 눈에 익은 화투 한장이 나온다.

그 가운데 써 있는 あのよろし(아노요로시)」

()’가 아닌 ()’ 음으로 읽어야 한다고 설명해주는 장면이다.

 

<해석>-오른쪽 페이지의 맨 아래 부분임.

이것은 ()’가 아니라 지금은 없어진 오래된 히라가나

()’라고 읽습니다.

だから

これは

あかよろし(그러니까, 이것은 아카요로시)

あきらかによろしいという意味です(‘분명히 좋다는 의미입니다.) 

 

 한자를 사용하는 나라는 중국, 일본, 베트남을 비롯하여 우리의 경우도 한자 문화권이다.

예전에는 한글과 한자를 병용했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한글 일색이어서

의식적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한자 실력이 자꾸 떨어지기 마련이다.

일본어에도 한자를 읽는 방법이 여러 가지여서 헷갈릴 때가 많다.

외국인이 일본어를 배우면서 한자와 마주하게 되면서 어려움은 누구나 비슷한 모양이다.

음독과 훈독이 있어서 단어에 따라 읽는 방법이 달라진다.

아주 옛날에는 일본에 문자가 없었는데 기록을 어떻게 했느냐면 통째로 외웠단다!

하지만 인간의 암기력은 한계가 있는 법. 그래서 언어의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고 언어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 되었겠지.

 

<標準語 なんて標準じゃない(표준어라니 표준은 아니다)>

일본어에 표준어라는 것은 없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문장 끝에 ですます를 붙이는데,

이 말투는 에도시대 게이샤들의 말투가 널리 퍼지고 그 말이 표준인 것처럼 되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부분도 나온다. 언어를 예쁘게 포장한다고나 할까.

 

방귀[?]’라고 하는데 좀 품위가 없다는 생각에 ならす[らす](소리를 내다, 울리다)’ 단어에 를 붙여 おなら(오나라)’라는 예쁜(?) 말로 만들어낸다

이런 사소한 것을 보아도 꾸미기 좋아하는 일본인의 심리가 보인다.

영어든 어떤 언어든 아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의외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우리가 매일 사용하거나 눈에 띄는 물건인 경우가 많아서 방대한 양의 단어를 언제 다 알 수 있을까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도 계속 하다보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거리는 좁혀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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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1-29 1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나라가 방귀군요! 배우 오나라님 생각나요. 헉^^;그래도 역시 예쁜이름.

모나리자 2021-01-29 13: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그때 읽고 처음 알았어요.ㅎ
그 배우도 예쁘군요. 맛점 하셨죠~미미님~^^

제가 북플의 매력에 푹 빠져서.ㅎ 특히 독서 통계, 다양하게 알려주는.. 그래서 기존 글 옮기느라 바쁘네요. 이제 남은 것 올리면 오늘 다 마무리돼요.ㅎㅎ 좋아요, 눌러 주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셔요.^^
감사해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청아 2021-01-29 13:38   좋아요 1 | URL
완전공감이예요! PC ‘알라딘 서재‘로 보시면 또 다른 매력이 있답니다.(벌써 알고계실지도)알찬하루 되세요!🤭👍

모나리자 2021-01-29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정말 감탄했어요.ㅎ 댓글 달렸다고 메일이 왔더라구요.
네이버도 알림으로 오는 것과 또 다른 차이가 느껴져서 함박 웃음을 지었네요.
감사해요~미미님~^^!
 

유대교는 모든 면에서 경제 사회의 조화를 우선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습니다. 법치국가가 없었던 시대에 유대교는 율법과 율령으로 시장에서의 신용과 여신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신이라는 절대 이념을 신용의 원천으로 삼았기에 고대에도 고도로 발전된 결제시스템이 가능할 수 있었지요.

정신적인 종교가 물질적인 경제를 만들어냈다니,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운 개념입니다. 그러나 종교라는 신성한 것을 정치와 경제등의 세속적인 것에서 분리한다는 생각은 근대 이후에 생긴 사고방식입니다. 전근대시대에 성聖과 속俗은 분리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근대 이후를 사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서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융화되었습니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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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たちは彼女のために喜んで、その日のうちに先生に会わ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彼女に私は餞別まで贈って送り出したのである。それから何日か経った日、銀行からお金を下ろす必要があって私は預金通帳をとり出した。残金を確かめようと開いてみてびっくり仰天した。現在高ゼロなのだ!
確か三十万くらいはあった預金。我が家の全財産。それがスッカラカンになっているのだ。


모르는 10대 소녀를 재워주고 며칠 후 담임 선생님을 만나러 간다기에 전별금까지 챙겨주었는데...
며칠 후 은행에 가서 현금을 인출하려다가 깜짝 놀랐다.
통장의 돈이 텅 빈 것이다. 전재산 30만엔이 있었는데.
작가는 자신의 조심성 없이 사람을 너무 믿은 것을 후회한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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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평전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32
도가와 신스케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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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쓴 작품에는 자신의 삶이 투영되기 마련이다. 소세키의 작품 중에서 한눈팔기가 가장 자전적인 소설이다. 이 평전에서는 풍부한 사진 자료가 들어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작품을 읽어나갈 때는 상상하면서 읽는 것에 비하면 평전은 궁금했던 부분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인 것 같다. 본가를 떠나 양자로 살아야 했던 불안정한 성장 과정부터 만년의 소세키와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다루고 있다.

 

 소세키의 본명은 긴노스케다. 본가에서는 불우했지만 교우관계에서는 좋은 친구를 많이 만났다. 활발한 성격이었지만 도쿄대 예비과정(나중에 제일고등중학교) 시절부터 병치레가 잦아서 학업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입학 후 2년 후에는 복막염으로 학년말 시험을 치르지 못해서 낙제를 하게 된다. 추가 시험을 봤다면 진학할 수도 있었는데 친구의 충고를 듣지 않고 스스로 낙제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여 수학도 매우 탁월하게성과를 낸다. 그의 강직한 성품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소세키는 자신의 진로를 건축가 그것도 미술적인건축가가 되기를 원했는데 낙제 후에 동급생이 된 요네야마 야스사부로 라는 엄청난 수재가 문학을 전공하도록 권유해서 그 의견에 따랐다고 한다. 그 친구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전해지는 작품을 만날 수도 없었겠지.

 

 그런데 그 요네야마는 긴노스케의 표현에 의하면 타고난 성품이 활달했으며 독서와 참선에 대해 논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좋아하는 것이 업었던인물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장티푸스로 요절한다.

 

 그 무렵 본가와 양가 사이에서 힘들었던 긴노스케는 자립을 하고 싶었던 듯하다. 하숙을 하거나 사설학원 강사 생활을 하면서 학원 기숙사에서 지내기도 했는데 그런 상황에 마사오카 시키가 등장한다. 소세키(漱石)라는 아호는 시키에게 받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때부터 소세키라는 이름을 쓰게 된다. 둘은 라쿠고(落語) 공연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서로 잘 맞다는 걸 인정하고 친구가 된다. 모두 자존심이 강해서 문장이나 모리 오가이의 단편소설, 메이지 호걸 이야기기개론에 관해 의견 차이를 보이며 대립하기도 했지만 우정에 금이 가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이렇게 대립과 혼란을 거듭한 교류를 하면서도 소세키와 시키는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와 국문학과로 각각 진학한다.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공부했다 한다. 졸업 후에 영어교사가 된다. 월급은 3750전인데 학자금 대출금 750전을 갚고 10엔은 아버지에게 보내고 남은 돈 20엔으로 매달 생활해야 했다.

 

 18942월 초기 결핵 진단을 받는다. 스가 도라오의 권유로 가마쿠라의 에카쿠사 안에 기겐원(歸源院)에서 참선을 한다. 이때 참선한 내용은 에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 그 후 마스야마 출신 마사오카 시키의 재회하게 된다, 하숙집에서는 시키가 객혈을 해서 함께 지내지 말라고 했지만 소세키는 시키의 집에서 지낸다. 하이쿠 가인들이 들락거리는 아지트가 된다. 시키는 다시 객혈을 시작하고 매일 늦은 밤까지 하이쿠 모임을 하다가 시키는 도쿄로 올라간다. 시키가 떠나고 나자 소세키는 에히메현에 다소 정이 떨어지고 고독해진다. 이 무렵 결혼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다가 구마모토에 있는 제5고등학교로 전근을 간다. 결혼식은 결혼식 의례대로 세 개의 잔에 세 번씩 모두 아홉 잔의 술을 마시고 부부 서약을 할 때 삼삼구배를 하는데 마침 잔이 하나 모자랐다고 한다. 나중에 교코가 소세키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자 어쩐지 부부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며 웃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열 살이나 아래인 교코에게 자신은 학자라서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당신한테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했다는 말도 있었다. 신혼여행은 하카타, 다자이후를 일주일 정도 돌고 오아마 온천을 돌아본다. 오아마 온천은 풀베개의 배경이 된 장소이다. 참 어렵게 읽었지만 소세키의 예술관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영어 연구를 위해 유학을 하라는 문부성의 명을 받고 유학길에 오른다. 소세키는 일본인이면서 영문학을 전공한 것에 무거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백 년도 더 전에 프로이센호를 타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가야 했을까. 영어 회화에도 능숙했지만 런던식 억양은 알아듣기 어려웠다고 한다. 지리를 익히기 위해 시내 돌아다닌다. 파리에서는 문부성 서기관이 있어서 모든 곳을 안내해 주었지만 런던에서는 스무 번이나 길을 묻고 또 물어서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는 내용이 교코에게 보낸 첫 편지에 들어있다고 했다. 동양의 이방인이 길을 헤매고 묻고 또 묻는 장면이 생각나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낯선 곳에 가면 누구나 부자연스럽다.

 

 유학생활을 할 때 소세키는 하숙을 자주 옮겼다. 두 번째 하숙집은 아버지와 딸의 관계가 온화함이 없었고 딸이 아버지를 대할 때도 표정이 험악해 보였다. 과거의 냄새에는 양자로 갔던 집에서도 본가에서도 소속되지 못하고 하나의 작은 장애물로 취급되었던 겐조의 불쾌했던 기억(한눈팔기)이 하숙집의 하녀 아그네스와 겹쳤기 때문인지 40일 만에 이사를 간다.

 

 다섯 번째 하숙집을 구할 때는 문학적 취미를 갖고 있는 영국인 가정에 국한됨이라는 내용을 신문광고에 냈다고 한다. 그렇게 들어가게 된 미스 릴의 집에는 할머니가 밀튼이나 셰익스피어를 읽고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했기 때문에 조금 위축되며 대단하게 여겨진다고 시키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그 시절 가족과 연락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은 편지였을 것이다. 문부성의 명으로 원치 않는 유학을 갔기 때문에 불만도 있었고 꽤 외로웠던 것 같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그렇게 뚝뚝해 보이는 사람이 교코에게 쓸쓸함을 호소하며 나처럼 인정에 얽매이지 않는 인간도 의지하고 싶은 마음에 당신이 그립게 느껴지오.”라고 난생 처음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을까.(19012월 편지) 그런 소세키의 마음에도 불구하고 교코는 자주 편지를 하지 않았다. 그 무렵 교코에게 보낸 편지에는 당신의 편지는 달랑 두 통 왔을 뿐이오.”라는 말로 시작된다고 한다.

 

 젊은 시절 자주 읽었던 작가 칼라일의 집을 찾아가는 이야기,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에 나왔던 조금은 익숙한 지명 켄싱턴 등 여러 곳이 나왔다. 이 무렵 신경쇠약이 심각해지고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서 좋지 않은 소문이 전달되기도 한다. 영국 유학시절 흔적이 있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가 생각났다. 나쓰메 소세키 편은 언제 나올까, 학수고대하고 있다.

 

 영국에서 귀국한 소세키는 제일고등학교에 복귀하고 메이지 대학 강의도 하게 된다. 사일러스 마너(Silas Marner)강독과 영문학 개설강의가 진행되었는데 나중에 쇼와 여자대학 학장이 되는 가네코 겐지가 두 강의를 듣고 일기에 쓴 내용이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외국인으로 일본인으로 귀화한 고이즈미 씨와 소세키를 비교하면서 아무리 소세키가 천재라 해도 고이즈미에게 못 미친다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나중에 멕베스를 다루기 시작하면서 대강당은 청강생으로 가득찼고 가네코도 이 강의를 유익하다고 생각하면서 불만이 수그러지게 된다.

 

 그러다가 제자 후지무라 미사오가 암두지감(巖頭之感)’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게곤폭포에서 자살하게 된다. 처음엔 수업준비를 해오지 않은 그를 혼낸 것을 마음에 걸려 했지만 삶에 대한 번뇌 때문에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소 안도를 했겠지만 마음은 무거웠을 것 같다. 거기다 자신의 건강도 악화된다. 하녀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쫓아버리고 불같이 화를 내며 교코에게 집중 공격을 하며 친정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반복하는 바람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바람에 별거를 하게 된다. 소세키의 병에 대한 것을 소상히 알게 된 교코는 아무리 학대를 당하더라도 결코 헤어지지 않겠다는 각오로 집으로 돌아온다. 한동안 진정되었다가도 다시 고함을 지르고 물건을 내던지고 교코를 들볶았다니 대작가 소세키가 얼마나 심각한 정신 상태였는지 상상할 수도 없다. 이 무렵부터 수채화를 그리며 위로를 받기 시작한다. 그림엽서에 그림을 그려서 지인들에게 보내기도 한다.

 

 그 무렵 1904210, 러일전쟁이 발발했는데 원래부터 소세키는 무력에 의한 전쟁 자체를 싫어했다고 한다. 이것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구샤미 선생이 러일전쟁 출정 병사의 의연금을 내라는 편지를 받고 그냥 훑어보기만 했다는데 소세키 본인의 태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한번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지만 이런 배경을 모르고 읽었기에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재독을 하게 되면 더욱 깊이 있는 독서가 될 것 같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풀베개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고 있을 무렵 도쿄아사히 신문사에 입사하게 된다. 집필 의욕도 왕성해졌고 문학 지망생 제자들과의 교류도 빈번해졌는데 그때 목요회를 시작한다. 나중에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나 구메 마사오 등도 참여했고 그들에게 특히 다정했다 한다. 오셀로, 맥베스, 리어왕등의 강의는 첫해의 딱딱한 강의 스타일을 탈피했고 종횡무진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치면서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단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나온 배경은 센다기에 살 때 검은 고양이가 집에 들어왔는데 몇 번이고 내보내도 다시 들어와서 그냥 살게 해달라는 교코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 집에 자주 오던 안마사 할머니가 복을 부르는 보기 드문 고양이니까 키우면 이 댁이 번창할 거라는 말도 솔깃 했을 것이다. 그 예언처럼 문운과 금전운이 상승했다고 한다. 등장인물들은 구샤미(재채기) 도후(고치) 메이테이(몹시 취했음을 가리키는 일본어) 간게스, 도쿠센 등이 나온다. 이들은 타인이 놀림을 받으면 열렬히 환호하고 자신이 그런 경우를 당하면 화를 내는데 고양이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란 정말 어리석은 존재라는 것이다.

 

 소세키의 작품에는 죽음에 대한 발언이 자주 나온다. 삶과 죽음에 대한 관심은 소세키의 내면에 있었지만 작품에서는 구샤미의 발언이 최초였다. 그리고 다른 작품에서도 여러 죽음으로 묘사하고 있다. 고양이로소이다는 골계적이고 소탈하고 서민적인 맛이 난다는 등 표면적으로는 익살맞지만 그 이면에는 스스로를 잃어버린 일본인들의 모습을 날카롭게 그려낸 소세키 최초의 걸작이라는 평에 방점을 찍게 된다.

 

 첫 작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작가의 입지를 굳히고는 교직을 모두 그만두고 아사히신문사에 소설기자로 취업을 한다. 평전을 쓴 저자는 직업작가가 된다는 것에 의무와 고통을 동반한다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이 나와서 웃겼다. 작품을 쓰는 작가가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창작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거겠지.

 

 시마자키 도손이라는 작가가 자주 언급되고 있었는데 소세키와 같은 시대에 있었던 작가인가보다. 최근 읽은 작품 갱부가 나온 내력이 흥미로웠다. 현재 신주코에 있는 소세키 산방기념관인 마지막으로 살게 된 그 집에 이사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아라이 도모오라는 사람이 자신의 갱부 체험을 소설로 써달라고 부탁해서 소설로 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동안 서생처럼 소세키의 집에 함께 기거했는데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다가 나타나곤 하는 이상한 남자였다고 한다. 화자인 가 이야기한 것은 그가 구술한 대로이고 사건이나 사태에 대한 감상은 소세키가 덧붙인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 소설은 소세키가 인간 심리에 깊이 파고들어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는 인간을 그리게 되는 첫걸음이 되었다고.

 

 1909년 소세키는 남만주철도회사 총재가 된 오랜 벗 나카무라 제코가 귀국하고 함께 여행하기로 한다. 43일의 만주와 한국을 여행하고 만한 이곳저곳이라는 책이 출간된다. 압록강을 건너 평양, 경성, 인천을 거쳐 귀국길에 올랐다.


 여기서는 그 후, 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문은 요요네의 봄이 와서 고맙고 기쁘다는 말에 소스케는 하지만 다시 또 겨울이 올 거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좋은 일 궂은 일이 계속 되풀이되는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소세키가 참선을 했다는 절 가마쿠라의 엔카쿠사 사진이 나왔다. 가마쿠라는 절이 많기로도 유명한데 둘러본 곳이 몇 개 되지 않는다. 수많은 인파로 들썩이는 곳, 그것을 바라보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다. 다시 가보고 다시 읽어보고 싶다.

 

 위장병이 악화된 소세키는 온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슈젠지 온천으로 떠난다. 죽음의 시간을 겨우 넘기고 퇴원하여 도쿄로 왔는데 나가요 병원의 원장이 벌써 지난달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고 놀란다. 자신은 살아있는데 자신을 치료하라고 명하던 이는 세상에 없는 사람임을 알고 얼마나 놀랐을까. 이런 하이쿠가 짠하게 다가왔다.

 

'떠나는 사람 머무는 사람 결국에는 찾아올 잠깐뿐인 삶 


 문부성이 소세키에게 수여하려 했던 박사학위를 거부했던 일은 유명한 일화다. 평소에도 박사학위만을 위해 공부하는 학자들을 경멸했다 한다.

우리들이 세인들 이상으로 뛰어나려고 노력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사회에 대한 영예로운 공헌에 의해서만 뛰어나야 한다고 적어 보냈다. 출세를 위한 일이 아닌 인간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야기는 미완의 작품 명암이야기로 마무리된다. 그해에 소세키는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천분만큼을 다하고자 생각한.” 이라는 신년 벽두의 소감을 말한다.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었을까.

 

여기저기에 묻어둔 감자를 하나씩 하나씩 파내면서 나아갈 것이라고 했던. 그의 계획과 달리 마무리하지 못하고 영원히 파묻히고 말았다. 그것을 상상하는 우리의 몫으로 남겨놓고. 1916년 영면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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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28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대 문명에 빛과 그림자를 탁월한 시각과 문체로 남긴 소세키에 관한 좋은 평전이네요
이와나미 문고에 교양시리즈물이 번역되었네요.
소세키에 그후와 문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하니 꼭 읽어봐야겠네요.
모나리자님 페이퍼 잘읽었습니다.^.^

모나리자 2021-01-28 2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일본에도 소세키의 팬이 많은 것 같아요.
작품세계의 배경과 작품에 나타난 그의 흔적을 더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나쓰메 소세키를 좋아하시나요? ㅎ 왠지 반갑네요.^^
편안한 밤 되세요. scott님.^^

scott 2021-01-29 1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님 저는 매년 겨울에는 행인과 문을 읽고 여름이 시작되면 그후를 읽어요 봄에는 산시로 그리고 가을에는 몽십야 ^.~

모나리자 2021-01-29 1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대단하세요! 문은 겨울에 읽기 딱이죠.ㅎ 그 분위기가.. 행인은 제가 블로그 활동 안할 때 오래전에 읽어서 리뷰도 없는데 다시 읽어보고 싶어요. 전 산시로의 연못을 몇해전에 갔다왔는데.. 문득 그립네요.^^
몽십야는 아직 못 읽고 작품 속에서 인용으로만 만났어요. 와. 소세키 팬을 만나서 정말 반가워요.ㅎ 감사합니다.^^
 
로르샤흐 - 잉크 얼룩으로 사람의 마음을 읽다
데이미언 설스 지음, 김정아 옮김 / 갈마바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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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렬한 인상의 어디선가 본 듯한 배우를 닮은 헤르만 로르샤흐가 나온 책 표지가 시선을 사로잡아서 기대감에 읽고 싶었다. 어릴 적 물감을 종이에 짜서 반을 접었다 폈을 때 완전한 대칭을 이루는 그림을 보며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바로 그 데칼코마니 기법의 잉크 얼룩으로 심리검사를 고안해낸 정신과 의사이자 예술에도 조예가 깊었던 로르샤흐의 평전을 만났다. 그 잉크 얼룩 카드 10장은 지금도 남아서 검사에 활용되고 있는데 로르샤흐에 대해 다룬 전기는 한 권도 없었다고 한다. 1954년 앙리 엘렌버거가 간략한 정보만으로 펴낸 40쪽 짜리 전기 형식 논문이 전부였으며 그후 로르샤흐를 다룬 모든 이야기는 엘렌버거의 글을 근거로 삼았다고 한다. 이렇다보니 로르샤흐에 대한 평가가 왜곡된 경우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가 태어난 스위스에서부터 시작하여 세계 곳곳을 둘러보며 그와 관계한 사람들을 만나고 편지 자료 등 수많은 자료를 통해서 그를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로르샤흐는 다시 태어난 듯 생생한 드라마틱한 그의 생애를 알 수 있었다.

 

 1884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난 헤르만 로르샤흐는 화가인 아버지 울리히와 따뜻하고 활기찬 성품을 지닌 어머니 필리피네의 사랑 속에서 자랐다. 12세에 어머니가 당뇨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는 이모 레기나와 재혼을 하지만 오래 살지 못하고 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난다. 그때부터 헤르만과 아나 파울 세 남매는 새엄마 레기나와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이때 고등학생인 헤르만은 레기나와 대화를 통해서 남을 사랑할 만한 사람이 못 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동생들에게 새어머니에게 날을 세우지 말라고 타이른다. 일찍부터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섬세함이 있었던 듯하다. 여동생 아나에게 있어 아버지와 어머니의 존재였던 헤르만은 일찍 철이 들었고 아픈 아버지를 보면서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떠올리며 정신병원에서 일하는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인간의 영혼은 세상에서 더없이 흥미로운 존재라고 생각했고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아픈 영혼을 치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톨스토이주의자의 강렬한 마음과 트레구보 같은 러시아인에게 느낀 호감 때문이었다.

 

 저는 러시아 사람들을, () 상반된 요소가 뒤섞인 러시아 사람들의 정신과 진심 어린 감정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 그토록 쾌활하면서도 슬플 때 울부짖을 줄 알다니, 질투가 나도록 러시아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 그리스와 로마 사람처럼 세상을 보고 빚어낼 줄 아는 능력, 독일 사람처럼 세상을 느낄 줄 아는 능력, 이런 능력들이 한 번이라도 하나로 합쳐질 수 있을까요?(P75) 

 

 이것은 대문호 톨스토이에게 쓴 편지라고 한다. 이렇게 풍부하고 현실감 있는 자료는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배가시켜준다. 얼마나 러시아를 사랑했으면. 아내도 여섯 살이나 연상인 러시아인인 올가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런데 감성적인 그에 비하면 올가는 화가가 나면 무엇이든 내던지며 격렬한 반응을 보여서 로르샤흐도 올가를 무서워했다고 한다. 사랑하면서도 무서워했다니.

 

 사람들에 대한 낯가림이 있었지만 여러 언어를 배우고 특히 러시아어는 유창할 정도로 학업성적은 거의 상위권을 차지했다. 자연을 사랑했으며 인간의 마음을 읽고 싶었다는 로르샤흐에 대한 생애를 읽으면서 경외감이 일었다. 지금도 잊을 만하면 뉴스 기사에서 접하게 되는 조현병 환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그들과 생활하면서 검사를 통해서 대화를 하는 사례가 많이 나와서 직업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이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읽는 내내 흥미로웠던 것은 20세기의 위대한 위인들이 총집합한 것처럼 20세기의 역사적 상황을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심리학의 거장 카를 융, 프로이트를 비롯하여 톨스토이, 헤켈, 레닌, 아인슈타인, 슈바이처 등과 사람이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사상 처음이자 유일무이한 로르샤흐 평전이라는 이 책을 만난 덕분인 것 같다.

 

 당시 의료계는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경계가 생긴다. 심리학의 목표를 과학의 눈으로 정의해야 할지, 개인과 그 개인의 고통을 인문학의 눈으로 더 깊이 이해해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로르샤흐가 학생이었을 때는 이러한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다. 프로이트는 이미 무의식과 성 충동이 서로 이어져 있다는 이론을 수립한 상태였다. 심리학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1899년에 출간된 꿈의 해석이 출판 후 6년 동안 고작 351권이 팔렸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나온다. 또 카를 융이 블로일러의 조수로 들어가 일을 했는데 계급간의 갈등으로 인한 반목으로 융이 스승인 블로일러를 지워버렸기 때문에 오늘날 블로일러를 모르게 되었다는 일화가 흥미로웠다. 더 성공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융과 프로이트, 블로일러를 심리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블로일러가 배제된 것처럼 로르샤흐도 그랬다. 로르샤흐와 블로일러의 공통점을 언급한 것이 흥미로웠다. 둘 다 사회적인 배경이 대단하지 않았고, 심각한 정신 질환으로 고통받는 이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였고, 다른 동료들에게 없는, 자기만의 길을 찾을 때도 남을 존중하고 남에게서 배울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따뜻한 인품과 일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잉크 얼룩 실험을 거듭하고 출판사를 설득하는 우여곡절을 통해서 1921심리 진단이 출판된다. 그가 고안해 낸 잉크 얼룩은 오늘날에도 똑같이 쓰인다고 한다. 수십 년 동안 논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오늘날 로르샤흐 검사는 미국 법원에서 증거로 인정되고 의료보험 회사에서 검사 비용을 환급할 수 있는 검사가 되었다. 광고계 스포츠계는 물론 영화 예술계로 확산되어 로르샤흐 검사라는 말로 은유되는 것이다. 이것은 로르샤흐 검사 자체가 잉크 얼룩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정해져 있지 않고 수검자가 있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말하는 그 특성을 패러디한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왼쪽은 카드 3번의 초안. 오른쪽은 카드 3번의 초안(위)과 최종본(아래)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던 로르샤흐가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맹장 파열에 따른 복막염으로 수술대에서 죽음을 맞은 일은 정말 비극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었다.

 

 로르샤흐 사후 잉크 얼룩 검사는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 데이비드 모더카이 레비에 의해 처음으로 널리 알려진다. 영국에서는 완전히 외면받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아직도 인기 있는 심리검사라고 했다. 로르샤흐 검사를 추종자 중 가장 영향력이 컸던 사람은 사무엘 j 벡과 브루노 클로퍼였다. 벡은 평생동안 잉크 얼룩 검사를 연구한다. 클로퍼는 가족과 독일을 떠나 카를 융의 보증을 받아 스위스에 입국허가를 받아 취리히 정신기법연구소에서 로르샤흐 검사 일을 수행하다가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 조수 자격으로 일을 시작한다. 바로 로르샤흐 검사에 관심있는 대학원생과 교직원에게 검사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이 두 추종자는 사이가 좋지 않아 대립을 하곤 했는데 어느 편에 서지 않고 비판을 하면서 지금의 로르샤흐 검사가 되기까지 발전시킨 초기의 개척자의 양심으로 불리는 사람은 마거리트 헤르츠다.

 

 헤르츠는 몇 년 동안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교의 브러시 재단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여러 인종과 다양한 집단을 대상으로 로르샤흐 검사 기록을 3천 건 이상 갖게 된다. 그것이 책으로 출판되었다면 미국의 로르샤흐 검사 역사를 바꾸었을 텐데 브러시 재단의 연구가 취소되는 바람에 폐기하게 되는데 실수로 소각되는 불상사가 일어나게 된다. 재앙이나 다름없는 이 사건으로 인해 아까운 로르샤흐의 귀중한 자료를 잃은 것이다.

 

 헤르만 로르샤흐가 세상을 떠난지 17년 뒤에는 잉크 얼룩 검사는 심리학과 문화 전반에서 최고의 투사법이자 현대의 성격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거듭나기에 이른다. 다행인 것은 심리학자 에르네스트 G. 샤흐텔(Ernest G. Schachtel(1903~1975)에 의해 로르샤흐의 철학을

가장 근접하게 계승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샤흐텔은 클로퍼가 쓴 저서 로르샤흐 기법전체 인간 경험과 유리되어 있다고 비판하면서 잉크 얼룩 실험의 진정한 목표는 인간 심리를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이고 로르샤흐는 이 목표를 한 번도 잊지 않았다고 설파했다. 오늘날에는 MMPI에 밀렸지만 그것이 등장하기 전까지 미국에서는 수십 년 동안 가장 많이 활용된 성격 검사였다고 한다.

 

 심리학계의 선구자들 가운데 로르샤흐만이 시각을 중요시 하였고 시각심리학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친가와 외가 양쪽에서 물려받은 미술적 재능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평생 지각이 마음과 몸, 세상이 교차하는 지점이라고 믿었다. 사람마다 보는 시간이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어했다. 이 책을 통해 심리학의 역사적 배경과 20세기의 역사적 상황까지 돌아볼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완벽하게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 평전을 통해 로르샤흐에 대해 알게 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헤르만 로르샤흐라는 인물을 통해 그가 읽어내고 싶었던 인간의 마음이란 얼마나 오묘하고 변화무쌍한 것인지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열정어린 삶이 좀 더 오래 지속되었다면 그 영향력이 좀 강하게 남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심리학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번역카페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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