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칠 년 전 최재천 교수의 통섭의 식탁을 읽고 나서, 나의 독서 편식 상황을 깨닫고 경계를 넘는 책읽기를 시도해보고자 독서 목록을 정비하며 새로운 기분으로 들떴던 적이 있다. 우선은 경제 관련 서적과 동기부여에 관한 책으로 시작해서 좀 깊이 있는 철학과 사상에 관한 책으로 넓혀가야지 했지만 쉽고 빨리 읽히는 책에 손이 가는 바람에 더 나아가지 못하는 책읽기가 되었다. 블로그 활동을 하게 되면서는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나마 가끔 열리는 리뷰 대회를 통해서 평소와 다른 분야의 책을 접하게 되어 매번 감사한 마음이 다. 이 책도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철학이 삶의 무기가 된다니! 제목 또한 강렬하고 좀 어렵지 않을까 염려도 되었는데 서문을 읽으면서 그동안 생각했던 철학에 대한 편견을 깨끗하게 환기시키며 기대감으로 고조되었다. 그동안 철학에 대한 접근이 지적 호기심과 폼을 잡고 싶은 허영이 아니었나 반성하게 되었다. 지적 충족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실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철학자를 떠올릴 때 맨 먼저 칸트가 떠오른다. 어김없이 오후 3시면 산책을 해서 마을 주민들은 칸트를 보고 시간을 가늠했다는. 그리고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잇는 그리스 철학자들. 몇 해 전 플라톤의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이 책의 서문을 접하고서야 깨닫게 된다. 철학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가며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 눈앞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 얼마만큼 대답을 해 줄 수 있는가,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을.

 

 저자 야마구치 슈는 바로 이러한 우리 앞에 닥친 삶의 문제를 안고 있는 사회인들이 철학의 본질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굳은 믿음으로 이 책을 기획했음을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1949괴테 탄생 200주년 기념제의 계기로 로버트 허친스 교수의 교양 없는 전문가야말로 우리의 문명을 가장 위협하는 존재라는 주장을 들어 왜 우리가 철학을 배워야만 하는지 네 가지의 이점을 들어 들려준다.

 

1. 상황을 정확하게 통찰한다.

2. 비판적 사고의 핵심을 배운다.

3. 어젠다를 정한다.

4.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이 책의 부제는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이다. 1부는 무기가 되는 철학으로 철학을 배우는 새로운 방법과 그동안 왜 우리가 철학 앞에서 좌절해야 했는지 이유를 들어 설명한다. 2부는 지적 전투력을 극대화하는 50가지 철학 · 사상으로 사람, 조직, 사회, 사고에 관한 핵심 콘셉트를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가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로 인한 고민이다(P28)라고 지적했다는데 이것을 미처 몰랐더라도 우리는 가정을 넘어 조직이라는 사회에서 부딪히는 문제가 인간관계라는 것을 실감하면서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책에서 다룬 주제의 핵심이 더욱 와 닿지 않을 수 없다.

 

 철학을 배우는 새로운 방법에 이 책을 쓴 의도가 잘 나타나 있다. 그동안 철학에 관심을 갖고 읽어 본 사람이라면 그리스의 철학자를 시작으로 접하지 않았을까 싶다. 시간 순으로 방대하게 이어지는 철학자와  무거운 주제에 압도되고 더 이상 나아가지 않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너무 오래전의 사상이고 현실과 호환이 안 되거나 동떨어진 내용인 경우도 있어서 어렵고 진부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저자는 여타의 철학 입문서와 달리 시간 축으로 구성하지 않았으며 현실의 쓸모에 기초하며 철학 이외의 영역도 다루었음을 밝힌다. 저자의 이런 신선한 의도를 접하면서 어떻게 내 삶에 적용시킬 수 있을까 기대감을 갖고 읽어나갔다. 니체의 르상티망부터 시작하는데 학창시절 철학자와 사상가의 명제를 암기하여 시험을 치르던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세상에, 어떻게 철학자에 대한 사상을 그렇게 배우게 되었을까 싶다. 그러니 졸업하고 나선 철학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던 것이다.

 

 현대사회는 옛날보다 훨씬 더 복잡해졌다. 한 명의 어린 아이를 교육하기 위해 온 마을이 달려들었다는 시대가 아니다. 문명의 발달은 인간에게 편익을 주었으나 마음은 고독한 시대이다. 개인적인 삶의 모습이 버튼 하나만 터치하면 눈앞에 나타나고 상대적인 박탈감을 너무나도 쉽게 느끼는 시절이다. 점점 소외감으로 마음의 문을 닫아가고 서로의 마음을 모르게 되고 그런 환경으로 쉽게 변화해 간다. 아무도 모르게 무시무시한 일을 모의하고 그것이 터져야만 내막을 알게 되는 사회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한 사람의 내면에서는 무언가 벌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질투, 원한, 증오, 열등감 등이 뒤섞인 시기심과 시기심이라고 여기지 않는 감정과 행동까지 포함한 폭넓은 개념으로 니체의 르상티망(ressentiment)을 든다. 어렵게 느껴졌던 철학 용어가 환해지기 시작한다. 자주 언급되는 이솝우화의 여우과 신 포도이야기 속 여우의 심리와 고급 브랜드 상품을 구입하며 르상티망을 해소하고 있다는 철학적 견해는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는 폭을 넓혀준다. 이렇게 타인의 시기심을 이용하면 성공적인 비즈니스로 이어진다는 흥미로운 철학을 왜 가까이 하지 않았을까.

 

 반면 좀 놀라운 부분도 있었다. 거대한 자연에 비하면 개인은 나약한 존재다. 열심히 살고 노력을 하면 언젠가 좋아지리라는 희망을 대부분 품고 살아간다. 그런데 장 칼뱅의 예정설을 접하고 놀라면서도 우리가 사는 현실의 상황과 어쩌면 그렇게 비슷한지 수긍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신에게 구원을 받을지 못 받을지는 미리 결정되어 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선행을 쌓느냐 못 쌓느냐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P76)

 

 이 주장은 기원은 신약성서로마서830절에 신은 미리 정해진 자들을 부르고, 부른 자들을 의로 삼으며 의로 삼은 자들에게 영광을 내렸다는 말에서 미리 결정되었다는 키워드로 도출된다는데. 오늘날 조직에서 열심히 노력했지만 인사고과에서 밀려나는 일이 얼마나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 핵심 내용은 뒤에서 공정한 세상 가설을 설파한 멜빈 러너(Melvin Lerner)보이지 않는 노력도 언젠가는 보상받는다는 거짓말로 연결되어 혼란스런 마음을 부추긴다. 이미 유명한 베스트셀러가 된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1만 시간의 법칙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얼마나 많은 책에서 다룬 내용이었던가.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고 싶은 일에 1만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면 결국은 이루게 된다는 희망이 여지없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세 개의 명제를 들어 풀이하는데.

명제1 : 천재 모차르트는 노력했다.

명제2 : 노력하면 모차르트와 같은 천재가 될 수 있다.

명제3 : 노력 없이는 모차르트 같은 천재가 될 수 없다.(P260)

 

 재능보다 노력이 중요하다는 논리를 수없이 들어왔지만 여기 예를 든 명제는 논리 전개에서 흔히 발생하는 초보적인 실수로 사실은 전혀 명제의 증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법칙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대상이나 악기, 종목, 과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바람과 현실의 세계를 직시하지 않고 맹목적인 믿음일 때는 위험한 주장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노력은 보상받는다는 공정한 세상 가설에 사로잡히면 사회나 조직을 도리어 원망하게 될 수 있다는 사례는 정말 헛헛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옛날부터 우리는 그런 말을 많이 들어왔다.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고.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한층 더 공정한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며 의무라는 것을 명심하자고 조언한다.

 

 그렇다면 너무 씁쓸하지 않은가. 힘없는 개인이 살아가기 위한 토대가 되는 소박한 희망이 사라진다는 것은. 하지만 어차피 사람은 작은 희망에도 일어설 수 있는 존재다. 대표적인 실존주의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는 앙가주망(engagement)하라는 말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물음에 몰두했다. ‘앙가주망(engagement)’ 은 ‘참여(commit)’를 의미한다. 참여한다는 것을 사르트르는 우리 자신의 행동과 이 세계에 대한 책임두 가지로 정리했다. 자신의 행동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여기에는 자유가 따른다

 또 사람의 일생에서 우발 사건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바로 그 예가 전쟁이란다. 흔히 전쟁은 나와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반전운동이나 병역을 거부하고 도망칠 수도 있었는데 받아들인 것은 선택했다는 것이고 결국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논리정연하고 냉정한 지적에 섬뜩해진다. 이것은 사르트르가 말한 인간은 자유의 형벌에 처해 있다는 진정한 의미로도 이어진다. 누구에게나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무엇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유를 갈구하지만 넘치는 자유 때문에 괴롭기도 한 존재인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공정한 세상 가설예정설을 실체를 알았다고 해서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다. 사르트르가 세계의 리더들은 왜 직감을 단련하는가에서 소개했다는 현대 미술가 요제프 보이스의 사회적 조각우리는 세계라는 작품을 제작하는 데 공동으로 관여하는 아티스트이기에 이 세계를 어떻게 만들고 싶은가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하루하루 생활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그야말로 희망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인생을 예술 작품처럼 창조해 내야만 자신의 가능성을 깨달을 수 있다는 역설에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지금까지 이런 마음과 태도를 갖고 삶에 임한 적이 있었던가, 돌아보게 하였다.

 

 지금 우리는 거대하게 시스템화 된 세상에 살고 있다. 매뉴얼화 된 시스템이란 얼마나 편리한 것인가.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 물이 흐르는 듯한 일처리를 보장한다. 철학을 배워야 하는 네 가지 이유 중 네 번째의 같은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는다.’는 언급을 상기시키는 부분을 만났다. 바로 20세기의 정치 철학을 논하는데 필수 아이콘이 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접하게 된다. 수많은 책을 통해 만났는데, 극도로 세분화되고 시스템화 된 우리의 현실은 자신도 모르게 물들어 가기에 쉬운 상황이 아닐까 섬뜩한 기분에 빠지게 된다.

 

악이란 시스템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P100)

 

 나치 독일이 600만 명의 유대인을 처리하기 위한 계획에 주도적 역할을 한 아돌프 아이히만이 있었고, 작년에 읽었던 맨부커상 수상작인 리처드 플래너건의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에서도 악의 평범성을 떠올리게 했다. 하이쿠를 읊고 낭만을 아는 대위 고타가 천황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사람의 목을 치는 기술을 연마하고 그 과정을 부하인 나카무라에게 얘기하는 장면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이 무섭고 떨리지 두 번 세 번의 연습을 거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시스템이란 이런 것이다. 극도로 세분화된 시스템 속에서는 잘잘못을 따질 수가 없다. 애매하고 교묘하게 역할을 분담하여 악에서 빠져나가려는 발버둥에 헤아릴 수 없는 무고한 인명은 왜냐고 묻지도 못한 채 희생되고 마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옳고 그른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고등한 인간이니까 말이다. 더불어 시스템화 된 조직에서 생각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비극을 낳게 하는지 일침을 주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만 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에겐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사람이 모여서 조직이 되고 하나의 사회를 이룬다. 각각의 주제를 컨셉트로 들려주는 철학 이야기가 정말 흥미진진했다. 물론 좀 어렵게 생각되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철학 용어만큼은 암기식 공부가 도움은 되었던지(?) 학창시절의 기억을 금세 소환해주었다. 사람의 마음을 읽고 조직, 사회의 심리를 읽을 수 있다면 개인이 삶에 임하는 자세와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시간 속에 흘러가는 물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우리 앞에 있다. 흔히 지금을 살아라’, ‘현재를 살아라는 말을 자주 접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과거 속에 젖어서 살며 오지 미래를 걱정한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개 속과 같은 세상이다.

 

 거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라는 앨런 케이(Alan Curtis Kay)의 말을 만나게 된다. 감동과 더불어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컴퓨터 과학자 앨런 케이가 1972년에 저술한 논문 모든 연령대 어린이들을 위한 컴퓨터(A Personal Computer for Children of All Ages)를 사례로 들어 미래의 예측실현을 이야기한다. 사실은 미래 예측을 의도했다기보다는 이런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원하는 것을 구상하는 과정에서의 간절함이 결국 실현으로 이어진 것이다. 막연히 불안해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보는 노력에 힘을 싣는 것이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철학의 영역을 넘어 사회심리학, 과학, 문화인류학 등 50명의 철학자, 사상가의 50개의 생각이 들어있다. 분명히 읽기 전보다는 생각을 키워 주었으며 교양이 듬뿍 쌓인 듯 느껴진다. 옳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 고정관념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씁쓸한 마음이 되기도 했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를 상기할 때 모든 것은 변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우리는 행복한 삶을 원한다. 즐겁고 나다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세계 1위 경영 · 인사 컨설팅 기업 콘페리헤이그룹의 시니어 파트너이자 히토쓰바시 대학교 경영관리 연구과 겸임 교수로 일하고 있는 저자의 내공이 담긴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는 한 치 앞을 헤아릴 수 없는 우리의 삶을 효율적인 삶으로 이끄는 철학적 소신을 안겨 줄 것이라 믿는다. 또 멀어졌던 철학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용기와 도전의 마음을 심어준 유익한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클래식 브런치 - 원전을 곁들인 맛있는 인문학 브런치 시리즈 4
정시몬 지음 / 부키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클래식 음악 이야기에 관한 책을 접하고 보니 중학교 때 음악선생님이 떠오른다반짝이는 이마에 안경을 쓴 도통 음악선생님 분위기가 나지 않았던 선생님은 우리에게 노래와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서 항상 노란색 카세트를 가지고 다니셨다예를 들어 그날 교과서에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나왔다면 그 음악을 짧게라도 들려주시곤 했다아마도 그렇게 접했던 기억으로 띄엄띄엄이라도 클래식 음악 듣기를 계속해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장르를 넘는 책 쓰기와 번역까지 한다는 저자의 이력이 정말 놀라웠다이 브런치’ 시리즈로 이미 철학세계사세계문학이 나와 있다얼마만큼의 책읽기와 그것을 어느 정도 좋아해야 이런 일이 가능할까 감탄스러울 뿐이다우리 귀에 익숙한 유명한 클래식 음악가들의 작품과 그들의 내밀한 삶당시의 역사적 상황이 곁들여진 이야기는 더욱 생생하고 친밀하게 느껴진다이 책 덕분에 저자의 다른 시리즈가 궁금해질 정도다.


1. 바로크 음악으로의 초대 2. 고전주의 조화균형품격의 음악 3. 낭만주의 음악 4. 전환기의 클래식또 그 너머 이렇게 네 개의 장으로 나누어 이야기하는 클래식의 향연에 우리를 초대한다책을 읽으면서 중요하게 언급하거나 궁금했던 음악을 들으면서 읽었는데 역시 이래서 고전음악이구나 싶었다암기식 공부의 기억도 없지 않았던 만큼 음악 작품의 제목이 새록새록 떠올랐다또 잘 몰랐던 작품의 배경에 얽힌 이야기를 자세히 알게 되어서 나중에 음악 감상을 하더라도 더 잘 이해되고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바로크 시대의 음악가로는 비발디와 바흐헨델을 이야기한다비발디의 사계는 우리에게 얼마나 익숙한 곡인가비발디가 이 곡을 작곡하게 된 것은 베네치아에서 활약하던 화가 마르코 리치의 풍경화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란다평생 작곡한 협주곡이 500여 곡이나 되며 이외에도 오페라칸타타에 더해 소나타합주곡종교 음악까지 엄청난 분량을 썼다그런 전성기를 누리다가 낡은 음악이라는 취급을 받으며 슬럼프를 겪기도 한다비발디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6세의 총애를 발판삼아 빈 음악계에서 도약의 야심을 품었지만 황제의 급서로 멘붕을 겪으며 급기야는 빈털터리로 객사하기에 이른다.


 오늘 날 많은 음악 애호가들이 즐겨듣는 사계나 화성의 영감이 비발디 타계 후 이백 년 가까이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은 정말 놀랍기만 하다. 1948년 미국에서 사계≫ 전곡이 음반으로 제작되고, 1950년 프랑스에서 최우수 클래식 음반상을 받으면서 유럽과 미국에서 비발디 붐을 일으켰다고 한다음악이라는 창작물도 문명의 발전과 그것을 듣고 즐기는 사람들이 있어야 세상에 빛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모든 것이 그렇지 않을까책이 읽혀져야 팔리듯이 음악은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영원히 울려 퍼지는 것.


 흔히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 헨델은 음악의 어머니로 알려져 있고 그렇게 배워왔다여기서 바흐를 음악의 장인에 헨델을 음악의 기업가’ 혹은 벤처 사업가로 보는 비유가 흥미를 끈다바흐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보수와 조건이 나은 곳을 찾아 고용주를 갈아타기도 했다는데 20명이나 되는 자녀를 먹여 살리기 위한 생존전략일 수도 있었으니 예나 지금이나 가장의 입장이란천재적인 음악가의 삶도 근본적인 모습은 보통 사람들과 똑같지 않은가


 그에 비하면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헨델은 당대 음악 양식의 가장 뛰어난 사용자이자 최고의 수혜자였음을 알게 된다비발디가 화성의 영감을 헌정했던 메디치 가문의 후광을 업고 오페라 아그리피나Agrippina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이탈리아 활동의 절정을 맞이하고 다시 런던으로 건너가 영국 왕실의 총애를 받으며 음악가로서 돈과 명성대중적 인기를 거머쥔 행운의 사나이였다이렇게 걸출한 당 대의 음악가들이 서로 만나서 음악적 교류를 했을까 궁금해진다바흐쪽에서 헨델을 만나려고 관심을 기울였지만 헨델의 거절로 만나지 못했단다한 시대를 풍미했던 천재 음악가들도 라이벌 의식을 느꼈을까어쩌면 더욱 풍성한 역사의 한 장면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고전주의 음악에서는 모차르트하이든베토벤의 음악과 삶 이야기가 펼쳐진다모차르트 음악만큼 우리 생활에 친숙한 음악이 또 있을까흔히 많은 예비 엄마들이 태교를 할 때도 가장 많이 듣는 음악이 모차르트의 음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바흐베토벤그리고 바그너의 음악에서 우리는 주로 그 속에 깃들인 인간 정신의 깊이와 힘에 감탄한다모차르트의 음악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신성한 본성이다앞서 언급한 거장들과는 달리그가 그의 재료를 빚은 형식에서는 어떤 고뇌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모차르트는 마치 놀이를 하듯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천진난만한행복한알라딘과 같은 본성을 지녔다.’(P114)


 이것은 19세기 말 노르웨이의 작곡가 그리그(Edvard Grieg)가 모차르트에 대한 평가다다른 것은 몰라도 천진난만함과 행복함을 느끼는 정서는 금세 수긍할 수 있지 않을까겨우 35세의 이른 나이의 죽음에 관해서는 살리에리에 의한 독살 설 등 의견이 분분했지만 문헌이나 정황의 증거로 볼 때 과로사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부분은 마음이 짠해진다이것이 서양 음악 사상 최고의 천재이자 고전주의 시대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평가받는 음악가의 뒷모습이라니.


 낭만주의 음악가로는 가곡의 왕’ 슈베르트를 비롯하여 멘델스존, ‘피아노의 시인’ 쇼팽 등 많은 음악가들을 이야기한다무엇보다 낭만주의 오페라의 양대 산맥인 베르디와 바그너를 비교 분석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1813년 동갑내기이며 두 사람 모두 생전에 조국의 통일을 목격한 점대기만성 형 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저자는 이 두 사람의 예술의 성향을 어떻게 구분 지을까서구 문명이 내놓은 가장 뛰어난 예술 양식이라는 오페라그 속에 담긴 음악이 얼마나 아름답고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지 알고 싶다면 베르디의 음악을현실을 초월한 환상의 세계를 엿보는 기회세계의 비밀을 파악할 수 있는 하나의 상징 부호그 속에 담긴 음악을 비밀의 문을 여는 주문으로 여긴다면 바그너의 음악을 들어보라고 조언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세기말 유럽 음악의 풍경과 러시아 음악미국의 클래식 음악과 역사를 이야기한다위대한 음악가와 그 작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당대의 문화역사문학심지어 철학적인 접근과 사유로 더욱 풍성한 이야기로 클래식 음악을 공부할 수 있었다클래식 음악은 특정한 시대를 결정짓는 흐름이었을까석유 고갈을 걱정했던 20세기 후반의 에너지 전문가들처럼 영국의 철학자 스튜어트 밀은 음악적 조합의 유한성(exhaustibility of musical combinations)’을 들어 음악적 자원의 고갈을 걱정했다고 한다. 5개의 온음과 2개의 반음으로 구성된 옥타브한정된 방식의 조합이기에 오직 소수만이 아름답다는.


 이러한 우려에도 미국의 진화 생물학자 루이스 토마스는 진화의 관점으로 보는 고작’ 100만 년의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인류라는 종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근거로 바흐의 음악을 예로 들어 인류의 미래를 낙관했다고 한다이 정도라면 충분하지 않을까클래식 공백의 시대라고는 해도 바로크 시대부터 고전주의낭만주의현대에 이르기까지 만들어진 음악만으로도 풍요로우며 저변확대까지는 아니라고 생각된다저자의 말처럼 클래식 음악을 접하는데 특별한 문턱이 존재하거나 훈련이 필요한 것도 아닐 것이다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가끔은 걸음을 멈추고 기꺼이 들어 가보자평범한 일상에 활력소를 주고 조금은 특별한 삶의 멋을 주는 클래식 음악은 먼 데 있지 않다이 책은 우리가 그런 멋을 느낄 수 있도록 친절하게 도와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1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기 전에 오랜만에 일드를 보게 되었는데(어떤 내용인지 모르고) 법의학자들의 활약을 다룬 드라마였다. 젊은 여성 법의학자가 주인공이어서 더 신기했었다. 참으로 다양한 소재의 이야기를 다루는 일드의 세계는 접할 때마다 놀랍다. 대충 이런 내용을 다루고 있겠구나 싶어서 이 책이 기대가 되었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는 서울대학교 2013년도 교양 강의 개설로 시작되어 지금은 대형 강의로 발전하였고 더 많은 사람들과 죽음에 관해 고민해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이 책이 나왔다. 제목이 좀 섬뜩한 느낌이지만 법의학자가 하는 일을 이만큼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 있을까 싶다. 법의학자는 무슨 일을 하는지, 사회에서 일어나는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일지 고민한 내용을 전달하고자 했다는 저자의 의도처럼 이해하기 쉽고 잘 읽힌다.


 저자는 의사, 과학자, ‘부검을 하는 법의학자로서 마주한 여러 죽음들의 사례를 들어가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1부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남자는 법의학자로 일하게 된 동기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죽음의 사례를 통해 개인적 불행을 감지하기도 하고 그것을 넘어 사회적 비극을 읽어내기도 한다. 개인적인 죽음이나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사건의 사례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의 맨 얼굴, 우리 삶의 민낯을 이야기한다. 얘기치 못한 갑작스런 죽음에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 그리하여 그 원인을 밝히고 가해자는 죗값을 받도록 밝혀내는 것이 법의학자가 하는 주 임무인 셈이다. 이렇게 사망 판정을 하고 확정이 되면 대법원과 통계청으로 보내져 가족관계를 정리하고 사망 원인은 건강 정책이나 사회제도 등의 자료로 반영되는 일련의 흐름을 알 수 있었다. 죽음 중에 특히 자살은 개인의 내밀한 결정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흐름과 무관할 수 없는 사회적 현상임을 말하기도 한다. 타인의 죽음을 마주하여 신원을 확인하고 사망 원인을 밝혀내는 법의학자는 우리나라에 정확히 40명이라고 했다. 등록된 의사가 12만 명이 넘는 것에 비하면 정말 희소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주검을 통해서 의문사나 갑작스런 죽음의 원인을 규명하는 법의학자란 자신의 소명이 있기에 가능하겠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2부 우리는 왜 죽는가생명의 시작을 어디서부터 보아야 할까 하는 논쟁으로 시작하여 죽음의 변천사죽음의 시점’, 뇌사에 관한 논쟁과 다툼, 연명의료에 대한 분분한 논쟁을 이야기한다. 앞에서 언급했던 일드에서 자주 나왔던 말이 생각났다. 그들 스스로 7D업종이라고 말하는데, 법의학자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대답이다. “미래를 위해서라고. 아무런 말도 없이 갑자기 떠난 사람의 메시지를 가족 등 지인에게 전해주는 것. 의문을 품었던 죽음에 대해 확실하게 원인을 밝혀주는 것이다. 그 메시지를 통해서 남은 사람들은 앞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우쳐 주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미래를 위해서라는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3부 죽음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에서는 죽음은 실패가 아닌 자연스러운 질서라는 것을 깨닫고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 좋은 죽음을 위한 방법 등 2045, 영생의 시대의 이슈를 이야기한다. 영생을 꿈꾸었던 진시황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여 영생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예측도 하는 모양이지만 그것 또한 두려운 일이다. 삶이 만들어낸 가장 훌륭한 발명품은 죽음이라고 했던가. 유한하기에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 고민도 하고 쓸데없는 욕망을 내려놓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아무런 말도 못하고 떠나는 죽음보다는 미리 공부해서 준비하자고 한다. 일본에서 시작된 종활의 사례와 임종 노트를 쓰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I see it now. This world is swiftly passing!

이제야 깨달았도다. 생이 이렇게 짧은 줄을!

-(p209)(마하바라타의 악역 주인공 카르나의 말.)- 


 우리는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경쟁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 나름 열심히 살아 가고 있다고 자부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죽음 따위는 나와 관계없는 이야기라는 듯이 쉽게 이야기하는 일도 잘 없다. 다행인지 요즘 책에서 자주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등 죽음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종종 만난다. ‘서가명강시리즈의 하나인 이 책은 20년간 일해 온 법의학자의 시선과 통찰이 담겨있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죽음이란 나와 별게가 아닌 누구나 맞이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을 인식할 때 두려움은 없어지지 않을까. 죽음을 공부한다는 것은 어떻게 살아갈까 연구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앞으로의 삶의 자세와 어떻게 하면 지금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스스로 묻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억되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 나의 일본 미술관 기행
진용주 지음 / 단추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순례를 떠나는 일만큼 행복한 일이 어디 있을까. 내가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은 일본어공부를 하면서 그들의 문화를 더 알고 싶다는 갈증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미술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책이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사람의 생각이나 말하는 바를 표현하는 통로, 그것은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하나로 통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저자는 왜 미술관에 갔을까. 책이나 잡지를 만드는 일을 하는 이른바, ‘종이밥을 먹고 살아왔던 저자는 반복적인 일상으로 피폐해진 삶을 보상받기 위하여 미술관 여행을 시작한다. 일본 열도 전국에 있는 미술관을 찾아 떠나기를 10여 년 동안 계속한 여정이 이 책에 담겨있다. 좋아했으니까 가능한 것이었다. 갔던 곳을 다시 가기도 했다. 계절을 달리하여 같은 곳을 찾아가 보는 일은 얼마나 설레는 일이었을까. 꽃이 있다가 녹음이 되고 단풍이 들고 마침내는 빈 가지를 드러낸 풍경 속에 놓인 미술관의 모습은 다른 얼굴을 보여줬을 것이다. 그림을 보고 또 무엇을 본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해석이 먼저 따른다.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찾고 또 찾아가서 본 그림에 얽힌 뒷이야기를 접하고 오해였음을 알게 된 에피소드를 풀어놓기도 한다. 그림은 벽에 고정되어 있지 다른 모습으로 바뀌는 일은 없다. 오직 보는 사람의 생각의 변화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이다. 그냥 단순히 미술관을 둘러보는 여행이 아니다. 화가와 그림을 통해서 그들이 말하고자 했던 것을 읽어내고 삶의 사유로 이어진다.

 

칸다 닛쇼 기념미술관

 

 

 

 도쿄에서 태어나 척박하고 황량한 홋카이도의 토카치에서 개척 농민화가로 살다 간 칸다 닛쇼를 소개하며 그의 격투하는 삶을 이야기한다. 베니어판에 그려진 유작이며 미완성 작품인 <>은 당시 시대적 분위기와 혹독한 가난 속에서 분투해야 했던 닛쇼의 절실함을 보여준다. 다 그리지 못한 말의 엉덩이와 뒷다리, 무엇보다 어쩔 수 없음의 체념이 가득 들어있는 눈빛에서 개척농민들의 절박한 삶을 읽는다. 주어진 삶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활달한 청년이었다는 닛쇼의 그림 속에는 개척과 식민의 땅에서 하루하루 버텨야 했던 노동자의 모습이 자주 보인다. 그림에 모든 것을 걸었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는 작품을 통해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저자는 닛쇼를 사적 미술사에 첫 번째로 꼽는 애정을 보이며 그의 절실한 삶을 직접 보고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카나자와 21세기미술관

 미술관은 왠지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나 관심이 아주 많은 미술 애호가들이 많이 가지 않을까 싶다. 가고는 싶었지만(학생 때는 피카소 전시회를 본 기억도 있는데, 미술에서 멀어진 지 오래되었다.) 막상 어색해져서 실천하기는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럴 때 접근하기 쉽고 친숙한 미술관이 있었으면 싶기도 했다.

 

 21세기 미술관은 마을 공원 같은 미술관을 슬로건으로 내걸며 문턱 낮은 미술관을 만들고 싶다는 희망으로 탄생했다. 일본의 많은 미술관이 숲 속이나 산 위에 있는 공원에 만들어졌던 것을 생각하면 대단히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도서관이 아닐 수 없다. 미술에 흥미가 없는 사람도 와서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면 하는 그 바람이 매년 평균 150만 명이 넘게 찾고 있으며 2015년에는 전국 미술관, 박물관 중 방문자 수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니 대단하다.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은 제임스 터렐의 <블루 플래닛 스카이>와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수영장>이라 한다. 전자는 터렐 방이라고도 불리는데 정사각형의 구멍을 통해 하늘과 빛을 바라볼 수 있다. 시시각각 변화되는 밝음과 어둠, 바람과 비와 눈, 구름을 긴 의자에 앉거나 바닥에 주저앉거나 혹은 누워서 바라볼 수 있다니! 또 투명강화유리로 만들어져 색다른 수영장을 체험할 수 있는 아이디어는 얼마나 놀랄만한 일인가. 붙박이처럼 붙어 있는 그림과는 달리 입체적이고 온 몸의 감각을 동원해서 느끼는 미술관이라니, 기존의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장면이다.

 

건축만으론 오래가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사용하는가가 중요하다. 나오시마도 안도 타다오가 처음 건축을 시작했을 땐 사람들이 잘 몰랐다. 여러 예술가가 지속적으로 활동하면서 사람들이 모였다. 이사 오는 사람도 생겼다. 주민 인식이 달라지면서 마을의 정체성도 생겼다. 커뮤니티의 힘이다. 지역은 건축과 삶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자연환경, 역사적 재산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빌바오의 이미지를 변화시킨 것은 구겐하임 미술관이지만, 이미지를 강화시킨 것은 빌바오가 가진, 요리와 같은 독자적 바스크 문화였다.”(P247)

 

 단지 이름 있는 건축가의 힘만이 아니라 지역민의 애착과 커뮤니티의 힘도 같이 실렸을 때 미술관 건축이 지역을 부흥시킬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쳇바퀴 같은 일상을 사느라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구나 싶었다. ‘우리 마을에는 어떤 미술관이 있는가?’를 궁금해 하고 그 속으로 참여하고 공유할 때 우리 삶은 조금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사가와 미술관

 칸사이 지역을 기반으로 한 사가와택배가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그동안 모은 컬렉션을 바탕으로 1998년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가장 큰 호수인 비화호() 가까이에 지었지만 미술관 부지의 대부분을 물로 채워 섬처럼 보이는 외관이란다. 2007년에는 교토를 대표하는 장인 가문 중 하나인 도예 가문 라쿠키치자에몬의 15대 당주와 협력해서 다실과 전시실을 둔 신관을 지었다고 한다. 라쿠키치자에몬이 디자인한 신관은 센노리큐의 말에서 가져온 슈와리(守破離)’ , 지키고, 부수고, 마침내 떨어진다 는 뜻으로 다도, 무도, 전통예술 등을 배우고 익히는 자세를 일컫는 정신이 깃들어있다는데. 얼마 전 다도에 관한 책을 읽은 적도 있어서 솔깃해진다.

 

 

 

사가와 미술관의 다실 모습.

 

 물과 빛이 만나 일렁이고 그림자들이 춤을 추는 미술관의 풍경을 얘기하는 부분은 이렇게 멋진 미술관도 다 있다니 정말 부러웠다. 그림이 아니어도 풍경을 보고 삶의 기쁨과 충만함을 얻을 수 있다면 이런 호사야말로 누려볼 만하지 않은가.

 

와카야마 현립근대미술관

  펜의 힘은 칼보다 세다는 말이 있다. 그림은 어떨까. 그림의 힘을 보여주는 이시가키 에이타로의 <K.K.K>가 나오게 된 배경을 소개한다. 19308월 인디애나주의 소도시 마리온에서 백인 인종주의 단체 KKK(Ku Klux Klan)에 의해 흑인 청년이 살해되는 일이 발생했고 노래로 만들어졌다.

 

남부의 나무에는 이상한 열매가 열린다네

잎과 뿌리에 피가 흥건해

미풍에 검은 몸뚱이들이 흔들리네

포플러 나무에 내걸린 이상한 열매

-노래 <Strange Fruit>중에서(P290)

 

 

 

이시가키 에이타로의 <K.K.K>

 부당한 폭력에 분노하고 가엾게 여기는 인정이 있었기에 세상에 알려졌을 것이다. 그것은 나의 일이 될 수 있다는 역지사지의 공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어떤 자리에서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느냐에 따라 사건의 전후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금세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 세상에 말을 거는 것을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글로 음악으로 그림으로 표현하는 문학가와 예술가들이 있기에 세상은 조금씩 좋은 쪽으로 변화되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림의 힘은 무척 세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카즈키 야스오 미술관, 야마구치 현립미술관

 

본 것은

보았다고 해라(P396)

(시인 이시하라 요시오의 <사실>의 한 구절)

 

짧은 시구가 강렬한 울림을 준다.

보고도 못 본 척 하고 안 보고도 보았다고 억지를 부리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 시구처럼 본 것을 본 대로 그린 화가 카즈키 야스오를 소개한다. 카즈키 야스오는 19434, ‘아시아-태평양 15년 전쟁의 막바지에 징집당하고 패전 후에는 시베리아로 끌려가 억류당하게 된다. 만주 침략과 중일전쟁에서 침략자이자 지배자, 학살자로 군림했던 일본인들의 악행에 대한 복수로 철조망에 걸린 붉은 시체를 보고 전쟁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한다. 억류에서 풀려 돌아온 카즈키 야스오가 보게 된 히로시마의 검은 시체를 앞세워 피해자임을 자처하는 모습은 가증스러움이었다. <수경>, <그물침대>는 부모에게 버려진 상실감과 고독이 잘 드러난 작품이며 <시베리아> 연작은 노예처럼 팔려나간 60만 명의 군인들의 참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시베리아를 그리면서 나는 다시 시베리아를 체험하고 있다. 나에게 시베리아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나에게 달려들어 나를 꿀꺽 삼키고 나를 휘몰아 갔다. 이번에는 내가 시베리아를 캔버스 속에 넣어, 비틀어 엎어눌러서라도 그것을 파악하려고 한다. 육체가 시베리아를 체험하고 있을 때, 정신이 그 의미를 파악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가혹하고, 너무나 어지러웠다. 나의 군대 생활과 포로 생활은 다 해야 고작 4년 반에 지나지 않는다. 벌써 그 네 배의 시간을 4년 반의 체험을 반추하는 것에 썼지만, 아직도 그것을 잘 표현할 수 없다. 단지 내 육체와 기억에 각인된 상처를 단서로, 내가 그때 느끼고 보던 것을 최대한 충실히 보여주려 할 뿐이다.”(P409)

 

그렇게 보여주는 것으로 지도층이 얼마나 바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살아서는 안 될 것이다. 현실과 타협하려는 우리에게 카즈키 야스오는 다시 한 번 일침을 놓는다. 오늘을 오늘로서 사는 것. 산다는 것은 나에게 그림을 그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밖에 스스로에게 납득할 수 있는 삶의 방법은 없다. 오늘은 오늘의 그림을 그린다.”(P411).

 

해박한 미술사에 얽힌 역사적 지식과 화가, 건축가 등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에 감탄했다. 미술을 잘 모르지만 읽어가면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아름다운 풍경, 그림 속에 들어있는 안타까움과 고통의 이야기에 공명할 수 있었다. 좋아하다보면 애정이 생기기 마련이고 전문가가 되는 모양이다. 또 저자의 감수성은 어떻고. 왜 미술관에 가는 걸까 했는데 이제 알았다. 우리가 책을 읽고 마음의 고통이나 상처를 치유 받듯이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 보아서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자꾸 들여다보면 그림이 말을 걸지는 않을까. 서로 대화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모두 가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멋진데 다 소개할 수 없는 것이 유감스럽다. 특히 눈 내리는 풍경 속의 아오모리 현립미술관, 산속의 무릉도원을 지향했다는 미호뮤지엄, 석양이 아름다워 폐관시간이 일몰 후 30분 후로 맞추어져 있다는 시마네 현립미술관은 꼭 보고 싶을 정도다. 삶을 성장시키는 깊이 있는 여행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라는 것을 알려주는 열정과 내공이 깃들어 있는 미술관 여행기였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골목 도쿄 - 공PD의 아주 깊숙한 일본 이야기
공태희 지음 / 페이퍼로드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골목길을 소재로 한 노래나 시가 얼마나 많은가.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골목길에 대한 향수가 있을 것이다. 사실 오래 전 골목에 대한 내 기억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여고시절 어느 토요일 방과 후에 자취방으로 신나게 뛰어가다가 골목길에서 이상한(?) 남자를 발견하고 놀라고 무서워서 몇 시간을 주변에서 뱅뱅 돌다가 해가 다 지고서야 집에 들어간 기억. 중고등학교 시절 여학생이라면 누구라도 흔히 경험하지 않았을까. 다행히 그 이후 골목에 대한 기억은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우리의 민속촌 골목이 그랬고, 5년 전 가족여행으로 간 교토의 골목이 그랬다. 특히 가랑비 내리던 기온 마치의 고즈넉한 풍경의 그 골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빡빡한 일정으로 수박 겉핥기에 그쳤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천천히 오래 걸어보고 싶다. 그 후 두 번의 도쿄 여행을 하고 만나게 된 골목 도쿄가 정말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했던 여행과 몹시 대비되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또 읽고 나서도 어떻게 리뷰를 써야 할지 고민했다. 너무 재밌어서 어떻게 제대로 표현해야 할지 난감했다. 음악 방송 PD가 도쿄를 다룬 첫 책이란다. <PD의 여행 수다>에 스스로 출연 신청을 했다가 그가 자신 있는 일본 이야기를 하고 예상외의 큰 반응에 책을 내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일본 입국 도장을 무려 이백 번이 넘게 찍었다는 여행 덕후답다. 골목 이야기만이 아니라 일본의 역사, 철도, 음식 등 깊이 있는 이야기, 펄펄 살아있는 구수한 입담이 끊이지 않는다. 어서 빨리 가보고 싶어 근질근질할 정도로 실감나게 이야기한다. 나는 도대체 어디를 돌아다닌 거지. 대로와 빌딩숲 사이를 돌아다녔으니 오래된 골목은 생각지도 못했다. 도쿄를 가기 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몇 군데라도 가 보았을 텐데. 그래 다음에 갈 때 가면 된다. 두 사람이 어깨를 붙이고도 겨우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골목, 그 안에서 오랜 세월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단골 고객과 부대끼며 살아온 그 골목 사람들을 꼭 만나보고 싶다.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히트를 친 인기 드라마 <심야식당><고독한 미식가> 이야기로 시작한다. 나도 물론 두 드라마를 보았다. 좁디좁은 디귿자형의 카운터석에 삼삼오오 손님이 들어온다. 서로 안부를 묻고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원하는 메뉴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어라, 실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심야 영업 역시 드높은 인건비 때문에 가능한 곳이 몇 군데 없고 드라마적 상상력과 낭만이 지나친 환상에 불과하다며 그것에 속아서는 안 된다고 너스레를 떤다. 바쁘고 지친 일상에 대한 위로를 받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은 드라마의 성공이 현실과는 괴리가 있었구나 싶다. 실제 위치한 골목은 신주쿠 가부키초의 골든가로 작고 아담한 골목이란다. 어른 두 명이 어깨를 딱 붙이고 걸으면 꽉 찰 정도의 작은 이 골목이 신주쿠의 가장 큰 길인 야스쿠니대로에서 불과 30여 미터 거리에 있다고 한다. 이런 골목길이 도쿄 어디에나 있다는데. 이쯤 되면 우리의 대도시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우후죽순 들어서는 빌딩들에 밀려 정작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가장 먼저 쫓겨나는 상황을 두고 누구를 위한 개발이냐고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골목이 골목으로 살아남는다는 건 건강한 도시생태의 지표와 같은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도쿄의 골목은 확실히 축복입니다. 여전히 번성하는 도쿄 같은 대도시에서는 서민들이 일상을 영위하는 골목길도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생각해보면 이건 조금 슬픈 일이기도 합니다. 대도시가 아니고서는 골목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얘기니까요. 도쿄의 골목이 여전히 건재한 반면 역시 대도시인 서울의 골목은 하루가 다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서울과 도쿄, 사소하게 보이는 이 차이는 의외로 두 거대도시가 지닌 다양성의 차이를 만들어냈습니다. 도쿄의 다양한 취향의 총합은 확실히 우리보다 커 보입니다.’(p12~13)


 대를 이어 오래도록 이어가는 가업, 오래된 건물이 지금도 건재하고 있다는 것은 무척 부러운 일이다. 무엇이든 새로 만들고 높이 만들려는 우리와 분명히 차이가 있다. 편하다는 이유로 단지 형태로 지어지는 아파트촌을 볼 때마다 착찹한 마음 금할 수가 없다. 꼭 필요한 개발은 피할 수는 없겠지만 간직해야 할 것은 최소한으로 남겨두어야 하지 않을까. 나고 자라고 이웃을 이루며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며 수 십 년을 살았는데 다른 사람이 그곳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허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돈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면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세계의 도시 뉴욕보다도 더 다양한 취향이라는 도쿄에서는 어떻게 이런 골목이 넘치는 것일까.   <고독한 미식가>그저 아저씨가 밥 먹는 이야기라고 하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뭔가 있을 거라고 상상하며 솔깃해지기 마련이다. 실상 알고 보면 대단한 가게가 아닌 평범하고 수수한 곳이다. 역에서 가까운 접근성과 아무 때나 들어가서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혼밥과 혼술의 원조는 일본이 아닐까. 그들이나 우리도 마찬가지로 인간관계의 힘든 현실을 밥 먹는 것이라도 좀 편하게 먹어보자는 심리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짠해지기도 한다. 이것이 두루두루 일본 동네식당의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고. 한 동네에서 십 수 년을 살아가는 일본이기 때문에 단골이 소중하고, 50100년을 넘어 노포로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상이 다니던 닌교초, 에도 시대 제일 번화가 니혼바시, ‘긴자 오브 긴자의 흔적이 남아있는 지하골목이 있는 긴자4번가로 골목 덕후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일본의 역사와 어우러진 도시의 역사 이야기도 정말 재미있다. 에도시대만 해도 도쿄의 변두리에 지나지 않았던 긴자가 도쿄를 대표하는 곳이 되었고 도쿄의 스카이라인을 책임지는 신주쿠나 롯뽕기, 도쿄만 일대를 매립해 건설된 오다이바는 도쿄의 근-미래를 보여준다. 그렇게 거대한 빌딩숲 속에 조그만 골목들이 얼키설키 숨 쉬듯 살아있다니 오묘한 조화가 아닐 수 없다. 외국인은 물론 각지에서 찾아드는 일본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니 부러운 광경이다. 니혼바시, 신주쿠, 긴자 등 도쿄의 큰 도시를 돌아보면서 사람들 물결로 넘치던 모습은 경이롭고 생동감 있게 느껴졌다. 그 자체만으로도 일본의 힘이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의 천국 일본은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一生懸命,客?ばれるような?かない正直商?がけなさい

정성을 다해 고객이 즐거워하도록 거짓을 벗어버리고, 솔직한 장사를 마음에 새길 것.

   -(p92)-


 니혼바시에서 무려 5대째 가업으로 140년이 되어가는 요시노스시의 선대의 가르침이 묘한 울림을 준다. 오랜 세월 동안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않으며 사업을 확장하지 않고 이렇게 소박한 가르침을 되새기면서 운영할 수 있는 장인 정신이 우리에겐 몇이나 될까. 자본주의의 한 가운데인 21세기에도 이러한 정신으로 무장한 노포들의 힘이 오늘의 일본을 이루지 않았을까. 술꾼들이 바글바글한 신주쿠의 오모이데요코초?의 정겨운 모습은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가보고 싶을 정도다. ‘추억 골목이라는 이름도 얼마나 멋진가. 딱 쇼와시대의 모습을 간직한 좁은 골목이며, 단골과 뜨내기를 차별하지 않는 곳, 마음껏 사진 찍고 마음껏 마셔도 되는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환상이라는 <심야식당>이 없으면 또 어떤가. 골목에 대한 향수를 마음껏 느끼고 올 수 있으면 그만이지. 오래된 가게와 골목에 대한 행간에 가득한 애정이 우리의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함께 살아가며 역사를 만들어가는 곳, 골목은 우리들 부모 형제들의 삶의 터이기에.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