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시
바바라 오코너 지음, 이은선 옮김 / 놀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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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최고의 가족 소설 이라는 찬사를 받은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바바라 오코너의 8년 만의 신작 소설이다. 본서 출간에 앞서 가제본으로 읽게 되었다. 가족 소설이면서 성장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교도소에 간 쌈닭 아빠, 우울증으로 침대에서 나오지 않는 엄마, 언니 재키, 이 소설의 주인공 찰리가 뿔뿔이 흩어졌다. 자신의 집은 콩가루 집안이라고 하며, ‘아빠’라는 호칭 대신 ‘쌈닭’으로 부른다. 쌈닭의 성질을 물려받았다는 찰리는 화를 참지 못하고 그대로 발산한다. 상황이 이러해서 엄마가 정신을 추스를 때까지 시골 이모의 집에서 살아야 한다고 사회복지사가 전해 준다. 안정적인 가정환경이 필요하다면서.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이모네 부부와 살아야 한다는 것이, 툭하면 싸움질 하려드는 찰리에겐 내키지 않는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다니게 된 학교에서 하워드라는 빨강머리 남자 아이가 책가방 짝궁이 되었다. 다리에 장애가 있다. 아이들을 촌닭이라 무시하며 어차피 오래 다닐 학교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숙제도 신경 쓰지 않는다. 싸우고 넘어뜨리고 조용한 날 이 없다. 그러는 중 마음 착한 하워드는 찰리에게 ‘욱’ 하고 화가 나려고 할 때는 ‘파인애플’이라는 주문을 외우라고 제안을 한다. 한편 찰리는 4학년 말부터 소원을 빌기 시작했는데, 온갖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소원을 빈다. 정각 11시 11분에 소원을 빈다든지, 무당벌레, 네잎 클로버, 두 사람이 동시에 같은 말을 했을 때, 흉내지빠귀 울음소리가 들릴 때 등등...


 어느 날 우연히 두 마리 개가 싸우는 것을 보게 된다. 싸움꾼, 떠돌이 신세인 자신과 닮았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잡아서 키우려고 결심한다. 우여곡절 끝에 갈색과 검정이 섞인 그 개 위시본과 가족이 된다. 그렇게 소용없을 것 같았던 ‘파인애플’ 주문이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쌈닭 찰리는 차츰차츰 유순해지고, 감사함도 깨닫고, 잘못을 깨닫고 사과도 하며, 하워드를 진짜 친구로 인식하게 된다. 서먹했던 이모, 이모부와도 친해지고, 따뜻한 사랑을 느낀다. 그러는 와중에 사회복지사가 다녀가고, 언니 재키가 엄마의 상황이 좀 나아졌다는 둥 하면서 롤리로 돌아오라고 하지만, 오히려 찰리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엄마한테 가겠다고 노래 부르던 찰리. 이모가 사는 마을 콜비에서 살고 싶다고 한다. 하워드의 소원은 찰리와 친구가 되는 것, 찰리가 이 마을에서 사는 것이었다. 찰리는 ‘해체되지 않는 가족’의 소원을 이루었다. 아이가 없던 이모부부는 가족을 이루게 된 기쁨을 샛별을 보면서 소원을 비는 장면으로 결말을 맺는다.


 찰리가 이모네 집으로 간 일, 하워드와 그의 가족들을 알게 된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가난하지만 사랑으로 똘똘 뭉친 하워드의 가족과 친해지면서 처음에 무시했던 마음이 사라진다. 재키의 모든 사람에 대한 친화력 있는 성격이나 행동을 지켜보면서 유연한 마음을 갖고자 노력을 한다. 사랑이 담긴 정성스런 마음이 적개심 덩어리였던 아이의 마음을 부드럽게 녹인 것이다. 소설을 읽는 재미와 감동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찰리가 목을 놓아 우는 장면에서는 같이 울었다. 가족이라는 운명으로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살지만, 모든 가정이 행복하지는 않다. 각 개인의 성격이나 가치관,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진정한 가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떻게든 좋은 가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의 협력과 배려, 정성이 필수요소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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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과 강철의 숲
미야시타 나츠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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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 냄새가 났다. 로 첫 문장이 시작된다. 제목에서 양과 강철의 조합이 대체 어울리기나 하는가. 의아했다. 부드러운 양의 털로 펠트를 만들어서 그것을 해머로 완성 한단다. 피아노 속의 해머로 인해 아름다운 선율로 울리는 것이다. 소나무의 일종인 가문비나무는 피아노의 일부가 되고. 여든 여덟 개의 건반에 연결된 강철 현. 아, 그래서 양과 강철의 숲이 되었구나.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어 시간이 남아도는 아이였던 나(도무라)는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손님을 체육관까지 안내하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때 이타도리가 조율한 피아노에서 고향 홋카이도의 숲 냄새를 느낀 나는 조율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때까지 피아노에 손 대 본적이 없던 내가. 그 조율사의 제자가 되고 싶었으나, 그가 소개해 준 학교에 들어가 2년 동안 공부하고 이타도리가 있는 그 악기점에 취직하여 조율사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피아노 조율은 조율 기술 외에도 다른 것이 더 있다는 선배 야나기의 말을 듣고, 클래식이라고는 들어본 적이 없는 나는 모차르트, 베토벤, 소팽의 피아노곡을 듣다가 잠이 들곤 했다. 피아노를 만나고부터 나는 기억 속에서 다양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울어대는 아기의 미간 주름. 있는 힘껏 힘을 준 새빨간 얼굴에 잡힌 주름은 그 자체만으로도 강한 의지를 품은 생명체 같아서 옆에서 보면 가슴이 뛰었다.’(p26)


"기술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일단은 의사소통이야. 되도록 구체적으로 어떤 소리를 원하는지, 그 이미지를 제대로 확인해야 해.“(p45)


 도무라에게 있어 숲은 신이다. 이타도리가 조율한 피아노에서 숲 냄새를 느끼고 조율사가 되고 싶어 했으며, 피아노를 알고부터는 ‘소리’가 신이 되었다. 고객의 집에서 조율을 하는 과정이 세세하게 그려져 있다. ‘동글동글한’ 소리, 활기찬 소리를 원하는 고객의 요구를 들어 주어야 한다. 원하는 소리가 나오면 고객은 감동한다. 형체가 없는 ‘소리’에 ‘동글동글’한 형체를 연상하다니... 그 의미를 같이 공감하는 것. 그 과정의 고객과의 교감, 바로 소통인 것이다.


 “아름다운 라가 440헤르츠로 표현된다니,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피아노는 한 대 한 대 다른데 소리는 서로 연결되어서 주파수로 대화를 나눈다는 생각도 들어요.”(p116) 이런 말이 내 안에서 나오다니 하며 스스로 놀란다. 아직 한참 멀었다. 체육관에서 경험한 ‘심장이 떨리는’(p118) 그 소리와 다시 만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것이 있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날은 고객으로부터 클레임을 받고 크게 상심한다. 과연 재능만 가지고 내가 그 숲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그러나 재능을 논하기에도 아직 머나 먼 길이다. 경험, 훈련, 노력이나 지혜, 재치, 끈기, 정열로 대신 할 수 없을까를 고민한다. 선배 조율사들의 일 하는 모습을 견학하기도 하면서 자신이 상상하고 도달하려는 숲에 이르기 위해 분발하고 분발한다.


 고객으로 있던, 피아노를 무척 사랑하는 쌍둥이 자매 유니와 가즈네의 이야기 또한 잔잔하고 애틋한 즐거움을 준다. 병으로 인해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되자, 조율사가 되고 싶다는 유니의 말에 당황하면서도 감동에 사로잡힌다. 피아노 조율사는 피아니스트, 피아노와 어우러져 조화로운 소리로서 세상에 소통하는 것이다. 피아노에 손 대 본적이 없지만, 특유의 감성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려는 끈기와 베짱이 자신을 행복하게 한다. 그의 진심어린 태도에 감동을 하고, 주위 사람들을 그 행복의 숲으로 인도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읽어가는 내내 숲 냄새가 났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버섯을 따러 다니곤 했다. 특히 장마 끝에 숲속 땅은 축축하게 물기가 배어 나왔으며 소나무 밑 언저리에는 이름 모를 버섯들이 돋아나 있었다. 싸아하게 느껴지는 서늘함과 소나무 향을 지금도 기억한다. 나의 숲은 무엇일까. 내가 도달해야 할 숲은 어디일까. 내가 아주 좋아해서 그 끈을 놓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숲은 무엇일까. 지친 영혼까지도 치유해주는 책 읽기. 책 읽기를 멈추지 않고 더불어 글쓰기로 나아가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지향점은 ‘밝고 조용하고 맑고 그리운 문체, 조금은 응석을 부리는 것 같으면서도 엄격하고 깊은 것을 담고 있는 문체, 꿈처럼 아름답지만 현실처럼 분명한 문체’(p68) 이건 나의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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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얘기가 웃긴다고? 조심해! 나 까칠한 들고양이 에드가야! - 400일 동안 끄적인 일기
프레데릭 푸이에.수지 주파 지음, 리타 베르만 그림, 민수아 옮김 / 여운(주)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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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깜찍한 고양이가 있다.

자신이 들고양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이름은 에드가, 태어난지 6개월 된 아기 고양이

그런데 ‘아가’라고 부르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인형처럼 대하며 자신을 쓰다듬지도 말라고 한다

인간을 ‘멍청이’라고 부르며 우스꽝스러운 거짓말쟁이로 본다.

자신은 아주 똑똑하고, 잘생기고 게다가 겸손하기까지 하다며...

사냥, 먹기, 낮잠이 취미인 고양이

 

 잘 때 절대 깨우지 말고

기름지고 맛있는 먹이만 잔뜩 달라는 요구사항에

깔깔깔 웃음이 나온다. 어찌 그렇게 사람의 마음과 똑같은지...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편안함을 누리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나 똑같구나!

 

 

 

 

 

 또 얼마나 똑똑한지 모른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척척 꿰고 있다.

정치, 사회제도, 첨단기술과 문명, 사회의 불평등, 소외, 청년 실업 등의 문제를

신랄하게 꼬집는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태도에도 불만이 많다.

인간들이 자신의 눈에 보기 좋게 하려고 미용사에게 데려가서 꾸며주고,

살이 좀 쪄 보인다 싶으면 다이어트 시킨다며 요란을 떤다고.

 

 명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이름도 없는 달변가 고양이가 생각난다. 한 서생의 집에 들어가 그의 일거수일투족, 가족들의 생활상을 모두 엿보고 엿들으며 사는 고양이. 언젠가는 고양이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야무진 꿈을 품은 채, 불만도 참고 하루하루만 잘 살아내면 된다는 그 고양이가.

 

 그에 비하면 에드가는 까마득한 후배이며 어린 고양이다. 까칠한 것 같으면서도 붙임성 있는 고양이 에드가의 눈과 입을 통해 우리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을 내세워 쓴 우화는 우리에게 웃음을 주기도 하고, 아! 하며 생각해볼 거리도 주어서 좋다. 고양이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나, 키우는 것보다는 바라보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귀엽고 까칠한 에드가의 메시지로 반복되는 일상의 나른함도 거뜬하게 날릴 수 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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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월기
나카지마 아쓰시 지음, 김영식 옮김 / 문예출판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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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월기>는 당나라의 기담 <인호전人虎傳>의 제재를 모티브로 작품이 된 것이다. 나카지마 아쓰시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며, 일본 교과서에 1951년 처음으로 게재되면서 그 후로 60년이 넘도록 수록된 국민작품이다. 짧은 글 속에 섬뜩한 교훈을 주는 강렬함이 매력이다. 아무리 타고난 수재일지라도 자신이 가진 재능을 갈고 닦는 노력이 없으면 더 이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 즉 호랑이가 되고 만다는.


 이야기의 대략은 이렇다. 당 현종 때의 이징(李徵)은 박학다식에 출중한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젊은 나이에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여 오늘날의 경찰 및 군사 담당 관리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에 비해 천한 직위를 수치스럽게 생각하여 곧 관직에서 물러난다. 고향에 머물면서 남들과 교제도 모두 끊고 오로지 시작(詩作)에 몰두한다. 시인으로서 길이길이 이름을 남기고자. 하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며 생활은 점차 궁핍해지고 초조해진다. 그 무렵부터 얼굴은 험상궂어지고 피골이 상접하여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 후, 곤궁함을 견디지 못하고 어느 지방의 관리직을 얻었는데, 항상 불만에 가득 차 있는 상태로 그 일을 원만하게 수행할 수 없었음은 당연하다. 1년 후 어느 날, 결국 발광하여 호랑이로 변한 자신을 발견하고 망연자실하게 된다.

진사에 급제했던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 원참이 감찰어사직을 수행하러 길을 떠나는 중에 우연히 마주하게 되고 자신의 지난날을 하소연하게 된다.


 예전에는 어째서 호랑이가 되었을까 괴이하게 생각했는데, 요즘은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내가 왜 이전에 인간이었던가 생각을 하게 된다.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p11)


 인간이었을 때, 나는 애써 남들과의 교제를 피했다. 사람들은 나를 오만하다, 거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은 그것이 거의 수치심에 가까운 것이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중략)나는 시로써 이름을 떨치려고 생각하면서도, 스스로 스승을 찾거나 기꺼이 시우(詩友)와 어울리며 절차탁마를 하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또 나는 속물들 사이에 끼는 것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이 모두가 나의 소심한 자존심과 거만한 수치심 탓이었다.(p16)


 호랑이의 모습을 한 이징은, 굶어죽을 지도 모를 처자보다도 자신의 보잘것없는 시 따위를 먼저 염려한 남자이니 이런 짐승의 몸으로 전락한 것이라며 통곡한다. 우리는 살면서 남과 비교하며 저울질 한다.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는데... 나보다 못했던(자신의 생각에) 사람이 어느 날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지난날을 후회하기도 한다. 인생, 생각에 따라 길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다.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 하루하루 보낸 날이 모여서 ‘내’가 되는 것이니.


<이릉>은 한나라의 장수 이릉과 그를 두둔했다가 궁형을 받은 <사기>의 저자 사마천, 그리고 사신으로 갔다가 억류되어 고난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19년 만에 돌아온 소무라는 세 인물의 삶을 보여 준다. 흉노족에 패하여 항복한 이릉은 분노로 평생을 살고 사마천은 쉰이 다 된 나이에 그런 치욕을 당했는데도 마음을 다잡아 서사의 편찬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다시 붓을 들었다.

 사람마다 삶의 방식은 다르다. 어떤 것이 옳다고, 이것이 정답이니까 그대로 따르라고 할 수도 없다. 삶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다양하다.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다. 우리는 이야기, 즉 문학을 통해서 타인을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의 삶을 비추어 본다. 그리고 나아갈 길을 찾는다. 이것이 바로 문학의 절대적인 힘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제자>는 공자의 수제자인 자로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밤에 “봉황도 나오지 않고 황하는 그림도 내지 않도다.(성왕이 출현한다는 말을 인용한 것임) 나도 끝이런가” 라고 혼잣말로 공자가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을 때, 자로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공자가 한탄한 것은 천하의 백성을 위한 것이었지만, 자로가 운 것은 천하를 위함이 아니라 공자 한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p97)


 여기서 자로는 결심한다. 탁세의 모든 침해로부터 이 사람을 지키는 방패가 될 것을.(p98)공자의 제자 중 자로만큼 스승에게 많이 혼나고 거침없이 반문한 자도 없었다고 한다. 긴 방랑과 고난을 함께 했고 맡은 일에 최후까지 열정을 다하고 산화한 인물이다. 사제간의 정, 그 뜨거움이 마음에 감동으로 일렁였다.


<순사가 있는 풍경>-1923년의 한 스케치


 조선인 순사 조교영의 눈에 비친 풍경이다.

전차 안에서 일본 중학생이 운전수와 순사를 깔보고 무시한다. 일본인 부인과 조선인이 싸운다. 친일 조선인의 연설을 듣고 일본 청년이 욕을 한다. 일본 신사의 정중한 대접에 몸 둘 바를 모르고 우쭐해하는 조선인 순사가 있다. 강우규 의사의 사이토 총독에 대한 의거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 관동대지진(1923년 9월 1일)의 조선인 학살의 진상을 밝히는 창녀의 목소리. 새로 부임한 일본인 교장이 종순의 덕을 말하는 장면(일본에 있을 때는 독립자존의 정신을 말하던)이 나온다.


 1923년. 겨울은 더럽게 얼어 있었다.

모든 것이 더러웠다. 그리고 더러운 채로 얼어붙었다. 특히 S문(서대문)밖의 골목에서는 더욱 심했다. 중국인의 아편과 마늘 냄새, 조선인의 싸구려 담배와 고추가 섞인 냄새, 으깨진 빈대와 이의 사체 냄새, 길거리에 버려진 돼지 내장과 고양이 가죽 냄새, 그것들이 그 냄새를 보존한 채 길 위에 얼어붙은 것처럼 보였다.(p240)


보통학교의 일본역사 시간, 다소 당혹스런 표정의 교사가 있다.

“이리하여 히데요시는 조선으로 쳐들어갔던 것입니다.”(p242)


마치 딴 나라 이야기인가 하는 아이들의 둔한 반응.

“그리하여 히데요시는 조선으로 쳐들어갔던 것입니다.”(p242)


 마지막 장면은 순사 조교영이 식산은행 옆에서 ‘돌맹이’처럼 자고 있는 지게꾼들을 깨우며 한탄하면서 울음을 터뜨린다.


“너는, 너희는.”

돌연 무언가 알 수 없는 격한 감정이 그의 안에서 끓어올랐다. 그는 한 번 몸을 떨고, 그들의 누더기 사이로 머리를 집어넣고 울기 시작했다.

“너희는, 너희는. 이 반도는... 이 민족은...”(p250)


 정말 더러웠다. 더러워진 채로 얼어버린 겨울 풍경. 지금의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풍경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캄캄한 터널 속에 갇힌 듯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아득함.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들은 어떻게 견뎌냈을까. 일본인 작가의 눈에 비친 비참한 조선의 현실과 일본제국주의의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러한 작품의 성격상 일본에서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남겨진 그의 작품은 더욱 더 읽어볼 의무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나카지마는 일본에서 제2의 아쿠타가와로 불린다. 우리나라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그의 작품이 뒤늦게라도 문예출판사를 통해 나온 점, 내가 이 작품을 만난 것은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문예출판사 서평단에 당첨되어 제공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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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과 신화
한승원 지음 / 예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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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작가들의 스승이자 한국 문단의 거목인 한승원 작가의 50년 작품 활동 중에서 직접 가려 뽑은 중․단편의 소설들이 <야만과 신화>이다. 그의 작품 세계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바다(그것이 실제의 바다가 되었건, 여성으로 상징화된 바다가 되었건, 화엄의 바다가 되었건)’를 떠난 적이 없다. ‘신화’와 ‘역사’와 ‘여성성’을 ㅁㅊ떠난 적도 없다. 그는 줄곧 이 주제들을 깊이 파고 넓게 확대하고 달리 재해석하면서, 자신만의 광대한 소설 세계를 구축해온 예외적인 작가다.(p558)라고 말하고 있다.


 단편 <어머니>는 1974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바리데기 설화’의 모티브를 차용하고 있다. 감옥에 있는 막동이에게 면회를 가기 위해 늙은 노구에 천식을 달고 사는 어머니가 미역장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윗마을로 향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이젠 ‘면’자만 들먹여도 큰아들 일현은 눈살을 으등카리같이 싸짊어지고 “그놈으 반디 그만저만 댕기씨요. 그라다가 길바닥에서 죽으면 어짜실라우” 하면서 휙 돌아앉아 곰방대에 써레기나 쑤셔 넣곤 하였고, 며느리란 년은 궁상스럽게 축 처진 볼을 흐물거리며 이쪽의 늙은 마음을 위로해준답시고 “아제도 아제제마는 어마니가 살어사 안 쓰겄소?” 할 뿐, 노비를 주는 것은 고사하고, 그것 마련할 걱정 같은 것을 손톱만큼이라도 내비칠 엄두마저 내지 않는 것이니 어이할 것인가. 개잡놈 같으니라고, 주둥이에 퍼 넣을 술 한잔 값 아끼고, 노름판엘 한 번만 안 가면 그만한 돈을 마련해줄 수 있을 것 아닌가.(p64)


 여기를 읽다가 웃기면서도 나도 모르게 눈에 물기가 어린다. 옛날 어릴적 풍경이 생각났다. 옛날 할머니들은 걸지게 욕도 잘했다. 가난에 절고 절어 힘든 나날을 욕으로 풀었던 것일까... 어머니는 큰 아들이 야속하기만 하다. ‘널빤지 위에서 올골골 떨고 있는 막동이’를 만나러 가야 하는데... 부모야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고생하고 있는 막동이가 더 눈에 밟혔을 것이다. 형제들이야 부모 곁을 떠나면 제각각 사느라 바빠서 반은 남이 되는 것이나 진 배 없고...

쌀말 값이라도 얻으려고 큰 아들 일현이, 작은 아들 이현이, 바라대기 딸네 집으로 순례를 하는 것이다. 목수노릇을 하는 둘째도 겨울이라 일이 없어서 봄 해가 길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에라, 내가 독살스럽고 모진 년이구나, 시상에 즈그들이 나이 서른을 넘었닥 해도, 남 모양으로 출중나게 배우기를 했는가, (중략) 그 위에 못된 창아지가 더 독한 소리를 하고 있으니, 내가 모진 년이다. 내가 독사다’(p68)


 그걸 마련 못해주겠다고 앙탈을 하는 자식들의 소행이 못내 섭섭하고 노여워, 늙은 어머니는 그 저수지 둑 밑에 주저앉아 다리를 죽 뻑도 통곡이라도 해버렸으면 시원할 것 같은 심사를 억누르고, 부지런히 활갯짓을 하면서 오른손에 든 지팡이를 옮겨놓았다.(p82)


 다행인지 딸네 집에 가서 그나마 착하고 곰살맞은 사위 덕에 돈푼도 얻어오고 애를 가져 배부른 딸이 미역을 얻어 김으로 다 바꾸어다 준 덕분에 바리바리 이고 지고 막동이를 만나러 간다. 이제 스무 살 밖에 안 된 그 보름달 같이 하얗고 예쁘던 딸. 야위고 거칠어진 딸의 얼굴을 보고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프지만, 그래도 차디찬 곳에서 떨고 있는 막동이보다는 낫지 않느냐 하는 마음으로 딸의 도움을 뿌리치지 못한다. 보성으로 향한다. 새벽부터 일어나 쇠고기국을 끓이고 따뜻한 우유를 사서 식을까봐 당신의 가슴속에 품고 부르기를 기다린다. 제일먼저 접수했는데, 열두 명이나 부르도록 막동이는 보이지 않는다. 애가 닳고 닳아 있는데, 그제야 면회자를 찾는다. “목포로 갔단 말이오, 어제. 빨리 그리로 가보시오” 하는 퉁명스런 대답만...


어머니는 “어따 어메, 어째사 쓸꼬!” 탄식하며 쿨룩 쿠울룩 터져나오는 기침에 주저앉고...우유병 하나가 떨어져 박살이 난다.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낙지같은 여자>는 로렐라이 전설 설화를 차용한 작품이다.

 어린 시절, ‘나’의 집에 아기업개로 들어와 살던 이름은 순한녜. 힘이 센 그녀는 두 살 먹은 동생을 등에 업은 채로 거의 모든 놀이 상대가 되어 주었다. 멱감는 것을 좋아하고 팔과 다리가 길고 키도 후리후리한 얼굴도 예쁜 그녀다. 그녀의 오빠는 ‘나’의 큰집에서 머슴살이를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해녀라고 했고 아버지는 상 장수라고 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중학교 생물 선생이 되고 바쁘고 지친 삶을 풀기 위해 술꾼이 되었고 어린 시절의 낙지같은 여자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은 씻은 듯이 없어진 지 오래다. 그런데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에 갔다가, 친구로부터 우연히 알게 되는 사실...


“가끔 말이시잉, 배를 타고 지내가면 배를 대라고 손을 이렇게 까부른닥 하드란께.”

“분명히 귀신이 들리기는 들린 모양인 것이 말이시, 순한녜가 손짓하는 데로 배를 댄 남자치고 썽썽하게 남어난 사람이 없다네. 참말로 도리섬에 배를 대고 그렇게 된 것인지 어쩐 것인지 알 수는 없제마는, 모두가 그런 소리를 해쌓대.(p251)


"또 묘한 것은 말이시, 그 여자가 시방 서른다섯 살인가 여섯 살인가 될 것인디, 가까운 디서 똑똑히 봤다는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시방도 영락없이 처녀 같닥 하드란께.(중략)그러고 나도 금년 봄에 그물을 보러 갔다가 옴스롱 한번 봤는데 말이시, 이 예펜네가 바위 앞에서 따뜻한 볕을 받고 앉어 있데. 껌정 치마 하나만 허리에다 두르고, 위통을 활랑 벗고 말이시. 머리를 빗고 있등만. 참으로 이상스럽단 말이시. (중략)그런디 이 여자 살결은 꼭 백새 한가지여.(중략) 그 놈의 머리는 어찌께나 길다란지, 아마 거짓말을 보태면 한 발은 되겄데.“(p253)


그리고 마을에서는 순한녜를 도리섬에서 쫓아내자고 했다고. ‘나’는 순한녜를 죽이겠다는 생각을 하고 약을 사가지고 도리섬으로 들어간다.


“뭣 하러 왔소? 죽일라면 얼릉 죽이씨요. 당신네 성은 술만 묵으면 칼로 찔러 죽일란다고 쫓아댕겼제, 당신은 내 팔자 망쳐놓기만 하고 한 번도 집에 얼씬을 안 해뿌렀제, 당신 어메 아부지는 애기 띠어뿔자고 독한 약이라고 생긴 것은 죄다 쓸어다 먹였제,(중략) 당신네 식구들은 모다 내 웬수여라우, 뭣 하러 왔소? 나 미쳤다는 소리 들은께 춤추겄습디여?(p261)


"낳아논께 낯바닥은 흰떡같이 이쁩디다마는, 병신이었어라우, 열 살이 넘도록 번듯이 눠서 일어나 앉을 줄도 모르고, 누운 채로 똥오줌 퍼싸고, 말을 할 줄도 모르고, 어메가 누군지도 모르고...“(p216~262)


"그래서 별수 없이 쥐약을 사다가 멕였지라우.“(p262)


순간, 그녀가 내 목을 끌어안았다. 두 다리로 내 아랫도리를 휘감아버렸다.

우리는 물속 깉이 가라앉아 들어갔다.(중략) 나는 거대한 낙지한테 휘감겨 허우적거리고 있는 한 마리의 문저리에 지나지 않았다.


“다시는 오지 마씨요잉... 그때는 이 섬에서 한 발도 못 걸어 나가고 죽을 것인께.”(p265)


 자신이 저지른 죄를 없앨 수가 있을까. 그것을 없애려고 여자를 죽이려고 한 밤중에 도리섬을 찾아간 사람. 자식을 죽이고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어 광기에 빠진 여자. 인간의 쾌락과 도덕성은 어디까지여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참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소설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치유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고, 다른 책도 그렇겠지만... 실제로 보여주는 듯 한 소설적 묘사의 진수를 보고 구수한 지방 사투리 속에서 촌민들의 삶 속을 엿볼 수 있었다. 해방 전후 시대에 살았던 민중들의 삶의 궁핍함, 동족끼리 피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의 안타까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신화’적 배경이 들어있는 다른 작품도 찾아 읽는 등 배경지식을 넓힌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삶에 지치고 울적할 때 한 권의 소설 속에 빠져 보자.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니...



           

                 *이 책은 위즈덤 하우스 서평단에 당첨되어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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