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믿고 보는"이라는 문구를 피로감 줄 만큼 많이 쓰시잖아요. 자제해야겠는데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전시에는 이 문구를 꼭 붙여주고 싶네요. 한가람 미술관을 찾고 후회해본 적 없었으니까요. 호평 일색인, "피카소와 큐비즘" 전 역시 '예술의 전당 명화 전시 14개'를 성공시킨 '서순주' 감독이 기획했다네요.




2시 도슨트를 놓치고 3시에 입장권을 발권 받았기에,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했습니다. 1시간 여유롭게 관람한 후, 다시 4시 도슨트의 전시해설을 들었는데 만족스러웠습니다. "피카소와 큐비즘" 전시만큼은 도슨트 혹은 오디오 가이드를 적어도 하나 필히 활용하기를 권합니다.

사진촬영이 금지되었기에, 잔머리를 굴려서 오디오 가이드에서 해설하는 작품들 사진을 찍어보았습니다.



전시회 부제인 "입체파 회화의 모든 것을 만나다"에 상응하도록 이 전시는 입체주의 탄생부터 소멸까지 연대기적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첫 번째 섹션에서는 "세잔과 원시미술," 즉 입체주의의 기원을 소개하고, 둘째 섹션에서는 절친이었다는 피카소와 브라크를 중심으로 "입체주의의 발명"을 다룹니다. 이 섹션에서 피카소의 "남자의 두상"을 만나봅니다.




파블로 피카소, 남자의 두상 (1912)

세 번째 섹션에서는 "섹시옹 도르와 들로네의 오르피즘," 네 번째 섹션에서는 "1,2차 세계대전 사이의 입체주의"를 소개합니다. 규모 면에서 압도적이며, 파리시립미술관에서 80년 만에 외출했기에 더욱 특별한 초대형 걸작품을 다섯 번째 섹션에서 감상한 관람객은 파리시립미술관 소장품 90개를 만나본 셈입니다.



"키즈 아틀리에" 수업 연계로 입장한 미취학&취학 꼬마 십수명에 일반 어린이 관객들이 꽤 많았는데도 어찌나 다들 관람예절을 잘 지키시는지 족히 일이백명 입장했을텐데도 관람환경이 만족스러웠습니다. 마이크 없이도 온 공간을 쩌렁쩌렁 울리는 성량으로 큐비즘의 생성과 발달 소멸을 강의한 도슨트 선생님, 엄지 척! 해설이 끝날 때까지 자리 이탈하시는 분 없을 정도로 흥미롭게 설명해주시더라고요.



90개 작품과 도슨트의 충실한 설명에 힘입어 불과 100여분 한가람미술관에 머물렀을 뿐이지만 '입체파 회화'를 희미하게나마 알겠더라고요. 오늘의 기쁜 수확인 셈이죠.

도슨트 선생님이 이번 전시를 연대기적으로 구성했기에, 같은 화가라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화풍이 어떻게 바뀌는지 눈여겨보라하였는데 피카소야 워낙 구사할 수 있는 화풍이 많으니 패스. 피카소보다도 로베르 들로네의 화풍 변화에서 큰 감명 받았습니다.



예술의 전당 측에서 제공한 팜플랫 문구에 따르면 "로베르와 소니아 들로네는 무채색이 특징이던 입체파 회화에 색채적 확장성을 완성한 대표작가"라 합니다. 저는 실제로 로베르 들로네의 그림 앞에서 가장 오랜 시간 머물렀습니다. 같은 지구인으로 두 개의 눈과 두개의 귀를 갖고 살아도, 이렇게 세상을 풍성하고 찬란한 빛으로 재해석하는 이들이 있구나.... 10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그 색깔의 향연을 펼치던 들로네의 팔레트를 상상해봅니다. 그가 선물한 빛의 향연을 거진 100여 년 뒤 한국의 무명인이 찬탄하며 즐깁니다.

아래 사진은 6미터의 초대형 작품 제작을 위한 아담한 습작과 거대한 완성작입니다. 관람객 인증샷 부르기에, 실제 전시장에서는 관람객 흐름이 계속 이어집니다.




일단 출구 밖으로 나오면, Go back은 불가.

아트숍에서 평소보다 오래 머뭅니다.

도록은 공간을 차지해서 패스, 대신 3D 엽서 몇 장 샀습니다. 아트 프레임, 우산, 큐브 등 전시 연계된 소품도 눈에 쏙쏙 박힙니다.



2시간이나 한가람 미술관에 머물며, "피카소와 큐비즘" 전시를 찬찬히 살핀 덕분에 '입체파화가'가 누구인지, '입체파' 안에서의 다양성과 그 매력, 서양미술사에서 입체파의 의의 등을 윤곽이나마 그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번 더 말해보고 싶네요. 역시! "한가람미술관 전시" 믿고 봅니다!

*


"에버 알머슨" 전시회 끝나기 전에 다시 한가람 미술관 찾아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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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02-11 0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전시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19-02-11 15:20   좋아요 0 | URL
읽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예술전당 한가람 미술관은 주중이나 평일이나 한산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어쩜 기획자가 능력이 이렇게 출중하신지^^ 기획자가 더 궁금해지네요 다녀오고나니
 
나마스떼! 김 써르 - 다정 김규현의 히말라야의 꿈 1 다정 김규현의 히말라야의 꿈 1
김규현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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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마스떼! 김 써르(Namaste! Kim Sir)』의 부제는 "다정 김규현의 히말라야의 꿈1"이다. 저자 김 써르, 김규현은 칠순을 넘긴 나이가 무색하게, 『네팔의 역사와 문화산책』 와 『티베트와의 인연, 4반세기』도 근간 준비 중이다. 나마스떼! 김 써르』만해도 330여 페이지 분량인데, 그 왕성한 창작욕구는 어디에서 나온걸까? 속된 말로 역맛살이 대단해서 젊어서부터 티베트와 친숙했고 여생을 네팔에서 보내는 저자의 경험세계가 이야기 거리를 풍성하게 해주기 때문이리라고 추측해본다. 더 근원적으로는 그가 아내를 떠나보내며 바뀐 에너지 덕분이라고 상상해 본다. 저자는 네팔에 미술 선생님, 그러니까 김 써르(김 선생님)으로 봉사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말한다. 


내 한평생을 돌아보니 그런대로 열심히 살았다고는 하지만, 그 세월들은 어찌 보면 지극히 이기적인 삶이었다... (중략)... 이제는 남은 여생이라도 내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 나아가 그들의 꿈을 이루어 주기 위해 살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결기가 가슴속 깊숙한 곳에 들어차기 시작했다. (본문 77쪽)  

 

다정 김규현은 헌신 어린 봉사를 향한 결의라고 정리하지만, 나마스떼! 김 써르』는 이 작가의 마음에 여전히 인연 동심원의 잔물결이 쉼 없이 파동침을 드러낸다.  아내를 향한 그리움과 추억을 정리한 1부,  ‘영원한 이별 그리고 비우고 떠나기’를 읽다 보면 '애잔'하다고밖에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독자의 마음에 올라온다. 자신을 취재하러 온 띠동갑 여기자와 결혼, 손수 지은 집 '수리재'에서의 신혼과 가정확대기, 하지만 아내에게 찾아온 병마, 꿈을 펼치지 못하고 하늘로 떠난 아내 유품 중 발견한 창작노트. 남편 김규현은 문학가를 꿈꿨던 아내 노력을 뒤늦게(재능은 진작에) 발견하고 정성을 담아 출간해냈대. 이렇게 1부에서 독자는 마치 김규현 저자가 상주로 있는 장례식에 경건한 마음으로 조문온 기분을 느낀다.


나마스떼! 김 써르』본문에서

2부부터 저자는 더 아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자신이 미술 선생님으로 몸담은 네팔 비렌탄띠 마을의 '스리 비렌탄띠 세컨더리 휴먼스쿨'과 그 학생들 이야기부터, 산악인이라면 특히 좋아할 안나뿌르나 트레킹 이야기, 네팔의 종교와 먹거리 문화를 소개한다. 아마도 저자 자신과 "글로벌콘텐츠" 출판사 편집자가 많은 내용을 덜어냈겠지만, 김규현의 경험세계가 워낙 폭넓고 깊기 때문에 이야기는 방사형으로 뻗어 나간다.  네팔을 아끼는 반semi내부자로서 뼈가 든 충고도 하고, 네팔과 한국과의 여러 연계(지원, 문화교류 등)에 대해 구체적 소개를 하며 향후의 소통 채널을 열어주는 일도 한다.

저자 김규현은 어떤 이들을 독자로 상상하며 글을 썼던 것일까? 1부에서는 아내 추모행사에 자리를 함께 해준 이들을 상세히 언급하고, 2부에서는 이례적으로 긴 지면을 할애하여 '세칸더리 휴먼스쿨' 염소 후원자의 실명과 기관명을 빼곡하게 적고 있다. 마찬가지로 3부에서는 안나뿌르나 트레킹을 계획한 이들을 위한 여행 코스를 상세하게 제시한다. 마치 김규현의 일기, 가까운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등반 떠나려는 후배에게 전하는 쪽지글, 네팔 현지문화 전문가로서의 에세이를 동시에 섞어놓은 글을 읽는 듯하다.

염소 기증자 명단

나마스떼! 김 써르』는, 다른 어떤 네팔 안내서와도 차별되는 개성으로 네팔을 소개하리라는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그랬다. 김규현이라는 영혼과 발이 자유로운 구도자, 의미의 여행자, 그 만의 렌즈로 세상을 걸러 보여주기에 이 책은 충분히 그 기대를 충족시킨다. 끝으로 본문의 몇 문장을 옮겨 적는다. 다정 김규현 선생 덕분에 처음 듣게 된 '옴 Aum,' 뭘까? 궁금타.


히말라야는 분명 인간의 영역 밖이다. 그것은 히말라야의 깊이 모를 경이로움 앞에 마주서 본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인하는 바일 것이다. 그 앞에 서면 '옴 (Aum)'이라는 신비로운 파장이 자신도 모르게 전율같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155쪽).

신령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산 밑에 서면 우리는 두려움과 함꼐 안온함도, 마치 모태에 다시 들어가 앉아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160쪽).

몇몇, 이미 그렇게 되기로 운명지어진 사람들은 그 부름소리를 듣고 성스러운 것에 대한 열망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일어남을 꺠달아 그 영감의 근원지를 찾아 길을 떠나게 된다. 자연에 이어진 보이지 않는 끈을 자신의 영혼에 잇기 위하여,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자아를 찾아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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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 익스프레스 - 원자의 존재를 추적하는 위대한 모험 익스프레스 시리즈 1
조진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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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처음 찾은 과학전문 책방 "갈다"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책은 바로 『아톰 익스프레스 (Atom Express)』! 마침 그 무렵 읽고 있었으니까. 알고 보니, 이 서점에서 저자 강연회도 열렸다고 한다. 몇 년 전 우연히 『 Gravity Express 』를 발견했을 때, 당연히 외국 작가 작품일 거라고 추측했다. 많은 한국 작가분께 죄송하지만, 솔직히 한국에서도 이렇게 세련된 그림체의 과학"전문"만화책이 나오리라고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이런 실수 한 독자, 왠지 나뿐만 아니었을 듯. 그런데 저자 약력을 살펴보니, 조진호 이분, 참 대단하다. 우선 그 유명한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 생물 선생님으로 지내다가 '교육용 컨텐츠' 개발에 흥미를 느껴, 주경야독하듯 만화를 그린 분이시다. 취미라고 하기엔 베테랑 수준급이었던 것 같다. "국내에서 나오기 힘든 그림 그리는 과학자의 출현"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그래비티 익스프레스』로 2013년 문화체육부 최우수 교양도서, 제54회 한국출판문화상 교양 부분 수상을 했으니까. 이어 2016년에는 『게놈 익스프레스』를, 2018년에는 『아톰 익스프레스』를 펴내었다. 딱 봐도 '조진호' 작가의 그래픽과학책인줄 알 수 있다. 한 가지 중대한 과학적 질문을 탐색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 탐색 여행하는 방식의 줄거리, 과학지식에의 전문성, 그리고 세련된 그림체. 딱 '그'답다. 감사할 따름이다. 과학 교육과 만화(교육용 컨텐츠 제작)이라는 양 분야에 정통한 저자가 이렇게 일반을 독자 삼아 좋은 과학 책을 꾸준히 펴내주니.



조진호 작가 과학 만화책 3부작, 어느 책부터 읽어도 무방하다

『아톰 익스프레스』에서는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나?" "세상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면, 과학자들이 그것을 발견한 것인가? 아니면 그것이 존재하도록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것일까?"의 질문을 집요하게 탐구합니다. 저자 조진호의 말을 빌자면 "원자야말로 과학의 진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상다리 휘어지는 한정식 차림 한편에 놓여 있는 된장찌개처럼 빠지지 않는 존재감을 뽐냅니다 (385)." 이처럼 이 책이 원자 탐색의 참 재미를 느끼게 하는 데는 '왜 why?라는 근원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또 충족시켜주기 때문입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과학을 공부했으면서도 정작 '왜'라는 질문 던지기에 소홀했던 저자 조진호는 나이 들어 다시 만난 과학에 '왜?' 물음표를 달고 나니, 과학이 훨씬 재미있게 다가왔다고 합니다. 그 과학 공부 방식과 공부의 재미를, 자신의 3부작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지요.





늘 그러하듯, 저자는 과학자들의 주인공으로 내세워 여행을 시킵니다. 이번 여행의 주인공들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의 질문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라부아지에, 돌턴, 아보가드로, 멘델레예프, 페러데이, 줄, 볼츠만 등 이 분야 대가, 유명한 과학자들을 만나지요. 물론 저자는 이들의 어려운 개념을 피하지 않고 정공법으로 독자에게 소개해줍니다. 자칫 어려워서 흥미가 떨어질 수 있겠지만 조진호 저자는 이들 과학자들의 삶에 얽힌 에피소드를 버무리고, 입에 착착 감기는 농담을 섞어 대화체를 가볍게 하고, 영화 같은 화면구성의 그래픽 노블로 재미있게 풀어냈습니다. 여러 과학자들이 조진호 작가의 신작에 찬사를 보내는 이유일 것입니다. 여러분도 조진호의 그래픽 노블 같은 과학전문만화 세 권을 차근차근 만나보심이 어떠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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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1-01-12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정보 감사합니다. 과학 책방 ‘갈다‘ 가보고 싶네요. 3부작도 보고 싶네요^^

<어메이지 그래비티> 정말 재밌게 봤었는데! 조진호님 작품들 기대가 됩니다.
 
책을 사랑하는 아이로 키우기
앨리슨 데이비드 지음, 이주혜 옮김 / 좋은꿈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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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Help Your Child Love Reading 』, 『책을 사랑하는 아이로 키우기』 정직하고도 명료한 번역이다. 어린이책 출판사 에그몬트 출판사(Egmont Publishing)에서 디렉터로 일하는 엘리슨 데이비드가 영국에서 펴낸 부모 가이드를 '좋은꿈 출판사'가 한국 독자에게 소개한다. '좋은꿈 출판사' 역시 어린이를 책과 사랑에 빠지도록 어르고 달래고 유혹하는 출판사이니, 엘리슨 데이비드의 책을 이 출판사에서 한국판으로 출간해준 게 우연은 아닐 것이다.



실은,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어떤 주장이 펼쳐질지 짐작할 수 있었다.

"부모부터 책을 늘 가까이하고, 책 읽는 가정 분위기를 조성할 것," "핸드폰 등 스마트기기를 멀리할 것," "아이에게 직접 책 읽어주거나 함께 읽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질 것," "도서관 자주 들릴 것"

뭐 비결이 딱히 있겠나? 내 아이, 책 사랑에 풍덩 빠지게 하는 데에. 어떻게 그 타오르는 책 사랑을 가르치거나 억지로 강요할 수 있겠나? 그건 느껴본 자만 알고 다시 찾는 환희의 샘물. 마셔도 기분 좋게 또다시 목마르게 하는 샘물. 극장에서 꼬마 군단과 "미녀와 야수"(2017)를 보다가, 어이없게도 눈물샘이 뻥 뚫렸었는데, 다름 아닌 서재 씬 때문이었다. 시골이라는 좁은 공간, 좁은 경험 세계에 갇혀 있던 소녀 Bell이 야수의 서재에서 책들을 보자 환희에 떠는 그 마음을 내가 아니까. 마음이 블루일 때 책이 천연 프로작이 되어주고, 몸이 지칠 때조차 책을 비타민 삼는 사람들의 그 마음을 아니까..... 책 읽다가 간혹 속해있는 시공간을 잊으니까.....

책 읽기 전 짐작한 대로 앨리슨 데이비드는 "부모부터 솔선수범 책과 친하고, 스크린 사용 시간을 제한하고, 책을 읽어주면서 아이와 경험을 공유하라"라는 조언을 한다. 차별점은, 저자가 엄마이자 출판인으로 쌓아온 노하우에 기반해 자녀 연령별로 구체적인 팁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장에서는 0~4세인 '미취학 아동'을 위한 조언을, 5장에서는 자칫 부모의 손길(?)을 떠나기 쉬운 12~16세 청소년기 자녀들의 책 사랑 키우기를 위한 조언을 전개한다. 앨리슨 데이비드의 목소리에 더해, 이 분야 전문가들과 다른 교사들의 충고를 함께 들려주기에 설득력을 몇 배로 올라간다.



작년에 서민 교수의 출판기념 강연회에 참석했을 때, 자타인정 책벌레 서민 교수는 '스마트폰'의 폐해를 청중에게 인지시키는 데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스마트 기기 사용시간과 종이책 넘기며 종이책과 사랑에 빠지는 시간'이 거의 대부분의 남녀노소에게 반비례 관계라는걸, 누가 몰라?"하는 이들 많았을 것이다. 『책을 사랑하는 아이로 키우기』 역시, 핵심 주장을 뒤집어보면 "화면 사용시간을 제한, 최소화하라"와 다름없다. 지키기 어려워서 그렇지, 책 사랑으로 건너가기 전 첫 장애물로 등극한 스마트폰, 절대 멀리해야만 하나보다.



엘리슨 데이비드의 충고 중 또 하나, 인상 깊은 것은 큰 아이들(소위 '중2' 전후)에게도 부모가 같이 책을 읽는다거나, 읽어주거나 역으로 아이가 책을 고르게 하여 그 책을 부모가 읽는 등 소통을 적극 꾀할 필요가 있다는 충고이다. 아이에게 책 읽어주기는 꼬마들 베드타임용으로 끝내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 부모가 많겠지만, 함께 읽기의 효과는 아이 나이를 넘어선다.

만약, 이 책을 읽게 될 이가 부모라면, 더 무엇 말하랴. 손 닿는 데 책을 두고 늘 읽는 모습을 보이면, 책 읽기가 곧 명상이자 힐링인 모습을 보이면 아이 역시 책을 삶의 일부로 들일 텐데.... 2019년은 아이와 나란히 채워나가는 책 일기장을 한 권 준비들 하시면 어떠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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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9-02-07 0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책이 늘 가까이에 있었던 걸 기억합니다. 사실 아주 자연스럽게 그냥 그렇게 읽었고 중간에 국민학교 3-4학년 정도 때 책을 덜 읽던 시절에는 행여 글에서 멀어질까봐 부모님이 만화책을 사주셨었어요 (나중에 들으니 그래서 사주셨다고 하시네요). 방법론은 모르지만 늘 책을 보는 환경이면 자연스럽게 그리 되는 것 같습니다.

2019-02-07 0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년 12월, 책상 배치를 바꾸니 "하루 두 권 책 읽기"가 껌 씹기 수준이었습니다. 비워낸 휑한 공간에서의 책 읽기, 집중이 잘 되었거든요. 그러다 점점, 스마트폰이 손에 착착 들러붙어버리니 '하루 2권' 행진은 사오 일 만에 STOP. 역시, 이노무 스마트폰!!!!!!

다행히, 연휴에 다시 불붙었습니다. 어제는 4권이나 읽었네요. 글 밥 적은 청소년 책들이었거든요. 『지구를 살리는 영화관』, 『밍기민기』, 『힙합은 어떻게 힙하게 됐을까?』, 『노랑무늬영원』.

요즘 친구들, 참 복받았습니다. 이렇게 재미난 책들, 다양한 장르에서 신간이 쏟아지니 말입니다. 초등학교 때 문학전집과 애거사 크리스티 전집, 셜록 홈스 전집, 동아백과사전을 반복해서 보던 기억이 나, 원하기만 한다면 책의 홍수에 풍덩할, 요즘 친구들이 부러워집니다.


『지구를 살리는 영화관』은 환경을 생각하는 선생님들께서 의기투합해 쓰셨습니다. "환경과교육연구소"라는 협동조합 소속의 연구자이자 교육자들이십니다. 어린이들 친숙해할 SF 영화를 '환경'을 키워드로 여러 저자가 나눠 맡아 썼습니다. "레버넌트"와 "매드맥스" 분석 에세이가 그중에서도 인상적입니다. 분석이 예리하거나 참신해서 인상적이라기보다, 누구나 영화 보며 스치듯 생각할 수 있던 주제들을 '환경문제와 생존(공존)'이라는 키워드 아래 뜻 모은 일군의 저자들이 실제 활자로 옮겨냈다는 그 실천성이 인상 깊었습니다.



『밍기민기』는 (아마도 저 그림책을 그리던 당시 30대 중반, 미혼이었을 작가가 조카 덕분에 수집한 에피소드를 제목처럼 맹랑명랑하게 그려낸 만화책입니다. 몇 대목에서는 킬킬 웃으며 읽었어요.

『힙합은 어떻게 힙하게 됐을까?』, 아! 이 책 엄지척입니다! 한동윤 저자는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온몸으로 힙합을 좋아하고 알고, 대중에게 전하고 싶어 하는 분 같아요. 아니나 다를까, 스트리트 댄서, 댄스 강사였다다 음악평론, 저술가로 활동하는 분이라네요. 인터뷰를 찾아 읽어보니, 이 분도 "Soul Train"에서 영감받았군요. 한동윤 저자 인터뷰는 아래에서~~http://naver.me/xJIMkXo7


1995년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 젊은 작가인데 이처럼 어두울까 하며 읽었던 기억. 그녀가 이렇게 세계적 작가로 인정받을 줄 모르고 그저 음울한 분위기만 기억했네요. 『노랑무늬영원』, 세 번째 소설집이라는데 여전히 힘들게 읽었습니다. 가깝건 멀건, 아프거나 죽고, 신체이건 마음이건 마비당해서 의지대로 못 살고, 가족이 있어도 점점 점으로 존재해서 외롭고 뭐 한강 소설집의 느낌이 여전합니다. 이채롭게도 이 책에는 문학평론가들의 '평론'이 실려있지 않네요.

2월 책 읽기 행진은 계속됩니다. 리베카 솔닛의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와 『자살폭탄테러』를 동시에 읽고 있습니다. 가을에 모아둔 밤을 까먹듯, 겨울에 양분 쌓았다가 봄에 개구리처럼 튀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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