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의 역사 - 인류 역사의 발자취를 찾다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성춘택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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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달 초,강인욱의 고고학 여행을 읽고 나서 어렴풋하게만 알던 고고학의 세계에 깊은 관심이 생겼다. 30년 동안 발굴의 현장을 누빈 고고학자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단순히 무덤 속에서 황금을 꺼내는 이야기가 아닌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이었다.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언젠가는 과거를 남기게 마련이다. 파괴해야만 고고학이 성립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쟁과 비슷하다는 점을 언급한 것도 흥미로운 아이러니였다. 그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만나게 된고고학의 역사가 시선을 끌지 않을 수 없었다.


고고학 분야 최고의 대가가 쓴 훌륭하고 매력 넘치는 읽을거리.’

산뜻하면서도 매력 있고 이해하기 쉬운 책

정통하고 활력이 넘친다.’ 등등...


 많은 학자들의 추천 평도 솔깃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만큼 재미있었다. 40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루하고 지루한 연대기적 구성이 아니라 중요한 사건과 흥미로운 발굴, 인물을 위주로 다루고 있다. ‘역사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딱딱함은 전혀 없다. 학창시절 무조건 외워야 했던 역사적 사건이 환해질 만큼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스토리텔링 이다. 고고학은 물론 생태학, 지질학, 문화인류학 등을 함께 만날 수 있는 통섭의 식탁이라고 할까. 변화무쌍한 시대의 변화처럼 고고학도 진화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땅을 파지 않고도 땅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다니. 리모트센싱 기술로 파라오와 관련된 의학 지식을 해명하고 인골의 치아 에나멜 표본을 분석하여 사람들이 어디에서 태어나 성장했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첨단 기술의 도움으로 과거 사람들을 살아있는 사람으로 생생하게 되돌려 놓는다.


고고학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고고학 이야기는 지주와 여행가의 호기심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고고학이 탄생하게 된 건 지금으로부터 250년 전인데 초기에는 오래된 유물에 관심을 갖고 수집하는 호고가(好古家)에서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저자 브라이언 페이건은 10대 시절, 비오는 날 부모님과 함께 잉글랜드 남부의 스톤헨지(Stonehenge)를 보고 나서 고고학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10대 어린 남자 아이가 큰 돌 사이를 걸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글을 읽어 나가다 보면 저자가 자신의 일에 얼마나 열정적인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고고학이 중요한 이유, 고고학과 인류의 삶은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설파한다. 고고학이 출발할 때만해도 지구상에서 인류의 역사가 6,000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믿었지만 발굴과 증명을 통해 300만 년 이전으로 돌려놓는다. 앞으로 또 어떤 발견이 기록을 경신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사람만큼 과거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는 존재가 또 있을까 싶다. 아마도 태고부터 유전자에 그런 것이 새겨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과거에 대한 호기심과 과거지향적인 관습적인 생각이 고고학을 발전시켰을 지도 모른다.


고고학이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고고학은 우리 인류를 찾게 해준다. 고고학은 아프리카에서 인류의 공통 조상을 밝히고, 인간의 서로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알려준다. 우리는 놀랍도록 다양한, 모든 곳의 사람들을 연구한다. 고고학은 인간이다.’(P21)


 저자는 이 책에서 고고학의 지향점은 사물이 아니라 인간을 향하고 있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한다. 그들이 남긴 유물과 유적도 가치가 있겠지만 궁극적인 것은 인간을 연구하고 그 들의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하며, 미래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성찰할 수 있다고 하겠다.


고고학은 어떻게 세계적인 학문으로 발전하게 되었을까


 군사전략의 천재였던 나폴레옹이 고고학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집트를 재조직하는 일에 골몰하면서도 여러 분야의 학자들을 구성했는데 그 중 지도자인 드농은 고대 이집트를 학문 세계에 올려놓는다. 하지만 정복 전쟁에 실패하고 이국적인 이집트 미술과 건축에 열광하던 유럽인들의 경쟁에 밀려 그들의 진지한 조사결과는 부각되지 못한다. 이때만 해도 고고학이라는 학문은 태동되지도 않았고 너도나도 보물 사냥에 나서던 때였다. 한편 존 가드너 윌킨슨은 유물에는 관심이 없었고 명문과 기념물, 고분을 필경했으며 진정으로 과거를 연구하는 사람이었는데 베껴 그린 상형문자가 나폴레옹의 학자들보다 더 훌륭했으며 현대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놀랄 만큼 정확하다고 한다. 샹폴리옹의 상형문자 해독과 윌킨슨이 가진 열정과 노력으로 학술적 연구가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은 고고학을 전 세계적 학문으로 발전하는데 크게 기여한 그레이엄 클라크를 배출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고고학을 단순히 오래전 인간 사회에 대한 연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토록 좁은 시각은 잘못된 것이다. 그저 고고학 발굴과 유물만으로 과거를 복원할 수는 없다. 고고학은 생물학이나 지질학 같은 다른 학문과 함께 발달했다. 인간의 기원 같은 어려운 주제를 마주할 때는 여러 학문의 연구자들이 머리를 맞댔다. 동물 화석과 지질학을 모른 채 인류의 기원을 이해할 방도는 없었다. 서기전 4004년 이전에도 사람이 살았음을 보여주려면 돌과 흙층에서 오래전 절멸 동물과 사람이 같이 살았다는 증거가 필요했던 것이다.(P72)


 1859, 과학계와 고고학에서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한다. 존 에번스와 조지프 프레스트위치가 솜 강변에서 주먹도끼와 매머드 뼈를 보고 돌아온 후,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으로 폭탄선언을 한다. 인류의 기원에 대한 논란으로 고고학자와 생물학자들은 새로운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다시 자연선택이라는 기제가 논의되고 12년 후 인간의 유래에서는 진화의 문제를 탐색한다. 종교계의 반발도 있었지만 사회과학자인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1820-1903)에 의해 사회진화론이 등장하게 된다. 이로써 인간 사회는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사회로, 점차 고도로 다양한 사회로 발달했다는 그의 말에 동의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고고학자가 되면 좋을까


고고학자가 되기를 동경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읽다가 이 문장을 발견했는데 인상적으로 느껴져서 소개해 본다.


 유물 분석 전문가가 되려면 특별한 인성도 필요하다. 유물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면 특히 더 그러하다. 끝없는 인내와 흔히 잘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세세한 특성을 물고 늘어지는 열정과 과거에 대한 사랑이 필요한 작업이다. 몬텔리우스는 그런 성품을 갖추고 있었다. 훌륭한 언어학자로서 느긋하면서도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여러 강의에 나서면서 고고학을 대중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노력하기도 했다.(P113)


 몬텔리우스는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국립역사박물관에서 일생을 보내면서 관장의 자리까지 올랐는데, 수집과 유물을 다루면서 생애를 보낸 최초의 박물관 고고학자 중 하나라고 한다. 그는 교차편년방법을 개발했으며 고고학의 성과를 대중과 공유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어떤 일이든지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임할 때, 그 분야에서 빛나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고고학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가.


 흔히 고고학을 떠올리게 되면 왕족들의 화려한 보물이나 장엄한 건축물을 먼저 떠올린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그늘에 가려진 이름 없는 백성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이집트 나일강 삼각주의 파이윰 분지의 카훈(kahun)에 있는 일꾼들의 마을 조사에서는 일반인들의 잔혹한 삶이 드러난다.


 보통 사람들은 들에서 일해야 했을 뿐 아니라 적은 배급만 받고 공공사업에 동원되었다. 인골에는 고된 노동의 흔적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힘들고 단조로운 삶이었다. 그러면서 나라와 지도자를 떠받쳤지만, 이 사람들의 의도와 취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거대한 기념물과 고분에 관심을 가졌던 그 당시 대부분 사람들과 달리 페트리는 고대 이집트 문명이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의 고된 노동에 의지했던 복합사회였음을 알고 있었다.(P169)


 파라오 세누스레트 2세의 엘라훈 피라미드를 건설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고된 삶을 말해주고 있다. 어찌 이들 뿐이겠는가. 우리 역사나 다른 나라에서도 이름 없는 소시민들의 가혹한 역사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어떻게 연대를 측정할까.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세월을 어떻게 측정하는 것인지 신기하기만 하다. 미국의 화학자였던 윌러드 리비Willard Libby (1908~1980)는 시카고 대학에 재직하며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을 고안하기 시작하는데, 고고학 유적을 역년에 따라 연대 측정을 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결국 노벨상을 받게 된다.


그것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우주 광선이 대기 중의 질소를 만나 14C라는 방사성탄소가 일정하게 생긴다고 가정한다. 일반적인 비방사성의 탄소와 함께 공기 중의 14C도 광합성을 통해 식물에 흡수되고 동물도 식물을 먹음으로써 방사성탄소가 몸에 들어간다. 동물과 식물이 죽으면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끊겨서 더 이상 방사성탄소가 들어오지 않는데, 이 순간부터는 방사성인 14C는 일정한 비율로 붕괴하여 그 함량이 줄어들게 된다. 즉 죽은 식물, 나뭇조각, 뼈에 남아있는 14C의 함량을 측정하면 얼마나 오래전에 죽었는지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어떤 표본에서 방사성탄소의 함량이 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5,730년이라고 결론짓기에 이른다. 가히 고고학 연구에 있어 혁명이라고 할만 했다. 고고학은 여러 학문이 연결되어 통합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엿보다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심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진시황 이야기다. 영생을 위해 불로초를 찾아 헤맸지만 중국을 통일하고 겨우 11년 만에 마흔 아홉 살에 죽음을 맞이한다. 1974년 무덤으로부터 2.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우물을 파던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는데. 장정 70만 명이 땅을 파서 무덤 공간을 만들었다니 그 규모는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시황제의 병마용은 국제적인 관심을 끌며 수십만 명이 찾아오는데 공기 오염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단다. 발굴 과정에서 테라코타 병마용이 훼손되는 문제도 있지만 수은 중독의 위험 때문에 시황릉의 봉분은 발굴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실정을 이야기한다. 당시 수은은 영생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는데... 지나친 욕심은 판단을 흐리게 하고 화를 부른다고 했던가. 저자는 리모트센싱, DNA, 동위원소 분석 등 세련된 과학적 방법으로 화려한 시황릉의 놀라운 발견을 기대하고 있다.


아이스맨 외치의 삶이 밝혀지다.


 ‘아이스맨 외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늘날 고고학이 어디까지 왔는지 알 수 있다. 19919월 독일의 등반가 헬무트 지몬 부부는 알프스 산 골짜기에서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지역 검시관은 등반사고의 희생자로 여겼지만 시신의 상태가 너무 오래되었다는 판단 아래 고고학자를 불렀는데... 전문가들이 시신을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한 결과 서기전 3150년 사이 유럽의 신석기시대 말~청동기시대 초의 연대로 밝혀진다. 사고 당시의 키와 나이 등 무슨 일을 하며 살다가 어떻게 죽었는지 모든 것을 밝혀낸다. 무려 5,000년 전에 죽은 사람을 말이다! 집안에서 마신 연기 때문에 검어진 폐, 끊임없는 노동으로 인해 갈라진 상처, 비어있는 위장으로 배고픔에 허약해진 상태를 읽어낸다. 하지만 DNA분석으로 네 명의 적과 싸우다가 화살을 맞고 피를 흘려 죽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마치 탐정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로웠다!


 이렇게 놀라울 만큼 완전하게 한 사람의 생애를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은 알프스 산에서 냉동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최신 의학 기술은 고고학 연구에서도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의료 영상 분석으로 미라를 벗기지 않고도 연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오래된 뼈에서 폭력의 흔적을 발견하고 한 사람이 살았던 일생을 밝혀낸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사람이 죽으면 살았을 때 다친 부분이 멍으로 남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뼈가 있는 말이었다.


고고학의 미래는 어떨까.


 고대의 유물과 유적을 발굴하고 수집하는 것으로 시작한 고고학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진화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추어적인 형태에서 세계적인 학문으로 자리매김한 고고학계에서 여성 고고학자들의 활약도 볼 수 있었다. 사막 여행가이자 정부의 관료였던 거트루드 벨과 발굴가로서 미국 고고학을 개척한 학자로 칭송을 받는 해리엇 보이드 호스의 발자취는 고고학자를 꿈꾸는 여성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저자가 자주 언급한 이야기가 있는데, ‘고고학은 늘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는 말이다. 또 발굴은 이제 더 이상 과거처럼 매력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전통적인 발굴 방법으로는 제대로 연구할 수 없을 만큼 규모가 크고 복잡한 앙코르와트를 LIDAR(Light Detection and Ranging) 기술을 이용하여 인구를 추산하고 밀림이 아니라 도시 한가운데 위치했던 흔적을 찾는 과정은 놀랍기만 하다. 최근에는 드론까지 동원되어 고고학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하니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고고학은 이제 전문가들만의 분야는 아닌 것 같다. 현재는 언젠가 과거가 된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도 언젠가 과거는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과거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과거를 통해 우리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현실이 조금 지루하고 허탈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속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탐정소설처럼 흥미롭고 생생한 이야기 속에서 눈을 뗄 수가 없을 것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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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 미지의 땅에서 들려오는 삶에 대한 울림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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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은 역사 도서전용 깜짝 상품권을 받게 된 것이 계기였다. 많은 책들 중에 지적이고 해맑은 표정의 저자와, ‘고고학 여행이라는 제목이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무척 흥미롭고 신선한 지적 체험을 경험한 기분이다

 

 

 고고학 하면 공룡화석이나 황금과 보물 찾는 이야기가 먼저 떠올랐을 만큼 어렴풋이 알고 있던 고고학, 고고학자들이 하는 일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초등학교 때부터 고고학자를 꿈꾸며 살아왔다는 저자는 여러 교수들의 추천 평에 어울리는 타고난 이야기꾼 같다. 시베리아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주로 중국, 몽골, 중앙아시아 등에서 활동했는데, 그만큼 다양하고 풍성한 사례의 발굴 이야기를 생생하고 현장감 있게 들려준다. 단순히 유물과 유적을 발굴하는 것만이 아니라 발굴된 대상은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받는 느낌이었다. 차가운 유물에 불과하지만 한때는 따뜻한 체온과 감성을 호흡했던 존재,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연대감을 느끼게 된다.

 

저는 바로 유물을 통해 죽어 있는 과거에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고학적인 연구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그 유물들이 원래의 기능을 잃고 땅속에 묻혀야 합니다. , 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죽고 난 다음에 고고학자들은 다시 그들을 꺼내어 부활시킵니다. 생동감 있는 삶의 모습을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하는 셈입니다.’(P8~9)

 

 죽어서 묻힌 사람을 부활시킨다?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자손의 기억에 남아 대대손손 회자되는 것처럼 고고학자들이 하는 일도 이와 비슷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고고학이란 무엇일까.

 

고고학은 쉽게 설명하면, 유물을 연구해서 과거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지식, 문화 등을 밝히는 것이다. 인간은 왜 그렇게 과거 사람들의 모습에 관심이 많았을까?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그렇지 않다. 그건 바로 과거를 생각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인류의 진화하는 숙명에 기인한다.’(P22)

 

 어쩌면 인간은 과거의 향수에 빠져 사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미래는 아직 닥치지 않아 알 수 없다. 현재를 살면서도 뜻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나,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살아갈 때도 흔히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지 않은가.

 

 이렇듯 고고학에 대한 관점도 과거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유물을 통해 지혜를 얻기도 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진화하고자하는 심리의 시스템에 연유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유인원의 직립보행이야말로 목숨을 건 진화였다고 한다. 두뇌와 지혜를 얻는 대신 너무나 많은 동물적인 장점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30여종의 인류 중 현생인류를 제외하고 모두 멸종했다니 새삼 인류의 진화가 위대하게 느껴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유물을 연구하고 분석하여 당시 어떤 음식을 먹고 살았는가 밝히는 것이었다. 토기의 바닥에 남은 곡물의 찌꺼기를 분석하여 5000년 전 중국에서 맥주를 마셨다는 것을 밝혀낸다. 곡물 중에는 보리가 섞여있음을 알아냈는데 보리는 중국에서 자생하는 곡물이 아니었고, 여기서 5000년 전에 유라시아를 중심으로 동서의 교류가 있었음을 증명해낸다. 영겁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 흔적을 읽어낸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이렇게 유물, 유적을 발굴하고 분석하며 과거 사람들이 살았던 시대적 상황이나 문화를 읽어내는 것이 고고학의 역할이다. 과거의 사람들을 통해서 인류의 나아갈 길이나 의미 있는 삶의 통찰이 가능하게 해주는 고고학, 멋진 학문인 것 같다. 황금이나 보물을 찾아내는 일을 기대하며 고고학을 시작하는 사람이 많지만 정작 하루 일과 후 맥주가 한 잔이 고고학자들을 묶어두는 힘이라니 직업의 세계는 어디나 비슷한 모양이다.

 

 무언가를 후대에 전하고 남기려는 인간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가 보다. 쓰던 물건이나 그릇, 애정을 쏟았던 가축들의 뼈까지. 또 남은 사람들에 대한 절절한 사랑과 감성이 담긴 편지가 발견되기도 한다. 발굴하는 과정에서 고고학자들이 느끼는 감정 또한 예사로울 것 같지 않다. 보이지 않는 땅 속 과거의 유물들을 통해 사유하고 새로운 삶의 모습으로 채색해주는 고고학자들이 달라보였다. 단순히 유물의 발굴에 그치지 않고, 과거의 사람과 유물에서 한때 인간의 따뜻한 숨결을 되찾아 주는 일이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하고 내일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사색하게 한다. 우리가 걷는 길, 아래 어딘가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죽음과 삶은 함께 공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고학은 과학이 아니다. 그것은 전쟁이다.“

 

전쟁과 고고학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파괴를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전쟁이 현실 사회의 구조를 파괴하는 것이라면, 고고학은 지층의 구조를 파괴하여 그 속에 있는 유적과 유물을 꺼낸다. 전쟁은 서로를 파괴하는 행위를 통해서 새로운 사회의 질서를 부여한다. 고고학은 땅을 파헤쳐서 자연에 숨어 있는 유적과 유물을 꺼낸다는 점에서 유적을 파괴한다고도 볼 수 있다. 전쟁에서 승자가 그 이후의 세상을 재편하듯이 유적을 파괴하고 그 속의 유물을 꺼내서 과거를 다시 재편하는 고고학자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서로 닮아 있다.’(P213) 

 

 파괴해야 만이 과거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세상에 밝혀낼 수 있다. 파괴를 전제로 하는 점에서 전쟁과 고고학이 닮은 점을 끌어내는 통찰력에 감탄하게 된다. 알고자 하는 인간의 호기심과 본능이 고고학이 발생하고 발전하는 토대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오래전 우리 지역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는 공고가 있고나서 유적이 발견되어 공사가 몇 해 늦어진 적이 있었다. 개발은 작업이 동반되기 때문에 땅 속에 있는 유적의 파괴는 필연적이며, 건물이나 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공사에 앞서 미리 유적을 발굴하는 것이 구제발굴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도입 30년도 안 되는 구제발굴을 통해 얼마나 많은 유적이 사라졌는지 모른다고 한다.

 

 또한 현대의 정치가와 사업가들의 개발, 경제논리를 앞세워 고고학 유적이 파괴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말한다. 레고 랜드 건설현장인 춘천의 중도에서는 비파형 동검이 발견된 사례를보여준다. 무덤이 아닌 집자리에서 발견된 것으로 한국은 물론 동북아 청동기 시대의 연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자료이다.

 

 뿐만 아니라 4대강 사업의 경우는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개발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어떤 유적이 있었는지 발굴은 제대로 되었는지 정보는 미약하다고 했다. 마구잡이식 구제발굴로 인해 사라지는 유적이 없어야 할 것이다. 제대로 된 조사와 발굴이 정책화되어 통해 소중한 유물과 유적이 유실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과거 수많은 사람들이 영생을 꿈꾸거나 죽은 뒤에도 여전히 부귀영화를 꿈꾸며 황금으로 치장하여 땅 속에 묻혔다. 하지만 그들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남아 있는 건 오직 황금뿐이다. 오히려 무덤에 넣은 황금이 많을수록 도굴꾼들의 우선 표적이 되었다. 무덤은 깨지고 황금은 빼앗겼다. 수많은 무덤을 발굴하면서 이처럼 덧없는 인간의 욕망을 깨닫게 되곤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에서 중요한 건 뭘까? 이 한 문장이 그 힌트가 되지 않을 까 싶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다 공짜야. 그걸 누릴 줄 알면 부자인 거야.”(P302~303)

 

어떤가

생명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맑은 공기, 따사로운 햇살, 풍성한 자연의 혜택이 모두 공짜다. 더 가지기 위해 초조해 하기 보다는 가진 것을 제대로 누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오랫동안 발굴현장을 누빈 저자가 끌어올린 삶의 통찰이 어우러진 고고학여행의 생생한 이야기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앞으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을 보게 되면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 들 것 같다. 왠지 애정을 담아 그들의 삶의 모습은 어땠을까 상상하게 될 것 같다. 고조선의 <공무도하가>와 하프의 기원, 유물의 도굴 이야기, 3천 년 전 두만강 유역 사람들이 침을 놓아 몸을 치유했던 시간의 기억을 밝혀내는 이야기 등 흥미로운 내용들이 가득하다. 언젠가는 흔적 없이 사라질 인생이다. 고고학 여행이야기는 어떻게 하면 오늘을 가장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사색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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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슈필라움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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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운 저자의 책을 몇 권 읽은 적이 있는데 문화심리학자라는 직함이 주는 무게에도 불구하고 엉뚱함과 진지함이 어우러진 재미있던 글로 기억한다이 책 또한 그랬다제목에서 벌써 낭만이 느껴진다바닷가 공간에 작업실이라니뭍과는 차원이 다른 시간이 흐를 것 같다아무 연고도 없는 여수 바닷가에어릴 적 좋아하던 꿈을 위해 화실을 마련하기까지의 과정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역창고(美力創考)’, ‘아름다움의 힘으로 창조적인 생각을 한다.’는 멋진 뜻이 담긴 공간여수의 봄여름가을겨울의 아름다운 풍경과 직접 그린 그림도 눈을 즐겁게 한다이 책은 저자가 슈필라움을 꿈꾸며 살아온 지난 몇 년간의 삶을 조선일보에 연재했고그 글들을 모아서 출간했다고 한다.

 

 생소하고 낯선 단어 슈필라움(spielraum)’이 왠지 근사하게 느껴진다. ‘놀이(Spiel)’와 공간(Raum)’이 합성어로 우리말로는 여유 공간’ 정도로 번역할 수 있으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을 뜻한단다. ‘물리적 공간과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단어인데 그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단어가 우리말에는 없다고 했다우리에게 그러한 공간이 아예 없었거나 그런 공간의 필요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던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도 예전에 집이 아닌 다른 곳에 나만의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시내 접근이 용이하면서도 약간 변두리라도 공기 좋은 곳마루가 있는 주택이며 마당도 있었으면 좋겠다아니다마당이 있으면 쓸고 관리를 해야 하니까 일이 많아지려나조그마한 텃밭이 있어서 채소를 가꾸어 먹어도 좋겠다거기서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면 얼마나 좋을까방해받지 않는 그런 공간에서 글을 쓴다면 엄청 잘 써지지 않을까새벽에 일어나서 시원한 공기도 느껴보고저녁 해질 무렵이면 아름다운 노을도 볼 수 있고 얼마나 좋아이런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역시 남자가 쓴 이야기라 남자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특히 한국 남자들의 슈필라움의 부재에 대한 이야기도 공감할 수 있었다자동차 운전석에 대한 애착이나 자연인’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이유를 알게 되어서 너무 웃겼다버지니아 울프가 저절로 떠올랐다.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있으면 얼마든지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했던초고속 성장을 경험한 우리 사회의 사회심리학적 문제는 슈필라움의 부재에서 찾는다남녀를 떠나 심리적 여유 공간이나 최소한의 물리적 여유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물때는 어쩔 수 없는 시간이다살다 보면 물때와 같은 참으로 어쩔 수 없는 시간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물이 들 때가 있고나갈 때가 있다잘될 때가 있으면 안 될 때가 당연히 있다이 물때와 같은 시간마저 통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조급함이다항상 잘되어야 하고안되면 불안해 어쩔 줄 모르는 조급함 때문에 참 많은 이가 불행해졌다.(p44)

 

 여수에서 정착하기 위해 배 조종 면허까지 따는 등 발품을 팔아 준비하는 과정은 제법 진지하다바다의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선 그 정도는 해야겠지만역시 아무나 못할 일이다. ‘물때라는 말도 뭍에서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하루 중 밀물과 썰물이 있고 물이 들고 빠지는 사리와 조금이라는 이 물때와 우리의 에서의 시간기다림에 대해 성찰이 느껴져 좋았다역시 장소가 바뀌면 살아가는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겠다물의 흐름을 보고 느끼며 기다림을 배우고 둥근 마음으로 변화하는 한 사람이 보인다.

 

 세상이 떠들썩할 정도로 회자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이미 있던 인더스트리 4.0’이라는 개념을 차용한 것에 불과하다는데여기서 낯선 단언적과 담론적이란 단어가 나온다문학과 예술이 단언적이라면 학문은 담론적인 것이라 한다. ‘산업혁명’ 자체가 과학과 기술의 통합이라는 지식혁명인데 어떻게 낡은 개념인 산업혁명으로 설명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담론적이어야 할 학문적 개념을 단언하며 혼란을 부추긴 상황을 질책하는 것 같다너무 시류에 흔들리지 말고 자신이 중심이 되는 단언적인 삶, ‘나다운’ 삶을 살라는 조언으로 들린다.

 

<깊이 공감했던 문장>

 

공연한 불안의 개념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그 개념들을 가나다순으로 다시 한 번 정리해보는 것도 좋다. ‘가나다순으로 정리하는 것은 개념의 개념화’, 즉 메타 개념화라 할 수 있다자신의 생각에 대한 생각인 자기 성찰’ 또한 이런 메타 개념화의 한 형태다개념화된 불안을 다시 한 번 상대화하면 불안의 실체가 더욱 분명해진다더 이상은 정서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정리되지 않은 불안은 기하급수적으로 부풀어 오른다어느 순간부터는 혼자 힘으로 도무지 감당하기 힘들어진다.(P83)

 

조금 틈만 생기면 걱정거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되살아난다. 거의 쓸데없는 걱정이 대부분이라는데. 그래서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자꾸 줄어든다. 

불안의 개념화, 이 방법으로 소중한 시간을 벌어야겠다. 

 

행복 혹은 좋은 삶에 좀 더 실천 가능한 방식으로 접근하자는 이야기다. ‘싫은 것’, ‘나쁜 것’, ‘불편한 것을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하나씩 제거해나가면 삶은 어느 순간 좋아져 있다. ‘나쁜 것이 분명해야 그것을 제거할 용기와 능력도 생기는 것이다. ‘나쁜 것이 막연하니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다그러나 무조건 참고 견딘다고 저절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내 스스로 아주 구체적으로 애쓰지 않으면 좋은 삶은 결코 오지 않는다아무도 내 행복이나 기분 따위에는 관심 없기 때문이다.(P115)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을 바꿔야 한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가 쓴 말년의 역작 공간의 생산의 핵심 내용이다공간은 그저 비어 있고수동적으로 채워지는 곳이 아니다공간은 매순간 인간의 상호작용에 개입하고의식을 변화시킨다오늘날 문화 연구(cultural studies)’에서 공간은 아주 새롭게 각광받는 주제다그동안 시간에 밀려 시답잖게 여겨졌던 공간이 갖는 문화적 기능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려는 학자들의 시도를 공간적 전환(spatial turn)’이라고 부른다.(P203)

 

이제는 좀 천천히 가도 된다. ‘직선의 모더니티는 평균수명이 채 50세도 안 되던 시절의 이데올로기다. (중략평균수명 100세 시대에는 하면 된다가 아니다되면 하는 거다부딪히면 돌아가는 곡선을 심리학적으로는 관대함이라 한다오늘날 한국인들이 가장 못하는 거다이렇게 곡선의 섬에서 직선의 삶에 관한 메타 인지적 통찰을 얻는다.(P231)

 

내 책장을 가득 채운 책들을 보면열이면 아홉이 꼭 물어봅니다. “이 책들을 다 읽으셨어요말문이 콱 막히는 질문입니다그런 질문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하는 겁니다단언컨대책은 다 읽고 책장에 꽂아두는 게 아닙니다앞으로 읽으려고 책장에 꽂는 겁니다책장에 책이 그렇게 많은 이유는 내가 알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는 뜻입니다.(P273)

 

빵 터졌다아직 읽지 않은 책이 있지만 신간에 자꾸 눈이 가서 이래도 되나 했는데 이제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겠다언젠가는 꼭 읽을 테니까책이 가득한 책장을 보는 뿌듯함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지금까지 살던 장소와 전혀 다른 곳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분명히 삶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 같다하지만 원한다고 해서 누구나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이런저런 이유가 발목을 잡는다경제적인 여건도 받쳐줘야 하고 익숙한 것과의 결별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좌절해야 하나아니다현재 살고 있는 집에 나만의 공간을 만들면 된다자신이 원하는 곳에 꿈의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여건이 완벽해질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순 없지 않은가짧은 인생이니까지금 여기서 소박한 공간이나마 만들어 놓고 꿈을 키워나가는 행복한 시간을 만들면 된다나는 이렇게 위안을 삼으려한다.

 

 사실 이 책을 다 읽고 가장 부러웠던 것은 저자의 외국어 실력이다세상에나는 겨우 일본어 공부 하나로 쩔쩔매고 있는데 모국어 외에도 3개 국어라니

100세 시대의 무기는 외국어 공부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그래서 좀 더 분발하기로 했다.

 

 저자의 바닷가 작업실을 엿보는 것은 부럽고도 동기부여가 되는 시간이었다신혼시절 1년 넘게 여수에서 산 적이 있다.(그때는 여천이었다.) 그 동네 작은 기차역이 아직도 있는지 아름다운 절 향일암은 어떻게 변했을까 문득 궁금하다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펼쳐지는 도전적인 삶그 이야기를 공유한 저자에게 감사드린다구체적으로 애쓰지 않으면 '좋은 삶'은 결코 오지 않는다는 말이 자꾸 뇌리에 남는다푸른 바다와 대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미역창고에서 창조하는 좋은 책과 멋진 그림 많이많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리뷰 대회를 계기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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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바타 야스나리 - 설국에서 만난 극한의 허무 클래식 클라우드 10
허연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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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로 셰익스피어, 뭉크에 이어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만나게 되었다. 부끄럽게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을 단 한 권도 읽어 본 적이 없다. 나쓰메 소세키를 좋아하여 일본문학을 꽤 읽는 편인데 어쩐 일인지 한 번도 인연이 없었다. 어쩌면 내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대해 백지상태여서 더욱 재미있고 공감하며 읽지 않았나 싶다. 불안의 아이콘의 대명사인 뭉크가 떠오르기도 했다. 공교롭게 가와바타 야스나리도 두 살, 세 살에 아버지, 어머니를 잃고 그 후, 누나와 조부모까지 잃고 10대에 완전히 혼자가 된다. 어린 나이부터 혈육을 잃은 상실감으로 점철된 삶을 마주하였으니 작품 전반에 허무가 배어있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싶었다. “고독과 비애와 소극적 성격 때문에 문학을 했다”(P49)는 그의 회고도 이것을 충분히 뒷받침해준다.

 

 저자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삶과 문학의 궤적을 찾아가는 여정은 마치 함께 그 여정을 따라 가는 듯 실감나는 여행 같았다. 지난주 일본여행을 다녀왔는데, 떠나기 바로 직전에 이 책을 받고서 마지막 부분만 읽고 갔다. 여행일정 중에 가마쿠라에 가 볼 예정이었기에 기대감이 있었다. 저자는 이 여정을 1. 설국의 세계로 2.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삶과 문학 3. 가마쿠라,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마지막, 이렇게 세 개의 장으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1장에서는 작품설국의 배경이 된 에치고유자와를 소개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머무르며 설국의 중심 무대이며 초안을 집필했던 다카한 료칸의 안개의 방등 에치고유자와에서 설국이 탄생할 수밖에 없는 기후로 인한 숙명과 등장인물들이 마시는 사케를 주제로 한 배경이야기도 재미있게 풀어낸다.

 

 

 

 

 

 설국은 흔히 읽기 힘들고 읽었어도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다. 그래서 꽤 난해한 작품인가 했다. 흔히 소설이라 하면 기승전결이 자연스럽게 스며있어 핵심적인 줄거리가 기억에 남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설국줄거리 소설이 아니라 이미지 소설’(P62)이라고 한다. 설국에 나오는 모든 배경은 일종의 논리가 아닌 이미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설국을 가장 잘 읽는 방법은 한 행 한 행, 시를 읽듯 이미지로 읽어나가는 것’(P82)이란다.

 

거울 속에는 저녁 풍경이 흘렀다. 비쳐지는 것과 비추는 거울이 마치 영화의 이중노출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등장인물과 배경은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설국12(P63)

 

 천천히 읽어보면 저녁노을이라든가 어두워지는 저녁 풍경의 이미지가 보인다. 시적으로 쓰인 작품을 일반적인 소설과 같은 맥락으로 읽는다면 본래 전하고자 하는 작가의 메시지가 온전히 전해지지 않을 것임은 틀림없겠다.

 

 거울을 빼놓고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을 논할 수 없다고 한다. 거울은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지만 비쳐진 모습은 실제와는 다른 환상도 불러일으킨다. 설국의 백미라는 부분을 감상해 보자.

 

시마무라는 작년 세밑의 그 아침, 눈이 비치던 거울을 떠올리며 경대 쪽을 보았다. 거울 속에는 차가운 꽃잎 같은 함박눈이 한층 크게 나타나, 옷깃을 들추고 목덜미를 닦는 고마코 주위에서 하얀 선으로 감돌았다.

고마코의 살결은 금방 헹궈낸 듯 깨끗해서 시마무라가 어쩌다 내뱉은 말 한마디조차 그런 식으로 오해할 여자로는 도저히 여겨지지 않는 데에, 오히려 거역하기 힘든 슬픔이 있는 것 같았다.’설국,129(P93)

 

 이 작품에는 에치고유자와의 지명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고 하는데, 이런 의도적인 장치는 독자를 환상과 미궁에 빠뜨리기 십상이다. 가족을 잃은 상실감과 허무가 거울 너머로 바라보는 듯한 관조적인 삶을 추구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작품을 통해 죽음을 미화하고 인간과 자연과 허무 사이의 조화를 추구하고자 했다”, “평생 동안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애썼다”(P243)는 그의 고백을 보면 시대적 상황이나 주변의 눈치에 발 빠르게 맞추어가며 자신의 입신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자신의 문학 세계를 구축했던 것 같다. 또한 온통 상실감으로 점철된 삶이었기에 모든 것을 허무로 단정 짓고, 그 허무를 ’의 추구에 받쳤는지도 모르겠다.

 

탐미주의 소설의 대가라는 미시마 유키오가 야스나리의 제자이자 문학적 도반이었다는 것도 꽤 흥미를 끌었다. 미시마 유키오는설국의 주제가 어떤 특정한 순간이 아니라, 항상 움직이고 있는 인간 생명의 각 순간을 이어주는 순수지속(純粹持續)”(P82)이라고 설명했다는데 이 언급만 보더라도 작품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답이 될 것 같다.

 

이렇게 독자들이 읽으면서 자주 미궁에 빠지게 되는 지극히 일본적인 이 작품이 어떻게 세계적인 작품이 되었을까. 당시 일본에서는 미시마 유키오나 다니자키 준이치로 등 인기를 누렸던 작가와 달리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은 고루하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여기엔 2차 대전 당시 군 복무를 하면서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 문학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었던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의 공이 상당히 컸다는 흥미로운 일화가 있었다. ‘번역 불가능한 작품이었다는 설국을, 일본어의 사용이 너무 미묘하고 모호한 표현이 많았던 작품을 번역해낸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동양적인 가치관과 정신, 그 분위기를 읽어낼 수 있었을까 신기하기만 하다. 그 덕분에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자연과 인간의 운명이 가진 유한한 아름다움을 우수 어린 회화적 언어로 묘사했다”(P127)는 평가를 받으며 일본에서 첫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갖게 된다.

 

대표작설국외에도 산소리,이즈의 무희, 천 마리 학등의 작품세계와 배경이 되는 지역의 여정은 계속된다.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고 왜소하고 조용한 학생이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918년 혼자서 이즈반도로 여행을 떠나는데, 유랑극단과 동행했던 경험이 출세작 이즈의 무희의 모티프가 된다. 무희 가오루는 약혼자였던 이토 하쓰요의 분신이라고도 한다. 이렇듯 작가의 삶과 생각이 작품에 어느 정도 투영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유난히 무희에 대한 작품이 많았는데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이름난 무용 평론가이자 무용 애호가였다고 한다. “무용은 보이는 음악이고, 움직이는 미술이며, 육체로 쓰는 시이자, 연극의 정화다”(P209)고 했을 정도로 무용 지상주의자였다고 한다. 그의 작품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옳고 그른 것도 없고 시대와 사회적 상황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다. ‘()’ 자체를 추구하며 절대미의 세계에 도달하고자 했다는 작가의 관점에 초점을 둘 때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단초가 되지 않을까.

 

그가 태어난 오사카,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이바라키, 청년시절을 보낸 도쿄, 말년까지 35년의 흔적이 서려있는 가마쿠라의 여정을 돌아보며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알아가는 알찬 시간이었다. 일본 최초의 노벨상의 명예를 누리고 가질 것을 다 가졌던 그는 드라마틱하게 삶을 마감한다. 저자는 이것을 두고 무용을 숭배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답다고 했다. 무용이 끝난 후, 아무것도 기록이 남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떠났다고.

 

책을 읽다보면 처음의 기대와 달리 안 읽혀질 때가 있다. 감동을 느끼기는커녕 도중에 손을 놓아버린 경우도 있다. 전에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나 버지니아 울프 등의 여러 작품을 그렇게 중단한 적이 있다. 설국이 시마무라의 행동을 따라가는 소설이 아니라 시마무라의 생각을 따라가는 방법으로 읽어야 하는 것처럼 그 작품들도 그것을 염두에 두었어야 했다는 것을 알았다. 당연히 생각에는 순차적인 시간도 공간도 필요 없고 떠오르는 것이 곧 이야기라는 것. 미시마 유키오의 말처럼 어떤 시대관념도 기만하지 못했을 만큼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했던 설국절대미의 세계를 제대로 한 번 음미해 보고 싶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느껴 보았던,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일본적인 멋과 분위기를 새삼 확인받은 느낌이다. 사실 국경과 문화는 달라도 인간의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작품 설국을 읽고 미궁에 빠진 적이 있거나 아직 읽지 못한 독자에게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충실한 키워드가 되리라 믿는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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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심리학
윤현희 지음 / 믹스커피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그림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여러 책 속에서 만남을 거듭하면서 점점 알고 싶어졌다. 어린시절에는 벽이든 아무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끄적거리곤 했는데 어른이 되어가면서 왜 그림과 멀어졌을까. 바쁘게 살아가는 생활 패턴도 있겠지만, 제도권 교육도 그에 일조하지 않았나 핑계를 대본다. 인상파, 후기인상파, 입체파 화가 등의 이름을 외우고 그림의 제목을 암기해서 시험을 치른 경험 말이다. 문학을 넘어 미술, 음악 등 다양한 관점의 접근으로 치유와 공감을 이끌어내는 책들이 많이 나와서 반가운 마음이다. 그림을 접하고 보니, 인간의 창조적인 천재성이 만들어낸 걸작이자 인류 최초의 예술 작품이라는 알타미라 동굴이 떠오르고, 인간의 역사에서 시각언어인 그림이 문자보다 더 먼저였다는 것에 수긍하게 된다.

 

 이 책은 심리학자인 저자가 부친을 떠나보낸 슬픔을 위로받은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많은 예술가들의 그림에 공명하고 심리학적인 접목으로 풀어낸 이야기다. 왠지 미술에 문외한인 내게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화가들의 내밀한 삶의 이야기까지 소개하고 있어서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저자의 인생에 대한 소회도 담고 있어서 잔잔한 감동을 주었고 미술 작품을 읽어내는 능력이 한 발짝 나아가는 느낌이었다. 긍정심리학, 아들러 심리학, 게슈탈트 심리학 등 다양한 심리학을 만날 수 있다. 문학작품에서 작가의 삶이나 가치관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림에는 그것을 온전히 드러낸다고 해도 좋을 만큼 오롯이 화가의 내면을 표현하고 있었다.

 

1장 나이브 아트와 긍정심리학 2장 아방가르드 화가들과 아들러 심리학 3장 추상의 세계와 게슈탈트 심리학 4장 화가 내면의 상처와 표현주의 5장 여성 화가의 정체성: 전문성과 여성성 사이에서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맨 처음 만나게 되는 화가는 여러 경로로 알게 되었던 모지스 할머니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고 세련된 기교를 사용하지 않으며 순수한 즐거움과 소박함을 화폭에 담는데 이것을 나이브 아트(naive art)’ 혹은 원시 미술(primitive art)이라고 하며 아웃사이더 아트라고도 한단다. 모지스 할머니는 남편과 사별한 슬픔을 달래기 위해 76세에 붓을 들고 가슴속에 남아있던 꿈,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사람들은 늘 '너무 늦었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지금'이 가장 좋은 때입니다. 어려서부터 늘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76살이 되어서야 시작할 수 있었어요. 좋아하는 일은 천천히 하세요. 때로는 삶이 재촉하더라도 서두르지 마세요.

나는 행복했고, 만족했으며, 이보다 더 좋은 삶을 알지 못합니다. 삶이 내게 준 것들로 나는 최고의 삶을 만들었어요. 결국 삶이란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것이니까요. 언젠 그래왔고, 또 언제까지나 그럴 겁니다.’(P21)-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중에서

 

 무언가를 이루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는 말을 많이 접하면서도 조급증을 떨쳐버릴 수 없는 우리에게 모지스 할머니의 이 말은 따뜻한 위로와 무한한 용기를 준다.

 

앙리 루소의 <야비드가의 꿈>

 

 이외에 이 부류의 화가로 헤르만 헤세, 앙리 루소, 구스타프 클림트를 소개한다. 이 중 앙리 루소의 독특하고 신비스런 분위기의 그림은 나름의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신조어 소확행을 실천했던 화가였다. 프랑스가 번영과 발전을 이루며 좋은 시절로 불리는 벨 에포크(belle epoque)의 절정이던 19세기 말, 세관원으로 일했던 앙리 루소는 가난하고 가정적으로 불행했지만 주간의 업무가 끝난 주말에 붓과 그림 도구를 챙겨들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떠난다. 여행할 형편은 아니어서 파리를 떠난 적이 없었고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최대한 활용해야만 했다. 주말 화가라는 야유를 받았던 루소의 작품은 피카소의 관심을 사로잡으면서 빛을 발하는데... 다른 화가들과 공동 작업장으로 사용했던 몽마르트의 작업실로 앙리 루소를 초대하고 기욤 아폴리네르는 그의 그림을 높이 평가하는 시를 헌정하기도 한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긍정의 심리학의 선구자였던 것이다.

 

폴 세잔의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화>

 

 2장에서는 아방가르드 화가로 디에고 벨라스케스, 마네, 드가, 폴 세잔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 폴 세잔의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화>가 새롭게 다가왔다. 예전에 교과서에서 대수롭지 않게 보았던 사과 그림말이다. 원근법이 무시되고 시점 또한 복수의 소실점으로 역동적인 느낌을 느낄 수 있다. 정면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옆면과 뒷면, 윗면에서도 볼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은 그간의 고정관념을 깨트려주고 대인관계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는 해석이 멋지게 다가왔다. 전통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회화의 새로운 접근을 확장시켜주는 혁신적인 아웃사이더였던 것이다. 캔버스라는 평면적인 종이에 이러한 가치관과 마음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그림에 조금씩 눈을 떠가는 기쁨이란 이런 것일까.

 

 

 3장에서는 파블로 피카소를 비롯하여 바실리 칸딘스키, 피에트 몬드리안, 파울 클레와 게슈탈트 심리학을 다루고 있다. 들어본 적은 있지만 용어가 와 닿지 않았는데 독일어인 게슈탈트란 전체혹은 형태라는 의미의 단어란다. 우리가 현상이나 대상을 부분적 요소로 지각하기보다는 하나의 통합적인 의미를 가진 전체로 지각하려는 경향성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관심있는 부분은 전경(핵심˙본질)이 되고 반대의 경우는 배경(비본질적 요소)이라는 것을 정확히 인식할 때,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예술의 정수만 표현하고자 애썼던 피카소의 그림을 이해하는 첩경이 아닐까 한다.

 

 일찍이 그의 천재성을 알아차린 거트루드 스타인은 “19세기의 회화는 프랑스에서 프랑스인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20세기의 회화는 스페인 사람에 의해 프랑스에서 일어났다.”며 피카소의 영향력을 표현하기도 했다. 또 독일의 아트 딜러 다니엘 칸바일러는 피카소의 그림에는 낭비가 없다. 장식과 기교가 배제되어 있어 오히려 호소력이 짙다.”고 평가했다. 아홉 살 때 이미 라파엘로처럼 데생했다는 천재 화가 피카소도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며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라고 했다. 핵심만을 포착하는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예술의 정수를 발견한 피카소의 <해부도>는 웃고 싶을 때 보기 좋은 그림이라고 소개한다. 군더더기 없이 간략한 몇 개의 선으로 이루어진, 특히 동그란 몸통 부분을 보면서 정말로 웃음이 났다. 우리네 삶도 이것저것 복잡하게 따지지 말고 지금을 소중히 여기며 심플한 삶을 가꾸어 나갔으면 좋겠다.

 

 

 4장에서는 빈센트 반 고흐, 에드바르트 뭉크, 에곤 실레, 모리스 위트릴로의 작품과 그들의 삶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맨 처음 고흐를 만난 건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고부터였다. 그 후 고흐의 전기, 영화를 통해서 제대로 알아갔다. 여기서는 이제 막 관심이 생긴 뭉크에 대해서 언급하려 한다. 불안의 아이콘이 된 <절규>를 중학교 미술책에서 보았던가. 아름답지 못한 그림에 유령같이 느껴져 별로 좋은 기억은 없던 그림이다. 최근 어떤 책에서 언급된 뭉크의 삶을 대략 알았고 이 책에서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어머니와 누나의 죽음, 강박적인 종교인이었던 아버지의 냉혹한 양육 방식은 부정적인 정서를 뿌리내리게 했다. 탄생한 순간부터 죽음과 질병의 천사가 자신을 따라다녔다던 뭉크의 고백처럼 그의 그림에는 불안, 우울 공포, 질투, 피해망상 등의 감정이 잘 드러나 있다.

 

 “숨 쉬고, 고통받고, 느끼고, 사랑하는, 살아 있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겠다. 본 것을 상상하며 그리지,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리지는 않겠다.”(P227)고 밝힌 생 클루 선언은 그림에 대한 혹평에도 불구하고 본연의 길을 충실히 걸었던 결과 시공간을 뛰어넘는 공감과 불안과 공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아이콘이 되지 않았을까. 가끔 기사화되어 끔찍한 사건을 야기하는 조현병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뭉크 또한 신경쇠약과 조현병이 있었다고 해서 놀라웠다. 자신의 내면의 불안과 공포를 피하지 않고 인정하고 직시하면서 예술활동으로 승화시켰기에 오늘의 뭉크가 있었던 것이다. 고난의 삶을 극복한 숭고한 정신의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이 있기에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위로받고 힘을 얻는지도 모른다.

 

수잔 발라동의 <푸른 방>

 

 5장에서는 베러트 모리조, 메리 카사트, 수잔 발라동, 루이스 부르주아 등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전문화가로서의 정체성을 추구하고 여성에게 강요되었던 전통적 가치를 거부하며 시대를 앞서간 여인들의 용기 있는 인생이 들어있다. 이 중 수잔 발라동은 사생아로 태어나 사생아를 낳고(4장에 나오는 모리스 위트릴로가 아들임.) 프랑스 미술아카데미 정회원으로 추대되기까지 한, 우뚝 선 불꽃처럼 살아갔던 화가이다. 생활고와 미혼모라는 악조건 하에 분투하면서도 역사상 여자가 여자의 누드를 그린 것은 전무후무 할 만큼 당찬 화가였다. 그녀가 그린 여자의 누드는 남성의 시선이 투사한 에로티시즘의 홍조도 없는 진실 그대로의 몸이다. 르누아르의 모델이었던 수잔이 비밀스럽게 키운 화가의 꿈을 고백하며 화첩을 보여주었을 때 그들의 계약 관계는 끝난다. 굴곡 많았던 수잔의 삶은 아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지만 결국 두 모자는 그림으로 국가의 인정을 받으며 안정되고 명예로운 노년을 보내게 된다.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이 또 있을까.

 

수잔 발라동의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가 그린 <노트르담 성당>

 

나에게 예술은 나 자신의 정신분석학이자 나만의 공포와 두려움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어떤 것이다. 마찬가지로 당신은 당신에 대해서 직시하고 알아야만 한다. 그런 고찰이 당신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P319)

 

 여자 뭉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평생을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직시해야 했던 루이스 부르주아가 매거진 GQ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 공포와 두려움이 어느 정도인지 우리는 감히 짐작할 수도 없다. 고통을 잊기 위한 방편으로 예술을 했고 예술은 자신의 정신분석학이었다는 것이다. 긍정의 심리학을 엿볼 수 있는 화가들도 있었지만, 더 많은 예술가들이 내면의 고통과 불안을 온전히 들여다보며 영혼을 치유해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통으로 얼룩진 삶을 극복하고 빛나는 별로 우뚝 선 그들의 삶을 읽고 뭉클한 감동이 일었다. 무엇이든 풍족하고 편리한 시대에 나만 힘든 것처럼 꾀를 부리고 태만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하였다. 오롯이 지금, 현재를 살았던 예술가들의 족적을 헤아려 좀 더 오늘에 집중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화가들의 삶과 심리학이 곁들여진 이야기를 통해 어려웠던 그림이 쉽게 느껴졌다. 그림을 통해서 타인을 이해하는 공감대의 확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또한 자신에게는 위로와 힘을 준다는 것도. 저자는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모든 연령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정신을 건강하고 풍성하게 가꾸는 일이지만, 특히 아동과 청소년의 경우에 칸딘스키의 그림과 색채이론의 응용이 감정인식과 공감능력 발달에 도움이 될 수 있다’(P171)고 했다. 우리는 심각한 소통의 부재와 공감능력의 상실시대에 살고 있다. 어린 학령기부터 누구나 그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개발하여 우리의 감성을 촉촉하게 해주는 미술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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