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키워드로 [밝은 밤]을 남긴다. 사진의 배열 순서가, 이 소설과 나의 인연 변화를 보여준다. 처음엔 실수로 [긴긴밤]을 읽었다. 독서모임 책제목을 "베스트셀러 & 밤"이라는 조합으로 기억했다 벌인 실수였다. 다른 참여자가 테이블 위에 [밝은 밤]을 꺼내놓는 걸 보자, 나는 과장된 높은 음색으로 헤헤거렸다. 미안하다 못해 당혹스러웠기에...



.'덤벙덤벙' 실수 때문에 독서 모임이 한 주 미뤄진 미안함을 상쇄하고자, 아니 너무 재미있어서 차오르는 사심으로 [밝은 밤]을 한 번 그리고 두 번 읽었다. 한국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세대를 거쳐 이어지는 가족 파노라마를 그렸다는 점에서 이민진의 [파친코]와 비교하는 리뷰도 보았다. 하지만, 메뉴판만 비슷할 뿐 속맛이 상당히 다르다고 느꼈다. [파친코]에는 댕기 머리에 한복 자락 나부끼는 주인공이 등장하건만 [밝은 밤]에 비한다면 치킨 스튜를 더한 퓨전 육개장 맛을 낸다. 도리어 [밝은 밤]에서는 청국장 냄새를 맡았다. 역사적 서사는 생략된 채 주로 인물 간 관계 및 심리 묘사에 초점을 두는 데도 말이다. 오해는 피했으면 한다. 나는 [파친코]의 열혈 팬이며, 맛이란 본래 맛보는 사람마다의 미뢰 밀도에 따라 편차가 크니까. [밝은 밤]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속내, 고구마 3개는 꾸역꾸역 삼킨 듯 답답한 속내를 꾹꾹 눌러두거나 역으로 화산분출시키는 방식이 묘하게도 "한국적"이라고 느꼈다.



사람은 인생의 침잠기에 울림이 큰 작품을 쓰는 걸까? ***, ****, 장영희 선생님, 올리버 색스의 글을 읽으며 그런 궁금증을 품었더랬다. 최은영 작가 역시 [밝은 밤]을 쓰던 시기가 성인기의 가장 어려운 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그 시간의 절반 동안은 글을 쓰지 못했고 나머지 시간 동안 [밝은 밤]을 썼다. 그 시기의 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누가 툭 치면 쏟아져내릴 물주머니 같은 것이었는데, 이 소설을 쓰는 일은 그런 내가 다시 내 몸을 얻고, 내 마음을 얻어 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_[밝은 밤] 작가의 말 中




그 힘들었다는 시기에, 심지어 마감기한이 세금 고지서처럼 따박따박 날아오는 연재소설을 써냈다니 최은영 작가의 필력도 필력이거니와 정신력에 놀라운 마음이 든다. 작가는 "삼천이(주인공 '지연'의 증조할머니)"라는 인물의 힘에 끌려 작품을 시작했다지만, 정작 주인공인 "지연"과 가까웠다고 했다. 또한 소설 속 인물, 지연이를 통해 힘을 얻어다고 고마워 한다. 지연은 천문학 분야 박사이자 연구원이다. 자녀 없이 이혼한 30대이며, 일부러 속초 어디매쯤 '희령'에 산다. 내가 행간을 통해 엿 본 지연은 잘 웃지 않고 생기 없고 과묵한 사람일 것 같지만, 예의가 참 바르다. 지연은 '희령'에 얻은 아파트에서 멋쟁이 이웃주민의 호의를 받았는데, 알고 보니 친할머니셨다. 두 사람은 피를 나눈 혈연관계이지만, 처음엔 서로 존대하고 깍듯이 예의를 지킨다. 그러는 데에는 사연이 있다. 지연의 엄마인 미선과 할머니는 오랜 기간 연락을 끊고 살았기 때문이다.



할머니 댁에 초대받은 지연은 자신이 증조할머니 '삼천이'와 무척 닮은 외모와 성정을 지녔다는 말을 듣자, 호기심이 생긴다. 할머니를 통해, 고조할머니, 증조할머니, 그리고 증조할머니와 할머니의 절친 이야기를 듣는다. 증조할머니와 할머니는 모두 위선적이고 가부장적인 남자와 결혼하여 일생이 고단했다. 예를 들어, 양민 출신 증조할아버지는 '백정의 딸'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증조할머니를 '구원'이라도 하듯 데려가 결혼을 했으나 정작 아내의 당당한 기백을 보고 '원래 양민이었던 것처럼 군다'라고 미워한다. 속이 참으로 좁다. 할머니의 남편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6*25 전쟁 전 결혼했는데도에 피난 내려왔다가 한참 어린 어린 소녀를 아내 삼는다. 뻔뻔한 중혼의 피해자가 된 소녀가 바로 지연의 할머니이다.


나는 작가 최은영의 삶도, 인간관도 모른다. 다만 [밝은 밤]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새비 아저씨'라는 이상화된 단독자를 빼놓고는 죄다 찌질하다는 점은 안다. 그들은 위선적이고, 이기적이며, 가부장제의 폭력성을 제 위엄으로 착각한다. 과연 [밝은밤]에 후한 독자평을 주었던 이들 중 남성은 어느 비율일까 궁금할 지경이다. 왜 작가는 '남성'에게 특화된 냉소적 시선을 갖게 되었는지도 궁금하다. 작가는 대 놓고 그 "F," "F(eminism)"를 언급하진 않았다. 하지만, [밝은 밤]은 (콕 집어) 여성의 힘, 위선과 폭력에 저항하고 전복하려는 여성 연대, 세대를 거쳐 내려오는 신화적 DNA, 말의 주술성을 보여준다. 많은 여성 분들이 서로서로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대여기한이 끝나가 [밝은 밤]을 다른 예비 독자분들께 돌려드려야 할 때가 오니, [밝은 밤]의 명문들을 남겨야겠다.




핏줄을 통해 흐른다. 세대에서 세대로 주술적이기까지 한 氣가

증조모가 할머니를 보며 엄마라고 불렀을 때, 할머니는 고조모가 증조모에게 했다는 말을 떠올렸다. 기래. 가라. 내레 다음 생에선 네 딸로 태어날 테니. 그때 만나자. 그때 다시 만나자. 47


참을 수 없이 찌질한...작가는 왜 남성을 찌질하게 그렸을까?

그는 순교자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사람이었다. 가진 모든 것을, 목숨까지도 버려 천주에 대한 사랑을 지키려 했던 그들의 이야기에 감화를 받았다. 그는 증조모를 알게 되면서, 그녀가 사는 모습을 보고서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준비를 했다.

그 결과로 그는 평생을 억울함과 울화와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했다. 자기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부모를 떠날 때만 해도 몰랐던 것이다. 아니, 그는 평생 몰랐다. 자기가 얼마나 작은 손해에도 예민하고 속이 좁은 삶인지, 자신은 부모를 떠날 만큼 용기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저 충동일 뿐이었다. 떠나고 싶은 충동. (61)

*

아내에게 속은 기분이 들었다. 아내는 그저 자기 할 일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부터 양민이었던 것처럼 굴었다. 백정인 주제에 말이다...늘 고개를 빳빳이 드는 모습에 그는 옅은 노여움을 느꼈다. 그런 일로 노여워했다는 걸 인정하려 하지는 않았지만.(62)

**

지연의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어디 서방 앞에서!

- 내가 당신한테 도망가자 했기까, 내가 당신 부모 저버리라 했시까, 내가 당신보고 혼인하자 했시까. 기런데 왜 내를 일평생 입 닥치고 살게 했시까? 내 죄가 뭐인데, 백정네 딸로 태어난 게 죄라면 내 죄를 죄로 두지 기랬어요...

- 내레 너가 아무리 말썽을 부려도 널 단 한 번도 친 적 없다.

-기게 지금 자랑입니까?

이중결혼한 사위를 두둔하고 오히려, 남자 마음을 잡지 못했다며 딸을 비난하는 남편에게 증조할머니의 반격


밟으면 꿈틀. 당하지만 않는다.

서럽다. 문득 생각하다가 삼천이 너가 했던 말이 생각났댔어. 방앗간 사장이 내한테 뭐라 지랄한 적 있지 않간. 내가 빨리빨리 일을 못한다구 몰아붙였던 적이 있었더랬잖아. 내가 집에 가는 길에 서럽다, 서럽다 하니 삼천이 너가 그랬지. 서럽다는 기 무슨 말이간. 슬프믄 슬프고 화가 나믄 화가 나지, 서럽다는 기 뭐야. 나 기 말 싫구만. 너레 화가 나믄 화가 난다구 말을 하라요...섧다, 섧다, 하면서 화도 한 번 내보지 못하고 속병 드는 건 아니라고. (127)

증조할머니 삼천이에게, 삼천이의 친구 새비아줌마가 쓴 편지


여성끼리(만) 연대와 위로

'지도 학생 모임에서 지연씨가 왜 이 전공을 택했는지 이야기하면서 눈을 빛내던게 기억나요. 그 때 내가 많이 지쳐있었거든. 지금 지연씨 나이 정도였을 거예요. 만사가 지겹고 재미가 없었는데, 어린 친구가 왜 이 공부를 택했는지 밝게 이야기하던 모습이 맘에 남았어요.'

...

팀장을 데려다주고 집으로 가는 동안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어린 팀장의 얼굴을 상상해봤다. 예의바르고 말을 가려 하고 자신의 사적인 부분을 잘 얘기하지 않는 그녀가 내게 틈을 보인 순간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녀의 말이 위안이 되어서 나는 조금 놀랐다. 잠자리에 누워서야 어쩌면 그것이 그녀 방식의 위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혼 후, 의기소침과 우울을 겪던 지연이 상사에게 위로 받은 대목.

이십대 초반 지하철을 타고 왕복 세 시간 거리를 오가며 통학하던 때가 떠올랐다. 항상 피곤했고 지하철에서는 대개 잠들어 있었다..'학생, 그러지 말고 나한테 기대.' 그런 말을 하며 자기 어깨를 내어주던 여자들이 있었다. 그 때의 나는 그 마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

내 어깨에 기댄 여자는 편안한 얼굴로 잠을 자고 잇었다. 청명한 오후였다. 어깨에 느껴지는 무게감이 좋았다. 나는 내게 어깨를 빌려준 이름 모를 여자들이 떠올렸다. 그녀들에게도 어깨를 빌려준 여자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딸아! 중력(ㄱㅂㅈㅈ 끄는 힘)을 피해 멀리 날아라!

'조국을 빛낸 해외 동포' 시리즈는 1988년 여름부터 1993년 여름까지 방영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었다. '암호학자 김희자 박사' 편은 1992년 9월 28일에 방송됐다.

...

김희자 박사에게 갈 수 있는 한 가장 멀리 가라고 했던 새비 아주머니의 말을 나는 종종 생각했다. 그 말은 단순히 물리적 거리만을 뜻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딸이 다른 차원으로 가기를 바랐던 마음이었겠지. 본인이 느꼈던 현실의 중력이 더는 작용하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딸이 더 가벼워지고 더 자유로워지기를 바랐던 새비 아주머니의 마음을 나는 오래 생각했다.

336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은하수 2023-02-13 0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넘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밝은밤 계속 피해 다녔는데..
자꾸 올라오는 리뷰보고도 미루고 있었는데 정말 당장 읽고 싶게 만드셨어요~~^^
최고~~!!!

여기선 땡투를 못하네요 ㅠㅠ

얄라알라 2023-02-14 09:13   좋아요 0 | URL
은하수님, 혹시 손에 잡으시면 그 자리에서 다 읽으시게 될지도 몰라요^^ 이름은 상대적으로 평이했는데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는, 이 책이 왜 베스트셀러인지 알 것 같았어요^^즐거운 책읽기 하시기를.

페크pek0501 2023-02-13 1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과 인용을 곁들이며 풀어 쓰신 리뷰, 반찬 많은 밥상을 받은 듯 푸짐하게 느껴집니다.
두 번이나 읽으셨다니 저도 꼭 읽어야 할 책 같습니다. 검색해 보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얄라알라 2023-02-14 09:14   좋아요 0 | URL
발레로 다져진, 몸 가벼우신 페크님에게는 많은 반찬이 필요 없으시겠지만
좋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요새는 소설을 두 번씩 다시 읽는 ˝좋은˝ 습관이 생겼어요. 작가를 더 잘 알고 싶다보니 절로 그런 습관이 생기네요.(물론 별 5 소설만 ㅋ)

좋은 아침 시작하시어요. 페크님

반유행열반인 2023-02-13 1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어쩌다 실수로 두 권 읽게 되었으니 이득 아닙니까 ㅋㅋ두 권 다 읽은 (그러고 하나는 엄청 깐ㅋㅋㅋ)책이라 반갑네요.

얄라알라 2023-02-14 09:15   좋아요 1 | URL
ㅋㅋㅋ역시나, 내가 좋아하는 열반인님 스톼~일의 농담 ㅋ 네네,
덤벙거리는 덕분에 따블로 읽었네요 ㅎㅎ
 
스갱 아저씨의 염소 파랑새 그림책 95
알퐁스 도데 글, 에릭 바튀 그림, 강희진 옮김 / 파랑새 / 201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 수 많은 그림책 중에서 유독 이 책에, 그 중에서도 ‘에릭 바튀‘의 일러스트레이션이 곁들여진 버전에 강렬히 마음을 빼앗기는 이유가 무엇일까? 스치듯 짧게 경험하는 ‘바깥세계‘ 자유의 순간을 위해 기꺼이 생명의 위태로움을 감수하는 어린 염소에게 왜 매료될까? 10년 후에도 별5 평점을 줄까?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유행열반인 2023-02-08 18: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거의 30년 전에 읽었는데 피로 하얀 털 물들이며 죽은 암염소가 저한테그때 뭘 심어놨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얄님 평보며 퍼뜩 드네요 ㅋㅋㅋ

얄라알라 2023-02-11 02:41   좋아요 1 | URL
열반인님^^
저희는 닉넴도 서로 가볍게 나눠서 부르는 사이잖아요?^^

저도 열반인님, 이 댓글을 보면서, 비록 시기는 다르지만 저 역시 블랑케뜨가 마지막 새벽을 맞는 장면이 제게 뭘 심었겠구나...ㅉㅉㅃ하였습니다.

어렸을 땐, 읽었어도 잘 기억못했을 이 동화를 어른이 된 후 많이 좋아하게 된 이유를 스스로 파보아야겠습니다^^

singri 2023-02-08 2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단 표지가 강렬하긴 하네요.
알퐁스도데라니 ;;궁금합니다

얄라알라 2023-02-11 02:42   좋아요 0 | URL
네 singri님
만약 이 작품 읽으실 거라면
에릭 바튀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보시는 것도 멋진 선택이 될 듯 합니다^ ^

초원 2023-02-08 21: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강렬하네요. 10년 후면 30대인가요? 얄라님 글도 반유행님 댓글도 뿌리가 단단하네요.

얄라알라 2023-02-11 02:43   좋아요 1 | URL
초원님께
타이타닉 영화의 대사를 들려드리고 싶어지는.
˝You see people.˝

열반님 (반유행님) 댓글 저도 좋아해요^^

고양이라디오 2023-02-09 16: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얄라님의 5점이라니 궁금하군요. 알퐁스 도데라니 한 번 보고 싶습니다ㅎ

얄라알라 2023-02-11 02:44   좋아요 1 | URL
^^ 고양이라디오님~운동도 하시고, 책도 읽으시고, 이젠 알퐁스 도데까지....
이 그림책은 다 읽고 나서도 개운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더 좋아하나봐요^^ 묘한 취향인가도 싶습니다 ㅎ
 

운동이라고는 (+ 마라톤이라는 희미한 추억을 뒤로 한 채) 걷기만 하는 나의 입에 담을 단어는 아닌 듯한데, 소위 "테니스 엘보우"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테니스 라켓은커녕 파리채 한 번 휘두른 적 없이 팔꿈치를 귀하게 모셔 주었건만, 웬 통증이 이리 지독한가? 샤브샤브 야채 가위질과 양치질할 때 비명이 절로 나오더라. 외투에 팔을 넣을 때도 비명을 삼킨다. 아픈 이유가 궁금해서 기억을 뒤져봤자, 가끔 4~5시간씩 소파에 널브러져 핸드폰과 노느라 팔목과 팔꿈치를 지지대 삼은 정도? 그런데도 '테니스 엘보우' 통증이라니, 매우 부끄럽다. 엄살 부려서 더 부끄러운데, 매일 물리치료 받고 약 처방도 한 달 치나 받았다.


문제는, 




커피 머그잔도 왼손으로 받들어 양손으로 드는 처지에, 이 많은 책들을 한 번에 들고 왔다는 것이다. 처음엔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만 빌릴 계획으로 도서관을 찾았다. 그러나....언제나 그랬듯이, 새 책 앞에 선 나는 황홀한 기대감에 팔꿈치 통증 따위는 홀딱 잊었다. 대출가능 최대치로 꽉꽉 채워 빌리고는 흐뭇해서 비실비실 웃음이 나오는 걸 숨기며 도서관에서 걸어 나왔다. 지금 이 녀석들은 내 집 서가에 자리잡았는데, 막상 앉혀놓고 보니 이 녀석들을 들고 온 사람, 참 우악스럽게 힘자랑 했지 싶다. 한 팔로 들고 올 수 있는 분량이 아니다.

*

이건 마치, 뭐랄까, 제 자식이기 때문에 20킬로가 넘는 어린이도 번쩍 안아올릴 수 있는 엄마의 괴력에 비유할까? 팔꿈치가 그렇게 아팠는데도 번쩍 이 녀석들을 업어 온 나는 뭔가... 안 읽은 새로운 책들을 보면 가슴이 설레고, 더 잘 살고 싶은 욕심이 올라오는 나는 뭔가... 물리치료나 받으러 가자. 



댓글(21)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coolcat329 2023-02-07 18: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책들 본 순간 엘보가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나보네요.
저희집에 테니스 광이 있어서 그 고질병을 잘 아는데 얼른 나으시길 바랍니다.

얄라알라 2023-02-08 00:20   좋아요 1 | URL
네, coolcat님.
‘고질병‘이라고 말씀하시는 걸 보니 흑..^^:;;
저도 가볍게 생각했다가
만성통증이라는 의사 선생님 설명 듣고 당황했어요.

감사드립니다. 얼렁 통증 줄일 수 있도록 당분간 스마트폰을 적게 해야겠습니다 ㅎ

레삭매냐 2023-02-07 18: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역시 책쟁이들의
책에 대한 욕심이란.

저도 책 대출 한도가 꽉
차 버렸답니다. 반납해야
하는데 말이죠...

얄라알라 2023-02-08 00:19   좋아요 2 | URL
꽉찬 대출 권수에서 한 권씩 반납하며 숫자 낮춰나갈 때의 쾌감...

그 역시 책쟁이들이 아는, 즐기는!

레삭매냐님의 책 욕심에 비하면 저는 찍 소리도 못합니다요!^^

다락방 2023-02-07 19: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걸 다 어떻게 들고 오신 거에요 ㅠㅠ (방금 서점에서 책 사서 백팩에 책 8권 있는 사람)

얄라알라 2023-02-08 00:10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8권..새책으로 8권...
다락방님의 8권 두께가 어쩌면 13권 두께일지도..

백팩이 남아나셨나요?^^;;;;
저는 알라딘에서 얼마전 ‘짐 많은?? 책 많이 나르는??˝ 요런 문구로 굳즈 판매할 때 아주 큼지막한 가방 하나 사서, 요긴하게 쓰지만 그 가방도 많아야 10권 수용인 듯 합니다. 욕심이 가방 솔기 튿어지게 할까봐 조심조심하지만 조만간 솔기 터질 것 같습니다 ㅎ

그렇게혜윰 2023-02-07 20: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테니스엘보는 안 써야 낫는다던데요 ㅠㅠ 전 어제 당근으로 엄마책 받아왔는데 19권.....20분 걷는데 곡소리 날 뻔요 ㅠㅠ

얄라알라 2023-02-08 00:11   좋아요 1 | URL
ㅎㅎㅎ20분..19권...아, 그러실만 합니다....어깨에 멍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그러시다가 어깨 멍 드실 것 같아요. 살살, 조금씩 읽으시어요(라고 말씀드리기엔, 제 이 포스팅이 떳떳하지 않네요 ㅎㅎ)

그렇게혜윰 2023-02-08 08:34   좋아요 0 | URL
전 끌어안고 왔어요! 어깨에 메고 오신 거예요? 😭

건수하 2023-02-07 20: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마트폰 엘보도 있다더라고요… 저도 코로나 시절 삼시세끼하며 왔는데 오래갔답니다. 지금도 무리하면 아프구요.. 얄라알라님, 치료 잘 받으셔요!

얄라알라 2023-02-08 00:13   좋아요 2 | URL
ㅎㅎ수하님, 저 아까 걷다가 폰으로 수하님 댓글 확인하고 순간 걸음 멈춘 것 있죠 ㅎㅎ바로 답글 쓰고 싶어서 ㅎ

수하님께서 일깨워주신 그대로, 저는 ‘스마트폰 엘보‘입니다. 요 2~3달 사이에,‘무비어퍼컷‘이라는 유투버의 모든 동영상을 단 하나도 안 빼놓고 다 보았거든요^^;;;;;;


수하님께서도 엘보 통증에서 벗어나시길요.
감사합니다.

singri 2023-02-07 2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부림은 언제나 옳긴하지만 ;;
잘 나으시길.

얄라알라 2023-02-08 00:18   좋아요 0 | URL
singri님 감사합니다.

명함 내밀기도 부끄러운 통증으로 야단을 떠는 저를 반성하고 있었어요. 조금이지만, 통증을 느끼니 다른 분들의 행동반경이나 움직임에 좀 관심이 생기더라고요...안 아플 땐 별 생각 없이 살다가요...

근데 ˝책부림˝이라는 말 좋은데요^^ 언제나 옳습니다 ㅎ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은오 2023-02-08 05: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얄라님 옆으로 누우셔서 팔꿈치와 팔을 모두 소파에 붙이세요!!! 자세가 중요합니다. 얄라님 팔 소중해....😭 - 와식인간 은오 올림

얄라알라 2023-02-09 17:24   좋아요 0 | URL
그러잖아도 최근 겨울호랑이님이셨던 것 같은데, 전라도 화순 와불 사진 올려주셔서 유심히 보았더랬어요 ㅎㅎ
와식이 중요한 거군요^^

와식인...이 단어 아주 맘에 드는걸요^^

독서괭 2023-02-08 16: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아… 앞으로는 도서관 가실 때 백팩을 준비하시는 건 어떨지요? 안 써야 낫는다고 하니ㅠㅠ 어서 나으셔서 더 많이 들고오시길 빕니다 ㅎㅎ

얄라알라 2023-02-09 17:23   좋아요 0 | URL
누군가 그러시더군요. 책욕심 많은 사람은 아예 가방을 큰 거 사지 않도록, 원천 봉쇄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제가 알라딘 굳즈로 나온 대형 캔버스 백을 산 후에 한 쪽 어깨가 찌그러지려 합니다 ㅎㅎ

근데 더 많이 들고오라고요?^^ ㅎㅎ독서괭님의 애정어린 응원에 저, 힘자랑 조만간 하겠습니다. ㅋ

고양이라디오 2023-02-09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 한도가 몇 권입니까 ㅎㄷㄷ

팔꿈치 조심하시고ㅠ 얄라님 글과 댓글들을 보니 저도 어서 책 읽고 싶네요!ㅎㅎ

얄라알라 2023-02-09 17:24   좋아요 1 | URL
이름을 빌려쓰고 있습니다. 제 욕심을 제 이름으로만 다 채우지 못합니다^^;;;;ㅋㅋ

2023-02-09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10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다문화 男兒˝라는 표현이 가능한 한국 사회 특유의 ˝다문화주의˝를 비판하지만, 정작 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소속인 김지혜가 [소수자와 인권] 강좌 준비하며 참고한 자료를 엮어 낸 책. 주로 북미 사회 이론과 사례를 끌어와 저자의 해석을 살짝 곁들인 구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3-02-07 15: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좋게 읽었는데...
별3개? 하고 봤는데 100자평 내용 보니 납득이 갑니다.^^

2023-02-07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GEN Z (Z세대) - 디지털 네이티브의 등장
로버타 카츠 외 지음, 송예슬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Gen Z]?

사회과학서 제목이라기보다는, 백화점 입점 힙한 신생 브랜드 이름처럼 들립니다. 부제 "디지털 네이티브의 등장 The Art of Living in a Digital Age"를 확인하자마자, 궁금증과 당장 읽어야겠다는 의욕이 솟구쳤어요. 사실, 도서관 300번대 서가 어슬렁거릴 때마다 "요즘 애들," "MZ," "(포스트) 밀레니얼," "청년" 을 제목에 담은 책들이 즐비하길래, 언젠가는 세대론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었거든요. 게다가 평소 제가 관심을 두어 온 사회학, 언어학, 역사학, 인류학 전문가들이 협업한 결과물이라니 그 방법론과 분석 방향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Gen Z]는 미국 스탠퍼드대 캠퍼스에서 봄날 햇살을 즐기며 '요즘 애들'을 이야기하던 4명((언어학자 세라 오길비 Sarah Ogilvie, 인류학자 로버타 카츠 Roberta Katz, 역사학자 제인 쇼 Jane Shaw, 그리고 사회학자 린다 우드헤드 Linda Woodhead)의 오케이 부머(OK boomer)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각 전공 분야의 이론과 방법론을 활용해 "요즘 애들"을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해석하고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기획합니다. 재정적 지원처를 확보한 후 이들 4인은, 대학교수로서 동원 가능한 연망과 지도학생들의 도움에 힘입어 3년간 차곡차곡 자료를 모았습니다. 일반인도 이해할 쉬운 언어로 그 연구 결과를 풀어낸 책이 바로 [Gen Z]이고요. 




[Gen Z]는 '세대론'이라는 주제와 방법론 면에서 태생적인 약점을 안고 있는데, 공저자 4인은 영리하게도 도입부에서 그 약점을 공개하고 인정하는 전략을 취합니다. 먼저 표본의 한계로 인한 과대 일반화 가능성입니다. 이 연구는 2017년부터 3년간 120개 포커스 집단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자료, 무려 7000만 영어 어휘를 분석한 'I 세대 말뭉치' 그리고 문헌 자료에 기반을 두었습니다. 인터뷰 대상은 모두 미국의 두 대학(캘리포니아 소재의 칼리지와 스탠포드 대학)과 영국의 랭커스터 대학교 재학생인데, 저자들이 직접 인터뷰하지 않고 Z세대인 연구조교들에게 대리 수행시켰습니다. 따라서, 이 연구는 Z 세대 특유의 존재와 상호작용 방식, 정체성 지표, 지향과 세계관, 문제의식 등을 다룬다고는 하지만 표본의 한계로 인해서 특수한 소수 집단의 특성을 파악했다는 정도로 의의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저자들의 말을 들어 보겠습니다.


이 책은 표본의 한계로 인해 전 세계 포스트 밀레니얼에 관한 확정적 연구서는 되지 못한다. 그래도 미국과 영국의 Z세대를 포착하는 데는 유용한 책이기를 바란다. 다른 문화권과 사회에서 Z세대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도 이 책이 영감을 준다면 기쁠 것 같다.

[Gen Z] 들어가며: 디지털 네이티브의 등장 中


_____

따라서, [Gen Z]를 생산적으로 읽으려면 자료의 대표성을 문제 삼거나 해석의 허점을 지적하기보다는, 연구의 시사점을 현재 관심 두고 있는 집단 및 사회에 생전적으로 적용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제 경우엔, 공저자 4인이 소위 포스트 밀레니얼이라 불리는 "Z세대"의 가치관(가족과 친족, 친밀관계, 상위 공동체, 정치의식 등), 관심 화두나 정신 건강상태 등 비물질적 변화를 '언어-I세대 말뭉치'를 통해 포착하려는 시도가 흥미로웠습니다. 예를 들어, 'I 세대 말뭉치' Z세대의 교차적 정체성에서 '국가나 민족,' '종교,' '계층'등의 지표가 덜 중시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법적으로 구속되는 가족이나 친족 관계를 넘어, 온라인 오프라인 상 유사가족 관계를 구축하는 Z세대에게는 'fam' 'crew' 'tribe' 등의 어휘가 일상에서 많이 활용된다는 것도 확인해 줍니다. 또한 기성세대를 불신하고 경직된 위계질서를 환멸 하는 Z세대는 유독 "I"주어의 문구,  'I think,' 'I have,' 'I don't' 등을 유독 많이 사용한다고 합니다



Z세대는,

  1. Born Digital: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산다. 그에 따라 소통방식, 상호작용 방식도 조율한다.
  2. 자기 중심성과는 변별되는 "자기 의존적 지향성"을 보이며 (의외로) 타인을 돌본다.
  3. 디지털 세대는 조립식 정체성을 통해 공동체에 소속되고자 한다.
  4. 공동체 밖 타인을 포용하고 다원주의를 추구한다.
  5. 온라인에서나 오프라인에서 진정성을 중시하며, 이를 변별할 수 있다.
  6. 협력(콜라보)를 중시하며, 위계가 아닌 합의된 권위를 지향한다. 전문가 우대는 옛말이다.
  7. 암울한 현실에 환멸하고 현 세대의 과제가 버겁다고는 느끼며, 현재,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한다.
  8. 그렇다고 안주나 포기가 아니라, 미래의 변화에 대비해 집합적으로 투쟁하고자 한다.

다소 이상화된 특성으로 보이지는 않나요? 아무래도 실제 Z세대의 일상에서 밀착 관찰한 연구가 아니라, 자기보고식 설문조사와 대면 인터뷰로 자료를 수집하다 보니 이상화된 답변들이 모이지 않았을까도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연구가 Z세대라는 추상의, 경계가 흐린 집합체를 'Z' 에 속하지 않는 세대와 변별하는 목적을 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보다는 인류가 처해 있는 큰 어려움과 변화에 협력하여 서로 배우고 같이 나아가자는 데 [Gen Z]의 핵심 메시지가 있습니다.

여기, 서문의 유효한 문장이 있어 옮겨보겠습니다.

우리 연구와 이 책의 목표는 Z세대를 병리학적으로 해부하거나 이상적으로 포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들의 방식대로 Z세대를 이해하고,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을 물려받은 세대를 파헤쳐 보고 싶었다... 우리는 한배를 탔다. 우리에게는 세대를 뛰어넘어 서로에게 배울 귀중한 점들이 있다. [Gen Z] 13쪽



해당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썼습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양이라디오 2023-01-31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Z세대ㅎ 유튜브에서 SNL MZ오피스 보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ㅎㅎ

Z세대의 특징을 보며 인간 혹은 젊은 세대의 보편적 특징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ㅎㅎ

얄라알라 2023-02-01 01:54   좋아요 1 | URL
그 연기 잘 하시는 주현영이 메인인 프로그램 말씀하시는 거죠?
ㅎㅎ저도 봤어요. 넘 재밌었어요^^ 다들 연기도 넘 잘하시고

오늘도 직거래장터에 가면 MZ세대 참 많이 볼 수 있다. 기성세대(?)와 다른 면이 있다...라고 얘기해주시는 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좀 나눴는데 [GEN Z] 생각이 났어요

고양이라디오 2023-02-01 10:33   좋아요 0 | URL
다들 주현영씨가 연기 잘한다고 하시더라고요. 넘 재밌어요ㅎ

요즘 MZ세대는 어떤가 궁금하네요ㅎ 뉴스로만 들은 거 같아요ㅎㅎ

2023-02-01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3-02-07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급해 주신 대로 백화점에
이제 막 입점한 신생 브랜드
처럼 들리네요 ^^

본 디지털, 정말 공감하는
바입니다. 어릴 적부터 그렇
게 너튜브를 보고 자라서
그런지 디지털에 대한 거부
감이 기성세대와는 남다르
다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