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중서부의 부엌들
J. 라이언 스트라돌 지음, 이경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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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처럼 음식과 셰프에 관한 이야기가 넘치는 시절이 또 있을까 싶다. 삼 년 전 현재 미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셰프가 쓴 <예스, 셰프>를 읽은 적이 있다. 글쓴이 마르쿠스는 묘하게도 이 소설에 나오는 셰프 에바 토르발처럼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다. 다행히 스웨덴의 양부모를 만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다. 축구를 엄청 좋아했는데 몸을 다치면서 할머니의 요리를 돕다가 진로를 바꾸고, 혹독한 과정을 거쳐 백악관 초빙 셰프로 우뚝 서게 되는 성장기이며 요리 이야기다. 그가 살아온 삶이 결코 만만치 않은 험난한 여정이었기에 가슴 찡한 감동의 여운이 한 동안 계속되었다. , 셰프의 길도 예술가 못지않은 열정과 인내, 정성이 필요하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꼈던 시간이었다.


 이 작품의 배경은 미국 중서부 미네소타 주 덜루스 지역이다. 문장에서 위트와 능청스러움이 묻어나서 꽤 재미있다. 특히 형제의 우애가 좋아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라르스가 지독한 냄새가 나는 루테피스크를 만들게 된 것은 순전히 도러시 세아보리 때문이다. 어느 날 그녀가 빙판길에 미끄러져 엉덩이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열 두 살이던 라르스와 그 아래 동생 얄이 떠맡게 되었다. 아버지가 동네 사람들에게 루테피스크를 먹게 해 주겠다고 호언장담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루테피스크는 말린 대구를 삭혀 만든 톡 쏘는 냄새의 노르웨이 전통 요리라고 하는데, 왠지 우리가 먹는 홍어가 떠오른다. 쾨쾨한 냄새와 톡 쏘는 홍어. 이 작품은 읽어가는 동안 오감을 자극한다. 보이진 않지만, 상상하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반 친구들도 그를 피했고 10대 시절 내내 연애도 제대로 못해보고 열여덟 살이 되자 루테피스크 전통이고 뭐고 인내심도 바닥이 난다. 반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루테피스크를 만드는 솜씨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어느새 주방의 작은 마법사로 성장한다.


 오로지 셰프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고향 덜루스를 떠난 라르스는 제빵 기술,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미국요리 등을 모두 섭렵하면서 십 년을 보낸다. 헛매커라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다가 키가 호리호리한 미모의 신시아를 만나 금세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을 최고로 잘 고르는 똑똑한 웨이트리스다. 이 얼마나 환상적인 조합인가. 스물여덟 살까지 총각딱지도 못 떼던 순수한 청년이 사랑에 빠져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게 되고 이들의 애정 전선은 바야흐로 핑크빛이다. 딸 에바가 태어나자, 스스로 감격하여 펑펑 울던 라르스. 자신이 만든 음식을 아기에게 먹이고 싶어서 안달을 한다. 태어난 지 두 달 된 아기에게 돼지고기 항정살로 만든 음식을 먹이려 하다니. 딸아이를 진료한 의사는 이 십 개월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라르스는 그때까지 언제 기다리느냐며 끔찍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냄새라도 맡게 해야 한다면서 요리하는 그들 옆에 아기를 두며 요란을 떤다. 여기까지는 보통 가정의 소소한 행복이 느껴진다.


 불행은 어느 날 문득 예고 없이 찾아온다더니, 새 업무로 와인 출장을 갔던 신시아는 제러미와 눈이 맞아 이혼을 요구하는 편지만을 달랑 보낸다. 아이를 가진 것이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는 말과 함께 자기를 찾지도 말고 전 재산을 모두 넘기겠다며. 그 후 요리만이 자신의 구원이자 기쁨이었던 라르스는 장보기를 하고 오다가 심장마비로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안타까운 죽음을 맞는다. 엄청 사랑했던 딸 이제 6개월 된 에바를 남기고. 말도 할 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에바의 삶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급반전된 라르스의 죽음 이후 이제 에바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린 아기였던 에바를 잘 돌봐주었던 얄과 피오나 부부는 에바의 부모가 된다. 열한 살이 된 에바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그 외로움을, 세상에서 제일 맵다는 칠리 고추 초콜릿 아바네로를 키우는 낙으로 살아간다.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들에게 매운 칠리 고추를 넣은 음식으로 복수를 하며 짜릿한 기쁨을 느낀다. 음식점에서 손님과 매운 음식을 먹는 내기를 벌여 돈을 벌기도 하는 등 괴짜가 되어간다. 이후에는 에바가 이야기의 전반에 걸친 주인공이라는 느낌보다는 조연처럼 비치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인연이 되기도 하고 스쳐가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피오나의 언니네 가족 등 다양한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비교적 안정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에바는 어떻게 셰프가 되어가는 걸까. 특별히 요리 수업을 받을 기회도 없었는데.

우연히 남자 친구 윌 프레이거와 음식점에서 데이트를 하다가 셰프로부터 미각의 천재라는 칭찬을 듣는다. 음식에 로즈메리가 보이지 않지만, 타고난 후각과 미각으로 그 맛을 알아내고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척척 맞춘다. 그 인연으로 주방에서 일을 하게 된다. 최고의 재료를 사용하고 그 신선도를 위해 직접 키우고, 온갖 노력을 하는데 그 과정은 가히 예술가로 태어나는 과정이나 마찬가지다. 요리 대회의 심사위원이 되는 등 점차 유명한 셰프로 알려지기 시작한다. 급기야는 에바의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3~4년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귀한 존재가 되고.


 한편 아무런 죄책감 없이 홀가분하게 어린 에바를 두고 떠났던 신시아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 작품 마지막 장의 더 디너는 에바가 셰프로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만찬에 초대되어 에바의 요리를 맛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얼마나 맛있는지 그 표현을 보면 그 음식이 눈에 선하고 침이 고일 정도다. 오랜 기다림과 우여곡절 끝에 에바와 만나게 된 신시아(신디)는 라르스를 안다고 하면서 에바와 가족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자신을 꼭 빼닮은 에바를 보면서 엄마임을 밝히지 못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리는 것으로 끝난다.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닌 담담한 이야기로. 안타깝지만, 지금껏 살아온 것처럼 각자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결핍이 불행을 부르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없는 살림을 살면서도 최선을 다해 사랑으로 키워 준 삼촌 부부와 친척들이 그 역할을 대신했기에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빛나는 셰프로 성공한 건 아닐까. 또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정성을 기울인 결과가 아닐까. 아기의 똥냄새가 싫어서 좀 더 나은 사람을 찾아 더 행복하게 살고 싶었으나, 세상은 그렇게 가만히 두지 않았다. 뭇 남자들에게 시달림을 받고 마음이 너덜너덜 해져서야 옛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은 그렇게 뒤늦게 철들며 성숙해지는 걸까. 이는 소설속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이도 하다. 저자 J. 라이언 스트라돌은 2015년 이 작품으로 데뷔했다 한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문체와 위트 있는 문장은 속도감 있게 읽히고 몰입하게 되는 마력이 있다. 각종 요리 레시피는 물론 삶과 사랑, 일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담담하고 유쾌하기도 하고, 가슴 찡한 감동도 들어있다. 아름답고 빛나는 셰프로 성장한 맛있는 인생, 맛있는 요리 이야기 이후의 그의 작품이 너무 궁금하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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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의 일주일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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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다는 메이브 빈치의 이 작품을 티저북으로 만나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 평소에 접하기 어려웠던 아일랜드 소설이라는 점과 제목에서 어떤 운치가 느껴졌기에 호기심과 궁금증을 가지고 몰입할 수 있었다. 첫 배경은 아일랜드 서부의 스토니브리지의 라이언 씨 농장의 풍경으로 시작이 된다. 내겐 아직 미지의 세계인 아일랜드의 풍경을 행간에서 찾아 떠올리게 된다. 스토니브리지는 경치 좋은 전형적인 시골이다. 라이언 씨 농장의 아이들은 각자 맡은 일이 있다. 치키의 언니 메리, 캐슬린, 치키의 남동생 브라이언, 아들 둘은 서부의 큰 도시로 나가 일을 하고 있다. 비교적 평화롭게 보이는 농장의 풍경인데, 농사만으로 가족 전체가 살아가기에는 힘에 부쳐 제각각 다른 일을 해야만 했다. 눈치가 있는 치키는 편물공장의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미국인 미남 청년 월터 스타와 만나게 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아주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진다. 지구상에서 이 곳 스토니브리지가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라고 말하는 미청년 월터는 치키에게 반해서 같이 여행하자고 한다.


인생은 한 번뿐이야, 치키. 부모님이 우리 인생을 대신 살 수는 없어. 우리 인생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아야 해. 우리 부모님은 내가 이런 낯설고 황량한 땅에서 돌아다니기를 바랐을 것 같아? 신나게 즐기기나 하면서? 아니, 부모님은 내가 컨트리클럽에서 좋은 집안의 딸들이랑 테니스나 치기를 바라지. 하지만 여기가 내가 있고 싶은 곳이야. 간단해.”(P12)


 이것저것 재고 고민하지 않는 월터의 단순한 성격이 보인다. 그렇게 육 주 동안의 찬란한 시간을 보내고 치키는 미국으로 돌아가는 월터를 따라가려고 마음먹는다. 가족들은 노발대발하며 치키를 만류하며 난리가 났다. 결국 아무런 축복도 받지 못한 채 떠난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이 엄마의 말대로 지나가는 열병이었음을 확인하는데 오래 가지 않았다. 감동과 환희로 가슴 벅찼던 둘의 사랑은 차갑게 식는다. 월터는 그동안 아주 행복했지만, 이제는 끝났다고, 그저 사랑이 피어났다가 사랑이 죽은 것뿐이라고 한다. 비현실적인 현실의 버거움을 동화처럼 꾸며 편지를 보내면서 그 힘으로 버틴다.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이 끝나면 많은 이들이 많은 상처를 부여안고 어찌할 줄 모른다. 하지만예상과 달리 치키는 씩씩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치키는 일자리를 얻으려 노력했고 운 좋게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캐시디 아줌마를 만나게 된다.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하며 열심히 살아간 세월이 그 짧은 분량 속에 벌써 이십 년이 흐른다.


 동화 같은 달콤한 거짓말은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잔잔한 일상에 파고들어 그것을 파헤치게 만든다. 세상엔 비밀이 없다고. 조카 올라와 브리짓이 미국 이모네로 놀러 온다는 날짜가 시시각각 다가오자 고민에 빠진 치키는 캐시디 아줌마에게 털어놓게 되고, 월터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해서 위기를 모면한다. 참 대단한 순발력이다. 어쨌든 이 반전으로 좀 편안해진 치키는 고향에 갔다가 어린 시절 자신의 놀이터였던 스톤하우스의 미스 퀴니를 만나게 되고 호텔로 개조하자는 꿈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이 집을 호시탐탐 노리던 이웃 오하라 집안에게 넘기지 않으려던 미스 퀴니의 꿈은 치키가 이 집에서 살았으면 하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는 말을 듣고 감동한다. 치키의 친구 눌라가 가정부로 일하던 집이기도 했던 스톤하우스는 많은 사연들이 거쳐 갔다. 사랑에 빠진 치키가 미국으로 달아났듯이 눌라는 임신하게 되어 이 집을 나가고 그 아이가 리거다. 이렇게 스톤하우스가 호텔로 개조되어 오픈하기까지 치키와 리거, 올라는 창업 멤버가 된다.


 친구들과 고깃덩이를 훔치고 온갖 말썽을 부리며 엄마의 속을 썩이던 리거는 치키의 도움으로 스톤하우스에 오게 된다. 이런 낡은 집을 호텔로 개조한다니 미친 짓이라 여기던 리거는 열심히 시키는 대로 일을 하며 분위기를 파악하게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면서 엄마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걱정할 정도가 된다. 열여덟 살의 청춘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과 같다더니, 다시 여자 친구 카멀이 임신했다는 소식으로 깜짝 놀라게 한다. 조카 올라는 컴퓨터를 전공한 유능한 인재로 런던에서 일을 하다가 이모 치키와 합류하게 된다. 삶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이라더니, 1년만 있어 보기로 했던 올라는 이 곳에 정이 들어 더 남아있고 싶어 한다. 첫 사랑에 실패한 치키는 어디에 그런 노련함이 있었던지, 갑작스레 닥친 모든 일을 침착하게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 마치 기적 같이. 동굴을 탐사하고, 절벽을 오르며 새들의 둥우리를 찾아내며 자연 속에서 놀았던 경험 때문이었을까.


 호텔 오픈을 앞두고 안타깝게도 미스 퀴니는 평온한 표정으로 생을 마감한다. 누구보다도 오픈 하는 것을 보고 싶어 했는데. 미스 퀴니의 말대로 바다, 평화, 추억이 적당하게 있는, 아름다운 경치 속에 완성된 스톤하우스가 보이는 듯하다. 갑자기 닥친 사랑으로 기쁨에 휩싸이고 어이없는 결말을 맞는 것이 경험적인 우리네 삶이다. 그 과정은 자녀에게 좋지 못한 환경을 제공하기도 하면서 상처를 입힌다. 인생은 언제나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크고 작은 일을 안겨줌으로써 사람을 성숙하게 한다. 실수나 실패를 비난하거나 벌을 준다고 해서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비록 실수를 했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보듬어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주며 사랑으로 감싸는 정감어린 이야기였다. 아일랜드에서 가장 사랑 받았다는 메이브 빈치의 장편 소설로 치키, 리거, 올라 이 세 편만 들어있다. 참으로 따뜻한 소설이다. 꿈과 희망, 사랑의 총합으로 멋진 호텔로 탈바꿈한 스톤하우스에서 그 겨울을 보내는 일주일의 주인공들은 어떤 사연을 갖고 찾게 될까, 또 어떤 반전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지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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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처럼 신화 - 스토리텔링 세계신화 아시아클래식 7
김남일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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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는 신화라면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우리 인간 세계와는 좀 먼 세계의 이야기로 생각했는데,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다시금 들었던 생각은 신화란 알게 모르게 우리 삶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참 신기하다. 아스라한 기억 저편에 유년의 기억이 떠오른다. 새벽녘 어스름에 장독대 앞에서 두 손을 모아 무언가 빌고 계시던 엄마의 모습.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이 책을 읽으며 되살아나는 것도 경이로움이다. 그렇게 신화는 우리의 삶에 면면히 이어져 왔고 우리의 마음속 깊이 각인되어 왔던 것이다.


 과학기술 문명의 발달로 첨단을 달리고, 우주선을 발사하는 이 시대에 신화가 통하는 세상인가 의아하기도 하다. 하지만,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여보면 신화의 그림자는 여전히 우리가 사는 세상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의 편리한 발이 되어주는 생활필수품 자동차의 이름에 신의 이름이 들어있고, 가장 많이 팔리는 자양강장제도 바카스신의 이름이 붙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인도가 최근 개발했다고 발표한 대륙간 탄도미사일 아그니-5 조차도 막강한 위력을 지닌 불의 신 아그니에서 비롯되었단다. 마치 소유하는 물건에도 신의 능력을 빌어 강하고 완벽하게 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반영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신화란 우리 인간세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다루는 신화는 그 수도 다양하고 폭이 넓다. 동서양의 건국신화, 영웅신화 등을 아우르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중에는 익히 알고 있던 것도 있지만, 처음 알게 되는 이야기도 있어 신화의 세계가 이렇게 이야기가 풍부하구나, 감탄하게 된다.


 제 2신화 이렇게 읽어도 된다에서 중남미 3대 문명 중 하나인 마야 문명을 대표하는 신화 역사서 포폴 부에 전해지는 신화를 소개한다. 여기서 오늘날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공동주택 층간소음의 뿌리를 신화에서 연상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놀라웠다. 마야 문명 사회에서 공놀이 할 때의 소음을 농부들이 농지를 정리할 때 내는 소란스러움으로 해석하여 그 소음이 지하세계의 신들을 분노케 만들었다는 논리다. 이렇듯 신화의 세계를 알면 현실의 생활에서도 이웃과 다툴 일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어떤 세계를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을 가질 수 있고, 그만큼 포용력 있는 인간으로 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신화는 과학적인 잣대로 비교할 수 없다. 깃털이 몸속으로 들어가 임신을 하게 되거나, 유화가 햇빛을 받아 주몽을 낳는 일, 알란 고아가 달빛의 정기를 받아 임신하는 몽골 신화가 어떻게 과학적인 논리로 설명 할 수 있겠는가. 신화란, 사실이냐 아니냐의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다.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죽는다는 것은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거기에 두려워할 만한 것은 없다.”(p25)고 했다. ‘죽음이야말로 신화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근거이며 원천임에도 간단히 무시하고 마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신화는 상징과 은유의 언어이기 때문에 과학의 사실적 언어로는 읽을 수 없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느꼈던 부분은 신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온갖 부정적인 모습, 이를테면 질투, 근친상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살인 등 도덕성의 부재에 대한 점이다. 신들은 인간 위에 군림하면서 이렇게 행동해도 되는 걸까.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하는 건 아닐까. 신화를 통해서 대립과 갈등이 무수히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인간세상을 들여다보며 참조 할 수 있다. 누구나 행복하고 기쁜 일만 있는 태평성대 일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온갖 사술(邪術)과 무질서의 범람은 피할 수 없는 인간세상의 조건임을 알 수 있다. 신화 또한 인간의 상상 속에서 나온 이야기니 어쩌면 인간세상과 다를 바 없는 우리의 삶과 닮은꼴 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신들이 하던 노동을 대신 시키기 위해서 인간을 탄생시켰다는 메소포타미아 신화는 차라리 솔직하다.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신을 만들었지만, 인간이 늘어나자 덩달아 불평불만도 늘어났을 것이다. 인간들이 불평하는 소리에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게 되자, 인간들을 없애버리려고 홍수를 일으킨다. 가장 유명한 것이 <노아의 방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신화나 인간세상의 이야기나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 인간들끼리 싸움을 벌이고 여러 가지 이념을 내세워 테러를 일으키고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는 세상이다. 신이라고 해서 따뜻하지도 않다. 오히려 불같은 성격에 한 치의 너그러움도 없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내세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모두 제거한다.


 흔히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동일선상에 있다고 한다. 신화에서도 그러한 징후를 찾을 수 있다. 사체화생(死體化生)신화 라고 할 수 있는 하이누웰레 신화가 그것이다. 하이누웰레가 죽은 후 시신을 묻은 곳에서 구근이 자란다. 죽음은 또 하나의 생명을 창조한 셈이다. 인간에게 유용한 작물이 말이다. 북미 인디언들에게 가장 귀한 두 가지 작물인 옥수수와 담배의 기원에 관한 신화도 그렇다. 그렇게 죽음 뒤에 소생하는 생명, 생물의 창조 이야기가 결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왠지 무시할 수 없는 그 무엇은 인류에게 심어진 신들에의 경배가 면면히 이어져 온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사체화생(死體化生) 신화는 농경신화 뿐만 아니라, 세계의 무수한 창세신화 중에도 그런 모티프를 찾을 수 있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신화가 지닌 스토리텔링은 이제 국가적인 문화유산으로도 내세울만한 무기가 된 것 같다. 서사시에 관한 한 풍부한 전승을 보이지 못했던 중국이 오늘날은 사시와 장편서사시가 풍부한 나라가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중국 내 많은 소수민족을 중국의 이름으로 포함했기 때문이다. 수 천 년 간 주변의 오랑캐로 업신여기던 그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취한 행동이다. 장족(티베트족)<게세르>, 키르기스족의 <마나스>, <장가르>를 중국 민족의 3대 서사시로 간주하고 앞의 두 가지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고 하니 그 약삭빠름이 놀라울 따름이다. 또 악몽의 신화라 불리는 현대의 신화나치즘을 언급한다. ‘다른인간과 자연에 대한 자신들의 지배와 억압을 정당화하기 위한 합목적적 도구였다.


 신화는 도처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학작품, 영화, 음악 등 우리가 누리고 있는 각종 예술 작품에 끊임없이 재현되고 있다. 사라져가거나 잊혀져가는 신화적 유산인 문화재를 되살리는데 시인, 예술가, 철학자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특히 켈트의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아일랜드 신화와 전설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쿠훌린에게 대단한 애착을 보였다. 다름 아닌, 영웅 쿠훌린을 통해 아일랜드 민중의 집단적 정체성을 환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인문학이 시대의 흐름을 타고 되살아나듯이 신화 또한 꽃처럼활짝 피어날 것이다. 과학 문명은 첨단에 첨단을 달리고 있는 시대이지만, 인류에게서 이야기를 빼앗아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저자의 해박하고 다양한 신화에 대한 지식에 다시 한번 놀라고, 상상의 즐거움은 덤이다. , 이건 말도 안 돼, 하면서도 몰입하는 자신을 본다. 신들은 멀리 있지 않다. 항상 우리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풍성한 상상력의 세계로 안내하는 신화의 세계에서 삶의 지혜와 의미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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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5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박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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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내가 작년인가 야구가 나오는 일드를 본 적이 있었다. 회사에 소속된 야구팀들이 시합을 벌이는 장면이 많이 나왔는데, 야구선수를 좋아하는 연인의 이야기가 어울려 더욱 흥미로웠다. 이참에 야구에 대해 공부해 볼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럴만한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여기서는 야구만이 아니라 별 관계없을 것 같은 생뚱한 다른 이야기도 나온다. 좀 능청스럽고 빤하다고 해야 할까. 소년이 들어서는 안 되는 좀 야한 이야기도 서슴없이 대화하는 장면이 있어 당황스럽기도 하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작품의 초반부는 그래서 더욱 지루한 느낌이다. 분명히 한글인데, 의미는 모르겠고 글자만 겨우 읽어내는 기분? 이다. 내가 우리의 작가 이상의 작품을 읽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계속 읽을 수밖에 없고. 좀 시간이 지나면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 온통 야구 이야기다.


 배경은 1985, 만년 꼴찌 신세이던 일본의 한신 타이거스가 일본 시리즈에서 우승하는 이변이 생겼는데, 어이없게도 선수들이 줄줄이 그만두면서 야구가 세상에서 사라져버린다는 설정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광팬들에게는 실로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겠지. 이렇게 야구가 없어진 세상에서 가상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야구에 대한 일곱 가지 단편이 들어있다. 900편 쓰기, 포르노 100편 보기에 도전하는 초등학생, 카프카야말로 열렬한 백업 포수였다고 믿는 노인이 있고, 일본 야구 창세기 기담 등 오로지 야구에 대한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창세기 기담의 발 빠른 닭배고픈 늑대이야기는 지루할 만큼 길게 이어지면서도 재미있다. 시와 포르노가 야구와 무슨 관계가 있기에 그것에 열중하는 것일까, 의아하기만 하다. 모더니즘 소설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문제작이라는 평처럼 일반 소설과는 매우 다르다. 우리가 읽던 익숙한 문체의 언어가 아니다. 새로 언어를 구축했다고 할까. 읽어나가는 도중 당황스런 부분이 꽤 있다.


 야구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침대씬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러다 약간의 철학적 사고를 엿볼 수 있는 문장이 툭 튀어나오기도 한다. 야구를 소재로 한 소위 갖추어진소설이 아닌, 마치 야구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쓴 글 같은 느낌이다. 마치 공부를 하다가 자꾸 딴 생각의 세계로 넘나드는 상상의 세계처럼. 위대한 작가와 철학가를 등장시키면서 거침없는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나에게 야구를 가르쳐주신 큰아버지가 곧잘 말씀하셨어요. ‘연결이 끊어지면 끝이야하고.

너는 아직 알 수 없겠지만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결이야.’(P96)

연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돌고 돌아가는 게임의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매끄러운 연결의 동작이야말로 경기에서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테크닉이 아닐까. 야구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야구 용어를 검색하여 뜻을 알아야 했다. 참으로 많은 규칙과 용어가 존재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그것들로 우리는 연결되고 사회의 시스템은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정신병원을 전전하던 소년의 큰아버지는 소년에게 야구를 가르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속임수란다. 이걸 할 수 없으면 일류 야구 선수하고 할 수 없다는데. 이 세상에서 야구와 관계없는 건 하나도 없다고도 하고. 이것 또한 거꾸로 말하면 야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축소판이라고도 해석할 수도 있다. 야구선수가 되기 위해 힘든 단련을 한다. 어떤 날은 야구에 대한 ()를 두 시간 내에 900개를 짓기도 하고. 선수가 아니어도 우리는 힘든 단련을 하며 살아간다. 하루하루의 삶에서 꼭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많은 것을 참고 견딘다. 그것 또한 단련이다. 힘든 단련. 이쯤 되면 야구와 인생은 닮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일단은 야구광들의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긴 것으로 둥근 것을 친다는 게임. 하지만, 책의 제목처럼 절대로, 우아하고 감상적이지는 않다. 단지 그들의 열정적인 야구 사랑을 제목에 담아본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할 뿐이다. 야구가 없어진 가상의 현실에서 야구에 관한 이야기를 책에서 찾아 모으는 사람, 야구를 배우기 위한 소년 등 여러 사람을 등장시켜 야구 이야기를 이어간다. 저자는 이 작품을 필립 로스의 <멋진 미국 야구>의 번역본을 읽고 이 작품의 모티프로 삼은 것 같다. 원제목은 위대한 미국 문학(The American Novel)'이었다는. 야구 규칙을 몰라도 재밌게 읽은 이 책의 팬들이 많은 모양이다. 하긴 우리가 읽는 세상의 많은 책들의 어떤 분야에 대해서 다 알고 읽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르기 때문에 읽고 배우는 것이 아닐까. 제목과 다른 내용의 이야기가 색다른 매력이 될 수도 있겠다. 야구 이야기 속에서 일본인들의 속마음도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을까.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다면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황당한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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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픽 미스터리
다비드 포앙키노스 지음, 이재익 옮김 / 달콤한책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독자를 넘어서 자신의 책을 출간하고 싶은 꿈이 있다. 작가지망생은 차고 넘치지만, 한 권의 책으로 내는 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래도 옛날에 비하면 자비출판의 방법도 있어서 출판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었지만, 순수하게 작품성을 인정받아 책으로 나오기까지는 미미하다고 하겠다. 이 작품은 책을 소재로 하여 벌어지는 미스터리다. 미스터리라고 해서 공포를 느끼는 이야기는 아니다. 미심쩍은 사건을 다른쪽 시선에서 전말을 파헤치기 위해 추적하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도입은 미국 작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작품 <임신중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남자 주인공인 도서관 사서가 나오는데 그 도서관은 출판사들이 거절한 모든 책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그의 생각은 열혈 독자에 의해 누구도 원하지 않은 책들의 도서관은 실현된 모양이다. 정말일까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것을 모티브로 하였을까.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에 크로종 시립도서관이 생긴다. 재미있는 구성으로 몰입하며 읽을 수 있다. 대사도 얼마나 맛깔 나는지 읽다가 쿡쿡 웃게 한다. 출판되지 못한, 그러니까 거절당한 원고를 모두 받아준다는 기상천외한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이 도서관의 관장인 구르벡이 그 프로젝트의 기획자다. 이 아이디어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방불케 하는 여정이 이어진다. 그렇게 십 년이 지나면서 천 권에 달하는 원고가 쌓인다. 구르벡은 원고에 파묻혀 지내가다가 중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아내가 있었는데, 단 몇 주 만에 집을 나가고. 아무도 왜 나갔는지 모르며, 소문만 무성한 가운데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구르벡이 이 미스터리의 열쇠를 쥐고 있는 걸까. 궁금증이 폭발하며 다음 장을 넘기느라 바쁘다.

 

 어릴 때부터 꿈꾸던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는 델핀은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매력적인 아가씨다. 작가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낀다. 그런 그녀는 젊은 작가 프레드 코스카의 데뷔 소설을 발견하여 강렬한 촉을 느끼면서 둘은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이들의 관계는 급속도로 진전하여 프랑스 서쪽의 땅끝 마을 델핀의 고향으로 휴가를 보내러 갔다가, 크로종 도서관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뼛속까지 편집자의 임무에 충실한 델핀이 그렇게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흘려 들을 리가 없다. 단짝이 된 프레드와 함께 탐방한 도서관에서 걸작을 발견했다며, 흥분한다. 책 제목은 <사랑의 마지막 순간들>이며, 글쓴이는 앙리 픽. 여기서 가장 백미는 사랑의 마지막 순간을 푸시킨의 임종 순간과 교차시켜 묘사했다는 것.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이 언급된다. 이 작품을 보니 발레리나 강수진이 떠오른다. 강수진의 은퇴작인 <오네긴>은 러시아의 문호 푸시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에 차이코프스키의 서정적인 음악을 더한 <오네긴>으로, 자유분방하고 오만한 오네긴과 순진한 시골 처녀 타티아나의 비극적인 사랑을 담은 작품이라고 한다. 이처럼 실명으로 언급되는 작가와 작품의 이야기도 지적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앙리 픽은 평생을 피자 요리사로 살다가 2년 전 죽은 인물로 밝혀진다. 미망인 마들렌 할머니와 딸 조세핀을 만나 인터뷰하며 야단법석이다. 설마 진짜 앙리가 소설을 썼을까 의아해 하다가 달리 방법이 없으니 모두 믿는 분위기로 휩쓸린다. 언론, 방송의 홍보 효과를 얻은 이 사건은 엄청난 파급력으로 당사자들과 주변을 흥분시킨다. 고전문학을 읽다보면 주인공이 갑자기 생각지도 않던 친인척의 거대한 재산을 상속받는 상속자가 되는 꿈같은 횡재가 종종 들어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황상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고인(故人)이 소설을 남겼다니, 믿기 어렵지만 작품의 내용에서 자신들의 자취를 찾아낸다. 이건 내 이야기다 라며 짜 맞춘다. 약간의 억지가 엿보이는 장면이다. 이런 상황이면 집 나갔던 남편도 돌아온다. 바로 조세핀의 전남편 마르크. 아내를 배신하고 떠난 마르크의 속셈은 뻔하다.

 

 한편, 믿기 어려운 이 사건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한때 악명 높은 문학평론가로 일했던 기자 출신 루슈가 등장한다. 여러 단서를 모으기 위해 조세핀에게, 또 조세핀의 가게로 찾아가는 등 진실을 밝히기 위해 열정적이다. 앙리의 친필 편지를 입수하는 순간 어느 정도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낸 듯하다. 이것은 어떤 반전으로 이어질까.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찡한 감동도 있다. 아버지 생전에는 그다지 친밀감도 느끼지 못했던 조세핀은 과거를 떠올린다. 아홉 살 때 받은 편지를 찾으면서 많은 음반을 뒤적이고 거기서 추억을 되새긴다. 부친 사후(死後)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소설을 쓴 아버지가 위대하게 느껴진다. 이렇듯 물질만능의 태도 또한 여실히 드러난다. 진실의 여부는 안중에 없고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다. 평범한 사람들이 예상치 않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면 우쭐하면서도 남의 옷을 입은 듯 마음은 불편하다. 마들렌과 조세핀도 차츰 평정을 되찾으려 한다. 진실을 알아야겠다며. 구르벡의 뒤를 이어 도서관장이 된 마갈리 등 주변 인물들의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심경의 변화도 흥미롭다.

 

 결국 초반에 잠깐 출현했다가 죽은 구르벡은 미스터리를 제공한 셈인가. 그것을 집요하게 파헤치려는 루슈. 루슈와 조세핀의 조합은 의외로 잘 어울린다. 애써 찾은 진실을 외면하고 적절한 선에서 현실과 타협하고 안주하려는 인간의 본성 역시 들어있다. 구르벡은 왜 자신의 이름으로 하지 않고 앙리의 이름을 빌렸을까. 단 몇 주를 함께 살았던 마리나를 사랑했지만, 붙잡지 못한 그 안타까운 마음을 책으로 남겼고,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하는 마음에서였을까. 풀리지 않는 궁금증을 안고 벌써 후반부에 다다르게 된다.

 

 몇 개의 반전으로 이렇게 마무리되는 건가 싶었는데...

, 이건 또 뭐지? 더 큰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 인간의 이기심이 보인다. 책으로 성공하고 싶은 작가와 작품을 발굴해서 유명세를 타고 싶어 하는 편집자를 비롯한 출판계의 인물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더니, 트릭이 들어 있었다. 여우가 자기 꾀에 넘어간다고 하는 상황과 흡사하다. 영문도 모른 채 이들의 마케팅 전략에 평범한 마들렌 할머니와 딸 조세핀은 휘말렸던 것인가. 책 한 권을 베스트셀러로 만들기 위해 온 역량을 쏟는 출판사와 평론가 영업대리인들의 역할을 보는 것은 흥미로웠다. 잊을만하면 표절 시비에 휘말리는 사건이 나온다. 이것은 더 큰 사건이다. 실제로 이러한 이야기가 있을까, 의아하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미스터리다.  단지 재미있게 읽고 약간의 교훈과 감동의 여운이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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